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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기억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은 종종 만날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일본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것을 알고 그와 공유하는 것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본 소설을 찾아 읽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이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작품을 읽고 신간이 나올때마다 꼭 찾아서 읽고 있다.
연기자들을 보면 팔색조처럼 늘 변신하는 배우가 있는가하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배우들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는 후자에 가까운 작가가 아닐까한다. 자신의 확실한 색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그 색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번 이야기도 실망하지 않고 만날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금은 뒤섞여 있는 이야기들을 보며 집중력을 잃을수도 있지 않을까한다.

영화속 한 장면으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어두운 밤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인다. 우리는 어둠속에서 있다. 모두 불꺼진 아파트에 갑자기 어느 한 집에 불이 켜진다. 주위가 어둡기에 그 안의 사람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소리까지 들린다. 주위가 어둡기에 우리는 그 불켜진 집에 집중할수 밖에 없다. 그들이 무엇을 하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러다 그 집의 불이 꺼지고 다른 집의 불이 켜진다. 이제는 다른 집의 상황을 우리들은 들여다 본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불이 켜질때마다 우리들은 그 집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들여다보느라 바쁘게 눈을 움직여야하고 서로 다른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연관성이 없어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집들과 사람들 사이에 서로 보이지 않는 끈들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이 그 끈을 놓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읽어나가는데 무리도 없고 재미를 느낄수 있는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들은 이야기보다는 분위기를 먼저 느낄수 밖에 없다. 전체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 가끔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나중 일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책의 내용보다는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중심에는 히나코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류지와 게이코 부부, 과거 꽤 잘나가는 성우였던 기시다 아무개와 도쿠코 부부. 히나코의 아들 마사나오, 마코토 등. 그 중에서도 히나코에게는 가공의 동생이 늘 함께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이다.
올해 쉰네 살이 된 히나코. 그녀는 가족이 있음에도 실버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아니 혼자가 아니다. 예전에 집을 떠난 여동생 아메코와 함께 살고 있다. 실제 나이는 쉰 살이지만 히나코에게는 서른 살쯤의 동생이고 때로는 열일곱 살쯤으로 보이는 동생이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가공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들은 기억이나 추억을 붙들고 싶어한다. 나이드신 어른들을 보면 현재나 미래의 이야기보다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볼수 있다. 어쩌면 남은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될수 있는 기억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을 놓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표면적으로 보이는 히나코의 모습은 정말 외로워 보인다. 주위 사람들이 보면 그녀를 찾아오는 가족도 없이 혼자 집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버 아파트라는 공간안에서도 철저히 혼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가공의 동생을 통해 이겨내고 주위의 사람들도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그녀는 하나씩 꺼내어 놓는다. 가족들마저 외면하게 만든 진실을 만나면서 가끔은 묻어두고 싶은 기억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가 지금 처한 외로움은 예전의 잘못(?)으로 인한 것일까. 그럼에도 그녀가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은 예전의 기억들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공의 동생과 함께 그 기억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삶을 외면하고 과거의 기억만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들은 더 철저하게 외로워지고 현실의 삶을 살아갈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