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동아리.


꽤 오래 전에 이런 이름의 동아리들이 있었던 것 같긴 하다내가 다녔던 대학에는 없었지만소위 밀레니엄 세대들의 뻘짓이야 유명하지 않았던가우리나라의 경우 IMF 시대를 거치긴 했지만그래도 전반적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 풍요롭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의 혜택을 물씬 받았던 이들모뎀을 통한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면서 가끔 이상한 데 꽂히기도 했던 그들.


미스터리한 심령현상을 무슨 기계로 쫓아다니겠다는 소리도 그 시절에는 흔하게 들렸었다과학과 심령술을 억지로 꿰맨 이 영화 속 주요 소재도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키치처럼 보이기도 하다뭐 대체로 핑계 김에 친구선후배들과 몰려다니면서 술판이나 벌이려는 얄팍한 속셈으로 모인 애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낭만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요샌 고등학교에서부터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기 동아리가 유행이고대학에 들어가면 취업 동아리에만 사람들이 몰리는 상황이라니까뭐 그래도 여전히 어디든 온갖 구실을 들먹이며 딴짓에 눈이 팔린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


영화 소개 사이트를 보면 원작 웹툰이 존재하고그 웹툰의 경우 사운드 효과갑툭튀 효과 등 공포적인 장치 없이 오로지 흥미로운 이야기만으로 네티즌들을 사로잡은 작품이라는 소개가 붙어있다뭐 웹툰에 사운드 효과가 없는 건 당연하고갑자기 툭 뭔가가 튀어나온다는 의미의 갑툭튀역시 제한된 카메라 앵글 안쪽만 볼 수 있는 영화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애초에 스크롤을 하면서 보는 웹툰에서 무슨 갑툭튀가 가능할까.


허술한 영화 소개글처럼영화 자체도 허술하기 그지없다나름 주연을 맡은 정은지의 어색한 연기력은 둘째로 치고(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력도 그냥저냥이긴 마찬가지), 원작웹툰에는 없었다는 사운드 효과와 갑툭튀로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짜내려고 하는 제작진의 상상력도 빈곤하기는 마찬가지다하다못해 인물들이 지니는 서사도 부족하고, ‘얘네는 하릴 없이 여기 와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공포영화의 경우 특수효과보다 오히려 연기력이나 캐릭터 구축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편인데이 영화의 경우는 어느 것 하나 볼만한 게 없다심지어 영화 속 폐가의 귀신의 사연이라도 좀 더 제대로 묘사했다면(지나가듯 언급은 된다조금은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젊은 꼰대.


동아리 회원 중 한 남자 캐릭터가 있다성격에 좀 결핍이 있는 인물인데자신이 짝사랑 하는 동기가 동아리 회장과 사귀는 걸 알고 혼자 씩씩대다가귀신에 들려있는 그 여자 동기를 겁탈하려다 결국 귀신에게 비참하게 죽는 역이다.


시종일관 딱딱하다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후배에게는 선배인 티를 못 내 안달이고사람이 죽은 폐가에 가서 술 쳐마시려는 걸 알아챈 동네 슈퍼 주인이 한 마디 하자 그걸 또 곱게 못 넘기고 꼰대티를 낸다며 욕을 해댄다그런데 정작 술판의 진행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후배들을 잡는 꼰대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거.


나이가 많다고 꼰대가 되는 게 아니고나이가 적다고 생각도 젊은 게 아니다전세계적으로 청년들의 보수화가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는데보수주의 정당심지어 극우정당이 득세하는 데는 이런 보수화된 청년들의 힘이 컸다흥미로운 건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기성 세대에 대한 반발혹은 반대의 메시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


물론 정치적 견해야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문제는 일상 가운데서 실천은 안 되면서 입으로만 나불댄다는 것영화 속 젊은 꼰대처럼 자기가 하는 꼴은 못 보면서 남을 지적만 하는 거야 말로 꼴불견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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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흔히 마블의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낸 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줄여서 MCU라고 부르지만우리나라에는 같은 영어 약자가 좀 다른 걸 가리킨다이른바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것공통적으로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고압도적인 하드웨어와 힘으로 나쁜 놈들을 곤죽이 되도록 때려눕힌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는 그닥 정교하지도 않다주인공은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지만 실은 상냥하고 착하다는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고처음에는 좀 주저주저 하는 느낌이지만 일단 상대가 진짜 나쁜 놈들이라는 게 확인되는 순간 가차 없이 쓰러질 때까지 때린다나온 지 몇 년이 되어서 이제는 케이블 채널에도 심심찮게 방영되는 이 영화도 그런 MCU의 전형적인 영화다.


사실 작품성이랄 것도 없고재미라는 부분도한두 편을 보면 딱히 반전 같은 게 없을 거라는 게 뻔히 짐작된다그런데도 사람들이 꽤나 여기에 호응을 하는 이유는 뭘까그저 나쁜 놈들을 혼내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물론 이 점은 꽤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인과응보는 우리들의 윤리적 관점을 자연스럽게 만족시켜주니까.


특히나 현실 세계에서 분명 나쁜 짓을 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거나매우 약한 처벌만 대충 받는 시늉을 하는 일들을(주로 고가의 변호사를 구입할 경우 높은 확률도 일어나는 이벤트다자주 마주하는 상황이다 보니이런 영화적 허구에 대한 열광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그저 비틀기만 하면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왜곡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워낙에 자주 영화판에 출몰하는 상황이라이렇게 조금은 단순하면서 분명하게 상식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영화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마동석의 주먹.


그런데 마동석의 폭력에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그는 절대로 무기를 들지 않는다일부 장면에서 잠시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전반적으로 그는 언제나 맨손으로 상대와 싸운다상대가 칼을 들고 있어도몽둥이와 총을 들고 설쳐도 언제나 그는 주먹으로 승부한다이 과정에서 거의 항상이라고 할 정도로 부상을 입지만개의치 않고 결국 상대를 들어서 매다 꽂는다.


물론 그래도 상대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하드웨어를 지니고 있는지라오히려 무기를 들고 있는 쪽이 더 위험해 보이는 게 함정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이쪽보다 수가 많거나무기를 들고 있거나 하니까 어느 정도 균형은 맞는다고 해야 할지도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한두 대 맞긴 하지만 시원하게 한 방을 날리는 데서 일종의 초능력자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우리나라는 소위 정당방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한밤 중 도둑이 들어와서 가족을 위협하더라도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보다 위험해 보이는 걸 들고 공격을 하면 정당방위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어쩌면 마동석의 맨주먹은 이런 로컬 룰을 따른 건가 싶기도 하지만아마도 이 정도 파워라면 맨손으로 싸워도 정당방위를 인정받기는.. 애초에 마동석은 방어하러 찾아간 게 아니잖아.







인신매매.


영화 속 악당 역인 김성오가 연기한 기태라는 인물은 여자들을 납치해 팔아넘기는 인신매매업자다우리나라 형법의 경우 기본적으로 사람을 팔아넘기면 7년 이하의 징역같은 일이라도 추행간음결혼영리를 위해 했다면 1년 이상 10년 이하노동력 갈취성매매성적 갈취장기 적출이 목적이었다면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 규정되어 있다흥미로운 건 국외 이송즉 영화처럼 해외로 팔아넘기려고 할 경우가 따로 규정되어 있다는 건데이 역시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법에서 규정한 게 그렇다는 거고언제나 범죄자들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 사법가족들은 대부분의 경우 인신매매로 기소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20년 인신매매로 입건된 251건의 사건 중 검찰이 기소한 건 고작 9건이었고비슷한 시기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건 5건에 불과했다.(물론 이들은 다른좀 더 가벼운 죄목으로 기소가 되어 처벌을 받긴 했다)


기본적으로 사법 기관들의 인식 부족이 문제다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에 뉴스에 소개되며 공분을 일으켰던 전남 신안의 염전 노예 사건이 그렇다. 60명이 넘는 지적장애인들을 감금하고 열악한 처우에서 사육하면서 강제로 염전 일을 시킨 악덕 업주들인데(당연히 10년 동안 아무런 경제적 대가도 주지 않았다), 자기들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다면서 무슨 자선가라도 되는 양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여 더욱 분노를 샀었다.


이 정도 대규모의 인원들이 노예 노동을 했는데당연히 지역 경찰 같은 행정당국이 몰랐을 리 없다하지만 섬 특유의 폐쇄성과 형님 동생 하며 다들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특성상 적당히 눈을 감았을 거다그럼 이들은 제대로 처벌을 받았을까아니다대부분은 기소는 되었으나 집행유예로 실형은 면했다이 악마들이 무슨 공무원 시험을 볼 것도대기업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어차피 돌아가서 다시 염전을 경영할 텐데 이게 무슨 처벌이고 타격일까.


현실이 시궁창이니마동석 같은 캐릭터가 나서서 인신매매 조직 일당을 맨주먹으로 깨부수는 장면이 통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생각해 보니 여기에 무기를 들지 않고 맨주먹만을 사용하는 게 어쩌면 더 옳았다그 찰진 타격감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 마음 속 한 구석에 있던 답답함을 깨끗하게 쓸어내 준다그의 영화가 매번 비슷비슷한 내용과 분위기전개라고 하지만답답한 현실이 훨씬 더 오래 반복되고 있는 게 더 문제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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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의 그늘.


일각에서는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것이 무조건 선진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하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징집을 당하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각종 훈련을 받고 작전에 투입되고 하는 일이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또 복무기간이 짧은 징병제 대신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충분히 훈련받은 인원들이 군사력을 오히려 강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정말 모병제는 만능의 해결책일까?


영화는 모병제 상황인 미군에서 타의로 전역하게 된 주인공의 비극적 상황을 그린다특수부대원으로 근무하던 제임스 하퍼는아마도 임무 중 입은 부상을 이유로 강제 전역조치를 당한다연금도 의료보험도 보장받지 못한 채 쫓겨난 그의 앞에는 그의 가족이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놓여있었고결국 그는 친구의 소개로 민간군사업체에 들어가게 된다.


업체의 보스는 자신들이 철저하게 합법적이며 정부가 직접 할 수 없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실제로는 더러운 돈을 위해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범죄 집단이었다문제는 이 업체에 일하는 이들이 모두 전직 군인들이었다는 것.


그런데 실제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많은 수의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용병이 되어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그 행동들이 모두 합법적이라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불법적인 고문도 이런 업자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한 때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던 이들이 저지르는 이런 일은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라고(그들이 속았다거나돈에 눈이 멀었다는 식으로치부하면 그만일까.





결국은 돈이다.


결국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국방비라는 게 신경 쓰지 않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매년 늘어나기 마련이고그러면서도 일반인들이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당연히 가장 먼저 삭감되는 비용이 이쪽이다(최근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그리고 비용을 줄이기 가장 쉬운 영역이 인건비즉 급료다.


전투에 익숙한 인원들이 제대로 된 생계 대책 없이 사회로 나왔을 때는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은 얼마든지 공공의 이익을 해치거나 다른 이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문제는 대개 장기적으로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그 해결책에 대한 고민도 뒤로 미뤄지기 십상이다장기적인 문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선거철마다 부동산과 감세 공약만 남발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게 세워질까결국 제도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이들의 불만은 커져만 갈뿐그렇다고 근본적으로 군대를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니...






탐욕.


영화의 흑막은 제약회사였다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막는 치료제 개발에 힘쓰던 과학자를 제거함으로써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말 그대로 물질 만능주의의 끝장이다.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그들이 말 그대로 흑막 뒤에 가려져있어서영화 속에는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영화에 보이는 건 희생당한 과학자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 제거임무라는 말에 속은 대원들그리고 그들을 보낸 업체의 보스 뿐.


주인공을 철저하게 희생자로만 볼 필요는 없지만진짜 탐욕의 근원은 언제나 그렇듯 완전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다진짜 나쁜 놈들은 비싼 정장에 비싼 와인을 마시면서 교양 있게 지낸다생각해 보면 그 비싼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한 일은 얼마나 사회에 유익했을까.


흔히 자본주의는 탐욕에 보상을 해 주는 제도로 여겨진다뭔가를 더 갖고자 하는 욕심이 사람을 더 부지런하게 만들고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추동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하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요즘이런 주장을 믿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탐욕은 발전의 동력일 수도 있지만동시에 악의 동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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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리는 경쟁.


영화의 중심에는 방송국 메인 뉴스의 앵커인 세라(천우희)가 있다같은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점에 있는 하나의 자리를 바라보며 일하는 조직에서 성공하는 일은 얼마나 진이 빠지는 일일까.

 

영화 속에도 그런 치열한 경쟁이 드러난다끊임없이 평가를 받으면서 자신이 그 위에 올라가야 하는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고그렇게 한 번 올라갔다고 해도 도전자들은 계속 나타난다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의 특성 상 실수 한 번으로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는 위태로운 자리이기도 하다.

 

영화 말미에서 진짜 흘리는 피는 그래서 하나의 상징처럼 보이긴 한다물론 영화의 구성으로만 보면 좀 진부해 보이기도 하지만끝없는 경쟁한 번 탈락하면 끝장인 무한경쟁 체제는 누군가를 밟아야 올라설 수 있는 잔인성을 지니고 있다경쟁은 발전을 이루기도 하지만때로는 모두를 함께 지옥에 빠뜨리기도 한다.






이중인격?


주인공 세라는 결혼을 했는데도 어머니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고어떻게 보면 어머니에게 조종당하는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영화 초반부터 이혜영이 연기한 어머니의 섬뜩한 모습에여기에 뭔가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물씬.

 

하지만 그대로 가기엔 좀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영화 말미에 반전을 하나 넣어두었는데그게 바로 이중인격(정식 명칭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이라는 소재다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무의식 중에 마치 다른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병을 가리킨다그 증상 자체가 확실히 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는데그 때문인지 공포나 스릴러 영화에 종종 사용되는 소재다.


영화는 실은 세라의 어머니가 이미 죽었고죽은 어머니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세라의 정체성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하지만 이 과정이 썩 개연성 있게 설명되지 않는 데다가세라의 엄마가 젊은 시절 같은 방송국 아나운서였으며세라를 임신함으로써(미혼모였다는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꽤 큰 스캔들이었을 듯숨어야 했다는 사연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가 좀 애매하다전반적으로 구성이 좀 아쉽달까.







 

여성을 중심에 둔.


직장 여성의 개인적인 성공과 임신으로 인한 경력 단절딸에 대한 모성애와 지배욕의 애매한 경계그 상대 개념으로 어머니에 대해 딸이 느끼는 구속감과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한 죄책감 등등 전반적으로 여성의 경험을 중심에 둔 영화다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정신과 의사 역의 신하균은 철저하게 설명을 담당하는 보조 캐릭터일 뿐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세라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태동을 느낀다아기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방송국에서 일으킨 사건으로 세라는 다시 일로 복귀하기가 불가능해졌을 것이고당연히 사법처리까지 받아야 할 상황이다그런 그녀가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신호일까.

 

세라의 어머니는 임신 때문에 자신의 일을 잃어 버렸다는 분노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임신은 그녀의 길을 막은 장애물이었을 뿐이었다그러나 그런 생각은 결국 딸의 삶마저 망가뜨리고 있었다어린 시절 어머니의 원망과 함께 목이 졸리는 경험을 한 것이 결국 세라의 병증을 낳은 것 같으니까.


사실 모두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임신은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계기일 수도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으니까결과가 달라진 건 개인의 결심 탓일까아니면 상황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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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한 수단.


알다시피 영화는 실제와는 다른 이름을 사용했으나실존인물을 배경으로 한다창대(이선균)가 열정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만들려고 하는 김운범(설경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담고 있는 인물이고그 외에도 김영삼박정희 같은 인물들도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다영화는 김대중/김운범이 강원도 인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7대 대통령 선거에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과정까지를 다룬다.


영화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수단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창대(이선균)를 중심으로 내용을 이어 나간다창대가 좀처럼 우직한 정면승부만을 고집하던 김운범(설경구)을 만나 그의 선거 참모가 되어 승승장구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영화 초반과 중반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했고운범조차 창대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결국 결별을 하게 된다당장의 승리가 급한 상황에서는 그런 수단이라도 붙잡아 보려고 하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 다른 소리냐는 비난을 할 수도 있지만사람이라는 게 또 그런 거니까아무래도 꺼림칙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는 법이다그러니 비열한 계략으로 뭔가 해보려는 이들이여 조심하라.






 

네거티브 전략.


선거란 결국 한 명의 승자만 남게 되는 것이기에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단점과 약점문제점을 부각시키는 전략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내가 한 표를 얻든, 상대가 한 표를 잃든 결과는 같으니까. 이를 모두 네거티브라고 평가절하할지상대 후보에 대한 검증이라고 표현할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검증은 필요한 일이니까.


상대방 주장이나 행적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해명을 요구하고 그 해명의 추가적인 문제점을 찾거나자신의 의혹제기가 충분히 소명되었다면 넘어가는 게 합리적 토론의 방식이다하지만 요새는 일방적인 자기주장만을 쏟아내는 게 선거운동의 주요 전략으로 보이니 영 꼴 보기가 싫다지나친 네거티브는 정치에 대한 환멸감만 고조시킬 뿐이다요새 자칭 무슨 대단한 선거 전략가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그냥 꼼수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영화 속 창대가 제안한 아이디어들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그리 비윤리적이라거나 한 건 아니었다는 게 함정오히려 요새 선거판에서 오고가는 저열한 공작들이 훨씬 질적으로는 더 나빠 보인다상대를 향한 인신공격과 거짓공세노골적인 차별과 편 가르기 등등사람들의 눈을 돌리고거짓말은 하지 않되 효과적인 홍보를 하자는 창대의 주장은 오히려 품위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민주주의는 발전하는가.


영화를 보면서 문득민주주의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고무신과 밀가루를 살포하던 방식은 지역 개발 공약으로 이름만 바꾼 것 같고선거철만 되면 난무하는 지역감정 조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여기에 온갖 종류의 갈라치지 계략이 더해지면서 더욱 심한 분열만 일어나는 것 같다.


흥미로운 건선거라는 과정이 늘 좀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하는 자연선택” 과정과는 멀어 보인다는 점이다애초부터 인간사회에 자연선택이니 적자생존이니 하는 이론을 갖다 대는 게 무리였을 지도 모르겠다선거는 얼마든지 비열한 방법을 사용해서 이길 수도 있고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탐욕을 자극하는 게 승리의 비결인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주의라는 게 그렇게 한심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외려 문제는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방치하면서도 알아서 잘 돌아갈 거라고 믿고 있는 태평한 사람들일 것이다군주정이라면 책임을 군주에게 떠넘길 수 있지만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제대로 결정하지 않으면 그 책임도 오롯이 자신들이 뒤집어 써야 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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