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미야라면 가족이나 나 이상으로 마오리를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가미야는 지금까지 마오리의 일상을 뒷받침해주었을 뿐 아니라 일상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여름방학중에도 거의 날마다 만났다고 들었다. 마오리에게 그림을그리도록 권한 사람도 가미야였다. 마오리의 뇌에 기억이 축적되지 않아도 신체감각으로남는 게 있다. - P274

기억은 축적되지 않을 텐데도 마오리는 전보다 빨리가미야와의 관계에 익숙해져 웃음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지낼까.
가끔 살짝 부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비밀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시간과 더불어 현실이 되어갔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 뒤로도 변함없이 계속됐다.
체육대회와 학교 축제가 열려도가을이 와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도두 사람은 계속 사귀는 사이로 남았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나는 그런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바라봤다. - P278

3학년으로 올라가면 나와 마오리는 다른 반이 될 것이다. 마오리가 특별반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봄방학이 되기 전에 가미야와 함께 학생주임 선생님과상의해 마오리가 가미야와 같은 반이 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4월이 되자 나와 마오리는 각기 다른 교실에서학교생활을 하게 됐다. - P285

대학 입시의 승패를 결정하는 여름이 오더니 연필을 놀리는 사이에 가을이 찾아왔다. 수능을 볼 겨울이 닥쳐오고그게 끝나면 가장 중요한 2차 시험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봄이 되어 있었다.
길고도 짧았던 고등학교 3년이 끝났다.
우리는 무사히 고등학교 졸업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셋이 함께. - P286

졸업식 날, 마오리는 놀라면서 "믿기지 않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믿기지 않아‘는 세월이 흐른 것이 아니라 그런 상태에서도 자신이 학교를 계속 다녀 졸업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었다. - P287

고등학교 2학년 4월 말부터 약 3년 동안 기억장애가 있었다.
잠을 자서 뇌가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그날 하루의기억이 축적되지 않은 채 지워지는 특수한 기억장애다. 나말고도 비슷한 사례가 더 있는 모양인데, 치료 방법이 없어 인간이 갖는 자연 치유력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연 치유력은 젊을수록 효과도 좋아서 나는 약석달 전 4월에 장애를 극복했다.
전날 있었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 P293

기억장애를 가지고 있던 나는 정보성 기억은 축적할 수없지만 ‘절차 기억‘이라고 부르는 신체감각에 근거하는 기억은 축적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림을 그리는 기술에도 해당돼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가끔 이즈미를 만나 노는 한편 하루의 태반을크로키북과 함께 보냈다고 한다.
장애에서 회복되기 전날에도 일기 등을 읽은 뒤로는 그림을 그리면서 보냈다. - P294

"엄마, 기억장애란 게 아침이 돼서도 얼마 동안은 기억이 나는 거야? 어제 일이…… 똑똑히 기억나는데."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대답하지못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부랴부랴아버지를 불렀다. 나는 혼란에 빠진채전날 있었던 일을하나하나 기억해냈다.
아버지가 오고 나서 셋이 함께 전날 있었던 일을 확인했다. 내 기억은 정상이었다. - P296

아까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 일기인데, 이즈미가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시골길을 달리는 내용이었다. 뭐랄까, 여자들의 청춘 같다.
이즈미 덕분에 날마다 즐겁게 지냈나 보다. 이즈미는대체 사람이 얼마나 착한 걸까. 응석이나 다름없는 내 말을 매일 들어주었다.
고등학교 때 썼던 스마트폰은 망가졌다고 해서 애석하게도 당시 사진과 동영상은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노트북의 일기는 잘 남아 있었다. - P299

전에는 미술 학원에 다녔던 모양인데 나는 미대에 갈 실력은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림 그리는 게 내 기쁨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한 어느 일요일 아침, 방에서 처음 보는 크로키북을 발견했다.
책꽂이 뒤에 마치 숨겨둔 것처럼 놓여 있었다. - P300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어제도 가미야는 도서관에서 마오리를 만났다. 그 뒤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자전거를 인도 곁에 세우고 진정하려 했는데 다리 힘이 풀렸다. 자전거 짐받이를 손으로 짚으려다 자전거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가미야는 병원에 있었다.
지나가다가 가미야가 쓰러지는 것을 본 사람이 구급차를 불렀다고 했다. - P303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가미야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그만 가야겠다. 그럼 다음에 또 봐"라말하고 떠났다.
내 안에 희미한 웃음만을 남기고,
가미야 도루가 심장 돌연사로 죽은 것은 그다음 날 밤이었다. - P308

가미야는 누나에게 마오리의 기억장애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가족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오리는 가미야가 마오리의 기억장애를 알고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대꾸하지 못하자 누나가 말을 이었다.
"미안해.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도루는 네병을 안다는 걸 감추고 있었구나."
HONLA
"저, 전… 그 애한테 병 이야기를 안 했는데요. 그, 그런데 어떻게. - P317

나는 그저 가미야의 누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살아야 하는 생을 사는 게 우리 인간의 참된 모습이라면 마오리가 괴로워하면서 사는 것도, 우리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사는 것도, 둘 다 올바른 모습이라고 난 믿어. 다만.……… 와타야, 도루는 선택을 너한테 맡겼어. 그러니까 네가 정하렴. 그러고 싶은지, 그러고 싶지 않은지, 그것만 기준으로 해서. 난 네 판단을 따를게. 만약 너 혼자 정할 수 없다면 날 이유로 삼아 그게 도루의 유지라면 난 이뤄주고 싶어. 그렇지만......."
가미야의 누나는 머리를 수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 P321

마오리의 진짜 일기와 파일에 옮긴 일기를 비교하며 읽었다.
어느 일기에도, 어느 페이지에도 마오리와 가미야의 기억이 있었다.
두 사람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 광경이 일기에서 생생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가미야는・・・・・・ 아니, 도루는 마오리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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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까? 팽창의 특징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팽창의 특징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다면 순서대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통찰지에 따라 먼저 땅의 요소(pathavi dhatu)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땅의 요소로부터 시작했다고 합시다. (좌선하고 있는 동안에)[윗니와 아랫니를 서로] 부딪쳐보거나 어금니를 꽉 다물어보십시오. 딱딱한가요? 부드러운가요? 딱딱하지요. 만약 딱딱함이 그 곳에서 분명하다면 접촉되는 발이나 뼈들 혹은 빠진 곳이 없이 모든 곳에서 온몸으로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면서 딱딱함을 식별하십시오. 돌이나 쇠처럼 느껴지는 딱딱함처럼 온몸에서 딱딱함을 식별하십시오. - P33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거침을 식별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혀로 윗이빨의 끝부분을 좌우로 문지르면서 거침을 느껴보십시오. 혹은 넓적다리 위에 있는 옷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거침을 느껴보십시오. 온몸에서 체계적인 방식으로 거침을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딱딱함 속에서 거침을 식별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팽창을 식별하면 도움이 됩니다. - P33

팽창을 식별하였다면 이제는 이빨을 서로 부딪쳐보거나 힘을 주어 눌러보면서 다시 딱딱함을 식별해 보십시오. 주먹을 꽉 쥐어보면 거기서도딱딱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딱딱함이 또렷하게 식별되는 곳이 어느 곳이든 그곳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온몸 전체로 확장하면서 딱딱함을 식별해 나가십시오. - P34

딱딱함이 분명하게 인식되면 거침을 식별하십시오. 거침을 식별할 수없다면 다시 체계적으로 온몸에서 팽창과 딱딱함을 식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거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체계적으로 팽창, 딱딱함 그리고 거침을 온몸에서 식별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 P34

이러한 (딱딱함, 거침, 팽창이라는 세 가지 성품을 식별하였다면 무거움을 식별하십시오. 넓적다리를 손으로 눌러보거나 엉덩이를 바닥에눌러 보거나 무게를 실어보십시오. 그러면 무거움이 뚜렷해질 것입니다. 무거움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 P35

지탱은 몸을 위로 곧추 세울 때 식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지탱이 뚜렷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면 몸을 느슨하게 만들어 움직여보거나 약간 옆으로 기울여보십시오. 그리고는 몸을 다시 곧추세우고는 움직이지 말고몸을 위로 곧게 유지하십시오. 이 몸을 위로 곧게 유지시키는 힘이 바로지탱입니다. 이것을 식별하십시오. - P35

팽창과 지탱은 바람의 요소입니다. 딱딱함, 거침 그리고 무거움은 중요한 땅의 요소(garu pathavi dhatu)입니다. 중요한 땅의 요소인 무거움이 식별되면 이제는 부드러움을 식별합니다. 부드러움을 느끼려면 혀로입술의 안쪽을 밀어 보십시오. 뚜렷한 부드러움의 특징이 느껴지는 입술로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으로 온몸에서 부드러움을 식별하십시오. - P35

부드러움을 식별하였다면 매끄러움을 식별하십시오. 혀로 아랫입술이나 윗입술 안쪽을 좌우로 움직이며 문질러 보십시오. 거기서 매끄러움을식별하십시오. 온몸에서 오일을 바른 것과 같은 매끄러움을 체계적으로식별하십시오. - P36

이 단계가 지나면 가벼움이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가벼움이 뚜렷하지않으면 무거움과 함께 식별하십시오. 무릎 위에 놓여져 있는 손의 무거움을 식별하면서 손가락 하나를 까딱까딱 해보십시오.(즉 손가락 하나만올렸다가 내림) 그러면서 거기에서 가벼움을 식별하세요. - P36

‘지혜에는 빛이 있다‘고 앙굿따라 니까야 셋의 모음 니밋따 경」(nimitta sutta)에서 부처님은 설하셨습니다. Yato ca kho, bhikkhave,
adhicittamanuyutto bhikkhu kālena kālam samadhinimittam manasikaroti, kālena kalam paggahanimittam manasi karoti, kalena kalamupekkhānimittam manasi karoti, tam hoti cittam muduncakammaññanca pabhassarañca, na ca pabhangu, sammā samadhiyatiasavanary khayaya. (비구들이여, 그러나 높은 마음을 닦는 비구가 때때로 삼매의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정진의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평온의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그때 그의 마음은 부드럽고 적합하고 빛나고 부서지지 않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바르게 삼매에 든다.) - P44

tam hoti cittam mudufica kammafifiafica pabhassarafica(그때 그의 마음은 부드럽고 적합하고 빛이 난다.) - 사마타를 닦는 마음(samathabhavana citta)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 (vipassana bhavana citta)은 부드러워지고 적합하게 됩니다.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적합하게 되므로 삼매도 얻을 수 있고 위빳사나로 전향할 수도 있습니다. 물질(rupa)을 식별할 수도 있고, 정신(nama)을 식별할 수도 있습니다. 원인을 식별할수도 있고, 결과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즉 수행자가 원하는 것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되고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데 적합한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음도 빛이 밝게 빛납니다. - pabhassara(빛이난다). 부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 P45

수행을 할 때에는 삼매의 원인이 되는 표상(nimitta)에만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또한 정진의 원인이 되는 표상(nimitta)에만 주의를기울여도 안됩니다. 평온의 원인이 되는 표상(nimitta)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안됩니다. 삼매와 정진, 평온이라는 이 세 가지에 균등하게 주의를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진이 과도하면 마음이 들뜹니다. 삼매가과도하면 마음이 게을러지고요, 평온이 과도하면 어리석음(moha)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매와 정진은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 P45

삼매와 정진의 균형이 맞았다면 그리고 수행자가 평온의 힘을 사용할수 있다면 사마타를 닦는 마음과 위빳사나를 닦는 마음은 어떤 수행을하더라도 부드러워지고(muduta) 적합하게(kammmaniya) 됩니다. 어떤수행을 해도 마음은 유연하므로 적응할 수 있습니다. Pabhassara(빛이있다) - 마음은 밝게 빛나게 됩니다. na ca pabharigu(부서지지 않고)- 이 마음은 장애 (nivarana)라는 오염(kilesa) 들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sammā samādhiyati asavānam khayaya(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바르게 삼매에 든다.) - 번뇌(asava)가 제거된 아라한과를 얻도록 마음은안정이 될 것입니다. - P46

목갈라나 존자가 아라한이 되는 이야기가 앙굿따라니까야 졸고 있음겅」(Pacalayamana sutta)에 나옵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목갈라나 존자에게 해태와 혼침(thina middha)에서 벗어나려면 밤과 낮으로 빛(aloka)을 만들라고 가르칩니다. - P47

부처님도 네 종류의 빛이 있다고 앙굿따라 니까야광명경」(alokasuttam)과 「빛 경」(abhasutta)에서 ① 태양의 빛 ② 달의빛(별빛을 포함하여) ③ 불의 빛 ④ 지혜 (통찰지)의빛, 네 가지가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 P48

위빳사나 지혜의 빛이란 무엇인가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이 밝은 빛은 위빳사나의 마음에서 생긴 것이고 또한 물질 자체의상속과정(santati)에서 일어난 온도(utu)라고 하는 불의 요소(tejodhatu)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 P49

위빳사나를 하는 마음에서 생긴 빛은 외부의 대상을식별하거나 보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마타를 닦는 마음에 빛이 있다면 이 빛도 역시 외부의 대상을 식별하는데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안통(dibba cakkhu abhina)처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천안통처럼 강력하지는 않아도 외부의 대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외부의 대상을 볼 때 눈의 알음알이 (cakkhu viññana, 眼)로 봅니까? 아니면 마노의 알음알이 (mano viinana)로 봅니까?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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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는 자본주의에서 특유하게 나타나는 인종적 억압을 좀더 눈에 잘띄게 하면서, 동시에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마침내 ‘자본주의‘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게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부흥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마르크스주의의핵심 질문이 다시금 절박하게 제기되었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인종주의적인가? 과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인종적 억압이 극복될 수 있을까?

여전히 착취와 수탈에 의존하지만 이들을 서로 극명히 나뉘는 인구집단에 적용하지는 않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종적 억압을 극복할 전망을 따져볼 것이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특정 인구집단을 인종화함으로써 더 쉽게 제 살 깍아먹기를 벌이려 하는 내재적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자본주의는 ‘잔혹한 처벌을 즐기는 수탈 탐식가‘로 이해되어야만 함을 밝힐 것이다.

자본주의 필연적으로 인종주의적인가? 자본주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자본주의를 어떤 시각에서 인식하는지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각을탐색해볼 만하다. 대학과 기업뿐만 아니라 상식 속에 군림하는 첫 번째 접근법은 자본주의를시장 ‘교환‘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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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此門內 莫存知解

無解空器 大道充滿

이 문안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갖지 말라.

알음알이가 없는 빈 그릇에 큰도가 충만하리라. - P267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그 안에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 변화하는 현상으로써 작용할 뿐! 그러므로 항상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의행위가 나를 결정짓는다고 하는 것이다. - P268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것은 ‘나만 잘났다‘는 생각이다. 남의 험담하는 것도 결국 ‘나 잘났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라는 인과법(因果法)을 철저히 믿지 않아 안달하거나 초조해하는 것도어리석음이다. - P275

어떤 사람은 참회하기 전 자신이 주위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진정 용서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첫걸음이다. 자기를 돌아봄이 잘 안 된다면 그만큼 아상이 강한 것이다. 남의 눈 속의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처님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다 보면 비로소 진정한 자신에 눈뜨기 시작한다.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흠뻑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회를 통해 얻게 되는 귀중한 결실이다. - P276

‘기도(祈禱)‘라 하면 얼핏 외부의 불보살이나 신 등에게 소원 성취를 비는 정도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도란 우주 에너지와의 합일을 통한 자기와의 만남이다. 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정신적 변화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기존의 ‘작은 나‘에 대한 그릇된 집착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우주 에너지를 체험하고, ‘큰나‘에 접근하며, 진리와 하나가되어 가는 것이다. - P282

궁극적으로 진리를 체득하고자 한다면 시비분별이 쉬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단 모든 알음알이를 쉬어 줄 필요가 있다. 기존의 고정관념, 알음알이를 모두 놓아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마음 그릇이 완전히 부서져 버리는 체험이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참선(參禪)은 바로 그릇 없애기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 P287

‘문안의 수행‘은 자성을 보는 것(見性)이다. 몸이니 마음이니 하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을 부여잡고 닦으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부질없다. 본성이 공(空)함을 체득하는 것이야말로궁극적이다. 그것은 뿌리를 보고 근본 줄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단박에 가능하다. - P288

사실 참선의 목표이자 방법은 견성이다. 그런데 견성의 몇몇 사례를 살펴 알 수 있는 것은 참선을 함에 있어 정작 몸뚱이 좌선이나마음 닦음이 필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러한 기존 관념은견성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견성을 위해 정작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선지식과의 만남이다. <육조단경>에서도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자성을 보라‘고 누누이 권하고 있다. 최상승법이 바른길을 곧게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 그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이다. - P289

"만약 자기의 마음이 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를 일으켜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육조단경』 - P290

이처럼 참선을 하면 행복해진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도는 바라는 것이 있어서 소원을 빌게 되고, 소원이 성취됨으로써 기쁨을 느끼겠지만 참선은 이와는 다르다. 누군가에게 나의 행복을 빌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 행복의 조건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실상 행복해지기가 어렵다. 예컨대 가정의 평화와 경제적 풍요, 그리고 여러 가지 주변 상황이 자신의 뜻에 딱 맞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쉽게 행복을 성취할수 없을 것이다. 바로지금 여기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더 이상할 일이 없고, 더 이상 될 것이 없음을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참선의행복이다. - P294

참선은 본래 돈오(頓悟)를 주창한다. 단박에 깨친다는 것은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不立文字直指人心 見性成佛)‘을 말한다. 교리와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곧바로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마음은 아바타요, 성품은 공(空)한 것이다. 실체는 없고, 현상이 있을 뿐!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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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의 한 유형만이 아니라 사회의 한 유형을 가리킨다. 투자자와 소유주를 위해 화폐화된 가치를 축적하는 공식적으로 ‘경제‘라 지정된 영역을 인가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화되지 않은 모든 부를 먹어 치우는 사회 말이다. 이러한 사회는 그 부를접시에 담아 대기업 소유 계급에게 대접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 역시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돌봄, 생태계, 정치의 위기를 함께 불러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현재 이들 위기는 신자유주의로 알려진 대기업의 폭식이 오랫동안 계속된 탓에 그 정점에 이르러 있다.

일단 우리의 자본주의관을 확장하고 나면, 이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지에 관한비전 역시 확장해야 한다.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든 아니면 다른 뭐라 부르든,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은 시스템의 경제 영역 재편만을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현 위기는 금융 등의 공식 경제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돌범 결핍‘, 현상까지 포괄하는 다차원적 위기다. 하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위기 이론은 경제 측면에만 집중함으로써 이를 다른측면들과 분리하고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첫 번째 핵심 특징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다. 그리고 이는 소유주와 생산자 사이의 계급 분할을 전제로 한다. 이 분할은 대다수 민중이 생계수단과 생산수단을확보할 수 있었던, 즉 노동시장을 거치지 않고도 도구나 토지, 일과 식량, 주거와 의복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전의 사회 세계가 해체된 결과로 등장한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이 제도배열을결정적으로 뒤집었다. 자본주의는 공유지에 울타리를 둘러 사유지로 만들었으며, 다수 대중이관습적으로 행해온 생산수단 사용권을 철폐했고, 공유 자원을 소수가 사적으로 소유하도록 바꾸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상품 생산에 쓰일 투입요소(부르주아 정치경제학에서는 ‘생산요소‘
라고 하는)를 할당하는 역할을 한다. 이 투입요소는 원래 ‘토지, 노동, 자본‘으로 식별되었다.
자본주의는 그 중에서 노동을 할당하는 데 시장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자본재 원자재,신용을 할당하는 데도 시장을 이용한다. 시장 매커니즘을 통해 이러한 생산 투입요소를할당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이들을 상품으로 변형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이 맡는 두 번째 핵심 기능이 더 있다. 시장은 사회의 잉여가 어떻게투자될지를 결정한다. 마르크스에게 ‘잉여‘는 특정한 생활 형태를 재생산하는 데(또한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것들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정도를 초과하는 사회적 에너지의 집단적 적립을 뜻했다.

자본주의에 내재한 맹목적 지행성인 ‘자기‘확장 과정과 긴밀히 관련된다. 이 과정을 통해 자본은 스스로를 역사의 주체로 구성하며, 자본의 창조주인 인간을 오히려 자본의 종복으로 전락시킨다.

인식의 전환에서 한 가지 핵심적인 것은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를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진 자연적 존재로 지속시킨다. 또한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 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을 형성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의 관할영역과 ‘경제‘의 관할영역 사이에 선명한 분할을 전제하며, 실제로이를 등장시킨다. 이때 자연은 ‘원자재‘를 지속적으로 무상 공급하는, 쉽게 전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고, 경제는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생산되는 가치의 영역이라고 인식된다.

마르크스가 ‘물질대사 균열‘이라 칭한 바가 시작됨으로써,바야흐로(다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인 ‘인류세‘라고 불리는 완전히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열렸다. ‘인간 활동‘ (실은자본 활동이 지구를 놓고 제 살 깍아먹는 짓을 벌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의 수단인 수탈에 맞서 저항이 일어날 경우에도, 이를 진압하는 ‘정당한
‘폭력‘을 동원하는 것 역시 영토국가였다. 또 화폐를 국유화해 지급 보증 서명을 남기는 것도이러한 국가였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구성‘한 것은 국가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구조적 분할과 마주한다. 즉 ‘정치‘와 ‘경제‘의 분할이다. 이 둘이 분할하면서 사적 권력과 공적 권력, 경제적 강제와 정치적 강제가 제도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윤리적 삶의 사물화된 형태도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라는게 나의 답이다. 이를테면 봉건제 같은 하나의 사회 질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사회,정치, 자연, 주변부는 경제와 동시에 발생하고, 경제와 공생관계를 맺으며 발전한다. 이것들은 실질적으로 경제의 ‘타자‘로서 경제와 대비됨으로써만 특수한성격을 부여받는다. 말하자면 ‘재생산‘과 ‘생산‘은 각각 서로를 통해 규정됨으로써 서로 짝이된다. 상대방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을자본주의의 전경/배경 관계에 관한 설명이 정확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첫째,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 자본주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조건 구실을 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그 존립 자체를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에서 나오는 가치들과 투입요소에 의존한다.하지만 둘째로, 자본주의의
‘비-경제적 영역들은 각기 고유한 무게와 성격을 지니며, 특정한 환경에서는 반자본주의 투쟁에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로, 이 영역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화합하며 서로를 구성해왔고 이러한 공생관계가 각영역에 자취를 남기고 있다.

마르크스는(경제적) ‘위기‘로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내적 경향을 다루는 체계적 비판 (계급)
‘지배‘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역학을 다루는 규범적 비판, (계급) ‘투쟁‘의 특징적 형태에 내재한 해방적 사회 변혁의 잠재력을 다루는 정치적 비판을 날줄과 씨줄 삼아 서로 엮었다. 내가 제시한 관점은 그 비판의 가닥들이 이와 비슷하게 교직될 것을 요청하지만, 그 짜임새는 마르크스의 경우보다 더 복잡하다. 각 가닥이 그 내부에서부터 다양하기 때문이다.

본이야기의 이면을 파고들어가 배경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노동 착취의 모든 배경 조건이 자본주의 사회 내 갈등의 초점들로 떠오른다. 생산 지점에서 벌어지는 노동과 자본의 투쟁만이 아니라 젠더 지배, 생태계, 인종주의, 제국주의,민주주의를 둘러싼 경계투쟁이 그러한 초점들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사실은, 이제 경계투쟁이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둘러싸고 EO로 자본주의 자체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새롭게 조명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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