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의 한 유형만이 아니라 사회의 한 유형을 가리킨다. 투자자와 소유주를 위해 화폐화된 가치를 축적하는 공식적으로 ‘경제‘라 지정된 영역을 인가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화되지 않은 모든 부를 먹어 치우는 사회 말이다. 이러한 사회는 그 부를접시에 담아 대기업 소유 계급에게 대접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 역시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돌봄, 생태계, 정치의 위기를 함께 불러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현재 이들 위기는 신자유주의로 알려진 대기업의 폭식이 오랫동안 계속된 탓에 그 정점에 이르러 있다.
일단 우리의 자본주의관을 확장하고 나면, 이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지에 관한비전 역시 확장해야 한다.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든 아니면 다른 뭐라 부르든,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은 시스템의 경제 영역 재편만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현 위기는 금융 등의 공식 경제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돌범 결핍‘, 현상까지 포괄하는 다차원적 위기다. 하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위기 이론은 경제 측면에만 집중함으로써 이를 다른측면들과 분리하고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첫 번째 핵심 특징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다. 그리고 이는 소유주와 생산자 사이의 계급 분할을 전제로 한다. 이 분할은 대다수 민중이 생계수단과 생산수단을확보할 수 있었던, 즉 노동시장을 거치지 않고도 도구나 토지, 일과 식량, 주거와 의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전의 사회 세계가 해체된 결과로 등장한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이 제도배열을결정적으로 뒤집었다. 자본주의는 공유지에 울타리를 둘러 사유지로 만들었으며, 다수 대중이관습적으로 행해온 생산수단 사용권을 철폐했고, 공유 자원을 소수가 사적으로 소유하도록 바꾸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상품 생산에 쓰일 투입요소(부르주아 정치경제학에서는 ‘생산요소‘ 라고 하는)를 할당하는 역할을 한다. 이 투입요소는 원래 ‘토지, 노동, 자본‘으로 식별되었다. 자본주의는 그 중에서 노동을 할당하는 데 시장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자본재 원자재,신용을 할당하는 데도 시장을 이용한다. 시장 매커니즘을 통해 이러한 생산 투입요소를할당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이들을 상품으로 변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이 맡는 두 번째 핵심 기능이 더 있다. 시장은 사회의 잉여가 어떻게투자될지를 결정한다. 마르크스에게 ‘잉여‘는 특정한 생활 형태를 재생산하는 데(또한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것들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정도를 초과하는 사회적 에너지의 집단적 적립을 뜻했다.
자본주의에 내재한 맹목적 지행성인 ‘자기‘확장 과정과 긴밀히 관련된다. 이 과정을 통해 자본은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로 구성하며, 자본의 창조주인 인간을 오히려 자본의 종복으로 전락시킨다.
인식의 전환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것은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를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진 자연적 존재로 지속시킨다. 또한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 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을 형성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의 관할영역과 ‘경제‘의 관할영역 사이에 선명한 분할을 전제하며, 실제로이를 등장시킨다. 이때 자연은 ‘원자재‘를 지속적으로 무상 공급하는, 쉽게 전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경제는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생산되는 가치의 영역이라고 인식된다.
마르크스가 ‘물질대사 균열‘이라 칭한 바가 시작됨으로써,바야흐로(다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인 ‘인류세‘라고 불리는 완전히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열렸다. ‘인간 활동‘ (실은자본 활동이 지구를 놓고 제 살 깍아먹는 짓을 벌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의 수단인 수탈에 맞서 저항이 일어날 경우에도, 이를 진압하는 ‘정당한 ‘폭력‘을 동원하는 것 역시 영토국가였다. 또 화폐를 국유화해 지급 보증 서명을 남기는 것도이러한 국가였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구성‘한 것은 국가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구조적 분할과 마주한다. 즉 ‘정치‘와 ‘경제‘의 분할이다. 이 둘이 분할하면서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 경제적 강제와 정치적 강제가 제도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윤리적 삶의 사물화된 형태도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라는게 나의 답이다. 이를테면 봉건제 같은 하나의 사회 질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사회,정치, 자연, 주변부는 경제와 동시에 발생하고, 경제와 공생관계를 맺으며 발전한다. 이것들은 실질적으로 경제의 ‘타자‘로서 경제와 대비됨으로써만 특수한성격을 부여받는다. 말하자면 ‘재생산‘과 ‘생산‘은 각각 서로를 통해 규정됨으로써 서로 짝이된다. 상대방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을자본주의의 전경/배경 관계에 관한 설명이 정확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첫째,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 자본주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조건 구실을 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그 존립 자체를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에서 나오는 가치들과 투입요소에 의존한다.하지만 둘째로,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 각기 고유한 무게와 성격을 지니며, 특정한 환경에서는 반자본주의 투쟁에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로, 이 영역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 서로를 구성해왔고 이러한 공생관계가 각영역에 자취를 남기고 있다.
마르크스는(경제적) ‘위기‘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내적 경향을 다루는 체계적 비판 (계급) ‘지배‘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역학을 다루는 규범적 비판, (계급) ‘투쟁‘의 특징적 형태에 내재한 해방적 사회 변혁의 잠재력을 다루는 정치적 비판을 날줄과 씨줄 삼아 서로 엮었다. 내가 제시한 관점은 그 비판의 가닥들이 이와 비슷하게 교직될 것을 요청하지만, 그 짜임새는 마르크스의 경우보다 더 복잡하다. 각 가닥이 그 내부에서부터 다양하기 때문이다.
본이야기의 이면을 파고들어가 배경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노동 착취의 모든 배경 조건이 자본주의 사회 내 갈등의 초점들로 떠오른다. 생산 지점에서 벌어지는 노동과 자본의 투쟁만이 아니라 젠더 지배, 생태계, 인종주의, 제국주의,민주주의를 둘러싼 경계투쟁이 그러한 초점들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사실은, 이제 경계투쟁이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둘러싸고 EO로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새롭게 조명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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