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윤종석 감독, 소지섭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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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같은 영화.


영화는 한 남성이 변호사와 만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남자의 이름은 유민호(소지섭)로, 한 호텔에서 자신의 애인인 세희(나나)를 죽인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변호사의 이름은 이희정(김윤진)으로, 아버지의 소개로 그를 찾아왔다. 영화의 메인 축은 이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들처럼, 둘은 민호의 별장에서 사건에 관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이 대화가 심상치 않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는 듯했고, 변호사는 사건에 관한 진실을 듣고 난 후에 변론을 맡을지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남자는 자신이 애인을 죽이지 않았다며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만, 변호사는 그 이야기에서 허점을 찾아내고는 자신이 구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진실은 두 이야기 너머에 있었고, 희정은 민호에게 진실을 반복해서 캐묻는다.


이야기의 중간에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 구성된 과거 장면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반복해서 현재와 과거를 오고가는지라, 또 그 재구성된 과거가 모든 면에서 진실인 것은 아닌지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사실 실제 대화가 이런 식으로 오고가는 건 아니겠지만, 영화 자체가 좁은 무대를 설정해 놓고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가면서 심리싸움을 하는 걸 중심에 놓았던 지라.. 애초에 이런 이야기는 연극으로 만들면 더 재미있었겠다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름 스릴은 있었다.





인과응보, 혹은 복수.


두 이야기에서 앞서의 사건에 새로운 사건이 덧붙여진다. 세희의 죽음에 앞서 두 사람이 함께 있었을 때 교통사고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 이야기가 풀려 나가면서 죽은 인물의 부모가 현재 민호가 처한 곤란에 관여하고 있음이, 그것도 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 민호를 처벌의 위기로 몰아넣은 주된 인물들이 바로 그 사고로 죽은 아들의 부모였다. 사실 이 부분은 금세 눈치 챌 수 있는 설정이긴 했다. 처음부터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희정의 태도가 너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결국 이 이야기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부모들의 복수, 혹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이 가진 권력과 돈으로 처벌을 받지 않고 빠져나가려는 나쁜 놈에 대한 인과응보를 그린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수없이 만들어지지만 여전히 또다시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는 그다지 기대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너무 열심인 경찰?


이 영화는 쿠팡플레이에서 봤는데, 기억에 남는 웃긴 댓글이 하나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내용.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 경찰이라든지, 민호를 만나기로 했던 진짜 변호사라든지 하는 주변인물들이 모두 범죄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공통의 생각을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뭐 조연 캐릭터다보니 그들의 서사를 일일이 하지 못해 평면적으로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긴 하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추락하고 있다는 건 사실인 듯하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전횡은 이제 입이 아플 정도이고, 경찰도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제대로 할 일을 못한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또 공직사회 전반을 감찰하는 감사원은 스스로 대통령의 충실한 부하가 되겠다고 공식 선언까지 한 상황이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격미달인 인사들은 아니겠지만, 상황이 이 모양이 된 건 분명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에게 불행한 일이다.


범죄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이런 영화 속 이야기처럼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곳은 그런 사회에 가까워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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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뉴만의 순전한 전도 - C.S. 루이스에게서 찾은 10가지 통찰
랜디 뉴만 지음, 임신희 옮김 / 드림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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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목에 “순전한”이라는 표현이 나오면 일단 우리는 그 책을 떠올리게 한다. C. S. 루이스의 가장 유명한 책 『순전한 기독교』. 처음엔 단지 루이스의 그 책을 패러디해서 전도에 관한 내용을 썼나보다 하는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내용은 진지하게 루이스의 저작을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저자부터가 워싱턴 D. C.에 있다는 C. S. 루이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니 뭐.


연구소에서도 이 책의 저자의 경우 주로 전도와 변증학 부분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에 앞서 대학생 선교단체인 CCC에서 30년이 넘게 일을 했다고 하니, 관련 분야에 대한 경력도 충분했으리라. 생각해 보면 변증과 전도는 모두 그 대상을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니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할 수만도 없다. 루이스의 변증에 관한 책들이 전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충분히 가능.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루이스를 전도의 표준 모델이라는 식으로 떠받들지는 않는다. 또, 여기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전도의 단계, 혹은 과정을 하나의 법칙 따위로 도식화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참 다행이다). 저자는 루이스의 책에서 찾아낸 다양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전도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했다.





본문에서 “전도”란 좁은 의미다. 저자는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과 구원을 전하는 일을 전도라고 정의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는 이 일에서 직접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앞서 “사전 전도”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건 C. S.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하나님, 혹은 예수님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한참 동안 옳고 그름의 기준, 즉 자연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세상에 관한 우리의 근본적인 이해를 환기시키는 작업을 한다. 복음의 필요성, 혹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의 메시지는 별 무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처음 네 개의 장을 바로 이 “사전 전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핵심 복음 메시지 자체를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냥 잠시 동안 눈 딱감고 용기를 내서 외운 것을 말하면 그만이다. 많이들 사용하는 4영리 책을 한 페이지씩 넘겨가며 설명해도 3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실제로 전도는 단지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메시지가 진지하게 상대에게 전달되면, 그는 반응을(때로는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보일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이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하나하나 실제적이면서 도움이 될 만한 노하우들이다.





비단 전도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가르쳐야 할 수많은 초신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다. 질문과 대답을 중심으로 한 루이스의 접근은 일방적인 설교나 강의로 채워지지 못하는 좀 더 본질적인 의문을 다루는 데 좀 더 효과적이니 말이다.


아쉬운 건 편집 부분이데, 1번 후주 뒤에는 뜬금없이 직전에 나왔던 옮긴이 주가 다시 붙어 있고(이건 명백한 편집 실수), 맨 앞쪽 “일러두기” 부분에는 뜬금없이 숫자 3이 붙어있다. 또, 루이스와 그의 아내의 러브스토리를 영화화 한 작품의 이름은 “셰도우핸즈”가 아니라 “셰도우랜드”다(영어제목은 정상적으로 써놨다.)


국내 번역본 저작권 문제로 번역자가 앞서 나왔던 책들을 그대로 쓰지 않고 새로 번역한 것까지는 크게 거슬리지 않으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책의 제목까지 그렇게 한 건 좀 헷갈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루이스의 작품이기도 한 『천국과 지옥의 이혼』은 “위대한 이혼”으로(원제는 The Great Devorce이긴 하다), 『예기치 못한 기쁨』은 “기쁨에 놀라다”(원제는 Surprised by Joy)로 적어 놨다. 제목도 저작권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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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감독이 한국에서 만든 영화

영화의 영상이 좀 다른 분위기라는 게, 아니 생각해 보니 영화에 사용된 사운드도 뭔가 익숙하지 않다. 찾아보니 감독이 파리음악원 출신으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도 했던 음악가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감독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인이라는 점. 영화 초반부터 불어가 등장하고, 주인공 중 한 명이 프랑스인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아, 애초에 이 영화는 한국과 한국배우가 등장하는 프랑스 영화였다.

그런데 애초의 계획, 혹은 설정은 좀 달랐다는 것 같다. 찾아보니 원작의 배경은 중국이었고(영화의 소재 자체가 좀 충격적이긴 하다), 몇몇 이전 기사를 보니 영화의 제목도 “고요한 아침”이였던 듯하다. 하지만 제목은 잘 바꾼 것 같긴 하다. 애초의 제목은 내용이 뭘지 전혀 짐작도 안 되니. 근데 또 지금의 영화 제목은 너무 노골적이라.. 콜론 뒤에 “미제사건”이라는 부제는 굳이 왜 붙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빼는 게 더 나았을 듯도 한데, 같은 영화 제목이 있어서 그랬으려나.

상영시간이 한 시간 반 밖에 안 되는 영화는 초반부터 빠르게 범죄의 현장으로 이끈다. 뭔가 잔뜩 수상한 이식용 장기 배달부와 더 수상쩍은 수술, 그리고 발견된 신분을 알 수 없는 변사체. 딱 봐도 불법 장기 이식 범죄를 다룬 영화다. 수사를 지휘하는 진호(유연석)는 마침 서울에 법의학 심포지움 발표차 방문한 프랑스 교수 알리스(올가 쿠릴렌코)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녀의 도움으로 점차 범인에게 접근해 간다는 스토리.



2) 왜 한국을 넣은 거지?

앞서도 말했지만, 애초의 원작은 중국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애초에 사람을 납치해서 장기를 적출하고 이를 불법적으로 이식한다는 원색적인 스토리 자체가 왠지 그쪽에서 좀 더 자주 들을 수 있는 뉴스인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범죄 조직의 말투도 소위 조선족을 떠올리게 하고, 범죄의 희생자들도 중국 남부 지역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희귀한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다.

이걸 왜 굳이 우리나라 배경으로 바꿨는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영화가 좀 더 복잡해진 것 같은데, 우리나라 형사 중에 프랑스어를 몇 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더구나 그런 사람이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를 맡는 반장이 될 가능성은 또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여주인공이 프랑스인이니 그와 관계를 진행시키려면 대화는 통하게 만들어야겠는데, 덕분에 영화엔 한국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까지 등장해 어질어질하다. 겨우 연결을 만들려다 보니 남주인공의 조카가 프랑스에 가고 싶어 프랑스어를 공부한다는 뜬금없는 설정도...

영화 막판에 벌어지는 간단한 총격전 같은 경우도, 경찰의 총기사용이 상당히 제한되는 우리나라에서, 공포탄 발사도 없이, 상대에게 고지도 없이 저렇게 총을 막 쏘는 형사가 현실성이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감독의 나라에선 어쩐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못 그런다고!

심지어 그 장면에서는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한 프랑스 여교수가 갑자기 범죄자를 잡겠다고(정확히는 납치된 아이를 구하겠다고) 혼자 본진(병원)으로 달려가 굳이 감금되는 민폐를 끼친다. 백번 이해해서 병원까지 달려가는 것은 넘어가더라도, 경찰이 오는 걸 기다리는 게 보통 사람이 아닐까. 자기를 구하다가 정작 범죄자를 놓치거나 피해자를 잃으면 어쩌라고.



3) 아쉬운 연출

영화 전반에 걸쳐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유연석은 나름 인지도와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고, 조연으로 유명한 성지루나, 최근 고려거란전쟁의 소배압 역으로 유명해진 김준배, 또 프랑스어를 잘 구사하기로 알려진 예지원까지 잔뜩 등장하는데, 그들의 캐릭터가 잘 살게 그려지고 있지는 못하다. 전반적으로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낯선 연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또,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인 듯하나, 사건의 진행이 그렇게 긴밀하게 연결되며 스릴까지 주지는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진호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마술을 보여주거나(조카 생일에 보여주려고 연습한다는 설정이긴 하다), 심지어 경찰서에서 부하직원 앞에서도 자신이 연습하는 마술을 보여주는 장면까지 나온다. 또, 수사과정에서 자문을 해 주는 프랑스 여교수와 연애까지 한다고? 이 모든 것들이 안 그래도 느슨한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인신매매와 장기매매라는 나름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했지만, 영화는 특별한을 표현하는 데 실패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영화 엔딩에 나오는 옛스러운 배경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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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부모의 탄생 - 공동체를 해치는 독이 든 사랑
김현수 지음 / 우리학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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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잇따라 학부모들의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교사들의 이야기가 보도되면서 관련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교사들마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일어섰고, 초유의 대규모 교사 시위까지 벌어졌다. 처음엔 늘 하던 대로 협박과 위협으로 대충 넘기려던 정부도 결국 교사들을 일단 진정시키자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 애초부터 이런 데 익숙하지 않았던 교사들의 시위도 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급한 불만 끄자는 식이었던 정부의 대처는 이후에도 변변한 게 없었고, 최근에는 애초의 도화선이 되었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과 관련된 학부모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몇 가지 조치들이 시행되긴 했지만, 여전히 교사에 대한 학부모 괴롭힘의 문제는 그대로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우리와 문화적으로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 등지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그런 학부모들을 가리켜 ‘괴물 부모’라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네이밍 센스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정신과 전문의가 그런 일본과 홍콩 등의 실태 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괴물 부모의 특징과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자녀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괴물 부모가 되는 건 단지 개인적 차원의 요인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책에서는 독박육아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 부담감 등이 아이에 대한 과도한 애착관계로 변질되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그 근저에는 자기 증오와 자기 연민이라는 양가적 감정이 깔려 있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괴물 부모는 단지 교사들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과잉보호, 과잉 간섭, 과잉 통제 아래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상처받기 쉬운, 그리고 부모가 결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거나, 부모에 대한 강한 원망을 품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괴물 부모는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사를 괴롭힌다. 별 시답지 않은 꼬투리로 자신과 같은 또 다른 새끼 괴물 부모들을 결집해 담임교사를 몰아내려 하거나, 학교 현장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자신의 힘을 확인하려는 병적 욕구를 드러내거나 하는 모습은 글로만 읽어도 끔찍하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문제를 단순히 교사 개인이 입는 피해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사회적 고발이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임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 일본의 경우 이 주제로 드라마가 제작되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고 하는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학교폭력에 대한 경계심과 대책마련의 여론을 불러온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나 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애초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개선하는 일이 필수다. 그런데 이 괴물 부모의 문제의 배경에는 산업화 이후의 우리 역사와 문화가 전반적으로 개입되어 있는지라 더 풀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이라는 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고, 교사들의 희생을 더 이상 우리 사회가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하니까.


전형적인 저개발국가의 공통점 중 하나는 교사나 경찰 같은 사회밀착형 공무원들의 처우가 굉장히 낮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교사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고, 일부 교대의 경우 미달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기초교육의 질을 더욱 떨어뜨리고, 다시 교육에 대한 불신을 높여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이제 어서 좀 본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 하는 걸 보면 이 정부에서는 별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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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도 우주로

영화는 우리나라 항공우주국에서 자체적으로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는 상상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사고로 동료를 잃고 홀로 달 탐사 임무를 계속하는 선우를 구출하기 위해 5년 전 사고의 책임을 지고 항공우주국 센터장에서 물러났던 김재국(설경구)가 돌아와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캬~ 우리 기술로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상상만 하더라도 멋진 일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 꼭 등장해 혈압을 올리게 하는, 방해만 하는 악역도 딱히 보이지 않았지만(그냥 좀 모자란 개그캐 장관 역을 배우 조한철이 감초 연기로 살렸다), 툭하면 나오는 가족애라든가, 사실은 내가 잘못했어, 인류애를 위해 결단해 달라 같은 클리셰들은 잔뜩 등장해 감동을 유도한다. 근데 뭐 이런 거 다 빼고 나면 뭘 그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좀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나..(결국 영화의 흥행은 대참패였다)

달과 관련된 영화들이 최근 몇 편 만들어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대체로 흥행에 성공은 못 거둔 모양이다. 뭐 그림은 대략 괜찮았는데, 역시 스토리의 매력이 좀 떨어졌기 때문이려나. 물론 개중엔 만듦새가 영 허약했던 것도 있었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 영화도 이제 우주로 좀 더 멀리까지 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돌들이 자꾸 쌓이다 보면 언젠가 좀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2) 결국은 경제문제

영화 속에 언뜻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결국 우리가 달에 가려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 때문이다. 달에는 엄청난 에너지원이 있어서 그걸 선점하려는 각국의 속셈이 있다는 건데, 이건 실제로도 사실인가 보다. 헬륨-3라는 물질인데, 1g을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석탄 40톤이 내는 열량을 낼 수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런 에너지원을 그냥 모두가 나눠 사용할 리가 없는 법(1만 년 동안 전 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량이라지만...). 달에 도착해서 실제로 연구를 한 나라들끼리만 폐쇄적 리그를 만들어 개발을 하겠다는 건데, 영화에서는 이 때문에라도 달에 발을 내딛고 연구를 해야 한다는 목적이 생긴다.(선우가 달의 얼음을 채취한 시료를 마지막까지 사수한 이유다)

이 외에도 우리가 달에 가야 하는 이유는 많다. 그 중 하나가 달을 일종의 중간 정거장으로 삼아 더 먼 외계로 나가는 기지로 삼겠다는 계획도 있는데, 달의 중력이 지구의 1/6에 불과해 우주로 나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훨씬 적기 때문에, 연료를 적게 실어도 되는 장점이 있다.(대략 산술적으로 달에서 출발하면 6배는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니)

하지만 우주사업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당장 (경제적) 성과가 눈앞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실패 확률도 높다. 좋은 건 알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유다. 장기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밀고 나가야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런 일은 정치적인 지지가 필요한데, 자신의 임기 안에서 성과가 나지 않는 일에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훌륭한 정치인은 드무니까.


(3) R&D 예산

윤석렬 정부에 들어서면서 국가 운영이 휘청거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 중 하나가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 예산을 대폭 삭감한 행태다. 2024년 예산안에서 전년에 비해 무려 4조 6천 억을 줄였다고 하는데, 전체 예산이 26조가 조금 모자라니 1/6을 깎아버린 셈이다. 여기에 무슨 정교한 논리나 명확한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심지어 국회예선처의 전문가들도 이런 삭감이 “불명확한 기준”에 따라 편성된 거라고 한 소리를 했단다), 그냥 대통령이 어디서 주워들은 풍문으로 한 소리 했더니 이런 꼴이 되었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그 결과 안 그래도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개인기초연구 분야는 마비될 위기고, 장기 프로젝트는 줄줄이 예산을 대지 못해 좌초될 상황이라고 한다. 이공계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연구비가 줄어 대학원생들을 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반면 국제 협력 연구 분야에는 예산을 2조나 늘렸는데, 외국인 학자들의 연구에 우리나라 돈을 쓰겠다는 말이다. 여기에 우리 연구진이 참여하면 국제적인 연구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누가 또 조언했나 본데, 정작 연구자들은 연구비가 딱히 부족하지 않은 외국 학자들이 우리가 돈을 준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고 한숨을 내뱉는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대통령은 자기 임기 내 R&D예산을 크게 늘리겠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한다. 임기 2년 만에 적어도 우리나라 과학 연구 수준을 10년은 뒤로 미룬 게 아닌가 싶은데, (애초에 달에 갈 수 있는 연구를 지체시켜) 이 영화에서와 같은 우주인의 고립 사고 같은 건 일어날 가능성을 없앴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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