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로스트 -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반려동물 실종·발견 포스터
이언 필립스 지음, 허윤정 옮김 / 생각비행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 갔다가 재미있게 생긴 책이라 들고 왔다.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반려동물 실종·발견 포스터”라는 긴 부제가 붙어 있어서 한눈에 어떤 책인지 내용을 알 수가 있다. 이 책은 정말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연으로 잃어버리게 된(탈출을 감행한 경우도 있고, 도둑맞거나, 강도를 당한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들을 찾는 주인들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포스터들을 모아놓았다. 다만 “세계”라고는 하지만 대개는 북미 지역이고, 유럽이 그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는 그냥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정도다.


여전히 동물을 학대하는 어딘가 삐뚤어진 사람들의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드물지 않다. 요새는 동물과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도 이전에 비해 그 양과 질이 훨씬 많고 다양해진 느낌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이야기가 호응을 얻고 있다는 뜻이리라.


이 책도 그런 일환으로 나온 것 같다. 아무튼 동물 이야기는 호응(돈)이 되니까. 다만 그 내용이 동물을 잃어버렸다는 사연이 모아진 포스터들이라는 게, 그냥 호기심이나 재미로 책장을 넘기기에 좀 미안해지긴 하다. 물론 여기에 실린 포스터들은 지금으로부터 20년은 지난 것들로 보이니, 그 사연 속 동물들은 진작 세상을 떠났을 게다. 그러니 조금은 편하게 봐도 되는 걸까.


책 편집이 읽어가기 쉽게 되었다. 맞쪽으로 되어서 오른쪽에는 실제 포스터가 왼쪽에는 그 번역(외국어로 되어 있거나, 삐뚤빼뚤해서, 원서에도 필요했을 부분이다)이 실려 있다. 하나하나 번역을 읽어가도 좋고, 그냥 포스터 이미지 자체만 봐도 즐겁다. 몇몇 포스터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귀여운 동물 모습이 실려 있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을 찾으려고 하는 주인들의 마음이 그 자체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다. 아주 오래 전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한 마리를 데려왔다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이걸 ‘길렀다’고 하긴 힘들 것 같다) 죽고 난 뒤에는 말이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큰 개가 있었던 기억은 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 집에 작은 어항을 하나 들여놓았다.(작긴 해도 은근 돈이 들어가더라)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물고기들이었는데, 초보자의 실책인지 몇 주 새 모두 다섯 마리가 죽더니, 남은 녀석들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해 사는 듯하다. 최근에는 새끼들까지 바글거리면서 어항이 좁아지진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교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함께 있다는 게 꽤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동물에게 지나치게 극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공감이 될 때도 있다. 동물을 언급하며 “동물권(동물의 정치적 권리)”나 “종차별주의” 같은 말까지 운운할 때면 살짝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건 좋지만, 동물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려는 욕심은 파국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다. 그건 동물에 대한 강력한 지배욕의 다른 모습이고,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동물의 의사 따위는 무시되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과의 교감을 포기하지는 말자. 그렇게 버리기엔 너무 소중한 경험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물관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 - 사적인 국립중앙박물관 산책기
이재영 지음, 국립중앙박물관 감수 / 클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물관 하면 왠지 엄숙한 느낌이 먼저 든다. 뛰어서도 안 되고,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안 되고.. 아, 그건 도서관인가? 아무튼.. 숫자도 적어서 도서관은 한 달에도 몇 번씩 이곳저곳을 다니는 나도,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곳은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다. 그리고 막상 가더라도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된 감상 방법”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위축되는 감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제대로 된 감상법” 같은 걸 몰라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다양한 전시물들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래서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읽힌다.


흔히 이런 종류의 책을 쓸 때는 자신도 모르게 뭔가 있어 보이는 척을 하기 쉽다. 아무래도 문화재이고, 유물이니까, 관련 지식도 좀 늘어놔야 하고, 문화사적 의미도 풀어야 하고. 그런데 작가는 그런 것 없다. 고려시대 만든 청동거울을 보면서 카페에 앉아 거울을 보며 짜증을 내는 여중생들을 떠올리고, 신윤복의 그림 속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는 스키니진에 대한 개인적 혐오(?)와 이를 완화시켜주는 오버핏의 치마에서 잠시 안도하다가 곧 바짝 올라간 ‘크롭 저고리’를 보며 당대의 패셔니스타에 관한 상상에 빠진다. 재미있다.


물론 박물관의 유물을 설명하는 책이니, 소개된 유물에 대한 정보도 있다. 각 항목이 끝나는 페이지에 아주 간략하게. 그리고 여기에도 평범치 않은 작가의 개성이 담긴 요약이 종종 보인다.



전반적인 느낌이 참 즐겁게 생활하는 작가인 것 같다. 이런 작가의 글은 독자도 즐겁게 만든다. 아울러 오랜만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도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나름 유익한 책이기도 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4-1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국중박 열심히 갔었습니다.^^
한번은 1층 그다음은2층 그다음은3층 그리고, 다음엔 더 보고 싶은것 위주로!
가을에 거울못 주변 정원도 너무 멋있어요^^
아이들 어렸을 때는 식당에서 꼭 밥먹어야 했어요. 별 맛도 없는데 좋아하더라구요^^
요즘은 특별전시 보러가요
용산에서 개관한 첫해부터 지금까지 추억이 많네요 ㅎㅎ

노란가방 2023-04-15 21:38   좋아요 0 | URL
아, 박물관에 자주가신다니... ㅎ
방금 검색해보니 지하철로 집에서 40분이면 갈 수 있네요.
날 따뜻할 때 저도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활절 저녁, 일주일 가까이 들고 있던 이 책을 다 읽었다. 공교롭게도 장례식 빈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죽음과 부활, 그리고 우주의 종말이라는 묘한 조합이다.



브라이언 그린이 쓴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읽었던 『우주의 구조』는 제목처럼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탐구였다면, 이번 책은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주의 역사를 탐구, 조망한다.


1장에서 3장까지는 물리학 법칙에 따른 우주의 발생과 진화를 다룬다. 빅뱅과 엔트로피의 증가, 그리고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의 감소(질서의 증가)가 나타나는 “엔트로피 2단계”의 영향으로 우주가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는 내용이다. 저자의 앞선 책에서도 일부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생명이 출현하는 과정을 다룬 4장과, 이어 의식과 마음, 신앙까지도 다루는 5장부터 9장은 위치적으로도 책의 중심에 놓여있고, 분량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헐겁게 느껴졌다. 유물론적 환원주의자인 저자로서는 어떻게든 “오랜 시간”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서 이런 주제들마저 물리적인 용어로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그게 썩 잘 되지는 않는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설명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내용인지를 토로한다. 의식을 설명하는 일은 “과학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197)이며, 예술에 관한 경험에 대해서는 “굳이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으며, “내면의 자아가 입을 다무는 순간”이라고 고백(335)한다. 308쪽에 등장하는 종교에 관한 “완전히 논리적인 서술”은 사실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으며, 어떻게든 이 주제를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충실한 교리로 설명하려는 노력만 돋보일 뿐이다.


마지막 두 장은 우주의 미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다는 내용이다. 의식을 가지고 사고하는 존재가 계속 있을 것인가 하는 주제가 잠시 던져지기도 하지만, 수백 억 년 이후에 일어날 작은 일에 그토록 집중하는 모습은 조금은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의식이라는 게 그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생겨버린 사고와 같은 것에 불과한데,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지의 여부가 우주적으로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혔다. 하지만 유물론적 환원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즉 아무 의미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부분이 강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C. S. 루이스가 말한 것을 약간 변용하자면, 의식과 이성적 사고라는 게 그저 우연히 쏟아버린 우유에 불과하다면, 그 우유의 쏟아진 모양을 보고 앞날을 예측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브라이언 그린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유사 물리-인문학자보다 나은 점은, 그린 역시 자유의지를 단지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갑자기 벤치를 박차고 튀어 올라 사람을 구하”는 것(219) 정도로 설명하면서도, 그 이유를 “이기적 유전자” 같은 허황된 상상에서 끌어대는 대신 그냥 모른다고, 다만 그런 일들을 회상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220) 뭔가 (자신의 설명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질서정연한 우주가 형성되고, 그 안에 생명이 존재하고, 또 그 중 의식을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극히 작은 확률의 사건이다. 물론 저자는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무리 작은 확률의 사건이라도 얼마든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사건이 갖는 기적적인 확률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책 말미에 이렇게 쓴다. “우연의 신이 우리를 한없이 축복하사, 자연의 법칙이라는 좁디좁은 깔때기를 통과하여 우리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457)



결국 현대 물리학은 우주는 아무 것도 아닌 데서 시작해, 지금도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우주의 원리를 밝혔더니, 결국 다 없어져버릴 일이라는 결말이 조금은 허탈하지 않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 - 연구 주제 선정부터 설계, 실행, 평가까지
케빈 엘리엇 지음, 김희봉 옮김 / 김영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현대인들은 과학에 대한 신화에 빠져 있다. 과학과 신화가 어울리는 조합인가 물을 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그렇다. 과학에 대한 신화의 핵심 교리는 이렇다. 과학은 불편부당한 진리를 찾아가는 유일한 통로다. 과학은 팩트의 영역이고, 이건 그저 단순한 개인적인 신념일 뿐이었던 기존의 철학과 종교 등보다 진리를 찾아가는 도구로서 우월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적”이라는 말이 “진리에 가까운”이라는 말인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신화가 잘못되었음을 다양한 차원에서 보여준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시작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치적 판단의 영향을 받는다.





저자가 말하는 가치의 영향을 받는 과학의 영역은 모든 과정에 걸쳐 있다. 우선 어떤 주제를 연구할지부터 가치는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부유한 선진국의 연구자들은 소득이 낮은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보다 부유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에 좀 더 많이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사실 좀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연구할지에도 가치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시설이 인근의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쉽게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걸 소위 “과학적”으로 분석해 입증하는 건 쉽지 않다. 어떤 물질에 집중할지, 그 물질의 농도를 어떻게 계산할지, 그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평균적 영향을 어떤 식으로 계산할지 같은 문제에서 얼마든지 “아무 문제가 없는” 방식으로 연구를 설계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연구자들은 어떤 목적으로 연구할지, 연구의 방향 설정에서도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 과학적 연구방식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파고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결론에 이르는 식이 아니다. 그건 처음부터 어떤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불분명한 요소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 불분명한 요소들을 어떤 식으로 해석할지 역시 가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학이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다. 애초에 문제는 가치를 불분명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일개” 개인의 신념쯤으로 치부하려는 태도에 있었다. 가치가 과학연구의 설계와 진행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것이 좋은 가치인지, 그리고 그 연구 수행에서 만나는 팩트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저자는 과학에서의 가치판단을 폐쇄적인 소수 전문가집단에게 독점시킬 것이 아니라 시민 집단들의 참여를 좀 더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 연구 수행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그 연구가 우리 사회의 윤리적, 사회적 우선순위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과학연구수행에 있어서 가치의 영향을 제대로 할 수 이는 장치를 만들자는 뜻이다.


이런 부분이 오늘 우리의 현실에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전 발생한 가습기 소독제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법원은 “과학적인 근거”로 기업측에는 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을 정도니까. 물론 그 과학에 대한 순수한(혹은 순진한?) 믿음이 판사가 그런 이상한 판결을 내린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을 거다. 그러나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예를 들 수 있다. 핵발전소의 “무해성”에 관한 과학적 근거들이 넘쳐나는 것처럼.





과학이 입고 있는 두꺼운 신화라는 옷을 벗겨내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다만 이것이 과학이 갖는 합리성을 애초부터 부정하자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과학은 여전히 우리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고, 온갖 비과학적 주장들이 끼치는 해악은 훨씬 더 클 테니까.


결국 이 부분에서도 민주주의가 중요해 보인다. 최근 읽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 부분인 게 흥미롭다. 시간이 갈수록 테크노크라트라고 불리는 기술관료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요소를 멋대로 결정하는 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결코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회의 수학 - 32년형을 선고받은 크리스토퍼에게 수학은 무엇이었을까?
프랜시스 수 지음, 고유경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신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신학이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일각의 오해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단 이번에는 신학이 아닌 수학이다.


수학 역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왔다. 특히 ‘수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학문분야로 악명을 떨치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 일부는 수학이라는 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무관한 학문분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오해에 대한 수학자의 반론이다.





저자인 프랜시스 수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양계, 정확히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이민자인 부모님은 자신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아들은 대학원을 졸업하기를 원했던 전형적인 동양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결국 그는 최초로 미국수학협회 회장에 오른 동양계 인물이 되었으니, 부모로서는 꽤 뿌듯한 일이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즐겨했던 저자에게 수학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분야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로서 이런 성공을 거두기까지 난관이 없을 리가... 이 책은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겪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수학 그 차제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유익에 대한 저자의 찬사들로 채워져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제목이 “참회의 수학”인 이유는 저자와 편지 교환을 하고 있는(그리고 그 일부가 책에도 실려 있는) 한 죄수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마약에 빠져 열아홉 살 때 무장강도 사건으로 32년형을 받은 젊은 중범죄자였다. 그런 범죄자가 교도소 안에서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를 통해 세상 속에 담겨 있는 진리에 대해 하나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수학이 인류의 번영을 위한 학문이라고 말한다(이건 수학이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에 대한 반론이다). 기본적으로 정확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수학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손해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걸 가르치는 방식에 기인하는 문제다. 수학은 단순히 많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가, 세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일종의 탐험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으로 수학을 접하고 배운다면, 우리의 수학에 대한 공포증은 조금 줄어들었을가?


나아가 저자는 수학은 의미를 찾아내고, 일종의 놀이이기도 하며, 아름다움과 영원, 진실 같은 좀 더 철학적 주제들을 더듬어 따라가는 방식이라고도 본다. 하긴 흔히 최초의 수학자로 생각하는 피타고라스도 철학자이자 일종의 종교인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이 수학을 통해 그런 것들을 얻을 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에는 수학은 물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다양한 편견(여성은 남성보다 수학을 잘 못할 것이다, 동양계 학생은 수학 성적이 좋을 것이다 같은)과 힘의 논리 같은 것들이 사람들의 수학 탐험을 방해한다. 책의 후반은 수학의 진정한 가치를 더 널리 확장시키기 위해 갖춰야 할 부분에 관해 제안한다.





학창시절 나도 수학을 제법 어려워했던 것 같다. 온갖 수식들이 난무하던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에서 길을 살짝 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졸업할 때까지 배우는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한 번 도 없었는데, 유독 수학에선 어려움을 느꼈다(그래도 수능시험에선 만점을 받긴 했다). 처음에 그렇게 두려움을 느끼니 이후에도 좀처럼 친해지지 않았다. 만약 수학을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탐험으로 배우기 시작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비단 모든 학문이 제대로 공부를 한다면, 결국 세상에 대한 이해로 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학문이라면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게 없을 것이다. 이게 배움이 주는 즐거움의 원인일 테고. 이 책에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숫자나 수식보단 수학철학, 공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 같은 게 좀 더 많이 나온다. 조금은 다른 식으로 수학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