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영화에 대한 수많은 호들갑은 무지에서 옵니다.

그 예로 요새 한국 조폭 누아르 영화들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그들이 1980~90년대 홍콩 영화들을 보지 않는다는

증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우린 모든 영화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관심 대상이 있다면 주어진 시간 안에서 주변을 뒤지는 노력은 해야죠.

전 기초적인 구글링도 안 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믿지 않습니다.


듀나,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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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시대의 최신 유행을 따르는 것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바보가 되십시오.
그것만이 참된 지혜에 이르는 길입니다.

- 유진 피터슨, 『메시지 성경』 고린도전서 3장 중에서






구름책방에서 메시지 성경 함께 읽기를 진행 중입니다. 

어제 읽었던 장에서 참 멋진 번역문장을 발견했네요.
모임에 함께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안내문을 읽어 보시고 연락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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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사람 예배자에게 - 예배 음악 사역 노트
전영훈 지음 / 죠이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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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의 기독교인이라면 “소망의 바다”라는 이름의 CCM 사역팀을 알고 있을 게다. 그 이름을 모르더라도 “나 지금은 비록 땅을 벗하며 살 지라도~”라는 가시로 시작되는 ‘하늘 소망’이라는 곡은 들어봤을 게고. 이 책은 바로 그 팀의 찬양사역자였던 전영훈 목사가 자신의 경험을 재료 삼아 쓴 예배사역에 관한 일종의 안내서다.



책은 실천적 매뉴얼에 가깝다. 저자는 복잡한 이론 대신 간단한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예배란 무엇일까?”, “예배 사역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음악이란 무엇일까?” 이 세 질문은 이 책에서 설명할 핵심적인 주제와 연관된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공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그리고 전인적인 드림의 행위다.


흔히 현대적인 음악 스타일의 찬양으로 예배를 섬기는 사역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여기는 “예배 사역”은 이런 예배의 정의에서 새롭게 정리될 필요가 있다. 예배 사역은 찬양 사역보다 더 큰 범주의 사역이다. 꼭 현대적인 찬양으로 구성된 형식이 아니라도 예배 사역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예배 음악 사역”이라는 명칭으로 구분하자고 제안한다.


끝으로 음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도구다. 기본적으로 이런 인식이라면 찬양과 대중음악 사이를 가르는 선 따위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세상의 다른 모든 영역이 그렇듯, 여기에도 타락의 영향력이 깊이 새겨져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역을 구속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대답을 베이스로, 저자는 우선 우리가 예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예배의 찬양을 구성해 나가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등을 정성껏 답해 나간다. 오랜 시간 찬양사역을 해 온 저자는 다양한 교회에서 찬양집회 사역을 한 경험이 있고, 교회에서도 관련 사역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한 조언은 확실히 들을 만하다.


책 후반은 음악과 관련된 부분이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예배 찬양 콘티를 구성하는 요령이라든지, 기본적인 음악의 이해에 관한 내용으로 각 악기가 내는 소리의 특성과 음을 쌓는 방식, 찬양팀의 세팅방식, 교회 예배사역팀 운영 요령,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곡 요령까지도 담겨 있다.


설명을 위해서 다양한 악기들이 갖춰져 있는 찬양팀을 기본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좀 더 작은 교회여서 충분한 세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설명되어 있다. 사실 이런 작은 교회들이야말로 이런 조언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중대형 교회만큼의 자원이 부족한지라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 다양한 교회 현장에서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만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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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시대 - 기록, 살인, 그리고 포르투갈 제국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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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은 한 학자의 죽음에 관한 수상쩍은 정황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16세기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유럽인으로 살았던 다미앙 드 고이스라는 인물이었다. 다양한 일을 하던 그는 최종적으로 왕립 기록물 보관소장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직책을 맡았는데, 어느 겨울 아침 여인숙 벽난로 앞에서 불에 탄 채로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건 그의 손에 있던 문서는 타지 않았고, 또, 그가 목이 졸려 죽은 듯한 흔적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뭔가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라도 되는 양 책을 시작했지만, 막상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런 기대는 금방 사라진다. 물론 인물의 행적을 추적해 가면서 서술하는 게 어떻게 보면 소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어디까지나 인물의 행적을 남아있는 기록을 따라 정리하면서 그 행간을 나름의 개연성 있는 상상력으로 채우는 식으로 진행해 나간다. 요컨대 소설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는 말.


다미앙과 함께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루이스 드 카몽이스다. 다미앙이 뭔가 고지식하면서 학문적 의욕이 넘치는 학자풍이라면, 카몽이스는 약간은 한량 같은 느낌도 드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15세기 바스코 다 가마의 신항로 개척으로 포르투갈에서 인도까지 가는 항로가 발견되었고,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인도로 건너갔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었던 카몽이스도 마침내 인도로 가 한 몫을 잡으려 했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만 풀려가지 않았다.





다미앙과 카몽이스, 책은 이 두 사람의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며 서술이 이어진다. 왜 하필 이 두 사람이었을까? 한 명은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고, 다른 한 명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라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다미앙이 카몽이스보다 20여 년 먼저 태어났지만 세상을 떠난 해는 비슷하고,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포르투갈인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다. 그래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아 보인다.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사람의 사후 평가다. 다미앙은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역사에 관한 최초의 책을 썼다는 정도만 있을 뿐, 행적에 관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반면 카몽이스의 경우 포르투갈의 국민시인에 등극할 정도로 사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생전 그가 여러 차례 범죄에 연루되어 수감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례적이다. 지난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이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위대한 포르투갈인을 뽑았을 때, 카몽이스는 5위, 다미앙은 92위(그리도 뽑히긴 했다!)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큰 사후 평가의 차이가 조국인 포르투갈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에 있었다고 본다. 당시는 르네상스가 한창이었고, 인문주의에 입각한 학문 탐구가 교회의 권위적인 입장과 충돌하던 시기였다. 신항로 개척으로 좀 더 넓은 세계와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유럽인들의 자기중심성도 흔들리고 있었다. 다미앙은 이런 추세에 따라 일종의 다원주의적 저작물들을 남겼고, 이는 한창 뻗어나가려는 포르투갈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카몽이스는 지극히 낭만적으로 조국을 그린다. 비록 그가 인도 현지에서 보고 들은 것은 유럽에서 보고들은 것과는 차이가 많았지만, 어쨌든 그가 남긴 시 속에서 포르투갈은 위대한 나라이자 영웅적이며 성스러운 행적으로 묘사된다. 당연히 당국자들의 인정을 받을 만했던 것. 더구나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에서 가장 나중까지 레콘키스타라고 불리는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었으니, 이런 영웅적 서사는 딱 구미에 맞았으리라.





책의 두 중심인물을 통해 저자는 15세기 유럽의 분위기, 그리고 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사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 부분에 있다. 유럽과 인도를 쉴 새 없이 교차하며 서술하지만 혼동 보다는 철저하게 유럽의 눈으로 본 인도와 아시아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전혀 다른 세계가 접촉했을 때, 상대의 역사와 전통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지를 관찰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기독교 세계였던 유럽의 눈으로 어떻게든 힌두교 세계인 인도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 애잔하달까. 여기에 상황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인도에도 나름 오랜 기독교 역사가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사도 도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 교회의 전통은(실은 네스토리우스파 교단의 선교 때문으로 보이지만)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 묘한 감정을 품게 했던 것 같다.


또, 당시 실제로 활동했던 다양한 인물들을 책 속의 주인공들과 연결지어 소개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다미앙은 무려 에라스무스에게 배웠고, 인체 해부를 실시한 베살리우스나 예수회 출신으로 일본에까지 선교를 했던 사비에르의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도 보인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런 부분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듯.


책의 말미에 반전이라면 반전일만한 내용도 살짝 보인다. 책 첫머리에 등장했던 다미앙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카몽이스의 미발견 편지가 새로 공개되면서 밝혀진 것. 편지에서 지목된 인물은 놀랍게도 예수회의 초대 창립 멤버 중 한 명의 이름과 같았다. 그 둘이 동일인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름 떡밥을 회수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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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다섯 번째 편지 읽기입니다.
전쟁이라는 위기를 이용해 사람을 유혹하려는 신참 악마와
오히려 위기가 자신들에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스크루테이프의 조언이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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