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답이 되는 순간 - 어떤 세상에서도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김제동과 전문가 7인이 전하는 다정한 안부와 제안
김제동 외 지음 / 나무의마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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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방송인 김제동이 물리학과 건축학천문학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일대일로 한 인터뷰를 책으로 엮었다책에는 각 주제별로 수십 페이지의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지만몇몇 인터뷰 말미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봐서 족히 너덧 시간 이상의 대화가 진행되었던 듯하다인터뷰이들과의 안면혹은 친분이 있었다고는 해도 인터뷰어로서의 김제동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 기획이었던 것 같다.


각 인터뷰이들은 자신들의 전문 영역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면서자연스럽게 인문학적 고민들과 엮어간다여기에 김제동이 던지는 좋은 질문이 한 몫을 한다전반적으로 겸손하게 자신의 전문 영역의 한계를 인정하면서그 안에 담겨 있는 인문학적 함의들을 제안하는 방식이라 읽기에 편하다.


예컨대 물리학이나 천문학 등의 과학 전공자들은 한결같이 과학이 갖는 잠재적 진리 주장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연구를 해 나간다고 반복적으로 대답한다인간이 연구하는 모든 분야가 이런 잠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걸 인정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전문 영역에서 활동하는 대화의 상대들이 여럿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좀 더 관심이 가거나더 집중하게 되는 부분이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또 자칫 대화의 수준이나 전개의 편차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이 부분을 진행자로서 김제동이 잘 이끌어 낸 것 같다전반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이야기들이 이어진다는 말.


그래도 어느 정도 호불호는 나뉠 것 같은데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대화가 가장 집중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는데이야기 전체가 고 신영복 교수에 대한 회고와 찬양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그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내 경우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다.


오래 전 그분의 북 콘서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개인적인 감상은 하나의 종교의식을 보고 나온 듯하다는 느낌이었다마치 경정을 대하듯 그분의 책 구절을 낭독하고 감동을 나누고그분의 생애를 묵상하거나 그분에 관한 일화를 간증하고심지어 그분을 위한 노래를 찬송하듯 불러대는 게너무 익숙하면서도(매주 참여하는 예배 순서였으니까어색했다(다른 자리와 다른 대상을 향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그런데 이 챕터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니...



반면 과학자들과의 이야기는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었다지극히 문과적으로 살아온 내게 과학은 쉽게 손 댈 수 없는 천재들의 영역 뭐 이런 느낌이 얕게나마 덮여있는 부분인데그런 과학의 영역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니 흥미도가 높아진다기본소득과 관련된 설명 중그것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지극히 자본주의적 아이디어라는 지적도 인상적이었고.


딱 교양으로 읽을 만한 인문학 책으로 적합한 수준과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이미 방송 등에서 얼굴을 잘 알린 인터뷰이들이 많이 나와서 조금은 쉽게 마음 먹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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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
남종국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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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잘 붙였다.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에게라는 제목은 두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데하나는 중세가 뭔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으며현대인들이 그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이제 이 책이 그런 오해를 풀어줄 수 있는그러니까 당신을 자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의도대로 책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좋았을 것 같다계몽주의 시대의 오만했던 저자들이 중세에 대한 평가를 난도질 해 놓은 건 멍청한 짓이었고그걸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이어온 근대인들 역시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다만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에서 그런 내용을 충분히 다 풀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염려가 들긴 했고그건 사실이 되어버렸다.



우선 책은 중세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는커녕오히려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현대의 기준으로 중세를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중세와 오늘 우리의 시대 사이에는 천 년이라는 세월이 놓여있고당연히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현대의 기준으로 볼 때 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던 시대였다그렇다면그들은 왜 그런 생각과 판단을 했는지를 풀어나가는 것이 오해를 해소하는 방법일 텐데이 책의 저자는 이걸 매우 단면적으로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면서중세의 무지함을 비판하는 논조를 자주 보인다.


어쩌면 이건 저자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던 프랑스 학계의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세속주의와 유물론에 기초한 연구 방식은 자신 또한 특정한 사상적 조류(혹은 편견위에 서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 수 있다그리고 또 하나 여기에서 나오는 부작용정확히는 부주의가 있는데바로 신앙 같은 인간의 사고 부분에 대한 부족한 이해다.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중세 유럽의 주요 신앙체계였던 기독교를 비판한다물론 당시 기독교회는 완전무결하지 못했고(이후에도 마찬가지다적지 않은 부분에서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문제는 여기에도 (당시로서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합리적인 사고체계가 작동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마녀사냥의 경우그저 중세 기독교의 멍청한 판단 때문에 발생했고과학적 사고 발달하면서 비로소 사라졌다는 식의 서술이 보인다이게 정말일까사실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도 적지 않은 수의 마녀사냥이 일어났고비슷한 종류의 마녀사냥은 양자역학의 시대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은 좀 더 깊은 데서 찾아야 할 텐데그런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신문에 실리는 칼럼을 모은 책이기에각각의 내용은 매우 짧게 편집되어 있고그 안에서 깊은 논의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이해는 된다신문의 특성상 어느 정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의 연결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비약도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싶고저자의 정치적 입장이 크게 거슬리는 것도 아니었지만좀 더 중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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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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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커피를 제대로 마셔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오늘날 커피의 인기는 대단하다우리나라에만 해도 커피숍이 작년 기준으로 7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까 엄청난 수이다아침에 출근과 함께 커피 한 잔으로 잠을 깨고(정확히 말하면 카페인 중독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혼미한 거라고도 하던데..), 오후의 나른함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또 한 잔을 손에 든다이 책은 바로 그 커피의 역사를 중요한 사건 중심으로 훑어가는 일종의 역사 에세이다.


그렇게 전 세계의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된 커피의 시작은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예멘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원산지는 동아프리카 쪽이라고 하는데 14~15세기 아랍 쪽 사람들이 그걸 끓여 음료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이 검은 액체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간 건흥미롭게도 이슬람 신비주의 일파인 수피교도들 때문이었다마시면 잠들지 않게 도와주는 이 액체가 수행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든지 새로운 게 도입되는 과정에는 반발도 있는 법초기 이슬람교 엘리트들 가운데서는 커피가 석탄을 먹지 말라는 코란의 명령에 어긋나는 음료라며 이를 금지하고자 했다하지만 술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있는 이슬람 사회에서 커피 하우스는 점차 대중화되기 시작했고오스만제국과의 교류를 하고 있던 17세기 유럽에도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건 영국과 프랑스의 상반된 반응이었는데초기에 먼저 커피가 퍼진 건 영국이었지만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반발로 인해 급격히 인기를 잃었고이어서 프랑스에서 그 인기를 이어가게 된다초기 유럽에서 커피가 유행하게 된 건커피 자체의 독특한 풍미도 있지만커피 하우스로 불리는 카페들이 일종의 공론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란다마침 한창 시민들의 인식이 깨어나고 있던 시기에 딱 맞아떨어졌던 것.


19세기와 20세기가 되면 커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나폴레옹은 군대에 전격적으로 커피를 보급했던 주인공이었고그가 시도한 대륙봉쇄령으로 커피의 유입이 어려워지면서 당시 프랑스에 점령되어 있었던 독일 지역에서는 각종 대체 커피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고 한다결국 이에 불만이 쌓인(?) 독일인들이 반()나폴레옹 투쟁에 나섰다고...



읽다보면 교양이 쌓이는 게 느껴진다커피에 관한 다양한 상식들역사적 정보들을 알아두면언젠가 또 써먹을 때도 있겠지커피 그 자체도 자체지만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도 흥미롭다그렇다고 너무 전문적이거나 어렵지만은 않은교양 역사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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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1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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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가였던 바빌로니아좀 더 간단히는 바빌론(혹은 바벨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이 책의 초반 감수글에 써 있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에서 특별한 이점이 있다성경에 이 바빌론에 관한 언급이 제법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분열왕국 시대 북부 왕국을 멸망시킨 것은 아시리아였고남부 왕국을 멸망시킨 것이 바빌론이었다유대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바빌론 유수가 일어나 많은 유대인들이 고국을 떠나 바빌론에 강제 이주되기도 했다.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은 물론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빌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그는 공식적으로 왕위에 있지는 않았으나 아버지인 나보니두스에 의해 공동통치자에 올랐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다만 이 책에는 관련내용이 빠져있다), 그리고 그런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포로가 된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했던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1는 꽤 중요한 인물들이다그리고 좀 더 성경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이보다 앞서 히스기야 왕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므로닥발라단(마르두크아플라이디나 2)이 바벨론의 왕으로 불렸다는 걸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런 바빌론의 역사 전반을 간결하게 정리해서 훑어보는 내용이다바빌론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메소포타미아 문명 초기부터 시작한다오래된 도시였고앞서 언급했던 왕들은 그 중 신바빌로니아제국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전성기 때 통치했던 인물들이다수천 년의 역사를 이 정도로 작은 책에 담을 수 있을까 싶지만우선은 고대의 기록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은 양이 남아있지 않은데다가 기본적으로 이 책은 전문가들을 위한 학술서적으로 쓰인 것 같지는 않다일종의 교양역사 정도?


사실 책을 처음 받고 살짝 놀랐다보통 이런 책은 하드커버에아주 얇은 종이에빽빽하게 학술적 자료를 가득 채워놓는 게 일반적이니까하지만 이 책은 하드커버도 아니고본문용지도 적당히 두껍고글자도 작지 않다곳곳에 관련 유물의 사진 자료도 실려 있고지도가 좀 적은 것이 살짝 아쉽지만전반적으로 편안하게 읽어나가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 역사에만 익숙한 사람들이 이쪽 역사를 읽으면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은같은 이름의 나라에 여러 개의 왕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고려와 조선이 단일 왕조로 수백 년을 이어갔던 모습에 비하면 매우 특이하다같은 바빌론이라고 해도 그 주도세력은 끊임없이 변경되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은한 명의 왕이 두 개의 지역을 장악하고는 각각의 왕을 자칭하기도 한다는 점이다예를 들면 몇몇 아시리아의 왕들은 바빌론 지역을 점령하고는 그곳을 단순히 아시리아의 영토로 병합하는 대신, ‘바빌론의 왕이라는 칭호를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아시리아 왕호에 붙여버리는 식으로 처리한다물론 정치적인 실체만 보면 그 지역도 아시리아의 영토라고 해야겠지만오랜 역사와 전통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을 병합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 조치들을 했으리라.


교양으로 읽으려는 사람에게도 괜찮고성경을 좀 더 깊이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물론 이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 사람이라면책 속에 등장하는 조금은 복잡한 이름들은 적당히 넘기면 그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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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2-09-07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교양 역사서는 읽을만한 것들이 많은것 같아요^^

노란가방 2022-09-07 08:43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즐거운 일이지요. ^^
출판사에서 같은 시리즈를 계속 낼 셈인 듯한데(이게 첫 번째), 다른 책들은 어떤 게 나올지 궁금해지네요.

mini74 2022-10-07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빌로니아에 대해 알고싶은 이들에겐 아주 유용한 책이네요.
당선을 축하드리옵니다 *^^*

노란가방 2022-10-08 09:26   좋아요 1 | URL
감사하옵나이다 ^^

서니데이 2022-10-07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노란가방 2022-10-08 09: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날씨가 쌀쌀하네요.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
 
술탄 셀림 -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오스만제국 최강 군주
앨런 미카일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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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수없이 많았던 여러 이슬람 왕조들 중 하나라는 걸 기억하기라도 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테고난공불락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켰던 주인공이자1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이라는 점까지 안다면 역사덕후쯤 되지 않을까?


방금 말한 사건들은 세계사적으로도 꽤 중요한 일들이었다우선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이 1453년이었고1차 세계대전은 1915년이다엄청나게 오랫동안 존재했던 나라다건국부터 멸망까지 600년이 넘게 지속되었고전성기에는 오늘날의 튀르키예키프로스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전역세르비아불가리아알바니아사우디아라비아 일부예만 등등에까지 이르는 엄청난 영토를 보유한 나라였다.


당연히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나라였다하지만 그런 오스만 제국임에도 그 나라에 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우리로부터 먼 나라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지만정작 프랑스나 영국이 멀긴 더 멀다서아시아 역사에 관한 전반적인 관심의 저조함그리고 어쩌면 이슬람에 대한 반감 같은 것들이 복합하게 엮여있는 건 아닐까 싶다.(애초에 그냥 역사에 관심이 없을 가능성도...)





이 책은 그런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확립했던 술탄 셀림 1세에 관한 이야기다. ‘술탄은 이슬람 세계의 정치 지도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메흐메트 2세다셀림은 그런 나라를 물려받아서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위대한 정복왕이었는데동쪽으로는 오늘날 이란 지역을 지배하던 사파비 제국을 밀어내고남쪽으로는 당시 이집트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전반을 지배하던 맘루크 제국을 멸망시키고는 칼리파’ 직위를 차지한다. ‘칼리파는 이슬람 세계의 정신적(종교적최고지도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책은 셀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묘사한다덕분에 본문만 해도 758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 되었는데글씨 크기도 크고줄 간격도 넓어서 눈에 부담은 적었다여기에 적절하게 나누어진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번에 그리 부담없이 쉬어가며 읽을 수도 있었고책의 편집 쪽은 좋은 점수를 줄만한 책.


당대의 사회 풍습들문화와 관습들특히 정치적인 상황이라든지인물들의 판단과 사고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서확실히 재미가 있다여기에 당시 유럽의 상황을 함께 더해서 시간적 감각을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이 정도 알찬 책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다만아쉬운 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





이 정도로 두꺼운 책을 쓰려면 시간도 적잖게 들어가고오랫동안 서술의 대상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애정도 생기기 마련이다그런데 이런 애정이 지나치면 서술의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게 문제한 마디로 말하면 저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셀림이 마치 우주의 흐름을 바꾼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물론 이 문장은 살짝 과장되어 있다)


당연히 이 정도로 큰 나라라면그 시대 주변의 여러 민족과 국가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다른 나라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오스만 제국의 확장에 대항해 나름의 반응을 보일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문제는 이 주변국들의 결정을 오스만제국이 내린 결정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는 점.


예컨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 서술 중 하나는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간 이유가 오스만제국 때문이었다는 것이다콜럼버스는 오스만제국을 넘어서는 동쪽의 세력과 연합해 오스만 제국을 포위한다는 (약간은 허황된계획을 실현하려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결국 그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건 오스만 제국 때문이었다는 식원인(遠因)과 원인(原因)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런 실책에 빠지기 쉽다.


오래 전에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항장이었던 고선지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놀랍게도 그 책에는 유럽 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장군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어 있었는데그가 유럽 문명의 아버지인 이유는 당나라와 아바스 왕조 사이의 결정적인 전투인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가 패함으로써당시 당나라가 갖고 있던 각종 기술이 서양으로 넘어가서 후에 큰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다만 자신이 서술하는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좀 과해 보인다는 건 확실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서술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많이 갖고 있었는지이슬람에 대한 우호적 서술과기독교 세력에 대한 비우호적 서술이 자주 교차되곤 한다예를 들면 28쪽 하단부에는 그리스도의 유산과 마찬가지로셀림 이전의 제국과 세계가 있었다면셀림 이후의 제국과 세계가 있었다는 문장이 있다그리고 첫 휴지부에는 줄표와 함께 기독교인은 이런 비교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이라는 삽입구가 더해져 있고.


이 문장은 두 가지 차원에서 부절적한데하나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옹졸하고 뒤틀린 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고다른 하나는 셀림의 실제 영향력이 그렇게 강했는지에 관해서 다른 의견도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이 외에도 이런 부정확한 서술들이 몇 군데 더 보이긴 한다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어야 할 부분.



책이 나온 게 2022년 5월 31일인데한 달도 안 돼서 이 두꺼운 책의 리뷰가 알라딘 기준으로 여섯 개가 올라와 있다별점은 하나같이 만점인 별 5개를 주고 있지만리뷰의 내용은 심히 부실하다다들 출판사에서 홍보목적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글들이다요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물론 홍보수단이 제한적인 출판사들이 이런 식으로 책을 제공하고 리뷰를 요청하는 방식은 이해한다내 경우도 종종 그런 연락을 받곤 하니까다만 조금 더 성의 있게 책을 읽고 리뷰를 하면 어떨까 싶다괜찮은 책이 오히려 그런 리뷰들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수 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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