아잔 차 스님의 오두막 - 위빠싸나 선사 아잔 차의 가르침
잭 콘필드 엮음, 김윤 외 옮김 / 침묵의향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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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알아차리려 하십시오.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놓아두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마음은 어떤 환경에서도 고요해질 것입니다.
숲속의 맑은 연못처럼.
온갖 놀랍고 희귀한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그 연못으로 올 것이며,
그대는 모든 존재의 본성을 또렷이 볼 것입니다.
기이하고 경이로운 것들이 수없이 오고 가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는 고요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의 행복입니다.

- 아잔차 - - P7

- 감사의 말 -

우리는 여러 스승과 친구들의 도움에 감사한다. 특히 아잔 수데도스님과 왓 바나나차 사원의 파바카로 스님은 원고를 읽고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해 주었다. 로스앤젤레스 선원(禪院)의 앤디 타이도 쿠퍼와스티브 이코 보디안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이 책의 편집을 돕고 귀중한 도움을 준 셜리 니콜슨과 시어소피컬 출판사에 특별히 감사한다.

이 책 가운데 ‘스승과 나누는 대화와 용어 풀이는 잭 콘필드의 책살아 있는 불교 스승들(Living Buddhist Masters)》에서 인용했으며, ‘승려의 삶과 ‘무아는 영국 브리티시 방송국에서 제작하고 방영한 〈알아차림의 길(The Mindful Way)〉에서 인용했다.
- P9

아잔 차 스님은 말한다. "사람들은 물소와 같다. 네 다리가 단단히이와묶이지 않으면 어떤 약도 받아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같이, 우리 대부분은 고통에 완전히 묶인 뒤에야 망상들을 놓아 버리고 포기할 것이다. 몸부림칠 기력이 남아 있는 한 항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 법을 깨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대부분은 삶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삶은 우리를 끝까지 가르칠 것이다. 훌륭한 가르침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언젠가 스님은 위빠싸나 명상 수련원의 잔디밭에서 느린 걸음으로걷기 명상을 하고 있는 수련생들을 보면서, 명상 수련원이 세속에 물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 같다고 말했다. 또 매일 오후 산책을하다가 수련생들 곁을 지나칠 때면 큰 소리로 격려했다. "곧 나아질겁니다. 곧 나아지길 바랍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다.

스님은 말한다. "자, 들어 보세요.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것뿐이에요. 주인이 없어요. 늙거나 젊다고, 좋거나 나쁘다고, 허약하거나 건강하다고 할 누가 없어요.
태어난 사람도 없고 죽을 사람도 없어요.
우리가 짐을 지고 있으면 짐이 무겁지요. 짐을 질 사람이 없으면 세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이것이 참된 도(道)다.
- P12

스님은 선(禪) 일화를 얘기한다. "선불교의 공안 가운데 바람에 날리는 깃발이 있다. 두 사람이 깃발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한다. 두 사람의 다툼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고 몽둥이까지 들고 싸울 수 있겠지만,다 부질없는 일이다.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정말 중요한 점은 마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그대에게 마음이 있으면 문제도 있다. 그러니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가?

위대한 스승 아잔 차 스님은 이미 그대에게 위대한 도(道), 진리와바른 삶을 전해 주었다. 부디 그대들이 이 책을 통해 참된 길을 찾고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기를.…….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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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유대교는 내생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해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대개 정통 유대인들은 내생을 거의 혹은 전혀 믿지 않는데, 그것은 유대교의 성전인구약성서가 그 문제에 대하여 거의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대인들이 유대 종족과그 존속에 크게 의미를 두는 것은 앞서 언급한 유물론자와같은 경우이다. 물론 그 내용은 다르다. 즉 유대인은 종족존속에 관심을 쏟음으로써 개인의 사후 존속에 대해 거의생각하지 않는 반면, 유물론자는 개인의 사후 존속을 부인하기 때문에 종족의 존속에 희망을 걸곤 한다.
- P17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어네스트 존스 같은 위대한 심리학자까지도 내생을 믿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어떻게든지 내생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실제로 입증할 수만 있다면, 한 걸음더 나아가 심리분석이나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사후 소멸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이다. 그러나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므로 그의주장은 설 땅을 잃고 만다. - P19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사후 존속을 믿는 사람들이나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각기 나름대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매나 심령주의자나 신을 믿는 종교의 골수분자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 그는 아마 의심에 시달리거나 고작해야 자기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막연한 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여러 가지 엉뚱한 억측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어떤근거로 그러한 억측들이 가능한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 P21

존스 박사와 같은 학자들이 공포심을 덜기위해서는 내생을 믿어 보려는 마음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더구나 존스식해결 방법이 이 사회나 개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심리적억압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래 사후 존속을 부정하는 사고방식은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비롯했고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실상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며 인간 생명에대한 우리의 존엄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동물은 영혼을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통 기독교적 견해는 실제로 그 부분에서는 유물론적 입장에 선다. - P22

임종 때 혼미하여 의식을 놓치면 죽는 사람은 금생에 그러했던 것처럼 맹목성과 혼동을 그대로 지닌 채 다음 생으로넘어가게 된다. 그렇다 해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내생 같은것은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이러한 배려를 전혀 가치 없는 것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설사 내생이 없다 치더라도 임종을 맞는 많은 사람에게서 내생이 있다는 위안을 박탈하는 것은 매우 잔인한 일이다.

그렇게 볼 때 일부 인본주의자들이 병원 주재 성직자 제도를 폐지하자고 하는 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병원주재 성직자들 가운데 일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환자나 임종을 맞는 사람들에게어느 정도 위안을 줄 수 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높은 수행을 쌓은 스님이 그런 일을 맡는 것이다.
- P25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 그 시간이 불확실할 뿐
Mors certa - hora incerta.

이와 같은 생각을 항상 지니는 것은 불교도가 닦아야 할정견正見, 바른 견해 수행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그런의미에서 (서구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죽음을 주제로 한 불교의 명상 수행은 마땅히 권장되어야 한다.
- P26

불교도에게 있어서 죽는다는 것은 실제로 완전한 끝장이 아니라 다만 우리를 현생에 묶어 놓는 모든 고리들이일단 끊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과 그 즐거움에서 초연하면 할수록 죽음을 맞을 올바른 준비를 한셈이고, 그것이 불사不死의 경지에 이르는 팔정도를 따라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불사는 죽음이 없는 상태인 열반Nibbāna, amatam을 가리키는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팔정도 수행이 완성의 경지에까지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곧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윤회samsira는그 자체가 끊임없는 생사의 반복일 뿐이다. - P26

우리는 죽으면 곧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만 한다. 
불교에서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태어나는 곳이 아무리 행복한 선처善處라 할지라도 그것조차도초월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할 때에만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초보 단계에서는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재생에 집착하는 마음까지도 점차 극복해야만할 것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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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두려운 것인가 - 법륜 열하나 법륜 11
엠 오 시 월슈 지음, 우철환 옮김 / 고요한소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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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입에 담기 꺼려지는 주제

오늘날 죽음의 문제는 마치 과거에 성 문제가 입에 담지못할 말이었듯이 좀처럼 입에 담기 꺼리는 주제이다. 정녕죽음이란 우리들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북한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서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조만간 죽는다는 사실이다.
- P7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는 말은 그 생각에만 끄달린다는 뜻은 아니다. 불교는 다른 모든 경우에서 중도를가르치듯이 불교는 죽음의 문제에서도 중도를 택한다. 불교는 죽음에 대해 해로운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보다 분별 있고 균형 잡힌 관심을 기울이도록 가르치고,
어떻게든지 죽음에 대한 생각조차 회피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해 준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불건전한 마음의 상태로서 그 자체가 번뇌다. - P8

불교에서는 기독교적 견해를 변질된 사후 존속론sassatavada [常住論] 으로, 유물론적견해는 변질된 ‘영혼 소멸론ucchedavāda [斷滅論]‘이라고부른다. 실제로 이 두 견해는 모두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있다. 불교에서 보는 죽음이 무엇인지 그 실상을 분명히이해하려면 불교의 보편적 인간관을 어느 정도 알아보아야만 한다. - P12

진정한 불교적 견해로 볼 때 삶과 죽음이란 비인격적(無我의식의 흐름일 뿐이고 그것이 무지와 갈애에 떠밀려 한생에서 다음 생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 흐름의 과정은 어떤 인격적 주체가 있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자아가 있다는 망상은 끈질기게 이생에서처럼 다음 생에서도 계속된다.

절대 진리의 관점으로 보면 불멸의 영혼은 없다. 우리가계속 몸을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필시 불멸의 영혼이 있을거라 여기기 십상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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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터무니없는 역사수정주의를 바탕으로 호주 의회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중국인은 호주 국민에 대해 지금까지 줄곧 우호적인 감정을 소중히간직해왔습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1420 년대에 중국 명나라 원정함대가 호주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수 세기 동안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항해하고 당시 남방 땅이라고 부르던 곳 즉, 지금 호주에 정착했습니다. 이 땅에 중국 문화를 도입하고 현지인들과 조화롭게 살며, 자랑스럽게도 호주의 경제와 사회, 다원주의 문화가 성대하게 발전하도록 이바지했습니다. 

후진타오의 주장은 영국인 개빈 멘지스Gavin Menzies가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142 1: The Year China discovered the world)에 쓴 중국 정크선의 역사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 P52

눈이 번쩍 뜨이는 제임스 토의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까지 중공의 대외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중공이 다양한 방법으로 호주의 한족을 관리하는 주된 이유가 체제를 무너뜨리는 목소리나 비판적인 목소리에 반박하고 그 목소리를 지우는 일로만 짐작했다. 하지만 내가 짐작한 수동적인 목표 뒤에 능동적인 목표가 숨어 있었다. 이주 중국인을 활용해 호주 사회 전체를 중국의 가치에 공감하고 베이징이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탈바꿈한다는 목표였다. 이렇게 해서 중국이 아시아와 그리고 이를 넘어 마침내 세계에서 패권국이 되도록 호주가 돕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 P56

사실 베이징은 뉴질랜드와 더불어 호주를 서구 진영의 ‘약한 고리‘ 즉,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무너트리는 전략을 시험하고 시진핑의 중국몽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이상적인 장소로 본다. 2000년대이전과 달리 중국 국적자의 해외 이민을 장려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베이징이 호주 등의 국가에 자유무역협정 조건으로 노동시장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까닭도 같은 이유다. 호주에 베이징을 지지하는 중국인이 많이 살수록, 중공이 호주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 P57

중공은 외국에 사는 한족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해외에 사는중국 국민(화교華橋), 외국 국적을 취득한 한족(화인華人), 한족의 후손(화예華裔)‘. 그리고 이들 모두 조국에 의무를 지닌 중국의 아들딸‘로여긴다. 그래서 중공은 해외에 사는 모든 한족의 ‘중화성과 민족 친화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공 지도부가 해외 중국인의 충성심을 조종한다는 인식에 민감하기 때문에 교무 계획의 진짜 목적은 제임스 토의 말처럼 "조심스럽게 비밀에 가려져 있다."  - P71

뭐라고 번역하건, 오늘날 중국에 깊이 뿌리박힌 견해가 "중국인이 된다는 것은 인종에 속하는 것이다"라는 중국학자 다니엘 벨DaniedBell의 주장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고위직들도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중국 혈통을 물려받은 사람은누구나 고국에 대한 사랑이 피에 스며들어 있다‘." ‘중국 피‘에는 공격 DNA가 없다는 시진핑의 말에도 인종본질주의 racial essentialism‘라는 께름칙한 생각이 담겨 있다.
- P72

2016년 10월 앤슨 찬은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이끈 변호사 마틴 리 Martin Lee 와 호주를 찾았다. 캔버라의 중국 대사관은 두 사람이 호주의 장관이나 의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지만 실패했다. 피터 하처 Peter Hartcher 기자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앤슨 찬은중국이 호주를 장악하고 있으며 호주인들이 ‘일당독재국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95 앤슨 찬은 중공이 사회단체와 NGO, 언론 매체 심지어 정부까지 전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공자학원을 세우고 중국어 매체를 통제하고 정치 후보를 매수하는 방법이다. 중공이 통제하는 중국은 ‘철두철미한 장기적 지배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우리에게 환상을 갖지 말라고 경고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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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떨쳐버린 자신을 바라볼 때 기쁨이 일고, 기뻐하는 그에게 환희심이 생겨나며, 환희심에찬 사람의 몸은 고요해지니, 몸이 고요해짐에 그는 행복을느끼며, 행복한 마음은 집중된다.

이윽고 그는 감각적 욕망을 멀리하고 불선한 관념 akusala dhamma을 멀리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멀리함에서 생겨나는24 환희와 행복감으로 충만한, 생각 일으킴vitakka과 추론적 사유icara가 아직 수반되고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무른다. 그는 제2선…. 제3선…. 제4선에 들어머무른다."
- P63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속에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비구는 스스로를 빚진 사람, 환자, 옥에갇힌 사람, 종, 사막 길을 걷는 여행자로 여긴다.
- P64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향한 감각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람은 욕망의 대상에 대해 애착이가득한 나머지 그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상대로부터 호된 소리를 듣고, 괴로움을 당하고, 매를 맞는다 해도 이를 모두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인종忍從을 강요당하게 된 것은 감각적 욕망 탓이다. 이처럼 감각적 욕망은 마치 빚을 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 P65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그러나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을 때, 비구는 스스로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에서 쾌유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 자유인,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 P70

어떤 비구가 감각적 욕망은 장애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여 감각적 욕망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여섯 가지 사항을 닦아, 감각적 욕망이라는 장애를제거한다. 마치 빚을 청산한 사람이 예전의 채권자를 만나도 더 이상 두렵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감각적 욕망을버린 사람 또한 욕망의 대상에 더 이상 집착하거나 구속당하지도 않는다. 설령 천상의 미녀를 보더라도 애욕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는 감각적 욕망을 버리는 것을 빚을 청산한 것에 비유하신 것이다.
- P71

그 누구도 자유인이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하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이제 들뜸과 회한도 이 비구가 행복한 출리出離 nekkhamma의 길을 걷는 것을 더 이상 막아서지 못한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는 들뜸과 회한을 버림이 종살이에서 자유를 얻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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