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의 모든 것 -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만나는 C.S. 루이스의 세계
캐스린 린즈쿡 지음, 김의경 옮김 / 크림슨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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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C. S. 루이스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나니아 연대기. “순전한 기독교쪽도 아주 잘 알려지긴 했지만, “나니아쪽은 어린 아이들까지 즐겨 읽었으니 독자의 연령 폭이 훨씬 넓다.

 

     인기가 있는 책은, 자연히 그 책을 분석하는 책도 나오기 마련. 내 경우만 하더라도 벌써 네 권의 나니아 연대기 분석서를 읽었지만, 이 책을 제외하고도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몇 권이 더 책장에 꽂혀 있다. 이 정도로 읽다보면 어느 정도 책들 사이에 비교가 가능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책의 주요 홍보 포인트이기도 했던, C. S. 루이스가 직접 이 책을 칭찬했다는 부분일 것이다. 루이스는 이 책의 저자에게, 그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며, 이 책이 자신의 책(나니아 연대기)의 중요한 함의들을 잘 밝혀냈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 정도라면 루이스 애호가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찬사다.

 

     루이스의 말처럼 이 책의 저자는 그 두꺼운 일곱 권의 책들을 성실하게 분석해 낸다. 1부에서는 전체 주제 중심으로, 2부에서는 각 권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고, 단지 설명만이 아니라 책을 가지고 다양한 질문들을 만들거나 일종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여기에 각 권에서 저자가 뽑은 명구나, 이 책의 내용에서 파생된 노래나 음악, 연구/동호회 모임 등의 다양한 부가적 정보까지 담아낸다.

 

     물론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인 20세기 중반이라면, 루이스의 인정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좀 더 흘렀고, 그 사이 루이스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을 훨씬 더 깊게 읽었던 여러 저자들이 또 다른 분석서들을 냈다. 뒤에 나온 책의 저자가 가진 유리함은, 역시 앞서 나온 책들을 충분히 읽고 소화시킨 다음,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더 높이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이 책에 실린 내용 못지않게,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충실하게 분석하는 책들이 더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위에서 말했던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다양한 부가적인 정보들은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책을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일 수도 있다.(물론 순수한 애호가의 입장에선 이런 정보들이 너무 달콤하지만) 그리고 루이스의 찬사와는 달리, 저자는 나니아 연대기를 너무 직접적으로 기독교 신학과 매칭시키려 하고 있기도 하다. (루이스는 다른 곳에서 나니아 연대기가 단지 기독교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 좋은 책이다. 루이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다만 비슷한 수준의 분석과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많이 나와 있는 현 상황에서, 대체재가 충분히 있다는 점은 살짝 평점을 깎는 부분.

 

     책 제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정보에는 나니아 연대기의 모든 것이라는 상당히 자신만만한 제목이 붙어있지만, 내 손에 들려 있는 책의 표지에는 나니아 연대기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살짝 위트 있는 제목이다. 저자와 역자, 출판사까지 동일하니 같은 책인 건 분명한데, 금세 제목을 바꾸었나보다. 두 글자를 빼고. 문제는 원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목이라는 것. "Journey into Narnia"이면 그냥 나니아로의 여행정도일 텐데, 바꾼 제목이 지나치게 기대감을 높여 놓지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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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영성
라일 도싯 지음, 오현미 옮김 / 진흥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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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C. S. 루이스라는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전기(傳記, biography)는 아니다. 보통 그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생애를 시간 순서대로 다루면서 루이스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루이스의 삶 가운데 한 부분(영적인 부분)을 골라내서 주제별로 모아 보여주고, 어떻게 루이스가 그런 영적 성숙에 이를 수 있었는지를 탐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이스는 회심한 이후 평생 기도에 힘썼다. 그에게는 기도를 요청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의 기도목록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도해주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든다는 고백은 그가 기도하겠다는 말을 단순히 인사치레로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기도에 관한 루이스의 다양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기도문의 사용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는 것 또한, 루이스에게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성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성경을 읽었고, 특히 다양한 역본을 비교해 가며 읽으면서(이 중에는 그리스어 역본도 있었다) 번역의 정확성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성경의 영감, 그 중에서도 특정한 책들이 지니는 문학으로서의 성격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이 흥미롭다.

 

     루이스의 다양한 저작들을 통해 발견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주제는 교회’, 특히 제도로서의 교회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인식이다. 루이스는 정기적으로 예배에 출석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신앙생활에서 중요하게 여겼다. 갈수록 교회 안에 있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고 있는 오늘날, 특히 소위 가나안 교인들을 루이스가 본다면 뭐라고 조언해 줄까.

 

 

     ​저자는 루이스의 영적인 성숙에 도움을 준 친구들과 특히 멘토의 역할을 했던 영적 스승이 있었다고 말한다. 신앙은 혼자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출생을 하는 것처럼, 어떤 이들에 의해 낳아지고, 양육되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좋은 친구와 지도자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한편 루이스는 또 다른 이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역할을 기꺼이 감당했다. 강연과 강론, 저작활동과 무엇보다 편지교환을 통해, 그는 일생동안 이 사명을 수행했다. 그 자신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신앙에 이르렀기에, 다른 이들이 믿음을 갖고 굳게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당연한 사명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사실 루이스의 삶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 공동체에 관한 의식이다. 그는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 자신은 여러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영적인 성숙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또한 다른 이들의 성숙을 위해 기꺼이 지칠 때까지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개인주의화 된 신앙생활에서는 그저 내가 하나님을 만나 복을 받으면 끝일뿐이다. 관계맺음은 귀찮은 것이 되어버리고, 내 것은 아무 것도 내어놓지 않거나, 심지어 나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려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루이스를 비롯한 많은 신앙의 영웅들이 고백하듯, 공동체는 신앙을 자라게 하는 모판이다. 신앙을 단순히 지적 동의 정도로만 여기는 거라면 몰라도, 몸과 마음의 전적인 방향 전환과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공동체에 굳게 뿌리박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책들을 몇 권 본 적이 있지만, 이 책은 루이스가 한 말이나 그의 교훈 이전에 C. S. 루이스라는 사람에 좀 더 집중하면서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의 루이스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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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 - 별난 천재, 마지못해 나선 예언자 하나님의 사람 13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홍종락 옮김 / 복있는사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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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S. 루이스에 관한 일종의 전기, 혹은 일대기다. 루이스의 일생에 관한 책은 여러 번 읽었다. 아주 가볍게 쓴 것들을 빼고도 조지 세이어가 쓴 루이스와 잭. 데빈 브라운의 C. S. 루이스의 생애, 데이비드 다우닝이 쓴 반항적인 회심자 C. S. 루이스, 샘 휄만의 C. S. 루이스 - 삶과 사랑, 페리 브램릿의 작은 그리스도 C. S. 루이스등이 남는다. 이 중에서도 맥그래스의 이 책을 읽기 전 가장 충실한 책으로는 역시 조지 세이어의 책이었다. 학창시절 루이스에게 직접 지도를 받았던 학생이면서, 개인적인 교류도 있었던 조지 세이어만큼 루이스의 이야기를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맥그래스의 이 책은 세이어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이 차이는 예수와 직접 다녔던 마태나 요한의 기록과 2차적으로 그분을 알게 된 마가나 누가의 기록 사이의 차이와 비슷하다. 맥그래스는 기본적으로 C. S. 루이스가 쓴 다양한 글들(편지, )을 토대로 루이스의 인생을 재구성한다. 이건 어떤 내용상의 차이를 만들어 냈을까?

 

     사실 아일랜드에서의 어린 시절, 끔찍했던 잉글랜드에서의 기숙학교, 커크패트릭과의 만남과 옥스퍼드 대학교 입학, 1차 세계대전, 옥스퍼드에서의 학업, 옥스퍼드 교수로서의 생활, 회심과 기독교 변증, 다양한 기독교 관련 서적들의 출판, 조이와의 만남, 죽음으로 이어지는 루이스 전기의 기본 공식은 이 책에서도 동일하다. 몇몇 부분을 빼면 루리스 자신이 쓴 일종의 신앙적 자서전인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확립된 내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조지 세이어의 책이 이 공식을 가장 잘 설명했고
, 다른 책들은 여기에서 몇 가지 부분을, 혹은 전체적으로 살짝 덜 자세히 언급하는 정도였다. 이 때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그리고 당연하게도) 루이스 자신의 기록을 기초로 하고 들어간다. 그런데 맥그래스의 이 책은 루이스의 기억에 착오가 있을 수도 있다는 대담한 가정을 책에 담아낸다. 세부적인 정확한 일자 같은 부분에서는 루이스가 자주 잊거나 잘못 기억하기도 했다면서 말이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루이스가 언제 회심하게 되었는가(기독교인이 되었는가) 하는 부분인데, 기존의 설명(1931919일 톨킨 등과의 대화 후 28일에 형과 동물원으로 가던 중 믿게 되었다)에 일종의 착오가 있고, 실은 톨킨 등과의 대화가 있은 후 1년쯤 후(19326)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한다. 사실 조금 생뚱맞은 (일단 루이스 자신의 말을 부정해야 하니까) 주장처럼 보이기도 하는데(회심까지 걸린 시간이 열흘에 불과하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어떤 기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최대한 기록들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자’.

     무어 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맥그래스는 좀 더 진전된관계를 설정한다. 다만 이 부분은 루이스 자신이 굉장히 말을 아끼기도 한 부분인지라 추측의 영역을 벗어나기가 어렵고, 맥그래스도 정황증거를 운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저자는 이 관계에 성적인성격(이게 꼭 성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을 상당히 부여하기 위해 애쓴다.

     루이스 말년에 만나 짧은 결혼생활을 함께 했던 조이의 캐릭터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내는 것도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조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 슬픔을 다룬 헤아려본 슬픔을 통해서 조이에 관한 이미지를 그리곤 한다. ‘루이스와 이런 사랑을 나눈 여성은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을까하는. 그런데 맥그래스는 그녀가 처음부터 루이스와 특별한 관계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왔으며(여기엔 그녀의 둘째 아들, 곧 루이스의 양아들의 증언도 근거로 제시된다), 실제 그녀의 성격 가운데 강한 소유욕이나 경쟁심이 있었음을 지적한다.(이런....)

 

     그러니까 맥그래스는 루이스나 그 주변인물들을 중세 성인집에 나오는 인물로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루이스 역시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던 하나의 실제 사람이니까. 그가 늘 옳은 말’. 혹은 정확한 말만 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가 기록한 내용들이 순수한 진실만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침묵을 통해서, 혹은 축소나 과장을 통해서 루이스 역시 감추고자 했던 것들이 있었다.

     한 명의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늘 좋지 못한 결과로 끝나기 마련이다. 루이스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만 그리려고 했던 것보다는 나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살을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하기 위해 화장도 전혀 하지 말고, 옷도 입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모든 것을 햇볕 아래 드러내는 건, 잘 보이게도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색을 바라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잊지 말 것은 맥그래스가 루이스에 대해 악감정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 저자는 남아 있는 기록들을 신중히 재구성하면서 가능한 합리적으로 재구성하려고 애쓰는 것일 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루이스에 관한 또 한 권의 좋은 책을 갖게 되었다. 조지 세이어의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

1930년대 중반이 되면 루이스의 개별지도 업무량이 많아진다. 1930년대 루이스의 개별지도 방식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의 대단히 비판적인 질문, 시간을 허비하는 않으려는 마음, 실력이 떨어지거나 게으른 학생들을 잘 참아 주지 못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루이스는 학생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당시 일부 사람들이 ‘축음기’ 모델이라 불렀던 수업 방식, 곧 학생이 스스로 발견하지 않은 지식을 개별지도교수가 단순히 전달하는 수업 방식에 분개하고 반대했다. - P218

버트런트 러셀은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성찰』에서 홀데인의 주장을 따라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강제 단종을 옹호했다. 러셀은 적법한 전문가들이 "정신적 결함이 있다고" 판단한 모든 사람에 대해 강제 단종을 집행할 권한을 국가에 부여해야 하며, 그로 인해 여러 문제점들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보, 백치, 정신박약자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그런 조치의 오용에 따른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큰 유익을 줄 거라고 말했다. - P308

루이스는 생체해부의 관행이 다윈주의적 자연주의의 내적모순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다윈주의적 자연주의는 인간과 동물의 생물학적 근접성을 강조하면서도 내키는 대로 동물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의 궁극적 권위를 내세웠다. - P357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의 핵심은 다른 모든 이야기들을 이해하게 해주는 큰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안에는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P364

루이스가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내용은, ‘르네상스라 불리는 시기가 중세의 단조롭고 고루한 방식들을 없애고 문학과 신학과 철학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불러왔다’는 널리 퍼진 개념이었다. 그는 이것이 르네상스 옹호자들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신화를 그냥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학문 연구가 진행될수록 영문학사를 이념적으로 읽는 경향이 굳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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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 전기
조지 M. 마즈던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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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傳記)란 일반적으로 어떤 유명한 사람, 혹은 기억할 만한 사람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흥미롭게도 사람이 아닌 을 기억하기 위한 책이다. 바로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가 그 주인공. 일단 시도 자체부터가 흥미롭다. C. S. 루이스에 관한 연구서는 다양한 형태와 주제로 나와 있지만, 그의 책 한 권을 통시적으로 다루는 시도는 (우리말로 나온 것으로는) 처음인 듯하다. 비슷한 시도로는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다양한 해설서와 연구서들이 있을 텐데, 그 쪽은 통시성을 붙잡지는 않았으니까.

     1952년 출판된 순전한 기독교(사실 그에 앞서 1942~44년에 출판된 세 권을 합본한 것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교파에 속한 기독교인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책이다. 이 책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받아들일 만한(나아가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설명하기 위해 쓰였고, 때문에 특정한 교파에 치우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성공회적 배경은 남아 있긴 하다) 가톨릭에서 정교회,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 그의 팬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루이스를 자신의 편으로 여긴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책은 순전한 기독교가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을 차분히 설명하고 그에 대한 반응들, 그 책이 가지는 특징들, 그리고 책에 대한 비판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물론 여러 책들에 순전한 기독교에 관한 언급과 비평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게 흩어진 내용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을 이 책은 줄여준다. 아니, 단순히 모음집이 아니라, 오랫동안 루이스의 삶과 저작을 연구한 저자의 노력이 담겨 있는 좋은 연구서다. 순전한 기독교를 좀 더 자세히 읽기 원한다면 꼭 한 번 봐야 할 책.

     책 뒷부분에 실려 있는 부록 중에는 루이스 작품 연표들이 일목요연하게 실려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책들이 어떤 시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다. 그런데 우리말로 출판된 책들의 이름과 대조하다가 한 권이 빠진 것을 발견했다. (초판 기준으로) 1941년에 나왔던 영광의 무게가 그것. 혹시 중판을 내게 된다면 추가되었으면 한다.

그는 탄탄한 논증을 펼치기 시작하지만 언제나 청취자를 작은 보폭으로 한 걸음씩 인도했다. 각 걸음마다 논리가 있지만, 그것은 흔히 철학자의 엄밀한 증명이 아니라 경험에 호소하는 설득 논리였다. - P53

"말씀하시는 두 가지 견해(최고라는 견해와 경멸할 가치도 없다는 견해)가 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제가 다룬 소재에 대해서라면 오래된 이야기 아닙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하거나 미워합니다." - P80

루이스에 따르면, 그가 방송을 하기 전 "믿지 않는 수많은 동포들은 기독교를 부흥사들이 제시하는 대단히 감정적인 형태로 접하거나 교양 수준이 대단히 높은 성직자들이 늘어놓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만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대다수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했기에 그는 "번역자"가 되는 임무를 감당하여 기독교 교리를 일상어로 옮겼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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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과 도덕 - C.S 루이스를 통해 본 일곱가지 치명적인
제럴드 리드 지음, 김병제 옮김 / 도서출판 누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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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C. S. 루이스를 통해 본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악과 도덕”)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루이스의 저작들에 흩어져 있는 악덕(Vice)과 덕(Virtue)에 관한 언급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Vice’를 꼭 죄악으로 번역해야 했을까... 뉘앙스가...) 중세 영문학자였던 C. S. 루이스는 중세적 사고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고(이와 관련해서는 최근에 출판된 폐기된 이미지를 보면 좋을 것이다), 그 안에 담긴 깊은 통찰들을(특히 기독교적 통찰들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기를 즐겨했는데, 다양한 저자들에 흩어져 있던 내용들을 한 자리에 잘 모아 정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책 제목에 들어가 있는 일곱 가지 악덕’, ‘일곱 가지 덕같은 건 중세식 구분이다. 일곱 가지 악덕이란 흔히 칠종죄라고 부르기도 하는 교만, 시기, 분노, 호색, 탐식, 게으름, 탐욕이고, 일곱 가지 덕이란 분별, 정의, 용기, 절제, 믿음, 소망, 사랑이다. 악덕을 물리치고 덕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가르침은 고대 이래로 역사상 유구히 전해져온 교훈이지만, 모더니즘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런 식의 간섭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렇게 압제적 권위로부터 탈출한 결과 거의 모든 부문에서 방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인들의 이런 식의 저항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전 세대가 말하고자 했던 본래의 의미가 상당히 왜곡된 채 전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호색에 관한 경계는 성적인 것에 대한 부정으로 읽혀졌고, 시기를 멀리하라는 교훈은 평등의 요구로 극복되고 말았다.

 

     앞서 말했듯, 루이스는 그런 왜곡된 전승을 교정함으로써, 본래의 교훈이 가지고 있는 진짜 교훈을 드러내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루이스가 살던 당시의 시대적 한계나 그가 상정했던 독자(혹은 청중)의 제한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면이 있다. 저자는 바로 그걸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고자 이 책을 썼는데, 이 과정에서 루이스만이 아니라 아퀴나스 같은 중세 철학자들과 현대의 여러 저자들의 글을 함께 인용한다.(여기에 저자 자신의 주장도 적잖게 포함되어 있고

 

      이런 구성과 진행이 내용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드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 애초에 ‘C. S. 루이스를 통해 본이라는 어구에 매력을 느껴 책을 선택한 독자에게는 살짝 아쉬움을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루이스색이 좀 옅어졌다고나 할까. 물론 책 전반에 걸쳐 C. S. 루이스의 글이 가장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저자들의 말을 함께 넣으려다 보니 책이 살짝 산만해진 감도 있고.(일곱 가지 덕과 관련된 부분은 그냥 바로 순전한 기독교” 3장 부분을 보는 게 루이스의 생각을 좀 더 잘 접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의 제목이 ”C.S 루이스를 통해 본 일곱가지 치명적인 죄악과 도덕이라고 되어 있다. S 뒤에 온점(.)이 빠진 것도 당황스럽고 (이건 표지잖아!) ‘일곱 가지일곱가지라고 띄어쓰기를 잘못한 부분도 눈에 걸린다. 게다가 원제의 ‘VICE and VIRTUE’라는 부분을 ‘VICE & MORALITY'라고 바꿔서 표지 상단에 적어놓은 것도 아쉽다. 두 단어는 분명 뉘앙스에 차이가 있을 텐데 말이다. 여기에 책 본문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오타와 완성되지 않은 문장 번역 같은 교정교열의 문제가 독서하는 내내 거슬렸다.(오타만 하더라도 서너 개까지는 세다가 나중엔 그냥 포기해버렸다. 중간에 싹둑 잘라먹은 듯한 문장들도 보이고..)

 

     내용면에서나 편집에서나 좀 더 세심한 정리와 마감이 필요했던 책이다. 하지만 주제와 관련해서는 한 번씩 찾아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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