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역설 -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필립 맥마이클 지음, 조효제 옮김 / 교양인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우리는 흔히 개발하면 좋은 것으로 인식한다. 어딘가(혹은 무엇인가) 개발된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깨끗하며, 효율적인 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개발에 대한 이미지가 일종의 정치적 구성물이며, 힘 있는 자들(식민지배 본국, 소수의 정치와 경제 분야의 엘리트, 강대국들이 만든 국제기구)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질서를 강요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개발논리라는 것이 어떤 한 국가 내에서의 발전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의 수탈을 전제로 한 약탈적인 경제구조였다는 것.

 

     시대가 바뀌고 이제 더 이상 식민지를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지만, 이런 기본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발 프로젝트는 이제 지구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달라졌고, 그 공식적인 방식도 총칼과 채찍에서 전 인류의 번영이라는 멋들어진 설득으로 바뀌었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저자는 자유 시장을 통한 번영이 실은 전체 인구의 2/5만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나머지 3/5은 그 2/5를 위해 여전히 수탈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위해 여전히 서구 선진국들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이며, 재정적인 압박을 통해 저개발 국가들을 자신들의 뜻에 따라 옥죄고 있다.

 

     이런 상황에 반대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의제도 그 중 하나다. 책은 환경, 농업, 빈곤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의 개발 논리에 저항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소개하면서, 개발을 다시 생각하기 위한 첫째 단계로 발전의 관념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530).

 

 

2. 감상평 。。。。。。。   

 

     책의 부제가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준다.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군더더기 없이 잘 붙인 부제목이다. 단지 제목만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저자는 왜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한 개발이 진행되었는데도 여전히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빈곤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 또 갈수록 삶의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내고 있다.

 

     책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소위 자본주의적 발전의 열매는 모두가 아니라 일부만을 배부르게 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오늘날 이런 착취가 어떻게 지구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수출용 상품작물을 단일재배 하느라 정작 자국민들의 식량이 부족해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은 비교 우위따위의 개념이 얼마나 허황된 논리인지를 보여준다.

 

     이건 분명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저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려 넘어갈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 명과 암이 늘 힘 있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그어진 경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개발에 대한 환상, 혹은 신화는 매우 단단해서 쉽게 깨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경제발전이 지고의 선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속에서, 성장률이라는 지상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경주마가 될 것을 세뇌 받으며 살아 왔으니까. 여기에 라는 질문은 필요 없었다. 왜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지, 그러면 누구에게 좋은 건지 하는 부분은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만 받아왔다.

 

     이런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시작은 역시 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부터다. 책의 저자도 지적했던 것처럼 발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내다버리고 새롭게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실의 문제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하고, 대안적 삶 혹은 행동이 실제로도 가능하며 더 유익하기도 하다는 점을 증명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부분들을 보여주는 데 많은 공을 들여서 잘 써 냈다.

 

 

     번역의 문제인지(사실 복문이 지나치게 많긴 하다), 원 저자의 탓인지 임팩트 있는 문장이 좀 부족한 게 아쉽긴 하지만, 충분히 여러 부분에서 인용되고 참고될 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입문 협동조합 - iCOOP 생협 2015년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협동조합은 그 기구의 운영을 사주(社主)나 경영자가 결정하는 대신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단체로, 조합원들을 위한 운영에 초점을 맞춘다. 언뜻 그러면 주식회사와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주식회사가 1주 당 1표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면, 협동조합은 1인 당 1표라는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조합원들이 내는 출자금은 주식과 달리 상한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단순히 많은 돈을 냈다고 많은 배당을 얻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조합의 운영과 사업에 기여를 했느냐에 따라 수익의 일정부분을 배분받는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 책은 그런 협동조합의 기본 개념부터 역사(1), 일반 기업에 비해 독특한 운영의 방식(2), 그리고 아이쿱생협의 발전 과정(3)을 서술하면서,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쓰였다.

 

  

 

 

2. 감상평 。。。。。。。  

 

     책은 협동조합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한 시도로 평가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이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비교적 일찍부터 자본주의적 경제가 다양한 병폐들을 안고 있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면서 여러 사람들이 발전적 대안을 찾아 나섰는데, 협동조합도 그 중 하나의 대안이었다. 기본적으로 수익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경제모델이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물론 지속적으로 운용가능하려면 수익 부분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하지만)

 

     그 유명한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이 모델이 한 국가 안에서 상당한 수준의 경제를 책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스페인 매출규모 7, 고용규모 4위인 이 협동조합은, 경기침체로 파산한 산하기업의 노동자(이자 동시에 조합원이기도 하다)들을 정리해고 하는 대신 그룹 내 다른 직장으로 전환배치하거나, 자체 실업급여를 지급하며 직업교육을 통해 전환배치를 기다리며 버틸 수 있게 돕는다. 사람 중심의 기업이란 이런 게 아닐까.

 

     물론 협동조합이라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책에서도 언급 되듯, 우선 조합원들의 참여(특히 경제적인 부분과 운영 면에 있어서)를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고, 빠르게 변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결코 녹록한 문제는 아니다. 아마 이 두 부분이 협동조합이 실패하는 대표적인 원인일 것이다. 특히 협동조합 쪽도 경제성을 획득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 관건일 듯다. 하지만 어떤 것이 실패 했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는 거니까.

 

 

     최근 관계 법령이 개정되면서 이전보다 협동조합을 만들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한다. (실제로 친구 중 하나도 협동조합 형태로 출판 쪽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고...) 이 책은 이런 상황에서 나처럼 협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기본 개념을 잡는 데는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서재보다는 현장에서 쓰인 책답게, 실제 운영과 위기, 극복 과정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는 부분도 마음에 든다. (물론 책을 다 읽었으면 직접 조합운영의 현장을 방문해서 듣는 것이 필수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잡놈들 전성시대 - 우석훈의 대한민국 정치유산 답사기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이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연구소의 부원장을 직함을 갖게 된 우석훈의 정치 입문기.(물론 국회의원 같은 건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당직자도 정치인이긴 하니까)

 

     책은 암담한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시작한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가 집권하는 대한민국에서 양극화는 극에 달하고 있고, 이제 곧 고착화 될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대안은? 사람들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별 희망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 저자는 그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뒤에 나오지만 결국 망해가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쪽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쪽의 상황도 녹록치만은 않았다. 오랜 야당생활로 에너지는 점점 빠져만 가고 있었고, 내부의 인사들은 계파라는 이름의 증오를 가진 채 그저 한데 모여 있을 뿐이었다. 당직자들은 그저 줄서기 바쁘고, 장기적인 계획, 특히나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거의 대안이 없는 수준이었고. 저자는 그 안에서 혁신위의 일원으로 조금씩 규정을 바꿔나가기 시작하고 공부와 토론을 하는 모임들을 만들며 잡놈들의 전성시대를 중단시킬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정당의 조직과 기능을 제대로 회복하는 것을 제시한다. 매달 1,000원씩 내는 당원들이 정당을 바꾸고, 결국 나라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저자의 꿈은 그 안에 인재들이 모이고, 성장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고 '살아서' 나오는 것.

 

 

2. 감상평 。。。。。。。  

 

     우석훈이 쓴 책을 벌써 다섯 권 째 읽지만, 이번 책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동안은 한국 경제를 분석하는 글을 주로 써 왔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정치가 그 중심에 있다. 또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은 당장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지만, 현실에 그냥 순응할 수는 없어서 집을 나와 발을 담그게 된 그곳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과 소망을 아울러 담아내고 있다.

 

     책에 반영된 새정치민주연합의 현실은 참혹하다. 진심으로 하나가 되지도 못하고 있고(이른바 계파 갈등), 공통의 목표나 비전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당 조직에는 전반적인 무기력증과 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 인식이 퍼져있는 데다, 그나마 줄서기에 바쁘다(선당폭망 당을 먼저 생각하고는 폭삭 망한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뭔가를 해 보려고 애쓰는 이유는, 역시 저쪽은 도무지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다, 이곳 외의 다른 정당들은 다가올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할 실제적인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우석훈은 곧 다가올 선거들(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이 그 결과에 따라 양극화를 고착시키고 멕시코식의 망하는 나라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중요한 기점으로 여긴다.

 

 

나는 이 증오의 구조를 깨고 싶어졌다.

어느덧 증오가 특징이 된 이 동네,

나를 믿어주거나 아니면 나를 믿는다고 형식적으로라도 말하는 사람들의 뜻을 모아

잠시라도 증오를 멈추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여러 부분에서 실망과 좌절을 하면서도,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리 욕심 없이 애쓰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노력과 계획이 꼭 성공하기를 빌면서 책장을 넘겼다. 미움을 넘어서, 갈등을 해소시키는 어려운 역할을 기꺼이 맡고 있는 그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물론 지금 보기엔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낮아 보인다는 게 안타깝지만, 10년 전 유재석이 무모한 도전이란 이름으로 하얀 쫄쫄이 입고 연탄 나르기 게임을 할 때, 누가 그게 오늘날의 무한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명박은 이 나라에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각인시켰다면, 박근혜는 능력이나 도덕성 따위는 없어도 권력자에게 충성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서운 것은 이 두 가지 메시지가 합쳐질 때이다. 돈과 충성만 남은 사회. 그건 화적떼나 조폭의 논리이다. 이런 논리가 완전히 고착화된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그러니 우석훈의 무한도전은 반드시 히트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권을 잡으면 과연 이게 달라질까 하는 의문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 선거를 앞두고도 경선 탈락자들은 적극적으로 당의 후보를 돕지도 않고, 지방 토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의원들은 사실 정권교체 없이도 지금 누리는 혜택들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굳이 달라져야 할 이유가 없다.(뭔가 바뀐다는 건 그들이 지금 누리는 것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니까) 노무현의 정치실험(열린우리당의 창당)은 결과적으로 실패해버렸고, 이젠 누구도 쉽게 그런 선택을 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리고 말은 또 얼마나 많던가. 가능하면 부정적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쪽은 정말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를 고민할수록 결해결책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당원 중심의 정당들이 나와 국회의원의 이익이 아닌 국민들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재구성해내는 데에 있다는 저자의 판단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제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대선까지 1년 반, 총선까지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명분이 있는 길, 국민이 원하는 길을 걷는 정치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힘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 힘은 단지 선거일에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국민들의 힘이 필요한 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 모멘툼 vol. 01
김민하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책의 머리말에도, 그리고 첫 번째 실린 글이 공통적으로 일베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은 분명 일베류의 극우적 언동이 점점 늘어나는 데 대한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섯 명의 저자들은 각각 한국 사회의 극우적 움직임에 관한 글들을 실고 있는데, 각각의 글의 성격이나 주제는 조금씩 다르다. 일베를 다루고 있는 첫 번째 글과 한국의 극우정당 출현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두 번째 글은 현실분석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국 개신교의 극우적 성격을 다룬 세 번째 글은 역사를 추적하는 쪽에, 그리고 나머지 글들은 극우주의나 파시즘 같은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2. 감상평 。。。。。。。  

 

     책의 가장 앞에 실려 있는 창간사라는 이름과 거기 언급되는 무크지라는 단어는 이 책이 (형태는 단행본이지만) 일종의 잡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행본과 잡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시의성인데, 잡지 쪽은 당장에 필요한 정보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담아내는 데에 무게를 더 둔다. 이 책은 최근 한국의 현실이 극우주의라는 문제를 서둘러 다뤄야 할 정도로 급박해졌음을 시사한다.

 

 

     첫 두 편의 글은 흥미로웠다. 짧은 글 안에서 일베의 성격에 관해 다양한 방향에서 분석했던 박권일의 글이나 한국의 정치지형을 분석하며 그래도 아직은 당장 극우주의 정당이 출연할 것 같지는 않다는 다행인 소식을 전해주는 김민하의 글은 읽을 맛이 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반공주의적 성격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려고 시도한 김진호의 글부터는 이런 느낌이 달라진다. 그의 다른 책(‘예수의 독설’)에서도 보여줬던 지나치게 과감, 혹은 과장된 추측과 그것을 곧 단정지어버리고 기정사실화 한 채 전개하는 논의방식은 이 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사용되는 용어들도 딱딱하거나 사상성이 깊이 묻어나오는 단어들이다.

 

     후반부의 세 개의 글은 좀 더 나아가서 아예 철학적인 논의로 접어드는데, 덕분에 책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떨어지고 만다. 물론 어떤 사안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적절한 철학적 기초가 있어야겠지만, 이쯤 되면 이런 글은 나 읽으라고 쓴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물론 내가 책을 잘못 선택한 거지, 저자들의 문제는 아닐지도..)

 

 

     뭐 여러 개의 글들이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것만을 뽑아 읽어도 그만이다. 개인적으로 글들의 배치가 절묘했다는 느낌이 든다. 안 그랬으면 집어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제목을 보면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자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본의 정의나 분류를 다양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저자는 간단하게 벌어놓은 돈(혹은 부)’ 정도로 정의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이 책은 21세기에 이 자본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하는 전망과 함께 여기에 문제는 없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나름의 대책)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저자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자본이 어떤 식으로 변해왔는지를 구할 수 있는 통계자료 안에서 분석한다. 우선 자본소유 구조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농경지에서 주택(부동산)과 각종 비물질적 자본으로 전환되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 시기에는 잠시 감소했으나 전반적으로 축적된 자본의 양이 소득 대비 6, 700%에 이르게 되었으며, 공공자본에 비해 민간자본의 양이 적게는 4배에서 7배 이상까지 더 많았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주요 문제점 중 하나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게 유지되어왔다는 점을 지목한다. 이 말은 이미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더 부자가 되는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갈수록 불평등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자본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을 꺼낸다. 기존의 소득에 부과하는 누진적 세금은 종종 역진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효용을 인정하더라도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어느 개별국가의 제도만을 통해서 효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2. 감상평 。。。。。。。  

 

     책을 구입해서 한참 읽고 있는데 피케티 오류 인정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몇 개의 신문 기사들의 내용을 확인해 본 결과 오류의 내용이란 게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앞선다는 명제가 실제 불평등 확대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한국경제), 역시 그 명제가 21세기 소득불균형의 미래를 예측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는 것(조선일보) 같은 내용이었다. 프레시안은 여기에 소득불평등도 부의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내용을 덧붙인다.

 

     정리하자면 피케티가, 자신이 이 책에서 21세기 부의 불평등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꼽았던 지나치게 높은 자본수익률이라는 요인에, 그것이 유일한 요인은 아니며 여기에 최근 불거지고 있는 소득불평등이라는 요소도 더해야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게 과연 오류 인정이라고 불릴만한 것일까? 흥미로운 부분은 피케티 역시 책 속에서 자본수익률과 함께 임금의 불평등(소득불평등)이 미래 경제구조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498).

 

앞으로의 세계는 과거의 가장 나쁜 두 세계가 결합된 모습일 것이다. 즉 상속자산의 불평등도 극심하고, 매우 심한 임금의 불평등은 능력과 생산선 측면에서 정당화되는(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실에 거의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세계다.

 

     일부 언론도 이 포인트를 오류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던지, 그렇게 되면 다른 학자들이 주장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어지므로 피케티의 독특성이 사라진다는 식으로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피케티 개인이 노벨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는 큰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가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부의 불평등 문제 그리고 그 원인으로서의 과잉 자본수익 라는 논점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 지적되는 부분은 피케티가 그의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자료가 조작되었다는 점인데, 이게 사실이라면 앞서의 공격보다 훨씬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신문기사들을 보면 그가 자료를 종합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논지에 맞는 부분들을 취사선택했으며, 일부에는 수치적인 오류 혹은 조작(어떤 이들은 엑셀 연산상 오류라고 말하기도)이 있었다는 것. 결과적으로 실제로 자본수익률이 늘 경제성장률보다 높지는 않으며, 최상위층이 보유한 부의 비율 역시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 역시 책 속에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인용하는 기사는 전혀 없었다는 게 함정(428).

 

요약하자면 부등식 r>g는 특정한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만, 다른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불확정적인 역사적 명제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피케티의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내며 인용했던 파이낸셜타임즈의 자체조사 역시 피케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해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래프를 보면, 소득상위 10%에 해당하는 이들의 소득 비중은 거의 차이가 없으며, 상위 1%의 경우 약 10%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10%라는 차이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상위 1%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전체 부의 30%가 아니라 20%를 가져간다는 말이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30%는 문제가 있는데 20%는 괜찮다는 뜻인가?

 

     물론 그래프는 지난 100년 동안 부의 격차가 점점 낮아지는 듯한 추이를 보여주고 있고, 이는 부의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피케티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그래프를 정확하게 살피면 1900년대 초반 두 차례의 큰 전쟁 덕분에 소득상위 1%의 소득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그 이후에는 큰 변동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큰 기간을 두고 보면 이 5, 60년 사이의 변동이 어떤 큰 흐름의 일부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며, 피케티의 말처럼 오늘날 부가 과거만큼 불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1945년 이후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임이 증명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오히려 책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해 가장 많이 떠들어 대던 글로벌 자본세라는 주제가 생각보다 훨씬 적은 분량만 등장하고 있고, 또 그 자체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었다. 피케티는 자본세를 국가 재원 조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 분야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때문에 그가 제시하는 세율도 100만 유로(12억원) 이하의 부에 대해서는 0%, 100~500만 유로(12~60)에 대해서는 1%, 500만 유로 이상에는 2%에 불과하다.

 

     평균자본 수익률이 약 4~5%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지도 않을 것이고, 부자들의 경우 그걸 다 내고도 수익을 낼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고, 이것은 향후 자본주의의 중요한 폐단 중 하나인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다만 이 주장이 실제로 가능한가 하는 부분에는 좀 회의적이다. 우선은 이를 위한 국제적인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고(아니 안 될 것 같다), 나아가 각국의 정부가 늘 옳은 판단만을 하는 정의로운 정부가 아니라는 점 또한 집고 넘어가야 할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광범위한 세무조사가 필요할 텐데 여기에 들어가는 자원과 노력도 만만치 않을 테니..

 

 

     피케티는 이 책이 진리를 담고 있는 거룩한 문서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과학적 연구 자체가 정밀과학이 아니며, 끈기 있는 연구를 통해 패턴을 찾아내고 분석함으로써 민주적인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10). 그렇다면 최근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부의 불평등문제, 그리고 자본소득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나오고, 또 한 편으로는 이 책을 반박하는 논리들이 개발되고 하는 현상 자체를 피케티는 반가워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