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 - 문학, 질문하며 함께 읽기
홍종락 지음 / 비아토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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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번역자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에도 좋은 번역으로 여러 책을 통해 만난 홍종락 번역가의 신작(이지만 이제야 읽게 되었다)이다. 며칠 다시 도진 감기로 책 한 자 못 읽다가 복귀하는 첫 책으로 썩 괜찮은 선택이었다. 내용도 그리 머리가 아플 정도로 어렵지도 않고, 책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성격상 여러 책들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담겨 있어서 부담도 덜하다.


방금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저자가 읽었던 여러 책들 중 몇 권을 뽑아 소개하는 구성이다. 소개되는 책들의 공통점은 모두 문학이라는 점. 소설이다. 저자가 기독교라는 배경을 갖고 있지만, 여기 소개되고 있는 책들이 모두 기독교 소설인 건 아니다. 물론 그걸 어떻게 읽어내느냐 하는 부분에서는 저자 개인의 취향이 물씬 드러난다.


각각의 책에서 저자가 뽑은 핵심적인 내용들을 짤막하게 소개한 뒤에는,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사용할 만한 질문들이 덧붙여져 있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들을 가지고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만들었던 질문이었을까. 덕분에 여기 소개되어 있는 책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다음 독서모임에 사용할 때 도움도 꽤 될 것 같다.





책 제목이 특이하다. 전혀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는 제목인데, 알고 보니 C. S. 루이스의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다루는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루이스의 또 다른 대표작인 “나니아 연대기”도 소개되어 있고, 꼭 직접 루이스의 책을 다루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다른 책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루이스의 책 속 한 구절들을 인용해 덧붙인다. 덕분에 이 책은 내 ‘루이스 컬렉션’에 들어가게 됐다.


역시나 이런 책을 보면 내가 읽어야 할 책이 아직은 한참 더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물다섯 개의 장에 소개된 책들 중에는 물론 이미 읽은 책도 있지만, 여전히 만나보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 얼마나 다행인지.


다만 이런 종류의 책이 그렇듯, 책 전체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는 법이고, 책 내용의 일부만으로 전체의 흐름을 설명하되 그렇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결말을 스포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의 경우 그 전체 윤곽이 잘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내가 읽었던 책에 관한 소개 부분을 보니, 이 정도만 가지고는 전체 내용이 잘 안 잡힐 수도 있겠는데 싶은 생각이 몇 번 들었다.





글에서 얼마나 저자가 성실하게 읽었는지가 느껴진다. 문장에서는 겸손하게 자신이 느낀 바를 전달하려고 애쓴다. 뭔가 강한 맛이 살짝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본문으로 꽉 채워내는 구성이 개인적으론 좋았다. 많은 책들이 무슨 후기 같은 것들을 넣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거기까지 가면 그닥 김이 빠져서 굳이 읽고 싶은 생각까지 안 들 때가 많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서지사항이 표시된 바로 앞 장까지 꽉 채워져 있다.


앞서 나왔던 “소설 읽는 신자에게 생기는 일”과 함께 기독교인들이 읽어 볼만한 소설들의 목록을 얻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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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26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노란가방 2024-03-26 20:11   좋아요 0 | URL
네 즐거운 독서가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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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2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있었네요. 말씀하셨던대로 100만이라면 모르긴 해도
이렇게 저렇게 얽힌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자살자가 없는 가정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어렸을 때 이모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암튼 이런 사람을 교회에서 품어주면 좋을텐데 얼마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저자가 임상심리락자네요.저도 기회되는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읽으면 좀 마음이 좀 착잡할 것 같네요.

노란가방 2024-03-25 21:20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양가감정이 좀 드는...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읽으면 슬플 것 같아서 못 보겠는 그런..ㅎ
 



단순히 “양측이 똑같이 나쁘다”고 말함으로써

주장 자체와 분리되어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는 “객관적이다”라는 복잡한 개념을

“명백하게 당파적이지 않다”는 어떤 모호한 감각으로 축소해 버린다.


- 패트리샤 로버츠-밀러,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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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디자인
사와다 도모히로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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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 보면 어떤 내용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 책이었다. 물론 제목에 사용된 단어야 익숙하지만, ‘이게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다고?’ 하는 느낌. 저자는 일본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카피라이터였다. 청춘의 나이에 입사해 몇 년 간 일에 몰두하며 살았던 그는, 입사 10년 만에 얻은 아이가 시각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엔 충격에 빠진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삶의 궤적은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해 그는 우선 실제 장애인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식으로 200여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후, 그는 비로소 약점은 다양성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 사회는 비장애인을 표준삼아 구성되어 있다. 모든 것이 여기에 맞춰 구축되고 제작되고 유통된다. 만약 장애인들이 여기에 맞춰서 살아가야만 한다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꾼다면, 그래서 장애인들을 비롯한 소수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본다면 그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구부러지는 빨대라든지 한 손으로 불을 켜는 라이터는 모두 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 제작되었다가 이제는 널리 퍼진 발명품들의 예다.





광고전문가로서 저자는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훈련을 오랫동안 해 온 인물이었다. 그는 아들과 같은 장애인들의 ‘약점’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살려내야 할 무엇으로 보기로 한다. 이 때부터 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중 하나로 저자 자신의 약점이기도 한 스포츠(나와 비슷하게 몸으로 하는 운동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저자) 영역에도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낸다. 이른바 ‘유루스포츠’가 그것.


유루스포츠란 일본어로 느슨하게(유루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가리킨다. 손에 비누칠을 하고 하는 핸드볼경기인 핸드소프볼, 애벌레 모양의 침낭 비슷한 경기복에 들어가 구르고 기어가며 하는 애벌레 럭비, 강한 충격을 가하면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센서가 장착된 공을 사용해 아기울음소리가 나면 상대에게 공을 넘겨야 하는 아기 농구 같은 것들이 책에 소개 된 유루스포츠의 예다. 단지 누군가를 우대하기 위해 핸디캡을 마련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아예 승리하는 방식을 자체를 바꿔 기존의 강자들과 약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이다.


물론 이 주장이 더 빨리 달리고, 더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불리하게 만들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엘리트 스포츠에 매몰되어 대중이 직접 참여해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좀 더 본질적인 체육활동에 집중해 만들어 본 또 하나의 스포츠 영역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이제까지 광고회사에서 더 많은(Scale) 사람들에게 더 빨리(Speed) 알리고, 짧은 기간(Short)에 그 역할을 마쳐왔다. 하지만 이제 눈을 돌려 좀 더 천천히(Slow), 작은 것부터(Small), 키워가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Sustainable)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라는 자기파괴적인 기초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소진해버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래야 또 더 많이 소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아도 되는 존재일까?


저자는 이 질문을 단지 자신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적용해 볼 것을 권한다. 책 후반에는 어떻게 하면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며 살 수 있는지에 관해 간략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요새 유행하는 퍼스널 브랜딩과도 약간 맥이 닿아있는 느낌인지라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물론 모두가 이런 창의적인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 게다. 누군가는 틀에 박혀있지만 필요한 일을 해야만 사회라는 곳이 굴러갈 테니까. 하지만 그 안정된 틀이 누군가의 희생을 깔고 가야만 하는 거라면, 틀을 흔들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어렵게 쓰이지 않았으면서도 좋은 메시지를 던져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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