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병 - 공감 중독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나가이 요스케 지음, 박재현 옮김 / 마인드빌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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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감’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필수적인 덕목으로 꼽힌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동정심이 일어나 그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첫 단계가 바로 공감이다. 누군가가 ‘공감할 줄 안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그건 칭찬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공감에 대해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의 공감이란 ‘우리와 비슷한 사람’, 혹은 ‘우리 편’, ‘우리보다 약한 사람’ 등 특정한 범위와 기준에 맞는 사람들만을 향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반감을 표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공감의 이런 속성 때문에, 그건 자주 오용되기도 한다. 내 편에 대한 공감은 적에 대한 미움으로 쉽게 바뀐다. 예컨대 테러리즘은 종종 우리 편의 존재와 목적에 대한 과도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적들은 악마화 되고, 자신이 벌이는 끔찍한 범죄는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멋대로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지나친 공감의 폐해는 그 뿐이 아니다. SNS에서는 다른 사람의 ‘좋아요’를 구걸하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게시물을 작성해 올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불안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단지 개인의 불안 수준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게 한 사회의 문제가 되면 좀 더 심각해진다. 집단 학살이나 흑백논리에 기초한 극심한 정치적 대립 등은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문제에 대한 지적은 여러 차례, 여러 모양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그 해결책, 대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이성적으로 사고하면서, 전략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뉘앙스에, 전략적 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대화기법이 몇 개 소개되는 게 전부다. 그리고 위에 정리해 놓은, 공감의 위험성에 관한 짧은 글들이 책 전체 여기저기에 퍼져있다.


목차만 보면, 그리고 장의 제목만 보면 뭔가 내용이 발전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3장과 4장은 약간 생뚱맞게 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테러리즘과 제노사이드가 언급되는 마당에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조언이 등장하는 건 이야기의 규모가 어울리지 않는다.


책 자체가 애초에 한 권의 책으로 쓰인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칼럼 형식의 짧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보니, 정작 모아놨을 때 통일성이나 내용의 논리적 전개가 허술해진 게 아닌가 싶다. 나름 편집자가 어떻게든 이걸 꿰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나 보다. 중간에 삽입된 두 개의 인터뷰 내용도 지면 늘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본문의 내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고.


그리고 사실 문제에 대한 지적도 위에 요약을 해 놓으니 분명해 보이지만, 책 전체에 흩어져서 짧게 던져지고 있을 뿐이다. 사회과학 서적이라면 적어도 어떤 통계라든지, 정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든지 하는 게 필요할 텐데, 그런 것보다는 일종의 인상비평이 대다수고.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로서의 저자가 가진 이력은 독특하지만, 그게 또 실감나게 풀려나오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앞뒤 표지에 실린 홍보문구는 꽤나 흥미로웠는데 말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그러나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공감의 역기능에 대한 경고는 분명 귀담아 들을 만하다. 그게 작은 SNS 중독 같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아가 더 큰 규모의, 이를 테면 국가 간 분쟁이나 테러리즘에 오용되는 일 같은 경우 분명히 문제가 있으니까. 다만 좀 더 체계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남의 말에 지나치게 쉽게 빠져들고, 넘어가는 건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충동적이서’, 혹은 ‘합리적 사고를 못해서’이다. 본인은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이들이 일으킨 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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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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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4억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는 인도는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세계에서 두 번째 인구 대국이다땅 넓이도 엄청나서 중부유럽에 속하는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 만할 정도괜히 인도 아대륙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땅이 워낙 넓다보니 그 모든 지역이 하나의 나라인 적은 거의 없었고수많은 나라들이 지역별로 분포하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던 인도는, 16세기 무굴 제국 시기에 오늘날과 비슷한 영토를 가진 나라가 세워진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로 한 시대를 보낸 인도는 마침내 독립을 하고간디와 네루의 사상을 이어받은 좌파 정당인 인도국민회의가 오랫동안 집권을 해왔다하지만 80년대 이후 우파 정당인 인도 인민당이 종종 선거에서 이기면서 정권교체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2014년부터는 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가 이끄는 인도 인민당의 장기집권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우파 정당이 집권을 하면서 인도의 정치경제 상황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가장 크게는 사회주의적인 정책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전환된 것인데자본이 부족한 나라들이 일상적으로 그렇게 하듯인도 역시 외국계 자본을 유치하는 데 열심이었고이 과정에서 투자에 적합한’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 가난한 시민들의 대대적인 희생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대규모 공업시설이나 상업지구를 건설하기 위해 그 땅에 살던 빈민들을 강제로 추방해 버렸고쫓겨난 이들은 도시로 몰려들었지만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이 이주민들이 사회적 안정을 해친다면 다시 쫓아내기 바빴다하지만 돌아온 이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모조리 헤집어진 상황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책의 1부는 자본주의적 정치경제 논리의 급속한 유입이 인도 사회에 일으킨 다양한 문제들과자본가들의 치밀한 사회지배 플랜에 대한 고발로 가득 채워져 있다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의 사업에 대한 교차소유를 통해(무기제조사가 방송국을환경과 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채굴업체가 신문사를 가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이익을 극대화하고 있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교조적으로 따르는 정부 관료들을 각종 장학금과 각종 지원금으로 길러내 정부 부처에 보내놓고는천연자원과 의료교육과 같은 분야까지 민영화하는 식으로 투자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낸다.

 

무서운 건 이 모든 과정이 대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기업들은 대규모 자금으로 기금을 조성해서자본주의적 사회에 맞는 인물과 단체들에게 지원하는 식으로 그들을 길들인다한 때 사회에 도전했던 단체들도 점차 이런 돈맛에 순응하며 점차 의제를 안전한 것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이는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가리지 않는데이제는 이런 직함 하나쯤 달지 않고서는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렸으니 기업들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사회지배 수단을 찾은 셈이다.

 


책의 2부는 오늘날 인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 보여주고 있는 부도덕성과 폭력성을 고발하는 내용이다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도 사회에서는 다양한 피해자들의 항의가 격렬하게 벌어진다.


인도에서는 매년 1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는데상당수는 극심한 경제적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어 벌어지는 일들이다또 한 편의 저항은 적극적인 시민활동집회와 시위때로는 무장투쟁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현재 집권당을 이끌고 있는 모디 총리는 이를 무차별강경진압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근대화 이후 나타난 새로운 힌두주의인 힌두뜨와 이데올로기의 부상으로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악랄하게 전개되었을 뿐 아니라고전적인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 내 하층민에 대한 차별과 공격도 심각해졌다는 점도 현대 인도의 짙은 그늘이다.

 


사실 요즘도 종종 인도발 뉴스들을 접하면서 세상에 저런 나라가 있을 수 있나’ 싶을 때가 있다버스 안에서 집단 성폭행이 일어나고그 근거도 꼴 같지 않은 신분제도를 지키겠다고 평범한 이웃을 개만도 못한 종족으로 치부하는 미개함을 어떻게 해결할까(하긴 이게 어디 그 나라의 일만일까우리에게서도 이런 미개함은 언제들 발견될 수 있으니까).

 

정권에 반대하는 인물들에 대한 불법적인 체포와 허술한 수사그리고 비논리적인 판결이 횡횡하는 인도 사회는 아직은 껍데기만 민주주의인 나라인 것 같다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우리식 민주주의라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내뱉던 군사반란 수괴들의 통치를 20년 넘게 받기도 했음에도(그리고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표 좀 얻겠다고 그런 반란 수괴를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대통령 후보가 또 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남 말 할 게 없어 보인다지금도 법을 무기로 불법을 무마하는 게 신기하지 않은 나라인데그걸 영구적으로 공고화하겠다는 공약도 나오는 판국이니.


결국 민주주의라는 건 완성되는 게 아니라 쉴 새 없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이건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깨어서 공동체를 위한 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일 텐데역사가 보여주듯 이 걸음은 늘 앞으로만 향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고발로만 가득 찬 이 책처럼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피를 흘리고빼앗겨야 다시 역사는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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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빅토리아 페프 외, 박다솜 / 열린책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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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애초에 선거라는 게 그런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긴 하다그 중 자칭 보수정당이 일부러 조장하고 있는 게 보이는 이슈 중 하나가 페미니즘 갈등이다.

 

밑도 끝도 없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툭 던져놓고 간을 보거나오래된 갈등요소를 서슴없이 내뱉는다그런데 또 재미있는 건 몇몇 선거에서 페미니스트 후보임을 내세웠던 한 페미니스트는 그런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는 사실내가 아는 페미니즘이 그게 아닌가 싶은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날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은 온갖 것을 다 담는 도라에몽 주머니 같다는 느낌이다기본적으로는 여성을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전략인지 사상의 확장인지어느 순간 남녀평등의 요구로 바뀌었고요즘은 그 외에도 다양한 소수자 차별반대운동환경과 식습관에 관련된 주제까지 뭔가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 전부 한 발씩은 걸치는 것 같다비슷한 느낌을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에서 받는데그 정당이 페미니즘 성격을 강하게 띠는 걸 보면 이게 하나의 특징인가보다 싶을 정도다.


문제는 이렇게 경계가 모호해져버리면애초의 운동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조금 희미해진다는 건데(다중 전선과 그로 인한 전력의 분산은 전략을 세울 때 가장 피해야 할 요소로 꼽히는 상황이다), 이건 자연히 효과적인 투쟁도새로운 전력의 유입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난 여성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운동에 동참하고 싶을 뿐인데갑자기 또 다른 부분에도 동의해야 한다고?)


사실 이 책 안에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듯한 문장이 몇몇 보인다.

 

이 단어(페미니즘)는 너무 포괄적이고 광의적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으며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13-14)”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의 포괄적인 의미에 짜증을 낸다,(257)”

 

그런데 메인 편집자(이 책은 여러 저자들이 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들은 이런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인 것 같다그런 논란에 맞서겠다고 선언하고 있으니까싸움에서 자신감은 중요한 요소지만그와 겉으로는 비슷한 자만은 실패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잊은 걸까.

 


책에는 다양한 저자들이 등장하기에글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다일부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의 어린 저자들인데대부분 공통적으로 학습된 페미니즘 교리를 반복하는 수준에 그친다그들이 자신들이 겪는 부당한 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적극 찬동하지만그게 한결 같이 수천 년 인류 역사를 운운하거나 최소한 수백 년의 억압을 언급하는 식으로 끌어내는 식일 필요가 있을까?


그들의 특별한 공감능력이 수천 년의 억압을 자신의 한 몸에 담을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사실 어떤 인간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는 없다두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받는 고통이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그들이 언급하는 사회적 억압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거나그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는 것들이 태반이다.(이 어린 페미니스트들이 호소하는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그들이 끌고 오려는 역사적 억압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들의 놀라운 공감능력은 종종 그 범위가 성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한 저자는 자신의 고조할머니’ 이야기(이들은 가볍게 100년을 뛰어넘는다)를 인용하는데아들이 1차 세계대전에서 세상을 떠난 뒤 그녀는 정신을 놓았고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저자는 이에 대해 분노하면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조용히 애도하길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감금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 조치가 그 시대의 과학적 의견을 따른 것이라는 점은 언급되지 않았고(페미니스트들은 오늘날의 새로운 과학적 의견에 따라 그들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입원이 어머니의 애도를 막는’ 억압적 조치였고, ‘남자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감정적 언사(증세에 따라 다르겠지만남성도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로 결론짓는다결정적으로그 전쟁에서 희생된 건 아들(남성)’이었다는 점은 언급되지 않고 있고.

 


또 다른 글들은 오늘날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들의 상황과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을 포함한각종 폭력은 끔찍하고그들의 불안감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다른 무슨 능력과 자격이 아니라 오로지 성별 때문에 받는 차별적 대우는 분명 부당한 일이다.

 

책 속 어떤 저자의 글처럼이런 상황은 경제적 잠재력의 낭비라는 이유가 아니라그저 그 자체가 부당하기 때문에 바꿔야 하는 문제다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성별이 차별과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은나머지 절반에게도 결코 우호적인 상황이 아닐 게 분명하다차별과 혐오라는 건 애초에 그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기에언제라든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그 문제는 남성 대다수를 강간범이나 이나 여성혐오자로 비하하거나 교화해야 할 대상쯤으로 여기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기본적으로 정치란 내 편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싸움이다소위 중도층 확장이라는 건데전형적인 페미니즘의 모습은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내 편을 자꾸 깎아먹는 방식으로만 이뤄지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내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책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자신들이 학습한 이론을 반복하거나 모든 상황을 여성피해 서사로 재구성하는 식의 내용 보다는(이론화 작업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이 훨씬 와 닿는다그들의 경험은 무슨 특별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게 더 잘 이해되니까문제는 작지 않고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데그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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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2-20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반에 페미니즘을 알아가기 시작할땐 왜 동성애를 묶어가는지부터 이해하지 못했어요. 환경문제에 끼어있는것도요. 하지만 막상 공부해보니 시대를 거치면서 페미니즘이 점점 확장되어가더라구요. 단순히 남녀차별, 예를들면 여성들이 공부할수 없는것, 선거권이 없는 것에서 시작했다가 사회문제들과 맞물리면서 근본적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구조, 뿌리에 집중하죠. 그러다 백인여성중심적인 페미니즘운동에서 벗어나야한다 자각하고요. 흑인여성과 제3세계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영향이죠. 그러면서 젠더자체에 대한 고민과 각성, 자본주의가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을 깨닫게되고 그에따라 자연스럽게 환경문제, 여러 분쟁국가들의 여성착취,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착취로 당연히 시야가 넓어졌죠. 저도 아직 공부중인 과정에 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해서 적어봤습니다. 관심있으시다면 <페미니즘 철학입문>이란 책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말씀드린 과정들이 이해하기쉽게 잘 정리되어있어요^^*

노란가방 2022-02-20 18:1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많은 문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 다만 투쟁의 전략 차원에서 목표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삼자적 입장의 소감이었습니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빌 게이츠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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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윈도우라는 운영체계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의 컴퓨터 접근성을 높여주었던 빌 게이츠는은퇴한 후 공익재단을 만들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스케일도 커서 단순히 지역단위가 아니라 지구단위의 활동을 엄청난 돈을 들여가면서 하고 있으니이쯤 되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걸 아는 인사라고 해야 할 수밖에.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지역의 빈곤해방을 위한 프로그램에 한 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정리해 나가고 있다관련 내용을 정리해 나가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만한 책.

 


기후위기의 핵심에는 탄소가 있다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원소인 탄소는그 특성 때문에 다른 원소들과 쉽게 결합해서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어 낸다일부 과학자들은 우주에 이 탄소가 없었다면 아무 것도 없었을 거라고 말할 정도니까문제는 그렇게 다양한 물질에 들어있는 탄소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라는 이야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인데이제 그 문제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되어버렸다이미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되어 온실효과를 증폭시킴으로써 지구를 덥게 만들고 있는데또 우리는 매년 새롭게 약 510억 톤의 온실가스(책에서는 다양한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 환산톤이라는 방식으로 계산한다)를 배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 510억 톤을 제로(0)로 만드는 것만이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말한다단순히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제사회가 회의를 열어 내미는 자체 해법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이미 배출된 건 어쩔 수 없으니새로 배출하는 양을 0로 만들어야만 더 급속한 파멸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말.(다만 이 제로라는 말은 아무 것도 만들어내면 안 되는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책은 지금 배출되고 있는 온실가스의 양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다섯 항목이 무엇인지그리고 그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들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각각 전기생산(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제조사육과 재배교통과 운송냉난방이 그것.


저자는 계산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그린 프리미엄이리는 개념을 도입하는데그건 지금 이용하고 있는 방식에 비해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면서 같은 효과를 내는 데 얼마의 비용이 더 들어가는지를 환산한 방식이다그린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므로이 분야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 집중해야 하지만반대로 그린 프리미엄이 낮거나 마이너스가 되는 영역은 비용 이외에 규제나 정책 등 다른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문제 해결을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방식이다.


다양한 분야를 살피면서 드는 생각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장기적으로 현재보다 세 배 이상의 전기가 필요한 상황에서우리는 화석연료 이외의 방식으로 그 양을 충당할 수 있을까저자가 대안으로 제안하는 초소형 모듈형 원자력발전은 과연 안전하고 깨끗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에 대한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영역들은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고.


 

과연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을까빌 게이츠는 과학 기술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보이면서 어떻게든 풀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 전망을 이어가는 듯하지만그리고 그런 전망이 맞았으면 좋겠지만인간의 이기심이 발전의 속도보다 더 빨리 앞서나간다면 어떻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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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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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붙은 유토피아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그런데 여기에 리얼리스트라는 단어가 붙으니 의미상 모순되는 한 쌍이 탄생해 버렸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이라는 제목은 그렇게 뭔가를 풍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그렇다면 그 풍자의 대상은 누구일까리얼리스트일까아니면 유토피아일까?


만약 전자라면 이 책은 유토피아(존재하지 않는 곳)를 만들려고 실제로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의 헛됨을 지적하는 것일 테고후자라면 그들의 노력을 비웃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그건 불가능 할 거야’)을 깨뜨리려는 의미일 것이다. “너희들은 이게 안 될라고 생각하지만아니야 할 수 있어” 같은.

다행이 책은 두 번째 의미였다전자였다면 그저 시니컬한 비판서 수준으로 전락했겠지만이 책은 오히려 상상력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읽는 맛은 이 쪽이 훨씬 더 크다.

 


책은 빈곤층에 대한 현금 지급이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한다오늘날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금의 직접 지급이라는 정책이 꽤나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다반대파가 입만 열면 되뇌는 우려그렇게 했다간 아무도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실제 나타난 결과만 보면 근거 없는 비난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받은 현금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를 한다물론 일부는 직장을 찾는 일을 그만둘지도 모르지만(하지만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전반적인 추세는 달랐다그들의 수익은 몇 배로 뛰어 올랐고오랫동안 천문학적인 원조금액을 쏟아 부어 시도했던 프로그램으로도 해결하지 못한(여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빈곤의 늪을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빈곤선 근처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도 현금 지급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삶의 질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취미나 관심사에 돈과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생기고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낸다.(대체로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자연스럽게 기본 소득이라는 아이디어로 나아간다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런 정책적 논의가 조금씩 오고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논의는 부족해 보인다구체적인 실험이나 사례 분석 없이자기가 속한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비난만 퍼붓는 한심한 수구정당 정치인들 때문이다흥미로운 건 자칭 진보정당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본소득을 부정하려 한다는 점인데이쪽은 편 가르기를 바탕으로 한 정체성 정치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역시 재원마련이 아닐까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국가 재정으로 효과적인 기본소득을 국민들에게 배분하는 건 무리로 보인다(대충 계산해도 5천 만 국민들에게 한 달에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려면 한 해 국가예산 전체를 털어 넣어도 모자라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깊고 다양한 고민을 통해 풀어나갈 방법을 찾는 식이어야지, “모르겠으니까 하던 대로라고 해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또 다른 송파 세 모녀는 굶어죽을 것이고길을 찾지 못한 자살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가기만 할 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책에는 주당 노동시간의 감축부의 재분배국경 통제의 완화 등 다양한 진보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그것들이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그런 아이디어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다양한 자료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다진보적 대안 언론사를 만들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이런 제도들이 도입된다고 해서 어떤 사회가 당장 유토피아로 변하진 않을 것이다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실패나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이에 대한 반대파의 정치적 비난과 공격도 엄청날 것이다그렇게 시끄러워지면또 누군가는 나서서 케케묵은 옛 방식을 새로운 해결책인 양 내세울 수도 있고.


당장 자신의 눈앞에 직접적인 이익이 없으면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대중이라는 벽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개혁이 어려운 건 그게 당장 눈앞에 이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인데그 개혁의 수혜자들 또한 그런 이유로 미온적인 지지만 보내는 게 보통이다하지만 바꾸고자 하는 게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면그들은 단지 수혜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해야 할 동반자이기도 하니까어떻게 그들을 설득할지도 유토피아 계획의 일부여야 할 것이다.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던 철지난 계몽주의의 자취를 뒤따르자는 건 아니다계속 진보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인간들이 모든 문제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 진보주의도 내 취향은 아니다(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동료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 대안은 단순히 당위만이 아니라 현실에 근거한 대안이어야 한다이리저리 방법을 모색해보는 이 책의 시도가 사뭇 와 닿는 이유 중 하나이다젊은 저자다운 과감한 제안이 인상적이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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