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노란가방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을 읽는 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31 Aug 2026 10:30:31 +0900</lastBuildDate><image><title>노란가방</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9578114217064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노란가방</description></image><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사람을 낚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 [사람 낚는 어부의 기술 - 토머스 보스턴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을 얻는 목회와 전도의 원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2414</link><pubDate>Mon, 31 Aug 2026 0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24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97047&TPaperId=174824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6/9/coveroff/89537970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97047&TPaperId=174824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람 낚는 어부의 기술 - 토머스 보스턴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을 얻는 목회와 전도의 원리</a><br/>토머스 보스턴 지음, 아가페 편집부 옮김, 이서용 감수 / 아가페출판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이 청교도의 향기가 짙게 묻어 있는 작은 책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 문체부터 내용 전개 방식까지, 마치 오래된 오크통 속에서 숙성된 황금빛 액체처럼, 진한 맛이 배어 나온다.<br>저자가 이 책에서 살피는 성경구절은 딱 하나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에서 저자는 우리(특별히 목회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인 전반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가 그분을 따라가는 것은 의무이며, 그럴 때 우리는 사람을 낚는 사명과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며 이 모든 일은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고 말한다.<br>1부에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어떤 방식으로 그의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2부에서는 어떻게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지에 관해 길게 설명한다. 목회자의 부족함에도,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확신 어린 결론이다.<br><br><br><br>청교도 특유의 담담함이랄까, 우직함이 느껴진다. 부족하면 어떤가, 능력이 없으면 어떤가, 이 일을 맡겨주신 분이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해 낼 수 있다는 말이 현실을 모르는 사람의 글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시대를 살았던 청교도들은 온갖 박해와 차별과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켜왔던 이들이다. <br>사역적인 면에서도 청교도들이 그 시대의 인플루언서는 분명 아니었다. 주류는 국교회였고, 사실 사람들의 신앙의 열의도 그리 높지 않았던 시대였다. 책 속에서 이를 반영하는 구절이 나온다. “목이 터지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간절히 설교한다 해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거나 영혼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황이 이토록 악화되기 전에 하나님이 생을 은혜롭게 마치게 하시고 그분의 품으로 데려가신 선배 사역자들은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br>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성령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소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라는 권고는 저자 자신에게 하는 각오이기도 했던 것 같다. 소명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던 이들의 글은 언제나 울림이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6/9/cover150/89537970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6098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동정심을 무기로 한 통제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1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0894</link><pubDate>Sun, 30 Aug 2026 1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8089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4808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사랑과 연민은 아름다운 감정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불행과 상처를 이용해 상대방의 동정심을 끌어내고, 그것으로 사람을 붙잡으려 한다면 연민은 사랑이 아니라 통제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C. 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13장에는 원망에 사로잡혀 점점 작아지는 남편과, 풀 한 포기 아래의 작은 틈으로 드러나는 지옥이 등장합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자기중심성이 어떻게 존재를 좁게 만드는지, 그리고 왜 지옥이 천국의 기쁨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지를 함께 살펴봅니다.<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철학/종교</category><title>폭군은 왕이 아니다, 맹자의 급진적 정치철학 - [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9135</link><pubDate>Sat, 29 Aug 2026 18: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91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4791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off/k56273838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4791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a><br/>맹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01월<br/></td></tr></table><br/>이 달에는 동양 고전을 두 권 째 손에 든다. 월초에는 논어를, 월말에는 맹자를 읽게 된다. 공자와 맹자, 뭔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주로 짧은 경구들 속 공자는 뭔가 심오하면서도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아저씨 같은 면모도 가끔 보여주는 친근한 면이 있었다면, 맹자는 입만 열면 요순 시대를 말하면서도 종종 모순되는 행동(요순의, 또는 자기 자신의)을 변명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좀 보인다.<br>물론 책 전반에 걸쳐서 공자와 맹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던 한계가 짙게 드리워있다는 느낌도 준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이상을 국정 운영에 반영해 보고자했던 정치이론가였지만, 그들이 말하는 인, 군자 같은 사상은 춘추시대가 저물어가고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마당에 각국의 권력자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들이었다. <br>그런데 또 그렇다고 해서 맹자가 어디 산골에 틀어박혀 몇 안 되는 제자들하고만 지냈던 서생도 아니었으니, 난세일수록 인재는 더 필요한 법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맹자같은 사람들 주변에는 또 인재들이 모이는 법이라 수백 명의 종자들을 거느리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유세를 했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꽤 유명한 인플루언서였다.<br><br><br><br> 군자와, 인에 대한 강조는 공자와 비슷하지만, 요순, 또 우탕과 문무 등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에 대한 지나친 숭배랄까, 윤색이랄까 그런 것도 좀 보인다. 어떻게든 그들을 좋은 사람으로 덧칠하려는 시도. 이쯤 되면 거의 신앙인데, 문제는 누가 공자와 맹자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었는가가 의외로 불분명하다는 점. 일종의 유학의 신화가 아닌가 싶다.<br>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역성혁명에 대한 옹호인데, 양혜왕 하편을 보면 은나라의 창업군주인 탕이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을 쫓아내고 왕이된 것을 가리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을 받고는, 걸은 인과 의를 해치는 인물이니 군주가 아닌 ‘한 사내’일 뿐이라는 논리로 이를 옹호한다. 왕이 왕 같지 않으면 내쫓아도 상관없다는, 꽤나 충격적인 가르침이다. 유학은 결코 점잖은 체 하는 샌님들의 학문이 아니었다.<br>흔히 말하는 측은지심도 여기 맹자에 나온다. 맹자는 여기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과 사양할 줄 아는 것,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을 더해 사람의 사지처럼 반드시 가져야 하는 무엇이라고 본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신의 그릇이 안 되는데도 사양할 줄을 알지 못하는지, 그저 자리만 준다고 하면 덥석 받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예나 오늘이나 인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br>맹자는 신하된 가장 중요한 도리는, 단지 군주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간하는 것, 그리고 도무지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물러서는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트럼프니, 윤석렬이니 하는 무능하고 악한 지도자들 옆에 붙어서, 그저 자신은 시키는 것을 했을 뿐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변명이나 일삼는 한심한 무리들은 맹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신하 실격이다.<br>이 외에도 군자는 동물이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서 그 짐승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구절에서는 동물에 대한 측은지심도 엿보인다. 다만 채식주의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고기는 공자님도 사랑했고, 맹자 역시 생선도 곰발바닥(!)도 좋아하는 요리 재료라고 말한다. <br><br><br><br>“맹자” 역시 다양한 번역과 버전으로 나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경우 여러 중요한 주석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현대어로 번역을 했지만, 워낙 오래 전 글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해석이 붙어 있었더라면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br>사실 맹자의 시대에 자신의 뜻을 온전히 다 펼쳐본 인물이 누가 있을까 싶다. 시대적 한계와 상황의 제한 속에서 작은 뜻을 실현해 보기도 하고, 실패도 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터. 그래도 꽤 높은 관직도 경험해 보기도 하고, 개인적인 생명의 위협을 겪었던 공자와는 달리, 나름 큰 위기 없이 평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까지 남겼다면, 정치철학자로서의 삶은 꽤 괜찮았던 게 아닐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150/k56273838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67851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무슬림 허깨비 때리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3302</link><pubDate>Wed, 26 Aug 2026 17: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33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42037&TPaperId=174733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24/70/coveroff/899414203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무슬림 허깨비’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위협, 즉 사회적 자원과 공적 기구들이 소수의 거대 기업체와 비즈니스 엘리트들의 손에 무더기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을 호도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자유화와 민영화의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는 유럽 연합에서,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테러, 이민, 난민을 둘러싼 불안감은 그보다 훨씬 다급한 (그러나 덜 이색적인) 쟁점들을 간과하게 만드는 유용한 수단일 뿐이다.<br>- 이언 아몬드, 『십자가 초승달 동맹』 중에서<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24/70/cover150/899414203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24707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비평적 관점에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이스라엘의 기원 - [신의 설계자들 - 이스라엘 민족의 비밀스러운 흔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1278</link><pubDate>Tue, 25 Aug 2026 18: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712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880064&TPaperId=174712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49/94/coveroff/89398800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9880064&TPaperId=174712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의 설계자들 - 이스라엘 민족의 비밀스러운 흔적</a><br/>이스라엘 크놀 지음, 정예중 옮김 / PCKBOOKS / 2024년 04월<br/></td></tr></table><br/>구약성경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역사를 기록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 다층적인 배경을 가진 서로 다른 집단들의 결합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발견 성과와 성경 본문에 대한 비평적 연구에 독특한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 낸 민족 창시 신화다. <br>저자는 세 개의 집단을 이스라엘 민족 구성분자로 보는데, 첫 번째는 이집트 문헌에서 하비루(아비루)라고 불리던 떠돌이들이다. 저자는 이들이 BC 12세기 있었던 출애굽의 당사자들이었고, 가나안 산지에 정착하고 있던 초기 이스라엘 인들에게 뒤늦게 합류한 그룹이라고 말한다. 뒤늦게 합류했기에 따로 땅을 분배받지는 못했고 종교적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것. 출애굽의 기억은 이들을 통해 성경에 들어가게 되었다.<br>두 번째 그룹은 힉소스인들과 관계가 있다. 힉소스는 이집트 역사에서 두 번째 중간기(BC 19-16세기)의 주인공들로, 이집트 토착들을 지배했던 외래인들이다. 저자는 이들 힉소스 통치자들이 이집트를 지배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요셉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이집트 토착 왕조가 힉소스 통치자들을 몰아낼 즈음 이집트 땅을 빠져나온 가나안인들이 ‘초기 이스라엘인’이라고 비정한다.<br>세 번째 그룹은 창세기에 ‘족장들’로 그려진 집단이다. 신명기 26장 5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이 “방랑하는 아람 사람”이었다고 말하는데, 저자는 야곱으로 대표되는 초기 이스라엘인들이 전쟁 난민 신분으로 갈대아 우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왔다고 추정한다.(BC 13세기) 이들은 그 지역 고유의 제의의식을 가지고 내려왔고, 후에 합류한 하비루의 유일신 사상과 결합되어 이스라엘의 고유한 종교 전통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br><br><br><br> 기존의 현대주의자들이 성경 속 이야기를 그저 신화로 치부하며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가공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는 것과 달리, 저자는 그 이야기 속에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기억은 있는 그대로 정확히 기록으로 남은 것이 아니고, 일종의 편집을 거쳤다고 보기에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br>성경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퍼즐과 같은 역사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정도의 ‘학문적인’ 접근이라면 다분히 반종교적 성향이 짙은 학계에서도 의외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br>다만 이른바 비평적 접근이라는 것이 다분히 해석의 문제인 경우가 많아서, 같은 내용을 두고서도 학자들 사이에도 일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점, 고고학적 증거 역시 자칫 어떤 것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없는 것이라는 식의 ‘침묵의 증거’ 식으로 오용될 수도 있고, 책에도 언급되는 것처럼(62) 같은 증거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는 점 등은 이 책의 설명이 하나의 가설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기억해야 할 듯.<br>저자는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복층적 구성 가설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신학적 진화 과정에 대한 가설까지 제시한다. 사실 이 부분은 특별히 새로운 건 아니고, 오랫동안 비교종교학 등에서 주장해왔던 내용을 조금 색다르게 정리했다는 느낌.<br><br><br><br> 저자의 재구성이 퍼즐을 맞추는 듯한 지적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한된 고고학적 자료와 논쟁적인 본문 해석 위에 세워진 하나의 가설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이스라엘의 기원과 성경의 형성 과정을 밝혀 주는 최종적인 해답이라기보다,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 온 성경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역사성과 신학적 의미를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도전적인 책으로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49/94/cover150/89398800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49944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굳어진 신앙에 던지는 믿음의 도전 - [숨겨진 모험 - 우리가 찾아내야 할 믿음의 열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8000</link><pubDate>Sun, 23 Aug 2026 2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80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039117&TPaperId=174680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92/79/coveroff/k2620391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039117&TPaperId=174680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숨겨진 모험 - 우리가 찾아내야 할 믿음의 열쇠</a><br/>팀 한셀 지음, 한원선 옮김 / 아르카 / 2025년 06월<br/></td></tr></table><br/>모태신앙은 아니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지 30여 년이 되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하나하나가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태생이 내성적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기에(요새는 극 I형이라고 표현하더라), 다른 사람 앞에 서서 뭔가를 하는 걸 전혀 내켜 하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것부터가 놀라운 변화긴 하다.<br>신앙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어느 순간 한 번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아마도 평생 동안 우리를 지속적으로 바꾼다. 그게 신앙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 역사를 봐도 핵심적인 진리체계는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믿어오는 형식이나, 그 믿음의 실천 양식에는 끊임없는 변화가 있었다. 2세기의 기독교인들은 21세기의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꽤 신기하게 바라볼 지도 모른다.<br>그런데, 막상 실제로 신앙을 갖고 살다보면 오히려 점점 굳어지는 경우도 있다. 생각이 굳고, 행동이 굳고, 마치 과거의 어느 순간 더 이상의 변화나 발전은 중단된 것처럼,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신앙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너무 일찍(신앙의 변화는 평생을 두고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br><br><br><br>이 책은, 우리의 신앙이 기본적으로 모험적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저자는 “교회 의자가 너무나 편안해졌고 진정한 모험이 사라졌기에, 우리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의 나이와 지위가 무엇이든 간에) 언제나 모험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아브라함은 거의 100세에 모든 것을 건 모험 길에 나섰다)<br>책의 1부에서는 이 모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반복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측면에서 강조를 한 뒤, 2부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신앙적 모험의 삶을 살 수 있을 지에 관한 실천적인 제안들을 제시한다.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우리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단계적인 지침이 도움이 된다.<br>3부는 조금 전체 맥락과 떨어져 있는 느낌이기도 한데, 이른바 “섬김의 리더십”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이를 체득할 수 있는가에 관한 설명이다. 굳이 이어본다면, 앞에서 말한 모험적 신앙을 되찾았을 때 자칫 우리의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조언일 지도 모르겠다.<br><br><br><br>오랜만에 강한 도전을 받고 조금은 두근거리기도 했다. 이제는 됐다고,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접은 채로 지루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니엘의 믿음이 그를 사자 굴로 이끌었음을 모르는 우리는, 날마다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그저 걱정스럽게 바라볼 뿐, 그 안에서 새로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한다.<br>물론 믿음의 모험은 언제나 드라마틱한 상황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서 늘 하던 일상을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믿음이 모험임을 온 몸으로 깨닫고 그 모험에 뛰어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치 삶은 계란과 날계란이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점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똑같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무엇인가에 부딪혀 깨지게 되는 날 비로소 그 안에 얼마나 다른 것들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br>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저자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등산 도중 추락해 몸의 일부가 마비된 채로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에 대한 영감을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던 대단한 인물이다. 편한 신앙생활에 젖어서 도전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해 줄만한 책.]]></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92/79/cover150/k2620391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92794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종교를 지우면 정말 중립적인 사회가 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7316</link><pubDate>Sun, 23 Aug 2026 1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731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4673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정교분리 국가에서는 기독교인이 자신의 신앙에 근거한 정치적 의견을 말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오스 기니스의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5장을 통해, 모든 종교적 표현을 공적인 삶에서 제거하려는 ‘벌거벗은 공적 광장’이 왜 진정한 중립이 될 수 없는지 살펴봅니다.​국가는 특정 종교나 세계관을 강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시민에게 무종교인처럼 말하라고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신앙을 권력의 깃발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면, 한국 교회는 공적 광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설득해야 할까요?​<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서두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7044</link><pubDate>Sun, 23 Aug 2026 15: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70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6611&TPaperId=174670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458/90/coveroff/893281661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br>- 유진 피터슨,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중에서<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458/90/cover150/89328166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458908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공학자 중심의 중국, 법률가 중심의 미국 - [브레이크넥 -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4033</link><pubDate>Fri, 21 Aug 2026 17: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640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9364&TPaperId=174640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6/93/coveroff/89012993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9364&TPaperId=174640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레이크넥 -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a><br/>댄 왕 지음, 우진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한 때는 군사력을 두고 대립을 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빠른 발전이었다. 미국이 두 차레의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거두었을 무렵, 중국은 국공 내전과 항일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었다. 게다가 최종적인 승리자였던 마오쩌둥의 잇따른 자살골로 중국 경제는 그대로 추락하는 듯했다.<br>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어느덧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빠른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찬탄하지만, 중국의 발전 또한 그 못지않은 놀라운 속도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 중 중국의 지도층이 ‘공학자들’로 구성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br>흥미롭게도 중국의 지도부는 거의 전원이 공학자들이다. 중국 경제 발전의 기점이 되었던 덩샤오핑은 8, 90년대 공학자와 기술자들을 정부의 최고위층에 대거 입성시켰다. 그 결과 2002년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 의결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일 정도였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칭화대 공대를 졸업하고, 10년 간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다른 지도급 인물들도 다양한 기술대나 공대를 졸업하고 실제 공장 등의 현장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현 주석인 시진핑 역시 칭화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br><br><br><br><br> 국가 운영의 핵심에 위치한 사람들이 모두 공학자라는 것은 자연히 국가 운영에도 그에 따른 스타일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이른바 “개발 독재”에서 출발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이미 거의 증명된 사실이다. 중국의 공학 전공 지도자들은 마치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거침없이 설계하고, 건설한다. 그 결과가 미국의 2배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일본의 20배에 달하는 고속철도, 전 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의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 그리고 전 세계 제품의 거의 절반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력이다.<br>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합의 같은 것은 그리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팬데믹 사태 당시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었다. 심지어 한 도시(라고 하지만 우리 도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최소 천 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커다란 지역이다) 전체를 봉쇄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한 자녀 갖기 운동’이 있다.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강제 불임수술 같은 인권유린적인 조치까지 있었다. 이 정도의 대규모의 사회적 실험은 공학자 마인드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br>반면 미국은 법률가 중심의 국가가 되어버렸다.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이기도 한 만큼, 모든 것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업은 끊임없는 소송전으로 기약 없이 지체되고, 나중에는 아예 그런 사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 대규모 공장들도 사라져버렸고, 트럼프가 갖은 협박과 위협을 하며 동맹국들을 쥐어짜더라도,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br>저자는 오늘날 미국이 절차적 정당성애 매여서 진취적 기상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닌데, 미국 역시 공학의 전통과 유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도, 복잡한 지하철 노선과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 모두 미국에 있었다. 물론 이미 법조인들에게 지배되고 있는 미국 정계가 쉽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br><br><br><br> 저자는 미국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약점에 발목이 잡혔다고 말한다. 공학 중심의 나라는 통제와 간섭에 대한 집착으로 사회의 창의성을 억누를 수 있다. 체제를 비판하는 농담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훌륭한 문화적 결과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법률가 중심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과정의 정당성에 집착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 남발하는 지리한 정치적 갈등이 사회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경우가 많다.<br>우리나라는 어느 위치에 서 있을까?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만 보면, 철학(김영삼), 경영학(김대중, 이명박), 법학(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등 인문계열, 특히 그 중에서도 법학이 주가 되고 있고, 전자공학(박근혜)을 전공한 경우가 한 명 있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법학 전공자나 법조인 출신이 66명으로 20%가 약간 넘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미국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br>물론 어느 쪽 하나가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사회적 통합은 함께 가야 할 목표들이다. 문제는 국가운영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이들이 자기 관점에서 벗어나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 일 텐데, 이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진보계열에서는 ‘당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고, 보수계열에서는 고인 물에서 나는 썩은 내를 좀처럼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br>세계 경제가 출렁이는 시대다. 단순이 이념과 관성에 충실하게 살다간 우리부터 얻어맞고 몰락할 지도 모른다.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인 상황과 단기적인 대처 사이에서 현명한 결론을 찾아갈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에겐 있을까. 이건 단지 대통령 한 명을 잘 뽑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쉽진 않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6/93/cover150/89012993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06931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가장 완전한 단백질 공급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56087</link><pubDate>Mon, 17 Aug 2026 18: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5608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054135&TPaperId=174560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56/92/coveroff/898405413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동물성 식품은 가장 완전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우리가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아미노산을 모두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110그램(181cal)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양을 다른 식품으로 얻으려면 강낭콩 340그램과 쌀 한 컵 분량의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총 칼로리는 638칼로리, 탄수화물은 122그램을 먹는 꼴이다.<br>- 다이애나 로저스, 롭 울프, 『신성한 소』 중에서<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56/92/cover150/89840541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56924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십계명을 처음 읽는 이에게 - [십계명 : 삶을 세우는 10가지 기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54941</link><pubDate>Mon, 17 Aug 2026 0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549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0805&TPaperId=174549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6/35/coveroff/k7521308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0805&TPaperId=174549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십계명 : 삶을 세우는 10가지 기준</a><br/>박준호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6년 06월<br/></td></tr></table><br/>십계명의 각 계명들을 한 장씩 다루는 짧은 책이다. 구성 상 아마도 저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했던 연속 설교문들을 엮은 게 아닌가 짐작된다.(각 계명의 적용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br>사실 내용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익히 들어왔던 설명들이고, 비유이고, 적용이다. 워낙 오래된 내용들이라, 달라진 시대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살짝 흠칫 하는 내용도 보인다. <br>대표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일부만 가지고서 전체를 논한다는 비유 같은 게 그 예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예화다. 천 몇 백 년도 더 전에는 시각장애인의 부족한 관찰력을 지적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이제 이런 비유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br>(아마도) 설교다 보니까 내용을 충분히 깊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은 된다. 하지만 이건 책이니까, 어느 정도 좀 더 깊은 조사와 고민들을 담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그런 깊이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 설교를 위한 쉬운 구성과 전개, 적용 등이 중심이다.<br><br>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이상하거나, 나쁘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십계명에 대해 처음 차근차근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권해 줄 수도 있을 듯하다. 내 경우에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을 너무 여러 권 봤다는 게 평가를 좀 박하게 내리는 요인이니, 확실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평가다. 하지만 세상엔 나 말고 사람도 많고, 그 가운데는 또 이 책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36/35/cover150/k7521308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36359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최근 느는 팔로워 중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52402</link><pubDate>Sat, 15 Aug 2026 1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52402</guid><description><![CDATA[<br><br>요새 페이스북 구름책방 페이지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을 새로 팔로우하는 분들 가운데 이른바 극우성향인가 싶은 분들이 좀 보인다.(최근에는 신천지 교주 옹호하는 분도 있더랬...;;;)​이제야 나의 보수성이 인정(?)받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건 사실. 역시나 최근 아바서원에서 나온 책(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으로 만든 영상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nbsp;​기독교를 공적 광장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태도와 기독교가 공적 광장을 지배하려는 태도 모두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책인데, 순서 상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영상이 먼저 나오다 보니 우리 편(?)이구나 싶으셨던 걸까.​뭐 일단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대놓고 욕만 하지 않으면 딱히 다른 조치를 하지는 않는다.(신천지 추종자는 과감히 차단) 정치적 견해다 달라도 대화와 토론은 가능해야 한다고 보긴 하는데 물론 이게 쉬울 리는 없다. 아무튼 욕 하기 전에는 오케이.​<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5/pimg_63922412988390215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5240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amp;quot; 읽기</category><title>예언자들은 현대 이스라엘의 행태를 지지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9002</link><pubDate>Thu, 13 Aug 2026 19: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90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635844&TPaperId=174490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off/k2526358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성경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약속합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현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고 정착촌을 확장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권리를 의미할까요?​개리 버지의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6장을 통해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에스겔과 말라기의 목소리를 살펴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땅을 독점하고 이웃의 집과 밭을 빼앗는 행위를 강하게 꾸짖었으며, 이방 거주민도 함께 기업을 얻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150/k252635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966306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열린 마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7980</link><pubDate>Thu, 13 Aug 2026 09: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798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45514&TPaperId=174479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6/75/coveroff/8932845514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학생들에게열린 마음을 품고 진리에 대해 나름대로 결정하라고아무리 열성적으로 격려한다 해도,수업 시간이 파리가 프랑스의 수도인지벨기에의 수도인지 물어 보는 교사를 향해,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자기는 그 문제에 대해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응답하면아무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br>- 레슬리 뉴비긴,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6/75/cover150/893284551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752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질문으로 교실을 깨운 10년의 여정 - [365일 교과 하브루타 - 질문 중심 수업으로 바꾼 지아쌤 10년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6467</link><pubDate>Wed, 12 Aug 2026 13: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64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498&TPaperId=174464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81/5/coveroff/k0221304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498&TPaperId=174464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365일 교과 하브루타 - 질문 중심 수업으로 바꾼 지아쌤 10년의 기록</a><br/>김지아 지음 / 비비투(VIVI2) / 2026년 07월<br/></td></tr></table><br/>하브루타란 고대 유대인들의 독특한 교육/학습 방식을 말한다. 토라를 공부할 때 교실에 앉은 학습자에게 교수자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습자가 짝을 이루어 서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해당 내용을 더 깊게 이해하고, 나아가 종종 굉장히 창의적인 방식의 해석까지 낳는 교육방식이다. 탈무드니 학가다니 하는 유대 고전들은 은근 이런 형태의 교육방식을 권장하는 구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br>애초에 랍비들의 가르침이란, 어느 하나의 전통을 오랫동안 물고빠는 식이 아니라, 수많은 랍비들이 앞선 의견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고 하는 거대한 해석사적 전통의 모음이다. 그래서 랍비들 사이의 의견도 꽤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기독교 내 정통주의자들처럼, 우리 선생님의 의견을 절대로 바꾸면 안 된다는 식의 태도와는 큰 차이가 있기도 하다.<br><br><br><br>그런데 요새는 이게 질문, 창의력 같은 키워드가 주목받으면서 종교적 맥락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학습전술로도 수용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졌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 다양한 교육학자들에게서 나왔던 문제제기다. 『페다고지』로 유명한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책들을 읽으면서도 자주 들었던 질문이고, 미국에서는 마일스 호튼 같은 인물이 비슷한 질문을 제기하고, 나름의 교육윤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확실히 질문은 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br>이 책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 하브루타 방식의 교육활동을 진행해 온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눈 책이다. 경험 정리 중심이다 보니,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하브루타의 정의와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본문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감을 잡게 되겠지만. 아마도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대화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건 설명이 아니라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서두에 간략하게 설명을 넣어두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br>책은 이론보다는 실제에 집중한다. 어떻게 이런 방식의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실제로 진행했을 때 아이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예상되는 어려움과 그 대처법이라든가, 지역 교사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이 방식을 연구하는 지 등등. 우선은 초등교사인 독자에게 관심이 갈 만한 내용들이 주가 되지만, 그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도 분명 있을 것이다.<br><br><br><br> 개인적으로는 비단 교실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질문이 좀 더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질문이 없는 교회는 딱딱하게 굳은 돌처럼 돼서 언젠가 깨지고 말 테니까. 적어도 교실에서는 (물론 일부라고 하겠지만) 나름의 고민과 실험이 진작 시작되었다. 교회도 좀 더 분발하자.<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81/5/cover150/k0221304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81055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전통을 존중하되 새롭게 될 순 없을까 - [전통교회, 들어오면 숨 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 복음으로 다시 정의하는 전통 교회 용어 사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2570</link><pubDate>Mon, 10 Aug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25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4425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4425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통교회, 들어오면 숨 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 복음으로 다시 정의하는 전통 교회 용어 사전</a><br/>이재면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6년 07월<br/></td></tr></table><br/>제목이 좀 길다. 하지만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매우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저자는 전통교회의 답답함에 관해 겪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온라인에 나누었던 것 같고, 그걸 책으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각 장마다 말미에 해당 글에 대한 ‘댓글’들 일부가 발췌되어 실려 있기도 하다.<br>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예배 순서, 청년부, 새신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 봉사에 대한 압박, 교제라는 이름의 부담(누군가는 준비하고 치우고 해야 하니까), 새벽기도의 압박, 수련회을 둘러싼 고생 등이 2부에, 직분과 목회자의 복장, 설교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사명이라는 이름의 압박이 3부에 실려 있다. 와우, 거의 뷔페상처럼 나올 만한 것들은 다 챙겼다.<br><br><br><br> 기본적인 내용은 이런 주제들에 대해 전통적인 교회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달라진 상황에 맞게 변화의 가능성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저자가 언급한 주제들은 사실 ‘진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담는 형식에 가까운 것들이니까. 상황이 달라진다면 내용을 담는 그릇도 바꿀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br>특히 저자는 예배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하는데, 이 부분은 평소 나 역시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일예배 뿐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에 모이는 집회도 예배라고 불리고, 새벽마다 또 ‘새벽예배’를 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에는 동시에 저녁예배도 진행하고, 365일 쉬지 않고 계속 예배를 이어간다는 걸 메인으로 자랑하는 선교단체도 있는 것으로 안다. 어디 그뿐인가, 이사예배, 개업예배, 장례예배, 신학교에 다닐 때는 무슨 교수 출판감사예배, 은퇴감사예배, 등등 온갖 사사로운 예배도 넘쳐나는 걸 봤다. 그냥 ~~식/예식이라고 부르고 기념하며 감사하면 될 일을 굳이 ‘예배’자를 갖다 붙인다. <br>그러니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라는 말을, 수요예배 없애면 큰일 나는 이유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것이다.(얼마 전 내 유튜브 채널에 실제로 달린 댓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배’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앞에서 나왔을 때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취해야 하는/취하게 되는 자기를 낮춤, 상대를 인정하고 경배하는 태도, 또는 상태에 관한 신학적 설명이다. 수요예배, 주일예배 할 때 붙이는 의식이름이 아니라.<br>이른바 새벽예배는 성경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새벽에 기도했다는 몇몇 구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다가 20세기 조선의 신자들만 알았다는 의미가 된다), 20세기 초반 조선의 농경사회의 시간 단위에 맞춘 의식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의식이라도 우리의 신앙에 유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바뀐 상황으로 이제 사람을 갈아넣어야 유지되는 수준인데도 계속 고집한다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던 바리새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br><br><br><br> 저자는 교회가 “‘새로운 시대의 교회’보다는 ‘과거 유지형 교회’가 되어” 간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든 조직이 날마다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걸 시도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의외로 ‘안정감’이라는 요소는 조직을 유지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br>C. S. 루이스는 어떤 예배 형식이라도 좋으니, 제발 자주 형식을 바꾸거나 변화를 꾀하지는 말아 달라고 쓴다. 익숙한 형식은 “훈련된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바뀌면 그런 훈련을 할 수가 없다. 사실 훈련이라는 것이 같은 작업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몸에 익히는 것이니까. 신앙은 ‘몸으로’ 배워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br>다만 이런 안정성/보수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자 되심이 아니라, 내가 해 온 신앙 양식의 유일한 기준 됨을 고집하는 데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일탈을 겪게 된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과 완전히 겹쳐진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 교단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만, 각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원만한 조율과 합의로 얼마든지 수정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교회에게 주신 자유다.<br>물론 이런 합의가 쉽지는 않다. 책에도 저자가 교인들과 부딪히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고민이다. 목회자의 생각에 교인들의 습관을 바꿔 맞추는 게 최선일까, 아니면 그 공동체는 또 공동체대로 익숙한 방식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도 자유의 일환은 아닐까.<br><br> 전반적으로 쉽게, 그리고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잘 쓴 글이다. 여기 실린 내용들이 딱히 새롭게 나온 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조금은 회의적인 예상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긴 하지만, 사실 교회는 지난 2천 년 동안 이미 쉴 새 없이 변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예배의 양식과 신앙생활의 모습도 100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었을 것이고, 1세기 기독교인들에게도 굉장히 생소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단순히 옛 것을 반복하기만 하지 말고, 그 뜻을 한 번 곰곰이 새기며 함께 대화를 해 보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기독교를 지켜주겠다”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282</link><pubDate>Sun, 09 Aug 2026 1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28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4412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기독교가 정치권력과 손잡으면 기독교적 가치가 더 잘 지켜질까요?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4장을 바탕으로, 특정 종교가 공적 광장의 중심을 차지하는 ‘신성한 공적 광장’이 왜 해결책이 될 수 없는지 살펴봅니다.​오늘날 정치적 논쟁은 설득과 대화보다 조롱과 비난, 피해자 의식과 진영 대결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과 동일시되면, 정치적으로는 승리하더라도 복음의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지켜주겠다”는 권력의 약속이 어떻게 교회를 이용하고 신앙을 정치화할 수 있는지, 미국의 문화전쟁과 독일 교회의 역사적 사례를 현재 한국 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풀어봅니다.​정치는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적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공적 광장에 참여하면서도 권력과 거리를 유지하고, 적대가 아닌 설득과 사랑으로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 봅니다.<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자동차를 타고 온 공자가 주는 교훈 - [공자의 말들 - 군자를 버린 논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024</link><pubDate>Sun, 09 Aug 2026 17: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0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938681&TPaperId=174410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2/48/coveroff/k1729386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938681&TPaperId=174410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자의 말들 - 군자를 버린 논어</a><br/>임자헌 지음 / 유유 / 2024년 02월<br/></td></tr></table><br/>몇 번인가 논어를 읽어본 기억이 있다. 물론 한자를 다 읽고 이해할 수는 없으니, 우리말로 해설된 책들이다. 전주에 여행을 간 김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 책도 그런 논어의 우리말 번역서다. 그런데 제목이 독특하다. “군자를 버린 논어”라니, 군자는 논어의 핵심 단어가 아닌가. 그걸 빼고 논어 읽기가 가능해?<br>언뜻 안티 논어, 혹은 논어 비틀기로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지만, 실은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다. 역자는 논어가 지나치게 어렵게만 번역되어 심각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탈피하고자, 현대어로 번역하는 재미있는 시도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대충 번역한 것은 아니고, 역자는 조선왕조실록 현대화 사업에 참여할 정도로 실력이 인정받은 인물.<br><br><br><br>책 전반에 걸쳐 현대적 번역이 눈에 띤다. 수레는 자동차로, ‘인(仁)’이라는 개념은 ‘사람다움’으로, 문제의 ‘군자’는 ‘지성인’ 등으로 번역된다. 말투도 ~니라 같은 예스러운 어미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요(대중 앞에서), 또는 예사 낮춤(제자들에게) 등으로 바뀌어 있다.<br>예를 들어 논어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인 이인편 8절은 “아침에 내가 참답게 살 길을 깨달았다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지 뭐.”라고 번역되어 있다. 정말 가까운 제자들과만 있을 때, 스스럼없이 풀어놓는 속마음이라는 느낌이다. <br>역자는 모든 항목은 아니지만 일부 항목들에는 역자가 나름의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라든지, 또른 단순히 자신의 감회 등을 적어놓았다. 대체로 읽을 만했는데, 일부 내용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상들이 가볍게 적혀 있다. 그런 건 일기장에 적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었지만. 대표적인 구절이 양화편의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들다”는 구절인데, 역자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이라는 일방적인 투정(?)을 적어놓고 넘어간다.<br><br><br><br>성경 또한 매우 자주 새로 번역되는 책 가운데 하나다. 요새 읽고 있는 번역은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인데, 성경 전체를 현대어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을 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딱 메시지 성경이 떠올랐다. 비슷한 취지니까.<br>리뷰를 쓰다가 “공자의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목차를 보니 일부 부록의 순서가 뒤에서 앞으로 옮겨진 것 같다. 논어를 케케묵은 옛날 성인들의 말씀으로 두고 멀리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좀 더 쉽고 가까이 두고 읽고 새겨보는 건 좋은 일인 듯하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언급하듯이, 사실 논어의 내용은 의외로 상식적인 내용들이 많다. 문제는 상식적인 교훈을 기적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세상이었을 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2/48/cover150/k1729386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322484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달에 만난 책들</category><title>진리에서 음모론까지, 7월에 읽은 책 15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117</link><pubDate>Fri, 07 Aug 2026 1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1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5989X&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5/92/coveroff/890415989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off/k41213728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2470&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56/20/coveroff/893281247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8873&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82/84/coveroff/89509788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601&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19/60/coveroff/k182130601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117'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참 더운 요즘입니다. 이럴 땐 밖에 나가지 말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책이나..... ​&nbsp;<br>지난 7월 한 달 동안 만났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br><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68/3/cover150/89880429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680353</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성경적으로 살아가는 법 - [불변하는 진리로 변하는 세상을 비추는 교회 - 격변의 시대를 살아내는 견고한 신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062</link><pubDate>Fri, 07 Aug 2026 1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407&TPaperId=17437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7/coveroff/k9321304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407&TPaperId=17437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변하는 진리로 변하는 세상을 비추는 교회 - 격변의 시대를 살아내는 견고한 신앙</a><br/>강희민 지음 / 다함(도서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수년 전 시작된 생성형 AI 모델의 업그레이드 전쟁은 이제 보통 사람들에게도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이 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시기를 지나며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던 기독교의 지배적 영향력은 근대로 들어서면서 강하게 부정되었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종교가 아닌 이성과 기술 중심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후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정치, 사회적인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br>이런 변화에 맞춰 교회도, 신학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방점은 달라지는 세상에 있었고, 세상의 방식으로 성경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러나 애초의 목표(세상 사람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독교를 재구축하자)와 달리 그 결과는 기독교의 붕괴였다. 그들이 재해석한 기독교는 오래된 (그래서 대부분은 왜 봐야 하는지 모르는) 신화와 역사적 유물, 또는 잘 해야 세련된 도덕철학에 불과했다.<br>주로 기술적 측면이 크게 강조되지만, 사실 최근의 AI혁명은 단순히 산업적 측면에서만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큰 흐름의 말단에 있으면서, 철학적, 윤리적 측면에서의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설교는 이런 변화를 마주하면서 어떻게 성경적 가치를 지킬 지를 고민한다.<br><br><br><br> 책의 머리말에는 저자가 AI 때문에 이 설교를 기획했다는 내용도 있고, 본문 안에서도 자주 AI가 언급되긴 한다. 그래서 그런가 추천사를 써 주신 분들도 하나같이 AI를 언급한다. 다만 본문에서 AI에 대한 설명이 생각만큼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 느낌이다. 해당 장에서 다루는 상황에 AI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어떤 변화/혹은 변질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그냥 느낌으로 파악하는 정도다.(설교라는 자리가 주는 한계가 있긴 할 것이다)<br>대신 저자는 ‘(AI가 일으키는?) 변화’ 쪽에 초점을 맞춰서, 성경의 변하지 않는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사실 ‘진리’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변하지 않음’이다. 진리는 정의상 일관된 것이고, 그래서 세상의 변화에 언제나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개인적으론 진리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오랜 세월을 지나고도 고고하게 서 있는 중세 교회의 첨탑처럼, 진리는 변화를 견뎌내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br>너무 빠른 변화는 우리를 흔들리게 만든다. 어제까지 믿고 있던 것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다 빨리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정체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을 갖게도 한다. 저자는 이런 의심과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제시한다.<br><br><br><br><br> 다만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흔들리지 않음에 집중하다 보니, 실제적인 적용 부분에서, 그래서 어떻게 하자라는 부분이 살짝 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말미에 실려 있는 두세 개의 장을 빼면, 대체로 비슷한 주제가 반복된다. 물론 이 부분은 매 주 한 편씩의 설교를 ‘듣는’ 상황과 이걸 하나로 묶어서 단번에 읽게 되는 책이라는 매체상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책으로 옮기면서 현장성(설교가 이루어진 교회의 실제 상황과 그에 필요한 조언 같은)의 일부는 편집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감안할 부분.<br>어떻게 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고 성경의 교훈을 따라 살 수 있을 지에 관해 건강한 교훈을 담은 설교집.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7/cover150/k932130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9579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내멋대로 영화평</category><title>[호프] 괴작인 걸까, 졸작인 걸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4858</link><pubDate>Wed, 05 Aug 2026 23: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4858</guid><description><![CDATA[<br><br>7, 80년대를 한 시골 어촌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출현했다. 가축이고 사람이고 닥치는 대로 죽이며 다니지만, 이 마을에 괴물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인근에 난 산불을 끄기 위해 대거 동원되어 나간 것. 결국 마을의 파출소정 범석(황정민)과 그를 따르는 순경 성애(정호연), 그리고 범석의 먼 조카 성기(조인성)와 그 친구들이 나설 수밖에...<br><br> 비주얼.<br>영상이 꽤 좋다. 50년 전 정말로 어딘가에 있었을 것 같은 가상의 항구 호포항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다 세트를 만들었다던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괴물을 쫓는 장면은 이제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스릴을 자아낸다. 확실히 기술력은 크게 뒤처지지 않게 된 건가 싶을 정도.<br>특히 영화 초반 범석을 따라서 괴물을 추적해 나가는 장면은 제법 오래 진행되었는데도 전혀 지루한 감이 없었다. 쉴 새 없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건 캐릭터 설정이 좀 과하다 싶긴 했지만, 뭔가 흑막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끝까지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려고 애썼던 서장의 모습이, 그 압도적인 상대에 비해 너무나도 약한 시골 경찰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br>추격전 중간에 갑자기 등장해서 유탄발사기까지 날리는 성애의 모습도 굉장한 여전사가 출현하는 건가 싶었다. 조금은 후줄근하면서도 나름 그 시대 상남자의 최신 유행(?)이었을 복장의 성기까지, 각 캐릭터의 비주얼도 당장에 무슨 게임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스타일리쉬하다. 심지어 괴물의 정체가 밝혀지고, 마지막의 그 무지막지한 함선까지도, 사실 영상의 볼거리 측면에서는 근래 본 한국 영화 중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br><br><br><br> 장르가?<br>극의 전반부는 압도적 힘을 지닌 괴물을 추격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막상 괴물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이제는 도망치기 바쁜 탈출기로 이야기가 반전된다. 기본적으로는 흥미로운 전환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은 쉴 새 없이 욕을 내뱉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괴물’들을 마주한 인간들의 긴장감을 보여준다.<br>그런데 이 긴장을 어떻게든 조금은 풀어주어야겠다는 압박감(?)이 강했던 건지, 감독은 5분에 한 번씩은 관객을 웃기려고 애쓴다. 보건소장으로 나온 배우 황석정은 아예 개그캐릭터로 넣은 듯한데, 그 압도적이고 특이한 괴물의 사체를 보고도 제대로 놀라거나 최소한의 과학적 추론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썰고, 이상하네 하고 사라진다. 아무리 시대 배경이 7, 80년대라고 해도 이 정도 반응이 일반적이었을까?<br>여기에 배우들이 벌이는 티키타카는 대체로 말장난, 슬랩스틱 코미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걸로 시간을 소비할 때마다 지루했다. 마치 영화 “외계+인”을 보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지 않았던가. 같은 차원에서 영화 종반부의 승용차 추격(?) 아니 도주신은 그냥 영화가 개그물로 전락하는 슬픈 시간들이었다.<br><br><br><br>스토리는...<br>영화 속 ‘괴물’의 정체가 외계인임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급격히 흘러간다. 이제까지는 그저 괴물을 쫓는 추격적인 듯했지만, 갑자기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에게도 뭔가가 있다는 식으로 흘러가기 때문.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외계인들의 ‘사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후속편을 예정하지 않았다면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밖에. 그리고 후속편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전편을 마무리하는 게 맞나 싶긴 하다.<br>이게 SF라면 그에 걸맞은 S, 즉 Science가 필요하다. 뭐 70년대 우리나라의 무기체계로 외계인과 맞설 수 있긴 할까 싶은 생각은 별개로 하더라도, 우주선까지, 그것도 결말부에 나오는 그렇게 거대한 함선까지 만들어 타고 다닐 수 있는 외계인이, 정작 지구에 와서는 압도적인 피지컬만 보여준다는 부분이 꽤나 아쉽다. 그 흔한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달리고, 물어뜯고, 부딪혀 파괴하는 게 전부인 건가.<br>이야기가 너무 허접하다. 너무나 잘 만든 비주얼적 부분 때문에 이 부분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뭔가 복잡하게 만들어야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애초에 이건 오락영화에 가깝지 않던가. 그렇다면 좀 익숙하고 흔하더라도 이해가 되고, 설명이 되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갔어야 했다. 그렇다면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나, 잘만 하면 휴머니즘을 자극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평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괴작이라고 해야 할지, 졸작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br><br><br><br> 사실 난 신파도 그리 까다롭지 않은 쪽이다. 평론가들이야 그 진부함을, 게으름을 운운할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보통의 관객이야 울든 웃든 극에 충분히 빠졌나가 나오면 좋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초반에는 몰입하게 만들어 놓고서 점점 의아하게 하더니, 인상을 찌뿌린 채로 영화관을 나오게 하면 어쩌라는 건지...<br>사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상영시간이 꽤나 길다. 두 시간 반이면, 뭐가 됐든 이야기가 제대로 마무리 됐어야 했다. 중간 중간 의미 없는 반복이나 유머를 좀 빼고, 이야기가 개연성을 갖는 결말로 이어지도록 했더라면 어땠을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5/pimg_639215708875322442.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485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성공 신화 뒤 감춰진 계급사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2599</link><pubDate>Tue, 04 Aug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259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690766&TPaperId=174325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48/82/coveroff/899369076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기회균등과 자기계발을 내건 교육은 신분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좋은 장치다. 심각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해도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교육이 만들기 때문이다. 교육받을 수 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탓이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는 경제민주화만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전환도 이루지 못했다.<br>- 하승우, 『신분피라미드사회』 중에서<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48/82/cover150/89936907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48828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목회자가 성도들에게 건네는 인생의 지혜 - [그리스도인을 위한 인생독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0168</link><pubDate>Mon, 03 Aug 2026 1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01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5989X&TPaperId=174301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5/92/coveroff/89041598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5989X&TPaperId=174301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리스도인을 위한 인생독본</a><br/>이용범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2년 06월<br/></td></tr></table><br/>한 교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목회를 한 담임목사가 성도들에게 건네는 인생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수십 개의 조언들이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성실한 청지기가 되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라,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라, 마음의 정원을 가꾸라 라는 제목만 봐도 대략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다.<br>크게 복잡하거나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다양한 예화와 함께 간단한 교훈을 전달하는 식으로 각 장이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설교의 도입부에 넣을 만한 내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예화의 경우 저자 자신의 새로운 통찰이나 경험이 많이 실렸다기 보다는, 익숙한 느낌의 예화들이 많이 보인다. 다만 그 중 사실과 다른 내용(솔개가 나이를 먹으면 스스로 부리와 발톱을 뽑아낸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건 조류학자들도 황당해 하는 인터넷 괴담이다)도 보이는 게 아쉬운 부분.<br>물론 그래도 읽어볼 만한 예화들, 그리고 조언들이 가득하다. 앞서도 말했듯이, 설교에 예화로 쓸 수 있는 소스들도 많이 담겨 있고. 전반적인 논조와 글의 방향성도 건강하고, 전체적으로 쉬운 글인지라, 한 편씩 차분하게 읽어 보면 분명 유익할 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5/92/cover150/89041598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65920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문학/에세이</category><title>나를 대신한 복제인간이 훔칠 수 없었던 것 -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9687</link><pubDate>Mon, 03 Aug 2026 1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96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4296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off/k4121372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4296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혐오도 복제가 되나요</a><br/>윤혜성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03월<br/></td></tr></table><br/>얼마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외할머니와 살겠다며 먼 나라로 떠나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말고는 이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어느 날 집 앞으로 죽은 아내의 이름으로 발송된 커다란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br>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주인공 수한과 똑같은 모습의 또 하나의 사람이 들어 있었다. 자신을 수한의 복제인간이라고 소개하는 그와 함께 온 쪽지에는 서툰 글씨로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수한의 죽은 아내는 소설 속 가공의 나라인 리벨라우스 출신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설정. 와우 이 소설 복제인간을 다루고 있었다.<br><br> 소설은 나와 똑같은 모양의 복제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는 꽤 현실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소설 속 시대는 가까운 미래로 보이는데, 복제인간을 만드는 행위는 불법으로 여겨지고, 적발될 경우 복제인간은 ‘폐기’된다. 주인공 수한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그런데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수한은 아들의 양육권을 장모와 다투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낮은 점수(이 시대에는 AI로 적합도 점수를 매긴다)를 가진 상황에 복제인간 같은 불법요소까지 알려지면 더욱 불리해 질 수 있었던 것.<br>결국 잠정적인 동거를 시작하는데, 수한의 모든 기억을 이식받은 복제인간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대화를 이어나갔고, 어느새 수한 역시 경계의 줄을 살짝 놓기까지 한다. 아들과의 만남과 회사 일이 겹치자, 복제인간을 대신 회사에 보내기까지 한다(심지어 자신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잘 풀어나간다!).<br>복제인간이 나를 대신해 회사에 출근하고, 심지어 나보다 일처리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잘 풀어나간다면, 아마 우리 중 십중팔구는 이른바 복제인간으로 ‘자동사냥’을 돌리지 않을까? 그렇게 남은 시간을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는 데 사용할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다만 이런 기대는 새로운 게 아니다. 다양한 기계장치들을 도입할 때도 인류는 모든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결과는 더 많은 일과 더 적은 휴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br>아마 AI의 도입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은 자동화니 뭐니 하면서 힘을 덜 들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모두가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제는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지식의 양과 종류가 늘어날 뿐, 일은 더 많이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br><br><br><br>그렇게 복제인간과의 동거가 꽤 괜찮게 이어지는 듯하던 어느 날, 수한은 복제인간에게 아내의 보험금 관련 은행 업무를 맡겼다가 돌발행동을 벌이고, 갑자기 이야기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중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복제인간이라는 것도 의식을 갖고 있고, 그 의식은 칩으로 공유되는 기억/지식과 달리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br>그 티핑 포인트 다음부터 복제인간은 수한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조여 오기 시작한다.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위협하고 마침내는 자신이 수한을 대신하고자 한다. 마치 SF 디스토피아물에서 자주 보이는, 기술의 공격으로 위기에 몰린 인류의 상황의 일상 버전이랄까. 그렇게 소설은 점점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그리고 우리의 통제를 넘어서는 것 같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br>사실 주인공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과 (복제인간이 만든) 불리한 증거들로 둘러싸여 있어 좀처럼 상황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는데, 의외로 매우 인간적인 증언 한 마디로 모든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증언의 핵심에는 ‘상처’가 있었다. 상처는 삶 속에서 무수히 만나는 장애물들과의 접촉의 결과다. 우리는 종종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그런 상처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핵심요소인지도 모른다.<br><br> 이 외에도 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복제인간의 존재, 복제인간의 “폐기”에 관한 윤리적 문제 같은 좀 더 생각해 볼만한 거리들이 있지만, 작품의 볼륨 상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덕분에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명확한 진행을 얻긴 했지만. 기대했던,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재미있어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150/k4121372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30557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나 없이 행복하면 안 돼” 사랑이 지옥이 되는 순간 |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8648</link><pubDate>Sun, 02 Aug 2026 1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864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060652950&TPaperId=174286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5/66/coveroff/006065295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4286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사랑은 상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상대가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마음일까요? 이번 장에는 자신과 만난 사람과 동물에게까지 풍성한 생명을 흘려보낸 사라 스미스와, 아내가 자신 없이 행복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남편이 등장합니다.&nbsp;​왜곡된 사랑은 상대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까지 작아지게 만듭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을 통해 사랑받고 싶은 나 자신만을 붙잡고 있을까요?<br><br><br><br><br>&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진리를 잃어버린 교회에 뉴비긴 던지는 질문 - [누가 그 진리를 죽였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0137</link><pubDate>Wed, 29 Jul 2026 2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01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2470&TPaperId=174201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56/20/coveroff/89328124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2470&TPaperId=174201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가 그 진리를 죽였는가?</a><br/>레슬리 뉴비긴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11년 07월<br/></td></tr></table><br/>겨우 100여 쪽밖에 안 되는 (판형도 작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권위에 관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진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br>기독교 시대가 된 이후 약 1천 년 동안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계시)를 진리의 원천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근대성은 그런 권위를 무너뜨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중심으로 무엇이 확실한 것인지를 판단하려고 했다. 이성이 권위의 근원이 된 것이다. <br>그러자 기독교 일각에서도 이런 변화를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구세주의 권위를 입증할 만한 근거를 다른 곳에서 찾는 일은 그 구속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br>예수님은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공동체를 만드시고, 가르치셨으며, 그 공동체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하셨다. 저자는 오늘날 교회가 진리를 주장하기 위한 방식도 이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리는 증언으로서, 선포로서, 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제시되어야 한다. 저자는 아예 ‘객관적 진리’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진리는 사물을 탐구하듯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격적 헌신이 필요한 관계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br><br><br><br><br> 개인적으로 C. S. 루이스 다음으로 믿고 보는 저자가 레슬리 뉴비긴이다. 신학적 깊이도 깊이려니와 보수적이면서도 현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을 하게 된다. 여기에 좋은 번역자들을 만났기 때문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면도 좋았고.<br>뉴비긴은 매우 당당하게 기독교 진리를 선포한다. 그러나 그 선포의 방식은 전혀 무례하지 않다. 복음을 살아 내는 방식이어야 하고, 상대를 논리로 굴복시키거나(전형적인 이성 중심의 근대적 진리관에서 나오는 태도다), 힘으로 관철시키는 방식이 아니다. 이건 그가 40여 년 동안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깊이 배어든 태도가 아닌가 싶다.(물론 이런 관점이 단지 기독교를 윤리종교화 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시도와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br><br><br><br>제목을 흥미롭게 뽑았다. 원서의 제목은 "Truth and Authority in Modernity"으로, 직역하면 “모더니티에서의 진리와 권위” 정도가 될 텐데, 이쪽이 책의 내용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는 하지만, 왠지 맛이 좀 덜하다. 번역서의 구판의 경우 “포스트 모던 시대의 진리”라고 번역했다는데 이건 좀 부정확한 느낌이다. 책에서 지적하는 이성을 진리의 기초로 두는 관점은 포스트모던 보다는 앞선 시대의 특징이니까. <br>여튼 그래서 개정 번역판의 한글 제목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누가 ‘그 진리’를 죽였을까. 일차적으로는 근대의 합리주의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범인은 그런 현대성에 굴복해 복음의 진리를 망가뜨린 이들일 것이다. 아쉽지만, 여전히 그런 이들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커 보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56/20/cover150/89328124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56203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단일민족’이라는 오래된 신화를 넘어서 -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 상상과 과학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한민족의 흔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4759</link><pubDate>Mon, 27 Jul 2026 14: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47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8873&TPaperId=174147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82/84/coveroff/89509788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8873&TPaperId=174147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 상상과 과학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한민족의 흔적</a><br/>강인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br/></td></tr></table><br/>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을 교과서로 배웠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도 있고, 아무튼 생긴 것들이 다들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다 보니 그 설명이 그럼직해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생각들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자연히 ‘우리’와 다른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도 높아진다는 것. 물론 정치적 부추김의 영향이 다분하긴 하지만, 혐중, 혐일 정서도 이런 의식이 낳은 부작용이다.<br>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인가? 유라시아와 고조선 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고고학자인 저자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한반도는 고립된 지역이 아니었다. 저자는 크게 세 갈래로 한반도로의 이주/전래가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고조선이 위치했던 요하 유역을 통한 통로고, 두 번째는 북방의 초원에서 들어오는 길이었다. 세 번째는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루트로, 러시아 연해주로부터 한반도 동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환동해 루트다.<br>저자는 각각의 루트를 상징하는 유물들을 제시한다. 첫 번째 루트의 상징은 비파형 청동검이고, 두 번째 루트는 금관, 세 번째 루트를 보여주는 상징물은 암각화다. 하나같이 다 고고학적 증거들이다. 이른바 원사시대(Protohistory)를 다루다보니,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유물과 유적을 통해 추정해 나갈 수밖에 없다. 확실하지 않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지만(그래서 같은 유물을 두고서도 꽤나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최근에 발전한 다양한 과학적 도구들(예를 들면 DNA분석이라든가)을 이용하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추후 연구를 기대해 볼 만.<br><br><br><br> 고립은 자랑이 아니다. 그건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문명과 사회는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우위에 있는 것을 수출하며 이익을 취한다. 선진문화를 수입하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빈 땅에서 시작한다면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br>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이 땅에는 다양한 그룹이 오고갔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한참 후대에나 발명된 것이고, 이전에는 사실 그런 경계가 명확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경우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국수주의적 태도가 굳어진 감이 있다. 단일만족이라는 신화는 정치적 구호에 가깝다. 그건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우리에게 진짜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br>물론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당장에 넓은 시야로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유라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자의식을 갖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역사공적을 포기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과 얽힌 역사를 갖고 있으니 그 또한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긴 하고. 언젠가 우리 지역 여러 학자들이 공동의 역사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게 될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82/84/cover150/89509788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682840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amp;quot; 읽기</category><title>이스라엘은 다윗의 길을 따르는가, 아합의 길을 따르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22</link><pubDate>Sun, 26 Jul 2026 19: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2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635844&TPaperId=174131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off/k2526358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고대 이스라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던 사회였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정착촌 정책은 다윗의 길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아합의 길에 가까울까요? 이번 영상에서는 여호수아 시대부터 왕정시대까지의 성경 기록을 통해 ‘약속의 땅’과 ‘공존의 책임’을 함께 살펴봅니다.<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150/k252635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966306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X출판사</category><title>한국 크리스천들이 분권 성경을 찾지 않는 뜻밖의 이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18</link><pubDate>Sun, 26 Jul 2026 19: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1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26999&TPaperId=17413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33/35/coveroff/895372699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413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037700&TPaperId=17413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36/1/coveroff/k99203770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30년 동안 성경 제작 과정을 담당해 온 아가페 출판사 관계자와 함께 성경책 한 권에 담긴 기술과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구름책방이라는 이름의 의미, 기독교 서적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C. S. 루이스 입문서, 역사 독서의 필요성, 그리고 혼자 성경을 읽다가 교회를 찾아가게 된 구름책방 운영자의 이야기도 만나보세요.<br><br><br><br><br>&nbsp;&nbsp;&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36/1/cover150/k9920377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36011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AI가 대신 써주는 시대, 우리는 왜 계속 쓰는가 -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 신앙을 일깨우는 글의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0754</link><pubDate>Sat, 25 Jul 2026 1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07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601&TPaperId=174107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19/60/coveroff/k1821306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601&TPaperId=174107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 신앙을 일깨우는 글의 힘</a><br/>조명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07월<br/></td></tr></table><br/>대화형 AI를 사용하면 몇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긴 글을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읽은 책마다 애써 리뷰를 쓰고 있으면서도,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요새는 읽으면서도 가끔은 의심이 되곤 한다. 이게 정말 사람이 쓴 글인지. 이런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걸 모아 책으로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br>책의 1부에서 저자는 글을 쓰는 일이 주는 유익에 대해 이런저런 내용들을 풀어놓는다. 새벽에 글을 쓰는 시간은 “텅 빈 마음의 곳간을 두둑하게 채우는 시간”이었다든지, “글쓰기만한 자기계발도 없다”든지, 글을 쓰며 자신의 말과 생각을 필터링하게 된다든지 하는 내용들이다. <br>2부에서는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몇 가지 요령들이 제시된다. 경험했던 일들 가운데 다양한 것들을 글로 옮겨보라는 식이다. 뭔가 대단한 것을 쓰려고 하지 말고, 그저 일상 속의 일들을, 편안하게 써보라는 것. 3부에서는 글을 써 보라는 격려를, 4부에서는 좀 더 실제적인 글쓰기 팁을 담았다.<br><br><br><br> 사실 책에 나오는 설명들은 개인적인 요소인 경우도 다분하고(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모두에게 비슷한 수준으로 유익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글쓰기라는 작업은 (그냥 일기장에 끄적이는 수준 너머를 보고 하는 거라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역사 이래로 글쓰기라는 기술은 단 한 번도 ‘모두’의 일이 된 적이 없으니까.<br>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유익, 혹은 이유가 책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즐거움”이다.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도 즐거우니까 하는 거다(누가 인정해주지도 않는 리뷰를 1500개씩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즐거움은 일단 써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 한 번쯤은 글을 써 보는 걸 추천한다. 다만 그게 영 즐겁지 않다면 또 다른 걸 찾아 나서도 괜찮다. 말했지만, 글쓰기는 모든 사람에게 맞는 작업은 아니니까.<br>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대체로 공감이 된다. 아무래도 글 옆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을 만났다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조만간 책을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더더욱 책의 권고가 격려로 들리기도 할 듯하다. 한 번 써 보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19/60/cover150/k182130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19608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