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소 삐끼로 시작해서 이제 자신의 클럽까지 열게 된 찬우(박해수). 비록 유흥업소지만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운영하겠다는 나름의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검사 윤식(이창훈)이 있다.(다만 이쪽은 그간 주로 조연급으로만 출연해서 그런지 영화 안 비중이 제법 높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강한 존재감을 내비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유흥업소 사장과 준법 의식 자체가 탑재되지 않은 검사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뭔가 그림을 만들어 내나 싶었지만, 주연을 거의 처음 맡았던 두 배우의 연기가 역할에 몰입되지 못하고 살짝 들떠 있는 느낌을 준다. 또 뭔가 판을 그린 것은 알겠는데, 그게 매우 제한된 인물의 대사로만 묘사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달까.

 

결정적으로 영화 제목이면서, 주인공 찬우가 끊임없이 떠드는 양자물리학이라는 소재도 지나치게 가볍게만 다뤄지는 느낌이다. 정말로 양자물리학 이론 가운데에 생각하는 대로 일이 이뤄진다는 말이 들어있던가? 영화 속에선 별 맥락 없이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주인공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소재 그 이상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 양자두 사람으로 해석해서 뭔가 언어유희를 시도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차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최근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영화 속 검사와 같은 인물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수법의 강도는 다르더라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특별한 수사들에서 검사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대체로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많은 사건들을 성실하게 담당하는 검사들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면 안 되겠지만.) 정치인들이나 재계 인사들처럼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 힘을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재사용해 왔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뭐 이 영화가 그런 개혁의 대상이 된 검찰을 고발하거나 비꼬는 작품은 아니다.(그런 쪽이라면 차라리 영화 부당거래의 류승범이 훨씬 더 제대로 깐족댔다) 어쩌면 그런 걸 겨냥해서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검착 개혁이라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외려 최근 돌아가는 형세를 보니 검찰 쪽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의 작은 한 조각도 뺏기기 싫다는 형태로 달려들고 있으니, 이런 영화가 사회혼란을 조장하고 검찰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기소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농담이다)

 

 

 

 

 

특별히 인상적인 포인트가 보이지 않았던 영화. 어디선가 본 듯한 소재에,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그나마 생뚱맞은 부분도 많고), 별 감동도 없는 결말까지. 각자가 맡은 역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뽑아내지도 못하고, 게임의 NPC처럼 움직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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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9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외 지음, 전경미 외 옮김 / KIATS(키아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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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라고 할까. 책을 읽기 전 기대와 읽은 후의 소감 사이에 접점이 거의 없었다. 제목에 담겨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책인 줄 알았지만, 책 전체에 걸쳐서 설명은 전혀 없고, 네 편의 고대 기독교 관련문서가 번역되어 실려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을 잘 엮어서 초기 기독교 여성 지도자에 관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고스란히 읽는 사람의 몫.

 

그런데 책에 실린 이야기가 정말 초기 기독교 여성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 첫 번째 글의 주인공인 테클라나 두 번째의 페르페투아, 펠리시타스 등은 훌륭한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것 같지만, 그들이 교회의 지도적인 사역을 했다는 내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카파도키아 신학자 3인방 중 하나인 닛사의 그레고리의 누나이기도 했다는 마크리나는 수도원에서 지도적 위치에 서 있었던 것 같지만, 마지막 이야기인 마리아 복음서에는 온갖 모호한 뉘앙스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실제로 그러했는가 하는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중에서도 마지막 책인 마리아 복음서는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영지주의적 성격이 강한 유사 기독교 문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이야기들 속 기적 이야기들도 어디까지 실제 일어났던 일일지 확실치는 않다.

 

 

책은 잘 해야 초기 기독교회 공동체, 혹은 그 근처에 있었던 공동체들 가운데 특정한 여성에 대한 존중과 칭송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할 정도를 한다. 물론 여기에 실린 글들의 전문을 살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구성 면에서 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문득 굳이 왜 이 책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교회 안에도 성큼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에 편승한 건 아니었기를 싶기도. 뭐 원문 번역 및 제공이 목적이었다면 오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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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시장경제 시대에는

소득이 하향평준화해도 소비는 상향평준화하는 경향이 있다.

내면을 팔아 겉멋을 사고, 노동을 팔아 착각을 사기 때문이다.

일상의 착취를 망각하고 황폐한 내면을 감추는 데는 명품만 한 게 없다.

 

- 박남일, 어용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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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 -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 살림지식총서 264
조규홍 지음 / 살림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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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중세 철학을 배울 때 이래로 오랜만에 들어본 이름이다. 플로티노스.(라틴어 발음을 따라 플로티누스라고도 부른다.)하면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정도로 간략하게 알고 있었다. 유출설로 대변되는 그의 존재론과 여기에 영지주의적 관점이 들러붙어 만들어진 종교적 특성, 그리고 이런 것들이 기독교회에 미친 영향력 정도까지.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이 책을 손에 들었다. 다만 살림지식총서의 특징 중 하나인 얇게, 핵심만 간단히를 깜빡했다. 그래도 80페이지가 넘으면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리고 심지어 책의 부제도 그리스 철학을 기독교에 전달한 사상가였지만, 책은 이 부분 보다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설명하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인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주의자였던 플로티노스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완전성을 찾았고, 그것은 고대 철학자들을 따라 일자(一者)’로 여겨졌다. 세상은 이 존재로부터 흘러나왔고, 논리상 멀리 흘러나온 것은 일자와 가장 연관성이 적어지게 된다. 일자로 돌아가는 것이 완전성을 회복하는 지복의 상태로의 회복이라면 인간 삶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닌 완전한 일자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여기서 성속 이원론의 싹이 보인다)

 

   저자는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동양철학과의 유사성을 반복해서 언급한다. 일자와의 합일은 자연히 자신(자아)을 잃어버리도록 만들고 이건 동양의 선() 사상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흥미로운 통찰이다.

 

   다만 그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한계라든지, 그것이 기독교에 정확히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설명은 조금 부족하다.(책의 시리즈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특히 부제를 보고 나와 같은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긴 사람이라면 더욱 이 부분이 아쉬울 듯.

 

 

   딱 플로티노스 사상을 간단히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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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모금 생명의 떡
로날드 사이더 지음, 이영길 옮김 / IVP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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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수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는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인물이다. 이미 1세기에도 교회 안의 빈부격차가 문제를 일으켰고, (정확히 말하면 교회가 빈부격차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니라, 빈부의 차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야고보서의 저자가 보기에 그건 믿음의 본질을 해롭게 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라’, ‘행함이 없으면 (그의 믿음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와 같은 단호한 어조는 이 편지의 특징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변화가 분명 일어났지만, 한 때 소위 보수적인 교회들에서는 사람을 먹이는 일보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이건 엄청난 착각이었고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조점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좀 경직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이루어낸 엄청난 영혼구원의 숫자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시려는 그분의 계획을 제대로 수행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교회는 성장했으나,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에는 상당부분 달라졌다. 이제는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교회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회보장정책의 사각지대를 상당부분 보완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종교단체들인데, 그 중 기독교회의 비율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로잔 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자리에서 복음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애초부터 영혼 구원과 사람을 먹이는 일은 서로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그런 총체적인 복음 사역이 어떻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인종차별의 중심지에서 흑인들을 교육하고 훈련해 뿌리 깊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고, 인도의 빈민가에서 소규모의 신용대출을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범죄의 진원으로 여겨지는 도심(미국의 경우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대개 교외 지역에 집을 마련한다)으로 이주해 지역을 변화시킨다. 이 모든 것들이 교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에는 깊은 철학적, 신학적 고려가 듬뿍 담겨 있다. ‘음란행위와 이혼에 대한 정죄만큼이나 예수님은 부자들을 경고하는 일에 힘을 쓰셨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빠른 회심 권유 대신, 그들을 애써 도운 뒤 해 주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에는 묵직한 경험의 지혜가 담겨 있다. 교회(내부)를 향해서만 말하고 있으면서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은 머리를 쾅 때리는 듯했다.

 

   아쉬운 건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점과 이 책에 담겨 있는 사례들이 벌써 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라는 점.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에 새롭게 축적된 이야기들을 담아 증보판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행함은 힘이 있다. 세상은 교회가 하는 이야기보다 교회가 하고 있는 일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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