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뒤흔든 40가지 사건 역사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7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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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사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글을 썼었는데, 좀 더 범위를 넓혀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국사, 특히 그중에서도 현대사에 관한 이해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은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해 잘 가르치지도 않을뿐더러, 소위 정체성 정치가 심해지면서 현대사에 관한 어이없는 주장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지난 100년만 봐도 우리나라는 정말 버라이어티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식민지 시절을 경험하기도 했고, 3년간의 내전을 겪었고, 민주 공화국을 건설했다가 군부 쿠데와 군사독재시절을 지나기도 했다. 군주를 처형하는 혁명 없이 다시 민주화를 이루기도 했고. 어지간한 국가가 2, 3백 년 동안 겪어야 할 일을 압축해서 100년 만에 모두 겪은 셈이다. 그뿐 아니라 놀라운 수준의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도시의 외적 변화들, 그리고 최근에는 극단적인 출생률 저하로 인한 인구 소멸 위기까지...





물론 이 책이 그런 우리나라의 현대사 전체를 조망하게 해 주는 건 아니다. 책 제목처럼 우리나라 현대사의 여러 장면들 중 40개를 뽑아서 큼직한 주제 아래 소개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기간 역시 한국전쟁 이후부터 90년대 까지 약 50년에 한한다. 그래도 이 기간 동안 뽑아 놓은 장면들을 보면 정말 이 나라는 다이내믹하구나 싶다.


시점이 시점이다 보니 개인적인 경험과도 어느 정도 겹치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라든지, 성수대교 붕괴, 다미선교회 휴거 사기 같은 것들은 어린 시절 뉴스를 통해 본 것들이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또,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성남의 역사와도 관련된 광주대단지 이주 사건 같은 것들은 좀 더 인상적이기도 했다.


성남시의 기원은 박정희 시절 서울의 미관을 위해 청계천 인근에 살던 빈민들을 거의 반 강제로 이주시켜 만든 광주대단지였다. 집과 편의시설, 일자리까지 만들어주겠다고 판자촌 주민들을 꾀어 보냈지만, 그들이 마주한 건 맨땅에 그어진 줄과 군용텐트가 전부. 물을 한 번 얻으려면 수 km를 걸어가야 했고, 하루에 겨우 버스 네 번만 지나가는 곳에 버려진 이들의 이야기는 군사독재 정부가 보여준 무능함과 잔혹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저자의 시각은 대체로 이 시기의 문제점, 혹은 어두운 지점들을 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지난 반 세기의 역사가 어둠기만 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감추고 숨기려 했던 이야기들도 있는 법이고, 그런 장면들은 누군가 애써 들춰내지 않으면 그대로 잊히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와 기억들 또한 오늘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들이니 그냥 잊어버릴 수만은 없는 것들이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다양한 굴곡을 지나왔다. 주한미군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들을 처벌조차 못했던 약소국이었고, 독재정권은 각종 정치공작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빠른 성장을 위해 부실공사로 여러 건물들이 붕괴하기도 했고, 외적인 성장에 비해 성숙하지 못했던 내면은 끔찍한 범죄로 나타났다. 느리지만 그런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개선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가 정말로 그런 일들을 극복했나 싶다. 백주 대낮에 아파트들이 무너져 내리고, 무도한 정권은 노동자들을 깡패로만 몰기 바쁘다. 어느 샌가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을 동원해 언론은 장악되어버렸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생각보다 세상이 잠잠한 건, 어쩌면 우리가 근대사를 너무 일찍 잊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든다.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난 50년의 다양한 사건들을 스케치 해 가는 책이다. 익히 아는 것이 있더라도, 또는 근대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더라도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가는 데 제법 쓸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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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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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한참 두꺼운 책을 손에 들었던지라,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동네 도서관에서 집어 왔다. 이럴 때 자주 찾는 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다행이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이 꽤 많아서 당분간은 계속 이용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스키점프라는 소재를 중심에 둔다.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스키점프계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천재 선수 니레이. 니레이의 팀이 포함된 연합 동계훈련지에서 니레이가 중독되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럼 범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니레이의 코치인 미네기시가 일을 저지른 사람인 것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이제 경찰들이 어떻게 범인을 향해 수사를 해 나갈 것인가와 왜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가를 설명하는 두 개의 축으로 이어진다. 도치 추리소설의 유형이다.





사실 스키점프가 우리나라에서 그리 인기종목도 아닌데다, 가끔 동계 국제스포츠대회가 열릴 때에야 볼 수 있는 수준인지라 좀 생소하긴 했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도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하는 게 재미있는 부분. 작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집에서 몇 번 취재 차 스키장에 다녀왔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 때 구성한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범인이 누군지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작가로서는 한 가지 흥미꺼리를 포기한 채 이야기를 만드는 셈이다. 아무래도 누가 범인일까를 두고 이런저런 추리를 해 가면서 이야기를 읽는 게 추리소설의 재미이기도 하니까. 도치 구조는 그만큼 전형성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또 다른 것으로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자신감(혹은 필력)이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사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상황으로 어느 정도 재미를 줄 수 있는 작가니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는 것도 독자 입장에서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이야기도 나름 읽어가는 동안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과연 어떻게 경찰들이 진범을 잡을 수 있을까 하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이야기의 키는 범인이 만든 트릭과 범행 동기에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 물론 트릭이라는 게 알고 난 후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범행의 동기 쪽이 좀 아쉽다. ‘이게 동기가 돼?’ 싶지만 뭐 실제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이유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게 현실이니.





책 제목에 들어있는 “조인”은 새처럼 날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스키점프 선수를 가리키는데, 보통의 선수들과 달리 훨씬 좋은 기록을 내는 니레이를 가리킨다. 소설 속에는 그런 니레이와 같은 선수를 “만들어”(“길러”가 아니라) 내기 위한 특별한 계획이 등장하고, 이것이 범인인 미네기시를 자극해 일을 저지르도록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 언급하면 과도한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특별한 종류의 과학적 도구가 사용된다는 점만 말해본다. 사실 갈수록 스포츠에 과학이 접목되는 일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는데, 근본적인 의문이 좀 든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 육체적 탁월함을 보여주는 선수들의 플레이 때문일 텐데, 만약 그게 과학적인 도움으로 상당한 수준까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냥 컴퓨터 속 시뮬레이션 게임과 뭐가 다른 걸까. 뭐 스포츠에 대한 열광에는 다분히 감성적인 무엇이 더 크겠지만.


큰 고민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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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형성사
옥성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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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여러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배우는 교회의 역사는 대부분 외국 땅에서 일어난 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가진 역사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게 많지 않다.


한국 초기 기독교사에 관해서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있는 옥성득 UCLA 교수가 낸 이 책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아마 대개는 우연히 설교를 통해 한 장면만을 들었을―초기 기독교 시기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초기 한국 교계에서 어떤 신명(神名)을 사용할지를 두고 벌어진 오랜 논쟁의 역사를 기술하는 1장의 내용부터 흥미로웠다. “천주”, “상제”, “신”, “하ᄂᆞ님” 같은 용어들이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서로 대립하다가 결국 “하ᄂᆞ님(후에 맞춤법 개정으로 ‘하나님’으로 변경)”으로 정착되는데, 여기에는 한국인들의 종교심에 대한 독특한 선교사들의 이해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조선말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정감록이라는 예언서 속 한 구절이 기독교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2장도 꽤나 흥미로웠다.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는 일종의 파자 암호가 부적화되었을 때 십자가의 모양으로 그려진다는 점, “십승지지”라는 피난처의 십(十)이 꼭 십자가와 비슷하다는 점은 십자가에 대한 특별함 감정을 불러왔다는 것.


한국의 기독교는 단지 서양의 종교가 일방적으로 이식된 것이 아니었다. 3장과 4장은 유교와 도교 등 당시 널리 퍼져있었던 한국종교의 요소가 기독교 안으로 수용, 흡수되어 축귀와 추도회로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5장은 20세기 초반 세워졌던 예배당의 모습에 수용된 한국적 요소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6장에는 초기 한국 교계에 영향을 미쳤던 다양한 한글 문서들에 관한 광범위한 정리가, 7장은 조선 땅에 널리 퍼진 부흥운동에 관한 약사가 실려 있다.





도입부에 언급했지만, 우리는 ‘한국의 기독교인’이지만, ‘한국’의 기독교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 무슨 거창한 이론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분명 이건 뭔가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의 초기 기독교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해 주는 이런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에 저자는 다양한 문헌 자료를 정리해 보여줌으로써, 주제에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점이 또한 이 저자의 책을 읽는 주요 목적이기도 하다. 당장 초기 한국 기독교의 신명에 관한 다양한 논의에 관한 부분만 보면,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선교사들과 초기 신문과 저작물들 속 언급을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분위기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만한 책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


역사의식, 역사감각의 부재는 오늘 내가 보는 것만이 전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독교의 역사는 2천 년이고, 전 세계에 걸쳐 있지만 우리는 그 1/10일, 1/100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도 충분히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태로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그리고 900페이지 가까이 되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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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 베이식 아트 2.0
노르베르트 슈나이더 지음, 정재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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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나 예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몇몇 화가들이 있긴 하다. 그 중 한 명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요하네스 베르메르다. 요하네스는 라틴어식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던 그는 아마 얀이라고 불렸을 게다.


사실 그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그림보다는 종교개혁이라는 특정한 시대와 연관해 그의 그림을 보여주는 책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17세기 유럽은 종교개혁과 그에 이어진 전쟁으로 시끄러웠고, 네덜란드 역시 가톨릭의 본산이었던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과 종교개혁(특히 칼뱅주의)가 연결되면서 이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네덜란드는 칼뱅주의에 기초한 정치적·사회적인 개혁에 나섰다. 대표적인 칼뱅주의 신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카이퍼는 정치인으로 나서 반혁명당을 이끌고 수상에 오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이런 분위기가 베르메르의 작품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처음 봤던 그림은 유명한 “우유를 따르는 하녀”였는데, 여기엔 소명의식이 배어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큼직한 도판과 함께 몇 가지 주제로 엮어 소개하는 내용이다. 일단 책의 판형 자체가 커서 그림도 크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는데, 설명도 의외로 많고 자세하다. 마치 미술관에 가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것처럼, 작품 속 다양한 도상들의 의미, 당대에 그런 사물이나 인물의 배치와 동작이 어떤 상징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들으며 그림을 보다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른다.


사실 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챕터별로, 주제별로 명쾌하게 나눈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을 것이다. 그래도 미술사 교수인 저자는 이 작업을 성실하게 해 냈는데, 덕분에 당대의 상황에 대해 조금은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그려내는 모습은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네덜란드의 상황이었다.


국가적으로는 엄격한 칼뱅주의식 개혁이 추진되었고, 따라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금욕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칭송했었다. 하지만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모습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는 조금 다른 것들을 향한 열망도 있었다는 거. 특히 그의 그림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던 욕망이 은근 또 다양하게 드러나는 점도 재미있다.


잠시 미술관에 다녀온 느낌을 준다. 가끔은 이렇게 머리를 식히는 느낌으로 하는 독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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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저항하다 -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다카쿠와 가즈미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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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시절 서양철학사 전반을 몇 학기에 걸쳐 배웠다. 교양철학부터 서양고대, 중세, 근현대 철학에, 사이드로 몇몇 철학과목까지. 보통은 이런 식으로 철학사를 따라가면서 철학을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건 철학사지, 철학 그 자체는 아니지 않았을까?(물론 단순한 역사만이 아니라 그 철학자들의 주장을 통해 철학적 고민과 탐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배울 수 있지만)


이 책의 저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학자들의(그리고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좁은 의미의 철학’일 뿐이고, 실제 철학은 훨씬 넓은 의미의 활동이라는 것.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을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라고 정의한다. 이건 또 뭔가 싶을 정로 생뚱맞은 표현인데, 또 그 설명을 가만히 들어보면 일리가 있다. 어떤 개념을 일관성 있게 사용하면서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해 이 세상의 특정한 측면을 설명하는 동시에 그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저항적인 활동이 철학이라는 의미다.


이렇게 설명해도 좀 이해가 어려운 건 사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네 가지 실제 예를 들면서 철학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각각 영화와 사회운동, 소설과 편지라는 다른 장르에서 이 작업을 진행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은 말을 사용해서 철학이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 중 사회운동과 관련된 3장에서는 아누족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일본 열도의 북부에 살았던 북방계열 민족인 아이누족은 남방 계열의 현 일본의 주류 세력에 밀려 오랫동안 억압과 착취를 당해왔다. 이 문제를 공론화한 아이누족 출신의 정치인 가야노 시게루는 ‘주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런 사회의 폭력에 저항하는 철학적 투쟁을 감행한다.


아이누족의 주식은 연어였는데, 일본인들이 그들의 영토를 침탈하면서 대량으로 연어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족자원이 고갈되자 금어기나 어로면허제도 같은 것을 도입해 아이누족이 연어를 잡는 것을 막았다는 것. 문제는 자기들이 일으켜놓고, 선주민들을 제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했던 일본 정부에 대해, 가야노는 “주식”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동시에 사회에 대한 저항을 했다. 이런 게 철학이라는 거다.


5장의 주인공은 마틴 루터 킹이다. C. S. 루이스와 함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저자이기도 한 그는, 많이들 알고 있다시피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저자는 킹이 쓴 “버밍햄 교도소에서 온 편지”라는 글 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사회 문제에 대항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당시 미국은 법적으로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잘못이라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그것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기한 없는 계도기간을 두는 모순적 상황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흑인에 대한 차별도 결국 해소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면서 킹을 비롯한 인권운동가들의 강경한 태도를 꾸짖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킹은 “기다리라”는 말은 결국 인종차별주의를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차별의 철폐는 바로 지금 시행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시간’이라는 익숙한 개념을 ‘지금 여기의 시간’이라고 새롭게 정의하면서 사회문제에 저항하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고, 이 역시 저자가 말하는 철학하기의 방법이다.




책의 부제가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이라고 되어 있다. 그만큼 저자는 철학의 특징을 ‘저항’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늘상 책상에서 어려운 책이나 읽다가 가끔 알아듣기 힘든 말이나 하는 철학자들이 무슨 저항을 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저항’은 꼭 반정부적 활동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저항이란 기존 질서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젖어서 더 이상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벗어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그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이런 차원에서의 철학이라면 그건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민(民)이 주(主)가 되는 게 민주주의 아니던가.


당연히 소위 말하는 개똥철학 따위는 철학이 아니다. 그건 개념을 일관되게 정의하지도 못하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거나 새롭게 만들지도 못하는 잡담 수준의 발화일 뿐이니까.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누구나 하는 말이 다 철학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고하고 효과적으로 말을 하기 위해선 연습과 훈련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철학이 필요할 때, 저자도 지적하듯, 오늘날에는 냉소주의가 좀 더 판을 치는 것 같다. 온갖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면서도, 정작 큰 문제 앞에서는 다들 그저 자기 살 구멍만 찾아 나서느라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않는다. 진영논리에, 정체성 정치에 빠져서 우리 편을 옹호하는 데에만 힘을 뺀다. 제대로 된 철학 교육이 어린 시절부터 좀 필요하겠다 싶은데, 학벌주의에 매몰된 사회에선 그 또한 쉽지 않을 것 같으니 큰일이다.


작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로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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