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의 문장들 - 깨어 있는 지성, 실천하는 삶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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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루이스 발췌 어록집이 나왔다두란노에서 벌써 네 번째로 내는 책이다앞서 나왔던 책들이 기도나 신앙독서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관련된 구절들을 모았다면이번 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좀 더 넓은 범위의 글들을 묶어냈다전반적으로 인간의 삶과 신앙 전반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뭐 일단 루이스의 여러 글들 중에서 편집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구절들만 뽑아냈으니 당연히 좋다오랜만에 예전에 읽었던 루이스의 글들을 되새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본문만 읽고서도 이게 어떤 책에 실려 있었던 내용일지 맞춰가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었다(대부분 맞췄다!).


그리고 역시 이번 책도 번역 부분이 영 거슬린다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게 개인적으로도 좀 예가 아니다 싶지만이미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 홍성사에서 출판되어 있는 상황에서 굳이 경어체로 익숙해있던 문장을 낮춤말로 바꾼 의도를 여전히 모르겠다물론 일부 문장들의 경우 경어로 번역되어 있긴 한데일부 편지들이 그 대상이다문제는 나머지 글들 중에도 높임말로 번역하는 게 더 적합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루이스의 글 중 가장 잘 알려진 순전한 기독교만 하더라도 애초에 라디오에서 한 강연을 책으롱 옮긴 것이니우리말 방송용어인 높임말로 번역하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다또 영광의 무게에 실린 글들 역시 대개 강연이므로우리말로 옮길 때는 높임말을 쓰는 게 맞지 않나 싶다.(또 다른 책들에 실린 강연이나 설교도 마찬가지다이런 것을 일일이 신경쓰기 어려웠다면 그냥 높임말을 쓰는게...)


서문에서 편집자인 클라이드 킬비의 말처럼이 책은 루이스가 쓴 책을 읽는 데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가이드북으로서 사용되는 게 적절한 사용법일 것 같다다만 많은 노력으로 발췌하긴 했으나루이스의 원래 글들의 매력을 충분히 알지 못하면 여기에 실린 문장들도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게 문제어떻게든 루이스를 더 많이 읽어보게 된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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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 - C. S. 루이스와 필립 얀시의
김병제 지음 / 서로사랑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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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부터 C. S. 루이스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책이었다출판사도 처음 보고저자의 이름도 눈에 익지 않았지만주저할 이유가 없었다절판되면 큰일이니까루이스 애호가로서오히려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나온 지도 오래된 책들은 금세 절판될 가능성이 높은 레어템이기도 하다.


사실 책 표지에는 C. S. 루이스와 함께 또 한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필립 얀시다그리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어떤 느낌의 글을 쓰는지는 익히 알려져 있는 작가다책은 이 두 사람의 글을 상당히 많이 인용하면서(그래도 루이스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 여기까지는 좋은 시도다루이스와 얀시 사이에는 분명한 논리 전개 방식의 차이도 있고하지만 또 상반되는 저자들은 아니기에 이 둘을 잘 설명하고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실제로 저자는 몇몇 주요 작품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그 글에 담긴 의미를 다양한 개인적인 비유까지 사용하면서 잘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책이 좀처럼 읽히지가 않는다내가 좋아하는 루이스에 관한루이스의 말과 글이 잔뜩 등장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왜 그랬을까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책의 구성 문제다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고각각 세상과 신앙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따라 구분되는 것 같다그런데 막상 읽다 보면 앞에서 나왔던 얘기가 뒤에서 또 발견되고 하는 경우가 잦다고통이라는 주제는 세상을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지만신앙을 설명하는 데도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결과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게 단지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무슨 말이냐면저자 소개를 보면 여러 교회에서 C. S. 루이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여러 번의 강의안을 모아서 엮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각각의 강의에서는 새롭게 언급되는 주제지만이렇게 하나의 책으로 묶어버리면 반복의 반복이 되는 셈이렇게 묶을 것이라면 과감하게 글을 덜어내고 좀 더 깔끔하게 구성하는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역설적으로 저자의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 때문인 것 같다책 서문이나 추천사에 언급되어 있듯저자는 루이스의 글을 알기 쉽게 설명하겠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물론 그 작업을 열심히 잘 해냈다그런데 루이스의 글에 익숙하고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이렇게 글을 풀어놓음으로써 루이스 특유의 논리구성이나여운이 있는 표현들이 오히려 가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루이스의 주요한 책들, “순전한 기독교와 고통의 문제”, 그리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자주 인용된다이 외에도 파스칼이나 다른 저자들의 글도 종종 눈에 띄고그러고 보면 루이스의 사상을 설명한다기보다는 자신이 설명하려는 주제를 위해 루이스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분명 책의 내용도루이스에 관한 해석과 설명도 나쁘지 않은데 잘 안 읽히는 경험.. 이것저것 많이 말하는 것보다 핵심을 정확하게 집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결과적으로 초신자에게 권하기엔 너무 두꺼운 책이 되었고루이스의 팬에게 추천하기엔 루이스의 느낌이 옅어진 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 책을 읽다보면루이스의 책들을 다시 한 번 펴봐야겠다는 생각이 잔뜩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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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 - 더 옥스퍼드 잉클링스
콜린 듀리에즈 지음, 박은영 옮김 / 이답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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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에 대해 좀 깊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그가 멤버로 활동했던 클럽인 잉클링즈에 대해서도 들어보게 될 것이다옥스퍼드에서 교수직을 맡은 후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결성한 조금은 비정형적이고 덜 공식적인 모임이다.


모임에서는 서로의 미발표 원고를 읽거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했다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거기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의 면면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거루이스만 해도 옥스퍼드의 영문학 교수였고또 다른 주요참가자였던 톨킨 역시 옥스퍼드 교수였다당장 이 두 사람이 판 책만 해도 몇 백만 권은 되지 않을까그 외에도 여러 명의 작가들과 비평가학위소지자들이 모였으니보통의 잡담만 늘어놓는 자리는 아니었을 게다.



이 책은 그 잉클링즈의 역사와 성격을 추적하는 이야기다루이스 연구자인 콜린 듀리에즈(바로 얼마 전에 그가 쓴 나니아 연대기 해설집을 읽기도 했다)모임의 주요 멤버들을 루이스가 만나는 과정그들의 성격모임의 진행 등 다양한 부분을 짚고 있다루이스의 팬이라면 즐거워할 만한 수집물(?).


책은 전체적으로 시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한 모임의 역사를 살피는 거니까 자연스러운 구성인 듯도 하지만애초에 모임 자체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고 해산된 게 아닌데다가저자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또 그게(시간의 선후관계잘 눈에 들오지 않기도 한다뭐 그냥 루이스의 다양한 면모를 보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면 뭐가 문제랴.



잉클링즈와 같은 모임이그렇게 정기적으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서로의 작업물을 보여주면서 냉철하지만 격의 없는 비평을 주고받고 하는 시간이 얼마나 큰 유익이었을까 하는 부러움이 생긴다.


확실히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이 모임에서그리고 루이스의 격려가 완결을 맺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고루이스의 경우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생각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이런 모임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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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해설집
콜린 듀리에즈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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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 C. S. 루이스의 대표적인 아동문학인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다양한 부가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다사실 그동안 적지 않은 나니아 연대기의 해설집들을 읽어왔기에(이 책이 아홉 번째 책이다자연히 앞서 읽었던 책들과 비교를 해 보며 읽게 된다.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이 책만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나니아 연대기를 가장 멀리서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많은 나니아 연구서들이 그 책의 내용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곤 한다워낙에 대작이고당연히 할 말도 많은 지라다양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배열하고 설명한다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물론 이 책도 나니아 연대기의 어떤 부분에 어떤 기독교적 의미가 담겨있는지 같은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그런데 저자가 좀 더 집중하는 부분은 소설 속 대륙의 역사와 지리자연환경그리고 나니아 연대기가 가지는 문학적 특성과 같은 쪽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이 작품이 갖는 기독교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이교적 이미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루이스는 이교 사상 가운데서도 진리의 한 자락이 발견될 수 있으며그 진정한 실현은 기독교에서 성취된다고 믿었다때문에 그는 자유롭게 이교 문화의 주인공들을 그의 작품에 등장시킬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훨씬 더 뒤로 물러 나와서루이스 자신과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또 루이스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 나니아 연대기와의 관련성을 찾아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작품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배경지식이 될 만한 내용들이다.


나니아 연대기를 좀 더 폭넓게 읽고 싶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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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 믿음의 글들 189
C. 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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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1장이 너무 어렵게 쓰였다는 점이다저자인 루이스는 텅 빈 우주와 사방이 고통으로 가득 채워진 세계가 기독교를 부정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발로 책을 시작한다그런데 루이스는 이 논리를 역으로 사용해서그렇게 고통과 허무로 가득해 보이는 이 우주에서왜 사람들이 선하고 지혜로운 창조자를 떠올리게 되었을지 이상한 일이라고 답한다(탁월한 말솜씨다).


그건 두려움 때문이 아니겠느냐고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대답을 상정한 후이제 루이스는 본격적인 논리를 전개하기 시작한다두려움에는 구분이 있으며단순한 무서움이나 공포감이 아닌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따로 존재한다고 말한다책에서 루이스는 이를 누미노제 경험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난코스다이 영어도 아닌 독일어 단어를 듣자마자 덜컥 겁이 나니까.

 

루이스는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일으키는 그 존재가 인간들에게 옳고 그름의 도덕적 기준을 내려준 존재와 동일하다고 여기면서 종교라는 것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이 과정은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일종의 도약이 필요하다실제로 경외감만 존재하는 신비주의적 종교나도덕률만 강조하는 자연주의적 종교가 인류 역사엔 적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기독교는 또 한 번의 도약을 감행하는데그 경외감을 주는 도덕률의 수여자가 실제 역사 속으로 들어와서 한 인간이 되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요컨대 1장에서 루이스는 (1) 고통이라는 것이 반드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2) 오히려 특정한 종류의 두려움(경외감)이 우리를 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우리가 그 경외감을 일으키는 분을 인정한다면 고통이 이 세계 안에서 어떤 의미와 기능을 갖는지를 이해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1장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면이후의 내용은 좀 더 명확하고 이해하기에 쉽다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모순되지 않는다.(2세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 위한 중립적인 장이 필요하며이로 인해 발생하는 괴로움에 매번 하나님이 손을 대신다면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또한 하나님의 선함은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려는 그분의 의지와 충돌하지 않는다.(3)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세상의 (최소한일부분은 분명 악하다고통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4). 인간의 타락이라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이 악의 문제가 어떻게 세상에 퍼졌으며우리에게 일종의 교정(그 부산물로 고통이 발생할 수 있다)이 필요한지를 설명해 준다(5). 고통은 때로 그런 악한 부분을 돌이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6).


지옥의 존재는 옳고 그름을 인정한다면 나오는 자연스러운 응보의 개념(보복이 아니라)을 만족시켜준다(8). 지옥을 선택하는 이들은 그들이 가장 원하는 상태(하나님의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지 않고 그들의 자아에 고립된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동물들의 고통에 관해서는 그들이 영혼(자아)을 가지지 않았다면 고통을 겪을지언정 고통을 느끼지는 못한다고 볼 수 있다다만 고등한 동물 중 일부는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좀 더 특별한 상태로 나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9).

 

우리 모두는 천국을 갈망한다다만 많은 경우 우리는 천국 그 자체와 천국의 열매를 혼동하곤 한다그 나라는 우리의 자아를 온전히 그곳의 주인께 내어맡길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며그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루이스가 쓴 첫 번째 기독교 변증서이다젊은 교수였던 루이스는 고통에 대한 총체적인 기독교적 설명을 담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다만 그런 큰 포부 때문에 책 첫 머리부터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글쓰기를 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만약 루이스가 좀 더 원숙해진 후에 이 책을 썼다면누미노제 같은 어려운 학술용어보다는 좀 더 쉬운 일상의 언어로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그 부분만 넘어간다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고통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오히려 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우리의 타락한 현실악함을 생각한다면 고통은 매우 중요한 신의 도구이며그 고통의 거의 최종적 형태로서의 죽음조차도악이 영구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막는 불가피한 조치일 수도 있다.


이런 명쾌한 논리와 함께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루이스가 사용하는 풍성한 비유와 상징들이다선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네 가지 비유는 단순한 설명보다 훨씬 더 생생한 그림이 떠오르게 만들고그가 그려주는 그림은 금세 푹 빠지게 만든다.


물론 루이스가 말하는 일부 내용에는 신학적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루이스는 전적 타락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효화시킴으로써 구원을 수동적인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지옥에 관해서 그는 영원한 의식적 형벌설이 아니라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존재의 비인간화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관해서 루이스는 자신이 신학자가 아니며교정을 받을 충분한 의향이 있음을 책에서도 밝힌다그리고 솔직히 말하면이런 내용들은 무슨 대단한 신학자라고 해도 자신이 완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순전한 기독교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함께, C. S. 루이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이후 루이스의 변증적 저작에서 자주 보이는 글쓰기 방식이 이미 등장하기 시작하기도 하고여러 모로 중요한 책.


물론 이 책은 철저하게 논리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다룬다생의 후반 아내인 조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루이스가 겪었던 슬픔과 고통에 관해 적은 또 다른 책 헤아려 본 슬픔에서는 이 주제에 관한 좀 더 실천적인 반응이 엿보인다가능하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알게 된 루이스의 개인적인 일화 하나이 책을 쓴지 11년 후 루이스는 이하선염이라는 병에 걸려서 심한 통증을 앓게 되었다고 한다그 때 루이스의 주치의이자이 책의 부록(책의 가장 마지막에 붙어있다)을 쓰기도 한 하버드 박사가 통증을 호소하는 루이스에게 이 책의 몇 구절을 만날 때마다 읽어주자루이스는 다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버드 박사가 만날 때마다 고통의 문제를 몇 구절씩 인용하고 있는데그 책의 내용이 좀 심하더구만."


언제나 위트를 잃지 않는 루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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