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온전한 변화를 위해 부르셨지만,
우리는 그저 개종으로 만족한다. 

We're content with conversion
when God is calling for transformation.
-John Ort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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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 。。。。。。。        

 

     사고로 네 살배기 아들을 잃은 베카와 호위.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져버렸다. 깊은 우울증을 앓게 된 베카는 다른 사람들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스스로 차단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남편인 호위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다.

 

     어느 날 우연히 아들을 차로 친 소년을 만나게 된 베카. 증오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소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결국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소년은 베카에게 자신이 그리고 있는 평행우주에 관한 만화를 보여주었고, 베카는 우주 어딘가에 그의 만화처럼 정말로 웃고 있는 자신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2. 감상평 。。。。。。。                    

 

     어린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상당수가 결국 이혼을 하고 만다는 통계 조사가 있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일,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일을 겪다보니 결국 한계에 다달은 것이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가시가 되어서 주변 사람들, 다시 말해 상처받은 그/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찌르게 되고, 결국 파경을 맞게 되는 것.

 

     전통적으로 이런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는 ‘하늘’, 혹은 ‘신’의 뜻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선한 신이 왜 이런 악과 고통을 허용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또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자신의 생각하는 힘 자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이상한 병에 걸린 인류는 이제 스스로의 이성 안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에도 등장하는 평행우주라는 것이 그 중 하나의 ‘교리’인데, 그 결과는 신통치 못한 것 같다.

 

 

     언뜻 대단히 과학적인 설명처럼 보이지만, 사실 평행우주 가설 자체가 아직 정설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게다가 애초부터 검증자체가 불가능하니(검증을 하려면 다른 평행우주로 가보는 수밖에 없는데 이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 속 대사처럼 과학을 ‘믿는’ 사람에게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대단히 종교적인 대답이다. 또 다른 우주에 관한 물리학의 가설과 또 다른 세계에 관한 종교적인 대답이 뭐가 다를까. 사실 삶과 죽음, 고통의 문제를 과학적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착각 자체가 결국 오늘날과 같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유발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신을 버리고 철저하게 이성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치는 베카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 듯하다. 그녀는 소년이 그려준 만화의 교리의 탄복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녀를 기다려준 주변 사람들의 애정과 소년에 대한 용서를 통해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원숙한 연기력의 두 주연배우의 연기는 맡은 배역에 너무나 잘 녹아들어갔다. 주인공들의 복잡한 심리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다만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주제나 메시지 부분은 좀 더 발전되지 못해 아쉽다.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영화 자체가 치유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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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특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안전을 확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정한 안보에 이르는 길은 정의다.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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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초자연의 독자적인 행사만이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잘 알아야만 한다.

성경에서는 초자연은 대부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과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 이승구, 『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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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컬 - 복음을 통한 철저한 돌이킴
데이비드 플랫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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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묻는 책. 저자는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역동적이며 확신으로 가득 찬 교회의 모습과 오늘날 ‘일반적인’ 교회들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대조하면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짚어낸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면서 자연스럽게 유리되어 버렸다는 것. 이와 더불어 저자는 성경대로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실제적인 변화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결단을 촉구한다.

 

 

2. 감상평 。。。。。。。                  

 

     래디컬(Radical),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근본적인’, ‘기본적인’이라는 뿌리에 관한 뜻과 ‘급진적인’, ‘과격한’이라는 맹렬함을 표현하는 뜻이다. 저자가 책의 제목을 붙이면서 어떤 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는데, 두 가지 뜻이 의미하는 바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책의 내용을 ‘기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와 그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아직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고 ‘급진적이고 과격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만큼 중한 병에 걸려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급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멀리 떠나왔다는 뜻일 테니까.

 

     원래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그러니까 그분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끊임없이 그들의 잘못된 삶의 방향을 지적하고, 감추고 싶은 것들을 드러내며, 자연스러운 몸의 경향을 거스를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저자가 그분의 가르침을 제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책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급진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본을 바로 알고 그에 충실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이 세워 놓은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는 그들을 따라가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은 오늘날 일부 교회들의 모습과 이를 조장하는 싸구려 서적들이 판을 치는 이즈음 꼭 필요한 책이 잘 나왔다. 모 인터넷 서점에 『내려놓음』과 『긍정의 힘』이 기독교 신앙생활 분야의 최고의 책으로 나란히 광고될 정도로(서점 측이야 잘 팔리는 책을 그렇게 배열했을 테니) 극심한 이 나라의 영적 혼미함을 보노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언뜻 소개하듯 무명의 담임목사가 쓴 책은 아니다. 신학교에서 교수사역을 했을 정도로 충분히 읽고 쓰기에 훈련이 되어 있는 저자는, 되도록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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