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노란가방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을 읽는 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1 Aug 2026 08:09:15 +0900</lastBuildDate><image><title>노란가방</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9578114217064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노란가방</description></image><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전통을 존중하되 새롭게 될 순 없을까 - [전통교회, 들어오면 숨 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 복음으로 다시 정의하는 전통 교회 용어 사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2570</link><pubDate>Mon, 10 Aug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25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4425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4425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전통교회, 들어오면 숨 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 복음으로 다시 정의하는 전통 교회 용어 사전</a><br/>이재면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6년 07월<br/></td></tr></table><br/>제목이 좀 길다. 하지만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매우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저자는 전통교회의 답답함에 관해 겪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온라인에 나누었던 것 같고, 그걸 책으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각 장마다 말미에 해당 글에 대한 ‘댓글’들 일부가 발췌되어 실려 있기도 하다.<br>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예배 순서, 청년부, 새신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 봉사에 대한 압박, 교제라는 이름의 부담(누군가는 준비하고 치우고 해야 하니까), 새벽기도의 압박, 수련회을 둘러싼 고생 등이 2부에, 직분과 목회자의 복장, 설교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사명이라는 이름의 압박이 3부에 실려 있다. 와우, 거의 뷔페상처럼 나올 만한 것들은 다 챙겼다.<br><br><br><br> 기본적인 내용은 이런 주제들에 대해 전통적인 교회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달라진 상황에 맞게 변화의 가능성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저자가 언급한 주제들은 사실 ‘진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담는 형식에 가까운 것들이니까. 상황이 달라진다면 내용을 담는 그릇도 바꿀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br>특히 저자는 예배가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하는데, 이 부분은 평소 나 역시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주일예배 뿐 아니라, 수요일, 금요일에 모이는 집회도 예배라고 불리고, 새벽마다 또 ‘새벽예배’를 하기도 한다. 어떤 교회에는 동시에 저녁예배도 진행하고, 365일 쉬지 않고 계속 예배를 이어간다는 걸 메인으로 자랑하는 선교단체도 있는 것으로 안다. 어디 그뿐인가, 이사예배, 개업예배, 장례예배, 신학교에 다닐 때는 무슨 교수 출판감사예배, 은퇴감사예배, 등등 온갖 사사로운 예배도 넘쳐나는 걸 봤다. 그냥 ~~식/예식이라고 부르고 기념하며 감사하면 될 일을 굳이 ‘예배’자를 갖다 붙인다. <br>그러니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라는 말을, 수요예배 없애면 큰일 나는 이유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것이다.(얼마 전 내 유튜브 채널에 실제로 달린 댓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배’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앞에서 나왔을 때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취해야 하는/취하게 되는 자기를 낮춤, 상대를 인정하고 경배하는 태도, 또는 상태에 관한 신학적 설명이다. 수요예배, 주일예배 할 때 붙이는 의식이름이 아니라.<br>이른바 새벽예배는 성경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새벽에 기도했다는 몇몇 구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다 그걸 알아채지 못하다가 20세기 조선의 신자들만 알았다는 의미가 된다), 20세기 초반 조선의 농경사회의 시간 단위에 맞춘 의식이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의식이라도 우리의 신앙에 유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바뀐 상황으로 이제 사람을 갈아넣어야 유지되는 수준인데도 계속 고집한다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던 바리새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br><br><br><br> 저자는 교회가 “‘새로운 시대의 교회’보다는 ‘과거 유지형 교회’가 되어” 간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든 조직이 날마다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걸 시도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의외로 ‘안정감’이라는 요소는 조직을 유지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br>C. S. 루이스는 어떤 예배 형식이라도 좋으니, 제발 자주 형식을 바꾸거나 변화를 꾀하지는 말아 달라고 쓴다. 익숙한 형식은 “훈련된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바뀌면 그런 훈련을 할 수가 없다. 사실 훈련이라는 것이 같은 작업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몸에 익히는 것이니까. 신앙은 ‘몸으로’ 배워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br>다만 이런 안정성/보수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자 되심이 아니라, 내가 해 온 신앙 양식의 유일한 기준 됨을 고집하는 데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일탈을 겪게 된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과 완전히 겹쳐진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 교단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만, 각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원만한 조율과 합의로 얼마든지 수정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교회에게 주신 자유다.<br>물론 이런 합의가 쉽지는 않다. 책에도 저자가 교인들과 부딪히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고민이다. 목회자의 생각에 교인들의 습관을 바꿔 맞추는 게 최선일까, 아니면 그 공동체는 또 공동체대로 익숙한 방식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도 자유의 일환은 아닐까.<br><br> 전반적으로 쉽게, 그리고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잘 쓴 글이다. 여기 실린 내용들이 딱히 새롭게 나온 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조금은 회의적인 예상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긴 하지만, 사실 교회는 지난 2천 년 동안 이미 쉴 새 없이 변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예배의 양식과 신앙생활의 모습도 100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었을 것이고, 1세기 기독교인들에게도 굉장히 생소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단순히 옛 것을 반복하기만 하지 말고, 그 뜻을 한 번 곰곰이 새기며 함께 대화를 해 보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기독교를 지켜주겠다”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282</link><pubDate>Sun, 09 Aug 2026 1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28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4412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기독교가 정치권력과 손잡으면 기독교적 가치가 더 잘 지켜질까요?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4장을 바탕으로, 특정 종교가 공적 광장의 중심을 차지하는 ‘신성한 공적 광장’이 왜 해결책이 될 수 없는지 살펴봅니다.​오늘날 정치적 논쟁은 설득과 대화보다 조롱과 비난, 피해자 의식과 진영 대결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과 동일시되면, 정치적으로는 승리하더라도 복음의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지켜주겠다”는 권력의 약속이 어떻게 교회를 이용하고 신앙을 정치화할 수 있는지, 미국의 문화전쟁과 독일 교회의 역사적 사례를 현재 한국 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풀어봅니다.​정치는 중요하지만 가장 우선적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공적 광장에 참여하면서도 권력과 거리를 유지하고, 적대가 아닌 설득과 사랑으로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 봅니다.<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자동차를 타고 온 공자가 주는 교훈 - [공자의 말들 - 군자를 버린 논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024</link><pubDate>Sun, 09 Aug 2026 17: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410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938681&TPaperId=174410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2/48/coveroff/k1729386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938681&TPaperId=174410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자의 말들 - 군자를 버린 논어</a><br/>임자헌 지음 / 유유 / 2024년 02월<br/></td></tr></table><br/>몇 번인가 논어를 읽어본 기억이 있다. 물론 한자를 다 읽고 이해할 수는 없으니, 우리말로 해설된 책들이다. 전주에 여행을 간 김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이 책도 그런 논어의 우리말 번역서다. 그런데 제목이 독특하다. “군자를 버린 논어”라니, 군자는 논어의 핵심 단어가 아닌가. 그걸 빼고 논어 읽기가 가능해?<br>언뜻 안티 논어, 혹은 논어 비틀기로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지만, 실은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다. 역자는 논어가 지나치게 어렵게만 번역되어 심각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탈피하고자, 현대어로 번역하는 재미있는 시도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대충 번역한 것은 아니고, 역자는 조선왕조실록 현대화 사업에 참여할 정도로 실력이 인정받은 인물.<br><br><br><br>책 전반에 걸쳐 현대적 번역이 눈에 띤다. 수레는 자동차로, ‘인(仁)’이라는 개념은 ‘사람다움’으로, 문제의 ‘군자’는 ‘지성인’ 등으로 번역된다. 말투도 ~니라 같은 예스러운 어미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요(대중 앞에서), 또는 예사 낮춤(제자들에게) 등으로 바뀌어 있다.<br>예를 들어 논어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인 이인편 8절은 “아침에 내가 참답게 살 길을 깨달았다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지 뭐.”라고 번역되어 있다. 정말 가까운 제자들과만 있을 때, 스스럼없이 풀어놓는 속마음이라는 느낌이다. <br>역자는 모든 항목은 아니지만 일부 항목들에는 역자가 나름의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라든지, 또른 단순히 자신의 감회 등을 적어놓았다. 대체로 읽을 만했는데, 일부 내용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상들이 가볍게 적혀 있다. 그런 건 일기장에 적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었지만. 대표적인 구절이 양화편의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들다”는 구절인데, 역자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이라는 일방적인 투정(?)을 적어놓고 넘어간다.<br><br><br><br>성경 또한 매우 자주 새로 번역되는 책 가운데 하나다. 요새 읽고 있는 번역은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인데, 성경 전체를 현대어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을 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딱 메시지 성경이 떠올랐다. 비슷한 취지니까.<br>리뷰를 쓰다가 “공자의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목차를 보니 일부 부록의 순서가 뒤에서 앞으로 옮겨진 것 같다. 논어를 케케묵은 옛날 성인들의 말씀으로 두고 멀리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좀 더 쉽고 가까이 두고 읽고 새겨보는 건 좋은 일인 듯하다. 저자도 머리말에서 언급하듯이, 사실 논어의 내용은 의외로 상식적인 내용들이 많다. 문제는 상식적인 교훈을 기적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세상이었을 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2/48/cover150/k1729386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322484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달에 만난 책들</category><title>진리에서 음모론까지, 7월에 읽은 책 15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117</link><pubDate>Fri, 07 Aug 2026 1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1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5989X&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5/92/coveroff/890415989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off/k41213728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2470&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56/20/coveroff/893281247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8873&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82/84/coveroff/895097887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601&TPaperId=174371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19/60/coveroff/k182130601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117'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참 더운 요즘입니다. 이럴 땐 밖에 나가지 말고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책이나..... ​&nbsp;<br>지난 7월 한 달 동안 만났던 책들을 소개합니다. ^^<br><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168/3/cover150/89880429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1680353</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성경적으로 살아가는 법 - [불변하는 진리로 변하는 세상을 비추는 교회 - 격변의 시대를 살아내는 견고한 신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062</link><pubDate>Fri, 07 Aug 2026 1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7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407&TPaperId=17437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7/coveroff/k9321304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407&TPaperId=17437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변하는 진리로 변하는 세상을 비추는 교회 - 격변의 시대를 살아내는 견고한 신앙</a><br/>강희민 지음 / 다함(도서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수년 전 시작된 생성형 AI 모델의 업그레이드 전쟁은 이제 보통 사람들에게도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이 변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시기를 지나며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던 기독교의 지배적 영향력은 근대로 들어서면서 강하게 부정되었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종교가 아닌 이성과 기술 중심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후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등을 거치면서 정치, 사회적인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br>이런 변화에 맞춰 교회도, 신학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방점은 달라지는 세상에 있었고, 세상의 방식으로 성경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러나 애초의 목표(세상 사람들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독교를 재구축하자)와 달리 그 결과는 기독교의 붕괴였다. 그들이 재해석한 기독교는 오래된 (그래서 대부분은 왜 봐야 하는지 모르는) 신화와 역사적 유물, 또는 잘 해야 세련된 도덕철학에 불과했다.<br>주로 기술적 측면이 크게 강조되지만, 사실 최근의 AI혁명은 단순히 산업적 측면에서만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큰 흐름의 말단에 있으면서, 철학적, 윤리적 측면에서의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설교는 이런 변화를 마주하면서 어떻게 성경적 가치를 지킬 지를 고민한다.<br><br><br><br> 책의 머리말에는 저자가 AI 때문에 이 설교를 기획했다는 내용도 있고, 본문 안에서도 자주 AI가 언급되긴 한다. 그래서 그런가 추천사를 써 주신 분들도 하나같이 AI를 언급한다. 다만 본문에서 AI에 대한 설명이 생각만큼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 느낌이다. 해당 장에서 다루는 상황에 AI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어떤 변화/혹은 변질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그냥 느낌으로 파악하는 정도다.(설교라는 자리가 주는 한계가 있긴 할 것이다)<br>대신 저자는 ‘(AI가 일으키는?) 변화’ 쪽에 초점을 맞춰서, 성경의 변하지 않는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 사실 ‘진리’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변하지 않음’이다. 진리는 정의상 일관된 것이고, 그래서 세상의 변화에 언제나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개인적으론 진리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오랜 세월을 지나고도 고고하게 서 있는 중세 교회의 첨탑처럼, 진리는 변화를 견뎌내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br>너무 빠른 변화는 우리를 흔들리게 만든다. 어제까지 믿고 있던 것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다 빨리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정체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을 갖게도 한다. 저자는 이런 의심과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제시한다.<br><br><br><br><br> 다만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흔들리지 않음에 집중하다 보니, 실제적인 적용 부분에서, 그래서 어떻게 하자라는 부분이 살짝 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말미에 실려 있는 두세 개의 장을 빼면, 대체로 비슷한 주제가 반복된다. 물론 이 부분은 매 주 한 편씩의 설교를 ‘듣는’ 상황과 이걸 하나로 묶어서 단번에 읽게 되는 책이라는 매체상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책으로 옮기면서 현장성(설교가 이루어진 교회의 실제 상황과 그에 필요한 조언 같은)의 일부는 편집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감안할 부분.<br>어떻게 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고 성경의 교훈을 따라 살 수 있을 지에 관해 건강한 교훈을 담은 설교집.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7/cover150/k932130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9579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내멋대로 영화평</category><title>[호프] 괴작인 걸까, 졸작인 걸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4858</link><pubDate>Wed, 05 Aug 2026 23: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4858</guid><description><![CDATA[<br><br>7, 80년대를 한 시골 어촌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출현했다. 가축이고 사람이고 닥치는 대로 죽이며 다니지만, 이 마을에 괴물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인근에 난 산불을 끄기 위해 대거 동원되어 나간 것. 결국 마을의 파출소정 범석(황정민)과 그를 따르는 순경 성애(정호연), 그리고 범석의 먼 조카 성기(조인성)와 그 친구들이 나설 수밖에...<br><br> 비주얼.<br>영상이 꽤 좋다. 50년 전 정말로 어딘가에 있었을 것 같은 가상의 항구 호포항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다 세트를 만들었다던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괴물을 쫓는 장면은 이제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스릴을 자아낸다. 확실히 기술력은 크게 뒤처지지 않게 된 건가 싶을 정도.<br>특히 영화 초반 범석을 따라서 괴물을 추적해 나가는 장면은 제법 오래 진행되었는데도 전혀 지루한 감이 없었다. 쉴 새 없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건 캐릭터 설정이 좀 과하다 싶긴 했지만, 뭔가 흑막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끝까지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려고 애썼던 서장의 모습이, 그 압도적인 상대에 비해 너무나도 약한 시골 경찰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br>추격전 중간에 갑자기 등장해서 유탄발사기까지 날리는 성애의 모습도 굉장한 여전사가 출현하는 건가 싶었다. 조금은 후줄근하면서도 나름 그 시대 상남자의 최신 유행(?)이었을 복장의 성기까지, 각 캐릭터의 비주얼도 당장에 무슨 게임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스타일리쉬하다. 심지어 괴물의 정체가 밝혀지고, 마지막의 그 무지막지한 함선까지도, 사실 영상의 볼거리 측면에서는 근래 본 한국 영화 중 최고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br><br><br><br> 장르가?<br>극의 전반부는 압도적 힘을 지닌 괴물을 추격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막상 괴물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이제는 도망치기 바쁜 탈출기로 이야기가 반전된다. 기본적으로는 흥미로운 전환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은 쉴 새 없이 욕을 내뱉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괴물’들을 마주한 인간들의 긴장감을 보여준다.<br>그런데 이 긴장을 어떻게든 조금은 풀어주어야겠다는 압박감(?)이 강했던 건지, 감독은 5분에 한 번씩은 관객을 웃기려고 애쓴다. 보건소장으로 나온 배우 황석정은 아예 개그캐릭터로 넣은 듯한데, 그 압도적이고 특이한 괴물의 사체를 보고도 제대로 놀라거나 최소한의 과학적 추론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썰고, 이상하네 하고 사라진다. 아무리 시대 배경이 7, 80년대라고 해도 이 정도 반응이 일반적이었을까?<br>여기에 배우들이 벌이는 티키타카는 대체로 말장난, 슬랩스틱 코미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걸로 시간을 소비할 때마다 지루했다. 마치 영화 “외계+인”을 보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니지 않았던가. 같은 차원에서 영화 종반부의 승용차 추격(?) 아니 도주신은 그냥 영화가 개그물로 전락하는 슬픈 시간들이었다.<br><br><br><br>스토리는...<br>영화 속 ‘괴물’의 정체가 외계인임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급격히 흘러간다. 이제까지는 그저 괴물을 쫓는 추격적인 듯했지만, 갑자기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에게도 뭔가가 있다는 식으로 흘러가기 때문.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외계인들의 ‘사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후속편을 예정하지 않았다면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밖에. 그리고 후속편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전편을 마무리하는 게 맞나 싶긴 하다.<br>이게 SF라면 그에 걸맞은 S, 즉 Science가 필요하다. 뭐 70년대 우리나라의 무기체계로 외계인과 맞설 수 있긴 할까 싶은 생각은 별개로 하더라도, 우주선까지, 그것도 결말부에 나오는 그렇게 거대한 함선까지 만들어 타고 다닐 수 있는 외계인이, 정작 지구에 와서는 압도적인 피지컬만 보여준다는 부분이 꽤나 아쉽다. 그 흔한 무기 하나 없이 맨몸으로 달리고, 물어뜯고, 부딪혀 파괴하는 게 전부인 건가.<br>이야기가 너무 허접하다. 너무나 잘 만든 비주얼적 부분 때문에 이 부분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뭔가 복잡하게 만들어야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애초에 이건 오락영화에 가깝지 않던가. 그렇다면 좀 익숙하고 흔하더라도 이해가 되고, 설명이 되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갔어야 했다. 그렇다면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았을지 모르나, 잘만 하면 휴머니즘을 자극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평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괴작이라고 해야 할지, 졸작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br><br><br><br> 사실 난 신파도 그리 까다롭지 않은 쪽이다. 평론가들이야 그 진부함을, 게으름을 운운할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보통의 관객이야 울든 웃든 극에 충분히 빠졌나가 나오면 좋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초반에는 몰입하게 만들어 놓고서 점점 의아하게 하더니, 인상을 찌뿌린 채로 영화관을 나오게 하면 어쩌라는 건지...<br>사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상영시간이 꽤나 길다. 두 시간 반이면, 뭐가 됐든 이야기가 제대로 마무리 됐어야 했다. 중간 중간 의미 없는 반복이나 유머를 좀 빼고, 이야기가 개연성을 갖는 결말로 이어지도록 했더라면 어땠을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5/pimg_639215708875322442.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485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성공 신화 뒤 감춰진 계급사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2599</link><pubDate>Tue, 04 Aug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259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690766&TPaperId=174325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48/82/coveroff/899369076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기회균등과 자기계발을 내건 교육은 신분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좋은 장치다. 심각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해도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교육이 만들기 때문이다. 교육받을 수 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탓이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는 경제민주화만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방향전환도 이루지 못했다.<br>- 하승우, 『신분피라미드사회』 중에서<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48/82/cover150/89936907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48828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목회자가 성도들에게 건네는 인생의 지혜 - [그리스도인을 위한 인생독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0168</link><pubDate>Mon, 03 Aug 2026 15: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301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5989X&TPaperId=174301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5/92/coveroff/89041598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415989X&TPaperId=174301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리스도인을 위한 인생독본</a><br/>이용범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2년 06월<br/></td></tr></table><br/>한 교회에서 오랜 시간 동안 목회를 한 담임목사가 성도들에게 건네는 인생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수십 개의 조언들이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성실한 청지기가 되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라,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라, 마음의 정원을 가꾸라 라는 제목만 봐도 대략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다.<br>크게 복잡하거나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다양한 예화와 함께 간단한 교훈을 전달하는 식으로 각 장이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설교의 도입부에 넣을 만한 내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예화의 경우 저자 자신의 새로운 통찰이나 경험이 많이 실렸다기 보다는, 익숙한 느낌의 예화들이 많이 보인다. 다만 그 중 사실과 다른 내용(솔개가 나이를 먹으면 스스로 부리와 발톱을 뽑아낸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건 조류학자들도 황당해 하는 인터넷 괴담이다)도 보이는 게 아쉬운 부분.<br>물론 그래도 읽어볼 만한 예화들, 그리고 조언들이 가득하다. 앞서도 말했듯이, 설교에 예화로 쓸 수 있는 소스들도 많이 담겨 있고. 전반적인 논조와 글의 방향성도 건강하고, 전체적으로 쉬운 글인지라, 한 편씩 차분하게 읽어 보면 분명 유익할 듯.]]></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65/92/cover150/890415989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65920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문학/에세이</category><title>나를 대신한 복제인간이 훔칠 수 없었던 것 - [혐오도 복제가 되나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9687</link><pubDate>Mon, 03 Aug 2026 10: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96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4296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off/k4121372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281&TPaperId=174296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혐오도 복제가 되나요</a><br/>윤혜성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03월<br/></td></tr></table><br/>얼마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외할머니와 살겠다며 먼 나라로 떠나버렸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말고는 이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어느 날 집 앞으로 죽은 아내의 이름으로 발송된 커다란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br>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주인공 수한과 똑같은 모습의 또 하나의 사람이 들어 있었다. 자신을 수한의 복제인간이라고 소개하는 그와 함께 온 쪽지에는 서툰 글씨로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수한의 죽은 아내는 소설 속 가공의 나라인 리벨라우스 출신으로 우리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설정. 와우 이 소설 복제인간을 다루고 있었다.<br><br> 소설은 나와 똑같은 모양의 복제인간과 함께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는 꽤 현실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소설 속 시대는 가까운 미래로 보이는데, 복제인간을 만드는 행위는 불법으로 여겨지고, 적발될 경우 복제인간은 ‘폐기’된다. 주인공 수한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그런데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수한은 아들의 양육권을 장모와 다투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낮은 점수(이 시대에는 AI로 적합도 점수를 매긴다)를 가진 상황에 복제인간 같은 불법요소까지 알려지면 더욱 불리해 질 수 있었던 것.<br>결국 잠정적인 동거를 시작하는데, 수한의 모든 기억을 이식받은 복제인간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대화를 이어나갔고, 어느새 수한 역시 경계의 줄을 살짝 놓기까지 한다. 아들과의 만남과 회사 일이 겹치자, 복제인간을 대신 회사에 보내기까지 한다(심지어 자신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잘 풀어나간다!).<br>복제인간이 나를 대신해 회사에 출근하고, 심지어 나보다 일처리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잘 풀어나간다면, 아마 우리 중 십중팔구는 이른바 복제인간으로 ‘자동사냥’을 돌리지 않을까? 그렇게 남은 시간을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는 데 사용할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다만 이런 기대는 새로운 게 아니다. 다양한 기계장치들을 도입할 때도 인류는 모든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결과는 더 많은 일과 더 적은 휴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br>아마 AI의 도입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지금은 자동화니 뭐니 하면서 힘을 덜 들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모두가 그것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제는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지식의 양과 종류가 늘어날 뿐, 일은 더 많이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br><br><br><br>그렇게 복제인간과의 동거가 꽤 괜찮게 이어지는 듯하던 어느 날, 수한은 복제인간에게 아내의 보험금 관련 은행 업무를 맡겼다가 돌발행동을 벌이고, 갑자기 이야기가 파국으로 치닫는다. 작중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복제인간이라는 것도 의식을 갖고 있고, 그 의식은 칩으로 공유되는 기억/지식과 달리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br>그 티핑 포인트 다음부터 복제인간은 수한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조여 오기 시작한다. 그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위협하고 마침내는 자신이 수한을 대신하고자 한다. 마치 SF 디스토피아물에서 자주 보이는, 기술의 공격으로 위기에 몰린 인류의 상황의 일상 버전이랄까. 그렇게 소설은 점점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그리고 우리의 통제를 넘어서는 것 같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br>사실 주인공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과 (복제인간이 만든) 불리한 증거들로 둘러싸여 있어 좀처럼 상황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는데, 의외로 매우 인간적인 증언 한 마디로 모든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증언의 핵심에는 ‘상처’가 있었다. 상처는 삶 속에서 무수히 만나는 장애물들과의 접촉의 결과다. 우리는 종종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그런 상처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핵심요소인지도 모른다.<br><br> 이 외에도 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복제인간의 존재, 복제인간의 “폐기”에 관한 윤리적 문제 같은 좀 더 생각해 볼만한 거리들이 있지만, 작품의 볼륨 상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덕분에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명확한 진행을 얻긴 했지만. 기대했던,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재미있어서 금세 다 읽어버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30/55/cover150/k4121372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30557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나 없이 행복하면 안 돼” 사랑이 지옥이 되는 순간 |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8648</link><pubDate>Sun, 02 Aug 2026 1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864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060652950&TPaperId=174286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5/66/coveroff/006065295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4286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사랑은 상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상대가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마음일까요? 이번 장에는 자신과 만난 사람과 동물에게까지 풍성한 생명을 흘려보낸 사라 스미스와, 아내가 자신 없이 행복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남편이 등장합니다.&nbsp;​왜곡된 사랑은 상대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까지 작아지게 만듭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을 통해 사랑받고 싶은 나 자신만을 붙잡고 있을까요?<br><br><br><br><br>&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진리를 잃어버린 교회에 뉴비긴 던지는 질문 - [누가 그 진리를 죽였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0137</link><pubDate>Wed, 29 Jul 2026 2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201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2470&TPaperId=174201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56/20/coveroff/89328124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2470&TPaperId=174201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가 그 진리를 죽였는가?</a><br/>레슬리 뉴비긴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11년 07월<br/></td></tr></table><br/>겨우 100여 쪽밖에 안 되는 (판형도 작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권위에 관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진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br>기독교 시대가 된 이후 약 1천 년 동안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계시)를 진리의 원천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근대성은 그런 권위를 무너뜨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중심으로 무엇이 확실한 것인지를 판단하려고 했다. 이성이 권위의 근원이 된 것이다. <br>그러자 기독교 일각에서도 이런 변화를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구세주의 권위를 입증할 만한 근거를 다른 곳에서 찾는 일은 그 구속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br>예수님은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공동체를 만드시고, 가르치셨으며, 그 공동체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도록 하셨다. 저자는 오늘날 교회가 진리를 주장하기 위한 방식도 이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리는 증언으로서, 선포로서, 그 이야기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제시되어야 한다. 저자는 아예 ‘객관적 진리’의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진리는 사물을 탐구하듯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격적 헌신이 필요한 관계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br><br><br><br><br> 개인적으로 C. S. 루이스 다음으로 믿고 보는 저자가 레슬리 뉴비긴이다. 신학적 깊이도 깊이려니와 보수적이면서도 현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을 하게 된다. 여기에 좋은 번역자들을 만났기 때문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면도 좋았고.<br>뉴비긴은 매우 당당하게 기독교 진리를 선포한다. 그러나 그 선포의 방식은 전혀 무례하지 않다. 복음을 살아 내는 방식이어야 하고, 상대를 논리로 굴복시키거나(전형적인 이성 중심의 근대적 진리관에서 나오는 태도다), 힘으로 관철시키는 방식이 아니다. 이건 그가 40여 년 동안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깊이 배어든 태도가 아닌가 싶다.(물론 이런 관점이 단지 기독교를 윤리종교화 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시도와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br><br><br><br>제목을 흥미롭게 뽑았다. 원서의 제목은 "Truth and Authority in Modernity"으로, 직역하면 “모더니티에서의 진리와 권위” 정도가 될 텐데, 이쪽이 책의 내용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 주기는 하지만, 왠지 맛이 좀 덜하다. 번역서의 구판의 경우 “포스트 모던 시대의 진리”라고 번역했다는데 이건 좀 부정확한 느낌이다. 책에서 지적하는 이성을 진리의 기초로 두는 관점은 포스트모던 보다는 앞선 시대의 특징이니까. <br>여튼 그래서 개정 번역판의 한글 제목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누가 ‘그 진리’를 죽였을까. 일차적으로는 근대의 합리주의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범인은 그런 현대성에 굴복해 복음의 진리를 망가뜨린 이들일 것이다. 아쉽지만, 여전히 그런 이들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커 보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56/20/cover150/89328124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56203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단일민족’이라는 오래된 신화를 넘어서 - [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 상상과 과학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한민족의 흔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4759</link><pubDate>Mon, 27 Jul 2026 14: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47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8873&TPaperId=174147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82/84/coveroff/89509788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78873&TPaperId=174147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의 기원, 단일하든 다채롭든 - 상상과 과학의 경계에서 찾아가는 한민족의 흔적</a><br/>강인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br/></td></tr></table><br/>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을 교과서로 배웠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도 있고, 아무튼 생긴 것들이 다들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로 구성된 나라다 보니 그 설명이 그럼직해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생각들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자연히 ‘우리’와 다른 ‘외부인’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도 높아진다는 것. 물론 정치적 부추김의 영향이 다분하긴 하지만, 혐중, 혐일 정서도 이런 의식이 낳은 부작용이다.<br>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인가? 유라시아와 고조선 시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온 고고학자인 저자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한반도는 고립된 지역이 아니었다. 저자는 크게 세 갈래로 한반도로의 이주/전래가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고조선이 위치했던 요하 유역을 통한 통로고, 두 번째는 북방의 초원에서 들어오는 길이었다. 세 번째는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루트로, 러시아 연해주로부터 한반도 동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환동해 루트다.<br>저자는 각각의 루트를 상징하는 유물들을 제시한다. 첫 번째 루트의 상징은 비파형 청동검이고, 두 번째 루트는 금관, 세 번째 루트를 보여주는 상징물은 암각화다. 하나같이 다 고고학적 증거들이다. 이른바 원사시대(Protohistory)를 다루다보니, 기록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유물과 유적을 통해 추정해 나갈 수밖에 없다. 확실하지 않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지만(그래서 같은 유물을 두고서도 꽤나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최근에 발전한 다양한 과학적 도구들(예를 들면 DNA분석이라든가)을 이용하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추후 연구를 기대해 볼 만.<br><br><br><br> 고립은 자랑이 아니다. 그건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문명과 사회는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우위에 있는 것을 수출하며 이익을 취한다. 선진문화를 수입하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빈 땅에서 시작한다면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br>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이 땅에는 다양한 그룹이 오고갔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한참 후대에나 발명된 것이고, 이전에는 사실 그런 경계가 명확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경우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국수주의적 태도가 굳어진 감이 있다. 단일만족이라는 신화는 정치적 구호에 가깝다. 그건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우리에게 진짜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br>물론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당장에 넓은 시야로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유라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자의식을 갖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또, 역사공적을 포기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과 얽힌 역사를 갖고 있으니 그 또한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긴 하고. 언젠가 우리 지역 여러 학자들이 공동의 역사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게 될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682/84/cover150/89509788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682840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amp;quot; 읽기</category><title>이스라엘은 다윗의 길을 따르는가, 아합의 길을 따르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22</link><pubDate>Sun, 26 Jul 2026 19: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2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635844&TPaperId=174131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off/k2526358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고대 이스라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던 사회였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정착촌 정책은 다윗의 길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아합의 길에 가까울까요? 이번 영상에서는 여호수아 시대부터 왕정시대까지의 성경 기록을 통해 ‘약속의 땅’과 ‘공존의 책임’을 함께 살펴봅니다.<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150/k252635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966306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X출판사</category><title>한국 크리스천들이 분권 성경을 찾지 않는 뜻밖의 이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18</link><pubDate>Sun, 26 Jul 2026 19: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311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726999&TPaperId=17413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33/35/coveroff/895372699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413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037700&TPaperId=17413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36/1/coveroff/k99203770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30년 동안 성경 제작 과정을 담당해 온 아가페 출판사 관계자와 함께 성경책 한 권에 담긴 기술과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구름책방이라는 이름의 의미, 기독교 서적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C. S. 루이스 입문서, 역사 독서의 필요성, 그리고 혼자 성경을 읽다가 교회를 찾아가게 된 구름책방 운영자의 이야기도 만나보세요.<br><br><br><br><br>&nbsp;&nbsp;&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36/1/cover150/k9920377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36011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AI가 대신 써주는 시대, 우리는 왜 계속 쓰는가 -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 신앙을 일깨우는 글의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0754</link><pubDate>Sat, 25 Jul 2026 1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107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601&TPaperId=174107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19/60/coveroff/k1821306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601&TPaperId=174107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 신앙을 일깨우는 글의 힘</a><br/>조명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07월<br/></td></tr></table><br/>대화형 AI를 사용하면 몇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긴 글을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읽은 책마다 애써 리뷰를 쓰고 있으면서도,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요새는 읽으면서도 가끔은 의심이 되곤 한다. 이게 정말 사람이 쓴 글인지. 이런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걸 모아 책으로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br>책의 1부에서 저자는 글을 쓰는 일이 주는 유익에 대해 이런저런 내용들을 풀어놓는다. 새벽에 글을 쓰는 시간은 “텅 빈 마음의 곳간을 두둑하게 채우는 시간”이었다든지, “글쓰기만한 자기계발도 없다”든지, 글을 쓰며 자신의 말과 생각을 필터링하게 된다든지 하는 내용들이다. <br>2부에서는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몇 가지 요령들이 제시된다. 경험했던 일들 가운데 다양한 것들을 글로 옮겨보라는 식이다. 뭔가 대단한 것을 쓰려고 하지 말고, 그저 일상 속의 일들을, 편안하게 써보라는 것. 3부에서는 글을 써 보라는 격려를, 4부에서는 좀 더 실제적인 글쓰기 팁을 담았다.<br><br><br><br> 사실 책에 나오는 설명들은 개인적인 요소인 경우도 다분하고(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모두에게 비슷한 수준으로 유익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글쓰기라는 작업은 (그냥 일기장에 끄적이는 수준 너머를 보고 하는 거라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역사 이래로 글쓰기라는 기술은 단 한 번도 ‘모두’의 일이 된 적이 없으니까.<br>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유익, 혹은 이유가 책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즐거움”이다.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도 즐거우니까 하는 거다(누가 인정해주지도 않는 리뷰를 1500개씩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즐거움은 일단 써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 한 번쯤은 글을 써 보는 걸 추천한다. 다만 그게 영 즐겁지 않다면 또 다른 걸 찾아 나서도 괜찮다. 말했지만, 글쓰기는 모든 사람에게 맞는 작업은 아니니까.<br>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대체로 공감이 된다. 아무래도 글 옆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을 만났다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조만간 책을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더더욱 책의 권고가 격려로 들리기도 할 듯하다. 한 번 써 보자.<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19/60/cover150/k182130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19608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고갈된 시대, 교회는 어디에서 충만함을 찾는가 - [고갈된 세상 속 충만한 나라 - 골로새서 강해와 묵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7399</link><pubDate>Thu, 23 Jul 2026 1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73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7229&TPaperId=174073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01/2/coveroff/k2121372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7229&TPaperId=174073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갈된 세상 속 충만한 나라 - 골로새서 강해와 묵상</a><br/>이지일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6년 04월<br/></td></tr></table><br/>골로새서를 본문으로 한 열세 편의 연속 설교문을 책으로 엮었다. 설교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건 6개월 동안의 안식년 기간 경험했던 일들인데, 제주부터 시작해 이탈리아 독일 등지를 다양하게 다니며 경험했던 것들이 꽤 인상적이었던 듯(교통사고로 큰 일을 당할 뻔도) 자주 언급된다. 아마도 그 직후 돌아와서 한 설교들로 보인다.<br>6년 간의 사역 후 얻은 쉼의 기간이지만, 저자는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무엇으로 품을지를 두고 고민했던 것 같다. 아마 골로새서를 묵상하며 나눈 것도 그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과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함께 신앙으로 살아내는 일에 관한 다양한 면을 조명하는 내용들이다.<br>사실 1장에서 1세기 로마 제국의 상황을 그리는 부분이 나와서 이 시리즈가 당시의 역사적 상황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오늘의 현실과 연결 짓는 방향으로 가려나 하고 생각을 했지만, 기대만큼 깊이 천착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예배 설교라는 상황 상의 제한점이 있긴 했겠다 싶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아마도 저자도 참고했을) 브라이언 왈쉬가 쓴 “제국과 천국”이라는 좋은 책이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되겠다.<br><br><br><br>설교를 통해 그의 회중이 어떤 모습인지가 그려진다. 작지만 견실한, 세상의 고함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런 공동체가 아닐까. 아니 적어도 그런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br>물론 2천 년 전 골로새 교회 공동체와 오늘 대한민국의 교회의 상황은 다르다. 소수파로 핍박을 받고 있던 그 시절과, 이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수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치면 30%대다)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면도 있다. 정치와 일체가 된 일부 교회의 모습은, 2천 년 전 권력을 지탱하는 도구로서 작동했던 우상숭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br>신약의 모든 책들이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골로새서는 좀 더 이 주제에 집중하는 편지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골로새서 속 바울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01/2/cover150/k2121372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01028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문학/에세이</category><title>아름다운 섬 아래 잠든 일곱 개의 공포 - [고딕 × 호러 × 제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6402</link><pubDate>Wed, 22 Jul 2026 21: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64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934623&TPaperId=174064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0/61/coveroff/k06293462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934623&TPaperId=174064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딕 × 호러 × 제주</a><br/>빗물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4년 11월<br/></td></tr></table><br/>서울국제도서전에서 찜해 왔던 책들 중 하나다. ‘고딕’과 ‘호러’와 ‘제주’라는 세 개의 단어가 X표로 연결된 독특한 제목이다. 사실 ‘고딕’과 ‘호러’는 큰 차이가 없는 뉘앙스를 가진 단어이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보니 고딕과 호러 사이의 X와 그 둘과 제주 사이에 놓여 있는 X는 폰트도 다르고 거리감도 좀 있다. 고딕, 호러를 제주에 이식했다는 의미일까.<br>책은 모두 일곱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제주의 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그 지역들은 서로 겹치지 않고, 이야기도 내용상 연결되지는 않는다.(심지어 마지막에 실린 작품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br>목차 페이지부터 굉장히 재미있다. 간략화 된 제주도의 지형도를 그려놓고, 각각의 소설이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를 표시해두었다. 마치 RPG 게임의 메인화면에서 다음 탐험할 지역을 선택하는 느낌인데, 실제로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관심이 가는 지역이 있다면 그 부분을 먼저 골라 읽어도 될 것 같다.<br><br><br><br> 작품들의 또 다른 특징은 실제 제주의 역사적 사건들과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작품인 ‘말해줍서’는 현대의 주인공이 4.3사건 당시로 넘어가서 정부군을 피해 숨어있는 제주인들의 공포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br>이외에도 적산가옥에 남아있는 귀신 이야기라든지, 일제강점기 공항과 방공호를 만들기 위해 강제 동원되어 죽어가던 이들이라든지, 유명한 이어도 전설이나, 이재수의 난(신축민란)이나 5.16도로의 괴담 등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제주 지역의 특별한 역사와 사건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풀려나온다.<br>다만 그 방식이 신박한 건 아니다. 신부가 등장하는 엑소시즘이라든지, 외딴 등대에서 일하면 거액을 받을 수 있다는 채용공고라는 설정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 전반적으로 인터넷, 유튜브 등에 많이 떠도는 괴담 수준의 느낌이랄까.<br>여기에 전반적으로 결망에 뭔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꽤 있는데, 이건 비단 단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에는, 나름 잘 정리된 이야기들도 있으니까. 다만 이런 장르문학도 어느 정도 작품들이 쌓이다 보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작가들을 응원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0/61/cover150/k06293462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20619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빅테크 규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2417</link><pubDate>Mon, 20 Jul 2026 1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241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837290&TPaperId=174024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82/75/coveroff/k56283729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민주주의의 힘은 우리 대부분이 피하고자 하는 결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데 있다. 수도꼭지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이 흘러나오게 해주고, 음식을 먹고 병에 걸리는 일이 없게 해주고, 도로에서 적절한 안전 의식을 갖고 차를 운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정부 규제의 덕분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의 자리가 걸려 있을 때에나 나설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대표들이 지금 가장 중요한 기술적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며,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투표소에서 그들을 벌할 준비를 해야 한다.<br>-&nbsp;롭 라이히, 메흐란 사하미, 제러미 M. 와인스타인, 『시스템 에러』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82/75/cover150/k5628372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82759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천국과 지옥의 이혼&amp;quot; 읽기</category><title>빨간 도마뱀을 떼어내면 벌어지는 일 | 『천국과 지옥의 이혼』 읽기 1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0352</link><pubDate>Sun, 19 Jul 2026 1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4003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13702&TPaperId=174003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off/8936513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사랑은 언제나 선하고 거룩한 감정일까요? C. 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 11장에서 자녀를 놓지 못하는 어머니와 어깨 위의 빨간 도마뱀을 통해, 사랑과 욕망이 어떻게 소유욕과 우상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줍니다.<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217/4/cover150/8936513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217041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입시 경쟁 속에서 기독학부모로 살아가는 용기 - [기독학부모로 살아가기 - 공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환호하는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8698</link><pubDate>Sat, 18 Jul 2026 1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86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130076&TPaperId=173986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7/8/coveroff/k7921300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130076&TPaperId=173986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독학부모로 살아가기 - 공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환호하는 삶</a><br/>김정준 지음 / 한낮의단비 / 2026년 06월<br/></td></tr></table><br/>몇 년 전 흥미로운 기독 청소년 소설을 냈던 한낮의단비 출판사에서,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교육현실 속에서 기독 학부모가 기억해야 할 내용들을 담은 책을 냈다. 책의 저자는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교목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 목사다.<br>원래 대안학교는 입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시작된 대안적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대안학교가 또 하나의 고액입시학원이 되기도 한다. 어차피 인가를 받지 않은 경우라면 교육과정에서의 균형 따위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무슨무슨 국제학교니 하는 이름을 붙여놓고 아예 유학전문학원 같은 느낌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여기에 ‘기독’이라는 이름을 붙이거나 예배를 몇 번 더하면 기독교 학교가 되는 것처럼 여기기도 하고.<br>이 책의 저자는 그런 엉터리 개념들을 싹 치운다. 기독 대안학교라면 애초에 운영 방식과 목표, 지향점부터 달라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좋은 기독교적 교육은 학교 차원에서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의 생각도 참 중요하다. 책은 저자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또 학부모들과 함께 씨름하면서 기독교인으로 아이를 키워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점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놓는다.<br><br><br><br>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건 이른바 성적(결과)지상주의다. 학생이니 좋은 성적을 거둬서, 이름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최상의 가치라고 여기는 생각은 이미 우리 사회 뿌리깊은 신화가 되었다. 누가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하면 교회에서도 칭찬이 그치지 않고, 심지어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학력부터 보는 게 오늘날 교회의 한심한 수준이다.<br>내가 살고 있는 대치동은(한 구석이다) 그런 성적지상주의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불든, 일요일이든 공휴일이든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학원으로 향한다. 금요일 오후면 아이들이 단체로 버스에서 내려 주말 내내 학원에서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방학이 되면 아예 지방에서 올라와 숙식을 하며 학원수업에 참여한다고도 한다.<br>세상이 이럴진대, 스마트폰도, 사교육도 하지 않는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놓고 안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용기는 바른 앎과 좋은 공동체(에서의 격려)가 필수적인 것 같고. <br><br><br><br><br> 그리스도인은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책상 앞과 교실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여전히 심지어 기독교 출판계 안에서도 복 받아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상황에서, 이런 목소리가 좀 더 커지고 많아진다면 우리의 상황은 조금 더 나아질수 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7/8/cover150/k7921300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7085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판타지와 종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6897</link><pubDate>Fri, 17 Jul 2026 14: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68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864455&TPaperId=173968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2/47/coveroff/895986445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공상과학소설에서 종교가 다뤄지는 것이깊이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무관심해서도 안 될 일이다.그러나 초기 거장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그 반동으로 판타지 작가들은더욱더 종교와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br>- 샤나 코히 엮음, 『다시 찾아간 나니아』 중에서<br><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2/47/cover150/89598644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479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작은 교회를 위한 AI 찬양 제작 안내서 - [수노 한 스푼, 찬양 한 그릇 - 반주자 없는 교회를 위한 Suno AI 음악 제작 실무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79</link><pubDate>Thu, 16 Jul 2026 17: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9241&TPaperId=173954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6/42/coveroff/k1121392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9241&TPaperId=173954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노 한 스푼, 찬양 한 그릇 - 반주자 없는 교회를 위한 Suno AI 음악 제작 실무서</a><br/>이지철 지음 / 세움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기독교회의 예배에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이른바 찬양은 가장 이른 시기의 예배 요소이기도 했고, 오늘날 찬양은 어쩌면 가끔은 설교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 가운데로 옮겨주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다만 찬양 역시 음악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바, 음악적 재능이라든지, 자원이 부족한 경우에는(작은 교회에는) 충분히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br>AI가 발달하게 되면서 적어도 자원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드는 비용이 상당히 낮아졌다.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가 없더라도, 대충 느낌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수노(SUNO)”가 그 중 하나다. 저자는 이 AI의 사용법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br><br><br><br> 사실 이미 챗GPT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의 사용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면, 이런 종류의 대화형 AI도구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수노는 음악을 만드는 데 특화된 서비스고, 작동 방식은 여느 AI 서비스와도 비슷하다. 책에는 프롬프트가 영어로 안내되어 있는데, 리뷰를 쓰기 전에 직접 한 번 제작해 보니 우리말로도 간단한 배경음악 제작이 금세 가능했다. 물론 확실한 결과물을 위해서는 영어로 입력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한 지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고.<br>저자는 이 도구가 아직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AI 서비스의 장점인 개인화된 결과물은, 개별 교회의 사정에 맞춘 찬양을 만들어서 좀 더 효과적인 교육과 공동체 소속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고, 작은 교회들에서도 충분히 시도해 볼만해 보인다.<br>다만 음악은 음악인지라, 최소한의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하고(책의 내용이 대부분 그걸 설명하는 것들이다), 특별히 이 AI서비스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가진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통역능력’이 필수적으로 보인다.(이건 기술로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해 보이는데, 아직 그만큼 올라오지는 않은 듯. 곧 올라오겠지만) 이 부분에서 조금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앞서 내가 시도해 본 것처럼 우리말(한글)로도 어느 정도 생성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일단 도전하면서 감을 익혀나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br>재미있는 도구를 소개받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6/42/cover150/k1121392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76422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최근 팔로워가 조금 늘고 있는데 그 정체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46</link><pubDate>Thu, 16 Jul 2026 17: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544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954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최근에 정치와 종교에 관한 책("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아바서원)을 가지고 영상을 좀 만들어 보고 있다. 책의 순서에 따라, 최근에는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 되었는데....<br>그걸 또 짧게 쇼츠/릴스로 만들어서 올리다 보니, 쇼츠에 따라서 정부의 간섭을 경계하는 내용으로도, 반대로 교회가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도 각각의 영상이 만들어진다. <br>얼마 전부터 인스타그램이든, 페이스북 (구름책방 페이지) 팔로워든 조금씩 는다. 누군가 하고 들어가 보면 이른바 극우 사상을 담은 게시물을 올린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아마도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는 걸 보고 우리 편이다 싶었나 보다.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둬 보기로 했다. 혹여나 한 명이라도 책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니까.(맞팔은 안 한다)<br>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증감도 재미있다. 원래 느릿느릿 가고 있는 채널이긴 한데, 하루에 너댓 명씩 구독을 했다가 또 어느 날에는 그만큼 쭉 빠진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영상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짐작은 된다.(틀릴 수도 있다)<br>양편의 공격을 다 받곤 한다. 한 쪽에서는 개독이라고 욕설로 댓글을 날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좀 더 신앙에 충실하지 않다(?)고 비판을 받는다. 전쟁 중에서도 양면 전쟁만큼 어려운 게 없긴 한데, 물론 어느 장단에 맞춰줄 생각은 없다.<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프랑스혁명 전야에서 오늘의 포퓰리즘을 보다 - [대서사의 서막 -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3042</link><pubDate>Wed, 15 Jul 2026 1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930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434192&TPaperId=173930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63/51/coveroff/k8024341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434192&TPaperId=173930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대서사의 서막 -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a><br/>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5년 12월<br/></td></tr></table><br/>프랑스 혁명을 다룬 10권짜리 대작의 시작이다. 책은 학자 특유의 조금은 느릿한(혹은 학문적인 예비적 고찰) 템포로 시작된다. 뭐 이 정도 책을 계획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도 책 한 권 정도는 써야 할 것 같긴 하지만.<br>1권에서 다루는 건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 이른바 앙시엥레짐(구체제)의 모습이다. 고대 말 프랑크족의 침입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역사는, 샤를마뉴와 그 후계자들 중 한 명을 따라 이어진다. 초기에는 그리 왕권이 강하지 않았지만, 여러 명의 왕들이 노력한 결과 서서히 왕령을 넓혀가고, 권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책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의 구체제에 관해 차근차근 분석한다. <br>왕실과 왕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2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흔히 삼부회라고 불리는 전국신분회 소집까지의 사건들을 설명한다. 잘 아는 것처럼 그 시기 프랑스는 소수의 성직자와 귀족들이 절대 다수의 평민들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평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경제문제(밀가루 파동)까지 더해지면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타오르게 된다. 역시 먹고 사는 문제는 큰일을 부른다.<br><br><br><br>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되곤 한다. 이미 지난 세기 급속한 성장으로 선진국이 된 서구를 중심으로 극심한 성장률 저하가 일어나고 있고(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그 결과 혁명까지는 아니라도 이전 시대라면 결코 선출되지 않을 것 같은 충격적인 지도자들이 여기저기 뽑히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트럼프다.<br>날마다 최악을 갱신하고 있는 이 새로운 지도자는 강력한 포퓰리즘 구호로 집권을 했지만, 정작 당선 후에는 지지자들 보다 자기 계좌를 채우는 데 열성적이다.(프랑스혁명 때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수 조 원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는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폭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이 역시 혁명 때도 일어났던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혁명의 전조를 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포퓰리즘 혁명.(좀 더 익숙한 용어로는 극우의 난동)<br><br><br><br> 앙시엥레짐에서 단지 왕의 무능력만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재정지출을 건전화해야 한다는 신하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등 국가 운영에 나름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기도 했다.(물론 그 정책이 실패가 결과적으로 밀가루 파동을 일으켰지만) 그리고 여기서 저자는 고등법원의 법관들에 관한 언급을 한참 이어간다.<br>이들은 이른바 법복귀족이라고도 불리는 문신들로, 왕에 대한 다양한 봉사의 대가로 귀족 신분을 얻게 된 이들이다.(판사의 역할을 함께 맡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과 달리 법관의 지위는 상속이 가능했고, 그 덕분에 귀족 신분을 대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왕의 충실한 신하이기만 한 것 같지만, 또 이들은 다양한 수단으로(예를 들면 왕의 결정이 법에 어긋난다는 내용을 담은 상소 등으로) 왕을 압박하고 견제할 수 있었다.(물론 이게 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br>비유하자면 조선 시대 중신들과 국왕의 관계와 비슷했는데, 분명 신하들은 왕이 임명하지만, 왕이라고 해서 신하들의 의견을 그냥 다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로서 왕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그 아래서 왕의 실정에 저항하지 않고 특권만 누려온 귀족들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장관인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는 한심한 이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이유다. 임면권자라도 잘못을 지적하지 않으면, 단두대로 향할 수밖에.<br>시간이 나는 대로 차근차근 한 권씩 손에 들어볼 요량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163/51/cover150/k8024341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63511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기독교의 적들이 남긴 솔직한 초기 교회사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 로마 세계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8513</link><pubDate>Sun, 12 Jul 2026 23: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85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833354&TPaperId=173885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60/93/coveroff/k8428333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833354&TPaperId=173885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 로마 세계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교</a><br/>로버트 루이스 윌켄 지음, 양세규 옮김 / 비아 / 2023년 06월<br/></td></tr></table><br/>저자는 초기 기독교 시기(2~4세기 정도)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로마인과 그리스인들이 남긴 언급에 집중한다. 저자가 선별한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사상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남긴 기록엔 일차적으로 왜 당대 어떤 이들이 기독교를 멸시하고 평가절하 했는가 하는 반감을 읽게 되겠지만, 또 그 안을 잘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현실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br> 가장 먼저 나오는 인물은 행정관(총독)이었던 소 플리니우스다. 그는 당시 황제인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인들을 언급하는데, 그는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와 삶에서 특별히 문제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정무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기를 거절했다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다.<br>플리니우스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는 기독교를 미신이라고 적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류를 증오한다고 쓰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기독교를 당대 사회와 종교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br><br><br><br>기독교에 대한 좀 더 철학적인 공격도 있었다. 여기에는 2세기 후반 의학자/의사로서 잘 알려진 갈레노스가 먼저 나온다. 그는 기독교를 당새 하나의 철학 학파(당시의 철학 학파는 일종의 종교단체와 비슷했다)로서 여기고 있었고, 비록 믿음을 뒷받침하는 지적 기반은 부실했으나 자기 수양과 절제의 삶을 살아가는 집단이라고 평가했다.<br>오리게노스의 반박문으로 잘 알려진 켈수스는 좀 더 교리적인 차원에서 기독교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내용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했던 그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와 종족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그러니까 어떤 지역이나 어떤 민족은 그들의 신을 갖는다는) 관념을 파괴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기도 한다.<br>기독교에 대한 지적 공격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에 활동했던 철학자 포르퓌리오스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책에는 이 내용이 꽤 길게 설명되는데, 성경의 해석과 이해에 관한 차이는 그것이 계시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애초에 공격하는 쪽에서도 완벽한 논리적 근거를 가져다 대기는 쉽지 않다. 특별하 포르뤼리오스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하나님으로, 유일한 구원의 길로 여기는 부분을 못마땅하게 느꼈던 것 같다.<br>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인물은 배교자 황제 율리아누스다. 그는 제국 내에서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던 유대교까지 포용했지만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는 박했는데,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나왔다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이 기독교에 위협이 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사실 이 부분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이 좀 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은데, 학자들은 이런 심리까지는 딱히 신경을 많이 쓰지 않으니까.<br><br><br><br>책은 처음 3세기 동안 기독교가 꽤 오랜 투쟁을 해야만 했다. 이 투쟁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지적 공론장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또, 저자도 지적하듯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300년에 걸쳐 끊임없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독교 사상이 그저 웃고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br>대적자들의 주장을 통해 초기 기독교의 이미지를 재구성해 본다는 시도가 꽤 흥미롭다. 다만 그런 종류(그러니까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의 글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장은 어느 정도 염두하고 봐야 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60/93/cover150/k8428333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960931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정치와 종교는 왜 다시 충돌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7872</link><pubDate>Sun, 12 Jul 2026 19: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78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3878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오스 기니스의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3장 “깨어진 해결책”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라는 미국식 해법이 왜 오늘날 다원주의, 국가권력, 분리주의 논쟁 속에서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이번 영상에서는 이 문제를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살펴보며, 교회가 공적 광장에서 사라지지도 지배하려 하지도 않고 자유와 설득의 방식으로 서야 할 이유를 함께 생각해 봅니다.​<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정치적 입장을 선택하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5107</link><pubDate>Fri, 10 Jul 2026 2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510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434493&TPaperId=173851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203/96/coveroff/s552434493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보수와 진보는 고리타분하고 모호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며,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평생 한 가지의 정치적 성향만을 지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생 보수이고 평생 진보인 사람은 정치인밖에 없다. 시민은 자유롭다. 인생 속에서 변화하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에 따라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면 된다. 이제 미디어나 타인의 말, 혹은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고, 나와 사회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적 입장을 선택할 때다.<br>-&nbsp;채사장, 『시민의 교양』 중에서<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203/96/cover150/s55243449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203964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조국씨 자꾸 왜 그러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3850</link><pubDate>Fri, 10 Jul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3850</guid><description><![CDATA[<br><br><br>최근 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사용한 사투리 표현에 좌표를 찍으며 일베식 표현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말 끝에 "~노"라는 어미를 붙이는 일베 특유의 조롱 문화(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투를 조롱하는 의미가 담겼다)를 그 멤버가 사용했다는 것.<br>물론 그 비판은 그 멤버가 일베 사용자라는 의미는 아니었고, 일베식 표현이니 사용하지 말라는,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일베식 조롱 표현/문화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며칠 전에는 노무현재단의 이사까지 맡고 있는 조수진 변호사(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자진 사퇴했다)까지 여기에 한 마디를 보탰다. 나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그런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br>차근차근 따져보자. 해당 아이돌 그룹은 이른바 '중소 기획사'에서 만든 그룹이었다. 데뷔한지 1년이 넘었지만, 최근에서야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른바 역주행 중. 그 가장 주된 이유는 유튜브 채널을 통한 친근감 어필이었다. 멤버 중 거제시와 경주시 출신이 있었고, 오늘은 한 번 사투리를 원없이 써 보자는 콘셉트로 영상을 찍었는데, 이게 대박이 난 거다. 도도해 보이는 외모에 친근한, 시골 할머니나 쓸 법한 사투리로 대화를 하니 그 갭이 재미있었던 거다.<br>당연히 이들이 사용한 사투리에는 어색한 부분도 있다. 아무리 지방 출신이라지만 표준어 사용을 오랫동안 익혀왔을 것이고, 서울 공화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고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또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삶의 정황과도 깊은 연관을 갖는데, 어르신들의 상황과 지금 상황에는 차이가 있으니, 애초에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의도적으로 특정한 사투리 표현을 사용해야 할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br>조국 씨('씨'는 경칭이다. 그 진영에서 예전에 자주 주장했던 내용이다)의 사투리 저격은 이런 모든 정황을 무시한 채, 그저 본인 귀에 거슬리는 표현을 문제 삼는 느낌이다. 물론 나 역시 일베는 우리 사회의 곰팡이 같은 존재라고 본다. 그건 혐오를 먹이 삼아 사회를 부패시키는 집단적 광기다. 그러나 곰팡이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심각하게 곰팡이가 핀 것들은 내다 버리는 식으로 처리를 할 수 있겠지만, 공기 중에 수없이 떠 다니는 균을 완적히 박멸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정한 영역에서 특정한 기간 동안은 어찌어찌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무균실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br>이번 저격은 일차적으로 사투리 사용자 일반을 일베로 몰아가는 대단히 정치인답지 못한 공격이었다. 이건 너무나 쉬운 계산 결과다. 당장에 경남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죄인가? 당연히 아니다.<br>애초에 이런 비판을 하려면 해당 아이돌이 해당 표현을 사용했을 때, 혹은 이전에라도 그 그룹이 보여주는 분위기가 일베스러웠을 때에야 조금이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그 표현이 조롱의 의미를 담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 불거졌던 배제고의 일베응원 사태와도 차이를 보인다. 그쪽에서는 명백하게 상대팀은 광주일고를 자극하고 도발하기 위해 해당 구호를 집단적으로, 경기와 직접 상관없이 무맥락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질이 나빴다. <br>여기에 나도 경상도 사람인데 '무섭노' 따위의 표현은 사용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는 조수진 변호사의 말은 그냥 무너지는 배에 식량이라며 짐을 실은 격이었다. 해당 표현은 사투리를 기반으로 조금은 과장되게 상황을 표현하는 콘셉트였다. 실생활에서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건 중요하지 않다. 웃자고 한 말이니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투리를 가지고 창의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하려 했다는 거다. <br>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잘못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발로일까?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바로 이런 오만함 때문이었다고 본다. 윤석열이 그렇게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을 때도, 자신이 임명한 사람이니 (어쩌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인지) 끝까지 두었다가 그 사달이 났다. 비슷한 케이스는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도 있었고. 정부 정책을 건건히 딴지 걸고, 아예 항명을 하는데도, 내가 임명했으니 틀렸을 없다는 고집으로만 비춰졌었다.<br>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실망과 충격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혁신당은 다음 총선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10/pimg_639192726194366878.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385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amp;quot; 읽기</category><title>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정말 저주받을까? |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읽기 (0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341</link><pubDate>Thu, 09 Jul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34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635844&TPaperId=173823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off/k2526358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축복해야 복을 받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구절을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단순한 영토 소유권의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땅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고, 그 땅에 사는 백성에게 정의와 언약의 책임을 요구합니다.&nbsp;​오늘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성경의 일부 구절만 떼어 현대 정치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과연 바른 신앙일까요?&nbsp;<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66/30/cover150/k252635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966306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일상적이고 평범한</category><title>음바페를 응원하면서 극우에 투표하는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214</link><pubDate>Thu, 09 Jul 2026 11: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214</guid><description><![CDATA[<br>월드컵 경기를 드문드문 보면서 느낀 건, 참 흑인 선수 비율이 높구나 하는 점이다. 아프리카 대표팀의 경우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유럽 대표팀들에도, 북유럽 팀들에도 흑인선수 비율이 적지 않다. <br>당장 프랑스만 하더라도 무려 21명의 흑인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대표팀 대다수가 흑인인 셈이다. 음바페도, 뎀벨레도 다 흑인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프랑스에서 당장 인종차별주의 정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 인종주의 정당에 표를 주면서, 자국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흑인 선수들을 보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br>프랑스만이 아니다. 어지간한 유럽팀에는 흑인선수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스포츠의 미래는 흑인들에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남미 국가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축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흑인 비중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이런 쪽에서 아직도 좀 벽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역시 아시아 국가들. 카타르처럼 귀화자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리는 나라가 아니면, 흑인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br>뭐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게다. 당장 흑인들의 이민이나 귀화가 굳이 거리가 먼 아시아쪽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언어적 문제도 있고), 특별 귀화 같은 경우는 그에 맞는 직접적인 재정적 보상이라든지, 국제대회의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이라든지 하는 게 기대되어야 하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일본만 해도 주전 골키퍼가 흑인 혼혈 선수인 걸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br>한편 프랑스에는 공식적으로 인종에 따른 선수 분류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인데, 세지 않으면 문제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인종차별은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심각하면서.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09/pimg_639191917213315108.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38221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