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노란가방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을 읽는 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편하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4 Nov 2026 09:15:36 +0900</lastBuildDate><image><title>노란가방</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95781142170644.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노란가방</description></image><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미국 종교 우파의 진짜 출발점은 낙태가 아니었다 - [미국 종교적 우파의 기원과 본질 - 낙태와 동성애 이면에 감춰진 인종차별이라는 불편한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12050</link><pubDate>Tue, 03 Nov 2026 2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120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2922&TPaperId=176120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7/52/coveroff/k1220329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2922&TPaperId=176120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 종교적 우파의 기원과 본질 - 낙태와 동성애 이면에 감춰진 인종차별이라는 불편한 진실</a><br/>랜달 발머 지음,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25년 10월<br/></td></tr></table><br/>책은 미국 복음주의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8~19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대각성운동으로 형성된 미국 복음주의는, 그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학적 특징에 따라 꽤나 강한 실천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회심한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적극적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꿔야 할 사명이 있다고 믿었다.<br>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이런 성향이 크게 달라졌다.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과 많은 사상자들은, 이 세상이 과연 낙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 틈새를 치고 들어오는 것이 세대주의적 후천년설이라는 종말론이었다. 예수님의 재림 전 신자들이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휴거)이라는 믿음은, 이 “임시적인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br>결과적으로 이는 복음주의자들의 주된 관점을 사회의 연약한 지점을 개선하는 데에서, 개인의 거듭남으로 바꾸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런 태도는 정치에 대한 관심에서도 물러나게 했다. 사실 미국 복음주의에 속한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이슈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br><br><br><br>그런데 무엇이 그들을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바꾸었을까. 저자는 1960년대와 70년대 복음주의자들이 오늘날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낙태”에 대해서도 그리 비판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그 일에 관한 불가피한 상황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려했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압도적인 반응은 침묵이었으며, 간혹 그 문제에 관해 의견이 표명되더라도 그런 의견은 모호했다.”<br>오히려 복음주의자들이 크게 들고 일어나게 한 것은 다른 판결이었다. 1971년 그린 대 코널리 소송에서 컬럼비아 지방법원의 하급심은 인종차별에 관여한 어떤 조직도 정의상 자선기관이 아니며, 그에 따른 면세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핵심은 ‘세금’이었다는 말이다.<br>법적으로 인종차별은 금지되었으나 남부의 다양한 주에서는 실제적인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밥 존스 대학교 같은 인종 분리학교였다. 미국 종교사에 관해 조금만 살펴도 꼭 나오는 학교인 이곳은 당시 흑인 학생의 입학을 불허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대학교도 다양한 면세혜택을 받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대학교가 자선기관이라는 분류에서였다. 일부 흑인 학부들이 인종차별이 이루어지는 기관이 어떻게 자선기관일 수 있느냐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그 소송이 받아들여진 것이다.<br>이는 그런 학교에 한 기부 역시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되면서 기부금액까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으니 이중의 타격이었다. 당장 면세 지위를 박탈당하며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된 근본주의적 학교들은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정부기관인 국세청이 나서자 적당한 눈속임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로소 (낙태 문제에 관해서는 침묵하던) 기독교 보수가 정치와 손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 <br><br><br><br>꽤 흥미로운 해석이다. 그동안 낙태나 동성애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들고 나오던 종교 우파가 실은 인종차별 조치를 개선하지 않은 대가로 받게 된 면제혜택 박탈이라는 벌칙에 반발해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은, 그들의 도덕적 입지(라는 게 있다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br>다만 저자의 주장은 조금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는데, 제시된 내용은 미국의 종교 우파가 애초에 낙태에 별 관심이 없었음을 보여주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일부 지도자들이나 교단 등에서 발표한 입장과는 별개로, 실제로 초기에 낙태 문제를 가지고 세력 결집을 시도했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내용이 책에도 보인다.<br>실상은 낙태를 비롯한 전통적인 보수적 이슈들이 회자되긴 했으나, 그것이 본격적으로 정치운동화 하지는 못하다가, 인종차별과 관련된 면세혜택으로 학교 이사장 등의 영향력과 재물을 가진 이들이 나서면서 이 운동이 세를 크게 늘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어느 쪽이든,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던 흑역사는 회개해 할 죄이겠지만.<br><br><br><br>저자는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 기독교 우파의 원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결과로 설명하기도 한다. 애초에 인종차별과 결부되어 정치세력화가 된 그들이니, 인종차별주의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 또한 찬성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는 비슷한 예로 20여 년 전 이명박의 당선을 한국의 기독교 우파 세력의 양심 파산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본다. <br>당시 내가 속한 보수적인 개신교 교단 신문에서 전국의 목사와 장로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도덕성과 윤리의식 대신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더 우위에 꼽는 결과가 나왔다. 목사와 장로들이 도덕적이지 않고, 비윤리적인 인물이라도 돈만 더 벌게 해 주면 대통령의 자질이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렇게 2000년대 중반, “긍정의 힘” 물결과 함께 대한민국의 보수 기독교계는 물신주의에 무릎을 꿇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거의 그대로 이어지는 상황이다.<br>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 나갈 수 있을까? 이 작은 책에는 그런 대안까지 차근차근 설명되지는 않는다. 사실 이 문제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아니 해결이 되기는 할 지 부터가 좀 회의적인 문제이긴 하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7/52/cover150/k1220329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175273</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에서 논문읽기</category><title>상처를 말할 수 없는 교회 (여성 포용 목회 0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11794</link><pubDate>Tue, 03 Nov 2026 19: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1179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62853&TPaperId=176117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19/0/coveroff/896436285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534696&TPaperId=176117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391/28/coveroff/k46253469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교회는 영적인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차별과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교회는 정말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을까요?⠀이번 영상에서는 서로 다른 세대의 여성 6인을 인터뷰한 결과를 통해 교회 안의 결정권한, 비밀 유지, 뒷담화, 피해자 보호 문제를 살펴봅니다. 공감과 경청, 대응 절차, 외부 전문기관과의 협력, 안전한 소그룹을 통해 교회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봅니다.<br>⠀<br><br>&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391/28/cover150/k4625346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391281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에서 영화수다</category><title> 조카는 왜 다른 선택을 했을까? | 뮤지컬 〈저항〉 Q&amp;A 1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07534</link><pubDate>Sun, 01 Nov 2026 19: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0753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995080&TPaperId=176075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148/67/coveroff/895799508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426675&TPaperId=176075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830/39/coveroff/899542667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7223&TPaperId=176075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02/39/coveroff/k76213722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030864&TPaperId=176075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12/66/coveroff/k68203086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왜 끝까지 버티지 못했을까?”<br>뮤지컬 〈저항〉 속 조카의 선택을 보며 떠오른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처했던 상황을 알고 나면, 같은 선택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공연을 보고 남은 궁금증을 질문과 대화로 풀어봅니다. 마담은 왜 마리를 미워했는지, 조카는 어떤 압박 속에서 개종을 선택했는지, 감옥과 갤리선에 갇힌 사람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함께 이야기합니다.⠀※ 작품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br><br><br>&nbsp;&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12/66/cover150/k6820308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12660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독재를 불러오는 두려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03940</link><pubDate>Sat, 31 Oct 2026 10: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0394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930238&TPaperId=176039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34/72/coveroff/k40293023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두려움은 때로 사회를 독재로 되돌리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정치권력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더 중요하게는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바로 그러한 힘으로 작용한다.<br>-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34/72/cover150/k4029302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934725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타</category><title>평생 불안했던 그녀가 발견한 삶의 비밀 - [내 인생, 방치하지 않습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03175</link><pubDate>Fri, 30 Oct 2026 2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6031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534747&TPaperId=176031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020/36/coveroff/k2625347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534747&TPaperId=176031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인생, 방치하지 않습니다</a><br/>사라 윌슨 지음, 엄자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02월<br/></td></tr></table><br/>조울증과 극심한 불안증세, 그리고 하시모토병이라는 자가면역 질환까지.. 듣기만 해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싶은 작가의 책이다. 젊은 시절에는 &lt;코스모폴리탄&gt;이라는 유명한 패션잡지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뛰쳐나왔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심리증상을 완화/혹은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br>이 책은 그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하지만 50여 개의 짧을 글들(마치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것처럼 느껴지는)을 모아놓은 이 책은, 어쩌면 작가의 심리와 생각을 반영하는 것처럼 정신이 없다. 일관된 흐름이나 체계적인 정리에 따라 결론으로 나아간다기 보다는, 그저 좌충우돌, 암중모색을 하던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 이리저리 방황을 하는 느낌이다.<br>덕분에 책의 내용이 한참 진행되었는데도, 그래서 어떻게 나아졌다는 것인지, 어떤 방법을 따라가면 (독자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인지 선명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반응 역시 지극히 내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된 질문이긴 할 테지만, 마치 글에서도 저자의 불안하고 불안정함이 드러나는 느낌.<br><br><br><br>물론 군데군데 불안이라는 주제에 관한 특별한 통찰이 담긴 문장도 보이긴 한다. 책 초반 작가는 “이제 나는 안전벨트를 매고 있고 내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줄 안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불안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다행이다. 책 속의 복잡한 여정 어디에선가가 돌파구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br>책 내내 불안이 가져오는 문제들을 잔뜩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이 증세가 과거 좀 더 위험한 세상 속에서 큰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특별한 자질이었다고, 다만 시대가 너무 빨리 달라졌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야생의 동물들이나 적의 침입을 경계하는 데에는 조금은 과한 민감함/불안함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말. 물론 현대의 불안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상황과 정확히 같은지는 모르겠지만.<br>주변 환경의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점검하고 통제하려는 성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화학(약물)요법부터 시작해 요가 같은 전통적인 수양법, 다양한 상담과 인지치료 기법 등등 저자가 시도해 본 다양한 요법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질어질할 정도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떻게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지부터가 나에겐 기함할 일.<br>작가의 용감한 도전과 모험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도 부디 빛이 보이길.]]></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020/36/cover150/k2625347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020368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열심히 하는데 왜 교회는 약해질까 - [아브라함 카이퍼의 세 마리 작은 여우 - 교회 안에 숨어 있는 세 가지 위험한 신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97157</link><pubDate>Wed, 28 Oct 2026 00: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971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1680&TPaperId=175971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7/51/coveroff/k4921316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1680&TPaperId=175971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브라함 카이퍼의 세 마리 작은 여우 - 교회 안에 숨어 있는 세 가지 위험한 신앙</a><br/>아브라함 카이퍼 지음, 이상웅 옮김 / 다함(도서출판) / 2026년 10월<br/></td></tr></table><br/>아브라함 카이퍼의 숨겨졌던 책! 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된 홍보글 같겠지만, 역자의 해제에 따르면 실제로 이 글은 그동안 온라인상의 영역본을 제외하면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다고 한다. <br>책 제목에 붙어 있는 “세 마리 여우”란 아가 2장 15절에 나오는, “포도원을 해치는 작은 여우들”에서 따온 것이다. 무슨 큰 소리를 내거나, 엄청난 충격을 주는 건 아니지만, 교회 안에 침투해서 슬그머니 담장을 무너뜨리고 그 힘을 흩어버리는 요소들을 “여우”에 비유했다. 이 글에서 꼽는 세 마리 여우는, 지성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실천주의다.<br><br><br><br>지성주의와 신비주의는 상대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나치게 어려운 지적 문제를 다루는 데만 집중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카이퍼는 “회중은 강단 위의 공증인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일인 공증인과 설교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 신비주의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태도다. 단순히 감상적인 것을 넘어, 교회(와 성경)를 건너뛰고 바로 성령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br>이 두 태도가 어떻게 교회에 해를 끼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명하다. 전자는 교인들에게서 기운을 빼버리고, 후자는 교인들의 길을 잃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 여우인 실천주의다. 카이퍼는 여기에 크게 세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는데, 해외선교, 주일학교, 병자간호가 그것이다.<br>사실 이 세 가지 모두 교회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고, 어느 것 하나 비판하기가 쉽지 않는 대상들이다. 카이퍼의 비판 지점은 비슷하다. 이 세 가지가 각각 어떤 좋은 열정에서 시작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교회와 상관없는 기관과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br>여러 선교단체들은 어느 새 교회와 경쟁하는 기관이 되거나 돈과 명예가 얽히면서 내부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다툼의 소식이 적잖이 들려오기도 한다. 주일학교의 경우 신앙교육을 단지 ‘학교’에서 배우는 무엇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교육이라는 당대의 세속적인 목표에 부합하는, 세속 프로젝트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병자 간호는 간호라는 일의 외주화를 초래하게 되어 간호와 죽음이라는 일이 믿음과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가치와 분리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br><br><br><br>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지적인 실천주의, 그 중에서도 병자 간호와 관련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국민의 3/4이 병원에서 죽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미국은 이 비율이 50%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런 죽음이 신자들에게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게 과연 옳을까. 사실 이런 죽음은 지극히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논리를 추종하는 것인데, 더 나은 고민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미 카이퍼의 시대로부터도 150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br>결론부에서 카이퍼는 이 세 가지 지적이 그것들을 교회에서 없애자는 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중요한 건 균형이라는 말이다. 지성도 필요하고, 신비도 필요하다. 실천 역시 결코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바른 신앙과 교리 위에서, 그러니까 검증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확실히 카이퍼는 보수주의자였다.<br>사실 여기에서 지적한 것들은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미 과거 교회사에서 한 번 이상 등장했던 태도로, 그 결과는 이미 역사로 입증된 바 있다. 그 결과를 알고 있다면 다시 오류를 반복하면서 힘을 소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어지간히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쉴 새 없이 어제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있지만.(나 역시도...;)<br>100년도 훨씬 더 전에 나온 글이지만, 여전히 오늘날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찬찬히 읽으면서 함께 나눠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7/51/cover150/k4921316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17510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타</category><title>우리가 보는 건 그림일까 해설일까 - [현대미술, 첫걸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94646</link><pubDate>Mon, 26 Oct 2026 2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946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934355&TPaperId=175946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70/54/coveroff/k7429343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934355&TPaperId=175946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현대미술, 첫걸음</a><br/>임민영 지음 / 좋은땅 / 2024년 11월<br/></td></tr></table><br/>현대미술, 이름만 들어도 뭔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의 결과물(“작품”이라는 말을 모두에게 붙이고 싶지는 않다)을 보고 난해함을 느낀다고 한다. 이 책은 나처럼 미술에 별 조예가 없는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간략한 이해를 제공하고,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서다.<br>먼저 현대미술이 과거의 미술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우선 현대미술은 다양한 미술적 실험들(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주의 등등)의 결과물이다. 근대의 이런 미술적 실험은 중세미술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기도 했는데, 중세까지의 미술의 특징은 작품을 의뢰하거나 후원하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데 집중했다. <br>앞서 언급한 다양한 실험들은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고, 크고 위대한 것에서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주제가 변화하고(인상주의), 보이는 그대로의 구도마저 벗어나며(입체주의),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강렬한 색체를 도입한다(야수주의). 아마도 그 최종 진화(?) 단계에는 아예 형태를 없애버린 추상미술이 있을 것이다.<br><br><br><br>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작가의 자기의식의 표현이 중심에 있다. 쉽게 말하면, 그냥 내가 이걸 이런 생각을 담아 만들었고 하고 내 놓으면 그게 곧 미술적 결과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 자체에서 뭔가 이해하기 보다는, 그것을 만든 작가의 머릿속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감상하는 건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 되어버린 셈이다.<br> 그 대표적인 것이 뒤샹이 내어 놓은 소변기다. 1917년 뉴욕의 한 상점에서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출품한 것. 많은 사람들은 이를 앞서 언급한 미술 개념의 전환(미술가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서 미술가의 머릿속을 관람해야 하는)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여긴다.<br>다만 여기에서 떠오르는 질문은, 애초에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현대미술은 보는 사람이 “스스로 느끼고 즐기는 것”이고, “꼭 작가의 의도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면, 우리가 굳이 소변기를 “작품”이라며 떠받들 필요도 없지 않냐는 것이다. 애초에 소수의 이너서클의 멤버들이 서로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는 동안,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긴 했을까 싶다. 뭔가 있어 보인다는 느낌은, 다분히 그들이 만들어 낸 모습은 아닌지.<br><br><br><br>며칠 전 제주에 있는 한 미술관에 다녀왔다. 물방울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작가였는데, 신문지 위에 그린 리얼한 물방울이 흥미롭게 보이긴 했다. 다만 그 의미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림 옆에 쓰인 해설을 읽지 않으면 그냥 잘 그린 정물화 정도의 느낌이다. 그러면 우리가 보는 건 그림일까, 해설글일까.<br>작가야 뭐든 만들고 싶은 걸 만들 수 있다. 다만 그걸 보는 사람에게까지 뭔가를 느껴야 한다고 강요만 하지 않으면 된다. 애초에 형태마저 흩어진 결과물에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것을 보는 것 자체가 무리에 가깝지 않을까. <br> 어떤 의미에서 현대미술은 글이 아닌 도구로 쓴 글처럼 느껴진다. 이전의 작가들이 자신의 기술과 생각을 보여주었다면, 현대미술 작가들은 자꾸 설명하고 (가끔은) 가르치려고 하는 느낌이다. 물론 그게 보는 사람의 코드와 맞으면 신이 나겠지만, 미술에 대한 정의부터, 그 가치와 영향력과, 내용까지 온통 자기들끼리만 추켜세운다는 느낌을 주면 점차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지는 않을까.<br>아무튼 현대미술에 대한 두려움을 확실히 없애준 책. 간략한 설명이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잡기에도 좋다. 리뷰는 좀 까칠하게(?) 쓴 듯하지만, 나같은 문외한에게 딱 맞을 듯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70/54/cover150/k7429343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70548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amp;quot; 읽기</category><title> 말씀에도, 현실에도 충실한 교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92942</link><pubDate>Sun, 25 Oct 2026 2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9294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14058&TPaperId=175929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233/3/coveroff/893281405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126258&TPaperId=175929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185/11/coveroff/895312625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839920&TPaperId=175929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96/26/coveroff/k082839920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5929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교회의 전통을 지키는 것과 오늘의 현실에 응답하는 것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앞선 세대의 헌신을 존중하면서도 익숙한 관습을 말씀 앞에서 돌아보는 일. 말씀에도, 현실에도 충실한 교회를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과 새롭게 해야 할 것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br><br><br>&nbsp;&nbsp;&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철학/종교</category><title>유대교 신학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 - [예언자들 - 개정3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85718</link><pubDate>Thu, 22 Oct 2026 0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857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63043&TPaperId=175857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45/95/coveroff/89643630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363043&TPaperId=175857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언자들 - 개정3판</a><br/>아브라함 J. 헤셸 지음, 이현주 옮김 / 삼인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보수적이고 정통적인 유대교 신학자는 보수적 기독교 신학과도 꽤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사실 신학적 자유주의는 개신교회 안에만 있는 건 아니다. 유대교 가운데서도 자유주의적 입장에 속한 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대개 지루하기 그지없다. 워낙 다양한 흐름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개신교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윤리를 강조하는데, 윤리적이고 도덕적 책임감을 갖고 살자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데 왜 유대교가 나와야 하는지를 억지로 연결하는 느낌이랄까.(이건 기독교 자유주의도 마찬가지고)<br>사실 이 책의 저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에 대해서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이 두꺼운 책을 읽어가면서 왠지 그에게서 ‘우리’와 비슷한 향기가 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리처드 마우가 쓴 한 책의 제목과 같은 “톱밥향기”와 비슷한. 오늘날 기준으로는 조금 투박해 보이지만, 훨씬 더 오래된 정통과의 연결, 그리고 한 차원 높은 통찰.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면, 책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뿐.<br><br><br><br> 1부에서는 간략하게 예언자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하박국 등으로 이어지는 주요 예언서들의 내용을 분석한다. 다만 주석책과 같은 느낌은 아니고, 그 역사적 정황과 그 안에서 경험했을 예언자들의 특별한 경험과 반응 등이 주가 된다. 말미에는 징벌과 정의라는 예언의 주된 주제를 간략히 고찰한다.<br>2부에서는 예언서를 좀 더 외곽에서 바라보면서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고, 영감을 받고 예언을 하는 과정은 어떤 모습이었을지(황홀경, 무아지경과는 어떻게 다른지), 자주 등장하는 강한 분노와 징계의 정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이 다양하게 설명되어 있다.<br><br><br><br>주제 하나하나가 흥미로울뿐더러,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관점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예언자들에 대한 심리분석이나 정신분석 타령이나 하는 가볍디가벼운 현대주의자들의 글과는 차원이 다르다. 소위 비평적인 주석들에서는 묻거나 잘 다루지 않는 예언자들의 영감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 그리고 정경적 관점에서 보는 예언자의 사역 등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특별히 2부의 여러 내용들은 따로 영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br>앞서도 말했듯이, 보수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도 구약의 예언서들을 읽어가는 데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부족한 부분(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적 기준 같은)은 또 다른 책으로 보충하면 될 일이고. 조금 두껍다는 것이 난점이긴 한데, 이런 책은 한 권 끼고 조금씩 간식 허물어 먹듯이 곱씹어 가며 읽으면 좋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느냐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좋은 책을 읽느냐이니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45/95/cover150/89643630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45956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그리스도인의 수익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82698</link><pubDate>Tue, 20 Oct 2026 15: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8269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938633&TPaperId=175826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438/92/coveroff/k98293863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또 하나 기억하길 바라는 것은 이윤의 결과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보다 조금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은 타락의 영향 아래 있고, 그 안에서 형성된 문명에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타인을 보고 그 영향력까지 고려하는 사람은 오직 자기 이익만 보며 수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결과에서 이기기 어렵습니다.<br>- 손성찬, 『돈』 중에서<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438/92/cover150/k9829386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4389238</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철학/종교</category><title>우리는 왜 성공한 무례함에 박수칠까 - [존중 없는 사회 - AI시대, 사회적 위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81231</link><pubDate>Mon, 19 Oct 2026 20: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812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533711&TPaperId=175812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10/coveroff/89975337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533711&TPaperId=175812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존중 없는 사회 - AI시대, 사회적 위기</a><br/>한병철 지음, 정창호 옮김 / 간디서원 / 2026년 10월<br/></td></tr></table><br/>한병철 교수의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다분히 표지 때문이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콤팩트하면서도 비비드한 컬러의 표지를 안고 있는 철학책을 발견하고서 흥미가 생겼고, 여느 철학책과 달리 일단 다들 얇아서 좋았다. 뭔가 거창한 체계를 세우기보다는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면서 여기저기서 소총(짧은 문장) 사격을 하는 느낌이라 읽기에도 편하다.<br>여기에 또 한 가지, 한 교수의 책이 갖는 흥미로운 장점이 있는데, 바로 주제가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점이다. 오늘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는 수많은 현상들이 책에 그대로 옮겨지고, 그 안에서 저자 나름의 통찰을 보여준다. 책은 얇지만 항상 읽어 볼만한 내용들이, 그것도 피부에 와 닿는 주제들로 구성된 따끈따끈한 요리를 제공한다. <br><br><br><br>이번 책의 주제는 “존중”이다. 대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고, 시급한 주제다. 우리는 조롱을 칭송하고, 가짜뉴스에 슈퍼챗을 쏟아 붓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는 사람들이 모두 점잖고 예의 바르게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런 무례함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나 용기를 보여주는 수단처럼 사용하는 모습들이 너무 자주 보인다는 말이다. <br>그렇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늘었다. 맹자는 인간의 네 가지 선한 마음 중 하나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수오지심)을 꼽았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까지 했다. 맹자가 오늘날 인터넷 댓글을 조금만 읽어보면, 여기는 짐승들이 섞여 사는 곳이구나 할 지도 모르겠다.<br>저자의 시선은 단순히 개인의 책임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책에서 먼저 지적하는 건 성과사회라는 구조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지에 따라 평가받는다. 좋은 대학을 나왔는지,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올라갔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야 할 존중이, 경쟁에서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보상으로 바뀌었다는 것. <br>영화나 드라마에서 시작된 대사지만, 이제는 정말로 어떤 사람들을 (그가 남들보다 재산이 적고, 학력이 딸리고, 사회적 권력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개, 돼지로 보는 시선을 드러내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그런 차별에 항의하는 사람에게, 그러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그랬느냐는 식의 핀잔까지 돌아간다. 공부를 잘하는 목적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자격을 얻는 데 있었던가.<br>문제는 이런 경쟁에서 모두가 승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누군가는 뒤에 서게 된다. 그런데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해 사회적인 모욕까지라면, 그 안에 쌓이는 감정이 온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이런 소외와 굴욕이 사회의 분열과 공격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이 부분은 오늘날 거의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극우의 부상과 혐오주의를 설명해 주는 핵심 키워드일 지도 모르겠다. <br>물론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다. 다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상한 개인 하나를 찾아내는 것으로 끝내버리면, 비슷한 일이 왜 반복되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br><br><br><br> 이외에도 소셜미디어에 관한 언급(“소셜 미디어는 방자한 행동을 포상하고, 그런 행동이 오히려 더 많은 이목을 끈다”)이나 존중에 필요한 시간에 대한 지적(“존중도 시간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존중을 위한 시간이 없다.”)도 날카롭다.<br>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즈음 우리 사회의 가장 위태로운 폭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정치에 관해서도 저자는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의견과 정체성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면서, 특정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토론은 사라지고 맹렬한 싸움만 남는다고 말한다.<br>후반부의 정중함과 권위에 관한 논의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저자는 솔직한 감정만을 진짜라고 여기는 태도가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형식들을 무너뜨린다고 지적한다. 기분이 나빠도 인사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말을 가려서 하는 일이 꼭 가식일까. 오히려 그런 형식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기분에 매번 휘둘리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감정을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것을 솔직함으로 포장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그 비용은 대개 주변 사람들이 치르게 된다.<br> 익숙한 풍경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물론 짧고 단정적인 문장들이 이어지는 만큼, 복잡한 현실을 너무 간명하게 정리해 버리는 건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다. 또 앞서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ㅡ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은 별도로 고민해야 하고.<br>그래도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차리게 해 준다는 것만으로 이런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더 많은 성과를 내라고, 더 빠르게 반응하라고, 다른 사람에게 밀리지 말라고 재촉하는 사회에서, 잠시 멈춰 상대를 바라보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필요한 것이니까. 우리에게 정말 시간이 없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시간은 아깝다고 여기는 걸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10/cover150/89975337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171055</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예수 경배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 [유일한 하나님, 그리고 예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79084</link><pubDate>Sun, 18 Oct 2026 1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790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732347&TPaperId=175790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370/27/coveroff/k9327323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732347&TPaperId=175790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유일한 하나님, 그리고 예수</a><br/>래리 허타도 지음, 박운조 옮김 / 베드로서원 / 2021년 06월<br/></td></tr></table><br/>가끔 이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인 책.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설교집이 아닐까 했는데, 웬걸 정통 신학 책이다. 책의 핵심은 유일신 사상에 충실했던 유대인들 가운데(첫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다) 어떻게 예수를 신적 지위로 받아들이고 예배하는 일이 발생했느냐에 대한 대답이다.<br>사실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은 꽤나 중요하면서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다.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은 유명하다. 물론 시대에 따라 현실이나 주변 문화와의 타협을 끊임없이 추진해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역사적으로 주류는 아니었다. 예컨대 셀레우코스 왕조의 그리스식 종교 쳬계 강요에 반대해서 일어난 반란(마카비 전쟁)은 결국 하스모니아스 왕조를 수립하는 데까지 이르렀다.<br><br><br><br>그런 유대인들(첫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서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나이브한 세속적 관점이 유행했었다. 이런 관행은 초기 기독교회에서는 없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교회가 세력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처음엔 그저 예수님을 좋은 종교 지도자 정도로 여겼지만, 점차 그분을 신성을 지닌 존재로 미화했다는 것.<br>그리고 여기에는 유대교 전통보다는 이교적 전통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상상도 더해진다(유일신 사상의 약화, 왜곡).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신적 속성을 지닌 인간들이 자주 보이고,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영향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주장이다. 한눈에 봐도, 합리성을 중요시한 자유주의적 전제에, 역사적 자료에 대한 제한적 해석의 결과물이다. <br>이 책의 저자는 이런 이전의 주장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반박한다. 먼저 구약과 유대 문헌에 다양한 종류의, 특별한 경배와 높임을 받는 인물들(족장들)과 천사들에 관한 언급이 많았음을 제시하면서 이른바 ‘고기독론’(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설명)의 근원을 이교전통이 아닌 유대교 전통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br>물론 여기에는 차이점도 있는데 유대교 전통에서는 어떤 인물도(심지어 천사도) 하나님의 위엄과 지위와 능력을 대리하는 존재로 여겨질지언정, 하나님과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유대 전통에서 높여졌던 여러 인물들과 달리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된 존재였다. 어떤 전통에도 그런 “패배자”를 높인 적은 없었다. 이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승임’(책에서 그리스도를 신적 존재로 높이는 것을 이르는 말)은 기독교인들의 급진적인 주장이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br>고기독론이 후기에나 나왔을 것이라는 안이한 견해 역시 저자는 반박한다. 이미 신약성경으로 불리는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이 실려 있고, 이른 시기의 예배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예배와 기도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오히려 예수를 훌륭한 윤리 교사 정도로 여기려는 태도는 18세기 이후에나 나타난 새로운 변종일 뿐이다.<br><br><br><br>주제가 분명하고, 성경 외 다양한 문헌들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읽을 만한 정보들이 많다. 책의 신학적 해석과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 타당성만큼은 충분히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비전공자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책이긴 하지만, 역사나 문헌 쪽에 관심이 있다면 손에 들어 볼 만하다.<br>아쉬운 점은 번역 부분인데, 영어 문장의 직역체 번역이(그래서 우리말이 아닌 것 같은) 꽤 자주 보여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몇 번을 살펴야 했던 적이 많다. 외국에서 나온 책을 읽을 때는 이 번역 문제가 요새 꽤 눈에 들어온다. 기술도 발전하는 데 이 부분도 빠르게 나아질 수 있으려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370/27/cover150/k9327323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3702773</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에서 논문읽기</category><title>왜 교회에서 여성은 주방에, 남성은 회의실에 있을까? (여성 포용 목회 0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79077</link><pubDate>Sun, 18 Oct 2026 19: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7907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922938145&TPaperId=175790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36/34/coveroff/c922938145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038529&TPaperId=175790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49/20/coveroff/k152038529_3.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3135&TPaperId=175790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476/48/coveroff/893747313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1116638&TPaperId=175790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3/16/coveroff/895111663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여성들이 가사와 돌봄, 교회 봉사를 더 많이 담당하는 현실은 각 가정과 교회가 내린 자발적인 선택일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진 문화와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일까요?<br><br><br><br>&nbsp;&nbsp;<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3/16/cover150/89511166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53169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amp;quot; 읽기</category><title>교회 직분은 왜 승진처럼 느껴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6672</link><pubDate>Sun, 11 Oct 2026 2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66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5666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장로는 돈이 많아야 할까요? 목사는 꼭 정장을 입어야 할까요? 설교를 더 많이 듣는 것이 언제나 더 깊은 신앙으로 이어질까요? 『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 나가면 그립다』의 저자 이재면 목사님과 함께, 교회에서 당연하게 여겨 온 직분과 복장, 예배의 관습을 돌아봅니다.<br><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작은 문턱 앞에 무너지는 존엄 - [존엄하고 초라한 -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2004</link><pubDate>Fri, 09 Oct 2026 0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20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5239&TPaperId=175620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20/59/coveroff/k9521352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5239&TPaperId=175620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존엄하고 초라한 -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에 대하여</a><br/>강미현 지음 / 흠영 / 2026년 01월<br/></td></tr></table><br/>건축사로 일해 온 저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이곳이 좀 더 친절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쓴 책이다. 단지 법적인 기준을 맞추는 것으로는 충분히 않다. 얕은 문턱 하나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는 장벽처럼 느껴질 수 있고, 법적 기준을 맞춘 반지하방에서 사람들은 곰팡이와 싸우며 건강을 희생해야 한다.<br>얼마 전 한 유명한 장애인 유튜버가 KTX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이를 도와주던 공익근무요원과 부딪힌 후, 이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가 역풍을 맞는 사건이 있었다. 물론 해당 사건에서 그 유튜버는 자신의 분을 못 이겨 과한 대응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말하려고 했던 것, 그러니까 아주 작은 턱(심지어 그냥 사람의 발이라도)도 어떤 사람에게는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위험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조차 “그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br><br><br><br>사실 고통이라는 건 나누어지지 않는다. 심정적인 위로는 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히 우리의 것으로 경험할 수가 없다. 아니, 그에 앞서서 우리의 고통을 정확하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얼마 전에 뭘 잘못 먹고 식도 쪽에 통증이 생겨서 약국에 간 경험이 있는데, 내가 느끼고 있는 그 통증을 설명할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쓰라림도 아니고, 찌르는 것도 아니고, 쎄한 느낌이라는 설명은, 내가 들어도 두루뭉술하기 그지없었다.<br>고통이라는 게 그런 식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얼마나 큰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나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될 수 없다.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부러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은 멀어진다.<br>저자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좁은 고시원에 몸을 구겨 넣고 살 수밖에 없는 청년들, 반지하의 열악한 상황을 견디는 이들, “시설” 속 장애인들, 힘든 노동 사이의 짧은 휴식을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야 하는 청소 노동자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받는 외국인 노동자들 등등. 누군가 애써 알려주지 않으면 일상 가운데서 좀처럼 마주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br><br><br><br>책에 담긴 글들은 모두 어떤 공간과 건축물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확실히 자신이 하는 일을 (단지 밥벌이로만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바로 그 공간과 건축물, 좀 더 쉬운 말로 부동산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해결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씁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전 국민이 부동산 투기에 목을 매고 있는 나라에서, 과연 효율을 포기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br>2025년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가구의 자산의 3/4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전 국민적 공포일 것이다. 어떻게든 거품을 일으켜서 자산을 증식하려고 눈이 벌게져 있는 사람들에게, 장애인 그룹홈이 (대출을 잔뜩 받아 산) 자기 집 근처에 들어오는 일 조차 피켓을 들고 반대하러 나서기에 충분한 일이다.<br>사실 가장 약한 사람이 살기에 편한 곳은, 모든 사람에게 편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추가적인 비용이 들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가 겪는 불편함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에서 사는 것만큼 안심되는 일이 또 있을까. 각자도생만큼 비효율적인 삶의 방식도 없다. 우리는 당장 손에 쥔 것을 놓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20/59/cover150/k9521352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205972</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루이스 한 문장</category><title>신학을 공부하면 하나님과 가까워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592</link><pubDate>Thu, 08 Oct 2026 1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59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92530889&TPaperId=175605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42/64/coveroff/e592530889_971d.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1702&TPaperId=175605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85/15/coveroff/k6921317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잊을 수 있을까요? 신학 공부의 즐거움과 사역의 성취가 곧 영적인 성장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이번 ‘루이스 한 문장’에서는 쉘던 베너컨의 『잔인한 자비』에 실린 C. S. 루이스의 편지를 읽습니다. 신학과 목회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루이스가 건넨 조언을 통해, 직업적 야망과 신앙의 성장을 혼동할 위험, 거룩한 일에 익숙해지는 함정, 일상과 목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소명을 살펴봅니다.<br><br><br>&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85/15/cover150/k6921317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85158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예수의 길을 따라 떠나는 책 여행 -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021</link><pubDate>Thu, 08 Oct 2026 0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600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839301&TPaperId=175600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27/20/coveroff/k9828393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839301&TPaperId=175600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서</a><br/>피터 워커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2년 09월<br/></td></tr></table><br/>같은 저자의 또 다른 책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를 굉장히 즐겁게 읽었기에, 그보다 먼저 나온 이 책 역시 기대감을 잔뜩 가지고 펼쳐들었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도 있다. 그래서 살짝 아쉽기도 했는데, 이건 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연대기적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싶었던(그래서 영상으로 만들려고 했던) 내 기대감에 기인한다.<br>바울의 발자취와 예수의 발자취의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이동한 지역의 범위다. 바울이 지중해 동부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면, 예수님의 경우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좁은 지역에서만 활동을 하셨다. 그나마 몇몇 지역은 매우 근접해서(예를 들면 예루살렘과 뱃바게, 베다니, 감람산) 스케일이 큰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조금 아쉽다.<br><br><br>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모든 아쉬움은 이 책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 보려는 내 기대 때문이고, 책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책은 흥미진진하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그분이 방문하셨던 지역을 (대체로 연대순으로) 따라가며 성경 본문의 언급들, 그리고 역사적인 해석과 보충들, 주로 고대의(근대의 기록도 있다) 관련 기록들과, 오늘날의 모습, 나아가 만약 그 지역을 직접 방문한다면 어떤 순서로, 어떤 점에 집중하면서 여행을 하면 좋을 지까지 풀어 놓는다. <br>말 그대로 이것 한 권이면 끝이다 싶은 정도랄까. 물론 현장에서 직접 사람의 안내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진 우리가 현지의 상황과 동선을 그려보는 데는 이 책만 한 걸 보지 못한 것 같다. 참고로 비슷한 내용으로 좀 더 신학적 묵상이 짙게 실린 책을 찾는다면 톰 라이트가 쓴, 전에는 『내 주님 걸으신 그 길』이라고 나왔다가 최근에 『톰 라이트의 그리스도의 길』이라는 멋없는 제목으로 다시 나온 책을 보면 (제목과 달리) 좋다.<br><br><br><br>이 가을, 성경 속 팔레스타인 땅 곳곳을 책으로라도 간접 순례를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딱 한 가지 본문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더 많은 지도와(특히 팔레스타인 전체 지역 중 지금 다루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표시해 두는 게 필요하다) 더 많은 이미지들이다. 물론 20년 전에 나온 책인지라 이 부분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텐데, 지금이라면 AI를 이용해서 좀 더 실감나는 이미지들을 더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뭐 번역을 해서 낸 CUP출판사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27/20/cover150/k9828393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227202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이 달에 만난 책들</category><title>9월에 읽은 11권, 한 권만 고른다면? | 구름책방 월간 독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4153</link><pubDate>Sun, 04 Oct 2026 18: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415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534278&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4/coveroff/k78253427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692&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62/coveroff/k4521376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117&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8/coveroff/k42213711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354713&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374/75/coveroff/89743547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6273&TPaperId=175541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4/63/coveroff/k89213627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415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br>9월에 읽은 열한 권의 책을 돌아봅니다.&nbsp;각 책의 내용과 읽으며 느낀 장점·아쉬움을 솔직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br><br><br>&nbsp;&nbsp;<br>&nbsp;&nbsp;<br>&nbsp;&nbsp;<br>&nbsp;<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2/9/cover150/89537969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920904</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기독교적인 역사 이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0897</link><pubDate>Fri, 02 Oct 2026 17: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5089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632851&TPaperId=175508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0/coveroff/k63263285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적인 역사 이해가 없는 사람은 원형의 미로에서 방황하며 입구도 출구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br>- 톰 홀랜드, 『도미니언』 중에서<br><br><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790/60/cover150/k6326328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790603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사회/정치/경제</category><title>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죽어간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6675</link><pubDate>Wed, 30 Sep 2026 2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66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534278&TPaperId=175466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4/coveroff/k78253427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534278&TPaperId=175466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a><br/>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0월<br/></td></tr></table><br/>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고 보니, 두 공저자는 좀 더 최근작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만났던 이들이다. 책에서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의 원인을 “헌법”에서 찾았던 저자들이었다. <br>그 전작에 해당하는 이 책에서는 제목처럼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현재 상황을 묘사하면서 그 원인을 정당에서 찾는다. 조금은 흥미로운 지적. 우리말 제목의 “무너짐”은 영어 원제(How Democracies Die)로 들어가면 좀 더 강한 어감이다. Collapse가 아니라 Die다. 그만큼 현 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다는 의미일까.<br><br><br><br>책 초반 역사 속 다양한 민주주의 붕괴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그 가운데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한다. 과거 민주주의는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군부의 독재 같은 노골적인 방식으로 무너졌지만, 냉전이 끝난 후의 양상은 좀 달라졌다. 저자들은 “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의 붕괴는 대부분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고 말한다. 즉 오늘날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br>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경우 쿠데타나 게엄령 선포, 혹은 헌정 질서의 중단과 같은 “경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순간이 없기 때문에 사회의 비상벨이 울리지 않는다. 화재가 일어났는데 경보기가 울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장이나 거짓말을 한다는 오해를 받는데, 예컨대 지난 윤석렬의 친위쿠테타 시도 이전에 여러 야당 의원들이 계엄과 관련된 의혹을 제기했을 때, 여당은 물론 언론으로부터도 뭇매를 맞았던 예가 있다.<br>그러면 어떻게 이런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원리 가운데서 저자들은 ‘정당’을 일종의 ‘문지기’라고 부른다. 미국의 민주주의 설계자들은 처음에는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서 포퓰리스트, 혹은 선동가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방지하려고 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투표를 하긴 하지만 그 결과값으로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게 아니라, 각 주의 명망가들로 이루어진 대의원들이 모여 (실제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제도였다는 것.<br>그러나 이런 제도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우선은 선거인단이 투표가 끝난 후에, 그러니까 후보자가 결정된 다음에야 활동을 시작했고, 각 주에서 정당 지지자들을 선거인단으로 선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러면서 중요해진 것이 앞서 말했던 ‘정당’이다. 정당은 무자격자들, 독재의 기미가 있는 이들을 걸러서 정치무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순간 정당이 그 역할을 내팽개쳤다는 것.<br>트럼프는 그 부작용 중 하나이지 최종적인 결과물이나 결정적인 시작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미 80년대 뉴트 깅리치로 대표되는 전투적 정치인들이, 상대 정당을 정치적 파트너가 아닌 무찔러야 할 적으로 규정하면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불법만 아니면 뭐든 괜찮다”는 태도는 정치를 전쟁의 장으로 만들었고, 이는 클린턴, 부시, 오바마 정부를 지나면서 점점 강화되었다. 어떻게 보면 트럼프라는 괴상한 독재자의 등장은 당연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br><br><br><br>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이 오버랩된다. 우리 또한 어디 극우 사이버 래카 채널 같은 데서나 할 말을 공당의 대표와 최고위원이라는 작자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고, 저주와 혐오로 가득한 발언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내뱉는 3류 정치인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정치의 도의와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상대를 문자 그대로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괴물들이 여의도와 광화문 앞 이곳저곳을 휘젓는다.<br>여의도 외곽에선 그런 괴물들을 지원하는 극단적 성향의 유튜버들이 더 센 막말을 늘어놓고, 심지어 일부 교회의 목사라는 작자들까지 여기에 올라타 사탄의 노래에 맞춰 음란한 춤을 추는 지경이다. 무지몽매한 신도들은 그런 소경이 인도하는 절벽으로 열심히 함께 두 팔을 벌려 달려가고 있고.<br>사실 문제가 심각한 건 굳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쉽게도 저자들은 앞서 읽었던 책처럼 마땅한 대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적어도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이 하는 것처럼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을 포기하고 주류 백인들을 위한 정당으로 선회해서는 안 된다고, 좀 더 보편적인 지향점(최저임금 상승, 보편적 기본소득 같은)을 위한 정치를 하다보면 결국 백인들도 그 혜택 안에 포함되니 타개책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조금은 이상적인 주장을 할 뿐이다.(그러나 그렇게 해도 혜택을 받는 저소득, 저학력층 백인들이 민주당 지지로 드라마틱한 선회를 할 것 같지는 않다)<br>최근 종종 드는 생각인데, 어쩌면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유통기한이 끝나감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라는 사회적 실험이 냉전의 붕괴로 100년 만에 실패로 마쳤다면, 18세기 말 미국의 독립으로 시작된 현대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실험 역시 250년 만에 그 효용이 다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린 이제 (어떤 형태로든) 계급사회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들의 통치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지도.(트럼프 강점기의 세계처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234/14/cover150/k78253427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234142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선교지는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 [이주민 선교 현장 리포트 - 시대적 소명에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0416</link><pubDate>Sun, 27 Sep 2026 23: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404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692&TPaperId=175404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62/coveroff/k4521376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692&TPaperId=175404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주민 선교 현장 리포트 - 시대적 소명에 응답한 사람들의 이야기</a><br/>김영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03월<br/></td></tr></table><br/>여기 미국에서 목회학 박사학위까지 받고 선교를 준비하던 여성이 있다. 우연히 남양주의 공장 지대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가 갖고 있던 계획은 완전히 재설정되었다. 1998년 시작된 국내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선교활동은 2026년까지 이어진다. 이 책은 그 역사의 여러 장면들을 따뜻하게 비춰준다.<br>책에 나오는 “암미선교회”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선교회다. 보통 선교라고 하면 외국에 나가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우리나라에만도 26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 역시 선교라고 부르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다.<br>암미선교회의 ‘암미’는 히브리어로 ‘내 백성’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그들을 ‘외부인’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두 “내 백성”임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외국인들이 경상북도 인구보다 많은 상황에서, 언제까지 그들을 외부인으로만 볼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br><br><br><br>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저자인 김영애 선교사가 쓴 부분으로, 지난 3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경험들, 은혜의 사건들, 눈물과 기쁨이 어우러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br>두 번째 부분은 선교회와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쓴 부분이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간 지체들의 편지도 있고, 이 사역에 동참했던 여러 사역자와 봉사자들의 간증도 보인다.<br>마지막 부분(3부와 4부)은 이주민 선교와 관련된 뉴스레터와 기고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의 글들이 생생함이 강조된 것들이라면, 이 세 번째 부분에 속한 글들은 조금은 전문적인 분석과 대안 제시가 담겨 있다. <br><br><br><br>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다. 잔잔한 사역의 결과물들을 읽다보면, 여전히 훌륭한 사역자들, 사역들, 봉사자들이 많구나, 그리고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이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br>어렵지 않은 내용이니 한 번쯤 시간을 내서 읽어 볼만하다. 직접 해외에 나가는 것 못지 않게, 선교라는 분야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이 여기에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3/62/cover150/k4521376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43621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책방에서 논문읽기</category><title>부활의 첫 증인은 여성이었다 (여성 포용 목회 0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9699</link><pubDate>Sun, 27 Sep 2026 18: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969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932279&TPaperId=175396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92/93/coveroff/k10293227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032619&TPaperId=175396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1/85/coveroff/k37203261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8965&TPaperId=175396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9/85/coveroff/k74203896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예수님은 여성들을 치유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향유를 부은 여성을 인정하시고, 여성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으며, 성령은 성별을 구분하여 은사를 주지 않으셨습니다.&nbsp;​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성경이 보여주는 여성의 자리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을까요? 여성 리더십과 여성 안수, 논쟁적인 바울서신의 본문까지 논문을 읽으며 솔직하게 대화해 보았습니다.​<br><br><br><br>&nbsp;&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99/85/cover150/k7420389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99858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아시리아는 정말 잔혹한 제국이었나 -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7710</link><pubDate>Sat, 26 Sep 2026 1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77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117&TPaperId=175377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8/coveroff/k4221371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7117&TPaperId=175377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a><br/>야마다 시게오 지음, 박재영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6년 04월<br/></td></tr></table><br/>더숲출판사에서 내는 역사 시리즈의 최신간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가 참 좋다. 지금까지 다섯 권이 나왔는데(아직 읽지 않은 네 번째 책도 곧 읽을 예정), 바빌론과 비잔티움(동로마제국), 히타이트와 무굴, 아시리아까지 고대 제국들의 역사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그야말로 꿀맛인 책들이다.<br>흥미로운 건 이 책까지 일본인 저자가 벌써 두 명이라는 점. 인문 역사 분야의 오랜 연구 전통이 있기 때문일까. 언젠가 우리나라 저자도 이런 책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br><br><br><br>아시리아는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 도시국가의 형태로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 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아수르, 니너베(니느웨), 아르벨라(이라크 아르빌) 등의 도시들이 초기 중심지다. 우리가 이들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건 역시나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인데, 쐐기문자로 알려진 독특한 문자 체계로 점토판에 눌러 새겨 만든 문서는 종이나 나무와 달리 오랜 시간을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 해독과정을 거쳐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br>아시리아는 시대적 구분에 따라 고 왕국, 중왕국, 신왕국(아시리아 제국) 시대로 나뉘는데, “장막에 거하던 17인의 왕들” 같은 전설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 족장 시대를 거쳐 중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역국가로서 발돋움하게 된다.<br>그리고 아무래도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좀 더 잘 알려진 것은 신 아시리아 왕국, 아시리아 제국 시기다. 이스라엘의 북부 왕국을 멸망시켰던 디글랏 빌레셀(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도, 그 뒤를 잇는 살만에셀(살마네세르 5세), 산헤립(센나케리브), 엣살핫돈(에사르하돗)도 다 이 시기의 왕들이다. 그리고 책에서 저자가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아슈르바니팔도 개역성경에 “오스납발”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br> 흔히 아시리아는 전쟁에 미친 나라, 패배한 나라의 포로를 끌고 와 영토 내 곳곳에 강제 이주를 시키고, 배반자에게는 잔혹한 처벌을 마다하지 않았던 야만적 집단처럼 여기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고대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은 다 그런 식으로 영토를 늘리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인구가 가장 중요한 국가적 자원인 시대에 강제이주는 일상적이었고,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과 반란을 진압한 후의 처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한 잔혹한 형벌이 가해졌다.<br>저자는 아시리아에 나름 효과적인 행정조직도 있었고, (초기이기는 하지만) 대상 무역을 통해 부를 쌓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다양한 기록들(상당 수는 점술과 관련된 것이지만)이 증명하듯 학문적 전통도 있었음을 강조하려고 시도한다.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저자도 인정하듯, 제국 시기의 아시리아는 끝없는 전쟁과 전리품으로 돌아가던 약탈경제에 가까웠고, 그나마 그 결과물도 지배층 위주로만 분배되어 제국에 속한 보통의 백성들에게 왕국의 운명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다가왔었다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할 것 같다.<br>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고대 아시리아 제국에 관한 좋은 모노그래프. 사실 이보다 더 상세한 내용들은 연구자가 아니면 딱히 필요 없지 않을까. <br><br><br><br> 옥의 티라고 한다면, 감수의 글 부분에서 좀 보인다. 튀르키예에서 공부한 외교관 출신의 감수자는(저자로 쓴 책도 읽어봤다) 아시리아에 대한 기존의 왜곡돤 관점을 이 책이 어떻게 교정했는가 찬사를 보는 과정에서 성경을 언급한다. 이스라엘 북왕국을 아시리아가 멸망시켰기에 성경에는 아시리아에 대한 적개심이 남았고, 결과적으로 아시리아를 마치 괴물처럼 부정적으로만 묘사해, 이것이 서구 문화와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br>그러나 아시리아의 잔혹성에 관한 연구는 근대의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잔혹한 처벌 부조에 기인한 바가 훨씬 더 크고, 성경의 아시리아는 강력한 제국이자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하는 존재”(하박국)로 묘사되기도 한다. 물론 멸망 이전에도 이 지역의 위기를 조성하던 아시리아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존재하긴 했으나(요나), 같은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런 아시리아 사람들(니느웨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선지자와 일종의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br>그리고 본문에서도 매우 자주 언급되지만, 성경의 기록은 실제 아시리아 역사와 매우 잘 조화가 되고 있으며, 오히려 가공의 인물들을 잔뜩 등장시킨 일부 그리스 작가들에 비해 근대적 발굴 이전에 아시리아에 관한 거의 유일하게 정확한 자료로서 인정받아야 하지 않나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50/68/cover150/k4221371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506889</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시대를 거스르는 믿음의 용기 - [선지자적 반시대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5473</link><pubDate>Thu, 24 Sep 2026 2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54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354713&TPaperId=17535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374/75/coveroff/89743547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354713&TPaperId=175354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선지자적 반시대성</a><br/>오스 기니스 지음, 김형원 옮김 / 이레서원 / 2016년 01월<br/></td></tr></table><br/>우연히 들렸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명작을 발견했다. 오스 기니스의 책 중에 이런 게 있었구나 새삼 감탄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제목에 나온 “반시대성”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핵심 주제를 보여준다.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기 바쁘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선지자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br>꽤나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모든 종류의 현대적 적응(책에서는 이걸 ‘적합성’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잘 와 닿지 않는다)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저자는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중심에 그리스도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br><br><br><br>기본적으로 이 책이 나온 20년 전의 서구 교회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몇몇 초대형 교회들로 상징되는 성장주의, 부흥만능주의, 그리고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믿으면 뭐든 잘 될 것이라는 이단적 긍정신학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저자는 그 시대를 이렇게 진단한다. <br> “스스로에 대한 치유적 관심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덮어 버리고, 영성이 신학을 대신하며, 종말의 도피주의가 일상의 제자도를 몰아내고, 마케팅이 선교를 축출하고, 여론조사 결과가 성경 주해에 대한 의존을 압도하며, 권력과 적합성에 대한 관심이 경건과 신실함에 대한 관심보다 두드러지며, 예배당을 재건하자는 말이 부흥을 위한 기도를 대체하고, 발흥하는 복음주의 하위문화의 재벌 왕국을 유지하려는 전력투구가 선교적 사역에 대한 복음주의의 특징적인 열정을 누르고 있다.”<br> 저자는 “교회가 지금까지 속해 왔었던 모든 문화 중에서 현대 세계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침투력이 강하고, 가장 압박이 심하며, 현대 세계는 교회 역사상 다른 모든 박해자보다 기독교의 순결함과 효율성에 가장 크게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본다. 교회는 이 문화적 압박에 진작 굴복해버렸는데, 그 와중에서 자신들이 뭔가 대단한 전환을 이룬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전 시대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 목록을 버린 것이 무슨 엄청난 영적 성장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br>또, 저자는 이젠 설교 강단에서도 성경 본문에 대한 진지하고 충실한 주석보다, 온갖 종류의 (성경이 아닌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의 말이 권위 있게 인용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고발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가련한 항복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br>진품이 있는데 (비용이나 접근 기회의 차이가 없다면) 굳이 가품을 선택할 사람은 없다. 교회가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는 세속주의적 새로운 가르침은, 이미 세상에서 더 잘 가르치고, 안내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 내용이 별반 다를 게 없다면, 굳이 이런저런 부담을 지면서 교회에 나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즈음 서구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 수의 감소는 이런 영향도 있을 것이다.<br><br><br><br> 저자는 소명을 ‘벤처 사업’에 비유한다. 요 몇 년 동안 크리스천 창업가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관여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스타트업의 성공률, 아니 생존률이 얼마나 낮은가 하는 부분이다. 보통 10년 안에 30% 내외만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그나마 폐업을 하지 않고 남은 스타트업도 사업이 잘 된다기보다는 그저 사업자등록을 취소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만큼 실패의 확률이 높은 게 사업이다.<br>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는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세속주의의 물결이 이렇게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복음을 붙잡고 살아가도록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은 인기가 없다. 그래서 그 길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길이고, 유명세를 얻기 힘든 길이다. 실패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때로는 실패하는 게 옳은 선택인 때도 있다는 말이 퍽 위안이 된다.<br>저자는 결론적으로 우리가 유행에 좀 무뎌지고, 특히 “역사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상적인 지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미래에 집착하면서, 이미 입증된 실수를 반복하는지... <br>작은 책이지만 강한 도전적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다만 책 초반 번역이 조금 난감한데, 예를 들면 ‘저항적 사고’가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이 사고는 한편으로 정합성을 추구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현세대와 잘 맞지 않는 기독교 메시지의 요소들에 대한 집요한 인식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다”라고 하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후반으로 넘어가면서는 조금씩 나아지긴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374/75/cover150/89743547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3747560</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amp;quot; 해설</category><title>시민사회는 누가 무너뜨리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4686</link><pubDate>Thu, 24 Sep 2026 1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3468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8407&TPaperId=175346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off/k3021384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시민사회는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스 기니스는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6장에서 시민사회가 위로부터는 권력과 ‘전체주의적 관용’에 의해 억압되고, 아래로부터는 시민의 무책임과 진영논리, 정체성 정치에 의해 침식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이번 영상에서는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두 방향의 공격과 진보적 보편주의 및 다문화적 상대주의의 한계를 살펴봅니다. 또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양심과 자유를 지켜 주는 ‘언약적 다원주의’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일까요, 아니면 우리 종교만을 위한 특권일까요?<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3/10/cover150/k302138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3101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좋은 글귀, 말귀</category><title>거리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903</link><pubDate>Mon, 21 Sep 2026 2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90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535328&TPaperId=175299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414/67/coveroff/k91253532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어머니 말씀처럼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br>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br><br><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414/67/cover150/k91253532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414672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금지할수록 선명한 기억, 문화대혁명 - [금지된 기억 : 문화대혁명 시기의 티베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122</link><pubDate>Mon, 21 Sep 2026 15: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91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6273&TPaperId=175291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4/63/coveroff/k8921362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6273&TPaperId=175291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금지된 기억 : 문화대혁명 시기의 티베트</a><br/>체링 외세 지음, 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03월<br/></td></tr></table><br/>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억을 몇 개 떠올리라면 우선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그 외 민간인까지 포함하면 1,100만이라고) 정권 차원에서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있을 것이고, 스탈린이 저지른 대숙청(약 70만 명 살해)과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 최소 400만 명 이상 희생)도 그 못지않은 사건이다. <br>그리고 또 한 가지를 꼽자면 역시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이다. 10년간 이어진 이 광기의 운동으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아예 당 차원에서 기록을 삭제해서 정확한 수를 알 수가 없다) 간접적인 희생자를 포함하면 그 몇 배가 넘는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br>이 세 가지 참사의 공통점은 한 명의 지도자가 내린 멍청한 명령을 제대로 된 검토와 비판 없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광범위하게 시행했다는 데 있다. 애초에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세 사람 은 각각 미술, 신학, 문학을 공부했다) 너무 나섰다. <br>그런데 차이점도 있다. 나치와 스탈린의 소련은 멸망하고 해체되었지만, 마오의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덕분에 그가 저지른 문화대혁명은 한 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노선을 바꾸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그것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거나 하는 건 금지되어 있다(자칫 당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수 있으니). <br><br><br><br> 이 책은 문화대혁명 당시 티베트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사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당시 인민해방군에서 선전 관련 일을 하는 장교로 복무 중이었고,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곳곳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결과물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책으로 펴낸 것.(당연히 중국 공산당에서는 이 일을 좋게 보지 않았고, 덕분에 저자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br>익히 알려진 것처럼, 문화대혁명은 티베트에서도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홍위병들은 티베트의 정신을 지워버리려 했다. 오래된 사원들은 파괴되거나 “인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되었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승려들은 강제로 끌려나와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환속해서 당의 지령을 따르는 꼭두각시 생활을 해야 했다.<br>비참한 모습으로 훼손되는 티베트의 문화유산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 그런데 저자는 단지 티베트인들을 피해자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본토에서 온 홍위병들뿐 아니라, 티베트에서 조직된 홍위병들, 그리고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개인적 영달을 꾀했던 티베트인들, 그 가운데는 특히나 악질적인 행동대장들도 있었다. <br>일단 그렇게 처절한 파괴의 시기가 지난 후엔 이제 정복자들 사이에서의 권력다툼, 내분이 벌어진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티베트어로 걘록과 냠델이라고 불렸던 두 개의 파벌은 각자 무장단체까지 거느리면서 이전투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또 적지 않은 티베트인들이 말려 들어가 피해를 입는다. <br><br><br><br>사실 잘 알지 못하는 티베트의 역사를 다루는 책인지라 이름부터가 생소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누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 앞잡이였고...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데 그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소설처럼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이 핵심이니까.<br>문화대혁명의 상징은 역시나 홍위병이다. 티베트에서 홍위병은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티베트의 수많은 청소년들도 열성적인 홍위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뭐든 때려 부수는 것이 미덕으로 칭송받던 광기의 시기, 그 되바라진 아이들은 자신들이 뭔가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흥분에 빠져 장차 자신들이 딛고 살아야 하는 땅을 파괴했다. <br>사실 가장 선동당하기 쉬우면서, 한 번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게 1, 20대이다. 이건 뭐 오늘날에도 매한가지. 퍽 우려스러운 부분인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들을 선동해서 불쏘시개로 쓰는 악질적인 인간은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다. 쿠데타를 옹호하고, 법원까지 습격하게 만드는 이들이 또 무슨 짓을 못 할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홍위병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4/63/cover150/k8921362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46361</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amp;quot;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amp;quot; 읽기</category><title>교회는 왜 충성된 사람부터 지치게 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7544</link><pubDate>Sun, 20 Sep 2026 1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754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0613&TPaperId=175275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off/k7621306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감사와 기쁨으로 시작한 교회 봉사는 왜 어느 순간 그만둘 수 없는 의무가 될까요? 예배만 드리고 싶다고 말하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고, 새벽기도에 참여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요?​『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봉사자의 소진, 늘 하던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는 교회 구조, 새벽기도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필요한 쉼을 이야기합니다.&nbsp;​쉼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자발적인 순종을 회복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곳이 아니라, 지친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공동체가 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br><br><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85/cover150/k76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8586</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기독교</category><title>어떤 믿음은 우리를 망가뜨린다 -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2116</link><pubDate>Thu, 17 Sep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221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042719&TPaperId=175221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574/4/coveroff/89880427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042719&TPaperId=175221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a><br/>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5년 08월<br/></td></tr></table><br/>두 달 전쯤 이 책의 시리즈 중 하나였던 다른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의 핵심 키워드는 “마음”이었는데, 이번 책은 “뇌”다. 영어로 된 원제를 보면 “The God-Shaped Brain”이니 우리말 제목이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다. <br>그리고 원서에는 “How Changing Your View of God Transforms Your Life”라는 부제가 함께 붙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꾸는가라는 말인데,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설명한다. 책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우리의 뇌에, 생각에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우리 삶을 망가뜨린다고 반복해서 지적한다.<br>전반적으로 보면 앞서 읽었던 책과 비슷한 논조를 갖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뇌’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 책은 여러 장에 걸쳐서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던 실제 환자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저자가 그들에게 어떤 신앙적 조언을 해주었는지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br><br><br><br>책 표지에 “이 책의 사례는 모두 실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읽었던 책에서 비판점은 기독교를 너무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정신과 의사가 실제 환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고안되고 쓰였다는 정황을 놓친 것 같다.<br>확실히 기독교 문화가 더 일상적인 미국이니 만큼, 여전히 매우 보수적인 신앙관 속에서 종종 압제적인 상황에 처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이즈음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여기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이분법 적으로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흔히 “죄”라고 말하는 것들에도 구체적 정황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br>이런 상황에서 경직되고 정통주의화 된 기독교 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엄격한 관점을 지니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빠져 심각하게 삶의 질서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충분히 나오게 된다. 저자의 책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한 가지 약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의 책을 너무 일반론적으로 읽으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br><br><br><br>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단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마음을 뇌의 특정한 부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건가 하는 구절이 몇 군데 보인다. 이른바 ‘육체와 마음의 연결점’이라는 오래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저자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br>어떤 부분에서 저자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목회상담을 진행 중인 목회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기독교적 전제를 갖고 임하는 것과, 목회자가 할 만한 일을 하는 것 중. 물론 이 또한 일부 목회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신자들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눌러둔 결과겠지만.<br>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견해, 그 중에서도 그분을 무서운 심판자이자 처벌자로만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574/4/cover150/89880427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5740407</link></image></item><item><author>노란가방</author><category>역사/인문</category><title>역사를 삶의 무기로 삼아도 될까 - [역사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나간 세월에 담긴 다가올 날들을 위한 통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8570</link><pubDate>Tue, 15 Sep 2026 21: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9578114/175185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636692&TPaperId=175185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639/67/coveroff/k4826366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636692&TPaperId=175185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나간 세월에 담긴 다가올 날들을 위한 통찰</a><br/>문예춘추 편집부 지음, 이미경 옮김 / 베가북스 / 2019년 11월<br/></td></tr></table><br/>전에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문득 리뷰를 쓰려다 같은 출판사에서 낸 시리즈물인가 싶었지만, 웬걸 출판사 이름이 전혀 다르다. 물론 두 책 모두 일본인이 쓰거나 기획한 책이지만 별 상관은 없어 보인다.<br>그리고 검색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하나. “~는/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무척이나 많다. 이 문장의 주어 자리에 들어가는 것들로 독서, 심리학, 시간, 집중력, 독학, 고집, 불안, 법, 심지어 복음까지 있다. 어지간히 무기가 고픈 시대인가 보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경쟁, 싸움을 위한 도구인데, 이렇게 여기저기서 무기를 찾으려고 하는 시대는 평온한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br><br><br><br>여하튼 이 책은 그 무기를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역사의 교훈” 같은 것을 이르는 듯하다. 다만 역사라는 건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달라지곤 해서, 누가 그것을 읽느냐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br>모두 스물 세 명의 기고자들의 글을 엮은 이 책의 경우, 각각의 기고자들의 성향을 분석할 수는 없고, 이를 모아 낸 문예춘추라는 출판사(이자 월간지 이름)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 찾아보니 일본의 유명한 우익 출판사라고 한다. 다만 모든 글에서 우익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건 아니고, 사안을 ‘다르게 보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부각하기’의 과정에서 다분히 일본 중심적으로 역사를 읽고 있다는 느낌은 종종 받게 된다.<br>예컨대 근현대를 다루는 파트에서 미국의 민주당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제로 쓴 글을 보면, 과거 민주당이 노예제를 옹호하던 정당이었으나 교묘하게 과거를 숨기고 있다(!)면서 민주당 정권을 인종차별 정권이라는 식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두 개의 원자폭탄을 배치한다. 문제는 여기 어디에도 일제가 당시에 저질렀던 전쟁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 물론 글의 논지가 미국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긴 하지만, 일본은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원폭의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로서만 서술된다. 전형적인 우익적 논설이다.<br>고대 로마 제국의 멸망을 다루는 글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이민족의 수용에서 찾고, 이를 현대의 난민 문제와 연결시키는 시도도 보인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형식적, 내용적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중원을 지배한 수많은 이민족들이 결국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점과 비교하면서 중국은 문화적 가치가 민중 전체에게 공유되었지만 로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건 조금은 성급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br>또 종교와 관련된 내용도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기초해 접근을 하니 피상적인 고찰만 나올 뿐이다. 애초에 애정이 없는 대상에 관해 쓴 글은 재미있기도 어렵다. 로마가 예수의 처형 이후 그 제자들이 시작한 신앙운동(기독교)의 의미를 깨닫고,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대립을 조장하기 위해 은근 사도들의 활동을 지지한 것 같다는 주장은, 당시 아직 기독교와 유대교의 분화가 유대인들 내부에서도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그다지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다.<br><br><br> <br>그래도 꽤 흥미로운 통찰도 보인다. 한 필자는 로마 교회와 과학 연구 사이의 긴장만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자연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해왔음을 근거로 실제로는 과학 연구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중후반 영국과 중국(청)의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는 두 나라의 관계를 단순히 자유 민주 vs 권위 독재, 혹은 제국 vs 저항 같은 이항 대립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br>특히 페르시아와 로마, 당, 이슬람 제 왕조들, 몽골 등의 번영을 이룬 대제국에서 공통점을 ‘소수파’의 지배로 보는 점이 흥미롭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지배층이 통치를 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관용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고, 피지배 계층에서도 신분이나 출신을 크게 따지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을 관료로 끌어올려 사회 전체에 유익이 되었다는 것. 물론 지역적으로 예외도 있었지만, 다수파가 전부를 차지하는 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급의 고착화와 부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 사회적 불안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이다.<br>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잘 걸러서 읽으면 나름 유익한 부분이 있을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교양 지식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누어서 쓴 글이니 만큼 무게감도 좀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639/67/cover150/k4826366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639676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