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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플래그 도감 - 5000편의 콘텐츠에서 뽑은 사망 플래그 91
찬타(chanta) 지음, 이소담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1년 8월
평점 :
‘사망 플래그’라는 말이 있다. 영화나 만화 같은 창작물에서, 얼마 후 죽음이나 패배, 퇴장을 맞이할 캐릭터들이 그에 앞서서 행하는 전형적인 말이나 행동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책에는 총 91개의 사망 플래그들이 실려 있는데, 액션, 서스펜스, SF, 호러, 싸움, 패닉, 괴수·좀비물 등 영화의 장르에 따라 분류해 놓고 있다. 모든 항목을 저자가 쓴 건 아니고, 일부는 아마도 인터넷 상에서 기고하거나 찾은 내용인 듯도 하다.(이 경우 항목의 말미에 누구의 글인지 따로 표시되어 있다)
실패한 작전을 보고하는 부하나, 실전을 우습게 여기는 신병, 싸움 중 회상을 하는 캐릭터, 유명배우와 싸우는 상대, 미인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 혼자 도망가려는 사람 등 영화를 보면서 익히 짐작이 되는 장면들이 상당수 보인다. 창작물에서 이런 식의 ‘플래그’가 나오면 이제 보는 사람들도 대충 ‘곧 죽겠군’하고 반응을 보일 정도니까.
사실 웃자고 만든 책인지라 너무 진지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는데, 의외로 또 각각의 상황이 왜 위험한지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덧붙여 있어서 묘하게 재미있다. 예컨대 데스게임의 룰을 설명하는 중에 제대로 듣지 않고 떠드는 사람이 죽는 이유는 애써서 게임을 만들고 세팅을 한 주최자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파티장에서 신나게 즐기는 사람들이 죽는 건 감독의 학창시절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식.
플래그니, 뻔한 클리셰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런 장면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등장하는 건, 단시 작가나 감독의 상상력 부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감정과 사고라는 게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기에, 이런 식의 정형화된 패턴이 꽤 높은 확률로 보는 사람의 특정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겨냥했기 때문은 아닐까.
좋은 이야기란 그저 무조건 새롭고, 신기한 내용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다. 개연성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하니까. 사실 개연성과 익숙한 것 사이에는 의외로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고. 다만 늘 뻔한 이야기는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 이야기를 만들고 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책의 의미 차원에서, 이런 마이너한 주제도 책으로 출판해 내는 문화가 좋다. 가끔은 머리를 식힐 만한 이런 책들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