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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평점 :
비슷한 제목의 역사 관련 책들(“시시콜콜~”로 시작하는)을 몇 권 낸 저자가 복지라는 키워드로 조선시대를 읽어 내려간 책이다. 코로나 시대 이후 재난 지원금 같은 정부의 직접복지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감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복지정책은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나 나온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조선 시대가 어떻게 생각하면 일종의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환과고독을 가장 먼저 챙기겠다’고 선언한다. 환과고독이란, 각각 독신 남성, 독신 여성, 고아, 독거노인을 가리킨다. 농업이 주된 경제활동이었던 당시 의지할 가족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이었고, 이들이 국가적 복지의 주요 대상이었던 것이다. 태조의 이런 선언 아래 조선은 ‘굶어죽는 백성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주된 목표였다.
조선 시대의 복지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큰 재해가 닥쳤을 때 긴급하게 지급하는 진휼, 춘궁기를 버티기 위해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 돌려받는 환곡, 그리고 땅을 떠나 구걸하며 다니는 백성들에게 죽이라도 먹이기 위해 시행하는 일종의 무료급식소인 시식이 그것이다. 이 정도면 제법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했다. 특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백성들을 돕기 위한 제도라면 지출액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 왕조의 예산 가운데 이런 복지 지출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정부조직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지출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지출을 충당할 수 있는 수입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조선 왕조는 내내 낮은 세율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여기고 있었고, 큰 수익을 낼 수 있는(그리고 세금도 많이 걷을 수 있는) 상업활동을 억압하는 것을 기본적인 경제정책으로 여겼다. 돈이 나올 데는 없는데 베풀어야 할 곳은 많아지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실제로 이 업무를 담당하던 지방관과 아전들의 능력과 도덕성에도 문제가 생기기 쉬웠다. 맨날 잔치를 벌이고 술만 마실 것 같았던 지방관들은 엄청난 복지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했을 정도고, 온갖 규제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도 처벌을 받기가 쉬웠다. 여기에 오랫동안 지역에 자리를 잡은 아전들의 부정부패는 이제 갓 부임한 관리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어려운 시절에 곡식을 빌려주고 약간의 이자를 붙여 넉넉할 때 돌려받아 백성들의 경제적 안정을 꾀한다는 환곡은 지방 관아의 재정수입을 위한 제도로 변질되었고, 여기에 환곡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과정을 둘러싼 농간까지 더해지니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특히 학교에서 배웠던, 우리가 잘 아는 ‘삼정의 문란’이 일어난 조선 말에는 백성으로 사는 것이 끔찍할 정도.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부족하면(나아가 악한 욕구가 개입되기까지 한다면)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기가 어렵다. 적지 않은 왕들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어쨌든 명분으로 내세우고, 공식적으로 이를 명령했더라도 일선의 담당자들이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 왕 혼자서 어찌할 수 없었으니까.
현대 국가에 적용해 보면 대통령 하나를 잘 뽑는다고 해서 곧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정책은 굉장히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얽혀 있고, 실제 수행되기까지에 거쳐야 할 절차도 복잡하다. 슈퍼맨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식으로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무능하거나 부패한 대통령이 당선되어도 금방 나라가 흔들리지는 않을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언제나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일은 좀 더 쉽더라.
조선의 복지 정책은 분명 애초의 기획의도대로 끝까지 집행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은 나름대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후대에 일어난 부작용만을 보고 처음부터 그 의미를 모두 부정하는 것도 공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의 정책이 수백 년이 넘게 고쳐지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현실이 달라지는데 옛 법칙만 고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한 번 만들어진 법은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 달라진 상황에 맞게 개정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법의 목적인 사람을 구하는 일에 부합하느냐이고, 여기에는 문자로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정치란, 게으른 사람들은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어떤 정책과 고민들이 필요할까. 법과 정책을 맡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