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의 국가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지음, 한성례 옮김 / 북스코리아(북리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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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다 말고 내던졌다.(물론 정말로 책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빌린 책은 소중하게 보고 반납해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해진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그녀의 국가관에 관한 이야기를 편하게 듣는 식으로 편집된 책인데, 실은 이 책을 위해 새로 쓴 글도 아니고, 일본의 어느 잡지에 기고한 에세이 형식의 칼럼들을 로마인 이야기의 일부 내용과 우리나라의 어느 잡지(신동아)와 했던 인터뷰 내용,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속의 인용구들과 더해서 엮어낸 책. 이쯤 되면 사실상 창조된 수준이고,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그냥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다.

 

 

     뭐 로마인 이야기에 관해 여러 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로마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니, 또 나 역시 그 책들로 로마사에 대한 윤곽을 잡았으니 그 공은 인정해야 할 듯. 물론 종교 쪽(특히 기독교)만 넘어가면 갑자기 균형감을 잃고 욕을 퍼붓는 수준의 부족한 이해를 드러낸다는 점과, 태생이 일본인인지라 군국주의에 묘한 친화감을 드러내는 식의 불편함 등이 보이긴 했는데, 뭐 일단 당장은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었던 먼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를 다루는지라 그럭저럭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 딱 그런 국가관 부분만을 떼어서, 그것도 현대의 현실정치와 연결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그 체감이 훨씬 강해져버린다. 그래도 일본인답게, 일본의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나름 옳은 인식을 보여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엘리트들은 예측 가능한 일에는 잘 대처하지만, 돌발 사태에 임기응변을 하는 데에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진단 같은 것들(83) 말이다

 

     그러나 물론 일본중심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아베는 너무 성실해서 문제라는 어이없는 안목이라든지(21), 정국 안정을 위해 아베 정권이 연임을 계속하는 것이 옳다는 태도라든지(25), 지도자는 인격에 문제가 있어도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나이브한 입장은 전형적인 수구파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모습이다.(평화헌법개정과 군대보유 찬동은 덤이다)

 

     일견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한 현실주의적 정치관, 국가관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냥 지식 좀 쌓은 고집쟁이의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우구스투스의 예를 들며, ‘도덕과 인품보다 사람들을 속이더라도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이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처럼 운운하지만, 사람들의 과연 도덕적 파산에 이른 지도자가 유능하다는 이유로 지지할 수 있을까? , 물론 아베의 장기집권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을 보면 그게 가능한 듯 싶기도 하지만, 그건 특별히 정치적 후진성을 벗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지난 세기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했고,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그건 침략이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까지 넘어가면(131), 이 사람이 익힌 역사는 철저하게 힘의 원리만을 숭배하는 우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2천 년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을 그대로 빗대 연결 짓는 것은 시대착오적 관점에 다름 아니다.

 

 

     그냥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라. 거기도 부족한 이해가 적지 않지만, 적어도 다른 괜찮은 이야기들이랑 섞여 좀 희석되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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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24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 이후로 우경화되는
모습에 그의 책을 끊게 되었습니다.

노란가방 2019-12-24 22: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제 끊어야 할듯합니다 ㅎ
 
인류세 -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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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제목부터 설명해보자. 인류세란 인류에게 부과된 세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류로 인해 시작된 새로운 지질학적 시기()를 말한다. 학창시절 생물학에서 ------라는 이름으로 생물들을 분류하는 기준을 외웠듯이, 지질학에서도 그 규모에 따라 ----누대의 순서로 지질학적 시대를 구분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 Epoch)'는 절보다는 조금 더 큰 지질학적 변화를 가리킨다.

 

     현재 우리는 홀로세(Holocene), 혹은 현세(Recent)를 살고 있는데, 저자를 비롯한 한 무리의 학자들은 우리가 이미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책의 상당 부분은 이 인류세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제법 학식이 있는 학자들 가운데서도 이 용어의 정의에 대해 혼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그런 잘못된 인식들과의 대조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

 

     언뜻 최근 많이 언급되는 기상이변이나, 자연파괴 같은 용어들이 떠오르지만, 인류세란 단지 인간이 지구의 자연환경에 미친 큰 영향력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산업혁명 즈음의 급격한 화석연료 사용증가로 초래되었고, 지구 시스템 전반에 걸친 지대한 충격과 이로 인한 급격한 변화(책에는 균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를 가리키는 말이다.(‘인류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서구중심적이라고 바꾸려는 사람도 있고, 그냥 인간의 등장 자체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보는 관점이나 아예 인간 자체에 별다른 중요성을 두지 않는 학파들이쪽은 운동이라고 불러야겠지만도 있다. 누가 뭐 하나 주장하면 거기에서 틈을 찾아 자기 생각을 끼워 넣으려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듯)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이 새로운 시대의 도래가 어떤 인문학적, 세계관적 함의를 지니는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이 관점은 인류가 지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 나아가 중심임을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행위성을 축소하려는 신유물론자 등의 주장의 반대편에 선다. , 인류세라는 거대한 이야기 안에 국지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포함된다는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파편성을 되돌린다. 물론 이 개념은 인간이 지구를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사실 이 부분은 약간 지루하게 이어지는데다가, 앞서 나왔던 내용들도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다. 학계에 새로운 개념 하나를 도입하는 것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내용과는 좀 다른 방향이었던지라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책을 읽기 전 내 기대는, 인류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나타났는지를 묘사하면서, 그 전망을 예측하는 식의 구성이었다)

 

 

     인류의 발자국이 지구의 시스템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온다. 핵융합으로 인공태양을 만들고, 인공강우 실험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은 과연 발전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인류에게 지구 차원의 변화를 일으킬 힘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고(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것이라는 식의 베리에이션도 꽤나 인기를 끄는 듯하다), 변화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까지 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우리는 대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이렇게 (전 지구적으로) 커지면 그 대처방식도 달라져야 할 텐데, 이게 쉽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성서의 진단(8:22)이 문득 떠오른다. 온갖 이해관계가 뒤섞인 상황에서 인류는 과연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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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케일 - 앞으로 100년을 지배할 탈규모의 경제학
헤먼트 타네자 외 지음, 김태훈 옮김 / 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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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경제와 사회동향에 대한 민감도가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다. 저자는 이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해 비용을 줄이고 이익률을 높이는 과거의 패러다임은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점점 빠르게 발달하는 인공지능기술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규모에 의지해서 이전과 같은 식의 이윤을 얻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지 않는 기업에는 아예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2부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탈규모가 이루어질지를 예측하는 부분인데, 이 중 몇몇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이르기도 했다. 예컨대 발전분야에서는 대형 발전소가 아니라 각 가정 등의 소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것들을 되파는 형식의 양방향 전력이동이 가속화될 것이다. 의료분야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균적인 수준의 효과를 내는 약 대신, 개별 환자들에게 맞는 약이 활발하게 시장에 나올 것이다

 

     20년을 배워 남은 평생 써 먹는 식의 교육이 해체되고, 평생 배우고 평생 일하는 모델이 일반화되면 각자에 필요한 내용을 각자의 수준에 따라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 널리 보급될 것이다. 개인의 상황에 맞는 금융거래와 운용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일반화될 것이고, 개인을 위한 뉴스와 오락거리들이 만들어지고, 대중이 아닌 개인을 위한 제품들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미래에는 확실히 이런저런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미 대중이 중심이었던 지난 세기와는 다른 새로운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니까. 물론 이런 변화들이 모두에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던 이들만이 아니라 이전 시대에 익숙해져 새로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뒤쳐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기술적 도약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도 있다. 광범위한 정보의 공개와 가공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개인에게 맞춘 약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기 어렵고 부작용의 위험도 있다. 여기에 개인 맞춤형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늘어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소비를 초래해 환경에 위협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저자도 책 말미에 몇 가지 우려들을 제시하면서, 간단히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그게 뭐 어디 누가 규칙을 제안한다고 해서 잘 지켜지는 것일까. 어차피 탈규모화된 산업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를 것이고,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규제하기도 훨씬 더 어려워질 텐데 말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우리가 우려하고 저항한다고 해서 미뤄질 일이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으니까. 어떤 이들에게 이런 변화는 확실히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비단 이건 사업의 영역에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닌 듯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기술을 제대로 접목하지 못한다면, 힘은 힘대로 들고 결과를 결과대로 시원찮게 나오게 될 것이다

 

     ​탈규모화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 어지간한 것은 모두 빌려서 사용할 수 있고, 중요한 건 그것을 잘 구축해 낼 수 있는 기능이다. 물론 탁월한 원천기술의 가치는 여전하겠지만, 그것도 적절한 수단을 동원해 사용할 수 있을 때에야 제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관련 내용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다가올 변화에 관해 꽤나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는 책.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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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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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인 바벨탑 공화국이란 무엇일까. 이런 상황을 초래한 정신에 관해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바벨탑 멘털리티는 고성장 시대에 더 높은 곳을 향하여경쟁하면서 갖게 된 서열주의 이데올로기로,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심성이다.(p. 15)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바벨탑 멘털리티, 바벨탑 정신으로 살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 중심에는 수도권 집중과 부동산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아파트 가격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고, 이 과정에서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과 지방에 사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수탈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질은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다. 이 저주받을 바벨탑에서는 조금이라도 윗층에 거주하는 이들은 아래층에 있는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지만 누구도 현 상황을 바꾸려 하지 않는 배경에는, 주택소유자의 70%가 가격상승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 기인한다. 누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상황을 굳이 나서서 바꾸려 하겠는가. 심지어 지방민들 역시 여유가 있으면 수도권에 집과 땅을 사두는 상황이니 속으로는 이런 현실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방민들이 지방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

 

     물론 이건 단지 정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토의 특정한 지역에 집중된 삶의 패턴은 필연적으로 나머지 지역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엔 지방 소멸이 그 대표적인 결과물. 마치 사하라 사막이 점점 경계지역들을 삼키며 면적을 키우듯, 지방의 소멸은 최종적으로 수도권, 서울의 소멸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수많은 인용문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구성된 본문을 읽다보면 점점 암담한 느낌이 든다. 전 국민이 이 섬뜩한 줄 세우기 놀이의 어딘가에 서 있는데다가, 윗층에 있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은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이들은 그냥 현실에 눈을 감아 버리고 있다. 저 아래층에 있는 이들조차도, 시선이 위쪽으로만 고정되어 있어서 현실을 바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냥 사는 수밖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이 책의 바벨탑을 옆으로 누여놓은 형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꼬리칸에 살던 이들은 엔진실로 향하는 모험을 결행했지만, 현실 속 바벨탑의 아래층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끝내기에는 영 꺼림직했는지, 저자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안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도권 이외의 지방들을 살리는 정책인데, 앞서도 지적했듯 지방민들도 지방을 살리기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선 지방분권도 그다지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저자는 중앙대 교수인 마강래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지방을 큰 권역으로 재편하고, 그 거점이 되는 도시를 중심으로 집중하는, 압축도시의 형태가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능하면 모여 살아야 편의시설이 충원되어 살만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논리. 물론 여기에도 꽤나 많은 난점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돌파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성경 속 바벨탑처럼, 언젠가 현실 속 바벨탑 역시 붕괴될 것이다. 경제의 영역에서 쌓기 시작했지만, 점차 정치, 사회 전반을 잠식하며 높이 올라가기 시작한 이 저주받을 경쟁은 어떻게 끝이 날까. 분명한 건 탑에 가까이에 서 있을수록 그것이 붕괴될 때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겨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갭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가 유행했다. 전세가가 매매가에 거의 근접한 기형적인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바로 전세로 내놓았다가 가격이 올라가면 팔아서 차익을 챙기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건 엄청난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투기였고, 주택가격이 오르지 않을 경우 고스란히 빚더미에 앉게 된다. 이런 엉터리 투기가 무슨 대단한 투자전략인양 온갖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유튜브 강의가 나도는 게 바벨탑 공화국의 현실이다

 

     지금은 그렇게 확장할 때가 아니라 밀착할 때라는 저자의 주장을 곱씹어 볼만 하다. 조금은 다르지만 우석훈의 책들에서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해결책이다. 성장률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성장에 기초한 확장정책은 실패할 것이다.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물론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예나 오늘이나 그대로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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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바보들 세트 - 전2권 -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에서 못다 한 말들 노무현과 바보들
(주)바보들 엮음, 손현욱 기획 / 싱긋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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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의 영화를 먼저 봤다. 이 책은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했던 인터뷰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영화는 아무래도 적당한 상영시간을 맞춰야 했기에, 여러 가지 잘라낸 내용들이 있었을 테고, 내용의 양으로만 보면 책 쪽이 훨씬 더 상세하다. 덕분에 두 권의 두툼한 책이 되었다.

 

     ​하지만 단지 영화가 책으로 형태만 변한 건 아니다. 영화의 경우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느낌이 좀 강했다면, 책은 노사모 회원들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덕분에 책을 다 보고 나면 잘 알지 못했던 노사모 내부를 살짝 엿본 듯한 느낌이 든다.

 

 

     ​노사모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다. ‘팬클럽이라는 단어가 이 단체의 성격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들은 어떤 정치적인 목표를 가지고 모인 것도 아니고,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던 이들 역시 조직이나 운동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평범한 시민들이었고.

 

     ​때문에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실수도 했지만, 기존의 조직이라면 할 수 없었을 일들도 이뤄낼 수 있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데에는 이들의 목소리와 활동이 분명 한 몫을 했다는 걸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아마추어리즘이 그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하는 데 한 몫을 했다는 죄책감을 초기부터 활동했던 회원들은 모두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을 만들기만 하면 그 뒤로는 모든 일이 알아서 잘 풀릴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노사모를 노무현으로부터 한 발 떨어지게 했고, 그 틈을 비열한 이들은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러나 영화평에도 썼듯이, 우리는 노무현을 영웅이나 성인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권위의식과 거리가 멀었던 그라면 더더욱 바라지도 않는 일일 것이다. 그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과 지난 태도에 대한 후회를 디딤돌 삼아,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힘을 모으면 되는 거니까.

 

 

     ​편으로 소위 문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종종 보여주는 이상행동도 어쩌면 노무현에 대한 상실감, 죄책감에서 비롯된 보상적 과잉행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자주, 아니 거의 상시적인 이상과잉행동을 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정치적인 문제란, 물론 예외도 있지만, 대개 옳음과 그름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어떤 것이 최선인가의 다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쪽을 무조건 옳다고 우기는 것도 정치발전에는 완전히 부합되는 일은 아닐 것 같다.(물론 저쪽이 워낙에 질이 떨어지니 반작용이라는 걸 안다)

 

     ​대선 이후,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노사모는 길을 잃은 것 같다. 진작 해체에 관한 논의가 나왔다가 투표를 통해 부결된 후에도, 이전과 같은 동력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불꽃놀이가 끝난 후 사람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누구는 폭죽을 좀 더 사러가고, 누구는 식당으로, 숙소로 돌아가고...

 

     ​개인적으로는 팬클럽답게 깔끔하게 해체하는 것도 좋았겠다 싶지만, 뭐 외부인이 할 말은 아닐 테고. 어쩌면 팬클럽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게 두는 걸로 해체에 이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제 노무현재단이 있어서 그쪽으로 좀 더 무게감이 많이 옮겨졌기도 했고...

 

  

     엮으면서 나름 편집에 신경을 쓴 것 같긴 하지만, 워낙에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고, 사람마다 생각도 조금씩 달라서 어떤 일관된 메시지가 강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노사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는 있었겠지만.

 

     아울러 책을 정말 공들여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표지부터가 한 번 더 열리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노란색 띠지에 박혀 있는 문구는 감동적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내용인데, 두 권의 책을 감싸는 겉장은 반이 접혀져 있었고, 그걸 펴면 노 전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문이 오래된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조선 왕조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고 시작하는 그 연설. 새삼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썼구나 싶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나름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긴 노사모라는 단체가 조금씩 희미해지는 과정에서 이런 책이 한 권쯤 나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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