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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
빅토리아 페프 외, 박다솜 / 열린책들 / 2018년 1월
평점 :
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애초에 선거라는 게 그런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긴 하다. 그 중 자칭 보수정당이 일부러 조장하고 있는 게 보이는 이슈 중 하나가 페미니즘 갈등이다.
밑도 끝도 없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툭 던져놓고 간을 보거나, 오래된 갈등요소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건 몇몇 선거에서 페미니스트 후보임을 내세웠던 한 ‘페미니스트’는 그런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는 사실. 아, 내가 아는 페미니즘이 그게 아닌가 싶은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날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은 온갖 것을 다 담는 도라에몽 주머니 같다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는 여성을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전략인지 사상의 확장인지) 어느 순간 남녀평등의 요구로 바뀌었고, 요즘은 그 외에도 다양한 소수자 차별반대운동, 환경과 식습관에 관련된 주제까지 뭔가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 전부 한 발씩은 걸치는 것 같다. 비슷한 느낌을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에서 받는데, 그 정당이 페미니즘 성격을 강하게 띠는 걸 보면 이게 하나의 특징인가보다 싶을 정도다.
문제는 이렇게 경계가 모호해져버리면, 애초의 운동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도 조금 희미해진다는 건데(다중 전선과 그로 인한 전력의 분산은 전략을 세울 때 가장 피해야 할 요소로 꼽히는 상황이다), 이건 자연히 효과적인 투쟁도, 새로운 전력의 유입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난 여성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운동에 동참하고 싶을 뿐인데, 갑자기 또 다른 부분에도 동의해야 한다고?)
사실 이 책 안에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듯한 문장이 몇몇 보인다.
“이 단어(페미니즘)는 너무 포괄적이고 광의적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으며,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13-14)”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의 포괄적인 의미에 짜증을 낸다,(257)”
그런데 메인 편집자(이 책은 여러 저자들이 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다)들은 이런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인 것 같다. 그런 “논란에 맞서겠다”고 선언하고 있으니까. 싸움에서 자신감은 중요한 요소지만, 그와 겉으로는 비슷한 자만은 실패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잊은 걸까.
책에는 다양한 저자들이 등장하기에, 글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일부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의 어린 저자들인데, 대부분 공통적으로 학습된 페미니즘 교리를 반복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들이 자신들이 겪는 부당한 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적극 찬동하지만, 그게 한결 같이 수천 년 인류 역사를 운운하거나 최소한 수백 년의 억압을 언급하는 식으로 끌어내는 식일 필요가 있을까?
그들의 특별한 공감능력이 수천 년의 억압을 자신의 한 몸에 담을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사실 어떤 인간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는 없다. 두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고 해서 내가 받는 고통이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언급하는 사회적 억압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거나, 그들이 직접 경험하지 않는 것들이 태반이다.(이 어린 페미니스트들이 호소하는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끌고 오려는 “역사적 억압”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 이들의 놀라운 공감능력은 종종 그 범위가 성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한 저자는 자신의 ‘고조할머니’ 이야기(이들은 가볍게 100년을 뛰어넘는다)를 인용하는데, 아들이 1차 세계대전에서 세상을 떠난 뒤 그녀는 정신을 놓았고, 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저자는 이에 대해 분노하면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조용히 애도하길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감금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 조치가 그 시대의 ‘과학적 의견’을 따른 것이라는 점은 언급되지 않았고(페미니스트들은 오늘날의 새로운 ‘과학적 의견’에 따라 그들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입원이 ‘어머니의 애도를 막는’ 억압적 조치였고, ‘남자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감정적 언사(증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성도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로 결론짓는다. 결정적으로, 그 전쟁에서 희생된 건 ‘아들(남성)’이었다는 점은 언급되지 않고 있고.
또 다른 글들은 오늘날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들의 상황과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은 끔찍하고, 그들의 불안감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다른 무슨 능력과 자격이 아니라 오로지 성별 때문에 받는 차별적 대우는 분명 부당한 일이다.
책 속 어떤 저자의 글처럼, 이런 상황은 경제적 잠재력의 낭비라는 이유가 아니라, 그저 그 자체가 부당하기 때문에 바꿔야 하는 문제다.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성별이 차별과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은, 나머지 절반에게도 결코 우호적인 상황이 아닐 게 분명하다. 차별과 혐오라는 건 애초에 그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기에, 언제라든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는 법이다.
물론 그 문제는 남성 대다수를 강간범이나 이나 여성혐오자로 비하하거나 교화해야 할 대상쯤으로 여기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정치란 내 편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싸움이다. 소위 중도층 확장이라는 건데, 전형적인 페미니즘의 모습은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내 편을 자꾸 깎아먹는 방식으로만 이뤄지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내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책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자신들이 학습한 이론을 반복하거나 모든 상황을 여성피해 서사로 재구성하는 식의 내용 보다는(이론화 작업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이 훨씬 와 닿는다. 그들의 경험은 무슨 특별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게 더 잘 이해되니까. 문제는 작지 않고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