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노란가방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을 읽는 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10 Jun 2026 07:58:56 +0900</lastBuildDate><image><title>노란가방</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49578114217064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노란가방</description></image><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해석학적 우상숭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25502</link><pubDate>Tue, 09 Jun 2026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2550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934849&TPaperId=173255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35/87/coveroff/k81293484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큰소리쳐 놓고는 내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나의 정략적 사설을 늘어놓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에서, 교회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것은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관한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권위 있는 말씀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어떤 목적으로 써먹고 있느냐를 검증하는 일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실제 해석의 과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해석학적 우상숭배’를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br>- 권연경,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중에서<br><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35/87/cover150/k8129348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35877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수치심 때문에 천국에서 도망친다고?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08</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21980</link><pubDate>Sun, 07 Jun 2026 19: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2198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3219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이번 장에서는 천국의 길 앞에서 계속 도망치려는 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그녀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고통 자체라기보다, 자신이 완전히 드러나는 상황입니다.​루이스는 이 장면을 통해 수치심, 자기집착, 사생활에 대한 집착, 그리고 회피의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수치심은 피하려고 할수록 더 뜨거워지고, 정직하게 받아들일 때 오히려 우리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2세기 교회, 모든 것이 결정되던 갈림길 - [기로에 선 기독교 - 2세기 기독교는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형성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20733</link><pubDate>Sat, 06 Jun 2026 2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207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9396&TPaperId=173207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3/2/coveroff/k0221393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9396&TPaperId=173207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로에 선 기독교 - 2세기 기독교는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형성했는가</a><br/>마이클 J. 크루거 지음, 송동민 옮김 / 너머서 / 2026년 06월<br/></td></tr></table><br/>“기로”란 우리말로 갈림길을 말한다. 몇 개의 길이 교차되어서 선택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지점이 갈림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2세기 기독교의 상황이 꼭 그랬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발흥한 1세기와 사실상 로마의 공식종교가 되었던 4세기 사이의 시기에, 그 중에서도 2세기에 집중한다.<br>저자가 보는 2세기는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이다. 아직 기독교가 공인되려면 200년은 더 기다려야 했던 이 시기, 물론 여러 면에 있어서 아직 공고한 체계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이후 보이는 교회 내 다양한 요소들이 어느 정도 형성되던 시대라는 것.<br><br><br><br> 책의 첫 두 장에서는 당시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위치(사회적 하층민들이 많았지만, 일부는 잘 교육받은 상류층이었고,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다가왔을 기독교의 내용(기존 로마의 종교와 전혀 다른, 사회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운동이라는)을 설명한다.<br>본격적으로 내용이 흥미로워지는 건 3장부터다. 3장에서는 2세기 당시 교회의 리더십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저자는 여전히 강한 이교문화(당시 로마는 최전성기였다) 속에서 새로운 종교운동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에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지적한다. 당시 교회들은 여러 크기와 형태로 가정교회들의 느슨한 연합 형태로 존재했고, 어느 지역의 지도자도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특별히 더 우위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개별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는 매우 빈번한 소통이 있었다.(이 점은 오늘날 교회들도 좀 배웠으면 하는 부분이다)<br>4장과 5장에서는 이단과 정통의 문제를 다룬다. 이단과 정통은 단지 힘겨루기에서 이긴 쪽이 멋대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요새 유행하는 수정주의적) 얄팍한 주장의 부족한 근거를 지적하면서, 이미 이 시기 어느 정도 교회들 사이에 공유되는 핵심적 교리들이 정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br>6장과 7장은 당시 교회의 특징 중 하나인 텍스트 중심의 문화 부분을 되짚어 보는 내용이다. 의례 중심이었던 그리스, 로마의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처음부터 (성경을 포함한) 다양한 문서들을 중요하게 여겨왔고, 동시에 새로운 종교적 문서들을 많이 생산해 냈다는 내용.<br><br><br><br> 다분히 학자다운 겸손함으로, 이 책이 개론서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제한적인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는 단서를 붙이고 있지만, 책은 2세기 지중해 세계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관해 좋은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특히나 2세기 중심으로 그 전후의 다양한 1차 사료들을 풍성하게 이용하면서 학문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결과물을 보여준다.<br>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4장과 5장이었다. 역사학계 전반에 수정주의적 견해가 유행하면서, 기독교 역사와 관련해서도 무조건 통설을 뒤집는 신박한 주장을 하는 것이 뭔가 특별한 것처럼 여겨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일부에서는 반기독교 정서와 연결되어서 오늘날 정통으로 여겨지는 쪽을 깎아내리는 주장으로 전용되기도 한다.<br>저자는 정통과 이단의 기준 자체가 없었다는 나이브한 주장을 차근차근 반박하면서 당시 실제의 상황을 논리적 정합성을 갖춰 재구성해 낸다. 온통 구성주의에 기초한 파괴적 창의성이 남발하는 이 바닥에서 간만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책.]]></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3/2/cover150/k0221393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43028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정치 환멸의 결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8424</link><pubDate>Fri, 05 Jun 2026 15: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842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936451&TPaperId=173184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71/46/coveroff/k09293645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이제 차분히 물어야겠지요. 정치 환멸이 퍼질 때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혹 그들이 정치 환멸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를. 아울러 그 결과까지 종종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멀리할 때 결국 특권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삶이 좌우되는 상황을 맞게 되니까요. 정치는 우리의 무시에 반드시 보복하거든요. '정치 무시의 정치'랄까요.<br>-&nbsp;손석춘, 『손석춘 교수의 민주주의 특강』 중에서<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71/46/cover150/k0929364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71464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그래서 우린 어떻게 혐오를 몰아낼 수 있을까 -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7276</link><pubDate>Thu, 04 Jun 2026 21: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72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7315&TPaperId=173172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43/coveroff/k8721373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7315&TPaperId=173172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다</a><br/>기윤실 기독교윤리연구소 엮음 / 야다북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기윤실에서 윤리연구소라는 것을 운영하는가 보다. 그리고 연구소니까 정기적으로 연구의 결과물들을 일종의 논집 비슷하게 출간하는 것 같고. 이 책은 그 시리스의 세 번째라고 한다. 앞서의 두 권은 기윤실에서 자체적으로 냈고, 이번 책은 야다북스에서 출간한 모양.<br>이번 책의 주제는 “환대”다. 여덟 명의 저자들이 한 챕터씩을 맡아 같은 주제 아래 쓴 글을 모았는데, 대부분이 현직 교수들이고, 작가와 목사도 보인다. 교수진의 전공과목들은 철학, 인문학, 스포츠청소년지도학(이분은 청소년에 관한 글을 쓰셨다) 등으로 다양하고,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AI나 청소년정책, 심지어 영화 속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동양사상 속 환대의 의미까지 꽤 다양하다. 말 그대로 문집 느낌.<br><br><br><br> 왜 “환대”일까 하는 질문의 대답은 너무나 쉽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대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자기를 규정하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다. 잠시 누군가 물을 뿌리면 뭉치는 것 같지만, 그나마 금세 건조한 바람에 날아가고 만다. <br>거의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치적 갈등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이즈음(사실은 역사가 꽤 오래되었지만) 교회도 이 문화전쟁에 참여해서 혐오를 확대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조각내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세상의 갈등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교회가 이래도 되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개혁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br>다만 이 책이 구체적인 제안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청소년 정책을 다룬 5장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들이 주가 된다. 레비나스의 이론에서, 동양의 고전인 “대학”에서 환대의 개념을 이끌어 내는 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힘을 더해줄까? 사실 각각의 글들 자체에도 실천적인 내용들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이제까지 읽어왔던 야다북스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결이랄까. 그리고 전체로 놓고 보면 환대라는 주제로 간신히 묶어놨구나 하는 느낌도 준다. <br><br><br><br>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봤던 건 영화 “미씽”을 소재로 해서 한국사회의 이주여성들에 대한 시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6장이다.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도 추천하는 영화 목록에 넣어둘 정도로 좋은 작품인데(동명의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2026년에 이 영화의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새삼 반갑다.(영화는 2016년에 개봉했다) <br>영화 속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해결이 난망한 것 같다. 오히려 최근에는 2, 30대를 중심으로 혐중정서가 더욱 극성인 걸 보면 가까운 미래에도 우린 이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하고(젊은 세대의 극우화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조만간 우리 사회의 폭탄으로 작용할 것 같다).<br>주제 의식도 분명하고, 적절한 예시와, 실천적인 적용과 성경적 연결까지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글이었는데, 다른 글들도 이 정도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43/cover150/k8721373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43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달에 만난 책들</category><title>상반기 베스트 후보 등장! | 2026년 5월에 만난 13권의 책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6960</link><pubDate>Thu, 04 Jun 2026 18: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696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934144&TPaperId=17316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55/11/coveroff/k26293414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16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535195&TPaperId=17316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5/34/coveroff/k632535195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5974&TPaperId=17316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2/15/coveroff/k76203597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0080&TPaperId=17316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5/50/coveroff/k222030080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6960'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br>■ 지난 5월에 만난 책들을 영상 하나로 총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직 한 달이 남긴 했지만, 어쩌면 상반기 베스트인 책을 만난 것 같기도 하네요.​■ 여러분은 어떤 책을 읽어보고 싶으신가요?<br><br><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45/0/cover150/89537967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45001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그 사과는 왜 진정성 없어 보였을까 -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 진짜와 허상에 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2840</link><pubDate>Tue, 02 Jun 2026 12: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28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934144&TPaperId=173128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55/11/coveroff/k2629341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934144&TPaperId=173128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 진짜와 허상에 관하여</a><br/>에밀리 부틀 지음, 이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1월<br/></td></tr></table><br/>얼마 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한 커피 체인에서 멍청한 광고를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언제까지 진행될지 모르는 불매운동으로 매출도 꽤 줄어든 것 같고, 보다 심각하게는 경영권에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회장이라는 사람이 워낙에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중은 더욱 의심을 하고 있다.<br>사안이 사안인지라,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사건이 잠잠해지지 않자, 마침내 일주일도 더 지나서 회장이 공개석상에 나와 사과문을 읽었다.(대체로 사과를 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번에는 사과문의 내용도 지적을 당한다. 미안하기는 한데, 이 문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도 있지 않겠느냐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이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br><br><br><br>우리는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군가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하면, 그에 대한 평판이 좋아지고,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호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과연 이 진정성이라는 것은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일까? 이 책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br>진정성이라는 무엇일까? 오늘날 이 단어는 각자 “자신의 진실에 따라 살아라”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기준이라면 앞서 언급한 회장도 나름의 진실성/진정성을 가지고 대중 앞에 나온 것이다. 최소한 그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평소가 갖고 있던 생각을 그대로 드러냈으니까. <br>서문에서 저자는 한 작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진정성 이전에는 성실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이다. 애초에 진정성이란 그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다 알 수 없는 영역이다.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br>책은 이 진정성이라는 것이 다양한 영역에서 얼마나 오염되고, 제멋대로 생각되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특히 셀럽 문화의 중심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그놈의 “킴 카다시안”!)과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기이한 반응들을 읽다 보면 이 진정성이 얼마나 많은 정의를 갖고 있는지, 그래서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는지를 깨닫게 된다.<br><br><br><br>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요구하는 “진정성”이란, 결국 그냥 그가 우리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그 ‘우리의 마음’도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 한 때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던 다양한 “제품들”(책에는 힙스터들의 아이템이 언급된다)은 시간이 지나면 또 그저 촌스러운 무엇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연예인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변덕스러움은 또 다른 증거이고.<br>물론 이렇게 보면 ‘진정성’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읽힐 지도 모르겠다.(실제로 책에는 그런 뉘앙스가 좀 보이긴 한다). 그러나 이건 앞서 언급했듯, 진정성을 그저 나 자신이 바라는 것이라고 모호하게 정의하는 현대적 견해에 따른 것이지, 진정성을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와 행동으로 보는 좀 더 오래된 전통적 견해로 보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된다. <br>다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진정성을 정의하는 일이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는 좀처럼 합의를 이룰 수 없는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책에는 꽤 흥미로운 예시들이 등장하는데, 이른바 “문화적 도용”, “성 정체성” 같은 것들. 애초에 이민 2, 3세대라면 그들이 주장하는 문화적 유산과의 유대는 이미 빈약해진 상황인데도 누군가 자신들이 전유하는 문화적 양식을 조금 따라한다고 도용 운운하며 비난하는 게 우스운 일이라는 것. <br>진정성이란, 우리가 서로 만나서 손을 잡을 수 있게 하는 요소가 되어야지, 서로의 차이를 더욱 부각시켜 대립과 싸움만 일으키는 데 사용된다면, 그들이 말하는 진정성은 그저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한 핑계가 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진정성 논의를 의미 없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언제나 도를 넘는 태도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55/11/cover150/k2629341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55115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혐오의 시대, 교회는 어느 광장에 서야 하는가 -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 다원주의 사회와 시민교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1141</link><pubDate>Mon, 01 Jun 2026 14: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111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111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111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 다원주의 사회와 시민교양</a><br/>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아바서원 / 2026년 05월<br/></td></tr></table><br/>오늘날 우리는 대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고 거의 전 세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난투극이다. 어쩌면 이미 제3차세계대전은 시작되었는데 우리가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세 번째 대전쟁은 앞서의 두 전쟁과 양상이 다르다. 이전의 전쟁은 국가들 사이의 연합끼리 맞부딪혔다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전쟁은 국가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br>사실 국가 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맹렬하게 대립하는 일은 역사상 수없이 되풀이 되어 온 일이긴 하다. 일부의 투쟁은 종종 내전이라고 불리며 피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런 무력을 사용한 대립은 일종의 대화이기도 했다. 대화가 끝나면 어쨌든 상황은 수습되었으니까.<br>그러나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쟁은 도무지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전 시대의 큰 진영들 사이의 대립은 조금 누그러진 듯하지만, 이제는 수도 없이 세분화된 수많은 정체성들이 각각의 참호를 파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리한 참호전을 벌이고 있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증오의 깊이도 함께 깊이 패인 상황이다. 정치적 견해와 인종과 성별을 비롯한 수많은 차이가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br><br><br><br> 이 책은 이런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소명”으로 유명한 저자 오스 기니스는 40여 년 간 살아온 미국 사회를 갈라지게 한 다양한 요소들을 바라보며 수많은 갈등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유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 책의 논지의 중심에는 교회와 국가의 관계 설정이 놓여있다.<br>중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지만, 저자는 미국의 헌법 정신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 특히나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관해서 프랑스와 영국의 해결책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교회의 문에 못을 박아 매장하려 했고, 영국은 국가교회의 형태로 종교를 남겨두었으나 매우 제한된 형태의 의식으로만 유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에서 교회는 정치에 종속되고 말았다. 반면 미국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도리어 종교의 부흥을 이루었다는 것.<br>문제는 오늘날 이런 미국 헌법의 정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는 양편의 공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 편에서는 세속주의에 기반해 국가와 교회를 엄격하게 분리해야 한다고(내지는 아예 종교의 영역을 지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다시 한 번 교회와 국가(권력)의 일체화를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오늘날 문화전쟁을 통해 서로를 맹렬하게 비난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중이다.<br>저자는 양측의 주장의 연원과 현실을 충분히 살핀 후, 현재 양 진영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성한 공적 광장(국가와 종교의 밀착)’과 ‘벌거벗은 공적 광장(국가와 종교의 극단적 분리)’은 모두 문제를 해결하기에 합당치 않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양심의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된 종교의 자유(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시민교양에 기초한 공적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br><br><br><br>양면 전쟁은 가장 어려운 전쟁 유형 중 하나다. 어지간한 강대국도 양면에서 강한 적과 마주하는 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신앙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 힘든 전장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다. C. S. 루이스도 그의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딜레마다. 한 쪽을 상대하는 것도 벅찬 데, 이 쪽에 대응하다 보면 저쪽 편이냐는 공격을 받기 일쑤라 치열한 진영논리 속에서 고립되기 십상이다.<br>문제는 이런 입장이 언제나 두루뭉술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꼭 혼란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주장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끄는 법이니까. 그러나 극단은 필연적으로 충돌을 낳는다. 트럼프로 노골화된 미국의 문화전쟁이 민간인을 향한 총질도 마다하지 않는 무장 사병집단(ICE)으로 확장되는 모습은, 지난 친위쿠데타 사건을 겪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br>둘 다 단순히 똘아이 같은 대통령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광장을,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는 자리가 아니라, 귀를 막은 채 끊임없이 자기주장만 되뇌는 집회장으로만 인식하는 강력한 집단적(이 쪽이나, 저 쪽이나) 사고가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결국 돈과 권력이 있다.<br>확실한 건 우리의 광장에 필요한 건 거대한 돌덩이로 총 든 형상을 세우는 게 아니라,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지방 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는 이 즈음, 우리나라의 상황은 결코 낙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온라인에 가득한 혐오는, 이제 누구도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나와 다른 진영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대화의 광장을 회복할 수 있을까.<br>저자는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의 배후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상황을 분석하고 풀어낸다. 훌륭한 솜씨다. 몇 번은 다시 읽으며 책 속의 논리를 깊히 익히고 싶은 책. 상반기 읽은 책 중에 베스트.<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책을 소개합니다</category><title>성경 한 권 들고 조선을 누빈 여성들 (전도부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08715</link><pubDate>Sun, 31 May 2026 2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0871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730786&TPaperId=173087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673/88/coveroff/k97273078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전도부인’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오늘 소개할 책 《전도부인》은 한국교회 초기에 복음을 전했던 여성 사역자들의 잊힌 역사를 복원한 책입니다. 그들은 화려한 강단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남성 선교사와 목회자가 들어갈 수 없던 조선의 안방과 삶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갔습니다.​우리는 더 많은 정보와 시스템을 가졌지만, 과연 더 복음적으로 움직이고 있을까요? 성경 한 권 들고 사람을 찾아갔던 전도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복음의 체온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기대평 이벤트가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고 유튜브 댓글로 기대평을 달아주신 분들 중 5분을 뽑아 책을 보내드립니다. 어여 참여해 보세요!&nbsp;<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673/88/cover150/k9727307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673884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로마인 이야기&amp;quot; 읽기</category><title>콘스탄티누스 사후, 로마 황실에 분 피바람 |『로마인 이야기』 읽기 (14-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02516</link><pubDate>Thu, 28 May 2026 2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0251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54876&TPaperId=173025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1/91/coveroff/893565487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콘스탄티누스가 세상을 떠난 뒤, 로마 제국은 다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에 휘말립니다. 세 아들과 두 조카에게 나누어졌던 제국은 곧 숙청과 반란, 내전 속에서 콘스탄티우스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하지만 그에게는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촌, 젊은 철학도 율리아누스를 부제로 임명합니다. 훗날 ‘배교자 율리아누스’라 불리게 될 인물의 등장이었습니다.<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1/91/cover150/893565487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915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갈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9399</link><pubDate>Wed, 27 May 2026 0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939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508&TPaperId=172993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617/69/coveroff/89365135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즉,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가장 유사하지 않을 때 오히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충만함과 빈곤함, 최고 권력과 비천한 신분, 정의와 회개, 무한한 능력과 도움의 호소만큼 서로 닮지 않은 것들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br>-&nbsp;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617/69/cover150/89365135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617694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유튜브로 다 안다고 착각하는 세대 | C. 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07</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4827</link><pubDate>Sun, 24 May 2026 1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482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2948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C. 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7장에서는 “다 해봤다”고 말하는 냉소적인 유령이 등장합니다.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도, 피라미드도, 타지마할도 보았지만 모든 것을 “별거 없다”고 말합니다.​문제는 그가 많은 것을 보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것도 깊이 바라보지 못하고, 어떤 아름다움에도 머물지 못하며, 어떤 차이와 경이도 기뻐하지 못합니다. 결국 천국 앞에서도 그는 감탄하지 못합니다.​우리는 정말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요?아니면 대충 훑어보고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걸까요?<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타</category><title>바둑을 몰라도, 바둑이 궁금해지는 책 - [가장 쉬운 독학 이세돌 바둑 첫걸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3010</link><pubDate>Sat, 23 May 2026 15: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30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535195&TPaperId=172930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5/34/coveroff/k632535195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535195&TPaperId=172930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장 쉬운 독학 이세돌 바둑 첫걸음</a><br/>이세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08월<br/></td></tr></table><br/>몇 년 전 AI 열풍이 한창 시작되었을 무렵 알파고라는 이름의 바둑 인공지능과 상대한 인간 기사로 (이전에도 유명했지만) 더욱 유명해진 이세돌 전(前) 프로기사가 쓴, 바둑책이다. 뜬금없이 바둑책을 손에 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가끔 수학책이나 물리학책을 손에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우연히 바둑에 관한 책이 눈에 띄었다.<br>사실 나는 온갖 잡기에 능한 게 없는데, 바둑은 전혀, 장기와 체스는 겨우 기물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정도고, 몸을 사용하는 것들, 예를 들면 많이들 하는 당구라든지, 볼링이라든지 하는 것도 즐기지도 않고, 당연히 잘 하지도 못한다. 가끔씩 바둑채널에 대국을 하는 걸 켜 놓긴 하지만, 뭘 알아서가 아니고 그냥 그 조용한 분위기, 가끔 나오는 차분한 해설 같은 걸 화이트 노이즈로 삼아서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br>이 나이에 바둑을 배워봐야겠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바둑이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물에 들어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만, 백과사전을 읽으며 수영을 어떻게 하는지, 경영의 국제 규칙과 규격 같은 건 습득했던 것처럼). 또, 온갖 전략과 전술이 난무하는 게임 자체가 내 취향이기도 했고. <br><br><br><br> 이 책은 이세돌이 말 그대로 바둑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규칙들과 전술을 설명해 주는 내용이다. 딱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 기본적인 용어들에 관한 설명도 있고, 집이란 게 뭔지, 상대의 돌을 잡는 방식, 어떻게 내 돌을 살릴 것인가 등등. 각각의 설명마다 컬러로 된 기보가 함께 등장해서 이해를 돕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책에 이 부분이 빠지면 곤란하다. 곳곳에 독자에게 생각해 볼 질문을 던져서 방금 배운 것을 실제로 써 먹어 보게도 하고.<br>물론 이 한 권의 책을 봤다고 해서 바둑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책에서 예시된 건 대국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인 모양이고, 그게 전체 대국에서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는 한참 더 공부가 필요할 게다. 그래도 뭐든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어느 정도 알아야 하니까.<br>퍽 재미있어 보이긴 하는데, 이걸 좀 더 이해하고, 그 깊은 맛을 즐기기 위해 들여야 할 시간이 어느 정도나 될지 가늠이 안 된다. 정확히는 내가 그 정도의 시간을 지금 투입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읽는 동안 잠시 머릿속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책이다. 중간 중간 이세돌 개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책 말미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한국 바둑 계보도 재미있었고.]]></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5/34/cover150/k63253519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865349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X출판사</category><title>출판사만 5개?!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이유 | 베드로서원 정진혁 부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2170</link><pubDate>Fri, 22 May 2026 2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21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12033138&TPaperId=17292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27/36/coveroff/k8120331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137768&TPaperId=17292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8/6/coveroff/k16213776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192284&TPaperId=17292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5/70/coveroff/897419228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137631&TPaperId=172921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0/4/coveroff/k39213763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전국 가맹점을 누비던 베테랑 영업사원이 아내의 바통을 이어받아 기독교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8년 차 마케터 정진혁 부장님이 들려주는 기독교 출판의 민낯과 희망!

베드로서원은 왜 5개의 출판사를 인수했을까요?
왜 직접 책 보따리를 싸 들고 대만으로 향했을까요?<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0/4/cover150/k3921376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20047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채식주의의 모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1846</link><pubDate>Fri, 22 May 2026 19: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184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837474&TPaperId=172918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9/48/coveroff/k60283747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쌀은 1킬로그램당 3,400리터의 물(전 세계 농작물 생산에 드는 물 총량의 21%)을 쓴다. 또한 불필요한 (건강에도 좋지 않은) 식품첨가물인 설탕의 경우는 1킬로그램에 1,5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그런데 채식주의 사이트의 차트에는웬일인지 이런 흔한 품목이 빠져 있다.<br>- 니콜렛 한 니먼, 『소고기를 위한 변론』<br><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169/48/cover150/k6028374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169485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amp;quot; 읽기</category><title> 왜 이스라엘은 끊임 없이 전쟁을 하는걸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1842</link><pubDate>Fri, 22 May 2026 19: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9184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635844&TPaperId=172918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off/k2526358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단순히 “누가 먼저 공격했는가”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br>이 땅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영국의 위임통치, 시오니즘, 홀로코스트, 이스라엘 건국, 중동전쟁, 난민 문제, 인티파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분리라는 복잡한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흐름을 살펴봅니다.<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150/k252635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966306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평신도교회, 대안인가 또 다른 질문인가 - [평신도교회가 온다 - 교육운동가 송인수의 평신도교회 17년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8173</link><pubDate>Wed, 20 May 2026 2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81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5974&TPaperId=172881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2/15/coveroff/k7620359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035974&TPaperId=172881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평신도교회가 온다 - 교육운동가 송인수의 평신도교회 17년 이야기</a><br/>송인수 지음 / 잉클링즈 / 2024년 11월<br/></td></tr></table><br/>이 책이 말하는 ‘평신도교회’란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회중교회/조합교회처럼 교회에 목회자를 따로 두지 않고, 교회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예배(당연히 설교도 포함된다)와 교회운영을 하는 형태는 이미 많이 있어 왔다. 다만 이런 형태의 교회가 제법 큰 교세를 이룬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형태라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br>물론 약간의 차이도 있어 보이는데,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평신도교회’는 여기에 가정교회의 모델까지 융합시키는 이미지를 그리는 듯하다. 한두 가정, 많아야 예닐곱 가정 정도의 작은 모임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br>기성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저자가 이런 새로운 모델의 교회를 시작한 건, 역시나 어떤 불만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에는 이 부분이 굳이 자세하게 언급되지는 않는데, 문맥 상 교회 재정 사용의 방향성이라든지, 조직 운영의 한계, 그리고 목회자의 자질 문제도 어느 정도 있지 않았나 짐작된다.<br>책에서 저자는 평신도교회 모델이 이른바 ‘초대교회의 정신’을 좀 더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기독교 초기 역사의 몇몇 장면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조도 보인다.<br><br><br><br> 다만 저자의 이런 주장들은 명백한 한계가 보인다. 우선 목회자가 없다고 해서, 저자가 불만을 느끼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사가 되기 위해서 받은 훈련과 교육은 간단히 대체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또, 평신도들 가운데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br>대학 시절 우연히 그리스도의 교회 계통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상대는 내가 신학생이라는 걸 모르고서 초대를 한 것 같은데, 가보니 한 대학교의 빈 강의실에서 몇몇 대학생들이 모여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 예배의 진행은 선배로 보이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남학생이 이끌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서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게 조금 날카로웠던지 그 학생은 약간 흥분한 듯 했고, 그대로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br>그 때 내가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랬다. 신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은 분이 설교를 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분이 신학적을 일탈하게 되면 누가, 어떻게 교정할 수 있는가. 모든 걸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는 건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아는 수많은 이단들도 다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그 중 한 명이 될 거라는 말은 아니지만, 처음엔 좋게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어떻게 길을 잃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br>또, 이런 식의 환원주의 비슷한 논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교회의 역사가 마치 처음 1세기 정도 제대로 진행되다가 수백 년(또는 천 년 이상) 길을 잘못 들었고, 이제야 (본인에 이르러서) 다시 제 길을 찾은 것처럼, 지나치게 단순화된 역사 모델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같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뭔가 교회에 본질적인 문제가 일어났던 것처럼 설명하기도 하고.<br>이런 몰역사적 관점은 하나님께서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이루신 일들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오류다. 교회의 조직은 나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고민하고 도출해 낸 결과물의 집합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형식은 현실에 맞춰서 끊임없이 개선되고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역사적인 적층물 위에 서는 것이지, 우리가 당장 사도행전의 시대에서 이어지는 게 아니다.<br><br><br><br> 조금 비판적인 리뷰가 되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그리고 실천하는 교회 모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반드시 어느 한 가지 표준 모델을 따라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예배의 형식도 마찬가지다. 이미 ‘개신교’로 분류되는 많은 교회들 사이에도, 나라별, 지역별로 예배의 모습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당장 우리의 엄숙한 장로교회의 장로님들은 미국 흑인 침례교회의 경쾌한 예배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br>저자가 말하는 평신도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답은 당연히 아니고, 어쩌면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가 보이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라면,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할 의무도 있는 법이다.<br>시종일관 정중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저자의 인격이 짐작된다. 책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일종의 설명/변호적 내용이라 방어적 논리가 좀 보이긴 하지만, 후반에는 실제로 저자의 예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스크립트가 실려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읽고, 토론해 볼만한 책.]]></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2/15/cover150/k7620359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02156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삼천포로 빠지는 설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5586</link><pubDate>Tue, 19 May 2026 13: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558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835210&TPaperId=172855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18/43/coveroff/k38283521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나는 부흥사의 말씀에은혜 받으려는 욕심을 자연스레 포기했다.자기 흥에 겨워 삼천포로 마구 빠지는 부흥사의 설교를 들으면서나는 알 수 없는 비애감마저 느껴야했다.늘 느끼는 것이지만하나님을 파는 세일즈맨 같은 목사보다,그렇게도 영양가 없는 설교에서 아낌없이 아멘하고박수쳐 주고 즐거워하는 기도원 파 신자들의 믿음이훨씬 윗길임에는 틀림없다!<br>-&nbsp;이숙경, 『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가주세요』 중에서<br><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18/43/cover150/k3828352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418438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문학/에세이</category><title>휠체어에서 흘러나온 아주 개인적인 음악들 -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3180</link><pubDate>Mon, 18 May 2026 0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31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0080&TPaperId=172831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5/50/coveroff/k2220300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0080&TPaperId=172831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휠체어에서 듣는 음악</a><br/>하태우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25년 06월<br/></td></tr></table><br/>제목이 특이했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이라. 이 책은 작가가 감상한 여러 음악 앨범들 중에 좋아했던 것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음악 에세이다. 그런데 작가가 세 살 때부터 근육병 진단을 받은 장애인이라는 점이 조금은 다른 점이랄까. 하지만 뭐 음악을 감상하는 데 신체의 장애가 (청각 장애가 아니라면) 뭐 그리 특별히 다를까.<br>물론 오랜 시간 장애를 안고 살아온다는 건, 자연히 사람의 사고와 심성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일 것이다.(당연히 그 영향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고) 그리고 이런 부분이 특정한 음악을 감상하는 데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걸까?<br><br><br><br> 책에 언급된 노래들은 대부분 밴드의 곡들이다. 헤비메탈도 있고, 락도 있었던 것 같고. 물론 조금은 잔잔한 장르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관심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덕분에 소개된 앨범 대부분은 모르는 곡들이었다). 일단 귀를 시끄럽게 만드는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까.<br>대신 노래를 들을 때는 가사에 자주 집중하는데, 또 이 점은 작가와 어느 정도 비슷하기도 하다. 책에 실린 몇몇 노래들에는 관심이 좀 생겨서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했다. 나중에 한 번 제대로 들어봐야지.<br>책은 각 앨범마다 대부분 두 페이지가 할당되어 있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그 앨범의 표지가, 오른쪽에는 그에 대한 작가의 설명과 감상이 담겨 있다. 한참을 페이지를 넘기다가, 요새는 앨범 이미지를 다들 이렇게 유화 느낌으로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앞서도 말했던, 유튜브로 찾아본 앨범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거 다들 사진으로 된 원화를 유화 느낌으로 바꾼 거구나. 여기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br><br><br><br> 모든 글은 결국 그것을 쓴 사람의 일부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제목부터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이 책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음악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일부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에 관한 생각도 아울러 묻어난다. 그런 부분들은 조금은 무거운 느낌이다.<br>억지로 밝은 척은 아니다. 그냥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남긴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나처럼 좋아하는 곡이 거의 없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5/50/cover150/k2220300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5504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하나님, 왜 이 세상을 그냥 두십니까? - [하박국, 폭력의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 -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박국서 강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2696</link><pubDate>Sun, 17 May 2026 22: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826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5540&TPaperId=172826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78/78/coveroff/k4420355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035540&TPaperId=172826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박국, 폭력의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 -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하박국서 강해</a><br/>크리스토퍼 J. H. 라이트 지음, 조덕환 옮김 / 시들지않는소망 / 2024년 12월<br/></td></tr></table><br/>오래 전(아마도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성경을 처음 읽고 있었을 때, 하박국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났었다. 이 사람 뭔데? 하는 느낌이랄까. 처음부터 하나님께 항의를 하더니, 허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보겠다는 꽤나 도발적인 선지자. 성경에는 정말 다양한 성격의 선지자들이 나오지만, 하박국만큼 이색적인 인물도 없었다.(물론 나중에 보니 요나도, 호세아도 특이한 인물이긴 하다)<br>이 책은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신학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금은 쉽고 편안하게 쓴 하박국 해설/강해서다.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신학적인 고찰이나 원어 연구 같은 내용은 적고, 대신 현실로의 적용 부분에 집중하는 느낌이다.<br><br><br><br> 하박국은 화가 나 있는 선지자가.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대로부터 2000 하고도 몇 백 년이 더 지난 오늘날도 현실은 비슷하다. <br>초강대국 미국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들을 군대로 때리고 있고, 나머지 나라들은 그런 미국이 두려워 대놓고 반대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진작 윤리적 파탄이 난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말 그대로 깡패다. 수많은 나라들 사이에서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세력들이 설치고, 심지어 제1당이 되기도 한다. 어중이떠중이들은 그런 파시스트들을 추종하며, 그들에게서 현실의 비참한 자신을 덮어줄 ‘가오’를 찾는다.<br>하박국은 왜 하나님이 이런 현실을 그냥 두고 보시느냐고 항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항의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대답해 주신다. 세상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훨씬 더 큰 규모로, 한 시도 쉬지 않고 진행 중이다. 눈을 크게 떠라. 우리도 종종 신앙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이 오직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맞춰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그런 잘못된 기대를 깨뜨리신다.<br>그러나 또 한 편으로 하나님은 하박국이 고발하고 있는 현실의 악한들을 가만두지 않으신다. 저자는 특별히 제국주의적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과 연결시킨다. 하박국 당시의 바벨론이 그런 제국주의적 폭력의 대명사였지만, 그런 세력은 하박국 시대 이후에도 수없이 등장했고,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들의 행위에 대해 심판을 하실 것이다.<br><br><br><br> 저자는 하박국의 주제가 두려움에서 확신으로의 전환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선지자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성격이 바뀌었다. 저항으로서의 두려움에서 신뢰로서의 두려움으로 변했다는 것. 여전히 선지자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두려움이 남아 있다. 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방법을 모두 알 수 없기에 그는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신뢰로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br>이건 오늘날의 많은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좀처럼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여전히 고민은 넘쳐나고, 걱정거리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애초에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문제들은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더 쉽게, 더 빨리 휘젓는다.<br>믿음은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빌고 구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하박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br>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하박국의 전체적인 내용을 잡아가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될 만한 책.]]></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78/78/cover150/k442035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478780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AI 시대, 목회자는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 - [바쁜 목회자를 위한 하루 10분 챗GPT 사용설명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9729</link><pubDate>Sat, 16 May 2026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97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030052&TPaperId=172797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83/88/coveroff/k0920300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030052&TPaperId=172797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쁜 목회자를 위한 하루 10분 챗GPT 사용설명서</a><br/>민진홍.백형진 지음 / 한사람 / 2025년 09월<br/></td></tr></table><br/>AI 전성시대다. 이제 교회에서도 어지간한 상황에서 AI를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다만 이 때의 ‘사용’이 늘 동일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유행을 따라 자신의 프로필 이미지를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보는 정도나 좀 뛰어난 검색엔진 정도로 사용할 것이고,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AI가 가진 잠재력을 좀 더 사용하기도 할 것이고.<br>이 책은 기본적으로 목회자들을 위한 AI,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GPT 사용법을 쉽게 소개하기 위해 쓰였다. 제목에도 붙어있는 “바쁜”이라는 수식어는, 왜 목회자들이 이런 도구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하는지 그 상황적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너무 바쁘다. <br><br><br><br>책은 말 그대로 초보자들을 위한 수준에 맞춰져 있다. GPT 계정에 로그인을 하는 것부터 내용이 시작되고, 기본적인 구조와 실제 입력한 프롬프트와 그 결과를 이미지로 실어두었다. 또 GPT로 교회 사역에 이용 가능한 영역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다.<br>책 말미에는 실제 목회 현장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을 특정 상황에 따른 프롬프트의 예가 140개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양육반 개강 알림 메시지를 작성하기 위한, 예배용 파워포인트 3장 구성 법 같은.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부분만 따서 적절히 사용해도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 절약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br><br><br><br>저자는 목회자들이 AI를 어느 수준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을 돌보고 양육하는 목회자의 본질적인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티타임을 하면서 저자가 만든 목회자를 위한 다양한 GPTs를 구경해봤는데, 꽤 많은 노력을 절약해 줄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는 게 한 눈에 와 닿았다.<br>물론 이런 도구들은 자칫 목회의 근간을 흔드는 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건 설교문 자체를 AI에게 맡겨서 작성하는 것이다. 앞서의 티타임에서 저자에게 이 부분을 질문했더니, 저자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런 행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만든 GPTs에는 그런 기능을 넣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정도. 물론 이 부분은 기술보다는 목회 윤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우려인, ‘과연 그렇게 얻은 여유를 목회를 더 잘 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역시 근본적으로는 윤리 문제다.<br>사실 요새는 다양한 AI작업 도구들이 나와서 꼭 GPT가 아니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다만 몇 개를 사용해 본 결과 대략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나 설정 등은 유사한 경우가 많으니, 처음부터 기초를 잡아 보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특히나 목회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한 번 손에 들어 보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83/88/cover150/k0920300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83885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문학/에세이</category><title>정치성향은 달라도 가족은 가족이니까 -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9223</link><pubDate>Sat, 16 May 2026 00: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92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632475&TPaperId=17279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19/20/coveroff/k5826324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632475&TPaperId=172792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좌파 고양이를 부탁해</a><br/>김봄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08월<br/></td></tr></table><br/>지난달에는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을 읽었으니, 이번 달에는 균형을 맞춰보자(?)는 심산으로 이 책을 골라봤다. 제목이 뭔가 말랑말랑하지만, 아무튼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br>그런데 책은 예상과 달리 본격적인 정치철학 책도, 그렇다고 정치판 인근에서 살아온 사람의 경험이 담긴 것도 아니다. 물론 책 말미에 작가가 당시 매력을 느꼈던 이낙연이라는 정치인(그 시절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물론 그 후의 갈지자 행보로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에 관한 한 두 개의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지만, 주되 내용이라고 하기엔 주변적 소재일 뿐이다.<br><br><br><br>책은 작가가 “손 여사”라고 부르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다.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난 저자는 유일하게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게 어머니를 비롯한 부모님의 큰 걱정을 사고 있다(나도 충분히 어떤 느낌인지 안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시고, 요 근래에는 이상한 유튜브 채널에 빠져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강하게 띠기도 하는 듯하다.<br>반면 딸 쪽인 작가 역시 딱히 사상적으로 투철한 “좌파”는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시절 대학을 다니던 작가는 강제적인 학과 통폐합을 경험하면서 권위적 행정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부당한 대우(성추행을 포함한)로 인해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해진 듯하다.<br>당연히 정치적인 주제로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책에도 몇 번인가 등장하는 정치적 대화는 금세 끊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끊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쩌면 책은 우리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의외로 가까운 관계에서도 좀처럼 진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작가의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닌 듯.<br><br><br><br>책 제목에 나오는 “좌파 고양이”란, 고양이가 좌파라는 말이 아니라 좌파인 딸이 키우는 고양이는 맡아줄 수 없다는, 조금은 심술이 섞인 어머니의 말에서 나온 표현이다. 결혼도 안 한 딸이 갑자기 한 달간 프랑스를 다녀와야 하니 고양이 좀 맡아 돌봐달라고 하니 하는 말이다. (이 또한 어떤 감정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br>사실 전체를 이끌어 가는 내용은 아니지만, 제목은 잘 붙였다. 덕분에 내가 손에 들게 되었으니까. 정치적 성향이 조금은 다른 엄마와 딸이 투덕거리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19/20/cover150/k5826324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919206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성령을 잃고 권력을 좇아온 한국교회 -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 12.3 계엄 이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7903</link><pubDate>Fri, 15 May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79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033164&TPaperId=172779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5/38/coveroff/k9020331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033164&TPaperId=172779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 12.3 계엄 이후</a><br/>권수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5년 11월<br/></td></tr></table><br/>저자들의 이름이 다 쟁쟁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로 이름을 올린 여섯 명 중 다섯 명의 책을 이미 최소한 한두 권씩은 읽어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의 맨 앞에 붙어있는 수식어처럼, 이 책은 12.3 계엄을 전후로 한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점들을 모았다.<br>첫 글에서는 권수경이 권력과 재물, 이념을 우상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고, 역사신학을 전공한 배덕만은 트럼프로 실체화된 미국 교회의 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진단한다. 옥성득은 한국교회 내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박성철은 이른바 ‘기독교 극우’의 출현을, 백소영은 한국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대한 비판을 각각 제시한다. 마지막 글에서는 장동민이 영성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제언을 한다.<br><br><br><br> 각각의 글들이 모두 읽어볼 만하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거의 모든 일에는 전사(前史)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러 부분에서 미덥지 못하게 된 건 어느 특정한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에서만 그 연유를 찾아서는 안 된다. <br>예컨대 국가조찬기도회(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라는 모임만 해도 그렇다. 국가조찬기도회라니, 우리나라는 국교가 헌법으로 인정되지 않는 나라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붙어 있는 ‘국가’라는 단어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정부측 요인들이 참여하거나 주최한다는 의미이고, 여기에 소위 재벌로 불리는 경제인들까지 잔뜩 참여하는 정경유착의 장으로 전락해버렸다.<br>박정희 시절 교회 길들이기와 정권 정당성 홍보를 위해 시작된 이 모임은 불과 얼마 전 이 모임의 회장이었던 한 건설사 회장이 1억의 뇌물을 김건희에게 바친 대가로 자신의 사위를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올린 것이 발각되었고, 부회장인 이배용 역시 마찬가지로 김건희에게 금거북이를 바치고 국가교육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임명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의 비위에만 집중하지만 애초에 이런 모임 자체가 문제였던 것.<br>여전히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 목사들은 여기에 초대되고, 기도나 설교를 하는 것을 무슨 명예인 양 착각하지만, 서울 시내의 비싼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하는 기도가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인, 경제인들을 만나고 온 게 자랑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드럽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왕궁으로 가는 것이(눅 7:25) 과연 그리스도의 길이겠는가.<br><br><br><br> 다만 이런 짧은 발제글의 모음집이라는 특성상,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은 분석과 정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흥미로운 주제들이 있어서 더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흐르는 글이 없고, 현실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면서 분석과 해법을 제안하려고 애쓰는 부분이 좋다. 여성문제와 관련된 챕터는 12.3 계엄이라는 큰 주제와 어느 정도 밀접한 지는 살짝 의문이지만.<br>책의 구성상, 그리고 내용상 마지막에 결론처럼 실려 있는 건 “한국교회 공적 영성의 재구성”이라는 글이다. 다른 글들이 주로 비판점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애쓰는 느낌인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성령에 대한 관심 환기, 영성의 회복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이 글 자체도 내용이 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긴 한데(더 잘, 더 많이 담으려는 욕심이 많았다), “성령이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지 못하고 체제에 밀착하거나 종속될 때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는 지적에 핵심이 담겨 있다. <br>결국 교회의 정치(권력) 종속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그건 교회가 속세를 지배했다고 알려진 중세에도 마찬가지였고,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바람처럼, 세상을 만드시고 뒤집으시는 성령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에는 좀처럼 반전, 혹은 부흥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15/38/cover150/k9020331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15382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내멋대로 영화평</category><title>[프로젝트 헤일메리] 인류보다 더 인간적인 외계인과의 우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7394</link><pubDate>Fri, 15 May 2026 0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7394</guid><description><![CDATA[<br>영화는 태양을 먹어치우는 아스트로파지라는 미생물로 인해 위기를 맞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12광년이나 떨어진 타우 세티로 보내진 주인공 그레이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그레이스는 홀로 이 미지의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로키라는(물론 이 이름은 나중에 붙여준 것) 외계인을 만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흥미진진해진다.<br>로키 역시 자신의 별에서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와 있었고, 두 과학자들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급조한 통역기로 서로의 말을 이해하게 되고, 특수한 재질로 된 장벽과 우주복으로 함께 다닐 수도 있게 된 그들. 마침내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았지만, 또 하나의 문제, 그레이스에게는 돌아갈 연료가 없었다. 이 임무는 처음부터 이른바 자살임무였던 것.<br><br><br><br> 외계인과의 협력.<br>영화의 대부분은 그레이스와 로키의 합동 작전에 할애된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른 존재와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영화 속에서는 종(種, species)마저 다른 상황이었으니 어려움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 낸다. 대개 외계인 하면 지구를 침략하고, 싸우고 하는 이야기들이 주가 되는 영화계에서 꽤 신선한 전개다.<br>한편으로 외계인과도 가능한 협력이 정작 인간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안 되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툭하면 혐중을 일삼는 머저리들이 널렸고, 온갖 음모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상대를 저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공당의 대표라는 인간이 나와서 공개적으로 대통령을 향해 욕설에 가까운 언사를 내뱉을 정도니 말 다했다. 나라 밖 사정도 마찬가지고. 헐리우드에서 떠들어대는 것과 달리, 우리는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들끼리 싸우다 멸망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br><br><br><br> 자기희생.<br>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후반부에 나온다. 마침내 아스트로파지의 해결책을 갖고 지구로 돌아가려던 그레이스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갈 연료를 날려버리고 만다. 자신만 돌아가거나 아니면 해결책만을 담아 보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를 보면 그레이스는 남기로 했나 보다.<br>사실 그레이스는 이 임무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우주선을 발사하기에 적합한 시간이 곧 다가왔고, 그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고(사실 우주인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미심쩍다), 결국 그를 강제로 잠을 재워 보냈던 것. 심지어 애초에 돌아올 수 없는 임무에 말이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헤일메리란, 미식축구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때 상대편 진영을 향해 있는 힘껏 멀리 공을 던지는 작전을 말한다. 말 그대로 도 아니면 모라는 작전.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계획이다.<br>그렇게 지구로 돌아갈 연료 없이 보내진 그레이스. 어떻게 보면 지구는 그를 버렸고, 그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지구를 위해 어렵게 얻은(로키가 자신의 연료를 주어서) 돌아갈 기회를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독서모임에서 이 주제를 놓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전쟁과 같은 극한적 상황이라면 자기희생을 충분히 할 수도 있다는 대답들이 많았다. 아직 세상은 살만 한 건가.<br><br><br><br> 그가 돌아온 이유.<br>영화의 결말이 꽤 인상적이다. 결국 지구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그레이스는 로키에게로 돌아왔고, 그레이스에게 연료를 주어서 6년은 더 연료가 만들어질 때까지(아스트로파지가 분열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로키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어쩌면 그는 지구에 있는 인간들보다 바위 덩어리처럼 생긴 로키에게서 좀 더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br>생각해 보면 또 그게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결국 지구인들이라는 건 가기 싫다는 사람에게 약까지 먹여 잠재워서 돌아올 수도 없는 임무에 보내버린 것들이니까. 그 뒤에 아무리 인류의 운명 같은 묵직한 무엇인가가 얹혀 있어도, 본인이 싫다는 데 억지로 강요하는 게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터. 그에 비해 로키는 처음 만났음에도 (심지어 종도 다른데도) 그레이스를 위해 6년이라는 시간을 추가로 더 기다리기로 했으니까.<br>가끔 ‘동물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하는 류의 말들을 한다.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어지간히 컸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실제로는 동물들 사이에서도 (사람 입장에서 보면) 배신이 자주 일어나긴 하지만, 그만큼 신뢰를 주고 또 받는 일을 우리가 갈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br><br> 그리고 여기에 아주 깜찍한 꼬마 외계인들이 잔뜩 등장해 시끌벅적한 학교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편안하게 나올 수 있었으니까.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5/pimg_7495781145124367.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739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 일상</category><title>기독교 출판 3세대 막내의 고군분투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5875</link><pubDate>Thu, 14 May 2026 12: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5875</guid><description><![CDATA[<br><br>화려한 영상과 AI가 쏟아지는 시대 속에서, 묵묵히 '문서 사역'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큰 돈은 못 벌어도 이 사역을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고 말하는 '3세대 막내' 출판인의 고민부터, 단순히 종이책을 넘어 릴스, 쇼츠, 웹툰으로 확장되어야 할 기독교 콘텐츠의 미래까지.<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힘을 북돋는 식사로 바꾸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5869</link><pubDate>Thu, 14 May 2026 12: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7586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931396&TPaperId=172758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51/40/coveroff/k78293139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스트레스를 푸는 식사에서 힘을 북돋는 식사로 바꾸기 위해서는 몸이 설탕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한다. 갈망을 억제하는 미네랄, 지방 연소 모드로 전환해서 탄수화물 욕구를 줄이는 건강한 지방, 지속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적절한 단백질, 그리고 만족감, 보상, 편안함을 계속 느낄 수 있도록 대체 수단을 마련하는 생환 습관 개선 등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스위치를 끄고 켜는 식이 아니다. 좋은 음식을 더 많이 섭취하여 이제까지 먹었던 나쁜 음식을 자연스럽게 줄여 나가는 점진적 과정이다.<br>- 대릴 지오프리, 『설탕 중독』 중에서<br><br><br>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51/40/cover150/k7829313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51403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천국에서도 끝까지 챙기려는 사람의 최후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06</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9458</link><pubDate>Mon, 11 May 2026 0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94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2694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C. 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6장을 함께 읽으며, 인간이 왜 끝까지 움켜쥐려 하는지, 왜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것을 더 챙기려 하는지를 살펴봅니다.​천국은 누리는 곳인데 우리는 왜 늘 소유하려 할까요? 루이스가 그려낸 한 욕심 많은 유령의 모습 속에서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봅니다.<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기독교인은 마음챙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영성챙김 - 내 안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9448</link><pubDate>Mon, 11 May 2026 00: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94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3661&TPaperId=172694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9/48/coveroff/k1420336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033661&TPaperId=172694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성챙김 - 내 안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a><br/>채정호 지음 / 선율 / 2025년 11월<br/></td></tr></table><br/>무려 40여 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저자는 환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영성챙김”이라는 방식을 발견했다. 이 용어가 좀 생소하다. 영어로는 Spiritfulness라고 표기하는데, 어떻게 봐도 신조어인데, 비슷한 느낌의 단어로 “마음챙김”이라는 말이 요새 여기저기서 들리긴 한다.<br>사실 이 두 개념은 거의 비슷한데 강조점이 약간 다르다. 사실 기존의 정신과 치료의 주된 방향성은 정신적 고통을 회피하거나 억제하는 데 있었다면, 마음챙김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주의, 알아차림, 수용이라는 단계는 현재의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다분히 종교적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이 마음챙김은 불교적 수련법의 하나로 시작되었다고 본다.<br>이 책에서 말하는 ‘영성챙김’도 사실 비슷한 방법론과 방향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마음챙김이 가져다주는 정신, 심리치료적 효과를 유사하기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자신을 살피는 것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복원하고, 영적인 회복을 꾀한다는 면에서 차별점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br><br><br><br> 책 전반에 걸쳐서 이런 차별점에 대한 강조가 자주 보인다. 다만 이건 “영성챙김”의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방법론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일종의 방어논리처럼 느껴진다.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이런 시도를 이교와의 혼합주의라고 경계 내지는 비난하고 있기 때문.<br>그런데 사실 이런 접근은 애초에 자기모순적이다. 기독교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얼마나 될까? 인류 역사만 해도 문자 기록이 남지 않은 선사시대를 제외해도 5~6천 년은 된다. 기독교가 출현하기 이전의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 가운데 영향을 받지 않은 게 몇 개나 있을까. 실제로 기독교 예배 가운데도 이미 근원을 따져보면 상당히 멀리서 온 요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br>물론 명백히 이교적 영향이 남아있는 것들이라면, 효과가 좋으니 무조건 받아들이자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반복해 입증하려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는 시간은 기독교 역사 가운데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신앙의 방식 중 하나다. 이른바 “영성챙김”이란 누구나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이 방식을, 몇 가지 도구를 통해서 도와주려는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br><br><br><br>관건은 ‘익숙지 않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서유럽의 가톨릭 신앙의 결을 이어받은 주류 개신교 신학은 처음부터 조금은 이지적인 측면에 기운 상황이다. 나도 여기에 익숙해 있기에, 책 후반부에 실려 있는 열세 가지의 영성챙김(기독교적 명상?)의 실제 예를 보면서 어색함을 느꼈다. 그런데 현대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정교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방식의 영적 수련이 널리 퍼져 있기도 하는 걸 보면, 함부로 폄훼하는 것도 “기독교적 태도”는 아닌 것 같다. <br>우리가 성경을 익히고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일상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데에는 이 책에서 제안되고 있는 방법론이 나름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br>물론 신비주의자의 항해가 언제나 바른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다는 C. S. 루이스의 경고도 항상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적절한 지도(신학)는 필수적인 요소이고, 이 부분에서는 이른바 영성챙김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영적 우월함 같은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이 책의 저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br>실제로 목회적 상담을 하다보면, 단순히 이론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론에 충실하면서도, 개인의 삶에 하나님을 짙게 경험할 수 있는 훈련법들이 아울러 제시된다면 분명 기독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9/48/cover150/k1420336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894813</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라시드 앗 딘의 『집사』의 요약, 기대와 아쉬움 사이 - [몽골제국 연대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7273</link><pubDate>Sun, 10 May 2026 0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72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932687&TPaperId=172672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31/51/coveroff/k40293268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932687&TPaperId=172672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몽골제국 연대기</a><br/>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24년 08월<br/></td></tr></table><br/>오늘날 이란과 이라크에 해당하는 서남아시아는 과거 몽골제국의 영역이기도 했다. 칭기즈칸의 손자였던 훌라구가 군대를 몰고 이슬람 왕조인 아바스 왕국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가 일 칸국이다(훌라구 울루스라고도 불린다). 몽골 제국 시기 워낙에 넓은 땅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당시의 교통과 통신 수단으로는 직할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각 지역을 ‘울루스’라는 이름으로 칭기즈칸의 일족들이 나누어서 지배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각 울루스들의 독자성이 강화된다.<br>그 중 하나인 훌라구 울루스도 마찬가지였는데, 소수의 정복왕조 세력이 다수의 현지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일종의 문화적 공작이 필요하다. 자신의 왕조에 정통성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그리고 이 때 역사가 꽤 중요하게 사용된다. 라시드 앗 딘이 쓴 “집사”는 바로 그런 일환으로 쓰인 책이다. 훌라구 울루스의 일곱 번째 카안인 가잔 시대에 재상으로 활동했던 학자 라시드 앗 딘은 몽골제국의 역사를 모아 이 책을 썼다.(흥미롭게도 그가 유대인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br><br><br><br> 사실 이 책은 “집사”의 요약본이다. 원래의 “집사”도 같은 역자인 김호동 교수에 의해 다섯 권의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는데, 워낙에 방대한 책인지라 이렇게 보통 사람들을 위한 조금은 다이제스트한 느낌의 책을 따로 냈나 보다. <br>사실 나쁘지 않은 기획 의도였는데,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기대를 하며 손에 들었을까를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집사” 같은 책을 보려고 하는 건, 단순히 몽골제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라기보다는(그건 요약적으로 잘 정리해 둔 인터넷 자료가 널려 있다) 그것을 다루는 12~13세기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읽기 위해서가 아닐까. <br>그런데 이렇게 요약을 해 버리면, 그런 특징이 거의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오히려 서술에서 조금은 올드한 느낌까지지 들기도 하고. 역자인 김호동 교수의 내공을 알기에, 차라리 역자의 눈과 입을 통해서 몽골제국사를 정리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쪽이 좀 더 흥미롭게 와 닿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원 저자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쓸 수 없었던 내용들을 현대의 학자들이 분석해 본 내용들을 더했더라면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을 듯하다.<br><br><br><br>기획의 아쉬움과는 별개로 페르시아어 사본과 러시아어, 영어 번역본을 두루 참고해서 이런 책을 번역해 낸 역자의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다시 그 웅장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br> 덧. 293쪽 본문 첫 번째 줄에 오타가 하나 보인다. “쿠빌라이”를 “쿠빌리아”라고 적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31/51/cover150/k40293268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31515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성공을 우상으로 삼았다는 징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6183</link><pubDate>Sat, 09 May 2026 1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26618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128285&TPaperId=172661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904/21/coveroff/8953128285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성공을 우상으로 삼았다는 한 가지 징후는 성공이 가져다주는 거짓된 안전감이다. 가난한 이들과 소외층은 고생을 그러려니 하며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냉혹하고 덧없다’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역경에 훨씬 더 충격을 받고 아연실색한다.<br>- 팀 켈러,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중에서<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904/21/cover150/895312828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904216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