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 이교도와 기독교인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콘스탄티누스까지 종교적 경험의 몇 가지 측면 철학의 정원 45
에릭 R. 도즈 지음, 송유레 옮김 / 그린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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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신청도서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해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예상했던 것보다 얇아서 놀랐다이거 금방 읽을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평친 후 또 다시 놀랐다이거 이렇게 지루하다고?

 

우선 책의 장르에 대해 잘못 예상하고 있었다난 역사책인 줄 알고 펼쳤는데내용은 철학책이었다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민족들의 강력한 침입으로 야기된 3세기 로마제국의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던 두 부류(이교도기독교인)의 차별적인 대응에 관한 서술을 기대했었다사실 책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맞았다다만 그 초점이 철학적 내용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에서 예상을 빗나갔지만.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각각 물질(1), 영혼(2), 신비(3)라는 주제에 관한 기독교인과 이교도들의 관점을 비교대조하고 있다저자는 시대가 혼란해 지면서 이 땅에서의 삶물질육체와 간은 요소들에 대한 무시비하나아가 증오와 같은 감정이 널리 퍼져있었다고 말한다여기에는 기독교인들과 이교도의 차이가 그다지 없었다.


자연히 물질에 반대되는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늘어갔다저자는 3세기 이후 사적인 영매들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는 문헌을 근거로이교도들 사이에 늘어난 영적 관심을 지적한다흥미로운 건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디다케” 같은 문서에서는 돈을 요구하는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경계가 나타나고몬타누스 같은 과격한 영적 황홀경을 추구하던 사람들도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의 불안의 시대에 나타났다.


이와 비슷한 신비주의도 이 즈음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이 역시 기독교인들과 이교도 양쪽에 유사하게 이 시기 강조되어왔는데고통과 증오로 가득한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저자는 다양한 측면에 있어서 기독교인과 이교도 사이에 비슷한 입장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그러나 분명 양측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당연한 이야기다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다른 부류로 구분되지 않았을 테니까.


저자는 기독교인과 이교도들 사이의 대화(물론 이 대화는 종종 적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들을 검토하면서 결과적으로 이교도들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제안하지 못했다고 결론짓는다당시 기독교는 오랜 역사 가운데 수많은 신들을 쌓아올린 이교신앙의 무게를 줄여주어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었고이교도들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어서 신분의 차별 없이 수용했고나아가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했다불안의 시기에 이보다 적합한 덕목도 없을 것이다.


 

결론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 중 하나는기독교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반대로 이교도 순교자는 거의 없었다고 말하면서그 이유를“‘(기독교가 통치세력이 된 시기기독교가 더 관용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이교가 그 당시 목숨을 걸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다누구도 초라한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언뜻 그건 저자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겠지’ 싶을 지도 모르지만저자는 자신을 불가지론자신앙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때문에 기독교 쪽보다 이교 쪽에 더 많은 지식이 있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말하고 있기까지 하다불가지론자가 반드시 중립적이라는 보장은 없지만사회학적철학적 입장에서도 3세기 경 기독교가 사상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반면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기독교의 인기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학문적으로 고민해 볼 만한 주제인데이쪽은 좀 더 개인적인나아가 신앙적인 차원에서의 질문이다. 3세기에는 강점이었던 기독교의 특징이 지금은 강점이 아니게 된 것인지아니면 과거 가지고 있던 강점을 교회가 잃어버리게 된 것인지.


여전히 세상은 혼란하다경제적으로는 발전했을지 모르지만곳곳에 야만적인 전쟁의 야욕을 드러내는 독재자들이 설치고 있고많은 수의 민주국가들은 극우 선동가들의 위협에 휘청대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다시 한 번 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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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읽는 장자 - 길 잃은 세상에서 죽어가는 마음을 살리다
장자 지음, 조현숙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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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인간들의 사상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시기이기도 했다우리가 잘 아는 공자니 맹자니 하는 인물들이 모두 이 시기를 배경으로 활동했다이른바 제자백가 시대다이들은 하나의 학문적 전통을 형성해서 유가나 법가 같은 후대에도 널리 알려진 학파를 이루었고근래엔 묵가나 명가 같은 조금 덜 알려진 부분도 제법 언급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도가다노자와 장자로부터 시작된 이 사상은 자기를 비우고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순리를 따르는 삶을 중요하게 여긴 사상이다조금은 현실 도피적 경향으로 보이지만(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어차피 육신을 가진 인간이 현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니 결국 이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덜 집착하고자기만족의 삶을 살 수 있는지가 주가 될 수밖에 없다.


이후에도 이 도가 사상후에는 도교로 발전한 민간 신앙으로서의 도가는 은근 중국 민중 문화에 깊게 영향을 주었다불교나 유교가 국가적인 종교사상 체제와 합쳐져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면반대로 도가는 대체로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물론 도교가 되면 지극히 현실중심적인 기복신앙화 되는 면도 있지만.

 


이 책은 그 도가 사상을 종합한 책인 장자’(도가 사상가인 그 인물과 이름이 같다)의 일부를 발췌 편집해 읽기 쉽게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참고로 장자는 크게 내편외편잡편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내편을 장자가 쓰거나 말한 것을 모았고나머지는 그 제자들과 계승자들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근엔 그 내편 중에서도 일부만 장자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기록된 것으로 본다고 하는데어찌되었든 도가 사상의 핵심적인 책이라고 할 만.


처음엔 그냥 호기심에 빼본 책이었는데의외로 금세 빠져들게 만든다우선은 편집자가 장자’ 중에서도 독자가 관심을 가질 것 같은 내용들을 위주로 뽑아서 모아두었기 때문일 것이다지루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여러 책들로부터 뽑은 내용을 순서에 구애받지 않게 주제별로 과감히 모았다예컨대 이 책에 실린 장자의 첫 번째 구절은 이렇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마음이 죽는 것입니다.” ~


물론 편집을 잘했다고 다 재미가 있는 건 아닐 터조금은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내 성향과도 어느 정도 맞는 면이 있기 때문에 글이 더 와 닿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여기저기 북다트로 표시를 해 가며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으니까.

 

편집자가 나름 순서를 정해 항목을 배열했지만꼭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그저 아무 데나 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찾아 읽고 생각해 보면 충분할 일형식이나 허례를 멀리하려 했던 장자의 생각에 그게 더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자기 위로를 위한 책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뭔가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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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이광수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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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힌두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다인도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믿고 있는 종교니 만큼그 인구만 해도 적지 않지만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나 불교이슬람교 같은 주요종교의 목록에 잘 오르지 못하는 것 같다물론 이슬람교도 우리나라에 그 인구는 많지 않다고 하지만그래도 워낙에 언론에 (조금은 나쁜 이미지로자주 오르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힌두교보다는 익숙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오해가 달라붙기 마련이다어떤 건 부정적인 차원에서또 어떤 건 옹호나 보호를 위해서 생겨나는 말과 생각이지만어쨌든 실제를 감추고 가린다는 차원에서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힌두교에 관해서 그런 오해들이 많이 있다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로 저자는 힌두교가 온전히 영적인 차원에만 집중하는 신앙체계라는 생각을 꼽는다책 후반부에 소개되는 내용이지만이런 오해는 오리엔탈리즘에 기초한 동양의 후진성을 강조하려는 생각에서 시작했고후에는 동양의 신비한 종교에는 뭔가 있다는 식의 낭만적 착각과 윤색으로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주장은 힌두교는 절대로 정신문화나영적이기만 한 신앙이 아니며오히려 초기부터 매우 물질적인 신앙체계였다는 점이다사실 4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종교가 어떤 변화도 없이 이어져왔다고 하면 그 또한 진실과 멀어질 터이 책은 힌두교의 오랜 역사를 훑어가면서 그 안에서 나타났던 다양한 사상들과 변화들을 정리해 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초기 힌두교 신앙은 제물을 바침으로써 신들로부터 더 큰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지극히 물질적 바람이 형식화된 것이었다이 때 제의를 주관하던 계층인 브라만들의 지위가 상승했다종교적 권위로 시작한 브라만들의 힘은 점차 사회적으로도 높아졌고이에 대한 반발이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일찍부터 나타났다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붓다의 불살생’ 주장을 꼽는다.


브라만 중심의 제의 종교에서 제물이 되는 동물의 도축은 중요한 부분이었다그러나 이건 유목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가능했을지 모르나농업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점차 농사에 중요한 소를 도축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저자는 붓다의 불살생의 핵심에는 농사의 도구가 되는 소를 도축하는 일에 대한 저항금지라는 새로운 농업 윤리가 깔려있었다고 말한다신선한 해석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후 힌두교의 행보다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불교로 독립하거나비슷한 시기 비슷한 관점으로 제의중심적 종교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자이나교 등으로 분화했다하지만 이 이후에도 제의를 중심으로 한 물질적 기복신앙은 여전히 힌두교의 중요한 한 축으로 남는다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탈속을 주장하는 불교나 자이나교의 가르침 역시 힌두교로 흡수해 버린다(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붓다 같은 이들 역시 힌두교의 스승으로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아니단순히 흡수하는 수준이 아니라중요한 축으로 삼아버렸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북부에서 시작된 힌두교 신앙이 남부로시골로 퍼져가면서 토착신앙과 만나는데이번에는 다시 그 토착 신앙마저 흡수해 버렸다(대단한 소화력이다). 애초에 베다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고전적인 경전은 신들의 성격에 대해 모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바로 이 점을 고리로 이절적인 신앙과 신들까지 묶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힌두교는 철저하게 탈속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었다오히려 강한 현실지향성을 가지고 있었다화려한 제의를 가진 힌두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했고자연히 세속의 군주나 부유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서양인들이 낭만적으로 그리는 연약하고비물질적이며신비한 영적 종교라는 그림은 근래에 만들어진 허구였다.


현대에 들어 힌두교는 크게 두 가지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하나는 신힌두교이고 다른 하나는 힌두뜨와 운동인데전자가 앞서도 언급한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해석된 정신적 종교로서의 힌두교라면후자는 힌두교에 관한 신화적 이해를 바탕으로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격한 정치운동이다가끔 해외뉴스로 전해지는 인도의 과격한 힌두교신자들이 바로 이 힌두뜨와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

 


한 종교의 수천 년 역사를 단 번에 읽어내는 게 쉽지는 않다더구나 조금은 생소한(그리고 긴이름들이 잔뜩 등장하면 더더욱 장벽이 생기는 느낌이다하지만 힌두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큰 장벽은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교리체계를 유지보수해 온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힌두교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초기의 유목민족 시대의 그것과 농경시대의 그것은 사뭇 다른 모양이었고현대 인도의 힌두교와도 다른 점이 잔뜩 있다당장 힌두교인들이 숭배하는 신들의 지위나 역할부터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어 왔다.


여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교리나 전체적인 그림을 아예 배우지도 못한 채그저 전통적인 신앙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니이 책에서 저자가 정리한 힌두교의 축을 부정하는 힌두교인들도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러니 이 한 권의 책으로 힌두교의 역사를 단번에 파악하는 건 힘든 일이다겨우 윤곽만 잡았달까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기 전보다는 힌두교에 관한 이해가 훨씬 깊어졌으니 보람은 있다힌두교에 관해 진지하게 읽어보고자 한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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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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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지만 괜찮은 통찰을 담고 있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비평서다개인적으로는 피로사회”, “아름다움의 구원에 이어 세 번째 손에 든 책이다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는 진통사회이다우리말로는 고통 없는 사회로 번역되었는데삶의 모든 부분에서 고통이라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미덕이 된아니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책의 시작부터 진통사회의 문제점이 날카롭게 지적된다고통에 대한 공포가 만성적인 마취상태를 초래하게 되고이는 사회적으로는 대결을 초래할 수 있는 갈등이나 논쟁을 제거하고정치적으로는 일치와 동의를 강제하고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갈등과 논쟁이 사라지고 일치와 동의만 남은 세상은 완전히 경직된끔찍한 전체주의적 사회일 것이다.


이런 진통의 기능은 다양한 요소를 통해 이루어진다삼성전자의 이재용도 빠져들었다는 프로포폴 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남용되고마약 사건도 이전에 비해 그 발생빈도가 훨씬 늘어나고 있다저자는 그 이외에도 소셜미디어나컴퓨터 게임 역시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지적한다그 역시 인식과 성찰을 가로막고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아주 작은 고통조차도 제거해 버리려 애쓰더라도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동화 속 공주처럼두꺼운 매트리스 아래의 완두콩으로 인한 고통을 제거하면이제 매트리스 자체로 인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에게서 고통이 사라진다면 인간다움 또한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고통에 대한 과도한 회피의식은 생존의 히스테리와도 같다오직 생존만이 전부가 되어버린 상태는 좀비와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

 


문장 하나하나가 현실을 날카롭게 베어내면서 그 안에 담긴 고름을 짜내 드러낸다중립중도가 선()인 양 가장되는 사회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양비론과 양시론밖에 남지 않은 언론의 뉴스에 볼 것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처음부터 진영논리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키클롭스 언론들은 애초에 버리면 그만이지만그저 모두 까기에나 열을 올리는 자칭 중립적 언론들도 쓸 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통이 사라지면서 삶과 세상의 좀 더 깊은 의미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행 사진음식 사진에서 인생의 좀 더 깊은 의미는 쉬이 발견할 수가 없다단지 현재를 즐기라는 지긋지긋한 메시지만 반복될 뿐사람이 달라지고장소가 달라지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고통과의 싸움고통을 제대로 직면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깊어진다그러나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오래된 진리는 오늘날 어느 샌가 사라져버렸다모두가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쫓기고 있는 느낌이다대화를 해도 좀처럼 깊은 데까지 나아가기가 힘들고겉도는 경우가 태반인 이유다.

 


다만이렇게 고통을 제거하려는 과도한 시도가 일으킨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넘어가고통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와 닿아있다는 데까지 나아가는 게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통의 과도한 회피가 문제라면고통에 대한 과도한 집착 역시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사디즘 같아 보이기도).


좋든 싫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마주한다그건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재난이다(고통 그 자체는 선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건 어떻게 그 고통을 잘 받아들이고 극복해 성장할 수 있을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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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진리나무 - 아마추어 철학자가 진짜 철학자다!
안광복 지음 / 궁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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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추어 철학자가 진짜 철학자라고 외치는 저자는일상 속에서 철학을 하기 위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내고마음을 차분히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글을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하나하나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입에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려서 얻을 수 있는 건 세상에 별로 없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보여준다짝퉁(복제물), 양성평등시간에 대한 감각전통놀이복수 등 철학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주제들은 우리 주위에 널려있다책의 2부에서 5부까지는 이런 주제들을 하나씩 언급하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직 고등학교 철학교사이기 때문인지애초에 책의 독자설정을 그렇게 했던 것인지철학책이지만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쉬운 문체로 쓰였다고등학생 정도라면 이 책에 나온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해 볼만할 듯도 싶다각 장의 말미에 생각해 볼만한 질문까지 실려 있어서 여기에 도움이 될 듯도 싶다물론 우선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아이들이어야겠지만.


     다만 각 주제들에 관한 통찰이 아주 깊게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어느 정도 인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만한 정도이건 앞에서 말했던 독자 설정’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각 장의 말미에 앞서 말한 생각해 볼 질문들과 함께그 장에서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 읽어볼 만한 책들도 아울러 소개되어 있으니추가적인 공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참고해 볼 만하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관한 설명을 정답처럼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몇몇 항목들에 관해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또 그렇게 저자의 생각과 다른 점을 찾고 내 입장을 정리하고 하는 과정이 철학에서 중요한 거니까예컨대 형벌의 본질을 교화에 두는 저자의 입장(184)은 지극히 현대적인근대에 들어서야 새롭게 발명된 관점이다범죄자를 어떻게 교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효과적인 합의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만 주장하는 건 조금 무책임해 보인다차라리 손봉호 교수(고통받는 인간)의 처벌의 응보성에 대한 강조가 내게는 더 와 닿는다.

 


     사람들의 생각이 얕아지면 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선동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이다온갖 구호들만 난무하고대화보다는 목소리의 크기로줄 선 사람들의 규모로심지어 폭력으로 해결하게 되기 때문이다이런 문제는 정치 지도자 몇 사람 때문에 만들어지는 현상은 아니다물론 그들이 그런 혼란에 불을 붙일 수는 있겠지만사고의 깊이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정답 맞추기식 교육이 아니라사고의 지평과 깊이를 넓히는 교육이 필요할 텐데 당장의 점수와 대학 간판에 매몰된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하지만 문제 해결 역시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비결 따위는 없는 거니까일상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좀 더 깊게 고민해 보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세워보는 연습이 차근차근 이루어져야 할 거다꼭 이 책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처음이라면 한 번 볼만한 느낌.

 


 94쪽의 단순화된 헬라어라는 표현은 단순화된 코이네 헬라어로 표기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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