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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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사태 발생 초기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나라는 물론 발생지였던 중국이었다그런데 두 번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좀 의아하게도 유럽의 이탈리아였다.(현재는 단연 미국이 최대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반응은 이탈리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그들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했고혼란과 거짓으로 비틀거렸다.


     이 책은 그런 이탈리아의 젊은 작가가 쓴 일종의 에세이다그는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뒤죽박죽인 사태를 날카롭게 통찰하면서현재를 한 페이지한 페이지 기록해 내려간다.

 


     한 편의 긴 글이 아니라 짤막한 단상들을 여럿 모아놓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특별한 구성을 갖지 않고이 즈음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작가다운 번뜩임이 있을 때마다 글로 옮겼던 걸까하지만 그 짧은 글들 속에서도 눈이 머무는 지점이 여럿 발견된다.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연대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그리고 이 연대감의 바탕에는 신뢰가 있다온갖 거짓 뉴스들과 이에 기반한 의심과 미움결렬한 분노와 혐오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코로나 위기는 앞으로도 한참을 더 지속될 것이다그 사이에 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거고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우선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나아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사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여기에는 어디에도 가짜 뉴스나혐오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이 상황에서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기억해야 할 점을 잘 짚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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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모든 것 - 위기의 자본주의, 가치 논의로 다시 시작하는 경제학
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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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원제를 보고 살짝 갸우뚱했다원래 이 책의 제목은 “The Value of Everything”인데번역하면 모든 것의 가치일텐데출판사에선 주어와 수식어를 서로 바꿔서 가치의 모든 것이라고 만들어 놨다이 정도 출판사가 번역의 실수를 한 건 아니었을 테고무슨 이유였을까.


     책을 읽어 나가며 조금씩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원제인 모든 것의 가치는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싶어 하는 중심 소재인 ‘(경제학에서의가치’ 자체에 좀 더 중심을 두고 있다면번역한 제목인 가치의 모든 것은 그 가치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론과 관행적 사고 등을 두루 가리키는 듯하다이렇게 보면 책 전체의 내용을 잘 설명하는 번역 제목일지도...



     책은 경제학에서의 가치이론을 다루고 있다이것이 중요한 이유는어떤 것에 진짜 가치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것에 제대로 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저자는 경제학의 간단한 역사를 반추하면서초기 경제학자들은 가치를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로 보았으나현대에 와서는 단지 사람들의 선호가 가격과 가치를 결정한다는 이상한 교조주의가 나타났다고 본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기준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제 누가 더 말을 잘 하느냐이름을 잘 갖다 붙이느냐가 중요해지게 된다말 몇 마디로 별 가치도 없는 것들이 대단히 중요해지게 되거나실제보다 그 가치가 훨씬 더 부풀려질 수도 있다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금융을 꼽는다.


     오늘날에는 경제 전반의 금융화가 이루어지면서각종 복잡한 금융기법이 마치 가치를 창조하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일으키고 있다애초에 부의 부드러운 이전과 중개 등을 담당할 뿐이었던 금융이이제 온갖 투기소요를 일으켜서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 과정에서 가치의 왜곡이 일어나고부가 소수의 투기세력에게 몰리게 된다.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가치생산의 차원에서 정부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어왔다는 점이다오늘날 경제학에서는 시장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점점 강화되면서경제에 정부가 실제로 끼치는 영향을 무시하고 왜곡하게 되었다저자는 정부가 실제로 가치를 창조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도 유튜브와 공중파를 가리지 않고소위 금융전문가들이 출연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주요국의 주가가 어떻게 되는지를 스포츠 중계하듯 보고하는 일들이 넘쳐난다물론 증시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지표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하지만 오늘날 이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정말로 그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투자일까?(그렇게 매일처럼 기업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정상일까?) 이미 주식은 상당 수준 실제 가치와는 상관없는 투기판으로 변한지 오래다그들만의 온갖 논리와 원칙을 갖다 붙이지만말잔치를 걷어내고 나면결국 사람들의 기대감을 두고 벌이는 도박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주가를 부양하는 것이 경제당국의 유일한 지상목표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들이 많이 보인다물론 이들은 거기에 자신들의 밥줄이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인정한다그런데 이 말은 이들이 결코 중립적인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들도 이해당사자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말이다갈수록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도박의 판을 키우는 것 이상의 특별한 효과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하나 실물경제의 금융화가 문제인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생각과 다르게이들이 가치 자체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금융 분야의 발달이 자본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불러왔던복잡한 파생상품 같은 사기성 상품들을 말장난으로 만들어 낸 것도 분명 사실이다애초부터 말과 계산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세계적 추세는 물론우리나라의 상황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인터넷 은행 분야부터 시작해 금산분리 원칙은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 같고금융에 관한 규제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사기의 영역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물론 불필요한 규제야 정비되어야겠지만모든 규제가 악이라는 식의시장만능론은 입증된 적이 없는 상상과 믿음의 산물일 뿐이다.



     경제 영역에서정부의 역할에 대한 재발견도 중요한 부분이다단지 규제나 지원제도를 통해서만이 아니라정부는 실제로도 가치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오늘날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들은(예컨대, GPS나 인터넷 같은애초에 정부 주도로 개발이 이루어진 것들이었고막대한 세금이 투입되어 만들어낸 기술이 어느 정도 전망을 보인 후에야 민간 기업들이 뛰어들어 그 열매를 독차지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


     정부의 경제에서의 역할은 부실한 기업을 떠맡는 식의 패시브 스킬만 발휘하는 것이라는 편견어린 시선은 분명 잘못되었다사실 많은 정부가 이런 시각에 살짝 주눅 들어 있는 것 같다세금을 투입해서 만든 기술은 어느 정도 그 세금을 낸 국민들에게 이익으로 돌아가야만 한다소수의 기업가들이실제로 가치창출에 그 정도의 기여를 했는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지나치게 많은 열매를 독점하도록 두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좋은 경제기여한 만큼의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경제일 것이다죽을 만큼 힘들게 애쓰는 데도 먹고사는 것이 힘든 상황이라면 어딘가 고장이 난 것이다이 책의 저자는 이런 상황이 가치의 기준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상당히 흥미로운 지적이고오늘 우리들의 경제구조는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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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외전 - 다시 검찰의 시간이 온다
강희철 지음 / 평사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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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모든 이슈가 여당편이냐 야당편이냐에 따라 갈라지는 우리나라에서이 책은 어느 쪽의 환영도 받기 어려울지 모르겠다.(이즈음 한겨례 신문의 포지션이 그렇다.) 저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을 어떻게 검찰이 조직적으로 수사하지 않고 깔아뭉갰는지를 지적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그러나 바로 다음 꼭지는 현 정부의 지나치게 긴 적폐수사로 인해 수사대상이 된 한 검사가 자살에 이르렀다는 비판적인 어조를 담는다.


     저자는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지만현 여당(더불어민주당)과 야당(미래통합당모두 제대로 된 검찰개혁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둘 다 정권을 잡고 나면 검찰을 휘두리가 좋은 예리한 칼로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물론 그 결은 조금 다른데현 야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동안에는 다스니세월호니 하는 각종 범죄나 비리를 덮는 데 검찰을 이용하고여기에 공을 세운 정치검사들을 영전시키는 등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데 반해여당의 경우는 검찰의 힘은 계속 이용하고자 하면서 개혁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입장 때문에 제대로 된 검찰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저자가 보는 검찰 개혁의 핵심은 직접수사권을 박탈하는 데 있다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상황(더구나 기소권은 독점하고 있다)이 해결되지 않는 한공수처 같은 독립된 수사기관을 만들거나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주는 식의 제도 개선은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오히려 공수처는 권력자에게 또 하나의 칼을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고경찰조직의 비대화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공수처 같은 조직도 정권이 바뀌면 얼마든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현 정부 들어서 공수처만 만들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기라도 하면 같은 당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금세 여권지지자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났었다그런데 그래도 되는 걸까.


     공수처를 가지고 국민들을 통제하는 독재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야당의 비판은 처음부터 멍청한 대처였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수사대상은 애초에 일반 국민들은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그것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공수처가 단지 또 하나의 검찰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정권의 입맛에 따라 사건을 덮고 확대하는 식의하지만 일단 손에 쥔 칼과혹 손에 쥐게 될지도 모르는 칼을 누구도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조국 사태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검찰에게서 직접 수사권을 빼앗는 일은 여당에서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민주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권력에 대한 통제이다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조직은 어떤 식으로든 통제받아야 한다. (그게 선거라는 방식일 수도 있고유사한 힘을 가진 또 다른 조직에 의한 견제일 수도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교훈이니까.


     점점 비대화되어 가는 검찰의 권력은 어떤 식으로든 통제되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지나치게 요란하게 출범한 공수처가 오히려 검찰의 제대로 된 개혁을 막게 되지는 않을까 살짝 우려도 된다사실 권력기관의 전횡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제도 같은 게 어디 존재할까중요한 건 권력을 쥔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일 텐데이쪽은 법 몇 개를 만든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게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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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차별과 혐오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해용 옮김, 오찬호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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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롭다.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저자는 인류에게 나타나고 있는 차별 행위가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이익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제할 필요가 있고, 여기에서 차별이 등장했다는 것. 누구나 다른 사람을 차별함으로 괴롭힐 수 있고, 심지어 이 때 일종의 쾌감까지 느끼게 된다니 문제를 원천 차단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저자는 가해자의 충동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건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 앞에 케이크를 놓아두고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차별을 하고자 하는 충동 자체는 향사회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시종일관 주장하는 책이니 당연한 결론이다.

 

향사회성 자체는 생존에 필요한 요소지만, 그것이 부정적으로 표출되었을 때는 분명 문제다. 여기에 차별에 대한 동조압력까지 더해지면, 그곳은 지옥이 된다. 오늘날처럼 자연에 대한 투쟁보다는 인간 사회의 조화와 연대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 이런 상황은 단순히 개인들의 피해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발전 지체, 혹은 퇴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따돌림, 혹은 차별이 어느 한 나라나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지메(집단 따돌림)’라는 외래어를 어지간한 사람들에게 알게 만들어준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은 왠지 좀 더 심할 것 같다는 선입관 비슷한 인식이 있었다. 사실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걸 생각하면서 이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실제로 책에는 특별히 학교에서 일어나는 차별 행위에 관한 언급이 자주 보이기도 하다.

 

저자는 일본의 아이들이 모두 힘을 합해’, ‘다 같이 사이좋게지내기를 강요받고 있으며, 이것이 개성적인 아이들을 숨 막히게 하고, 자신이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일탈자를 누구보다 빨리 색출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지나친 집단주의가 문제라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군대 안에서 이런 식의 병적 행동들이 자주 나타나곤 하니까.

 

 

저자는 여러 호르몬과 본능에 관한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이런 행위가 우리의 유전자 안에 박혀있다는 것처럼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차별을 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운명론을 설파하는 듯도 하다. 물론 저자는 어떻게 이 부정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관해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인다.

 

저자는 상대방이 질투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거하고,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갖추고, 때로는 언더독 효과를 이용하는가 하면, 상대와 거리를 좀 두거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개선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하나하나 잘 기억했다가 이용해 볼 만한 포인트들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내용은 작정하고 괴롭히려는 악인들이 널려 있는 사회에서는 소극적 대처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저자는 좀 더 적극적이고 실제적 대안으로 사각지대를 줄일 것을 주장한다. 이를 테면 강인해 보이는 사람에게 학교 순찰을 맡기거나 교실에 CCTV를 설치하는 식이다. , 다양한 사람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통해 인간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돌리는 사람이 있으면 아예 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의 유동성을 높이면 된다는 것.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범죄자들에게 무슨 무슨 교육을 수십 시간씩 강제하는 벌칙조항들이 시행되고 있다. 성범죄자 재범방지 교육, 음주운전 특별교통안전교육 등등.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 옳다면, 이런 교육들은 거의 쓸모가 없다. 교육 정도로 사람의 충동을 자제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대신 감시카메라를 늘리고, 감시하는 인원을 확충해서 사각지대를 줄이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문제행위가 적발되었을 때는 강력한 처벌을 통해서, 비슷한 행동을 하려는 사람에게 강제로라도,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게 될지를 인식하도록 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물론 단순히 억압적 정책만이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한 관계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도 노력해야 하겠지만.

 

교화 못지않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모든 일탈행위들을 막을 수 없다면, 강력한 처벌과 확실한 감시가 필요하다. 이쪽도 못하면서, 온정주의에 기반한 가벼운 처벌과 말랑말랑한 교육만 붙잡고 있는 건 사실상 더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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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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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는 블랙 기업이라는 용어가 있다. 직원들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착취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회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의 사례는 크게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간호사들 사이의 태움이라는 악랄한 관습으로 수많은 저 연차 간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모 회사에서는 여직원들을 성적 도구로 보는 듯한 인습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창업주의 후손들이(그리고 여기에 회장의 부인까지 가세한) 하나같이 보여주는 수준 이하의 갑질들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했었다. 재벌 3, 4세들이 보여주는 일탈을 넘어선 범죄들과 대기업들이 경영차원에서 저지르는 온갖 엉터리 행태들을 보면, 기업의 총수가 구속되었더니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는 우스운 뉴스도 이해가 된다.

 

     ​저자는 이 문제가 군대식 문화가 이식된 비민주적 기업운영 행태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단지 개인의 행복을 줄이는 정도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수준에까지 왔다(83)고 말한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이유도, 단지 연봉과 복지수준만 낮은 것이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직장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제안한다.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최소한 직장 내에서 불합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갖춰져야 한다.

 

     책에는 이를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담겨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다. 특별한 법령을 제정할 필요도 없이 의지만 있다면 간단히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단다. 민간 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정부와 공기업에서부터 시작하고, 정부와 거래가 이루어질 때 이 인증에 일종의 가산점을 부여하면 어느 정도 확산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본다

 

     ​물론 이뿐 아니라 직장 민주주의를 위한 매뉴얼을 보급하고, 사실상 경영주에게 껄끄러운 직원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감사기능을 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기금들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의 제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대한민국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로비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느릿한 변화의 속도를 우리가 얼마큼이나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변화와 개혁의 기회를 외면하고 지금 이대로만을 고수한다면 결국엔 우리 모두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열정 페이니 인턴이니, 비정규직이니, 파견직이니 하는 괴상한 명칭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너무 많아졌고, 그런 대우를 받는 이들이 온갖 것들을 포기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와 인건비 쥐어짜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기득권층들은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최소한 일하러 간 곳에서 일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간단한 요구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직전에 읽었던 저자의 또 다른 책(“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세상을 관조하는 듯했던 그 책의 논조와는 달리, 이 책에서는 다시 한 번 뭔가를 기대하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같은 해에 반 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낸 책답지 않게(물론 이 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아 썼다고 한다). 다만 반년 먼저 나온 그 책을 보고 이 책을 보니, 저자의 목소리에서 약간 힘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이런 책은 고용인보다는 사용주, 경영자들이 읽어야겠지만, 늘 그렇듯 들어야 할 사람들은 자리에 없고, 안 들어도 되는 사람들만 앉아있지 않을까 싶다. 뭐 우리가 시작하는 일에서부터 바꿔나갈 수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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