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영화.


일제 강점기 아버지와 형누나를 차례로 잃게 된 주인공이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의 가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제 부역자들을 직접 처단하기 위해 나선다는 설정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눈길을 끈다그 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사연으로 가족을 잃고인생을 잃었을까.


그런데 이 조금은 한국적인 소재의 영화가 사실 리메이크작이란다원작의 제목 역시 리멤버:기억의 살인자인데이쪽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죽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나선다는 스토리인가 보다그러고 보면 나치와 일제가 하는 짓이 비슷한 데가 많은 것 같다다만 수십 년 후에도 여전히 국가 지도자들이 나서서 반성하고 있는 독일과역사 왜곡에 진심인 일본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너무 큰 차이가 있지만.


물론 국가적 배상을 진행했다고 해서희생된 사람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개인적인 복수심혹은 원한이 남아있다는 원작의 설정도 이해는 간다하지만 온갖 친일행위를 하고서 오히려 해방 후에도 더 잘 나가며(그들은 기업가교수심지어 장군이 되었다자신의 과거를 변명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우리 쪽이 더 원한이 강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억.


영화의 제목부터 주제의식을 보여준다무엇인가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뭔가 행동을 요구한다(잘못된 역사교육은 그 반대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그것이 기억의 힘이다때문에 죄가 있는 이들은 피해자들이 모두 죽어 사라지기를그들이 남긴 증언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나아가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거고.


영화 속에는 과거 친구를 징용에 팔아먹고 이제는 교수가 되어서 반일민족주의 선동의 역사라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담은 책까지 내고 강연을 하는 부역자가 등장한다.(우린 비슷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한국 국적의 친일파들을 여전히 볼 수 있다.) 그는 과거에 사로잡힌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면서 과거를 과거에만 묻어두라고자신에게 질문한 청년을 질책하듯 충고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유명한 경구를 교묘하게 비꼬는 투다.


하지만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오히려 상처가 덧나거나일찍 치료했다면 완치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병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다상식적이지 않은 조치들이 제대로 교정되지 않은 채 고질병이 되면사회 전반에 부패와 기회주의가 판을 치게 될 뿐이다마치 지금 우리나라처럼.


안타까운 건 그런 사람들이 자주 권력을 잡는다는 거고그럴 때면 사회가 전반적인 퇴보를 겪게 된다는 점이다그들은 법과 규칙을 바꾸고그 적용을 멋대로 하고심지어 사법적 절차까지 장악해서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려 한다이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잊지 않는 것일 것이다.





국제시장의 대척점.


영화의 주제는 알겠는데전체적인 짜임새는 좀 아쉽다우선 주인공인 한필주(이성민)이 진행하고 있는 복수그것도 총기를 사용한 살인이 이어지는 과정이 지나치게 간단하게 이루어진다는 점반면 경찰의 수사는 너무나 미흡해 보이는데심지어 일본 대사관에서의 세 번째 복수에서는 얼굴까지 확인했으면서도 네 번째 사건을 제대로 막지 못할 정도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여러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그런데 비슷한 지적이 예전에 황정민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보였던 것 같다흥남철수부터 시작해 6.25, 베트남전독일 광부 파견 등등 한국 근대의 주요 사건을 모조리 겪으면서 성장사를 그렸던 영화를 향해일부에서는 지나치게 우파적 관점의 성장신화를 보여준다는 비판을 했지만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야 영화적 각색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봤었다.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이 영화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물론 서 있는 곳은 반대편이지만친일의 결과로 얻은 돈으로 큰 부자가 된 인물이나반일을 비판하며 책까지 내는 교수서울 한 복판에서 성대하게 벌어지는 자위대 창설행사나 거기에 참석해 축하하는 대한민국의 인사들그리고 일제에 충성하던 군인이면서도 해방 후 공산당과 싸운 영웅으로 변신한 장군까지.. 이 모든 인물이 한 사람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건 확실히 무리지만이게 또 다 없는 일들은 아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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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아웃케이스 없음
벤 스틸러 감독, 벤 스틸러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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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


영화의 주인공 월터는 시도 때도 없이 멍 때리는 일이 빈번하다멍 때리는 게 일종의 뇌의 재부팅과 비슷하다며 가끔 그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이쪽은 상태가 좀 심각하다엘리베이터 안이나 사람이 많은 광장 한 쪽에서도 멍 때리기 일쑤니까.


그런데 월터의 멍 때리기는 엄밀히 말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런 시간은 아니었다그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 시간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친다마치 마블 영화 속 히어로처럼 밉상인 직장 상사를 때려눕히기도 하고짝사랑 하는 상대와 로맨틱한 연애를 하기도 한다이 모든 게 대낮에 일어난다는 면에서 백일몽(白日夢)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사실 심리학에서 백일몽은 도피기제의 한 형태라고 한다현실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상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매커니즘그런데 그 상상이 너무나 달콤하니까현실에서 주지 않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진짜 세계에 오히려 적응하기가 어려워진다.


영화 속 월터도 비슷했다. 16년째 회사에서 사진현상이라는 같은 일을 하면서누구에게도 주목받아본 경험이 없었던 그는 온라인 연애사이트의 프로필란에 변변한 취향이나 경험을 채울 수조차 없었다그런 그의 상황을 바꾼 건 상상이 아니었다.





한 발자국.


월터는 우연한 기회로 사진 한 장을 찾기 위한 여행에 나선다그리고 이전이라면 그저 상상만 했을조금은 황당하고 환상적인 일을 경험하기 시작한다이 과정에서 소심하기만 했던 그의 성격에도 점점 변화가 일어나고이전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를 바꾼 건 상상이 아니라 모험적인 일에 한 발을 내딛은 것이었다처음 사진을 찾으려고 북유럽의 어딘가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모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우선 그렇게 한 발을 내딛으니 자연스럽게 또 다른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었고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의 자리를 저만큼으로 옮겨놓은 것결국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은 오늘의 한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꾸었던 꿈상상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도 같다그가 상상하지도 않았다면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꿈을 꾸는 시간도그걸 현실로 옮기는 시간도 모두 소중한 법.





파랑새.


영화는 파랑새 이야기와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우리가 간절히 찾던 것이 알고 보니 우리 곁에 있었다는 내용월터가 수많은 모험을 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 여행은 잃어버린(것으로 생각했던필름을 찾기 위해서 사진작가를 찾아 나서기 위한 것이었는데북유럽의 오지를 돌아다니고 있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게 되었던 것.


사실 생각해 보면 회사가 인수합병 되면서 곧 사라질 상황이었고새로 들어온 임원은 월터와 그의 작업을 무시하기만 하는 상황에서 그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필름을 찾아 나설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그리고 이쯤해서 떠오른 건 그가 찾으려 했던 건 단지 필름이 아니라자신의 존재 이유가 아니었나도 싶고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영화의 결말부에서 그 필름의 내용이 잡지 표지에 실리면서 그건 증명되었다.


그런데 그건 결과를 보니 그렇다는 것이고애초에 월터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게 자신의 지갑 속에 있는지 어땠는지 알 도리도 없었을 테니까우리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하고그 길의 끝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걸 발견하는 일을 반복해야 할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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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된 이유?


남북의 치안요원(경찰)이 힘을 합쳐 범죄자를 쫓기 위한 공조를 한다는 설정의 이 영화 시리즈의 후속편이 돌아왔다영화에서 개그를 담당하는 유해진과 멋짐을 담당하는 현빈이 공조가 썩 나쁘지 않았던 전작이었는데이번에는 미국 FBI 요원 잭(다니엘 헤니)까지 더해서 3국 공조를 만들었다.


굳이 듀엣을 트리오로 만든 이유는 뭘까전편의 이야기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걸까그래서 한 명이 추가되면서 이야기가 좀 더 짜임새가 생기거나깊이가 생기거나 했더라면 괜찮은 선택이었겠지만전반적으로 딱히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았다세 명이 동시에 잡히는 화면이 몇 번 나오기는 하지만전반적으로 다니엘 헤니는 조연 격에 머물고 있었고여전히 유해진과 현빈만이 주로 뛰어 다닌다이야기의 배경이 외국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전체적인 액션 양도 그리 는 것 같지 않다심지어 그 질이 향상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전편과 비슷한 종류의 건물 침입 장면이라든지자신의 가족이 죽었다고 무차별 독가스 테러를 감행하려고 하는 빌런이라든지손발이 오그라드는 드론+패스 키 전달이라든지... 뭐 영화의 장르가 애초에 코미디 액션이라는 걸 생각하고 보면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북한미국그리고 한국.


영화의 주요 인물의 국적은 북한(림철영), 미국(), 한국(강진태)이다전편과 마찬가지로 일단 공조를 하긴 하지만서로의 속셈은 따로 있었고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마음을 열고 하나로 모으게 된다는 스토리는 비슷하다.


그런데 실제 외교 상황처럼우리나라의 위치가 미묘하다북한과도 미국과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정작 북한에서는 우리가 미국편이라고미국에서는 북한편이라고 한 마디씩 던지는 장면이 영화 초반 등장한다아 서럽다.


덩치 큰 두 사람 사이에 키 작은 유해진이 배치되는 코믹스러운 장면은 이런 관계를 한 눈에 보여주는 모습이다여기서도 치이고저기서도 치이고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 땅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손 놓고 지켜볼 수만도 없다어쨌든 주도권을 갖고 양측을 적절하게 이용협력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밖에외교란 그저 어느 한 쪽 편에 줄서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북한 사람과 결혼하면 위법일까?


전편과 마찬가지로 윤아가 연기하는 민영은 북에서 온 철영을 짝사랑 하고 있다일단 그 엄청난 외모와 하드웨어를 보고 반했다는 설정인데유해진과 함께 망가지면서 영화에 웃음을 더해주는 역할이다예쁘기로 유명한 윤아가 작정하고 망가지는 역할을 하는 게 신선했었다물론 아직 연기력을 평하기엔 경험과 연습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현빈이 연기하는 철영의 반응도 조금은 생긴 것 같다아내가 이미 죽었다는 설정 때문인지민영이 잭을 보고 반하는 눈치를 보이자 은근 서운함을 표하기도 하고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기다리겠다는 민영에게 작은 선물까지 건네준다만약에 3편이 나온다면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지 궁금한 부분.


그런데 영화 초반 다시 만난 철영을 반가워하는 민영에게철영은 둘은 어쩔 수 없는 사이라는 식의 대답을 한다둘이 결혼을 하고 싶으면 먼저 통일을 시키고 오라는 말과 함께문득 궁금해졌다대한민국 국적의 사람이 북한 국적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법적으로 허용될까우선 우리 헌법에는 북한 땅도 우리나라 땅이라고 되어 있으니거기 사는 사람들도 우리 국민으로 인정될 것 같기도 하고반면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경우에 따라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영화 속 남북 관계는 어느 정도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은데최근에는 또 악화일로니 참 어렵다우선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안정적으로 협력또는 최소한 관계를 맺는 정도라도 되면 좋겠는데아직은 영화 속 이야기로만 보이니 안타까운 부분남과 북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결혼을 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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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작은 아씨들 : 일반판
그레타 거윅 감독, 시얼샤 로넌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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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자매들


영화는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를 배경으로네 명의 자매들과 엄마로 구성된(여기에 집안일을 함께 해 주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여성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가족의 아버지는 노예해방이라는 북군의 대의를 위해 입대한 상황.


1800년대 중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이 영화의 장점은 그런 상황에서 네 명의 자매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인 메그는 화려한 외모로 사교계에 데뷔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가난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정을 이루는 선택을 했고둘째인 조는 글을 써서 성공하기를 꿈꾸고 있다셋째인 베스는 몸이 약해 활발한 활동은 어려웠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기쁨을 누릴 줄 알았고넷째인 에이미는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감독은 이 네 명의 이야기가 서로 엉키지 않으면서(물론 일부 캐릭터들 사이의 갈등과 케미는 있지만각자의 이야기가 잘 풀려나올 수 있도록 배치한다수완이 있는 감독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네 명의 자매들 중에 자연스럽게 누구 한 명인가에는 공감하며계속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개인적으로는 첫째 메그 역의 엠마 왓슨의 미모가... )




여성의 한계


영화 속에는 시대적 한계 중 하나였던 여성의 사회진출제한에 관한 지적이 여러 부분에서 발견된다당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었고이 점은 작가가 되고 싶었던 둘째 조와 화가가 되고자 했던 넷째 에이미에게 큰 벽으로 다가왔다그래도 조의 경우는 자신의 작품을 꾸준히 팔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에이미는 새로운 화풍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기도...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속 자매들의 아버지가 참전했었던 미국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에게도 주어진 참정권이여성들에게 여전히 부여되지 못한 권리였다는 점이다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주어진 건 그 후에도 50년은 지나서였다.


영화 속 자매들의 어머니는 이런 점에서도 좀 독특한 인물이다그녀는 자신의 타고난 성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조에게 어떤 천성들은 억누르기엔 너무 고결하고 굽히기엔 너무 드높다고 조언한다여성이라고 해서 특정한 성격 유형을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인데이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조언처럼 보인다.





자매끼리


사실 영화의 주요 스토리 중 하나는 둘째 조와 썸을 타고 있던 로리라는 인물이 조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을 당하고수년이 지난 후 넷째인 에이미와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다그 안에 담긴 감정선과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에 관한 이해가 없으면 자칫 막장(?)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이게 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게 백미.


셋째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유럽에 나가있던 에미와 로리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조는두 사람이 어떤 관계가 되었는지는 상상도 못한 채 앞서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던 것을 후회한다는 편지를 쓴다하지만 에이미에 앞서 만난 로리로부터 두 사람이 약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지만 내색은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조그리고 아래 층에서 동생 에이미를 만났을 때에이미의 표정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여기서 조가 에이미를 향해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자매들끼리 화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지.” 불안해하는 동생을 위로하면서동시에 자신에게 남아 있는 미련을 깨끗하게 몰아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도 들렸던 대사인데개인적으론 영화에서 가장 멋진 대사였던 것 같다그렇게 지난 일을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일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도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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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영화의 제목인 헌트는 사냥하다라는 뜻이다결국 영화는 무엇인가혹은 누군가를 사냥하는 이야기이고마치 사냥을 하듯 어떻게 그 대상을 덫으로 몰아넣어 처리하느냐가 그 중심에 있다그리고 그 사냥감은 바로 전두환이었다.


사실 전두환을 암살혹은 제거하려는 계획을 소재로 한 영화나 창장물을 여러 편 본 적이 있다대표적으로는 강풀의 웹툰을 바탕으로 제작됐던 “26이라는 영화가 기억에 난다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자국민을 학살하며 권력을 유지한 독재자가 제대로 단죄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 일만큼 공분을 사는 일도 없을 터.


하지만 불행히도 실제로 그 일은 일어나 버렸고권선징악이라는 자연법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식으로나마 다양한 단죄의 시도를 하게 되는 것 같다언제나 현실은 더 비루하고그래서 우린 이런 식으로나마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지도 모르겠다.




누가?

누구를 사냥하는가도 중요한 포인트지만사실 이 영화에서 좀 더 중요한 포인트는 누가 그 사냥을 하느냐다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안기부 차장을 맡고 있는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인데각각 국내파트와 해외파트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에는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치열하게 견제하는 모습이 긴장을 불러일으키고둘의 전혀 다른 성격과 배경그리고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그리고 마지막 사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두 사람의 선택이 엇갈리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루고이야기의 구조는 꽤 잘 짜여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두 사람의 배경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발생한다한 사람은 북한과또 다른 사람은 군부 내 반독재세력과 연계가 있다그런데 두 사람의 목적이 일치한다는 점이 또 아이러니하다남한의 대통령을 제거해 생긴 혼란을 틈타 적화통일을 시도하려는 북한과 국민을 학살하며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독재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군부 내 소장파두 사람 모두 죄 없는 민간인들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일치하고 있었지만또 이게 결말부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엇갈리게 만든다.


양쪽의 선택이 모두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 때문에일방적인 선악과 진영논리를 넘어서 생각할 여지를 제공해 준다.




?

영화의 소재가 된 아웅 산 묘소 참배 테러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전두환이 당시 버마를 방문했고수행원들과 함께 참배를 할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고영화처럼 수행원들만 죽음을 당했던 사건이다희생자를 많이 냈지만 애초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테러였다.


그런데 이 날 전두환이 목숨을 구한 건 정말 우연에 우연이 더해진 결과였다고 한다버마 외교장관이 영빈관에 있던 전두환을 만나러 오는 과정에서 차가 고장났고이 때문에 영빈관에서 나온 시간이 늦어졌다는 것묘소에서 대통령을 기다리던 중 미리 시험 삼아 불었던 트럼펫이 신호가 되어 폭탄이 먼저 터졌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워낙에 어이없는 행운이기에영화는 여기에 작은 상상력을 하나 더한다애초에 전두환을 죽이려 했던 북한의 의도에 불만을 품었던 내부자가 마지막에 생각을 바꿨다는사실 북한에 의한 남한 대통령 암살이 성공했다면 그 이후 정세가 어떻게 흘러갔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니꽤 개연성 있는 전개였다그렇게 픽션과 실제는 적당한 싱크로가 이루어진다.


전반적으로 꽤 괜찮게 볼 수 있었던 액션 영화다단순히 액션만이 아니라 적절한 심리전까지 더해져서 볼만한 영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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