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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9월
평점 :
PC란 ‘정치적 올바름’으로 번역되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줄임말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언어나 제도, 행동에 저항해 바로잡으려는 운동, 철학을 가리킨다. 그 정의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한 개념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 여기저기서 이 PC에 대해 불편한 내색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아가 이 때문에 일종의 충돌도 발생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탐색하면서, PC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세 가지 주제인 자유, 위선, 계급이라는 요소를 따라서 분석해 나간다. 첫 번째는 PC가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고, 두 번째는 PC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별다른 행동 없이 그저 SNS 같은데서 말로만 뻐기고 있다는 비판이고, 세 번째는 앞서와 같은 이유로 PC가 진정한 문제인 계급적 차별을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자신이 PC에 대해 옹호적인 입장임을 밝히면서도, 이런 지적들에 곱씹어 볼 지점이 있다고 인정한다. 사실 책에 소개되고 있는 과도한 PC강요의 여러 모습들은 ‘정말 이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란 말이야’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예를 들면 책에는 이런 예들이 등장한다.
2014년 미국의 어느 대학교수가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어린 딸의 사진을 올렸는데, 사진 속 딸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용 그림과 함께 “불을 토하고 피를 흘려서라도 내 것을 차지하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건 유명한 드라마 시리즈인 “왕좌의 게임” 속 대사를 따론 것이었는데, 교수가 일하고 있는 대학 측에서 그 문구 속 불이 AK-47 소총을 가리킬 수 있다고 우기면서 문제를 삼아 교수를 무급휴직에 처했다.
코네티컷대학은 ‘부적절한 웃음’을 학칙으로 금지시켰고, 흑인학생을 조롱하는 얼굴 표정을 찾아내기 위해 교내 감시위원회를 조직했다(섬찟하다). 미네소타대학은 성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의 치어리더 활동을 금지시켰다. 치어리더 여학생들이 자신들은 괜찮다고 반발했지만, 대학측은 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새 희생자가 되고 있기에 그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미시건대학은 경험상 피해자는 거짓 진술을 하지 않는 법이라고 주장했고, 스탠퍼드대학에서는 백인 학생들이 흑인 학생에게 욕을 하는 건 안 되지만, 그 반대는 가능하다는 스피치 코드를 학칙으로 제정했다. 피해자의 특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PC운동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로 거만한 태도를 꼽는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겸손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다. 옹호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라면 그들이 말하는 태도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한 토론에서 영국의 작가인 스티븐 프라이는 좌파이자 동성애자이므로 PC를 지지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오히려 반대하는 쪽에 섰는데, 그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궁극적으로 PC에 반대하는 이유는 제가 일생동안 혐오하고 반대해왔던 것들이 PC에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 조의 개입, 경건한 체하는 태도, 독선, 이단 사냥, 비난, 수치심 주기, 증거 없이 하는 확언, 공격, 마녀사냥식 심문, 검열 등이 PC에 결함되어 있어요.”
한 마디로 말해 싸가지가 없다는 지적인데, PC 옹호자들도 귀담아 들어야 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PC주의가 과도하게 강요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억압적 사회 분위기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일명 ‘유치원 국가’로 전락할지 모르는 위험과 함께 상대의 의도는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채 결과만 가지고서 문제를 삼는 것의 문제점도 책에서는 아울러 지적된다. 또, 무조건 약자가 옳다는 식의 언더도그마라는 개념도 언급된다. 모두 읽어 보며 생각해 볼 부분이다.
사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답은 없다. 예컨대 누군가의 잘못된 말과 생각을 지적하고 고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태도의 문제라는 것도 다분히 상황과 관계 속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특정한 방식의 코드를 제안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의 제안은 소박하다. PC운동을 할 때는 좀 겸손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찬성 쪽과 반대 쪽 모두 역시사지의 자세를 갖췄으면 좋겠다는 것.
분명 특정한 이들을 조롱하는 식의 언행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이나 제도 같은 강제력을 동원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무개념은 개념으로 바로잡아야 하고, 이 때 방식은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으로 이뤄가는 게 맞는 것 같으면서도, 또 일본처럼 헤이트 스피치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단순히 인식개선 노력으로만 해결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쉽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고민을 던져주는 책이다. 관련 내용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