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국가를 선언하다 - 식물이 쓴 지구의 생명체를 위한 최초의 권리장전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 더숲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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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독특하다. 식물이 국가를 선언하다니, 이젠 어디서 말하고 사고하며, 심지어 조직까지 만들 줄 아는 똑똑한 식물이 태어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물론 다행히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다. 식물이 국가를 선언한다는 말은 일종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식물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 지구의 생태계 전체를 고려한 새로운 생활 패턴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동물권” 운운하는 식의 과도한 감상주의가 담겨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살짝 들었다. 동물에 대한 학대를 줄이자는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인권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힘든 마당에 동물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쳐 보이는 게 사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식물(의 정치적)권(리)”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인간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개체수로만 보면 식물 쪽이 훨씬 더 많다. 또, 지구의 환경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데에도 식물이 가장 큰 공헌을 하기도 한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것은 오롯이 식물이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우린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그런 식물은 별로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또, 책은 환경을 파괴하는 다양한 행위들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다. 그리고 동물적 방식보다 식물적 방식(예컨대 비중앙집중적인 네트워크 형태, 지속 가능한 자원의 소비 등)이 생태에 좀 더 적합하다는 내용도 보이고. 이런 내용을 읽다 보면 옳지, 옳지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래서 현대인들이 과연 현재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식물적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모두가 정말 행복해 질까 하는 의심도 든다.





식물에 관한 책이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영역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개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오히려 천문학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묻는 “페르미의 질문”에서 저자는 우주에 생명체가 흔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행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지구가 이토록 멋진 환경을 갖고 있기에, 이 정도는 어디든 가능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


언제부턴가 지구에서 쓸 만한 게 다 사라지면, 혹은 지구가 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지면, 지구 밖 다른 행성을 찾아 이주를 하면 될 거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편한 기대다. 여기에 필요한 기술적 문제도 문제지만, 인류가 그렇게 지구를 가볍게 떠날 수 있을까. 이곳을 망쳐놓은 것도 인간인데, 그걸 교정할 생각을 못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간다면 그곳 또한 망가지기만 하지는 않을까.(전 우주적인 민폐족이 될지도...)



사실 이 책의 특징은 책의 구성 형태다. 책 제목이 국가를 선포한다는 내용이고, 내용은 여기에 맞는 일종의 헌법과 비슷한 권리장전을 선언한다는 식으로 꾸며져 있다. 1조는 “지구는 생명체의 공동주택으로 모든 생물이 그 주권을 가진다”라는 내용이고, 나머지도 비슷한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조문은 책의 각 장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식.


자연과 환경보호 등을 다룬 책 치고는 수월하게 읽힌다. 나름의 위트도(이 책의 구성 형태 자체가 그렇다) 담아내려고 하고 있고. 다만 수준 높은 위트는 그걸 알아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걸 텐데 얼마나 (특히나 여기 나온 이야기들을 들어야 할 사람들 중에서) 알아들을까 싶은.(아.. 사람이 점점 비관적이 되어 간다. 하지만 환경 문제에 대해선 그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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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미켈란젤로 -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2
신준형 지음 / 사회평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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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흥미롭다. 루터는 종교개혁자이고, 미켈란젤로는 유명한 화가이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떡하니 붙여놓고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책의 부제는 “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이다. 이것까지 보면 이 책이 무슨 16세기 유럽의 종교나 신학적 문제를 다루는 책처럼 보이지만, 그러면 미켈란젤로가 등장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루터에 상응하는 가톨릭교회 측 인물이 나와야지.


실은 이 책은 종교개혁 시기의 유럽 미술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이고. 다만 당시 유럽의 미술을 비록한 예술은 교회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었다는 걸 안다면 저자의 의도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저자는 당시의 예술을 종교적 상황과 관련지어서 설명하고자 했던 거다.




종교개혁이 한창일 당시, 개혁자들은 교회의 미술이 오용되는 모습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뭐든지 종교개혁 세력이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을 능사로 여겼던, 그래서 한때 “반(反) 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는 가톨릭교회와 교황권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자연이 이런 분위기는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고, 이것이 당시 활동했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에도 반영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논지다. 애초에 공의회는 사실적인 것과 성경과 전통에 부합하는 내용만 그릴 수 있다는 교시를 통해 미술에도 영향을 끼치려고 했다.


많은 예술가들도 하는 수 없이(당시 교회는 예술품의 주요 주문자들 중 하나였다) 이런 지시에 따른 작품들을 제작하지만, 예술가란 사람들이 누군가. 누가 그렇게 강하게 통제 드라이브를 걸려고 하면 더 멀리, 교묘하게 튀어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들은 가톨릭교회의 엄격한 규정을 조금씩 벗어나면서도, 오히려 가톨릭교회의 뜻을 잘 반영하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책에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가들(티치아노, 틴토레토, 카라바조, 루벤스 등등)의 작품을 컬러 도판과 함께 해설되어 있다. 약간은 기괴할 정도로 역동적인 모습으로 인물을 그렸던 매너리즘 화풍이 어떻게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지, 저자의 설명과 함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눈에 확 들어온다. 좋은 설명이라는 뜻.




물론 이쪽이 워낙 아는 만큼 보이는 부분인지라 크게 흥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게 예술 작품인 동시에 성경 속 여러 인물들을 그린 종교화이기도 해서 그쪽의 관심사가 있다면 또 볼만한 포인트일 것 같다.


그리고 흥미로운 건, 결국 미술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면서도, 당시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 사이의 사상적 투장에 관해 꽤 자세하면서도 좋은 분석과 정리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처럼) 미술에 영 조예가 없더라도, 이 책의 1부만으로도 한번쯤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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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의 독서법 - 분열과 고립의 시대의 책읽기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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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부문 퓰리처상을 받고, 뉴욕타임스에서 30년 넘게 서평란을 담당했던 저자가 쓴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저자인 미치코 가쿠타니라는 이름은 잘 몰라도, 이 정도의 이력을 보면 충분히 이 책이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물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한정.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조부모대에 미국으로 건너와서(생각해 보면 당시는 일본인들에 대한 경계가 굉장히 심했을 듯)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로 불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을까. 그리고 그 노력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 역시 책 읽기였다.



이 책에는 그런 저자가 읽었던 책들 중 소개하고 싶은 것들이 모두 아흔아홉 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몇몇 글들은 한 권 이상의 책을 소개하고 있으니, 실제로 등장하는 건 100권이 훨씬 넘는다. 서양의 고전부터 우리 시대의 글들까지, 소설과 시, 논픽션과 연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이 소개되고 있다.


이 많은 책들 중에 직접 읽어본 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살짝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중 못 읽어본 책이 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많은 책들 중에 이런 저자와 내가 겹치는 책들이 몇 권 있다는 데서 (독서에 대한) 의지를 북돋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그렇다 독서가들은 모든 부분에서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술꾼들이 온갖 이유로 술을 마시는 것처럼).


저자가 뉴욕타임스에서 서평가로 활동을 했던 마지막 시기는 2017년이었다. 이 해는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을 한 해였고, 저자는 그와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바마가 가고 트럼프가 들어선 미국은 분명 세계에 주는 메시지가 있었고, 책 전체에 (특히 역사나 논픽션에 관한 서평에는) 이런 우려가 잔뜩 묻어나온다. 문제는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했지만, 세계 곳곳에 이런 작은 트럼프들이 우후죽순 돋아났다는 것이고, 이런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각각의 항목들이 A4 한 페이지 정도(책으로는 서너 페이지 안팎)로 짧게 쓰여서 읽는데도 그리 부담이 없다. 물론 방대한 (이 책의 경우 주로 미국의) 역사와 문학사, 정치와 철학에 대한 선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여기에 소개된 내용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굳이 겁낼 필요는 없는 게, 그런 걸 알아보자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데 즐거운 거고.


이 정도의 책을 가지고 좀 더 넓은 독서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 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기 소개된 책들 중 몇 권을 따로 챙겨뒀다. 당장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한 열 권 남짓. 또 나중에 보면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올 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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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문자를 찾아서 - 문자 덕후의 발랄한 세계 문자 안내서
마쓰 구쓰타로 지음, 박성민 옮김 / 눌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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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거의 70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인구들은 약 6천 가지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 중 현재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채 100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그 절반쯤 된다고 한다). 그래도 적지 않은 수이다 보니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문자들도 많다. 이 책은 그런 세계의 여러 문자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어렵고 딱딱한 책일 것 같지만, 막상 읽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 가벼운 느낌마저 줄 정도. 그건 저자가 책에서 문자를 소개하는 방식에서 바로 알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주로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글자의 “모양”이다. 어떤 문자에 직선이 많은지, 곡선이 많은지, 특징적인 가로선이 있는 인도 쪽 문자들이나 마치 무슨 그림 같은 마야 문자 등등. 거의 모든 항목을 그 문자가 가진 모양에서 받는 인상을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모양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도 무슨 학술적인 근거가 있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저자의 개인적인 느낌과 감상뿐이다. 예를 들면 왠지 날카롭게 생긴 티베트문자는 뾰족뾰족해서 위험하다거나, 캄보디아에서 사용하는 크메르문자의 모양이 왠지 빨래를 널어놓은 것 같다는 식.


아, 방금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을 설명했는데, 저자가 말 그대로 유머에 대한 강박증이라도 있었는지, 모든 항목에 이런 식의 아재 개그를 넣고 있다는 점이다. 아재요, 유머 그렇게 쓰는 거 아니에요.





너무 책에 대한 혹평만 했나 싶어 그래도 이 책의 장점을 하나 꼽아 보자면, 전 세계의 독특하고 다양한 문자들을 한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평소에 이런 생소한 문자들을 애써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았던 차에, 서로 영향을 준 비슷한 문자들을 모아 볼 수도 있었고.


당연히 한글에 대해서는 어떻게 써놨을까 궁금해 가장 먼저 찾아봤는데, 간략한 사실에 대한 서술 말고 별다른 감상도 없다. 이쪽은 드디어 아재개그가 다 떨어진 걸까. 반면 일본 문자인 가나에 대해서는 굉장한 찬사를 붙이고는, 막판에는 문자가 없는 민족들에게 그들의 말을 적을 수 있는 문자로 가나를 추천하자는 말까지 (물론 반쯤은 장난으로 유쾌하게) 덧붙인다. 근데 가나는 모음 표현이 너무 부족해서 힘들 거예요.



성인보다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에게, 세계의 다양한 문자들을 가볍게 소개하는 책이라고 보면 또 뭐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개중에 문자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은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찾아보면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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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로스트 -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반려동물 실종·발견 포스터
이언 필립스 지음, 허윤정 옮김 / 생각비행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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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재미있게 생긴 책이라 들고 왔다.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반려동물 실종·발견 포스터”라는 긴 부제가 붙어 있어서 한눈에 어떤 책인지 내용을 알 수가 있다. 이 책은 정말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연으로 잃어버리게 된(탈출을 감행한 경우도 있고, 도둑맞거나, 강도를 당한 경우도 있다) 반려동물들을 찾는 주인들의 애타는 마음을 담은 포스터들을 모아놓았다. 다만 “세계”라고는 하지만 대개는 북미 지역이고, 유럽이 그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는 그냥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정도다.


여전히 동물을 학대하는 어딘가 삐뚤어진 사람들의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드물지 않다. 요새는 동물과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도 이전에 비해 그 양과 질이 훨씬 많고 다양해진 느낌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이야기가 호응을 얻고 있다는 뜻이리라.


이 책도 그런 일환으로 나온 것 같다. 아무튼 동물 이야기는 호응(돈)이 되니까. 다만 그 내용이 동물을 잃어버렸다는 사연이 모아진 포스터들이라는 게, 그냥 호기심이나 재미로 책장을 넘기기에 좀 미안해지긴 하다. 물론 여기에 실린 포스터들은 지금으로부터 20년은 지난 것들로 보이니, 그 사연 속 동물들은 진작 세상을 떠났을 게다. 그러니 조금은 편하게 봐도 되는 걸까.


책 편집이 읽어가기 쉽게 되었다. 맞쪽으로 되어서 오른쪽에는 실제 포스터가 왼쪽에는 그 번역(외국어로 되어 있거나, 삐뚤빼뚤해서, 원서에도 필요했을 부분이다)이 실려 있다. 하나하나 번역을 읽어가도 좋고, 그냥 포스터 이미지 자체만 봐도 즐겁다. 몇몇 포스터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귀여운 동물 모습이 실려 있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동물을 찾으려고 하는 주인들의 마음이 그 자체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다. 아주 오래 전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한 마리를 데려왔다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이걸 ‘길렀다’고 하긴 힘들 것 같다) 죽고 난 뒤에는 말이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큰 개가 있었던 기억은 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얼마 전 집에 작은 어항을 하나 들여놓았다.(작긴 해도 은근 돈이 들어가더라)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물고기들이었는데, 초보자의 실책인지 몇 주 새 모두 다섯 마리가 죽더니, 남은 녀석들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해 사는 듯하다. 최근에는 새끼들까지 바글거리면서 어항이 좁아지진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교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함께 있다는 게 꽤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동물에게 지나치게 극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공감이 될 때도 있다. 동물을 언급하며 “동물권(동물의 정치적 권리)”나 “종차별주의” 같은 말까지 운운할 때면 살짝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건 좋지만, 동물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려는 욕심은 파국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다. 그건 동물에 대한 강력한 지배욕의 다른 모습이고,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동물의 의사 따위는 무시되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과의 교감을 포기하지는 말자. 그렇게 버리기엔 너무 소중한 경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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