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수단.


영화는 목적과 수단에 관한 고전적인 질문을 던진다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까아니면 정확한 길과 신호를 따라서 도착해야 할까영화 속 영화 속 광역수사대 반장인 박강윤(조진웅)은 범죄자만 잡을 수 있다면 어지간한 수단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보는 전혁적인 목적지향주의자이고그의 반에 들어간 강력계 출신의 최민재(최우식)는 정반대로 동료의 불법행위까지 있는 그대로 증언할 정도로 원칙주의자이다.


감독은 이 둘을 한 자리에 묶어두고 캐릭터 차이에서 나오는 갈등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사실 팀의 막내가 반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황 자체가 잘 그려지지도 않고(오히려 그랬다면 더 개연성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민재가 강윤을 비밀리에 내사한다는 설정도 있어서 더욱 갈등요소는 떨어져 버렸다.


이야기의 전개는 민재의 시선으로 강윤을 관찰하는 식으로 이어지는데비싼 옷과 차를 타고 다니면서 수사에 필요한 돈을 펑펑 쓰니 당연히 성과도 나타나는 상황을 보며어쨌든 나쁜 놈들을 잡았지 않느냐는 목소리에 조금씩 휘둘리는 모습이 보인다영화의 결론부에서는 이를 아예 대놓고 보여주고 있고.


영화 속 몇몇 인물의 대사로는 끊임없이 그런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특히 감찰계장 역의 박희순이나 민재 역의 최우식), 이쪽은 또 이쪽 나름대로 꽉 막힌 느낌인지라 또 완전히 수긍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그러고 보면 영화는 목적지향 쪽에 좀 더 가까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 않나 싶다.

 





 


작은 희생”.

다만 정당한 수단이라는 규정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들이고이것들이 모두 무시되어 버릴 때잡는 사람과 잡히는 사람의 차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는 지적은 쉽게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무조건 규제를 없애기만 하면 힘없는 사람들이 주로 희생되는 게 세상이니까.


개인적으로는 큰일을 하려면 작은 희생 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함께 무슨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언제 내가 그 작은 희생이 될지 모르니까그렇게 작은 원칙들작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이룬 공은 앞에 선 사람이 다 가져가버리는 정당하지 못한 일들에 우리는 이미 지쳐있지 않은가.

영화 초반 강윤은 피의자의 마스크를 벗겨 언론에 노출시킴으로써 결국 그를 죽음으로 밀어 넣는다물론 그가 나쁜 짓을 했을지라도그런 식으로 사적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좋을까그 판결(결정)의 정당성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사실 이 부분은 오늘날의 일반적인 법관들에게도 그대로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단지 시험성적이 좋다고 그들에게 법의 적용권을 일임하는 제도는 과연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할까수사와 기소그리고 재판의 영역은 가장 비민주적인 자리 중 하나일지 모른다.



 




경찰의 본질.


영화 속 캐릭터들이 수단이나 목적이냐를 두고 갈등을 하고 있긴 하지만흥미롭게도 그 모든 경찰 캐릭터들은 나쁜 놈들을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강윤은 어떻게 해서든 큰 범죄조직을 소탕하려 하고 있고같은 목적을 가지면서도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민재그리고 잘못된 방식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니 그런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을 잡겠다는 감찰반장까지.


각자의 원칙은 다르지만옳고 그름이 분명 존재하고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인데이게 경찰이라는 직책의 본질과 가깝긴 하다정말 경찰들이 그렇게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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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담을 위한.


영화는 택배회사에서 배송하지 않은 모든 을 배송해주는뭔가 의심스러운 업체에서 일하는 은하(박소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그녀가 맡고 있는 일은 운전기사인데뛰어난 운전 솜씨로 맡은 것은 어떻게든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 주는 기술자다화려함을 넘어 거칠게 보이는 운전을 하면서도 여유롭게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이 캐릭터를 잘 설명하는 부분.


조금은 가냘픈 박소담 배우가 이 캐릭터를 맡으면서 조금은 매칭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고그렇게 자연히 주연배우의 갭에 시선이 끌린다자동차가 주요 소재이고영화 초반부터 카레이싱에 공을 많이 들여서인지 볼거리는 제법 있다몇몇 장면들은 헐리우드의 그것을 보는 것처럼 꽤나 스타일리쉬하고.


다만 딱 그게 끝이라는 거영화의 주요 전개는 한국영화에서 몇 번이나 재탕되었던(최근에는 하지원성동일 주연의 담보라는 영화가 있었다)어린 아이가 등장하고그로 인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순전히 주인공 개인기로 문제가 해결되는클리셰만 반복된다.

 

결말이 예상되는 오락영화를 끝까지 보도록 만들려면 좀 더 뭔가가 필요했다그나마 화끈한 레이싱을 초반에 쏟아 붓느라 제작비가 떨어졌는지이후에는 배송보다는 맨몸격투가 주가 되어 버린다.






 

공권력의 사유화.


송새벽이 맡은 영화의 빌런 경필이 처음에는 조금 약해 보였다박소담과 마찬가지로 선이 가는 느낌의 배우였으니까그런데 그런 그가 경찰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캐릭터는 조금 더 묵직해진다총기 소유가 자유롭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군사지역 이외의 영역에서도 자유로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이 경찰이다공권력을 사유화 한 그를 막을 수 있는 게 과연 이 나라에 있을까결국 그를 막기 위한 방식은 어지간한 폭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사적 보복이 금지된 상황에서 공권력은 시민들의 문제를 전담해서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다그리고 이를 위해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다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영장을 받아강제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기소하고 판결을 통해 인신을 구속하거나 재산상의 부담을 지울 수 있다한 번 그렇게 결정이 나버리면 불법을 행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다른 구제 방법도 없다.






문제는 영화 속 이야기처럼 그런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유용할 경우인데꼭 이런 폭력적인 사건이 아니라도 우리는 현실 가운데 이런 일들을 자주 본다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시답잖은 죄를 탈탈 털어 기소하거나 불기소를 통해(또는 그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수서를 질질 끄는 식으로재판을 거치지도 않고 무죄판결을 내린다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세금을 매우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지역구의 덜 중요한 사업에 예산을 끌어온다던가정말 노골적으로 본인이나 지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정책을 세우는 식으로).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언론사와의 협잡을 통해 묻어버린다.


합법의 영역이 패거리화불법화 되어버리면시민들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영화 속 백사장처럼 샷건이라도 한 자루 장만해 자신을 지키거나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이런 종류의 영화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어쩌면 현실에 대한 답답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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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실패.


영화 제목에도 걸려있듯, 3편에서 죽은 줄 알았던 네오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과연 어떻게 살려냈을까가 영화를 보기 전 가장 큰 기대 중 하나였는데정작 설명은 매우 간단했다놀라운 기계신님의 능력으로 죽을 뻔한 네오를 치료했다는 것여기엔 어떤 신비도안배도 없고그거 매우 기계적인 설명만 붙어있을 뿐이다이 영화의 전체적인 성격을 설명해주는 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 대한 평이 그리 좋지 못하다대개 그 이유는 전작특히 1편에서 보여주었던 깊이가 모두 사라져버리고껍데기만 남았다는 식이다나 역시 이 평가에 대부분 동의하고죽었던 네오가 부활한다는 엄청난 소재를 중심에 두면서도정작 영화의 전개와 결말 부분에서는 엉뚱한 내용을 들이밀고 있으니...


물론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만은 아니다감독이 늘 상상력으로 충만할 수는 없는 법이고, 20여 년이 흐른 상황에서 네오 역의 키아누 리브스도 언제까지나 뽀송뽀송한 젊은이일 수는 없을 테니까모피어스 역의 피시번이나 스미스 역의 위빙을 하차시키고 새로운 인물로 같은 역을 맡기려고 했다면차라리 키아누 리브스가 아닌 다른 배우로 새로운 네오’(네오라는 말 자체가 새롭다는 의미지만)를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그게 프리퀄이든 뭐든).


결과적으로 영화 속 네오는 부활했을지 모르나감독의 연출력은그리고 매트릭스 시리즈의 명성은 부활하지 못했다고 밖에...




 


상상력 고갈.


SF영화의 매력은 역시나 상상력이다우리가 일상 가운데서 경험해 보지 못한 광경을 영화적 기법을 통해 보여주면서 우와~’하게 만드는 그것매트릭스 1편이 꼭 그랬다인간을 에너지원 삼아 돌아가는 기계 왕국과 우리가 현실이라고 알고 있는 세상이 매트릭스라는 가상세계에 불과하다는 설명(요새도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와 비슷한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설명하는 영상들을 자주 볼 수 있다)조금은 과장되어 보이긴 하지만 특이하게 느껴지는 액션신 등등.


그런데 이번 영화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정말이다전혀 없다영화를 구성하는 재료들은 모두 전편에서 공개되었던 설정들과 장면들이고이제 늙어버린 배우들은 그나마 앞서의 장면을 똑같이 재현하지도 못한다이게 더 큰 문제인 게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20여 년이 흐른 것처럼 영화 속 세상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점 때문이다그 기간 동안 아무도 발전을 못했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만큼 좋은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일이 힘들다는 걸 보여주는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톨킨 같은 위대한 작가도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고민하고 공부하며 쏟아 부어야 비로소 이음새가 없는 온전한 세계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인간의 상상력이 유한한지무한한지는 모르겠으나전작의 성공에 기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허술한 계획으로 명작이 나오지 못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가짜 신화.


C. S. 루이스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신화적 요소들과 기독교 사이의 일치점에 관해 흥미로운 설명을 한다기독교는 진정한 신화(가 현실이 된 사례)이며다른 문화권 속 신화들은 그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설명을 통해 루이스는 비로소 기독교 안의 (그리고 그와 유사성을 지닌 유럽 신화 속풍성한 이야기들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한편으로 생각하면그저 기독교의 흔적만 가지고도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올 수 있지만개인적으로 매트릭스 1편이 보여주었던 풍성한 깊이는 (약간 과장된 해석 탓도 있겠지만기본적으로 그것이 취했던 여러 기독교적 요소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영화는 믿음을 강조하고삼위일체와의 합일대속소망과 같은 주제들을 전면에 내걸었고이것들은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 감독은 일부러 그런 요소들을 제거해버리고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구축할 수 있는 세계를 떠올리지 않았나 싶다그런데 그런 서사는 너무나 빈약했고사람과 사회에 대한 어떤 통찰력 있는 생각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그저 절대자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하늘을 무지개 빛으로 물들이자는 구호만 남았을 뿐이니까이럴 거면 지루한 엔딩 크레딧 이후에 나온 쿠키 영상처럼그냥 캣트릭스나 만드는 게 나았을지도..

 


영화는 그렇게 실패했고더 이상 후속편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 같다적어도 워쇼스키의 이름으로는 나오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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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3 레볼루션 - [할인행사]
래리 워쇼스키 외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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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yes).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부터영화는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말한다인류가 현실이라고 보고 있는 것들은 일종의 환상이고진짜는 그 너머에 있으며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존재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영화의 주제처럼 보였다.


1편의 말미에서 주인공 네오는 비로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는 눈을 얻게 된다이제 그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그런 네오를 능가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이런 분위기는 2편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져서엄청난 능력을 갖게 된 스미스 요원조차도 그저 물량공세만 할 수 있었을 뿐 네오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영화의 말미에서 네오는 그 눈을 잃는다조금은 충격적일 수도 있는 장면이었는데감독들은 오히려 그렇게 눈을 잃은 네오가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사실 이 부분은 이제 어떤 논리적 개연성보다는 일종의 상상력의 영역으로 들어간다이 장면에서 그는 매트릭스 속 세계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 속해 있었고시력을 잃은 후 빛과 같은 모습으로 사물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니까.





흥미로운 건 그렇게 눈을 잃은 네오가 기계들의 군주 격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마음(기계에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지만)을 움직이고결국 인류를 구했다는 점이다어쩌면 눈을 잃음으로써그는 다른 것이 아닌 가장 진실한 것만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눈을 유혹하고그렇게 시선을 뺏김과 동시에 우리의 마음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때로 눈을 감는 게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바울이 말한 것처럼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사는 사람들이니까(고후 4:18).

 




인간 vs 기계.


영화의 세계관은 인간과 기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이미 1, 2, 3편을 통해서 충분히 알려진 내용이지만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감독들이 만든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애니매트릭스를 보면 좀 더 자세히 나온다.

 

좀 더 편한 삶을 위해 만들었던 로봇 중 하나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면서 인간들은 관련 모델 전부를 폐기하기로 결정한다많은 로봇들이 증오의 대상이 되어 파괴되었고간신히 피한 로봇들은 외딴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우는데 태생적인 장점 때문에 급속히 발전을 한다이후 인간들과 정식으로 교류를 시도하지만 이에 위협을 느낀 인간들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는데이 과정에서 멍청한 인간들은 자기들을 파괴하는 무기까지 사용해버렸고결국 살아남은 로봇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


결국 영화 속 인간들이 처한 상황은그들이 자신들보다 아래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대했던 로봇들이 일종의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반격한 결과였다특히나 영화 속 배경이 그토록 어두웠던 건기계들이 태양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차단하겠다고 인간들이 하늘에 뿌린 검은 구름 때문이었다영화 후반부에서 레오와 트리니티가 탄 전함이 그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서 만난 밝은 세상은 그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건데생각해 보면 우리도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 어리석은 존재는 영화 속에만 있지 않겠다 싶다차별의 대상은 우리보다 약해서 학대를 받아도 반격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일 텐데그들이 언제까지나 우리보다 아래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일지도 모른다.


 




열흘 만에 세 편의 영화를 모두 봤다조금은 빠듯했는데왜 1편이 가장 유명했는지를 알 것 같은 느낌도 들고사실 2, 3편은 1편에서 벌여 놓은 신박한 이야기를익숙한 방식으로 수습하고 있다는 느낌이제 4편을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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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2 리로디드
워너브라더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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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인(目的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변화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네 가지 원인을 제시했는데그 중 하나가 목적인이다쉽게 설명하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사과의 씨앗 속에는 이미 사과나무가 되기 위한 목적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씨앗은 땅에 심기면 그 정해진 목적을 향해 변화의 과정을 시작한다.


모든 씨앗은 정해진 목적을 향해서만 변화한다예를 들어 감나무의 씨앗은 사과나무로 변할 수 없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씨앗이 사과나무나 감나무로 발전하는 건 아니다(일부는 채 나무로 자라기 전에 여러 이유로 사라진다). 다만 그것이 정상적으로 발전할 경우 애초의 목적인을 따라 가게 된다는 의미다.


매트릭스의 이 두 번째 편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 ‘목적이다네오 일행은 오라클의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예언을 따라 인간을 착취하는 프로그램인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간다전편에서 매트릭스의 본질을 깨닫고 특별한 능력을 얻은 네오가 있었기에그가 시스템 안의 적들을 종횡무진 무찌르면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는 좀 의외의 방향으로 진행된다네오는 생각보다 적들을 쉽게 물리치지 못하고그가 아무리 뭔가를 하려고 애써도 좀처럼 정해진 결과를 뒤바꾸지 못하는 것만 같다그리고 여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목적(이유)’그는 스스로 뭔가를 선택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지만 실은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만 찾을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듣는다사과 씨는 아무리 해도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자유의지의 부정?


심지어 영화 후반에는 그렇게 변화를 위해 애쓰는 네오라는 존재 자체가 일종의 프로그래밍이라는 설정까지 등장한다네오에게 감정이입을 한 채로 이 지점까지 온 관객은 약간 당황스러운 부분이기도 한데애초에 한 편의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후속편 3편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전개시켜갈지...


모든 것은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일어나고 있을 뿐이고(선택은 이미 이뤄졌고), 우리는 그 과정의 이유를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생각은 매트릭스 시스템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생각인 듯하다그리고 이건 정확히 현대의 과학주의적 유물론자들이 믿고 있는 교리이기도 하고모든 것을 물질 내에서만 설명하려고 하다보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과적으로 부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영화 속에서 이런 명제 자체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대표적으로 전편에서 네오를 추적하며 집요하게 괴롭혔던 스미스 요원의 달라진 모습인데네오에게 패하고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취한 경험(데이터)를 시스템에 넘겨주고 소스코드 사이로 사라졌어야 할 그가 시스템의 논리를 거부한 채 네오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네오와 마찬가지로 스미스 요원 역시 시스템의 이질적인 존재가 된 건데시스템 설계자로 보이는 아키텍처는 이 모든 걸 일종의 프로그램 버그로 취급하려고 한다(보통 이렇게 적을 깔보는 건 사망 플래그의 하나다).


자유의지란 개념은 그리 간단하게 부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그건 단순히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인과론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꽤 잘 맞는 한 가지 설명이지만양자역학의 시대에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다는 식의 생각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오히려 고집스럽게 인과론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의 설명을 듣다보면과도한 견강부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기복제.


개인적으로는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스미스 요원의 끝없는 자기복제 능력이었다시스템의 프로토콜을 거부한 채 원한을 품는다는 설정 자체가이미 그가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섰다는 의미처럼(마치 인격을 획득한 것처럼보이기도 하지만근본적으로 그는 단순히 자기를 복제해 수를 늘리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정도의 존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인간은 그렇게 단순히 자기복제를 능사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요새는 그런 자기복제만 남은 바이러스 수준의 본능만 남은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되는 것 같다그게 끝없는 권력욕이든다른 사람에 대한 지배욕이든 세상을 오직 혼자만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이다당연히 이런 이들이 많아지면그런 사회나 조직은 무너지기 마련이다암세포가 주변세포들을 끊임없이 삼켜 자기를 확장하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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