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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자리로 - 영광의 그분과 거룩한 발맞춤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10월
평점 :
2020년의 마지막 책은 역시 루이스 책이었다. 작고 아담한 책이어서 다 읽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책을 금방 읽을 수 있었던 건 단지 얇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나온 이 책은 루이스의 새로운 글이 아니라, 이전에 나왔던 여러 글 중에 ‘기도’라는 주제에 맞춰 뽑아 편집한 책이다. 당연히 책에 실린 거의 모든 내용은 그 원래의 자리에서 최소한 몇 번씩 읽어봤던 내용이다.
루이스의 폭넓은 사상에 대한 연구서도 여러 권 읽어봤지만, 이 책은 그와는 또 다르다. 여타의 연구서들이 그 저자들의 연구 결과, 혹은 분석 등이 들어갔다면, 이 책은 말 그대로 루이스의 글을 편집해 놓은 것이 전부니까. 각각이 실려 있던 원전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단순한 반복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어디 루이스의 글이 그렇던가. 다시 읽어도 그 특별한 통찰은 읽는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그런데 책을 출판하는 입장에선 이게 또 하나의 작은 문제를 안겨주지 않았나 싶다. 책에 실린 내용이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된 상황에서, 또 다른 출판사의 이름으로, 또 다른 번역자가 책을 낸다는 건 어떤 의도일까. 물론 한 작품을 다양한 출판사의 다양한 번역으로 내는 경우는 많다. 각각의 출판사들은 (번역과 편집 상의) 나름의 장점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루이스 책의 경우는 홍성사의 번역이 꽤 훌륭하게 잘 나와 있는 상태에서, 다시 번역을 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여기에 출판사와 번역자는 기존에 나와 있던 내용과 차이점을 두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출판사가 다르니 단순히 이전 책을 인용할 수는 없고, 뭔가 ‘다르게’ 번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던 듯. 홍성사에서 나온 루이스 책은 대부분 경어체를 사용한다. 이건 루이스의 원고가 대체로 강연이나 설교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일부러 그랬는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나 “개인기도”의 인용구를 제외하고는 경어체를 빼버렸다. 덕분에 홍성사의 루이스 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매우 어색해져버렸다. 이게 루이스의 글인가 하는.
내가 번역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아주 난해한 문어체 문장으로 읽는 사람을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어느 쪽도 상관없다는 게 내 생각이니까. 다만 이 책에서 새롭게 한 번역이 이전의 홍성사 번역에 비해 ‘나아졌는지’는 살짝 갸우뚱 하다. 예컨대 이 문장을 보자. 다음 문장은 홍성사의 번역이다.
“기도는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요청의 핵심은 강제와 달리, 상대가 들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무한히 지혜로운 존재가 유한하고 어리석은 피조물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인다면, 당연히 그는 요청을 들어주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할 것입니다. 기도가 어김없이 ‘성공’을 거둔다 해도 그것으로 기독교 교리가 입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기도는 요청이기 때문이다. 강요와 달리 요청의 본질은 상대가 승낙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혜가 무궁하신 신이 유한하고 어리석은 피조물의 요청을 들으신다면, 당연히 승낙하실 때도 있고 거부하실 때도 있을 것이다. 무조건 “성공하는” 기도로는 전혀 기독교 교리를 검증할 수 없다.”
내 느낌엔 홍성사의 번역 쪽이 훨씬 더 ‘루이스 답다’. 루이스는 자신이 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평신도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신학과 관련된 내용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하는 느낌으로 말하고 글을 썼다. 어쩌면 홍성사의 경어체는 루이스의 이런 입장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루이스는 확신에 차서 선포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번역에 사용된 단어들도 좀 더 ‘옛스러운’ 홍성사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고전 문학 전공자인 루이스의 느낌이 좀 더 묻어난달까 그런.
물론 이런 번역 상의 아쉬움을 차지하고 보면, 오랜만에 루이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독서였다. 루이스는 기본적으로 기도를 ‘요청’으로 보고, 그 가장 중요한 목적을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에 둔다. 기도는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에 관한 가장 중요한 통찰이자, 더 깊은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단서다.
루이스는 평생 기도에 관해 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조언은 기도에 관한 어떤 교과서보다도 알찬 느낌이다. 읽어볼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