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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남종국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평점 :
제목을 잘 붙였다.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라는 제목은 두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데, 하나는 중세가 뭔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으며, 현대인들이 그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이 책이 그런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 그러니까 당신을 자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의도대로 책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좋았을 것 같다. 계몽주의 시대의 오만했던 저자들이 중세에 대한 평가를 난도질 해 놓은 건 멍청한 짓이었고, 그걸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이어온 근대인들 역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에서 그런 내용을 충분히 다 풀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염려가 들긴 했고, 그건 사실이 되어버렸다.
우선 책은 중세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현대의 기준으로 중세를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와 오늘 우리의 시대 사이에는 천 년이라는 세월이 놓여있고, 당연히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 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생각과 판단을 했는지를 풀어나가는 것이 ‘오해’를 해소하는 방법일 텐데, 이 책의 저자는 이걸 매우 단면적으로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면서, 중세의 무지함을 비판하는 논조를 자주 보인다.
어쩌면 이건 저자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던 프랑스 학계의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세속주의와 유물론에 기초한 연구 방식은 자신 또한 특정한 사상적 조류(혹은 편견) 위에 서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에서 나오는 부작용, 정확히는 부주의가 있는데, 바로 신앙 같은 인간의 사고 부분에 대한 부족한 이해다.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중세 유럽의 주요 신앙체계였던 기독교를 비판한다. 물론 당시 기독교회는 완전무결하지 못했고(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에도 (당시로서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합리적인 사고체계가 작동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마녀사냥의 경우, 그저 중세 기독교의 멍청한 판단 때문에 발생했고, 과학적 사고 발달하면서 비로소 사라졌다는 식의 서술이 보인다. 이게 정말일까? 사실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도 적지 않은 수의 마녀사냥이 일어났고, 비슷한 종류의 마녀사냥은 양자역학의 시대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은 좀 더 깊은 데서 찾아야 할 텐데, 그런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신문에 실리는 칼럼을 모은 책이기에, 각각의 내용은 매우 짧게 편집되어 있고, 그 안에서 깊은 논의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이해는 된다. 또, 신문의 특성상 어느 정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의 연결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비약도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싶고. 저자의 정치적 입장이 크게 거슬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좀 더 중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