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의 속편.


벌써 세 번째 시리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아마 왕십리 CGV에서 봤던 것 같은데, 심지어 그 때 소개팅을 하고 두 번째 만난 날이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영화는 결코 소개팅에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철철 흐르는 선정적인 장면도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찝찝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왔지만, 이게 꽤나 흥행을 했다더라. 2편이 만들어지고, 이제 3편까지 나왔는데, 심지어 한국영화계 흥행성적이 굉장히 떨어진 요즘에서도 무려 천 만을 넘겼다. 물론 요새 관객 수 통계의 신빙성에 관해 말이 좀 있긴 하지만, 이건 꽤 많이 본 것 같기는 하다.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는 역시 마동석류 영화 특유의 피지컬을 사용한 시원한 한 방일 것이다. 영화 속 어떤 빌런과 마주하는 장면에서도 오히려 빌런 쪽이 걱정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결같이 마동석과 1대 1로 붙으면 칼을 들고 있던 총을 들고 있던 마동석이 이길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또 마동석이 그렇게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들은 어지간히 나쁜 놈들이니까. 마치 마블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 신나게 상대를 때려눕히는 걸 즐길 수 있게 된다.




설정의 아쉬움.


워낙에 피지컬에 중심을 두고 우당탕탕 하는 영화인지라 이야기의 전체 짜임새 쪽은 확실히 아쉽다. 이 부분은 마동석류 영화 전반에 걸쳐서 두드러지는 포인트인데, 특별히 이 영화에서는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는 일본 야쿠자가 국내에 들여오는 마약을 중간에 빼돌린 경찰 일당이 빌런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 또 뺏긴 마약을 되찾기 위해 일본에서 보내온 해결사까지 섞이면서 이야기가 좀 복잡하게 돌아간다.(그리고 빌런도 좀 약해 보인다)


시리즈 첫 편의 흥행은 마동석 뿐 아니라 윤계상의 악역도 큰 몫을 했다. 그가 연기했던 장첸이라는 인물은 악의로 똘똘 뭉친, 입체적인 캐릭터는 분명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주로 선역을 연기해 왔던 윤계상이 이런 역도 할 수 있었구나 싶은 놀라움과, 그 캐릭터가 저지르는 악행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던 점이(이런 영화를 소개팅 상대와 봤으니..) 눈길을 끌었다.


사실 마동석류 영화는 범죄도시 시리즈만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틀로 찍어 내듯 비슷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범죄도시만큼 흥행을 거둔 영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배경이 가정사(성난 황소), 학교(동네사람들), 조폭(악인전) 등으로 다양했지만,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문제를 오직 주먹 하나로 풀어낸다는 설정 자체가 뭔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족한 설정을 돌파하는 중요한 도구가 인상적인 악역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번 편에는 그 부분도 좀 부족했다. 뭐 그래도 천만을 넘겼으면 된 건가.




현실이 더 해.


나쁜 놈들을 주먹으로 펑펑 날려버리는 형사가 정말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마도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흥행 포인트일 것이다. 이건 최근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복수 콘셉트의 영화나 드라마가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기에는 온갖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일이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다는 현실이 배경일 것이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세금을 탈루하고, 검사들은 특활비를 빼먹고도 누구 하나 사과를 하지 않는 수준이니, 이런 상황이 단시간 내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영화도 앞으로 한 동안은 인기를 끌 것 같고. 온통 빌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그 중 하나씩만 골라 시리즈를 만들어도 100편까지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ㅋ


물론 아직까지 이 시리즈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권력의 상층부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중국에서 온 깡패나 동남아시아에 활동하는 폭력배가 1, 2편이이었고, 이번엔 경찰까지는 올라갔다. 과연 더 올라갈까? 뭐 이 영화가 애초에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었으니 그렇게까지 갈 지는 확실치 않지만, 결국 그렇게 가다보면 마석도도 급 낮은 나쁜 놈들만 때려잡는다는 한계가 두드러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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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24 0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동석의 입지야 확실하고 1편 윤계상의 장첸을 능가하는 아니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찾아내느냐가 향후 포인트일것 같아요

노란가방 2023-09-26 13:40   좋아요 0 | URL
네 완전 동감입니다.
 


영화의 원제.


영화가 시작될 즈음 원제로 보이는 어구가 크게 지나간다. "A Common Man", 직역하면 보통 사람 정도가 되겠다. 이 제목이 어째서 “라이브 테러”같은 직설적인 제목으로 바뀌었을까.


영화는 원제처럼 아주 평범해 보이는(하지만 머리털은 없어 조금은 수상해 보이는) 한 사내를 따라 진행된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의 길을 거니며 큰 가방을 메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쇼핑몰을 들르고, 시장에 들려 아내가 말한 토마토와 채소를 구입한다. 그리고 경찰서까지 방문해 지갑 도난신고까지 하는 남자.


얼마 후 한 건물의 옥상에서 경찰서로 전화를 건다. 자신이 지금 네 개의 시한폭탄을 장치했으며, 그 중 하나가 경찰서에 있다는 것. 실제로 경찰서에서 시한폭탄을 발견한 경찰들은 그와 진지하게 협상을 시작하는데, 남자가 요구하는 건 감옥에 갇혀 있는 네 명의 범죄자들을 자신이 지시하는 곳까지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영화의 원제는 이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의 평범함을 부각시킨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사내가 잔인한 테러범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폭탄테러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런데 영화의 말미에 가면 여기에 반전이 더해진다. 남자가 범죄자들을 끌고 온 건, 그들을 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형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남자는 평범한 사람들을 수없이 희생시키는 테러범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하는 무능해 빠진(그리고 무능하기까지 한) 정부와 사법기관들에 대한 평범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여준 것이었다.




무능한 심판.


영화는 테러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세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테러에 젖어 들어가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테러가 횡횡하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심지어 테러범을 잡은 후에도 그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은 무엇을 믿고 살 수 있을까.


다행이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폭탄 테러 같은 것들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번에 죽는 사고들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만 시끄러울 뿐,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흐지부지 잊히곤 한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는 이태원 참사의 주무 장관의 탄핵안을 기각했고, 기각 판결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짓이 지들이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여당과 정부의 꼴사나운 행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이전에는 이 정도의 사건이 벌어지면 소위 정치적인 책임이라는 걸 지겠다면서 스스로 물러나는 게 상례였다. 하지만 이젠 그런 최소한의 책임지기도 사라져버렸다. 백주대낮에 칼부림이 일어나고, 아파트에 설계대로 철근이 들어가지도 않은 채 시공이 되고, 침수 위험을 경고했는데도 교통통제를 하지 않아 지하차로에서 사람이 죽어가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기껏해야 말단의 담당자에게 뒤집어씌우고 만다.


자, 이런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의 행동에 분명 불법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그가 경찰서 이외의 공간에 숨겨두었다는 폭탄은 처음부터 폭발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영화 말미 경찰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지 않았던 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법이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를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정의에 대한 감각.




자력구제.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을 국민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쉽게 말해, 무슨 억울한 피해를 당하더라도 직접 갚아주지 말고, 법적 기관에 보복을 맡기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사적 보복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잉을 막으려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국가기관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가해야 한다.


문제는 이 기본적인 과정이 어그러질 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감각과 달리 한줌밖에 안 되는 일부 인사들이 법의 제정과 그 철학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끼친 결과, 우리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게 문제인 양, 또는 처벌의 본질이 그가 저지를 악행에 대한 보응이 아니라 그를 개선시키는 것인 양 착각하는 사회에 살게 되었다. 범죄자들은 사법제도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보통의 시민들은 언제 범죄의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최근 이런 사적 보복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제작되고 큰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는 국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은 단지 이런 대중문화로의 반영으로만 끝나지 않고, 결국 불안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영화 속 남자는 결국 의도했던 대로 네 명의 악질 테러범들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그 네 명 이외도 또 다른 테러범들은 출현할 것이고, 사법부는 여전히 무능할 것이고, 보통 사람들은 계속해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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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할리 베리 외 출연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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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영화 느낌.


1990년대 말엔 다양한 지구멸망 시나리오를 그린 영화가 나왔다뭐 이런 영화가 그 때만 나온 것도 아니고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지만또 세기말적 분위기가 짙게 드리우면서 그런 영화들이 꽤나 유행했던 것 같다리뷰를 쓰면서 찾아보며 알게 되었지만지금 말하려는 두 개의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가 같은 해(1998)에 개봉했다고 한다.


두 영화는 뭔가 설정이 비슷하다선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모두 지구를 행해 거대한 소행성이 날아오고 이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을 영화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 중에서도 아마겟돈은 날아오는 소행성에 우주선을 타고 착륙해구멍을 뚫고 그 안에 폭탄을 장착해 터뜨린다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실제로 각국의 우주관련 연구기관에서는 비슷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새 영화에 관해 리뷰를 하면서 왜 이 오래된 영화를 길게 물고 빼느냐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20년도 훨씬 더 지난 영화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2020년대 영화라니... 물론 모든 창작물이 완전한 새로운 창작일 수는 없다지만이건 뭐.. 분명 CG야 그동안 흘러온 세월만큼 발전한 느낌이 있다하지만 전체적인 감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이제는 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어느 날 갑자기 달이 지구를 향해 나선형 하강을 시작하고그로 인해 각종 문제들(주로 달의 인력 때문인 듯)이 발생하고웬만한 기업 회의실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나사 기지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지 못하는데미국 국방부에서는 수많은 핵미사일을 날려 달을 폭파시키겠다는 한심한 계획만 내고(달이 없어지면 급속한 환경의 변화로 인류는 아마 얼마 가지 못해 멸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 천체관측자의 말을 따라 달로 향하는 로케트(그것도 박물관에나 있었던)를 타고 날아가는이게 최선인가요?






달이 초거대구조물이었다고?


영화의 가장 큰 상상력이라면 역시 달이 초거대구조물이라는 발상이다아마추어 천체관측가인 KC 하우스먼은 어느 날 달의 궤도가 정상범위를 벗어나고 있음을 깨닫고그것이 달이 엄청나게 큰 인공구조물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해석한다당연히 그의 말은 나사 관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잊힐 뻔하지만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사에서도 달 궤도의 변경을 깨닫고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내용.


여기에 나노로봇 군체들로 그려지는 비인류 지성체가 등장하면서 달이 외계인이 만든 거대한 기지일 가능성을 보여주는데직접 로켓을 타고 달의 내부에 형성된 금속제 구조물들까지 보여주면서 이런 예측이 맞나 싶을 즈음이야기는 훨씬 더 복잡하게 꼬여간다알고 보니 달은 인류의 오래 전 조상들이 만든 인공구조물이었고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AI가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도리어 멸종되고 말았다는 것그 AI가 다시 지구의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달을 움직이고 있다는 건데.... ...


달이 알고 보니 지구 침략을 위한 비밀기지라는 설정은 우리나라엔 지난 2012년 개봉한 핀란드 영화 아이언 스카이에서도 볼 수 있었다이쪽은 히틀러가 전쟁에서 패하기 전에 달로 로켓을 쏘았고그 후손들이 나치적 삶을 달 기지에서 이어오고 있다는 설정의 블랙 코미디 영화였는데상황은 훨신 말이 안 되어 보이긴 해도 또 블랙 코미디만의 위트가 느껴져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종류의 웃음마저 주지 않는다달 전체가 위장된 인공구조물이라는 설정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어 보였고그건 차라리 지구 전체에 추진기를 달아 통째로 멀리 옮기겠다는 내용의 중국영화 유랑지구류의 허풍과도 비슷해 보인다영화를 보는 내내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 건지 보는 사람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빈틈투성이.


억지로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오긴 했는데그 사이사이의 설정이 빈틈투성이다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주인공 세 명이 우주선에 타야 하는지도그 중 두 명이 하필 이혼한 전처와 전남편일 이유는 무엇이며그래도 그 두 사람은 우주인으로 활동해 본 경력이라도 있는데관련 훈련이 전혀 없었던 아마추어 천체관측가가 나머지 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그가 새로운 가설을 제기해서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 로켓 발사에 그런 모험을 하는 이유는 영화이기 때문일까?


그런데 그렇게 달에서 문제를 해결한 것도 정작 주인공들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오래 전 조상들그러니까 AI의 반란을 초래해서 멸망했던 조상들이 남긴 프로그램이었다주인공 일행이 타고오다 완전히 망가진 우주선을 순식간에 수리할 수 있는 기술력까지 가지고 있었던(근데 왜 망했어..).


더구나 그렇게 달에서 벌어지는 일도 뭐 하나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는데위기감을 조성하려고 했던 건지 중간 중간 나오는 지구의 가족들 이야기는 또 얼마나 어설픈지주인공 커플이 이혼을 했다고 잔뜩 삐뚤어지기로 작정한 아들내미나그 아들내미와 지구가 멸망해 가는 와중에서도 썸을 실현하는 중국계 보모 여자애는 또 왜 나오는 건지(영화의 제작에 중국 자본이 합작 형태로 참여했다고 한다이게 원인은 아니었겠지?)


많은 재난영화가 그렇지만그냥 정신없이 인물들의 관계가 뻗어나가고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고극단적으로 단순한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 영화호감가는 인물이 별로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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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가 모든 걸 덮은.


보통 여간해서 이런 식의 일본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는 바로 이 단어가 떠올랐다. “가오”. 사실 일본어 의미를 직역하면 “얼굴”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이 단어가 뭔가 폼을 잡는, 허세가 잔뜩 들어간, 하지만 자신은 그걸 모르고 굉장히 진지하게 뽐내는, 뭐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이 영화가 딱 그랬다.


영화 초반부터 일본을 배경으로 하더니, 야쿠자 비슷한 무리가 등장해서 장검을 휘두르거나, 심지어 활을 쏜다. 21세기에, 그것도 총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적에게 칼과 활이라니... 심지어 여기 등장하는 활은 일본 전통식 활도 아니다. 사람 키만큼 크게 만들어야 겨우 반발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그런. 뭐 이건 좀 발전했다 이건가. 그러려면 차라리 총을 쏘라고.


심지어 오사카 콘테넨탈 호텔에 쳐들어오는 적들이 입은 옷은 무슨 전국시대 무사의 복장과도 비슷하다. 최고위원회는 그 동네 분위기를 맞춰 복장까지 지정해주는 패셔니스타들이란 말인가. 여기에 견자단이 출연했을 때부터 익히 예상되었던 중국 전통의 판타지스러운 동작들까지.


원래 존 윅 시리즈의 백미는 사실적인 격투 움직임과 특유의 탄창 속 총알까지 계산한 총격전 같은 게 아니었던가. 특히 롱 테이크로 이어가는 특유의 촬영 방식도 그렇고. 물론, 이전에도 살짝 오글거리는 건카타적 움직임 뭐 그런 게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이런 액션 영화에서 충분히 허용되는 수준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그 도가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 그냥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서 온갖 가오를 다 잡은, 그래서 오히려 피식 웃음이 터지는 그런 영화였다.





법의 무거움.


이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독특한 세계관이다. 1편부터 4편까지 동일하게 이 설정은 이어진다. 킬러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서약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주인공도 이 서약을 깨뜨리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 규칙 안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애쓴다. 물론 너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감이 있긴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그 설정은 계속 이어간다. 존은 최고위원회의 일원을 살해하는 큰 문제를 일으켰지만, 어찌어찌 다시 서약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이번 영화의 빌런인 그라몽 후작이 존을 제거하려는 방법도 어찌됐건 그 규칙 안에서 하는 일이다. 물론 좀 막무가내인 면이 있긴 했지만.


모두가 법에 복종하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을 가혹하게(대개는 죽음으로) 처벌하는 세상은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 같지만, 영화 속 세상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그 법은 최고위원회가 가진 권력을 지키기 위한 법이고, 그 세계의 구성원들인 킬러들을 서로 싸움붙여 돈 이외의 다른 데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느 순간 영화 속 규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캐릭터들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금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해가 뜨기 직전에 약속된 결투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칙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 규칙을 지키기 위한 부칙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 규칙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영화 속엔 그런 거 없다. 그냥 능력 있으면 살아남는 거고, 능력이 없으면 죽는 거다. 아, 능력주의라는 비틀린 공정을 말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도 그런 법을 좋아하는 양반이 있다. 입만 열면 공정을 운운하는데, 실제로 그의 통치행위는 별로 공정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정의롭거나 따뜻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로지 하이테이블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느낌이랄까.





이젠 보내줄 때.


매트릭스 4를 봤을 때도 느꼈지만, 이번 존 윅 4를 보면서도 동일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젠 주인공 역인 키아누 리브스를 좀 보내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 내일 모레면 환갑을 맞는 이 배우가 이런 액션에 도전을 한다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그 결과물이 생각만큼 멋지지 않다. 물론 환타지스러운 중국 무협영화와 같은 합을 맞추라는 건 아니지만, 이젠 동작이 너무 느려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까.


사실 그뿐 아니라 이젠 이 시리즈도 좀 보내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매트릭스 4야 모두가 인정하는 최악의 실망스러운 스토리로 스스로 시리즈의 생명을 끊어버렸지만, 존 윅도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는 너무 단순하고, 그걸 덮어버릴 화려한 액션도 이제 약발이 다 떨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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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데이먼이 이런 역을?


맷 데이먼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 탄탄하게 다져진 근육질 몸을 바탕으로 화끈한 액션(이 경우엔 주로 총을 사용하지만)을 보여주는 인상이랄까. 물론 그가 언제나 액션영화만 찍는 건 아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동안의 이미지와는 꽤 많이 다른 느낌의 배역을 맡았다.


맷이 연기하는 빌 베이커는 전형적인 미국 중하층 백인이다. 전에는 석유시추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최근에는 그나마 일자리도 잃어버린 상황. 뭐 대단한 사상이나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말이 많거나 활발한 성격도 아니다. 이야기가 좀 더 전개되면서 알려진 내용이지만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쩌면 이 일에 맷의 책임도 얼마간 있을 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아빠에 대한 실망을 넘어 내심 경멸감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던 딸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충동적으로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그저 집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이유로. 거기에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웬 아랍 출신의 여자동기와 동거를 하다가, 그 동거녀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 생활을 5년째 하고 있었다.


영화는 빌이 그런 딸을 면회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딸은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서 재수사를 요청하는 편지를 변호사에게 전달해 달라고 말하지만, 변호사는 사건을 맡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딸의 결백을 믿지만 말도 안 통하는 이국에서 빌 같은 아버지가 뭘 할 수 있을까.





비호감 딸.


곤경에 처한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라는 구도는 익숙하다. 테이큰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영화들에서 비슷한 구도를 취한다. 딸을 곤경에 빠뜨린 사람들이나 세력은 굉장히 강하게 등장하기에, 아버지는 전직 무슨 특수요원이라든지, 심지어 범죄조직의 킬러라는 식의 힘숨찐 캐릭터로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지극히 평범하다. 단지 겉으로 드러난 설정만이 아니라 속까지(?) 그렇다. 이국의 교도소에 갇힌 딸을 구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서 딸이 진범으로 지목한 사내를 발견하지만, 시원한 해결을 이글어내진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만 다른 게 아니라 딸의 모습도 많이 다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곤경에 빠져서 아버지의(그리고 관객의) 동정을 이끌어 내는 가련한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의 딸은 아버지가 모르는 프랑스어로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버지 따위는 무능해서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가석방 휴가를 나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룸메이트를 만나서도 비슷한 말을 던진다. 심지어 나중엔 마치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교도소에 갇힌 양 증오의 말을 쏟아낸다.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


그렇다 보니 나중엔 굳이 저런 딸을 구해야 하는지 하는 당위를 묻는 질문까지 나온다. 심지어 영화 말미 밝혀진 진실까지 더해지면.... 얘는 그냥 폐급이다.





씁쓸한 뒷맛.


물론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좀처럼 끊기 어려운 일이다. 빌은 딸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도움을 받게 된 버지니와 그녀의 딸인 마야와 가까워지면서, 나중에는 그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처음엔 단순한 룸메이트였지만 나중엔 동거하는 사이로 바뀌기까지 하고.


그런데 이 버지니 캐릭터도 또 비호감이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마야만 제외하고 다들 이렇다) 처음엔 빌과 함께 그의 딸이 얽힌 사건의 증인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한 증인과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그가 아랍계에 대한 차별적인 말을 하자 혼자 흥분해서 (통역도 중단 한 채) 뛰쳐나온다. 그러면서 저런 인종차별주의자와는 대화도 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나중에 그녀가 빌과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도 빌이 딸인 마야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다는 이유에서다.(심지어 직전에 빌은 딸 사건의 용의자를 임의로 납치해 감금하고 있었는데, 이건 언급하지도 않는다) 물론 딸의 교육을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하룻밤의 잠자리를 하고 아이까지 낳았던 그녀가 거짓말을 그렇게 문제 삼는 독특한 윤리관을 갖고 있는 게 쉽게 이해는 안 간다.


그렇게 조금은 평범한 작은 행복이 깨져버린 빌은, 딸이 지목한 용의자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실은 딸이 자신의 동겨녀를 집에서 내쫓아 달라고 자신에게 요청했다는 것. 그러니까 딸도 결백한 게 아니었던 것. 물론 자신은 죽일 줄은 몰랐다지만. 하지만 빌은 자신이 얻은 용의자의 머리카락을 전직 경찰에게 (돈과 함께) 제공함으로써, 딸의 이른 석방을 이끌어 낸다.


어디 하나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의 문제에 눌려있는 주인공 빌과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의 여자들, 심지어 범죄까지도 묻고 넘어가려는 삐뚤어진 자식 사랑의 모습만 보인다. 시종일관 조용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결말 부분은 그래서 약간은 허탈하고 씁쓸하다.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 저 부녀는 과연 앞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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