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노란가방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을 읽는 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4 Oct 2026 06:01:33 +0900</lastBuildDate><image><title>노란가방</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9578114217064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노란가방</description></image><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amp;quot; 읽기</category><title>교회 직분은 왜 승진처럼 느껴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6672</link><pubDate>Sun, 11 Oct 2026 2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66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5666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장로는 돈이 많아야 할까요? 목사는 꼭 정장을 입어야 할까요? 설교를 더 많이 듣는 것이 언제나 더 깊은 신앙으로 이어질까요? 『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 나가면 그립다』의 저자 이재면 목사님과 함께, 교회에서 당연하게 여겨 온 직분과 복장, 예배의 관습을 돌아봅니다.<br><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작은 문턱 앞에 무너지는 존엄 - [존엄하고 초라한 -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2004</link><pubDate>Fri, 09 Oct 2026 0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20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5239&TPaperId=175620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20/59/coveroff/k9521352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5239&TPaperId=175620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존엄하고 초라한 -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에 대하여</a><br/>강미현 지음 / 흠영 / 2026년 01월<br/></td></tr></table><br/>건축사로 일해 온 저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이곳이 좀 더 친절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쓴 책이다. 단지 법적인 기준을 맞추는 것으로는 충분히 않다. 얕은 문턱 하나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는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고, 법적 기준을 맞춘 반지하방에서 사람들은 곰팡이와 싸우며 건강을 희생해야 한다.<br>얼마 전 한 유명한 장애인 유튜버가 KTX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이를 도와주던 공익근무요원과 부딪힌 후, 이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가 역풍을 맞는 사건이 있었다. 물론 해당 사건에서 그 유튜버는 자신의 분을 못 이겨 과한 대응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말하려고 했던 것, 그러니까 아주 작은 턱(심지어 그냥 사람의 발이라도)도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위험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조차 “그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br><br><br><br>사실 고통이라는 건 나누어지지 않는다. 심정적인 위로는 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히 우리의 것으로 경험할 수가 없다. 아니, 그에 앞서서 우리의 고통을 정확하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얼마 전에 뭘 잘못 먹고 식도 쪽에 통증이 생겨서 약국에 간 경험이 있는데, 내가 느끼고 있는 그 통증을 설명할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쓰라림도 아니고, 찌르는 것도 아니고, 쎄한 느낌이라는 설명은, 내가 들어도 두루뭉술하기 그지없었다.<br>고통이라는 게 그런 식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얼마나 큰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나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될 수 없다.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러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은 멀어진다.<br>저자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좁은 고시원에 몸을 구겨 넣고 살 수밖에 없는 청년들, 반지하의 열악한 상황을 견디는 이들, “시설” 속 장애인들, 힘든 노동 사이의 짧은 휴식을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야 하는 청소 노동자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받는 외국인 노동자들 등등. 누군가 애써 알려주지 않으면 일상 가운데서 좀처럼 마주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br><br><br><br>책에 담긴 글들은 모두 어떤 공간과 건축물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확실히 자신이 하는 일을 (단지 밥벌이로만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바로 그 공간과 건축물, 좀 더 쉬운 말로 부동산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해결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씁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전 국민이 부동산 투기에 목을 매고 있는 나라에서, 과연 효율을 포기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br>2025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가구의 자산의 3/4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전 국민적 공포일 것이다. 어떻게든 거품을 일으켜서 자산을 증식하려고 눈이 벌게져 있는 사람들에게, 장애인 그룹홈이 (대출을 잔뜩 받아 산) 자기 집 근처에 들어오는 일 조차 피켓을 들고 반대하러 나서기에 충분한 일이다.<br>사실 가장 약한 사람이 살기에 편한 곳은, 모든 사람에게 편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추가적인 비용이 들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가 겪는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에서 사는 것만큼 안심되는 일이 또 있을까. 각자도생만큼 비효율적인 삶의 방식도 없다. 우리는 당장 손에 쥔 것을 놓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20/59/cover150/k9521352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20597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루이스 한 문장</category><title>신학을 공부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592</link><pubDate>Thu, 08 Oct 2026 1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59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92530889&TPaperId=175605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42/64/coveroff/e592530889_971d.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1702&TPaperId=175605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85/15/coveroff/k692131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잊을 수 있을까요? 신학 공부의 즐거움과 사역의 성취가 곧 영적인 성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이번 ‘루이스 한 문장’에서는 쉘던 베너컨의 『잔인한 자비』에 실린 C. S. 루이스의 편지를 읽습니다. 신학과 목회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루이스가 건넨 조언을 통해, 직업적 야망과 신앙의 성장을 혼동할 위험, 거룩한 일에 익숙해지는 함정, 일상과 목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소명을 살펴봅니다.<br><br><br>&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85/15/cover150/k692131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85158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예수의 길을 따라 떠나는 책 여행 -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021</link><pubDate>Thu, 08 Oct 2026 0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0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839301&TPaperId=175600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27/20/coveroff/k9828393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839301&TPaperId=175600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a><br/>피터 워커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2년 09월<br/></td></tr></table><br/>같은 저자의 또 다른 책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를 굉장히 즐겁게 읽었기에, 그보다 먼저 나온 이 책 역시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펼쳐들었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도 있다. 그래서 살짝 아쉽기도 했는데, 이건 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연대기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싶었던(그래서 영상으로 만들려고 했던) 내 기대감에 기인한다.<br>바울의 발자취와 예수의 발자취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이동한 지역의 범위다. 바울이 지중해 동부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면, 예수님의 경우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좁은 지역에서만 활동을 하셨다. 그나마 몇몇 지역은 매우 근접해서(예를 들면 예루살렘과 뱃바게, 베다니, 감람산)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조금 아쉽다.<br><br><br>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모든 아쉬움은 이 책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 보려는 내 기대 때문이고, 책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책은 흥미진진하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그분이 방문하셨던 지역을 (대체로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성경 본문의 언급들, 그리고 역사적인 해석과 보충들, 주로 고대의(근대의 기록도 있다) 관련 기록들과, 오늘날의 모습, 나아가 만약 그 지역을 직접 방문한다면 어떤 순서로, 어떤 점에 집중하면서 여행을 하면 좋을 지까지 풀어 놓는다. <br>말 그대로 이것 한 권이면 끝이다 싶은 정도랄까. 물론 현장에서 직접 사람의 안내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진 우리가 현지의 상황과 동선을 그려보는 데는 이 책만 한 걸 보지 못한 것 같다. 참고로 비슷한 내용으로 좀 더 신학적 묵상이 짙게 실린 책을 찾는다면 톰 라이트가 쓴, 전에는 『내 주님 걸으신 그 길』이라고 나왔다가 최근에 『톰 라이트의 그리스도의 길』이라는 멋없는 제목으로 다시 나온 책을 보면 (제목과 달리) 좋다.<br><br><br><br>이 가을, 성경 속 팔레스타인 땅 곳곳을 책으로라도 간접 순례를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딱 한 가지 본문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 많은 지도와(특히 팔레스타인 전체 지역 중 지금 다루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표시해 두는 게 필요하다) 더 많은 이미지들이다. 물론 20년 전에 나온 책인지라 이 부분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텐데, 지금이라면 AI를 이용해서 좀 더 실감나는 이미지들을 더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뭐 번역을 해서 낸 CUP출판사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27/20/cover150/k9828393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227202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달에 만난 책들</category><title>9월에 읽은 11권, 한 권만 고른다면? | 구름책방 월간 독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4153</link><pubDate>Sun, 04 Oct 2026 18: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415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534278&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4/coveroff/k78253427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692&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62/coveroff/k4521376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117&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8/coveroff/k42213711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354713&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374/75/coveroff/89743547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6273&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4/63/coveroff/k89213627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415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br>9월에 읽은 열한 권의 책을 돌아봅니다.&nbsp;각 책의 내용과 읽으며 느낀 장점·아쉬움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br><br><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2/9/cover150/89537969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92090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기독교적인 역사 이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0897</link><pubDate>Fri, 02 Oct 2026 17: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08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632851&TPaperId=175508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0/coveroff/k63263285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적인 역사 이해가 없는 사람은 원형의 미로에서 방황하며 입구도 출구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br>- 톰 홀랜드, 『도미니언』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0/cover150/k6326328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90603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죽어간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6675</link><pubDate>Wed, 30 Sep 2026 2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66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534278&TPaperId=175466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4/coveroff/k78253427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534278&TPaperId=175466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a><br/>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br/></td></tr></table><br/>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고 보니, 두 공저자는 좀 더 최근작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만났던 이들이다. 책에서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의 원인을 “헌법”에서 찾았던 저자들이었다. <br>그 전작에 해당하는 이 책에서는 제목처럼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현재 상황을 묘사하면서 그 원인을 정당에서 찾는다. 조금은 흥미로운 지적. 우리말 제목의 “무너짐”은 영어 원제(How Democracies Die)로 들어가면 좀 더 강한 어감이다. Collapse가 아니라 Die다. 그만큼 현 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다는 의미일까.<br><br><br><br>책 초반 역사 속 다양한 민주주의 붕괴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그 가운데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한다. 과거 민주주의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군부의 독재 같은 노골적인 방식으로 무너졌지만, 냉전이 끝난 후의 양상은 좀 달라졌다. 저자들은 “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의 붕괴는 대부분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고 말한다. 즉 오늘날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br>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경우 쿠데타나 게엄령 선포, 혹은 헌정 질서의 중단과 같은 “경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순간이 없기 때문에 사회의 비상벨이 울리지 않는다. 화재가 일어났는데 경보기가 울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장이나 거짓말을 한다는 오해를 받는데, 예컨대 지난 윤석렬의 친위쿠테타 시도 이전에 여러 야당 의원들이 계엄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했을 때, 여당은 물론 언론으로부터도 뭇매를 맞았던 예가 있다.<br>그러면 어떻게 이런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원리 가운데서 저자들은 ‘정당’을 일종의 ‘문지기’라고 부른다. 미국의 민주주의 설계자들은 처음에는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서 포퓰리스트, 혹은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방지하려고 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투표를 하긴 하지만 그 결과값으로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게 아니라, 각 주의 명망가들로 이루어진 대의원들이 모여 (실제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제도였다는 것.<br>그러나 이런 제도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우선은 선거인단이 투표가 끝난 후에, 그러니까 후보자가 결정된 다음에야 활동을 시작했고, 각 주에서 정당 지지자들을 선거인단으로 선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면서 중요해진 것이 앞서 말했던 ‘정당’이다. 정당은 무자격자들, 독재의 기미가 있는 이들을 걸러서 정치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순간 정당이 그 역할을 내팽개쳤다는 것.<br>트럼프는 그 부작용 중 하나이지 최종적인 결과물이나 결정적인 시작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미 80년대 뉴트 깅리치로 대표되는 전투적 정치인들이, 상대 정당을 정치적 파트너가 아닌 무찔러야 할 적으로 규정하면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불법만 아니면 뭐든 괜찮다”는 태도는 정치를 전쟁의 장으로 만들었고, 이는 클린턴, 부시, 오바마 정부를 지나면서 점점 강화되었다. 어떻게 보면 트럼프라는 괴상한 독재자의 등장은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br><br><br><br>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이 오버랩된다. 우리 또한 어디 극우 사이버 래카 채널 같은 데서나 할 말을 공당의 대표와 최고위원이라는 작자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고, 저주와 혐오로 가득한 발언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내뱉는 3류 정치인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정치의 도의와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상대를 문자 그대로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괴물들이 여의도와 광화문 앞 이곳저곳을 휘젓는다.<br>여의도 외곽에선 그런 괴물들을 지원하는 극단적 성향의 유튜버들이 더 센 막말을 늘어놓고, 심지어 일부 교회의 목사라는 작자들까지 여기에 올라타 사탄의 노래에 맞춰 음란한 춤을 추는 지경이다. 무지몽매한 신도들은 그런 소경이 인도하는 절벽으로 열심히 함께 두 팔을 벌려 달려가고 있고.<br>사실 문제가 심각한 건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쉽게도 저자들은 앞서 읽었던 책처럼 마땅한 대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적어도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이 하는 것처럼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을 포기하고 주류 백인들을 위한 정당으로 선회해서는 안 된다고, 좀 더 보편적인 지향점(최저임금 상승, 보편적 기본소득 같은)을 위한 정치를 하다보면 결국 백인들도 그 혜택 안에 포함되니 타개책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금은 이상적인 주장을 할 뿐이다.(그러나 그렇게 해도 혜택을 받는 저소득, 저학력층 백인들이 민주당 지지로 드라마틱한 선회를 할 것 같지는 않다)<br>최근 종종 드는 생각인데, 어쩌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유통기한이 끝나감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라는 사회적 실험이 냉전의 붕괴로 100년 만에 실패로 마쳤다면, 18세기 말 미국의 독립으로 시작된 현대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실험 역시 250년 만에 그 효용이 다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린 이제 (어떤 형태로든) 계급사회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들의 통치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지도.(트럼프 강점기의 세계처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4/cover150/k78253427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34142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선교지는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 [이주민 선교 현장 리포트 - 시대적 소명에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0416</link><pubDate>Sun, 27 Sep 2026 23: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04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692&TPaperId=175404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62/coveroff/k4521376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692&TPaperId=175404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주민 선교 현장 리포트 - 시대적 소명에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a><br/>김영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03월<br/></td></tr></table><br/>여기 미국에서 목회학 박사학위까지 받고 선교를 준비하던 여성이 있다. 우연히 남양주의 공장 지대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가 갖고 있던 계획은 완전히 재설정되었다. 1998년 시작된 국내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선교활동은 2026년까지 이어진다. 이 책은 그 역사의 여러 장면들을 따뜻하게 비춰준다.<br>책에 나오는 “암미선교회”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선교회다. 보통 선교라고 하면 외국에 나가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우리나라에만도 26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 역시 선교라고 부르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다.<br>암미선교회의 ‘암미’는 히브리어로 ‘내 백성’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그들을 ‘외부인’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두 “내 백성”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경상북도 인구보다 많은 상황에서, 언제까지 그들을 외부인으로만 볼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br><br><br><br>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저자인 김영애 선교사가 쓴 부분으로, 지난 3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경험들, 은혜의 사건들, 눈물과 기쁨이 어우러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br>두 번째 부분은 선교회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쓴 부분이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간 지체들의 편지도 있고, 이 사역에 동참했던 여러 사역자와 봉사자들의 간증도 보인다.<br>마지막 부분(3부와 4부)은 이주민 선교와 관련된 뉴스레터와 기고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의 글들이 생생함이 강조된 것들이라면, 이 세 번째 부분에 속한 글들은 조금은 전문적인 분석과 대안 제시가 담겨 있다. <br><br><br><br>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다. 잔잔한 사역의 결과물들을 읽다보면, 여전히 훌륭한 사역자들, 사역들, 봉사자들이 많구나, 그리고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이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br>어렵지 않은 내용이니 한 번쯤 시간을 내서 읽어 볼만하다. 직접 해외에 나가는 것 못지 않게, 선교라는 분야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이 여기에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62/cover150/k4521376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43621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에서 논문읽기</category><title>부활의 첫 증인은 여성이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9699</link><pubDate>Sun, 27 Sep 2026 18: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969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932279&TPaperId=175396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92/93/coveroff/k10293227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2619&TPaperId=175396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1/85/coveroff/k37203261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8965&TPaperId=175396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9/85/coveroff/k74203896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예수님은 여성들을 치유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향유를 부은 여성을 인정하시고, 여성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으며, 성령은 성별을 구분하여 은사를 주지 않으셨습니다.&nbsp;​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성경이 보여주는 여성의 자리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을까요? 여성 리더십과 여성 안수, 논쟁적인 바울서신의 본문까지 논문을 읽으며 솔직하게 대화해 보았습니다.​<br><br><br><br>&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9/85/cover150/k7420389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99858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아시리아는 정말 잔혹한 제국이었나 -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7710</link><pubDate>Sat, 26 Sep 2026 1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77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117&TPaperId=175377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8/coveroff/k4221371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117&TPaperId=175377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a><br/>야마다 시게오 지음, 박재영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6년 04월<br/></td></tr></table><br/>더숲출판사에서 내는 역사 시리즈의 최신간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가 참 좋다. 지금까지 다섯 권이 나왔는데(아직 읽지 않은 네 번째 책도 곧 읽을 예정), 바빌론과 비잔티움(동로마제국), 히타이트와 무굴, 아시리아까지 고대 제국들의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그야말로 꿀맛인 책들이다.<br>흥미로운 건 이 책까지 일본인 저자가 벌써 두 명이라는 점. 인문 역사 분야의 오랜 연구 전통이 있기 때문일까. 언젠가 우리나라 저자도 이런 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br><br><br><br>아시리아는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 도시국가의 형태로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 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아수르, 니너베(니느웨), 아르벨라(이라크 아르빌) 등의 도시들이 초기 중심지다. 우리가 이들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건 역시나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인데, 쐐기문자로 알려진 독특한 문자 체계로 점토판에 눌러 새겨 만든 문서는 종이나 나무와 달리 오랜 시간을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 해독과정을 거쳐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br>아시리아는 시대적 구분에 따라 고 왕국, 중왕국, 신왕국(아시리아 제국) 시대로 나뉘는데, “장막에 거하던 17인의 왕들” 같은 전설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족장 시대를 거쳐 중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역국가로서 발돋움하게 된다.<br>그리고 아무래도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좀 더 잘 알려진 것은 신 아시리아 왕국, 아시리아 제국 시기다. 이스라엘의 북부 왕국을 멸망시켰던 디글랏 빌레셀(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도, 그 뒤를 잇는 살만에셀(살마네세르 5세), 산헤립(센나케리브), 엣살핫돈(에사르하돗)도 다 이 시기의 왕들이다. 그리고 책에서 저자가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아슈르바니팔도 개역성경에 “오스납발”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br> 흔히 아시리아는 전쟁에 미친 나라, 패배한 나라의 포로를 끌고 와 영토 내 곳곳에 강제 이주를 시키고, 배반자에게는 잔혹한 처벌을 마다하지 않았던 야만적 집단처럼 여기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고대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은 다 그런 식으로 영토를 늘리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인구가 가장 중요한 국가적 자원인 시대에 강제이주는 일상적이었고,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과 반란을 진압한 후의 처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한 잔혹한 형벌이 가해졌다.<br>저자는 아시리아에 나름 효과적인 행정조직도 있었고, (초기이기는 하지만) 대상 무역을 통해 부를 쌓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기록들(상당 수는 점술과 관련된 것이지만)이 증명하듯 학문적 전통도 있었음을 강조하려고 시도한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저자도 인정하듯, 제국 시기의 아시리아는 끝없는 전쟁과 전리품으로 돌아가던 약탈경제에 가까웠고, 그나마 그 결과물도 지배층 위주로만 분배되어 제국에 속한 보통의 백성들에게 왕국의 운명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다가왔었다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할 것 같다.<br>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고대 아시리아 제국에 관한 좋은 모노그래프. 사실 이보다 더 상세한 내용들은 연구자가 아니면 딱히 필요 없지 않을까. <br><br><br><br> 옥의 티라고 한다면, 감수의 글 부분에서 좀 보인다. 튀르키예에서 공부한 외교관 출신의 감수자는(저자로 쓴 책도 읽어봤다) 아시리아에 대한 기존의 왜곡돤 관점을 이 책이 어떻게 교정했는가 찬사를 보는 과정에서 성경을 언급한다. 이스라엘 북왕국을 아시리아가 멸망시켰기에 성경에는 아시리아에 대한 적개심이 남았고, 결과적으로 아시리아를 마치 괴물처럼 부정적으로만 묘사해, 이것이 서구 문화와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br>그러나 아시리아의 잔혹성에 관한 연구는 근대의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잔혹한 처벌 부조에 기인한 바가 훨씬 더 크고, 성경의 아시리아는 강력한 제국이자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하는 존재”(하박국)로 묘사되기도 한다. 물론 멸망 이전에도 이 지역의 위기를 조성하던 아시리아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존재하긴 했으나(요나), 같은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런 아시리아 사람들(니느웨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선지자와 일종의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br>그리고 본문에서도 매우 자주 언급되지만, 성경의 기록은 실제 아시리아 역사와 매우 잘 조화가 되고 있으며, 오히려 가공의 인물들을 잔뜩 등장시킨 일부 그리스 작가들에 비해 근대적 발굴 이전에 아시리아에 관한 거의 유일하게 정확한 자료로서 인정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8/cover150/k4221371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50688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시대를 거스르는 믿음의 용기 - [선지자적 반시대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5473</link><pubDate>Thu, 24 Sep 2026 2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54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354713&TPaperId=17535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374/75/coveroff/89743547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354713&TPaperId=175354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선지자적 반시대성</a><br/>오스 기니스 지음, 김형원 옮김 / 이레서원 / 2016년 01월<br/></td></tr></table><br/>우연히 들렸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명작을 발견했다. 오스 기니스의 책 중에 이런 게 있었구나 새삼 감탄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제목에 나온 “반시대성”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보여준다.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기 바쁘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선지자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br>꽤나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모든 종류의 현대적 적응(책에서는 이걸 ‘적합성’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잘 와 닿지 않는다)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br><br><br><br>기본적으로 이 책이 나온 20년 전의 서구 교회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몇몇 초대형 교회들로 상징되는 성장주의, 부흥만능주의, 그리고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믿으면 뭐든 잘 될 것이라는 이단적 긍정신학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저자는 그 시대를 이렇게 진단한다. <br> “스스로에 대한 치유적 관심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덮어 버리고, 영성이 신학을 대신하며, 종말의 도피주의가 일상의 제자도를 몰아내고, 마케팅이 선교를 축출하고, 여론조사 결과가 성경 주해에 대한 의존을 압도하며, 권력과 적합성에 대한 관심이 경건과 신실함에 대한 관심보다 두드러지며, 예배당을 재건하자는 말이 부흥을 위한 기도를 대체하고, 발흥하는 복음주의 하위문화의 재벌 왕국을 유지하려는 전력투구가 선교적 사역에 대한 복음주의의 특징적인 열정을 누르고 있다.”<br> 저자는 “교회가 지금까지 속해 왔었던 모든 문화 중에서 현대 세계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침투력이 강하고, 가장 압박이 심하며, 현대 세계는 교회 역사상 다른 모든 박해자보다 기독교의 순결함과 효율성에 가장 크게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본다. 교회는 이 문화적 압박에 진작 굴복해버렸는데, 그 와중에서 자신들이 뭔가 대단한 전환을 이룬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전 시대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 목록을 버린 것이 무슨 엄청난 영적 성장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br>또, 저자는 이젠 설교 강단에서도 성경 본문에 대한 진지하고 충실한 주석보다, 온갖 종류의 (성경이 아닌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의 말이 권위 있게 인용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고발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가련한 항복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br>진품이 있는데 (비용이나 접근 기회의 차이가 없다면) 굳이 가품을 선택할 사람은 없다. 교회가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는 세속주의적 새로운 가르침은, 이미 세상에서 더 잘 가르치고, 안내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 내용이 별반 다를 게 없다면, 굳이 이런저런 부담을 지면서 교회에 나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즈음 서구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 수의 감소는 이런 영향도 있을 것이다.<br><br><br><br> 저자는 소명을 ‘벤처 사업’에 비유한다. 요 몇 년 동안 크리스천 창업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관여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스타트업의 성공률, 아니 생존률이 얼마나 낮은가 하는 부분이다. 보통 10년 안에 30% 내외만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그나마 폐업을 하지 않고 남은 스타트업도 사업이 잘 된다기보다는 그저 사업자등록을 취소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만큼 실패의 확률이 높은 게 사업이다.<br>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는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세속주의의 물결이 이렇게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도록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은 인기가 없다. 그래서 그 길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길이고, 유명세를 얻기 힘든 길이다. 실패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때로는 실패하는 게 옳은 선택인 때도 있다는 말이 퍽 위안이 된다.<br>저자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유행에 좀 무뎌지고, 특히 “역사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상적인 지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미래에 집착하면서, 이미 입증된 실수를 반복하는지... <br>작은 책이지만 강한 도전적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다만 책 초반 번역이 조금 난감한데, 예를 들면 ‘저항적 사고’가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이 사고는 한편으로 정합성을 추구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현세대와 잘 맞지 않는 기독교 메시지의 요소들에 대한 집요한 인식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다”라고 하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후반으로 넘어가면서는 조금씩 나아지긴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374/75/cover150/89743547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374756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시민사회는 누가 무너뜨리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4686</link><pubDate>Thu, 24 Sep 2026 1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468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5346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시민사회는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스 기니스는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6장에서 시민사회가 위로부터는 권력과 ‘전체주의적 관용’에 의해 억압되고, 아래로부터는 시민의 무책임과 진영논리, 정체성 정치에 의해 침식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이번 영상에서는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두 방향의 공격과 진보적 보편주의 및 다문화적 상대주의의 한계를 살펴봅니다. 또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양심과 자유를 지켜 주는 ‘언약적 다원주의’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일까요, 아니면 우리 종교만을 위한 특권일까요?<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거리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903</link><pubDate>Mon, 21 Sep 2026 2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90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535328&TPaperId=175299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414/67/coveroff/k91253532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어머니 말씀처럼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br>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br><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414/67/cover150/k91253532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414672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금지할수록 선명한 기억, 문화대혁명 - [금지된 기억 : 문화대혁명 시기의 티베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122</link><pubDate>Mon, 21 Sep 2026 15: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1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6273&TPaperId=175291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4/63/coveroff/k8921362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6273&TPaperId=175291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금지된 기억 : 문화대혁명 시기의 티베트</a><br/>체링 외세 지음, 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03월<br/></td></tr></table><br/>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억을 몇 개 떠올리라면 우선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그 외 민간인까지 포함하면 1,100만이라고) 정권 차원에서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있을 것이고, 스탈린이 저지른 대숙청(약 70만 명 살해)과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 최소 400만 명 이상 희생)도 그 못지않은 사건이다. <br>그리고 또 한 가지를 꼽자면 역시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이다. 10년간 이어진 이 광기의 운동으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아예 당 차원에서 기록을 삭제해서 정확한 수를 알 수가 없다) 간접적인 희생자를 포함하면 그 몇 배가 넘는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br>이 세 가지 참사의 공통점은 한 명의 지도자가 내린 멍청한 명령을 제대로 된 검토와 비판 없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광범위하게 시행했다는 데 있다. 애초에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세 사람 은 각각 미술, 신학, 문학을 공부했다) 너무 나섰다. <br>그런데 차이점도 있다. 나치와 스탈린의 소련은 멸망하고 해체되었지만, 마오의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덕분에 그가 저지른 문화대혁명은 한 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노선을 바꾸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그것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거나 하는 건 금지되어 있다(자칫 당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수 있으니). <br><br><br><br> 이 책은 문화대혁명 당시 티베트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사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당시 인민해방군에서 선전 관련 일을 하는 장교로 복무 중이었고,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곳곳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결과물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책으로 펴낸 것.(당연히 중국 공산당에서는 이 일을 좋게 보지 않았고, 덕분에 저자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br>익히 알려진 것처럼, 문화대혁명은 티베트에서도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홍위병들은 티베트의 정신을 지워버리려 했다. 오래된 사원들은 파괴되거나 “인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되었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승려들은 강제로 끌려나와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환속해서 당의 지령을 따르는 꼭두각시 생활을 해야 했다.<br>비참한 모습으로 훼손되는 티베트의 문화유산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 그런데 저자는 단지 티베트인들을 피해자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본토에서 온 홍위병들뿐 아니라, 티베트에서 조직된 홍위병들, 그리고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개인적 영달을 꾀했던 티베트인들, 그 가운데는 특히나 악질적인 행동대장들도 있었다. <br>일단 그렇게 처절한 파괴의 시기가 지난 후엔 이제 정복자들 사이에서의 권력다툼, 내분이 벌어진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티베트어로 걘록과 냠델이라고 불렸던 두 개의 파벌은 각자 무장단체까지 거느리면서 이전투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또 적지 않은 티베트인들이 말려 들어가 피해를 입는다. <br><br><br><br>사실 잘 알지 못하는 티베트의 역사를 다루는 책인지라 이름부터가 생소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누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 앞잡이였고...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데 그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소설처럼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이 핵심이니까.<br>문화대혁명의 상징은 역시나 홍위병이다. 티베트에서 홍위병은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티베트의 수많은 청소년들도 열성적인 홍위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뭐든 때려 부수는 것이 미덕으로 칭송받던 광기의 시기, 그 되바라진 아이들은 자신들이 뭔가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흥분에 빠져 장차 자신들이 딛고 살아야 하는 땅을 파괴했다. <br>사실 가장 선동당하기 쉬우면서, 한 번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게 1, 20대이다. 이건 뭐 오늘날에도 매한가지. 퍽 우려스러운 부분인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들을 선동해서 불쏘시개로 쓰는 악질적인 인간은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다. 쿠데타를 옹호하고, 법원까지 습격하게 만드는 이들이 또 무슨 짓을 못 할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홍위병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4/63/cover150/k8921362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4636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amp;quot; 읽기</category><title>교회는 왜 충성된 사람부터 지치게 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7544</link><pubDate>Sun, 20 Sep 2026 1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75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5275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감사와 기쁨으로 시작한 교회 봉사는 왜 어느 순간 그만둘 수 없는 의무가 될까요? 예배만 드리고 싶다고 말하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고, 새벽기도에 참여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요?​『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봉사자의 소진, 늘 하던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는 교회 구조, 새벽기도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필요한 쉼을 이야기합니다.&nbsp;​쉼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자발적인 순종을 회복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곳이 아니라, 지친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공동체가 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어떤 믿음은 우리를 망가뜨린다 -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2116</link><pubDate>Thu, 17 Sep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21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042719&TPaperId=175221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574/4/coveroff/89880427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042719&TPaperId=175221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a><br/>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5년 08월<br/></td></tr></table><br/>두 달 전쯤 이 책의 시리즈 중 하나였던 다른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의 핵심 키워드는 “마음”이었는데, 이번 책은 “뇌”다. 영어로 된 원제를 보면 “The God-Shaped Brain”이니 우리말 제목이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다. <br>그리고 원서에는 “How Changing Your View of God Transforms Your Life”라는 부제가 함께 붙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꾸는가라는 말인데,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설명한다. 책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우리의 뇌에, 생각에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우리 삶을 망가뜨린다고 반복해서 지적한다.<br>전반적으로 보면 앞서 읽었던 책과 비슷한 논조를 갖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뇌’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 책은 여러 장에 걸쳐서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던 실제 환자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저자가 그들에게 어떤 신앙적 조언을 해주었는지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br><br><br><br>책 표지에 “이 책의 사례는 모두 실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읽었던 책에서 비판점은 기독교를 너무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정신과 의사가 실제 환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고안되고 쓰였다는 정황을 놓친 것 같다.<br>확실히 기독교 문화가 더 일상적인 미국이니 만큼, 여전히 매우 보수적인 신앙관 속에서 종종 압제적인 상황에 처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이즈음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여기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이분법 적으로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흔히 “죄”라고 말하는 것들에도 구체적 정황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br>이런 상황에서 경직되고 정통주의화 된 기독교 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엄격한 관점을 지니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빠져 심각하게 삶의 질서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충분히 나오게 된다. 저자의 책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한 가지 약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의 책을 너무 일반론적으로 읽으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br><br><br><br>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단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마음을 뇌의 특정한 부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건가 하는 구절이 몇 군데 보인다. 이른바 ‘육체와 마음의 연결점’이라는 오래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저자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br>어떤 부분에서 저자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목회상담을 진행 중인 목회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기독교적 전제를 갖고 임하는 것과, 목회자가 할 만한 일을 하는 것 중. 물론 이 또한 일부 목회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신자들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눌러둔 결과겠지만.<br>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견해, 그 중에서도 그분을 무서운 심판자이자 처벌자로만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574/4/cover150/89880427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574040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역사를 삶의 무기로 삼아도 될까 - [역사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나간 세월에 담긴 다가올 날들을 위한 통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8570</link><pubDate>Tue, 15 Sep 2026 21: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85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636692&TPaperId=175185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639/67/coveroff/k4826366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636692&TPaperId=175185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나간 세월에 담긴 다가올 날들을 위한 통찰</a><br/>문예춘추 편집부 지음, 이미경 옮김 / 베가북스 / 2019년 11월<br/></td></tr></table><br/>전에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문득 리뷰를 쓰려다 같은 출판사에서 낸 시리즈물인가 싶었지만, 웬걸 출판사 이름이 전혀 다르다. 물론 두 책 모두 일본인이 쓰거나 기획한 책이지만 별 상관은 없어 보인다.<br>그리고 검색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하나. “~는/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무척이나 많다. 이 문장의 주어 자리에 들어가는 것들로 독서, 심리학, 시간, 집중력, 독학, 고집, 불안, 법, 심지어 복음까지 있다. 어지간히 무기가 고픈 시대인가 보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경쟁, 싸움을 위한 도구인데, 이렇게 여기저기서 무기를 찾으려고 하는 시대는 평온한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br><br><br><br>여하튼 이 책은 그 무기를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역사의 교훈” 같은 것을 이르는 듯하다. 다만 역사라는 건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달라지곤 해서, 누가 그것을 읽느냐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br>모두 스물 세 명의 기고자들의 글을 엮은 이 책의 경우, 각각의 기고자들의 성향을 분석할 수는 없고, 이를 모아 낸 문예춘추라는 출판사(이자 월간지 이름)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 찾아보니 일본의 유명한 우익 출판사라고 한다. 다만 모든 글에서 우익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건 아니고, 사안을 ‘다르게 보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부각하기’의 과정에서 다분히 일본 중심적으로 역사를 읽고 있다는 느낌은 종종 받게 된다.<br>예컨대 근현대를 다루는 파트에서 미국의 민주당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제로 쓴 글을 보면, 과거 민주당이 노예제를 옹호하던 정당이었으나 교묘하게 과거를 숨기고 있다(!)면서 민주당 정권을 인종차별 정권이라는 식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두 개의 원자폭탄을 배치한다. 문제는 여기 어디에도 일제가 당시에 저질렀던 전쟁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 물론 글의 논지가 미국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긴 하지만, 일본은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원폭의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로서만 서술된다. 전형적인 우익적 논설이다.<br>고대 로마 제국의 멸망을 다루는 글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이민족의 수용에서 찾고, 이를 현대의 난민 문제와 연결시키는 시도도 보인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형식적, 내용적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중원을 지배한 수많은 이민족들이 결국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점과 비교하면서 중국은 문화적 가치가 민중 전체에게 공유되었지만 로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건 조금은 성급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br>또 종교와 관련된 내용도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기초해 접근을 하니 피상적인 고찰만 나올 뿐이다. 애초에 애정이 없는 대상에 관해 쓴 글은 재미있기도 어렵다. 로마가 예수의 처형 이후 그 제자들이 시작한 신앙운동(기독교)의 의미를 깨닫고,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대립을 조장하기 위해 은근 사도들의 활동을 지지한 것 같다는 주장은, 당시 아직 기독교와 유대교의 분화가 유대인들 내부에서도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그다지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다.<br><br><br> <br>그래도 꽤 흥미로운 통찰도 보인다. 한 필자는 로마 교회와 과학 연구 사이의 긴장만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자연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해왔음을 근거로 실제로는 과학 연구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중후반 영국과 중국(청)의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는 두 나라의 관계를 단순히 자유 민주 vs 권위 독재, 혹은 제국 vs 저항 같은 이항 대립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br>특히 페르시아와 로마, 당, 이슬람 제 왕조들, 몽골 등의 번영을 이룬 대제국에서 공통점을 ‘소수파’의 지배로 보는 점이 흥미롭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지배층이 통치를 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관용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고, 피지배 계층에서도 신분이나 출신을 크게 따지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을 관료로 끌어올려 사회 전체에 유익이 되었다는 것. 물론 지역적으로 예외도 있었지만, 다수파가 전부를 차지하는 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급의 고착화와 부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 사회적 불안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이다.<br>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잘 걸러서 읽으면 나름 유익한 부분이 있을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교양 지식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누어서 쓴 글이니 만큼 무게감도 좀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639/67/cover150/k4826366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639676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그리스도인에게 친구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5768</link><pubDate>Mon, 14 Sep 2026 14: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576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6697&TPaperId=175157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760/52/coveroff/893281669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그래서 나는 네가 어려움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네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된 일에 반드시 따르는 어려움이기를 바란다. 그런 어려움을 감당하려면 많은 친구가 필요할 거야. 이 세상에서 친구보다 더 귀중한 선물은 없음을 네가 발견하면 좋겠구나. 우정에는 시간이 들지.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시간을 주셨단다. 서로 친구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게 돼.<br>- 스탠리 하우어워스, 『덕과 성품』 중에서<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760/52/cover150/89328166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760528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에서 논문읽기</category><title>보수 교단 목사는 왜 여성차별을 연구했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5763</link><pubDate>Mon, 14 Sep 2026 14: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576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735311&TPaperId=17515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36/85/coveroff/k81273531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837160&TPaperId=17515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03/47/coveroff/k282837160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035324&TPaperId=17515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74/76/coveroff/k832035324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1792&TPaperId=17515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896/71/coveroff/89328117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2798&TPaperId=17515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492/3/coveroff/8936472798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576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나는 여성을 차별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겪는 차별의 현실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수 교단에 속한 한 목사는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모르고 있던 경험들을 마주했습니다.<br>구름책방의 새 시리즈 〈책방에서 논문 읽기〉 첫 시간입니다. 논문 저자인 나연수 목사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드러내는 여성 포용 목회」의 서론을 읽습니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역할 분담,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관계, 차별을 개인의 의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나눕니다. 서로의 우려와 경험을 짚으며, 여성차별이 왜 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목회의 문제인지 살펴봅니다.<br><br><br>&nbsp;&nbsp;<br>&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602/49/cover150/89328179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602491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타</category><title>의자병에 걸린 우리에게 필요한것 - [바디 가스펠 - 순리대로 세워지는 몸의 질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09551</link><pubDate>Fri, 11 Sep 2026 14: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095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9593&TPaperId=175095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50/46/coveroff/k4021395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9593&TPaperId=175095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디 가스펠 - 순리대로 세워지는 몸의 질서</a><br/>최진수 지음 / 올포워십 / 2026년 05월<br/></td></tr></table><br/>올해 초 오른쪽 어깨에 문제가 생겼었다. 평소에는 딱히 증상이 없는데, 팔을 위로 들려고 하면 극심한 통증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잠을 잘 못 잤나 하고 넘어갔는데 며칠이 지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결국 정형외과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진단 결과는 오른쪽 어깨의 회전근개염. 생전 처음 도수치료라는 것도 받아보고, 주사와 먹는 약까지 처방받았다.<br>사실 어느 정도는 나이가 들면서 안게 되는 패널티 같은 것이지만, 근골격계 질환 같은 경우는 다분히 생활 습관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 당장 나부터가 깨어있는 시간 거의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 있으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의자병”에 단단히 걸려 있는 셈이다.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우리 몸의 전반적인 균형에 관해 쓰고 있다.<br><br><br><br> 사실 어느 정도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 나온 이야기 대부분을 (세부적인 내용까지 정확하진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몸의 균형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몸을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쓰지 않으면 결국 어딘가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 문제는 정보를 아는 것과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 사이에 언제나 거리가 크다는 것.<br>저자는 단순히 건강관리법만이 아니라, 이런 신체의 균형을 하나님의 창조에서, 그리고 그분의 섭리에 따라 사는 삶으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책의 곳곳에 이런 내용이 반복적으로 보이는데, 뭐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으니까.<br>다만 책의 장르가 조금 애매하다는 느낌은 든다. 기본적으로 괜찮은 건강관리 지침서로 읽고 있는데, 반복해서 저자의 “묵상”이 튀어나오니까. 사실 그런 부분은 서문이나 1장 정도에 충분히 설명을 하고, 나머지 장에서는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담는 게 구성상 좋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 묵상 부분이 특별히 깊은 통찰을 담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감도 있다.<br><br><br><br>사람이라는 게... 일단 직접 큰 통증을 겪고 보니 이런 내용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책에서는 왜 그런 문제가 일어나는지 원인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실천할 수 있는, 또 집에서 해 볼 수 있는 간략한 운동이나 지침들이 이미지와 함께 조금만 더 실려 있었다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50/46/cover150/k4021395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50468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C. S. 루이스</category><title>사순절, 다시 만난 루이스의 문장 - [부활의 자리로 - C. S. 루이스와 함께하는 사순절 묵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02877</link><pubDate>Tue, 08 Sep 2026 15: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028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152399&TPaperId=17502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6/79/coveroff/89531523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152399&TPaperId=175028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활의 자리로 - C. S. 루이스와 함께하는 사순절 묵상</a><br/>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6년 01월<br/></td></tr></table><br/>두란노에서 계속 내고 있는 C. S. 루이스 선집들 중 하나다. 이번에는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부활절 시즌을 겨냥한 책으로, 40일간 매일 루이스의 다양한 책들에서 뽑아낸 글을 하나씩(일부는 두 개씩) 읽도록 구성되어 있다. 두란노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한 건 아니고, 알라딘 검색을 해 보니 2017년에 나온 외서가 보인다. 10년 만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셈.<br>일부 서간집의 내용과 루이스의 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미 홍성사에서 출판되어 있는 루이스의 저작에서 읽어봤던 글들이다. 때문에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이 글은 어느 책에서 온 건지 맞춰가는 재미로 시작했고, 또 대부분은 비슷하게 맞았다.<br>하지만 책을 읽어나면서 그런 ‘놀이’는 점차 잊히고 역시나 루이스의 글이구나 하면서 푹 빠져든다. 사실 두란노에서 이런 선집 시리즈를 내면서 기존의 홍성사 번역과 달리 경어체가 아닌 번역을 한 게 어색하다고 느꼈는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이번엔 좀 다른 식으로도(이제는 더 나오지 않는 새로운 글을 읽는 느낌?) 이해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br><br><br><br> 사순절에 맞춰 읽을거리를 만들다 보니, 죽음, 부활 같은 주제들을 중심으로 글을 모은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루이스가 그런 목적으로 글을 쓴 것도 아닌지라, 정확히 그 분위기에 맞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br>또, 이런 선집의 특성상 매일 읽어가는 글들 사이에 연계라든지, 발췌한 부분 전후의 문맥을 알 수 없다는 점 등은 (시리즈 자체의)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이건 선집이라는 형식이 갖는 한계인 거고, 늘 말하지만 그 가운데서 좋은 글을 발견했다면 전체 책을 찾아 읽어보면 될 일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6/79/cover150/89531523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0679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우리는 왜 귀여움에 끌릴까? - [귀여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8672</link><pubDate>Sun, 06 Sep 2026 21: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86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3626&TPaperId=174986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98/2/coveroff/k5920336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033626&TPaperId=174986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귀여워!</a><br/>호규현 외 지음 / 인공위성82 / 2025년 11월<br/></td></tr></table><br/>제목도 그렇고 책의 판형도 딱 손바닥만 한 것이 귀엽다. 하얀 바탕에 “귀여워”라는 제목만 딱 앉혀 놓은 표지도 담대하지만, 제목의 'ㅇ' 두 개마다 귀여운 얼굴이 들어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확실히 눈길을 끄는 표지. 도대체 이 책은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진다.<br>책은 “귀여움”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미학적, 역사적,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 귀여운 표지와 달리 꽤 묵직한 방향이다. 여섯 명의 저자들의 글을 담고 있는데, 귀여움이라는 주제는 공통적으로 갖되 각 저자마다 약간의 집중점이 다르다. <br><br><br> <br>물론 여러 저자가 쓴 글이니 만큼, 각 글마다의 수준이나 방향성이 제각각이다. 개인적으로는 귀여움에 관한 미학적 분석을 시도한 첫 번째 글과 역사적 맥락을 추적한 두 번째 글이 가장 인상적이다.<br>우리가 어떤 것을 귀엽다고 느끼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제안 중 하나가 ‘킨첸슈마’라는 개념이다. 이는 몸에 비해 큰 머리, 통통한 체형과 뺨, 큰 눈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가리키는데, 마치 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외형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돌보고자 하는 행동양식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 <br>정신영의 두 번째 글에서는 이 개념의 역사적 근원과 발전 과정을 추적해 간다. 귀여움 담론의 진원지는 일본인데, 70년대부터 대중문화 속 아이돌 가수나 만화 주인공들에게 특유의 귀엽고 순진하며 사랑스러움을 표방하는 존재들이 범람했다. “가와이이”라는 표현은 이들에 대한 찬사이자 감탄사일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사가 되었다.<br>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포인트를 읽어낸다. 가와이이라는 개념에는 상대가 명백한 약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1988년 중병을 앓던 일왕 히로히토에 관한 보도가 나오자 이부 10대 소녀들이 그를 ‘가와이이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데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타자를 귀여워할 수 있는 필수조건은 이쪽의 현저한 힘의 우위가 전제되었다는 것.<br>그러면서 일본 사회에서 이 개념이 유행하게 된 것은, 앞서 첫 번째 글의 내용과 연결된다. 생물학적 기준에서 귀여움은 더 힘 센 존재로부터 부호를 받기 위한 절심함의 표출인데, 패전 후 일본은 그런 미숙함의 표출을 통해 절대 강자인 승전국 미국 앞에서 자진해 약자로 포지셔닝을 했다는 것. 역사적 맥락의 해석으로는 흥미로운데, 과연 정말로 일본인 개개인들이 그런 이유로 귀여움에 빠져들었을까 하는 의심은 든다.<br><br><br><br> 귀여움을 여성주의(3장)나 퀴어적 관점(5장)과 연결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다른 글들은 조금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특유의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앞서서 주변의 주제들을 줄 세우는 모습. 귀여움을 장애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6장은 내용과는 별개로 귀여움과의 연관성이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br>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귀여워하는 동물이 있다. 바로 고양이다. 하루에도 시시때때로 추천되는 짧은 고양이 영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시간을 써버릴 때가 많다. 이건 무해한 취미가 아닌가 하며 애써 변명하지만, 아무튼 내 시간을 잡아먹는 건 사실이다.(또 각종 고양이 굿즈에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br>우리가 무엇인가를 귀여워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다. 이런 게 인문학의 매력.]]></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898/2/cover150/k5920336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898022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amp;quot; 읽기</category><title> 전통이 문제일까, 소통이 문제일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7166</link><pubDate>Sun, 06 Sep 2026 07: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71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4971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교회는 왜 들어오면 숨이 막히면서도,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질까요? 『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 나가면 그립다』의 저자 이재면 목사와 함께 전통교회가 지닌 매력과 한계,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과 바꾸어야 할 관습에 관해 이야기합니다.​이번 1부에서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해 예배의 본질과 형식, 청년 세대와 장년 세대의 간극, 새가족에게 지나치게 서두르는 교회문화 등을 살펴봅니다.(1~4장) 전통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앙의 모습을 존중하면서 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대화입니다.​여러분의 교회에서 꼭 지켜야 할 전통과 이제는 바꾸어야 할 관습은 무엇인가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해 주세요.<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죽음을 위한 노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5114</link><pubDate>Sat, 05 Sep 2026 0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511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633726&TPaperId=174951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63/12/coveroff/k57263372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일본의 임종기 의료 전문가 나가오 가즈히로는, 사람들이 맛집은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정작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선 무작정 의사에게 맡겨버린다고 꼬집었다. 정말 그렇다. 죽음을 위해 한 끼 식사 만큼의 노력도 안 하다니 한심하지 않은가?<br>-&nbsp;김이경, 『애도의 문장들』 중에서<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63/12/cover150/k57263372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63122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달에 만난 책들</category><title>8월에 읽은 책 11권｜신앙·고전·역사·시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2213</link><pubDate>Thu, 03 Sep 2026 19: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22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97047&TPaperId=17492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6/9/coveroff/895379704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492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off/k562738380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880064&TPaperId=17492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49/94/coveroff/89398800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9364&TPaperId=17492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6/93/coveroff/89012993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039117&TPaperId=174922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92/79/coveroff/k262039117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221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8월에는 신앙과 교회, 교육, 동양고전, 로마사, 국제정치와 성경의 역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 11권을 읽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붙들어야 할 진리, 전통교회가 바꾸어야 할 형식, 질문을 되찾아야 할 교육, 로마제국의 쇠퇴와 미중 경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함께 소개합니다.<br><br><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7/cover150/k932130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9579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낯선 헬라어 구문 속, 예수는 누구인가 - [에고 에이미의 은혜 - 내 존재와 삶을 채우시는 하나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0557</link><pubDate>Thu, 03 Sep 2026 00: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905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96946&TPaperId=174905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2/9/coveroff/89537969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96946&TPaperId=174905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에고 에이미의 은혜 - 내 존재와 삶을 채우시는 하나님</a><br/>박순용 지음 / 아가페출판사 / 2025년 10월<br/></td></tr></table><br/>책 제목이 조금 생소할 수 있다. 특히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헬라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더욱 그럴 터. 책 제목에 쓸 정도면 이 책의 내용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이 꽤 중요하게 다뤄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란, 영어의 I am과 비슷한 용법이다. “에이미”는 영어 be동사와 유사한 에이미동사의 1인칭 단수형인데, 영어로도 어떤 문장에서 I am 이라고만 끝마치면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헬라어에서도 마찬가지다.<br>저자는(그리고 여러 학자들은) 이런 조금은 어색한 구문에서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찾아낸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계시하셨던 “여호와”(저자는 또 여기에서 히브리어 본래 발음에 더 가까운 건 ‘야웨’라고 쓰는데, 애초에 이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모른다는 상황에서 야웨가 더 가까운 발음이라는 것 또한 추측일 뿐이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기에 기억과 전승을 통해서 단어를 발음하는데, 일부에서는 ‘야웨’의 모음은 ‘그 이름’이라는 뜻의 “하 쉠”이라는 단어에서 모음을 가져다가 붙였을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라는 이름과 같은 의미라는 것. “여호와”라는 단어의 의미로 추정되는 것 중 하나가 “나는 나다”, 혹은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라는 데에서 의미적 유사성이 있다는 말.<br><br><br><br>그렇게 저자는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신성 주장을 읽어낸다. 다만 이 주장에는 한 가지 반론도 존재하는데, 요한복음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을 말한 예수님 이외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자, 그가 나서서 말한다. “에고 에이미”. 번역하면 “나야(나 맞아)”다.(요 9:9) 그렇다면 이 표현이 예수님만 사용하신 독특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조금 헐거워진다.<br>물론 그것(요 9:9)과는 상관없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님의 신적 주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도 크게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어쨌든 요한복음에서는 이 구분이 반복되면서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양한 모습으로 계시하셨으니까. 거기에 집중하면 된다. <br>다만 책에서 빠진 설명이 하나가 있는데,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이 갖는 또 한 가지의 독특한 점은 헬라어 동사에는 애초에 성과 수가 다 포함되어 있어서, 굳이 주어(이 경우에는 “에고”)를 붙이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에이미”라고만 써도 “나는 ~이다”라는 의미가 다 있다. 여기에 굳이 1인칭 주격 대명사인 “에고”를 붙이면 이중으로 “나”를 강조하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조금 의역하면 “그게 바로 나다” 정도일까.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그렇게 시작한다.<br><br><br><br>책은 요한복음의 “나는 ~이다”라는 아홉 개의 본문과 저자가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여기는 또 한 가지 주제를 각 장에 펼쳐서 설명한다. 리뷰 초반에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에 트집 아닌 트집을 잡았지만, 책 내용 자체는 표준적이고 안정적인 해석과 적용이 담긴 설교문이라는 느낌이다. <br>사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 ~이니”라는 연속되는 구절들은 내용도 아름답고, 깊은 교리적 진리를 담고 있어 사랑받는 본문들이다. 이런 긴 강화는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한복음만의 독특한 특징적 본문이다. 책은 이 본문들을 너무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한다. 누구에게 권해 줘도 나쁘지 않을 만한 책일 것 같다는 느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2/9/cover150/89537969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92090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기독교 신앙과 과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3988</link><pubDate>Mon, 31 Aug 2026 20: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398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602966&TPaperId=174839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50/75/coveroff/896360296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기독교 신앙은 과학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 아니라 훨씬 더 적극적이며 우호적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창조 신앙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우리가 (모든 면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주신 지적, 이성적 능력으로 창조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을 포함한 모든 지적 노력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의 한 면을 드러내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br>-&nbsp;강영안, 우종학, 『대화』 중에서<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50/75/cover150/89636029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50758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사람을 낚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 [사람 낚는 어부의 기술 - 토머스 보스턴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을 얻는 목회와 전도의 원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2414</link><pubDate>Mon, 31 Aug 2026 0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24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97047&TPaperId=174824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6/9/coveroff/89537970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97047&TPaperId=174824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람 낚는 어부의 기술 - 토머스 보스턴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을 얻는 목회와 전도의 원리</a><br/>토머스 보스턴 지음, 아가페 편집부 옮김, 이서용 감수 / 아가페출판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이 청교도의 향기가 짙게 묻어 있는 작은 책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 문체부터 내용 전개 방식까지, 마치 오래된 오크통 속에서 숙성된 황금빛 액체처럼, 진한 맛이 배어 나온다.<br>저자가 이 책에서 살피는 성경구절은 딱 하나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에서 저자는 우리(특별히 목회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인 전반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가 그분을 따라가는 것은 의무이며, 그럴 때 우리는 사람을 낚는 사명과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며 이 모든 일은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고 말한다.<br>1부에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어떤 방식으로 그의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2부에서는 어떻게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지에 관해 길게 설명한다. 목회자의 부족함에도,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확신 어린 결론이다.<br><br><br><br>청교도 특유의 담담함이랄까, 우직함이 느껴진다. 부족하면 어떤가, 능력이 없으면 어떤가, 이 일을 맡겨주신 분이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해 낼 수 있다는 말이 현실을 모르는 사람의 글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시대를 살았던 청교도들은 온갖 박해와 차별과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켜왔던 이들이다. <br>사역적인 면에서도 청교도들이 그 시대의 인플루언서는 분명 아니었다. 주류는 국교회였고, 사실 사람들의 신앙의 열의도 그리 높지 않았던 시대였다. 책 속에서 이를 반영하는 구절이 나온다. “목이 터지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간절히 설교한다 해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거나 영혼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황이 이토록 악화되기 전에 하나님이 생을 은혜롭게 마치게 하시고 그분의 품으로 데려가신 선배 사역자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br>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성령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소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라는 권고는 저자 자신에게 하는 각오이기도 했던 것 같다. 소명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던 이들의 글은 언제나 울림이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6/9/cover150/89537970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6098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철학/종교</category><title>폭군은 왕이 아니다, 맹자의 급진적 정치철학 - [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9135</link><pubDate>Sat, 29 Aug 2026 18: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91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4791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off/k56273838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4791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a><br/>맹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01월<br/></td></tr></table><br/>이 달에는 동양 고전을 두 권 째 손에 든다. 월초에는 논어를, 월말에는 맹자를 읽게 된다. 공자와 맹자, 뭔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주로 짧은 경구들 속 공자는 뭔가 심오하면서도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아저씨 같은 면모도 가끔 보여주는 친근한 면이 있었다면, 맹자는 입만 열면 요순 시대를 말하면서도 종종 모순되는 행동(요순의, 또는 자기 자신의)을 변명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좀 보인다.<br>물론 책 전반에 걸쳐서 공자와 맹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던 한계가 짙게 드리워있다는 느낌도 준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이상을 국정 운영에 반영해 보고자했던 정치이론가였지만, 그들이 말하는 인, 군자 같은 사상은 춘추시대가 저물어가고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마당에 각국의 권력자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들이었다. <br>그런데 또 그렇다고 해서 맹자가 어디 산골에 틀어박혀 몇 안 되는 제자들하고만 지냈던 서생도 아니었으니, 난세일수록 인재는 더 필요한 법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맹자같은 사람들 주변에는 또 인재들이 모이는 법이라 수백 명의 종자들을 거느리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유세를 했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꽤 유명한 인플루언서였다.<br><br><br><br> 군자와, 인에 대한 강조는 공자와 비슷하지만, 요순, 또 우탕과 문무 등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지나친 숭배랄까, 윤색이랄까 그런 것도 좀 보인다. 어떻게든 그들을 좋은 사람으로 덧칠하려는 시도. 이쯤 되면 거의 신앙인데, 문제는 누가 공자와 맹자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었는가가 의외로 불분명하다는 점. 일종의 유학의 신화가 아닌가 싶다.<br>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역성혁명에 대한 옹호인데, 양혜왕 하편을 보면 은나라의 창업군주인 탕이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을 쫓아내고 왕이된 것을 가리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을 받고는, 걸은 인과 의를 해치는 인물이니 군주가 아닌 ‘한 사내’일 뿐이라는 논리로 이를 옹호한다. 왕이 왕 같지 않으면 내쫓아도 상관없다는, 꽤나 충격적인 가르침이다. 유학은 결코 점잖은 체 하는 샌님들의 학문이 아니었다.<br>흔히 말하는 측은지심도 여기 맹자에 나온다. 맹자는 여기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과 사양할 줄 아는 것,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을 더해 사람의 사지처럼 반드시 가져야 하는 무엇이라고 본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신의 그릇이 안 되는데도 사양할 줄을 알지 못하는지, 그저 자리만 준다고 하면 덥석 받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예나 오늘이나 인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br>맹자는 신하된 가장 중요한 도리는, 단지 군주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간하는 것, 그리고 도무지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물러서는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트럼프니, 윤석렬이니 하는 무능하고 악한 지도자들 옆에 붙어서, 그저 자신은 시키는 것을 했을 뿐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변명이나 일삼는 한심한 무리들은 맹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신하 실격이다.<br>이 외에도 군자는 동물이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서 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구절에서는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도 엿보인다. 다만 채식주의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고기는 공자님도 사랑했고, 맹자 역시 생선도 곰발바닥(!)도 좋아하는 요리 재료라고 말한다. <br><br><br><br>“맹자” 역시 다양한 번역과 버전으로 나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경우 여러 중요한 주석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현대어로 번역을 했지만, 워낙 오래 전 글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해석이 붙어 있었더라면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br>사실 맹자의 시대에 자신의 뜻을 온전히 다 펼쳐본 인물이 누가 있을까 싶다. 시대적 한계와 상황의 제한 속에서 작은 뜻을 실현해 보기도 하고, 실패도 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터. 그래도 꽤 높은 관직도 경험해 보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명의 위협을 겪었던 공자와는 달리, 나름 큰 위기 없이 평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까지 남겼다면, 정치철학자로서의 삶은 꽤 괜찮았던 게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150/k56273838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67851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무슬림 허깨비 때리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3302</link><pubDate>Wed, 26 Aug 2026 17: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33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42037&TPaperId=174733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24/70/coveroff/899414203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무슬림 허깨비’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위협, 즉 사회적 자원과 공적 기구들이 소수의 거대 기업체와 비즈니스 엘리트들의 손에 무더기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을 호도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자유화와 민영화의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는 유럽 연합에서,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테러, 이민, 난민을 둘러싼 불안감은 그보다 훨씬 다급한 (그러나 덜 이색적인) 쟁점들을 간과하게 만드는 유용한 수단일 뿐이다.<br>- 이언 아몬드, 『십자가 초승달 동맹』 중에서<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24/70/cover150/899414203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24707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