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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하여 - 문학 비평 에세이 ㅣ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C. 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20년 8월
평점 :
루이스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열 살도 채 되기 전 형 워렌과 함께 상상의 동물 나라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던 그는, 엄청난 독서량과 직접 쓴 여러 권의 소설들로 자신이 얼마나 이야기에 깊이 빠져있고, 또 좋은 이야기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었다. 간단히 떠올려 봐도, 루이스 스스로 가장 만족해했다는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편지 형태로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우주 3부작(『침묵의 행성 밖에서』, 『페랄란드라』, 『그 가공할 힘』), 그리고 그 유명한 『나니아 연대기』의 일곱 권까지 루이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왔다.
이 책은 그런 루이스가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에세이 스무 편을 엮은 책이다. 분량이 짧은 건 두 페이지 남짓이고, 긴 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된다. 책의 전체 제목은 그 중 첫 번째 글의 제목에서 따왔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 실려 있는 에세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니까 썩 괜찮은 제목이다.
루이스는 사실주의적인 글만이 선호되며, 상대적으로 ‘이야기’를 낮춰보는 풍조에 강하게 반발한다. 그는 예술이란 “지독하게 실용적이고 편협한 현실세계의 시각이 배재하는 것을 제시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신문과 잡지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오염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루이스의 이 말이 훨씬 강하게 와 닿는다. 그의 말처럼 우리에게 정말 위험한 건, 애초부터 가상임을 전제하고 풀어놓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인 양 위장한 채 늘어놓는 실용적이고 편협한 글들이다.
또 하나 책 전체에서 강조되는 것은 아동문학, 또는 동화에 속하는 글들에 대한 변호이다. ‘그건 어린 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라는 편견에 대항해, 사실주의적이지만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얼마든 존재하고, 정말로 좋은 이야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좋은 것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말한다. 성인이 되었다고 동화를 읽는 것을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는 것.
당대의 서평가들을 꼬집는 글들도 흥미롭다. 루이스는 그들 중 상당수가 서평의 대상이 되는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픽션을 쓰고 있다고 비꼰다. 책을 읽지도 않은 채, 저자가 무엇이라고 썼을지 안다는 생각으로 쓴 서평에는 당연히 제대로 된 책에 대한 평가가 담길 수 없다. 그러니 저자가 무슨 사조에 영향을 받았고, 글을 쓸 때 작가의 심리상태는 어쩌고 하는, 온전히 추측의 영역에 해당하는 내용들만 지루하게 늘어놓게 된다는 것. 개인적으로도 책 앞뒤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추천사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루이스와 꼭 같은 이유에서다. 책은 제대로 읽어보고 이런 추천사를 쓴 건가 싶은 내용들이 적지 않으니까.
절친한 동료였던 톨킨이 쓴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 관한 찬사가 담긴 서평과 도로시 세이어즈의 장례식에서 낭독되었던 추도사도 기억에 깊이 남는다. 상대에 대한 루이스의 깊은 애정이 전해진달까. 물론 톨킨의 작품은 단지 친분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위대한 작품들이었지만.
루이스의 책에 대한 엉뚱한 비평을 쓴 글쓴이에 대한 루이스 본인의 신랄한 반박(IX. 홀데인 교수에 대한 답글)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실제로 상대방이 루이스의 이 글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정신이 탈탈 털리지는 않았을까? 하긴 루이스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서평을 썼을 정도면, 다른 글이라고 해도 제대로 읽었을 것 같진 않지만.
비평가들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어떤 글에 대한 생각을 쓰려면, 그런 종류의 글을 정말로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쓰는 게 좋겠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을 향한 말과 글에서는 필연적으로 짜증과 귀찮음, 심지어 증오가 묻어날 수밖에 없고, 이런 말과 글은 유익하기보다는 해롭다. 자기가 경멸하는 대상을 매일 다루는 건 우선 그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일 테고.
오늘도 이런 저주와 증오만 가득 담길 글들이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 무슨 무슨 교수니, 전직 무슨 기관장이니 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스트레스 수치가 저절로 오른다. 그렇다고 듣지 않을 수도 없는 게, 오토바이를 탄 채 투기하는 유흥업소 홍보전단처럼 온갖 지면에서 쏟아지니까.
제발 정치는, 정치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학문은 그 영역의 매력에 푹 빠져서 다른 것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럼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하면, 그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 그 사람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너무 불행할 테니까. 기생충학 교수가 매일매일 징그럽게 정치인 비난만 하고, 목사가 설교시간에 복음이 아니라 좌파니 우파니 하는 정치강연만 해서는 어디 제대로 돌아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