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를 위한 변론 -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와 윤리적 육식에 관하여
니콜렛 한 니먼 지음, 이재경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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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제목이지만 표지가 꽤나 강렬하다길게 자란 녹색의 풀과 하얗고 빨갛고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가운데검은 색 소가 살짝 빨간 혀를 내민 채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이 모든 모양이 지극히 파스텔화 톤으로 그려져 있어서 무슨 동화 같기도 한데또 소 그림이 너무 리얼해서 동화 느낌은 또 안 들고... 제목을 보고 대략 무슨 내용인지 짐작은 갔지만이런 표지 센스를 보여줄 줄이야.


우선 저자의 이력이 흥미롭다수십 년 동안 고기가 위험하고 해롭다는 주장을 믿어온 채식주의자였지만육식에 대한 지나친 비토 정서에 담긴 비합리적 주장들을 깨닫고 난 뒤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는 것오랫동안 환경보호단체 소속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공장식 사육을 없애기 위한 운동을 주도해 왔고현재는 목장을 운영하는 남편과 함께 목장에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그야말로 이 주제에 관해 오랫동안 깊숙이 발을 딛고 있었던그래서 뭔가 말을 하기에 적임자라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은 책을 본 적이 있다. “신성한 소라는 책이었고두 권의 책을 모두 읽어본 후의 감상도 역시나 비슷했다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있는데그 분량으로나(1부가 전체의 2/3내용으로나 1부가 가장 중요하다.


소와 지구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1부는 소고기를 먹는 것이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원흉이라는 비난이 어째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이다. “소고기와 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은 2부는 주로 건강문제와 관련해서 소고기를 공격하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 “현실 그리고 미래라는 이름의 3부는 고기를 먹는 일 자체에 대한 윤리적철학적 검토가 살짝 이루어진다.


역시나 가장 중요한 주장은오늘날 육식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과도한 비판이 사실에 기초한 일인지를 체크하는 부분이다우리는 흔히 소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사료가 들어가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는지또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가서 사람들이 먹을 물이 줄어드는지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겨서 환경을 오염시키는지소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밀림이 사라지는지 같은 선정적인 이야기들을 듣곤 한다이 책의 저자는 그런 주장들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현재 지구상에서 사육되는 소는 (다양한 이유로대개 사료가 아니라 풀을 먹고 자라고 있고소를 키우는데 들어간다는 엄청난 양의 물은실은 소가 먹지 않으면 땅속에 스며들어 사라질 빗물까지 포함된 수치이며(그 빗물을 맞으며 자란 풀을 소가 먹는다면 그 물까지 소고기에 사용된다는 식의 괴상한 논리), 목장을 조성하기 위해 밀림을 파괴하는 행위는 일종의 중간단계이고실은 최종적으로는 그 땅을 경작지로 만들려는 목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그렇게 만들어진 경작지에서 생산된 채식은 환경적인가?)


붉은 고기가 건강에 나쁘다는 상식도 불충분한 연구의 결과였다사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통제변수를 완벽하게 제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류의 가능성이 늘상 존재할 수밖에 없고생활습관에 관한 설문 방식은 기억의 오류나 편향 등으로 잘못 진술되기도 쉽다여기에 연구자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편향된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그 결과가 잘못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저자에 따르면 최근의 연구에서 심혈관질환에 붉은 고기가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문제는 식품첨가물 쪽에 있을 가능성이 좀 더 높다.





채식이 쿨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걸 선택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물론 개인이 어떤 걸 먹을지는 그 사람의 자유다(나도 하루에 거의 한 끼는 샐러드나 그 비슷한 걸로 때우곤 한다). 그 이유가 좀 미심쩍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을 비난할 필요는 없고문제는 자신의 선택이 옳으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할 때이다(물론 이게 단지 음식에 대한 취향보다 좀 더 중요한 주제일 경우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만).


사실 저자가 비판하는 것도 육식에 대한 윤리적 공격을 가하는 사람들이다문제는 소가 아니다그 소를 가둬둔 채로 고문하듯 기르는 공장식 축산 방식이다소는 제대로 방목해서 기르기만 한다면오히려 환경에도그걸 먹는 인간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저자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개인적으로는 이 주장이 동물(의 정치적)()이나 종차별주의 같은 미심쩍은 주장보다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일 뿐 아니라동물들에게도 실질적인 유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책의 짜임새 면이앞서 언급했던 신성한 소에 비해 좀 덜 탄탄해 보인다물론 이 책에도 다양한 과학적 근거들이 등장하지만그런 정보는 표나 그래프 등으로 정리해 주는 게 훨씬 가독성을 높인다애초에 과학적 근거를 차근차근 제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에세이를 쓰려는 것인지 정체성이 살짝 모호한 감도 보인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쓸 때는 성격을 명확히 하고 들어가는 게 좋다.


사실 선뜻 추천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지만관련 주제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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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구를 구할까? - 천체물리학자가 들려주는 생태위기 이야기 십대들의 아고라 3
오렐리앙 바로 지음, 조정훈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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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환경문제 안내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1장에서는 현재의 위험한 상황을 열거하고, 2장에서는 지금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에 관해 언급한다채식을 하고여행을 줄이고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행동들을 줄이자는 것. 3장과 4장은 주재가 살짝 모호한데, 3장의 경우는 환경과 관련된 좀 더 일반적인 문제제기를, 4장은 환경운동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각 항목이 짧게 구성되어 있어서 끊어 읽기에 좋다또 책의 가상독자를 청소년으로 상정하고 썼기 때문에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 등으로 어렵게 구성되어 있지도 않아서 쉽게 읽힌다각 장마다 토론 주제까지 던져주니 소그룹에서 이야기를 해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하고.


사실 이 이유와 관련해서 아주 새로운 논의나 정보가 담겨 있는 건 아니다어느 정도 관련 서적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라는 뜻그래도 관련 논의를 두루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책 전반에 걸쳐 환경과 관련한 저자의 위기의식이 강하게 느껴진다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곧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까단순히 여러 문제들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일침은 곱씹을 만하다.


기후문제를 부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하지만 그렇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 현실을 어떻게 극복혹은 해결해 나갈지를 두고서는 의견이 좀 갈리는 것 같다이 책의 저자의 경우 채식을 하고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을 중단혹은 축소하는 것이 답이라고 제안하고 있지만그게 유일한 대답은 아니라는 말.


우선은 채식이 정말로 환경친화적인지의 여부도 의심스럽지만과연 그것이 가능한지도 반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말을 어떻게 돌려대든 이제까지 환경을 오염시키며 발전해온 국가들이 이제 발전하려고 애쓰는 국가와 사람들을 제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쉬우니까빌 게이츠가 말하는 식으로 기술을 통한 극복이 유일한 대답이라는 말은 아니지만개인의 노력이 갖는 규모의 제한성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물론 저자도 언급하듯이결론이 나온 뒤에 행동하는 것은 이미 늦어버릴 지도 모른다우선 뭔가를 하면서 이어지는 발견과 발전된 또 다른 일들을 추가로 해야 하는 상황에 좀 더 가까울 테니까.


주변의 청소년들과 환경과 관련된 논의를 함께 나누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듯한 책다만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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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 -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김학준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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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실에 채용된 여당의 청년대변인의 일베 전력이 밝혀져 꽤나 애를 먹고 있는 것 같다나름 고민해서 낸 해명이라는 게, “가족들 사이에 아이디를 돌려쓰고 있다”, “동생이 몇 개 이상한 글을 쓴 것 같다(나는 아니다)”였는데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옹색하고 졸렬하다.


누가 들어도 어이없는 이런 변명이라도 둘러대야 할 정도로우리 사회에서 일베 전력은 부끄럽거나감춰야 하는 행적이다그 사이트의 게시물에 등장하는 배설하는 온갖 패륜혐오임의로 편집해 만든 거짓과 조롱은 사이트 이용자들의 인격과 사회성을 의심하게 만든 지 오래되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일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확실히 제목이 중요한 게이런 제목이 붙어 있으면 한 번쯤 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게다가 뒤늦게야 확인한 표지도 압권이다흑백으로 그려진 평범한 거리 풍경 속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렸는데그 중 일부의 머리 부분이 파란색의 바이러스나 뭔가 폭발하거나 흘러내리는 기괴한 모양을 띄고 있다차도 쪽으로 흘러나온 파란색 유동성 물질은 차가 지나가면서 인도 쪽으로 튀기도 하고다시 보니 꽤나 공을 들였다

.


책 제목과 함께 이 표지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일베는 보통 사람들’ 중 섞여 있으며그들이 튀긴 일베스러움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염을 일으킨다는 것.





기본적으로 저자의 논문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답게사회학 연구의 기본과정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석사논문도 이 정도는 써야 통과가 되는 법이다우선은 일베가 나오기까지의 한국사회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사를 훑는다.


기본적으로 유머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배경으로 한 몇 개의 사이트들이 발전분화의 과정을 거쳐 일베에 이르게 되었다이 과정에서 일베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를사회적으로는 팩트중심주의와 참여주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요소고.


이어서 메타 데이터 분석 방식을 사용해일베에 올려진(그리고 연구 당시까지 남아있던모든 게시물들을 분류해그 사이트가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키워드를 뽑아내고이를 통해 일베 이용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를 추적하는 과정과직접 일베 이용자들을 만나서 진행한 인터뷰와 그 분석이 더해진다.






이런 예비적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일베의 성격을 규정하려고 시도한다그들은 우리가 흔히 일베 하면 떠올리는 과격한 극우집단이라기 보다는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자신들이 바라는 (이전 시대에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던안정적 가정을 얻을 수 없게 된 상황에 좌절해 자조감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이라는 것.


요컨대 일베혹은 일베 현상이란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안정해진 오늘날의 사회 상황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말로 들인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배설하는 온갖 텍스트의 쓰레기들까지 온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겠지만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은 채 그저 욕만 한다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테니까.


다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이 일베화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이런 분석이 가지는 한계도 분명 존재하지 않나 싶다. 20대 남성이 주류라고는 하지만 이미 10대 청소년들의 보수화또는 일베화도 상당부분 진행되었다는 조사도 있는데이들 또한 비슷한 프레임으로 분석이 가능한 것일까, 10년 전 20대였던 지금의 30대와 그 이상들은 일베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는 이준석이라는 일베의 현신을 마주하고 있다말과 글이 육신을 입는 일종의 성육신의 일베 버전이다헌정 사상 처음이니 뭐니 하는 과장된 수식어를 동원해 가며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지만그런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느꼈다.


물론 극단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이나 집단은 언제든 쉽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이긴 했지만이준석이 비판하며 싸우는 대상 중 하나인 기존의 보수세력은 그래도 최소한 눈치는 보고염치는 지키려는 시늉은 하지 않았던가수해 현장에 와서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망언을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던가같은 상황이라면 이준석은 어떻게 했을까?


그랬던 그가 당에서 축출되는 상황에 몰리면서눈물을 짜며 억울하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개인적으로는 그가 이전에 약자들을 향해 내뱉었던 말들이 자기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나 보다이런 쿨하지 못한 모습을 또 일베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하고.



일베에 관한 괜찮은 사회학 연구서주제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페이지가 적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금세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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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동지 - 인도 마오쩌뚱주의 운동과 아동병사 교차하는 아시아 5
조지 커너스 지음, 권루시안 옮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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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 2위의 인구대국인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오주의 무장투쟁에 관한 내요을 담고 있다마오주의란 중국공산당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모택동)의 혁명사상을 가리키는 것으로농민들을 혁명의 주체로 삼는다는 특징이 있다.


흔히 공산주의 하면 마르크스만 떠올리지만은근 이 마오주의에 기초한 공산주의를 채택한 나라가 많다특히 농업 중심의 저개발 국가의 경우 농민을 혁명주체로 꼽는 마오주의가 좀 더 잘 맞았기 때문.


책은 그 중에서도 어린이 동지라고 불리는 아동병사에 집중한다책의 부제인 인도 마오쩌뚱주의 운동과 아동병사는 이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모든 지역과 종류의 아동병사가 아니라 인토의 마오주의 반군 속 아동병사만이 이 책의 연구 대상이다저자는 실제 연구를 통해 이들에 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요새도 가끔 해외 뉴스를 보다보면반군세력 가운데 여전히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채 총을 들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그럴 때면 일반적으로 그런 아이들이 납치되어 그런 일을 하고 있다거나아니면 애초에 폭력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식으로 해석할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직접 인도의 반군들 사이에 들어가 실제 아동병사를 인터뷰하며 연구한 결과 실제는 달랐다는 것무엇보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이 운동에 참여했고언제든 원한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심지어 어떤 반군지도자는 열사병에 걸릴 수 있다는 이유로 나이 어린 어린이 동지를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적어도 인도의 이 지역에서만큼은 납치나 강제노동성착취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저자가 이 책에서 아동병사라는 용어보다 어린이 동지(comrades)’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런 아동들의 주체적 행동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저자는 이 아동들이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추적한다인도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의 형태인 카스트제도의 최하단부에 위치한 달리트’ 문제가 있었다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온갖 경제적정치적 착취와 억압을 받고 있던 이들이심지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면서 이런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그들의 투쟁은 어쩌면 살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다.


물론 이 투쟁에 합류를 결정한 아동들(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이 다들 이런 정치적 현실을 인식하거나투쟁의 이념에 정통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일부는 폭력적인 부모를 피해서혹은 원치 않는 결혼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또 구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실제로 이 반정부운동 공동체 안에서는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이뤄지고 있다합류했다저자는 이 또한 자기표현과 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한 발걸음이라고 해석한다.


요컨대 저자는 인도의 이 아동 병사들은 결코 강제로 동원되지 않았으며나름의 주체적 판단에 의해 마오주의 운동에 참여했고그 안에서도 합리적인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한다그리고 여기에서 그들을 피해자나 영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교정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사실 책에서 좀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여전히 남아있는 카스트 제도와 이 불치병을 해결할 의지조차 없는 인도 사회의 정치 엘리트들의 한심함이다물론 그게 인도의 정치 엘리트집단만의 문제는 아니지만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결국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셈인데여기에 그 아이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는지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온갖 악습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그곳뿐이라면 그건 사실상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책은 마오주의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사실 본토인 중국에서조차 폐기된 사상일 정도로 그 한계가 분명한 생각이기 때문그래도 농민 중심의 혁명 사상이라는 특징 때문에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개인적으론 그 사상은 뭔가를 무너뜨리는 데는 효과가 있으나 세우는 데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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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회주의자였을까
로렌스 W. 리드 지음, 조평세 옮김 / 개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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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기독교 관련 책과 그 이외의 책을 한 권씩 교대로 읽어나가는 루틴상이 책은 기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 손에 들었던 참이었다우선 제목에 예수라는 주어가 들어가 있었으니까하지만 막상 일기 시작하면서 곧 그런 예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책은 기본적으로 경제학혹은 정치학을 다루고 있었고특정한 경제사조즉 사회주의는 반성경적이며 자본주의야 말로 그리스도인에게 맞다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반복한다.


사실 책의 첫 머리는예수님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며그렇다고 리버럴이나 보수주의자도특정 정당의 당원이나 특정한 교파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옳게 단언하며 시작한다그렇다예수님의 가르침을 특정한 철학 사조에 구겨 넣으려는 시도는 거의 확실하게 실패할 것이다문제는 많은 수의 편협한 신학이 그렇듯자신의 마음에 드는 성격에 특정한 구절들만 가져다가 뭔가를 구성하려는 태도가 좀 더 일반적이라는 점일 테고.


한편으로 이 책은앞서 나온 잘못된 또 다른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튀어나온 것 같기도 하다책의 여러 페이지에 인용되어있는예수님을 과격한 사회주의자로 묘사하는 의견들이 앞서 있었고저자는 그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이 책을 쓰고 있다앞서의 주장이 과격하다면그 반작용도 조금은 과격해 지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서저자의 주장은 사회주의 자체를 부정하고나아가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문맥에서예수님이야말로 자본주의자였을 것이라는 뉘앙스로까지 나아가버린다.



저자가 보는 사회주의자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늘 불평만 떠들어대는 한심한 인간들’(108) 좀처럼 누군가를 도울 생각이 없는 냉혈한이며어쩌다 누군가를 도우려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또 다른 사람을 해치는 무능한 이들’(145)이다거의 혐오에 가까운 인식인데개인적으로는 일단 책에서 이런 문장들을 보면 저자의 나머지 글들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객관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사회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도 공감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사회주의의 실패 사례들을 제시하면 앵무새처럼 그건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다며 회피하는 모습은 얄밉긴 하다책에 인용된 것 같은 나이브한 성경 이해를 가지고 예수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좀 더 근본적으로 국가라는 의심스러운 조직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꽤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마찬가지의 논리가 저자의 주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책에는 자본주의의 실패에 관한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예를 들면 금융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각종 편법행위들사실상 도박을 조장하는 각종 금융의 문법들시장의 실패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문제를 개인의 호의에 맡기는 방임을 했을 때 황폐화되는 공유지들자본주의가 주류가 된 이후 집중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환경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가지고 온 성경에 대한 해석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상당부분 현대적인 견해에 근거해 각 구절들을 해석하고 있으며당시의 문화와 배경을 반영해 바른 문맥에서 보면 조금은 다른 결과도 나올 수 있다무엇보다 예수님은 부의 강제적 재분배는 강도질이며그런 정책은 부도덕하다’(164)는 식으로 말씀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그분에게 사회주의자가 찾아왔다면주님은 그를 내쫓으셨을까?



저자가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회주의는 스탈린의 (그리고 아마도’ 마오쩌둥의사회주의인 것 같다수백 만 명을 죽음으로 내 몰았던 무능한 계획경제말이다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이들을 교조주의적으로 좇고 있지만솔직히 누가 요새 그런 낡은 주장을 따라가겠는가.


사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사회주의의 의의는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영감을 주는 차원에 있지 않나 싶다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만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주의자가 아니라면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는 방식이다물론 그걸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전반적으로 많이 아쉬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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