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말했듯이 내 기준에 좋은 책은 어떤 내용을 아주 잘 정리해 놓거나, 생각지 못했던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전자 쪽에 속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면도 몇 가지 보이는데, 우선 저자가 구약 성경 속 사탄 개념의 발전으로 언급한 구절이 겨우 세 구절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세 구절로 정말 구약 시대 유대인들의 사탄에 대한 관점이 발전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간기 여러 문헌들에 나오는 사탄과 그것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들을 정리, 소개한 부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다만 그런 나열식 소개가 책의 전반적인 논지를 강화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약간 회의적이다.
사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에서는 사탄 개념의 이해를 시간적 순서대로 설명하는 부분이고, 2부는 갑자기 축귀사역, 즉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으로 넘어간다. 그리고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실제로 경험하긴 했으나, 자선을 베풀고 섬기는 것으로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았을 것이라면서, 오늘날에도 그들을 따라 제대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을 짓는다.
내가 이해를 제대로 못한 게 아니라면, 여기엔 제대로 된 논리적 긴밀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저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얼기설기 늘어놓다가 급히 결론을 지은 느낌이랄까. 저자가 결론부에서 주장하는 삶의 중요성을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그저 이 책 전체의 결론으로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었던 작업물이었다. 물론 결론의 어색함을 빼더라도 참고자료로서의 기능은 여전히 할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원전 속 기록들을 정리해 둔 부분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현대 저자들(가끔 이 사람이 이 분야의 전문가 맞나 갸우뚱 한 경우가 보인다)의 해석을 늘어놓은 부분보다 좀 더 가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