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노란가방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을 읽는 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1 Jul 2026 19:00:49 +0900</lastBuildDate><image><title>노란가방</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9578114217064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노란가방</description></image><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빅테크 규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2417</link><pubDate>Mon, 20 Jul 2026 1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24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837290&TPaperId=174024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82/75/coveroff/k56283729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민주주의의 힘은 우리 대부분이 피하고자 하는 결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데 있다. 수도꼭지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이 흘러나오게 해주고, 음식을 먹고 병에 걸리는 일이 없게 해주고, 도로에서 적절한 안전 의식을 갖고 차를 운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정부 규제의 덕분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의 자리가 걸려 있을 때에나 나설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대표들이 지금 가장 중요한 기술적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투표소에서 그들을 벌할 준비를 해야 한다.<br>-&nbsp;롭 라이히, 메흐란 사하미, 제러미 M. 와인스타인, 『시스템 에러』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82/75/cover150/k5628372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82759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빨간 도마뱀을 떼어내면 벌어지는 일 |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1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0352</link><pubDate>Sun, 19 Jul 2026 1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03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4003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사랑은 언제나 선하고 거룩한 감정일까요? C. 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 11장에서 자녀를 놓지 못하는 어머니와 어깨 위의 빨간 도마뱀을 통해, 사랑과 욕망이 어떻게 소유욕과 우상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줍니다.<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입시 경쟁 속에서 기독학부모로 살아가는 용기 - [기독학부모로 살아가기 - 공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환호하는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8698</link><pubDate>Sat, 18 Jul 2026 1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86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130076&TPaperId=173986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7/8/coveroff/k7921300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130076&TPaperId=173986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독학부모로 살아가기 - 공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환호하는 삶</a><br/>김정준 지음 / 한낮의단비 / 2026년 06월<br/></td></tr></table><br/>몇 년 전 흥미로운 기독 청소년 소설을 냈던 한낮의단비 출판사에서,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교육현실 속에서 기독 학부모가 기억해야 할 내용들을 담은 책을 냈다. 책의 저자는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교목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 목사다.<br>원래 대안학교는 입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시작된 대안적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대안학교가 또 하나의 고액입시학원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인가를 받지 않은 경우라면 교육과정에서의 균형 따위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무슨무슨 국제학교니 하는 이름을 붙여놓고 아예 유학전문학원 같은 느낌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여기에 ‘기독’이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예배를 몇 번 더하면 기독교 학교가 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고.<br>이 책의 저자는 그런 엉터리 개념들을 싹 치운다. 기독 대안학교라면 애초에 운영 방식과 목표, 지향점부터 달라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좋은 기독교적 교육은 학교 차원에서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의 생각도 참 중요하다. 책은 저자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또 학부모들과 함께 씨름하면서 기독교인으로 아이를 키워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점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놓는다.<br><br><br><br>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건 이른바 성적(결과)지상주의다. 학생이니 좋은 성적을 거둬서, 이름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최상의 가치라고 여기는 생각은 이미 우리 사회 뿌리깊은 신화가 되었다. 누가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하면 교회에서도 칭찬이 그치지 않고, 심지어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학력부터 보는 게 오늘날 교회의 한심한 수준이다.<br>내가 살고 있는 대치동은(한 구석이다) 그런 성적지상주의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불든, 일요일이든 공휴일이든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학원으로 향한다. 금요일 오후면 아이들이 단체로 버스에서 내려 주말 내내 학원에서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방학이 되면 아예 지방에서 올라와 숙식을 하며 학원수업에 참여한다고도 한다.<br>세상이 이럴진대, 스마트폰도, 사교육도 하지 않는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놓고 안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용기는 바른 앎과 좋은 공동체(에서의 격려)가 필수적인 것 같고. <br><br><br><br><br> 그리스도인은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책상 앞과 교실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여전히 심지어 기독교 출판계 안에서도 복 받아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상황에서, 이런 목소리가 좀 더 커지고 많아진다면 우리의 상황은 조금 더 나아질수 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7/8/cover150/k7921300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7085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판타지와 종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6897</link><pubDate>Fri, 17 Jul 2026 14: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68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864455&TPaperId=173968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2/47/coveroff/895986445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공상과학소설에서 종교가 다뤄지는 것이깊이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무관심해서도 안 될 일이다.그러나 초기 거장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그 반동으로 판타지 작가들은더욱더 종교와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br>- 샤나 코히 엮음, 『다시 찾아간 나니아』 중에서<br><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2/47/cover150/89598644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479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작은 교회를 위한 AI 찬양 제작 안내서 - [수노 한 스푼, 찬양 한 그릇 - 반주자 없는 교회를 위한 Suno AI 음악 제작 실무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79</link><pubDate>Thu, 16 Jul 2026 17: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9241&TPaperId=173954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6/42/coveroff/k1121392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9241&TPaperId=173954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노 한 스푼, 찬양 한 그릇 - 반주자 없는 교회를 위한 Suno AI 음악 제작 실무서</a><br/>이지철 지음 / 세움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기독교회의 예배에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이른바 찬양은 가장 이른 시기의 예배 요소이기도 했고, 오늘날 찬양은 어쩌면 가끔은 설교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 가운데로 옮겨주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다만 찬양 역시 음악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바, 음악적 재능이라든지, 자원이 부족한 경우에는(작은 교회에는) 충분히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br>AI가 발달하게 되면서 적어도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드는 비용이 상당히 낮아졌다.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가 없더라도, 대충 느낌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수노(SUNO)”가 그 중 하나다. 저자는 이 AI의 사용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br><br><br><br> 사실 이미 챗GPT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의 사용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면, 이런 종류의 대화형 AI도구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수노는 음악을 만드는 데 특화된 서비스고, 작동 방식은 여느 AI 서비스와도 비슷하다. 책에는 프롬프트가 영어로 안내되어 있는데, 리뷰를 쓰기 전에 직접 한 번 제작해 보니 우리말로도 간단한 배경음악 제작이 금세 가능했다. 물론 확실한 결과물을 위해서는 영어로 입력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한 지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br>저자는 이 도구가 아직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AI 서비스의 장점인 개인화된 결과물은, 개별 교회의 사정에 맞춘 찬양을 만들어서 좀 더 효과적인 교육과 공동체 소속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고, 작은 교회들에서도 충분히 시도해 볼만해 보인다.<br>다만 음악은 음악인지라, 최소한의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하고(책의 내용이 대부분 그걸 설명하는 것들이다), 특별히 이 AI서비스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가진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통역능력’이 필수적으로 보인다.(이건 기술로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해 보이는데, 아직 그만큼 올라오지는 않은 듯. 곧 올라오겠지만) 이 부분에서 조금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앞서 내가 시도해 본 것처럼 우리말(한글)로도 어느 정도 생성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일단 도전하면서 감을 익혀나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br>재미있는 도구를 소개받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6/42/cover150/k1121392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76422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최근 팔로워가 조금 늘고 있는데 그 정체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46</link><pubDate>Thu, 16 Jul 2026 17: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4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954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최근에 정치와 종교에 관한 책("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아바서원)을 가지고 영상을 좀 만들어 보고 있다. 책의 순서에 따라, 최근에는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 되었는데....<br>그걸 또 짧게 쇼츠/릴스로 만들어서 올리다 보니, 쇼츠에 따라서 정부의 간섭을 경계하는 내용으로도, 반대로 교회가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도 각각의 영상이 만들어진다. <br>얼마 전부터 인스타그램이든, 페이스북 (구름책방 페이지) 팔로워든 조금씩 는다. 누군가 하고 들어가 보면 이른바 극우 사상을 담은 게시물을 올린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아마도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는 걸 보고 우리 편이다 싶었나 보다.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둬 보기로 했다. 혹여나 한 명이라도 책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니까.(맞팔은 안 한다)<br>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증감도 재미있다. 원래 느릿느릿 가고 있는 채널이긴 한데, 하루에 너댓 명씩 구독을 했다가 또 어느 날에는 그만큼 쭉 빠진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영상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짐작은 된다.(틀릴 수도 있다)<br>양편의 공격을 다 받곤 한다. 한 쪽에서는 개독이라고 욕설로 댓글을 날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좀 더 신앙에 충실하지 않다(?)고 비판을 받는다. 전쟁 중에서도 양면 전쟁만큼 어려운 게 없긴 한데, 물론 어느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없다.<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프랑스혁명 전야에서 오늘의 포퓰리즘을 보다 - [대서사의 서막 -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3042</link><pubDate>Wed, 15 Jul 2026 1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30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434192&TPaperId=173930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63/51/coveroff/k8024341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434192&TPaperId=173930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대서사의 서막 -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a><br/>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5년 12월<br/></td></tr></table><br/>프랑스 혁명을 다룬 10권짜리 대작의 시작이다. 책은 학자 특유의 조금은 느릿한(혹은 학문적인 예비적 고찰) 템포로 시작된다. 뭐 이 정도 책을 계획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도 책 한 권 정도는 써야 할 것 같긴 하지만.<br>1권에서 다루는 건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앙시엥레짐(구체제)의 모습이다. 고대 말 프랑크족의 침입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역사는, 샤를마뉴와 그 후계자들 중 한 명을 따라 이어진다. 초기에는 그리 왕권이 강하지 않았지만, 여러 명의 왕들이 노력한 결과 서서히 왕령을 넓혀가고, 권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책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의 구체제에 관해 차근차근 분석한다. <br>왕실과 왕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2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흔히 삼부회라고 불리는 전국신분회 소집까지의 사건들을 설명한다. 잘 아는 것처럼 그 시기 프랑스는 소수의 성직자와 귀족들이 절대 다수의 평민들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평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경제문제(밀가루 파동)까지 더해지면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타오르게 된다. 역시 먹고 사는 문제는 큰일을 부른다.<br><br><br><br>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되곤 한다. 이미 지난 세기 급속한 성장으로 선진국이 된 서구를 중심으로 극심한 성장률 저하가 일어나고 있고(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그 결과 혁명까지는 아니라도 이전 시대라면 결코 선출되지 않을 것 같은 충격적인 지도자들이 여기저기 뽑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트럼프다.<br>날마다 최악을 갱신하고 있는 이 새로운 지도자는 강력한 포퓰리즘 구호로 집권을 했지만, 정작 당선 후에는 지지자들 보다 자기 계좌를 채우는 데 열성적이다.(프랑스혁명 때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수 조 원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는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이 역시 혁명 때도 일어났던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혁명의 전조를 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포퓰리즘 혁명.(좀 더 익숙한 용어로는 극우의 난동)<br><br><br><br> 앙시엥레짐에서 단지 왕의 무능력만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재정지출을 건전화해야 한다는 신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등 국가 운영에 나름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기도 했다.(물론 그 정책이 실패가 결과적으로 밀가루 파동을 일으켰지만) 그리고 여기서 저자는 고등법원의 법관들에 관한 언급을 한참 이어간다.<br>이들은 이른바 법복귀족이라고도 불리는 문신들로, 왕에 대한 다양한 봉사의 대가로 귀족 신분을 얻게 된 이들이다.(판사의 역할을 함께 맡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과 달리 법관의 지위는 상속이 가능했고, 그 덕분에 귀족 신분을 대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왕의 충실한 신하이기만 한 것 같지만, 또 이들은 다양한 수단으로(예를 들면 왕의 결정이 법에 어긋난다는 내용을 담은 상소 등으로) 왕을 압박하고 견제할 수 있었다.(물론 이게 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br>비유하자면 조선 시대 중신들과 국왕의 관계와 비슷했는데, 분명 신하들은 왕이 임명하지만, 왕이라고 해서 신하들의 의견을 그냥 다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로서 왕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그 아래서 왕의 실정에 저항하지 않고 특권만 누려온 귀족들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장관인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는 한심한 이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이유다. 임면권자라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면, 단두대로 향할 수밖에.<br>시간이 나는 대로 차근차근 한 권씩 손에 들어볼 요량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163/51/cover150/k8024341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63511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기독교의 적들이 남긴 솔직한 초기 교회사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 로마 세계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8513</link><pubDate>Sun, 12 Jul 2026 23: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85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833354&TPaperId=173885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60/93/coveroff/k8428333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833354&TPaperId=173885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 로마 세계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교</a><br/>로버트 루이스 윌켄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3년 06월<br/></td></tr></table><br/>저자는 초기 기독교 시기(2~4세기 정도)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이 남긴 언급에 집중한다. 저자가 선별한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사상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남긴 기록엔 일차적으로 왜 당대 어떤 이들이 기독교를 멸시하고 평가절하 했는가 하는 반감을 읽게 되겠지만, 또 그 안을 잘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현실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br> 가장 먼저 나오는 인물은 행정관(총독)이었던 소 플리니우스다. 그는 당시 황제인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인들을 언급하는데, 그는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와 삶에서 특별히 문제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정무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기를 거절했다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다.<br>플리니우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는 기독교를 미신이라고 적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류를 증오한다고 쓰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기독교를 당대 사회와 종교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br><br><br><br>기독교에 대한 좀 더 철학적인 공격도 있었다. 여기에는 2세기 후반 의학자/의사로서 잘 알려진 갈레노스가 먼저 나온다. 그는 기독교를 당새 하나의 철학 학파(당시의 철학 학파는 일종의 종교단체와 비슷했다)로서 여기고 있었고, 비록 믿음을 뒷받침하는 지적 기반은 부실했으나 자기 수양과 절제의 삶을 살아가는 집단이라고 평가했다.<br>오리게노스의 반박문으로 잘 알려진 켈수스는 좀 더 교리적인 차원에서 기독교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내용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했던 그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와 종족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그러니까 어떤 지역이나 어떤 민족은 그들의 신을 갖는다는) 관념을 파괴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한다.<br>기독교에 대한 지적 공격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에 활동했던 철학자 포르퓌리오스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책에는 이 내용이 꽤 길게 설명되는데, 성경의 해석과 이해에 관한 차이는 그것이 계시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애초에 공격하는 쪽에서도 완벽한 논리적 근거를 가져다 대기는 쉽지 않다. 특별하 포르뤼리오스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하나님으로, 유일한 구원의 길로 여기는 부분을 못마땅하게 느꼈던 것 같다.<br>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인물은 배교자 황제 율리아누스다. 그는 제국 내에서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유대교까지 포용했지만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는 박했는데,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나왔다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이 기독교에 위협이 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사실 이 부분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좀 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은데, 학자들은 이런 심리까지는 딱히 신경을 많이 쓰지 않으니까.<br><br><br><br>책은 처음 3세기 동안 기독교가 꽤 오랜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이 투쟁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지적 공론장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또, 저자도 지적하듯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300년에 걸쳐 끊임없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독교 사상이 그저 웃고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br>대적자들의 주장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이미지를 재구성해 본다는 시도가 꽤 흥미롭다. 다만 그런 종류(그러니까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의 글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장은 어느 정도 염두하고 봐야 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60/93/cover150/k8428333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960931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정치와 종교는 왜 다시 충돌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7872</link><pubDate>Sun, 12 Jul 2026 1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78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878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오스 기니스의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3장 “깨어진 해결책”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미국식 해법이 왜 오늘날 다원주의, 국가권력, 분리주의 논쟁 속에서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이번 영상에서는 이 문제를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살펴보며, 교회가 공적 광장에서 사라지지도 지배하려 하지도 않고 자유와 설득의 방식으로 서야 할 이유를 함께 생각해 봅니다.​<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정치적 입장을 선택하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5107</link><pubDate>Fri, 10 Jul 2026 2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510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434493&TPaperId=173851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203/96/coveroff/s552434493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보수와 진보는 고리타분하고 모호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며,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평생 한 가지의 정치적 성향만을 지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생 보수이고 평생 진보인 사람은 정치인밖에 없다. 시민은 자유롭다. 인생 속에서 변화하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에 따라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면 된다. 이제 미디어나 타인의 말, 혹은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고, 나와 사회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적 입장을 선택할 때다.<br>-&nbsp;채사장, 『시민의 교양』 중에서<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203/96/cover150/s55243449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203964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조국씨 자꾸 왜 그러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3850</link><pubDate>Fri, 10 Jul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3850</guid><description><![CDATA[<br><br><br>최근 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사용한 사투리 표현에 좌표를 찍으며 일베식 표현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말 끝에 "~노"라는 어미를 붙이는 일베 특유의 조롱 문화(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투를 조롱하는 의미가 담겼다)를 그 멤버가 사용했다는 것.<br>물론 그 비판은 그 멤버가 일베 사용자라는 의미는 아니었고, 일베식 표현이니 사용하지 말라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일베식 조롱 표현/문화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며칠 전에는 노무현재단의 이사까지 맡고 있는 조수진 변호사(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자진 사퇴했다)까지 여기에 한 마디를 보탰다. 나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그런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br>차근차근 따져보자. 해당 아이돌 그룹은 이른바 '중소 기획사'에서 만든 그룹이었다. 데뷔한지 1년이 넘었지만, 최근에서야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른바 역주행 중. 그 가장 주된 이유는 유튜브 채널을 통한 친근감 어필이었다. 멤버 중 거제시와 경주시 출신이 있었고, 오늘은 한 번 사투리를 원없이 써 보자는 콘셉트로 영상을 찍었는데, 이게 대박이 난 거다. 도도해 보이는 외모에 친근한, 시골 할머니나 쓸 법한 사투리로 대화를 하니 그 갭이 재미있었던 거다.<br>당연히 이들이 사용한 사투리에는 어색한 부분도 있다. 아무리 지방 출신이라지만 표준어 사용을 오랫동안 익혀왔을 것이고, 서울 공화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고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또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삶의 정황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데, 어르신들의 상황과 지금 상황에는 차이가 있으니, 애초에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의도적으로 특정한 사투리 표현을 사용해야 할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br>조국 씨('씨'는 경칭이다. 그 진영에서 예전에 자주 주장했던 내용이다)의 사투리 저격은 이런 모든 정황을 무시한 채, 그저 본인 귀에 거슬리는 표현을 문제 삼는 느낌이다. 물론 나 역시 일베는 우리 사회의 곰팡이 같은 존재라고 본다. 그건 혐오를 먹이 삼아 사회를 부패시키는 집단적 광기다. 그러나 곰팡이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심각하게 곰팡이가 핀 것들은 내다 버리는 식으로 처리를 할 수 있겠지만, 공기 중에 수없이 떠 다니는 균을 완적히 박멸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정한 영역에서 특정한 기간 동안은 어찌어찌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무균실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br>이번 저격은 일차적으로 사투리 사용자 일반을 일베로 몰아가는 대단히 정치인답지 못한 공격이었다. 이건 너무나 쉬운 계산 결과다. 당장에 경남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죄인가? 당연히 아니다.<br>애초에 이런 비판을 하려면 해당 아이돌이 해당 표현을 사용했을 때, 혹은 이전에라도 그 그룹이 보여주는 분위기가 일베스러웠을 때에야 조금이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그 표현이 조롱의 의미를 담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 불거졌던 배제고의 일베응원 사태와도 차이를 보인다. 그쪽에서는 명백하게 상대팀은 광주일고를 자극하고 도발하기 위해 해당 구호를 집단적으로, 경기와 직접 상관없이 무맥락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질이 나빴다. <br>여기에 나도 경상도 사람인데 '무섭노' 따위의 표현은 사용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는 조수진 변호사의 말은 그냥 무너지는 배에 식량이라며 짐을 실은 격이었다. 해당 표현은 사투리를 기반으로 조금은 과장되게 상황을 표현하는 콘셉트였다. 실생활에서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건 중요하지 않다. 웃자고 한 말이니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투리를 가지고 창의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려 했다는 거다. <br>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잘못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발로일까?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바로 이런 오만함 때문이었다고 본다. 윤석열이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을 때도, 자신이 임명한 사람이니 (어쩌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인지) 끝까지 두었다가 그 사달이 났다. 비슷한 케이스는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도 있었고. 정부 정책을 건건히 딴지 걸고, 아예 항명을 하는데도, 내가 임명했으니 틀렸을 없다는 고집으로만 비춰졌었다.<br>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실망과 충격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혁신당은 다음 총선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0/pimg_639192726194366878.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385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amp;quot; 읽기</category><title>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정말 저주받을까? |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읽기 (0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341</link><pubDate>Thu, 09 Jul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34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635844&TPaperId=173823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off/k2526358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복을 받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구절을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단순한 영토 소유권의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 그 땅에 사는 백성에게 정의와 언약의 책임을 요구합니다.&nbsp;​오늘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성경의 일부 구절만 떼어 현대 정치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과연 바른 신앙일까요?&nbsp;<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150/k252635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966306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음바페를 응원하면서 극우에 투표하는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214</link><pubDate>Thu, 09 Jul 2026 11: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214</guid><description><![CDATA[<br>월드컵 경기를 드문드문 보면서 느낀 건, 참 흑인 선수 비율이 높구나 하는 점이다. 아프리카 대표팀의 경우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유럽 대표팀들에도, 북유럽 팀들에도 흑인선수 비율이 적지 않다. <br>당장 프랑스만 하더라도 무려 21명의 흑인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대표팀 대다수가 흑인인 셈이다. 음바페도, 뎀벨레도 다 흑인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프랑스에서 당장 인종차별주의 정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 인종주의 정당에 표를 주면서, 자국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흑인 선수들을 보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br>프랑스만이 아니다. 어지간한 유럽팀에는 흑인선수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스포츠의 미래는 흑인들에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남미 국가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축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흑인 비중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이런 쪽에서 아직도 좀 벽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역시 아시아 국가들. 카타르처럼 귀화자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리는 나라가 아니면, 흑인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br>뭐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게다. 당장 흑인들의 이민이나 귀화가 굳이 거리가 먼 아시아쪽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언어적 문제도 있고), 특별 귀화 같은 경우는 그에 맞는 직접적인 재정적 보상이라든지, 국제대회의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이라든지 하는 게 기대되어야 하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일본만 해도 주전 골키퍼가 흑인 혼혈 선수인 걸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br>한편 프랑스에는 공식적으로 인종에 따른 선수 분류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인데, 세지 않으면 문제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인종차별은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심각하면서.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9/pimg_639191917213315108.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21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나를 잊을 때 얻게 되는 진정한 자유 - [복음 안에서 발견한 참된 자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1239</link><pubDate>Wed, 08 Jul 2026 21: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12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931279&TPaperId=173812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47/15/coveroff/k7929312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931279&TPaperId=173812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복음 안에서 발견한 참된 자유</a><br/>팀 켈러 지음, 장호준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10월<br/></td></tr></table><br/>아마도 한 편의 설교문 정도 될까 싶은 얇은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왜곡된 본성이 기본적으로 공허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비교우위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의 종착점은 교만이다. 당연히 그것으로는 우리 삶이 본질적으로 채워질 수 없다.<br>그리고 여기에서 바울의 예가 사용된다. 그는 사람들의 눈도, 심지어 자기 자신의 눈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를 죄인의 괴수라고 소개한 인물이지 않던가. 그는 아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판단)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건 다른 말로 ‘겸손’이라고 할 수 있다.<br>바울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그에 대한 평가를 끝내셨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 평가가 우리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게 된다. 그리고 이럴 때 비로소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br><br><br><br>“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C. S. 루이스도 비슷한 내용을 강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끝내 천국으로 향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초입에서 한 영혼은, 살인을 저지른 생전의 자기 부하직원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인도하는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고 외면하기까지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사람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 그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br>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를(혹은 나만) 신경 쓰고 있는지 모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실수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데,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 상황도 결국 여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br>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시선을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돌릴 수 있을까? 아쉽게도 책에는 이 부분에 관한 실천적 도움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바르게 깨닫기만 하면(인식론적 전환) 그런 사람이 될 것(존재론적 전환)이라는 기대인 듯하다. 물론 바른 앎은 진리를 따르는 삶에 있어서 참 중요한 일이지만, 결국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다면, 극단적으로 그저 무엇을 아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 된 것인 양 착각할 수도 있다. <br><br> 복음의 중심 주제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던 책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047/15/cover150/k7929312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047156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트럼프의 실패한 월드컵 치트사용</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0012</link><pubDate>Wed, 08 Jul 2026 0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0012</guid><description><![CDATA[​여느 월드컵 때도 말이 안 나왔던 건 아니었지만, 이번 월드컵은 공정성 문제로 논란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애초에 이란 대표팀은 미국에서 경기를 하기로 배정되었지만, 미국은 전쟁 당사국이라는 이유로 이란 대표님의 입국을 경기 24시간 전부터만 가능하다고 제한을 걸어버렸다. 경기에서 현지 적응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이란 대표팀은 처음부터 굉장히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FIFA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월드컵 직전 소말리아 국적의 심판의 입국 또한 미국은 막아버렸다. 그는 아프리카 올해의 심판으로 뽑히기도 했던 인물이었는데, 미국은 소말리아가 여행금지국가가라는 이유로, 그가 가진 외교관 여권도 인정하지 않고 입국금지를 시켰다. 결국 그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FIFA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백미는 어제 경기에서 일어났다. 미국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가 직전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16강전 출전이 금지되자, 트럼프가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 출전금지를 1년간 유예시키는 조치를 이끌어 냈다. 트럼프는 또 이걸 자랑스럽게 공유했는데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는 이게 잘못됐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 당연히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FIFA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월드컵 이전부터 FIFA의 인판티노 회장은 트럼프의 심기를 살피기 바빴다. 전범이 되어 노벨 평화상을 받기엔 애저녁에 틀려버린 트럼프에게, 자기가 처음으로 만든 "FIFA 평화상"이라는 걸 수여하기까지 했다. 누가 FIFA 따위에 "평화상" 같은 걸 줄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을까? 아니 애초에 FIFA에 그런 걸 심사할 조직이 있긴 했던 걸까?(2회 수상자가 있긴 할까 싶다) 결국 트럼프가 받은 건 문방구에서 멋대로 산 장난감 메달에 불과하지만,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에게는 그저 기꺼운 일이었던 것 같다.​세상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극단적으로 과장된 품성(성경은 이런 걸 '교만'이라고 부른다)은 이미 외교나 무역 협상에서 드러난 바가 있다. 전 세계는 그의 뜻대로 모든 걸 맞춰주기 급급했고, 그럴 수록 트럼프는 더욱 고압적 자세로 다른 나라들을(심지어 자국의 반대파들을) 대했다. 이제는 스포츠의 룰도 멋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나 보다(이 정도야 작은 일이라고 였을 게다).​통화 중에서 트럼프는, 메시나 호날두가 경기에 빠지면 흥행이 되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스포츠의 중요한 축인 공정한 경쟁보다 흥행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이 반영된 건데, 쉽게 말하면 그냥 "쑈 따위"로 여겼다는 말. 물론 규칙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변경은 대체로 상업적인 의도도 고려되는 게 일반적이다.​실제로 FIFA는 이번 대회부터 전후반 중간에 물 마시는 시간을 끼워넣었다. 명분은 선수들의 건강이지만, 실은 중간광고를 위한 시간을 확보해 수입을 늘리려는 계획에 가깝다. 나름 3분 정도의 중간광고는 참아줄 수 있기도 하고, 그 규정이 게임의 운영에 미친 변화가 꼭 나쁘지만은 않아서 대충 받아들이는 분위기.​하지만 그 과정도 공정해야 한다. 특정인이 특정한 국가에 유리한 방식의 일방적이고 특수한 변경을 한다면 이미 그건 스포츠가 아니다. 사실 미국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결국 경기에서 미국은 벨기에 대표팀에서 4-1로 대패하고 이번 월드컵을 끝냈다. 애초에 치트키를 써서 선수와 심판을 마음대로 끼워넣고 뺄 수 있다면, 굳이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8/pimg_639190974789646613.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001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일터에서의 경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9296</link><pubDate>Tue, 07 Jul 2026 2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929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74376X&TPaperId=17379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94/11/coveroff/895874376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감히 말하건대 나사렛 목공소에서는 다리가 휘어진 탁자나 뻑뻑한 서랍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누구도 그것이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고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꾼이 아무리 경건하다 하더라도 일 자체에서 진실하지 못한 것을 상쇄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든 그에 준하는 솜씨가 누락돼 있다면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거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by 도로시 세이어즈<br>- 벤저민 T. 퀸,월터 R. 스트릭랜드, 『다만 일에서 구하옵소서』 중에서<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94/11/cover150/895874376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394117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음모론은 어떻게 사람을 삼키는가 -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 음모론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관계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7910</link><pubDate>Tue, 07 Jul 2026 0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79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4182&TPaperId=173779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3/57/coveroff/k0020341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4182&TPaperId=173779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 음모론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관계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a><br/>정재철 지음 / 원더박스 / 2025년 12월<br/></td></tr></table><br/>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도 ‘음모론’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배후의 무엇을 떠올리게 된다. 음모론 자체는 꼭 정치에 한정되지 않지만, 요새 이 개념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지는 건, 역시나 정치세력과 결합해서 사람들을 선동하며 사회를 극렬한 분열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br>사실 음모론에는 보수와 진보,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요새는 극우 진영에서 부정선거론을 단골 소재로 우려먹고 있지만, 내 기억에 근래 들어 최초로 이런 주장의 음모론을 주장한 건 김어준이었다. 자비로 영화까지 만들어서 선거조작 의혹을 제기했었고, 비슷한 일은 세월호 사건 때도 반복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앞서 말한 대로 정 반대 진영에서 관련 음모론을 외치고 있다.<br><br><br><br> 책은 음모론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음모론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왜 그걸 믿는지, 음모론이 일으키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살펴나간다. 그리고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12.3 계엄 사태를 “음모론이 촉발한 최초의 쿠데타”라고 정의하면서(이건 뉴욕타임스에서 해당 사건을 “알고리즘 중독이 촉발한 세계 최초의 반란”이라고 보도한 것에서 나온 표현인 듯하다) 음모론이 국가를 뒤흔들 수도 있음을 아울러 경고한다.<br>책의 말미에는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공감과 같은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감이란, 그래 네 말이 맞아 하는 식의 우쭈쭈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은 점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지는데, 그럴 때 그에게 심리적 의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음모론에서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될 거라는 말.<br>하지만 책에도 실려 있는 실제 예들을 보면, 그렇게 해도 좀처럼 음모론에서 빠져나오도록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책에 나온 사람들도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마치 불법약물처럼, 음모론도 일단 한 번 빠지면 계속해서 금단증상에 시달리며 더 자극적인 음모론을 찾아 나서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br>그런 차원에서 음모론에 처음부터 발을 내딛지 않을 수 있는 정보 리터러시를 기르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이 내용이 약간 실려 있는데, 사실 뭔가 뾰족한 수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정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매일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원래 건강하고 건전한 일을 위한 작업은 평범하게 느껴지는 법이다.<br><br><br> <br>며칠 전, 국내 고교 야구 대회에서, 서울의 한 고등학교가 광주 소재의 학교와 시합을 하던 중, 5.18를 조롱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응원(혐오) 구호를 외친 것이 중계에 잡혀 큰 물의가 일어났다. 해당 학교는 6개월간 대회 출전 금지라는 징계가 내려졌는데 나름 합리적인 처분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종류의 음모론에 기초한 혐오 정서가 진작 어린 아이들 수준으로까지 퍼져 있음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부분이다.<br>심지어 어제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총리급 부위원장이 해당 뉴스를 가리켜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멍청한 소리를 했다가 결국 자진 사퇴 형식으로 경질되는 일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민주 국가에서 참 중요한 요소지만, 그 자유가 명백히 허위이고 나아가 혐오를 위해 조작된 내용이라면 그것까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그런 사회에서 ‘진실’은 그 존재가 무의미해질 것이고, 결국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에 의한 약육강식의 문화가, 착취와 지배의 분위기가 퍼지게 될 테니 말이다.<br>오늘도 여전히 음모론에 빠진 적지 않은 무리들이 어딘가에서 자기들이 뭔가 대단한 걸 지키고 있다며 길에 나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아 보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3/57/cover150/k0020341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03574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산상수훈을 견실하게 풀어낸 책 - [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 - 삶의 자리를 바꾸는 예수의 말씀 1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6883</link><pubDate>Mon, 06 Jul 2026 1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68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413&TPaperId=17376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88/96/coveroff/k7321374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413&TPaperId=173768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 - 삶의 자리를 바꾸는 예수의 말씀 13</a><br/>권종렬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04월<br/></td></tr></table><br/>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다양한 강론들을 한 데 모아놓은 본문이 있다. 이른바 산상수훈이라고 부르는 본문들이다. 다른 복음서들에는 여기 나온 교훈들을 다른 장소에서,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시는 모습들도 나오는지라, 일부에서는 여기 나온 교훈들이 그 순서가 편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다만 예수님이 한 가지 교훈은 오직 한 번만 가르치셨다고 볼 때야 문제가 되는 거고, 비슷한 교훈을 여러 자리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하셨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만큼 절대적인 견해는 아니다.<br>굳이 이런 논의들까지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산상수훈이 밀도가 높은 본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팔복으로 시작되어서 ‘열매로 알리라’로 끝나는 이 본문은 복음서의 백미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그 산상수훈의 본문에서 열세 개의 키워드를 뽑아 본문 설명과 적용으로 풀어낸다.<br><br><br><br> 오래 전 신대원에 다니면서 지금은 돌아가신 신약학 교수님에게 배웠던 내용들이 새삼 떠오르는 부분들이 보인다. 팔복에서 복을 받을 사람들로 언급되는 이들은, 그것을 듣고 읽는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라든지, 빛과 소금 역시 그들이 되어야 할 이상적인 모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제자들 자체가 이미 빛과 소금이라는 것이라는 설명 등이 그것.<br>전반적으로 견실한 설명과 적용이 담겨 있다. 딱 교회에서 가르치기 좋게 쓰였달까. 안전한 내용들을 안전한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지나치게 위협적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오랜 시간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한 저자라는 게 느껴지는 부분. 물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이 그렇게 말랑말랑하기만 한 것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살짝 들긴 하지만, 책이라는 게 집필 목적과 예상 독자에 따라 내용이 만들어지는 것이긴 하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88/96/cover150/k7321374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8896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 |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10</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6382</link><pubDate>Mon, 06 Jul 2026 10: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638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3763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C. 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 10장에는 쉴 새 없이 말하는 한 여자 유령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남편을 위해 평생 희생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지배욕에 가깝습니다. 그녀에게 남편은 사랑해야 할 인격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할 대상입니다.&nbsp;​이 장이 무서운 이유는 이 모습이 낯설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배우자가 배우자에게, 지도자가 공동체 구성원에게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뜻을 관철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선한 의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타인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루이스는 이 장을 통해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조종하고 있는 걸까요?<br><br>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기독교인은 왜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을까 -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3356</link><pubDate>Sat, 04 Jul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33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042964&TPaperId=173733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68/3/coveroff/89880429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042964&TPaperId=173733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a><br/>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05월<br/></td></tr></table><br/>원서의 제목이 “The God-Shaped Heart”다. 하나님이 만드신 마음 정도로 번역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이 우리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의 이상적인 상태에 관한 내용일 것이라는 짐작이 되게 만드는 제목이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정작 마음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기독교는, 기독교인은 이래야 한다는 내용이 더 많이 보인다.<br>저자는 오늘날 기독교가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한다. 기독교인임에도 다양한 범죄와 문제 행동에 있어서 비기독교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도덕적 행위와 관련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다는 것.<br>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조가 하나 있다.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방식을 7단계로 나눈 것인데, 상벌에 따라 행동하는 1단계, 주고받음에 기초한 2단계,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는 3단계, 법에 따라 행동하는 4단계까지는 ‘저차원적인 방식’으로 분류된다. 5단계는 사랑에 기초한 결정이고, 6단계는 그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 그리고 7단계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결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쪽이 좀 더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여겨진다.<br><br><br><br> 저자는 오늘날 교회가 저차원적 방식으로만 판단하는 것 같다고 강하게 의심을 하고 있다. 사랑보다는 규칙을, 하나님의 마음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더 본다는 것. 그런데 저자가 여기에서 초반에 가지고 나오는 주제는 ‘대속’이다. 저자는 이 신학적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해설을 상당히 불편하게 여기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무시무시한 응징자, 난폭한 폭군으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br>저자가 대신 가지고 나오는 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라는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성경의 율법을 비롯한 다양한 명령들에도 해석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문제는 그냥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성경의 ‘강한 메시지들’이다. 그리고 속죄에서 징계의 개념을 부정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과격한’ 방식이 왜 필요했는가 하는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름에도 별다른 대답을 하고 있지 않기도 하고.<br>또,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저차원적 기준을 가진 이들과 고차원적 기준을 가진 이들로 지나치게 선명하게 나누는 모습은, 자칫 영적 엘리트주의로 빠질 위험도 있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기독교를 윤리적 종교로 바꾸려는 느낌도 받는다.<br>저자는 극구 “죄”라는 문제를 “질병”이나 “장애” 정도로 치환하려고 하는 듯하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 그런 면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죄를 그렇게 보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이해일까? 저자가 애써 인용하지 않고 무시하는 상당한 분량에서 죄는 죽음, 사망, 심지어 사형선고와도 연결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대체로 저차원적 기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치부하지만, 그건 좋은 응답 방식은 아닌 것 같다.<br><br><br><br> 물론 저자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답답함을 아울러 고려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는 명찰을 달고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짓들을 하는지. 이른바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왜 그렇게 사람이 바뀌지 않는지 말이다. 다만 그 답이, 너희는 저차원적 이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에서 끝난다면, 뭔가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기엔 조금 아쉽다.<br>이런 조금은 강한 어조를 배제하고 본다면, 책은 오늘날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도덕적 실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7단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단계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꽤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68/3/cover150/89880429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680353</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달에 만난 책들</category><title>2026년 6월에 만난 12권의 책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2032</link><pubDate>Fri, 03 Jul 2026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203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5076&TPaperId=173720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6/78/coveroff/k69203507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4201&TPaperId=173720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323/11/coveroff/893281420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530602&TPaperId=173720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35/29/coveroff/893253060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837424&TPaperId=173720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438/42/coveroff/k97283742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9513&TPaperId=173720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00/51/coveroff/k00213951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2032'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벌써 2026년도 절반이 지나버렸네요.&nbsp;지난 한 달도 열심히 이것저것 읽어보았습니다. ​&nbsp;오늘은 제가 6월 한 달간 만났던 책들을 소개합니다.<br><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43/cover150/k8721373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43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진보의 학벌주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1766</link><pubDate>Fri, 03 Jul 2026 1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717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836269&TPaperId=173717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683/15/coveroff/k08283626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한국의 운동권에서 학벌 안 따지고, 나이 안 따지는 사람은 노회찬과 그의 동료들밖에 못 봤다. 그 사람들과는 만나자마자 친구가 되었고, 평생을 그렇게 친구로 살았다. 노회찬이 경기고 출신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다. 뭔 진보라는 사람들이 대학교를 그렇게 따지는지, 정말 확 질려버렸다.<br>- 우석훈, 『슬기로운 좌파생활』 중에서<br><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683/15/cover150/k0828362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683156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저출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너진 정치다 - [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65723</link><pubDate>Tue, 30 Jun 2026 20: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657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5076&TPaperId=173657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6/78/coveroff/k6920350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035076&TPaperId=173657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a><br/>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br/></td></tr></table><br/>대한민국은 유래 없는 압축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 우리가 소멸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br>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출생률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0.7명의 아이를 낳는 상황은 당연히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여기에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로 무역수지 흑자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고, 에너지 전환 이슈 역시 우리 경제에 무리를 준다. 내부적으로는 부동산 거품과 가계 부채, 그리고 내수 경기도 좀처럼 크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br>역사적인 저출생과 더불어 기록적인 자살률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큰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빠른 산업화를 위해 분배나 복지는 뒤로 미뤄졌고, IMF 사태 이후로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하게 드라이브 걸면서 각자도생이, 정확히는 개인적인 무제한적 탐욕의 경쟁이 열렸다.<br><br><br><br> 저자가 내놓는 해결책의 시작은 정치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할 때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한창일 때를 배경으로 쓰인 이 책은, 당대의 정치 상황에 대해 그리 희망을 걸지 않는다. 여야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른바 진보정당의 정통계보를 잇던 진보당은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br>(책이 쓰일 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국 친위 쿠데타로 자멸한 윤석열 정권은 말 그대로 최악의 이익 집단이었다. 아는 것이 없이 대통령까지 된 그가 할 수 있는 건, 수족인 검사들을 온 정부 기관에 보내서 감시하고 배후조종하는 방식뿐이었다. 앞서 말한 국가적 위기 상황 앞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내 놓은 것은 없었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었다.(그 와중에 알뜰살뜰 뇌물을 받아 챙기는 영부인까지..)<br>저자는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책이 쓰인 지 몇 년이 지난 오늘, 과연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정치가 복원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것 같다. 어차피 대통령이 하는 일을 막고 발목 잡는 게 지상목표인 야당(혐오가 높아질수록 지지자들도 결집한다는 학습효과가 강하게 있다)은 이제 대놓고 음모론과 선동으로 정국을 대하고 있다. 박수는 양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아마 나라가 망한다고 해도 상대가 몰락한다면 기꺼이 그런 선택을 할 것 같은 썩은 정치인들이 여기에 참여할 것 같지는 않다.<br><br><br><br><br> 그럼 결국 우리 앞에 남은 길은 소멸일까? 적어도 정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럴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는 혐오와 저주의 문화가 초등학생 레벨에까지 깊이 퍼져가고 있다.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는 수준을 넘어, 온갖 포털(예컨대 네이버 댓글창은 이미 일베에 거의 점령된 상태다.) 사이트에서도, 심지어 고등학교 야구 경기 중 일베 구호를 외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물론 언제나 시끄러운 쪽이 좀 더 크게 대표되는 면이 있긴 하다. 이 점에서 소망을 찾아야 할까.<br>압축 성장에 뒤따르는 압축 소멸 문제를 다룬 사회학 서적인 듯했으나, 책 중반 이후 주로 정치 상황에 관한 내용이 더 많이 다뤄진다. 다만 이런 종류의 책들이 언제나 당위는 강하게 주장하지만,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할 수 있을 지에 관한 방법론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역시 현실이라는 무거운 족쇄 때문이긴 하겠지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6/78/cover150/k6920350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06785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이제 기독교의 중심은 서구가 아니다 -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 미국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되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61270</link><pubDate>Mon, 29 Jun 2026 0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612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4201&TPaperId=173612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323/11/coveroff/89328142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4201&TPaperId=173612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 - 미국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되었는가?</a><br/>마크 A. 놀, 박세혁 / IVP / 2015년 07월<br/></td></tr></table><br/>저자는 현대 교회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난 세기 그리스도인의 표준적인(?) 모습은 서양 백인 남성이었지만, 이제 그 비율은 완전히 달라졌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의 수(물론 이 가운데는 다양한 유색인종들도 포함되지만)를 합쳐도, 나머지 대륙의 그리스도인들의 수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20세기 말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그리고 책에는 빠졌지만 아시아의) 여성이다.<br>이런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교회의 구성원 비율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그 내용의 변화도 수반하게 된다. 기독교적 개념이 새로운 문화 속으로 번역되어 들어갈 때,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생활은 북미나 유럽의 그들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저자는 이른바 복음주의 유형의 기독교가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이유를, “지금 여기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를 따르겠다는 결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br><br><br><br> 책의 중반부는 세계 기독교에 미국교회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를 다룬다. 이 역시 익숙한 설명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교회의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리더십을 장악하고, 일종의 영적 제국주의를 형성했다는 비판적 견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조금은 다른 그림을 그려준다. <br>물론 미국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가 되어가면서 수많은 적응과 해당 지역의 자치적 리더십들, 새로운 신학적 강조점들이 나타났다. 서구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는 말이다. <br>다만 이런 인식은 큰 그림을 볼 때에 비로소 갖춰지는 것이고, 부분적으로, 지역적으로는 여전히 조금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미지를 가져온다. 몸의 어느 지체가 다른 부분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미국 교회들 역시 나머지 지체들을 의존하지 않고서도 혼자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지적은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도, 나아가 그 지역 내의 공동체들 안에서도 귀담아 들어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br><br><br><br> 마크 놀의 글은 언제나 새로운 통찰이 있다. 여전히 미국 중심의 사고, 서구의 신학 중심의 신앙생활만을 유일한 길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런 신앙의 전통들(이른바 ‘신학들’)에 공헌과 유익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신학은 (그것이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어느 정도 상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학은 계속 발전해야 하는 무엇이고, 단순히 예전 것을 붙잡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br>보수적 신앙 공동체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를 불온하게 여기는 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금과옥조로 붙잡고 있는 신학적 명제들과 예배의 방식들도 역사적 기독교라는 좀 더 큰 맥락에서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라는 게 난센스다. 결국 우리의 눈이 좀 더 큰 맥락을 보지 못하면 계속해서 그냥 익숙한 것을 최고의 것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br>저자의 또 다른 책 제목처럼, 우리는 “세계기독교인”으로 살아야 한다. 겸손함으로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우리가 서 있는 곳에 맞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손질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성경에 대한 정직한 묵상과 연구가 필요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323/11/cover150/89328142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323119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종교의 자유가 무너지면 모든 자유가 흔들립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60236</link><pubDate>Sun, 28 Jun 2026 18: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6023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6023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종교의 자유는 단순히 “교회에 다닐 자유”일까요?​오스 기니스의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2장 “진정한 치료책”은 종교의 자유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기초로 설명합니다. 저자는 종교의 자유가 종교인만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양심과 신념을 보호하는 “첫 번째 자유”라고 말합니다.​종교의 자유는 나의 신앙을 지키는 권리인 동시에, 타인의 양심을 지켜 주는 책임입니다. 기독교인은 공적 광장에서 신앙의 양심을 따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강요가 아니라 설득이어야 합니다.&nbsp;​이번 영상은 종교의 자유가 왜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의 문제인지, 그리고 한국 교회가 이 자유를 어떻게 성숙하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해설입니다.​<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고백자들의 군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6697</link><pubDate>Fri, 26 Jun 2026 16: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66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1296&TPaperId=173566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91/98/coveroff/k37203129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니케아에 집결한 주교들의 다수는 동방 정제 막시미누스와 리키니우스 시절에 눈이 뽑히거나 다리 힘줄이나 팔이 잘린 자들로 구성된 고백자들이었고, 6월 초 니케아에 나타나 이 “고백자들의 군대”를 이끈 총지휘관은 리키니우스를 제압한 ‘전승자’ 콘스탄티누스였다. 고백자들의 군대가 지켜보는 앞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이집트 테베에서 참석한 주교 파프누티오스를 맞아 막시미누스의 핍박 때 뽑힌 그의 오른쪽 눈 부위에 입맞춤하며 극진한 존경을 표했다.<br>-&nbsp;곽계일, 『니케아 신경 형성기』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91/98/cover150/k3720312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91985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창조부터 승리까지, 성경을 한 편의 이야기로 읽다 - [이야기는 힘이 세다 -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자리 찾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6235</link><pubDate>Fri, 26 Jun 2026 1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62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530602&TPaperId=17356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35/29/coveroff/89325306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530602&TPaperId=173562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야기는 힘이 세다 -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자리 찾기</a><br/>폴 바스덴.짐 존슨 지음, 정효진 옮김 / 성서유니온 / 2023년 02월<br/></td></tr></table><br/>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따분하고 케케묵은 율법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성경은 이야기책이다. 수천 년을 배경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기록한 책이 성경이다. 하지만 또 그 분량이 적지 않으니 (재미있는 책은 길수록 좋긴 하지만) 도전할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나 청소년이나 어린이라면.<br>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쓰였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교회의 공동 창립자인 두 저자는, 성경 전체에서 여덟 개의 장면을 뽑아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창조와 축복(아브라함), 구출(출애굽), 선택(다윗), 경고(선지자들), 구원(예수 그리스도), 파송(사도행전), 승리(요한계시록)이라는 여덟 개의 주제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사항들이다.<br><br><br><br> 번역자는 문장들을 마치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문제로 번역을 했다. 이게 영어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었을까 싶었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유머나 예화 같은 걸 보면 뉘앙스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책은 어른이 청소년/어린이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으로 읽힌다. 내용이 또 가만 보면 기독교 세계관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면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br>사실 성경을 이야기로 보고 여기에 집중하는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가 함께 쓴 두 권의 책(『성경은 드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도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고, 성경을 거대 내러티브로 보는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식의 소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br>그 중에서도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역시 쉬운 문체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종종 청소년들(또는 넓게 잡으면 사회초년생 청년들까지)에게 맞는 적용과 질문들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권해 줄만한 책 자체가 적은 우리나라 기독교 책 상황을 생각해 보면 꽤 반가운 일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성경읽기 운동을 하는 성서유니온에서 냈으니 더욱 안심.<br><br><br><br> 그렇다고 단지 청소년들을 위한 쉬운 버전의 성경 이야기의 소개 정도라고만 보면 안 된다. 콘셉트는 그게 맞지만, 어른들도 성경을 읽으며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만한 질문과 통찰이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차분하게, 성경의 맥을 잡아보는 독서로 좋을 듯.<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35/29/cover150/89325306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135296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무당인가, 공무원인가? 음양사의 진짜 얼굴 - [음양사 해부도감 - 이능의 힘과 지식을 지닌 신비의 존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2165</link><pubDate>Wed, 24 Jun 2026 01: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21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837424&TPaperId=173521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438/42/coveroff/k9728374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837424&TPaperId=173521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음양사 해부도감 - 이능의 힘과 지식을 지닌 신비의 존재</a><br/>가와이 쇼코 지음, 강영준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05월<br/></td></tr></table><br/>영화나 드라마,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나름 알려져 있는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른바 “음양사”라고 불리는, 우리로 치면 무당쯤 되는 일을 하는데, 또 고위 관직에 있기도 한 조금은 이색적인 일을 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식신이라고 불리는 요괴를 부리고, 부적으로 저주를 내리기도 하고, 도술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하는 반쯤은 신선 비슷한 느낌으로 등장하기도 하고.<br>이 책은 그 ‘음양사’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을 흥미 중심으로 정리해 놓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다른 책을 빌리는 김에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빌려온 책. 그래도 나름 역사 파트에 들어가는 책인지라, 문헌 자료에 기초해 정리한 내용이니, 일본 중세 문화를 공부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br><br><br> 가장 먼저 음양사는 공식 관료였다. 중무성에 속한 음양료라는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던 것. 비슷한 직책은 중국에도,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관(日官)’이라고 불렀다. 천문을 관측하고, 기상을 측정하고, 때로는 별자리 등을 통해서 일종의 운을 점치기도 했던. 점을 친다는 것을 빼면 대체로 그 당시의 과학기술관료에 가까웠는데, 또 이 점이라는 것도 약간의 우연성이 개입된다는 것을 빼면, 그 해석에 있어서는 결국 통계와 맞닿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br>원래는 주금사라고 불리는, 말 그대로 주술을 전문으로 하는 좀 더 무당에 가까운 조직과 관리들도 있었다. 그러나 10세기 경 이들 주금사들이 하던 일을 점차 음양사가 흡수하게 되었다고 한다.<br>중세 일본은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끊임없이 권력다툼이 일어나고, 왕은 있었으나 실권을 가진 권신들이 국정을 주물렀다. 그런 시대에 관료로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 줄을 서야 했을 것이고, 그건 음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권력다툼의 여파로 밀려나거나 목숨을 잃는 음양사들도, 반대로 권력의 지원을 받아 단숨에 최고 지위인 음양두까지 올라가는 일도 생긴다.<br>초반에 언급했던 세이메이 같은 인물이 그렇게 성공한 음양사인데, 그 후손들이 자기 가문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분히 과장된 다양한 설화들을 만들어 냈다. 세이메이의 어머니가 하얀 여우가 변한 여자라든가,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던가, 수많은 식신들을 부렸다던가 하는 전설들이 그것.<br><br><br><br> 한편으로 왜 일본은 인근의 한반도나 중국 대륙과 달리 그렇게 음양사가 중요하게 여겨졌을까 하는 의문에, 저자는 흥미로운 설명을 제안한다. 기본적으로 헤이안 시대(8세기 말~12세기 말) 일본의 정치는 유교적 사고가 바탕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교에서 천재지변은 하늘이 통치자의 잘못을 벌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게 당대의 권신들에게 부담이었던 것.<br>그래서 그들은 천재지변을 귀신이나 원령의 저주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음양사들이 필요했다. 저주는 음양사들이 나서서 제사를 하거나 다양한 조치를 취하면 해결될 일이니까. 그 책임을 최고권력자가 져야 할 필요가 사라진다는 것.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음양사라는 직책이 통치에 중요했다는 건데, 왕으로서의 책임감까지는 갖출 필요가 없었던 권신들이 선택할 만한 선택지였던 것 같다.<br>물론 이런 공식적인 음양사들은 권세 있는 사람들이나 불러서 부탁할 수 있었기에(정원도 20여 명 밖에 안 됐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비공식적인 음양사들도 활동했다고 한다. 승려이면서 음양사 노릇을 했던 일들도 있었고(법사음양사), 음양사가 하는 일들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하인들도 음양사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창문사). 그러나 후자 쪽은 일종의 예능인으로, 주술성을 지닌 다양한 공연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br>음양사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메이지 정부에서였다고 한다. 주술은 미개한 사교라고 여겼고, 또 다른 주요 업무인 달력 제작은 서양력을 가져오면서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일종의 미신이나 금기로)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일단 신사문화가 생활 속 깊이 남아 있기도 하고, 다양한 운세뽑기 등등.<br><br><br><br><br> 재미로 보기에 딱 좋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판형은 작고, 글씨는 더 작다는 점이다. 기본 본문도 여느 책에 비해 1포인트 이상 작은데, 삽화와 함께 적힌 글씨는 그보다 또 작고, 삽화 영역에 들어가는 표라도 나오면 글씨는 더 작아진다. 깨알보다 작은 글씨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 슬슬 노안이 오는 나로서는 포기할 수밖에... <br>이 정도 내용을 담으려면 아예 판형을 키우던가, 페이지 수를 좀 더 늘려서 가독성을 좋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그러려면 책값이 또 올라가겠지. 근데 종이도 두꺼운 걸 쓴지라.. 적당히 타협이 안 됐으려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438/42/cover150/k9728374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438428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오남용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 - [정치에 오염된 신앙의 언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1400</link><pubDate>Tue, 23 Jun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514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9513&TPaperId=173514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00/51/coveroff/k0021395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9513&TPaperId=173514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치에 오염된 신앙의 언어</a><br/>권연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이제 한국교회의 극우정치세력화를 비판하는 책 분야의 대표주자(?)라고 할 만한 야다북스에서 또 다른 책이 한 권 나왔다. 전에 관계자분을 만나서 잠깐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는 출판사랄까.<br>이번 책은 ‘단어’에 집중한다.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신앙과 윤리, 예언과 선동, 정교분리, 자유와 평등, 국민저항권, 극우 기독교와 근본주의 같은 단어들을 중심으로 사회와 교계를 아울러 분석한다. <br>대체로 어느 정도 내용이 예측이 되는 장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들어온 두 개의 주제가 있다. 최종원 교수가 정교분리의 역사적 맥락을 정리하는 3장과 김동춘 교수가 극우 기독교의 신학적 배경을 분석하는 6장이이다.<br><br><br><br> 최종원 교수는 미국 헌법에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교분리’가 실은 국교의 부인에 가까웠으며, 이는 종교의 자유를 보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조항은 국가에 종교에 개입하지 말고, 나아가 종교(단체)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야만 한다는 책임을 지운다. <br>결론부에서 저자는 심지어 극우 기독교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 교회가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최종적인 주장이지만, 이제까지 야다북스에서 나온 책들의 논조와는 살짝 다른 결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었다.<br>이 부분은 최근 읽었던 오스 기니스의 책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에서 좀 더 깊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책의 결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진실이 언제나 우리의 구미에 완전히 맞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걸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당파성에 매몰된 극단적인 무리로 분류될 수밖에.<br><br><br><br>6장에서도 꽤 흥미로운 분석이 등장한다. 우리는 보통 극우 기독교가 대체로 신학적인 근본주의자들인 것처럼 인식해 왔다. 보수적 신학이 보수적 정치관을 낳고, 그들은 쉽게 극우로 넘어간다는 간단한 그림이다. 하지만 김동춘 교수는 이런 그림이 얼마나 단순하고 왜곡된 그림인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br>우선 이미 한국교회의 신학적 자유주의화는 상당부분 진행되었으며, 개인의 자융적인 선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대신 교리적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른바 극우 기독교가 확산이 근본주의적 신앙의 증거와 매칭되지 않고 있다는 것. 저자는 근본주의적 신학보다는,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정치권력 획득을 추구하고 있는 ‘세속주의 기독교’가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본다. 흥미로운 분석이다.<br>저자는 이런 세속주의적 경향이 보수적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진보 자유주의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주로 진보적 신학을 갖고 있는 비판자들은 모든 문제를 근본주의 신학과 묶어 폐기하면 될 것처럼 주장한다. 번짓수를 잘못 찾은 비판이고, 당연히 그런 비판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br>챕터 후반부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을 붙들고서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거나, 최소한 기독교가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오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부분은 앞서 3장에서 논의했던 종교의 자유 영역과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 역시 앞서 언급했던 오스 기니스의 책에서 어느 정도 논의된다.<br><br><br><br> 이번 책은 피상적인 비판을 넘어, 문제 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느낌을 준다. 보통의 예상과 달리 실제는 경계선이 울퉁불퉁하고, 종종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어서 복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낙인찍기나 정체성 정치 같은 도구들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갈등을 악화시키는 이유다. 소위 부수적인 피해들이 생각보다 훨씬 크기 때문. <br>사안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언제나 가장 단순한 답을 붙잡기 마련이다. 내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문제이고, 그들의 입을 막고 제거(혹은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신앙언어의 오남용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떤 해결책이든 그리 효과가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확장된 듯한 이번 책의 일부 내용들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00/51/cover150/k0021395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00519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의사의 자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49004</link><pubDate>Mon, 22 Jun 2026 15: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4900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1955&TPaperId=173490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992/81/coveroff/896596195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br>-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992/81/cover150/89659619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992818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