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장이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찾아내 반응하듯이,

우리의 기술은 우리가 꿈꾸는 에로틱한 관계의 이상에

딱 들어맞는 제품들을 극히 능숙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상적인 에로틱한 관계에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즉시 모든 것을 제공하고,

우리 자신을 전능한 존재로 느끼게 하며,

심지어 훨씬 더 매력적인 대상의 출현으로 인해

서랍 속에 처박히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지 않는다.


-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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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옹호하다 - 전통의 의미와 재발견, 회복에 관하여 비아 시선들
야로슬라프 펠리칸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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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전통 위에 서 있다. 우리가 하는 사고와 판단과 행동은 어떤 의미에서든 전통의 영향 아래 있다. 그것이 전통을 따르는 것이든, 전통으로부터의 의도적 일탈이든. 하지만 현대 문화의 근간이 되는 계몽주의 이래로 우리는 전통을 다분히 의도적으로 폄훼해온 것도 사실이다. 옛것은 고루하고, 미개하며, 뒤쳐진 것이라는 인식이다.


흥미롭게도 개신교 진영에서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입장을 내세워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에서 “전통”이란 용어는 “교회 관계자의 지배” 같은 음울한 분위기를 띄곤 했다. 여러 종교개혁자들은 전통을 앞세우던 가톨릭교회의 당국자들과 치열한 충돌을 벌이면서 그들의 입장을 단단히 세워갔다. 이 과정에서 전통이란 성경의 진리를 가리는 무엇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전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신교 전통 역시 그들의 정통성을 초기 기독교 시대의 전통에서 찾고 있으니까. 사실 기독교라는 신앙 자체가 수천 년 전의 문서에 그들의 신앙의 기초를 두고 있으니, 이보다 보수적인 것도 없지 않은가.





이 책은 바로 그 “전통”이라는 주제를 인문학적으로, 또 기독교 신학적으로 다룬다. 한 마디로 하면 “전통은 소중하다”는 말이다. 심지어 전통을 비판하려고 하는 사람도 일단 전통이 어떤 건지 알기는 해야 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는 멍청한 짓을 하는 것뿐이고, 종종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비난하던 것과 비슷해지기도 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성경과 전통 중 어떤 것이 더 앞서는가 하는 질문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우리가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책들은 교회의 전통 가운데서 확정된 것이고, 그 전통은 성경을 통해 전해진 복음의 내용에 따라 형성된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서 전통은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전통에 대한 지나친 강조(혹은 추종)가 자칫 성경의 권위를 훼손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특히나 꽤 보수적인 성경관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 안에서 이런 우려는 더욱 커 보일 듯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마 다양한 종류의 전통(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교단 같은 조금 더 큰 그룹에서 만들어진 것이든)을 사용해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해 봤자 소용이 없다.





전통의 지위에 관해 흥미로운 비유가 하나 책에 등장한다. 어린 아이가 부모를 전능한 존재로 믿고, 그 결정을 보지 못하거나 무시한다면 그건 아이가 아직 미숙하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부모의 결점을 이유로 부모를 존중하지 않고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춘기에 머물러 있다는 증표다.


부모와 성숙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부모가 전능하다는 믿음과 부모의 연약함에 대한 경멸을 넘어, 상속인이자 자유인이라는 지위를 누린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부모의 역할을 이해하면서 감사하지만, 나아가 거기에 완전히 맹종하거나 종속되지만은 않는다. 전통이 우리에게 부모와 같다는 말이다. 전통을 회복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것을 추종할 필요도 없지만, 마찬가지로 전통을 혐오하며 반(反)전통으로 나가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는 말이다. 좋은 지적이다.


마지막 장은 저자의 탁월한 통찰이 담긴 문장으로 시작한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이들의 죽은 신앙”이다. 우리는 전통을 단지 옛날 사람들의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인습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렇다고 오로지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C. S. 루이스는 “연대기적 속물주의”라는 태도를 매우 싫어했다. 오직 새로 나온 것, 그 자체가 어떤 권위를 지니고라도 있는 양, 옛것에서 눈을 돌려 최신의 유행만 좇는 행태를 가리킨다. 그러면서 루이스는 권한다. 요즘 나온 책을 한 권 읽었다면 다음엔 고전을 한 권 꺼내 펼치라고. 그게 안 되면 최소한 요즘 나온 책 세 권을 본 후에는 반드시 고전을 한 권 보라고. 그건 우리가 동시대 사람들의 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한 중요한 조언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전통의 회복과 옹호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이미 우리 안 깊이 배어 있는, 그리고 우리가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전통의 존재와 위치, 그 의의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인상적이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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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9-03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책을 읽고 싶어도 전기료 폭탄이 넘 무섭지요ㅜ.ㅜ

노란가방 2024-09-03 07:16   좋아요 0 | URL
ㅎㅎ 저희 집은 좁아서 우려만큼 많이 나오진 않더라고요..

jadon 2024-10-0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독교 신학과 루이스의 글을 자주 읽습니다. 노란가방 선생님의 리뷰가 좋으면 대체로 구매하고 있는 조용한 독자입니다 ㅎㅎ 혹시 주로 종이책으로 읽으시는지, 아니면 전자책도 읽으시는지 궁금해서 댓글남겨 봅니다.

노란가방 2024-10-08 14:0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종이책이 더 좋더라고요. 그 질감은 대체하기가 쉽지 않지요.. ^^
 


모든 회원을 남자든 여자든 서로 ‘동지’라고 부르는 사회주의 부류의 동아리가 있다.

나는 이런 특별한 습관을 두고 적대감이든 다른 것이든

진지한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리 나빠도 인습을 고집함이고, 아무리 좋아도 희롱이다.

나는 여기서 합리적 원칙을 지적하는 일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대가 모든 꽃, 그러니까 백합과 달리아, 튤립, 국화를 한데 묶어

데이지꽃이라고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대는 데이지라는 예쁜 낱말을 망쳐버렸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데이지꽃들은 분명히 보이고 어디에나 피어 있지만, 꽃의 한 종류일 뿐이다.

동지애는 명백하고 보편적이며 열려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애정의 한 종류일 뿐이다.


G. K. 체스터턴, 『왜 세상이 잘못 돌아가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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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라면 한번은 만나게 될 이슈들 - 조직문화 전문가의 친절한 리더십 수업
예지은 지음 / 삼성글로벌리서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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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조직들 안에서 살아간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기업’은 대표적인 조직이지만, 작게는 ‘가족’이라는 조직도 있고, ‘교회’ 같은 조금은 다른 성격의 조직도 있다. 그리고 이런 조직들에는 당연히 리더가 존재한다. 교회의 경우 일부 교단에서는 의도적으로 목사 같은 리더를 제거하는 구조를 설계했지만, 그런 조직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름으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걸 보면, 조직의 리더는 필수적인 역할인 듯하다.


관건은 리더를 없애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이다. 수많은 리더들이 리더가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리더의 자리를 맡고 있기도 하고, 덕분에 많은 조직에 기능 장애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모아 알기 쉽게 서른여섯 개의 항목으로 정리를 해놓았다.





서른여섯 개라는 항목 수가 좀 버겁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리더십의 비결을 좀 간단하게 요약해 주면 좋겠지만, 기업을 운영하면서 마주하는 문제의 양상이 어디 그렇게 단순하던가. 조직의 문제는 다양하고, 그 때마다 한 가지 방식만이 정답일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 나온 연구 결과들은 한 번 읽고 끝낼 게 아니라, 다양한 문제 상황을 마주할 때 사전처럼 찾아보는 식으로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여기 나오는 다양한 솔루션들은 여러 다른 연구와 책들에서 나온 것이지만, 일일이 그것들을 다 찾아 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서른여섯 개의 항목이 랜덤하게 나오는 게 아니고, 총 네 개의 장으로 묶여 있다. 그런데 그 순서가 또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가장 먼저 나오는 장은 리더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는 내용이고, 그 다음은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는 방법, 다양한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 마지막은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조금은 큰 작업의 순서로 이어진다.


하나하나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새로운 것들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책 자체가 이런저런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렇듯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큰 간격이 아니겠는가. 책을 손에 들고 하나하나 체크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은 쓰임새일 듯하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조언들이 단지 기업 경영이나 기업의 부서 운영에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인간 사회라는 게 다 조금씩은 공통점이 있기 마련이라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적용해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리더십 매뉴얼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말라는 식의 마키아벨리즘적 인사 관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그 구성원들의 능력을 잘 이끌어낼 것인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다. 당연히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또 이런저런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굴지의 대기업의 인사관리는 체계적이고 선진적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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