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흥행.


제목에도 나와 있는 왕중왕이란 예수님을 가리킨다. 영화는 찰스 디킨스가 아서 왕의 전설에 푹 빠져 있는 자신의 막내아들에게 진정한 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액자식 구성으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생애를 극적으로 각색해 보여준다. 확실히 눈에 띄는 종교영화.


사실 이 정도라면 워낙 기독교 영화 시작이 작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언급될 만한 영화는 아니다. 물론 늘 이런 종류의 작품에 목마름을 느끼는 교회에서라면 좀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꽤 입에 오르는 건, 미국에서 거두었다는 초반의 큰 흥행 덕분이다. 순수 한국 자본으로, 한국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미국 박스오피스 10안에 단숨에 올랐다고 하니까.


덕분에 미국보다 약 3개월 뒤에 국내 개봉이 되었는데 입소문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단체관람을 (교회 중심으로) 많이들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개봉한지 1주일도 안 된 상황이라서 예측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우리 교회에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벌써 다녀왔으니. 확실히 국내 기독교의 문화 영역에는 이런 것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소비층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괜찮은 퀄리티의 영상.


물론 내용만 좋다고, 아니 내용이 성경적이라고 해서 다 좋은 영화일 수는 없는 법이다.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인 이상, 영상미도 중요하고 좋은 배경음악과 효과음도 빠뜨릴 수 없다.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영상 연출이라든지, 배경음악 같은 부분도 꽤 완성도가 높다.


다만 아쉬운 건 “이집트 왕자” 같은 인상적인 OST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볼 때 이 부분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딱 음악만 들어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 부분에서는 확실히 시간적인 제한 때문에 복음서의 전체 내용을 각색해서 담았기에, 조금은 극적으로 표현된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동방박사들이 마굿간으로 찾아왔다던가(실제로는 최소 1년 이후 방문했을 것이다), 갈릴리에서의 사역과 유대 지역에서의 사역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물론 이 정도는 극적인 허용으로 봐줄 만하고.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몇 군데 있다. 하나는 요한복음 8장에 실려 있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의 처우를 묻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대답하셨던 부분. 애니메이션이지만 당시의 급박한 분위기를―다들 돌을 들고 당장에라도 던지려고 하는―꽤 잘 살려냈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이 장면과 관련되었다고 느껴지던 노래가 떠올라 오랜만에 들어봤다. (실제로 성경 본문과 관련성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가사를 잘 보면 중의적으로 느껴진다. 지요의 “구애”라는 곡이다.)


또 다른 장면은 마태복음 14장에 나오는 물 위를 걷는 베드로 장면이다. 이 사건 자체는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도 나오지만 예수님뿐만 아니라 베드로도 물 위를 잠시나마 걸었다는 내용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폭풍 속에서 걸어오시는 예수님에게,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요청한 베드로는 곧 물을 위를 걷지만 금세 찾아온 두려움 때문에 물에 빠진다. 여기에서 물에 빠진 베드로를 구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물속으로 들어가 베드로를 잡아 물 위로 밀면서 그 반작용으로 자신은 물 아래로 가라앉는 장면이 연출된다. “대속”이라는 신학적 주제를 이런 식으로 단번에 묘사할 수 있는 건 역시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특징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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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7-2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좀 냉정한 한 줄 평을 써 놨던데 그게 틀린 말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 사람이야 평론가답게 함부로 후한 평은 안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그래도 넌크리스찬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 그렇게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것도 같고요. ㅎㅎ
더운 거 생각하면 피서겸 극장 가서 볼만도 한데 그냥 나중에 DVD로 나오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잘 지내죠?^^

노란가방 2025-07-22 20:56   좋아요 0 | URL
뭐라고 썼던가요? ㅋ

카스피 2025-07-2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제작자 역시 기독교인이기에 비록 애니지만 영화를 좀 더 장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좋은 음악을 넣고 싶었겠지만 아무래도 제작지비의 한계 탓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네요.
 



오랫만에 책소개 영상 갑니다.

최근에 만났던 흥미로운 책이었는데요,

어떻게 우리의 소명을 찾아갈 것인가에 관한 실천적인 책입니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이나 청년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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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합리주의는 관념들이 대체로 순수하게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상으로부터 진화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사실상 관념들은 흔히 삶으로부터 솟아나오며

항상 삶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교리들이 주로 신학적인 논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 대부분이

교회가 오랫동안 그 예배에서 경험하고

선포해 온 바에 대한 표현들인 것이다.


- 후스토 곤잘레스, 『간추린 기독교 교리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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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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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이끌고 있는 성경읽기 모임에서 욥기를 읽을 차례가 되었다. 워낙에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고 해서, 관련 책을 한 권 읽어보기로 결심하고 눈에 띤 게 이 책이었다. 만나다 시리즈로 계속 무게감 있는 책들을 내오고 있는 비아의 책이다.


사실 이 시리즈가 다분히 비평적 관점으로 진행된 연구를 주로 담고 있는지라, 종종 선을 넘기도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하는 데, 사실 그런 “주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와는 별개로 연구의 결과물 자체를 역사적인 연구사로 본다면 읽어볼 만은 하다.


시리즈마다 약간 강조점이 다르긴 한데, 해석사를 차분하게 설명해 가는데 중점을 둔 책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신학(대개 고등비평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해당 성경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둔 책도 있다. 이 책은 전자 쪽에 가깝다. 조금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서론에서 간략히 이 복잡하고 해석이 어려운 책을 둘러싼 오랜 의견 충돌을 언급한 저자는, 곧 고대의 해석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로 넘어간다. 흥미로운 건 고대에는 욥기의 내용과 비슷한 “욥의 유언”이라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점. 당연히 욥기의 내용과 다른 점도 있었는데, 주인공의 이름은 “요밥”으로 이집트의 왕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오래 전 유대교와 기독교 학자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욥기를 바라보았는데, 욥기에 내재한 난해함을 넘어서는 “진정한 의미”가 있으며, 이를 찾기 위한 영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것. 크게 보면 이런 이해는 종교개혁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중세에는 교회에서 욥기의 일부를 성무일도서에 넣어 정기적으로 낭독하기도 했고, 그와는 별개로 민간에서도 욥에 관한 이야기는 또 널리 사랑받았는데, 욥은 나병 환자와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환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욥의 인내”라는 이름의 대중공연까지 만들어져 오랫동안 수없이 무대에 올려졌다고.





계몽주의의 망치질이 모든 것을 깨부수던 근대에는 다시 한 번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인간이 그분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었다면,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정말로 활동하기는 하는지, 그리고 활동한다고 해도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물었다. 욥기는 다시 한 번 난해하고, 불가해한 책으로, 인간은 신의 눈치를 보거나 호의를 기대하지 말고 이성과 자유를 지닌 존재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재정의된 시기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욥기는 조각조각 찢긴다. 이른바 성서비평의 영향력으로 특별히 구약성경은 최소 서넛에서 때로 수십 명의 저자들이 쓴 책으로, 아니 그냥 그런 문서들을 얼기설기 긁어모은 스크랩북 정도로 평가 절하된다. 무신론의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욥기를 읽어냈고, 이제 욥기는 우정의 실패를, 나아가 하나님의 실패를 묘사하는 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매우 실용적으로 욥기를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고.



한 권의 책에 관한 방대한 해석사를 읽는 것은 (그 책에 애정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꽤나 흥분되는 일이다. 책은 이 역사를 종으로 횡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작 욥기의 내용에 관한 상세한 분석 같은 건 부족했다는(물론 대략적인 뉘앙스은 언급되지만) 점. 물론 그건 책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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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절 집단수용소에서 많은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자들,

그리고 수천 명의 힘없는 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이익을 본 집단수용소의 사업가들은

오늘날 그들에게 희생을 당한 사람들보다

더 쉽게 과거의 죄를 부인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자녀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었다.

반면에 이들의 희생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리학적으로는 가능하다.

전범자들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 나서

판결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만 해결 하면 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전범자들은 범죄행위 안에서 자아를 실현했다.

반면에 희생자들은 전범자들의 행위로 자아실현의 모든 가능성을 빼앗겼다.

참으로 우습고 모순되는 이야기이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괴롭힘을 당하는 쪽보다 부작용이 휠씬 적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 슈테판 레버르트, 『나치의 자식들』 중에서








문득... 아마도 윤석렬 부역자들도

이후에도 조금도 뉘우치지 않으며

끝까지 현실 부정의 망상 속에서 마음 편하게 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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