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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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를 읽는 데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대학원에서 보수적인 교수의 지도를 받았지만, 교수의 성향과는 정반대로 진보적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부분. 학계라는 게 학맥과 인맥 등으로 촘촘히 얽혀 있곤 해서, 다른 소리를, 그것도 자신의 은사의 주장에 반대해 그렇게 활동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아마 이건 일본도 마찬가지일 텐데, 용기 있는 결단이다.


책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정도 되는 역사 동아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중간 중간 질문과 답변도 섞어 가면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여기에서 다뤄지고 있는 건 근대 일본이 참여한 다섯 번의 전쟁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있었던 중일전쟁이 그것.





저자는 각각의 전쟁들의 단순한 경과가 아니라,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후의 배경을 중심으로 인과적 서술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일본이라는 나라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조금씩 주변국들을 침략, 공격해 가며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점과, 이 과정 내내 철저하게 자국중심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강경파가 득세했다는 점이다.


사실 근대 일본은 서양세력에 의해 강제 개항과 개화가 이루어지면서, 종래의 쇼군에 의해 이루어지던 정치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종의 아노미 현상을 맞게 된다. 일부는 텐노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어 서양식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고, 미약하게나마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은 전자였고, 이들이 태생적으로 힘에 호소하기를 좋아했다는 게 모든 사건의 근원이었다.


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은 채, 소수의 정치가들과 군인에 의해 좌우된 일본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주변국은 물론 자기 자신의 엄청난 손해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전쟁을 거듭할수록 피해가 누적되었고, 다시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또 다른 전쟁에 나서는 느낌이 진작부터 들었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가 버리고 나면 이 뻔한 그림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보통 사람들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똑똑하고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 현명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 의견에 귀를 막고, 좀 더 큰 시야에서 상황을 볼 줄 모르는 소견이 좁은 인간들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질 때 얼마나 파괴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저자는 담담하게, 일본이 주변국에 입힌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사안을 다룬다. 이렇게 깔끔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거다. 그저 무조건 과거를 덮고 잊자고 우긴다고 해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사실 이건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알 수 있는 너무 단순한 진리다)


부디 이런 양심적인 학자들과 시민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자국이 일으킨 전쟁을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꾸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내가 보기에 한일 양국이 제대로 된 우호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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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28
김인희 외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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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북공정”이라는 명칭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물론 2000년대 초반 나온 명칭이니 그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는 패스). 사실 우리말로 하면 그저 “계획”이라는 뜻일 뿐이지만, “공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왠지 뭔가 음모를 꾸민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결과적으로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부 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고대사로 편입시키려는 당국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관치 역사개조작업이었다. 문제는 그 지역과 관련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사와 충돌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부여나 고구려 등 오늘날에는 중국의 영토였던 지역을 점유했던 우리 고대국가들마저도 중국 역사의 일부로 기술하는 식이었던 것.


그런데 이런 “역사 공정”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소위 삼황오제 시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역사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시도를 보여준다. 삼황오제란 중국 최초의 군주들을 가리킨다. 다만 군주라고는 하지만 반쯤은 신화에 가까운, 초기 군장 정도가 아닌가 싶은 존재들로, 그 실체 자체가 불분명한 이야기 속 인물들이다.





네 명의 저자들이 참여한 이 책에서는 다양한 방향에서 중국의 이 역사공정을 다룬다. 첫 머리에서 중국의 이런 공정이 시작된 계기에 톈안먼(천안문) 사태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인민들의 사상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역사를 그 주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다.


90년대 말 시작된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이들 신화 속 인물들과 하, 상 같은 고대 국가이야기를 실제 유적들과 연결시켜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50개가 넘는 민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중국이라는 국가는 태생적으로 ‘통합’이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었던 데다가, 공산당 일당독제 체제의 특성상 반체제 운동을 막기 위한 사상적 통제 작업으로서 역사가 이용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문한자료와 고고학적 발굴을 억지로 연결시키는 시도가 자주 보였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작업의 의도에 정치적인 목적이 깊게 개입되어 있었기에, 학술적인 연구방법보다 정치적인 구호가 더 크게 들렸고, 결국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중국 전역에 이들의 유적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같은 인물의 존재 시기가 1000년이 넘게 흩어져 있다는 식. 고고학적 발굴로 중국 각지에 존재했던 고대 유적들이 연구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걸 억지로 하상주나 염제와 황제 등 신화적 인물과 연결시키는 건 무리라는 뜻이다.





사실 옆에서 보기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소동인 것 같지만, 막상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점점 이게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 또 우려스럽다. 소위 “분노청년”이라고 불리는, 맹목적인 쇼비니즘에 물들어 멍청한 구호나 외쳐대는 이웃나라의 2, 30대들과 우리는 과연 합리적인 관계라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또, 자신들은 한 발 물러선 채, 그렇게 젊은이들이 선동당하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현재의 공산당 권력층은 또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칠까.


또 한편으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자국우선주의에 근거해 역사수정주의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에, 자기가 먼저 나서서 식민 가해국에 면죄부를 주고, 패권국가에게 머리를 조아린 채 당신들은 죄가 없다고 안심하게 해 주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참으로 독특한 존재인 것 같다. 이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을 먼저 낮춰야 한다고 믿는 진정한 평화주의자들인가, 아니면 그냥 멍청이들인가.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역사가 정치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퍽 안타깝다. 물론 고대로부터 역사 기술이라는 것이 정치적 목적과 분리될 수 없었던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술된 기록의 해석과 정립에는 최소한의 기준과 합리적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그냥 소설에 머물 테니까.


중국의 고대사 공정은 국제적으로 그닥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중국의 인구가 수억에 달한다는 점인데, 지록위마라는 옛 말처럼, 수억 명이 우기기 시작하면.... (아, 이걸 노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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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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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유럽 각지에서 모인 영주들의 군대에 의해 점령된 “성지”에는 크게 네 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었다. 북쪽에서부터 에데사 백국,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국, 예루살렘 왕국이다.


사실 십자군에 관한 역사기록을 처음 볼 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그 지휘계통도 일원화되지 않았던 유럽의 군대가 먼 동방에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나라가 이슬람 세력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떻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는지 하는 것들이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이슬람 세력들은 수많은 작은 세력으로 나뉘어서 서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느라 일치단결해 십자군과 싸울 수 없었고, 십자군측에는 뛰어난 지휘관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번 권에 실려 있다.




“동방”은 넓은 땅이었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보면, 이집트부터 팔레스타인, 시리아, 터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 지역까지를 넓게 둘러싼 곳이다. 이 땅이 이슬람화되어있던 상황에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을 따라 그들의 영토를 만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이스라엘과 레바논, 시리아 일부다.


그런데 이들이 영토를 지키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병력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우선 각 나라의 지배자들이 가지고 있는 직속 부대가 일부 있었지만 모두 합쳐 수천의 기병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작가가 중요하게 꼽는 것이 성전기사단과 성 요한 병원기사단(훗날의 로도스기사단, 몰타기사단)이었다. 이들 기사단의 주력인 중무장 기병은 합쳐도 고작 수십에서 3, 4백 명을 넘지 않았지만, 무슬림 적과 싸우기 위해 서약한 전문 전사집단은 일종의 특수부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다.


그래도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십자군 세력이 자주 사용한 것이 성채다. 이번 권에서는 이 ‘성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관찰이다. 십자군 국가들 전역에 길목마다 건설된 성채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요긴한 시설이었다. 특히나 이슬람 군대는 이런 단단한 방어시설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전통이 부족했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예루살렘 국왕들의 책임감이다. 보두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역대 국왕들은 자신들이 맡고 있는 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채와 두 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현 상황을 간신히 유지해 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하나씩 사라져가 버리는 게 이번 책의 내용이다. 국왕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는 혼란에 빠진다. 어린 아들(보두앵 5세)은 즉위 후 2년 만에 죽어버렸고, 보두앵 4세의 누이와 결혼한 덕에 왕위에 오른 뤼지냥은 무능 그 자체였다.


반면 이슬람 세력에서는 끊임없이 인재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장기와 누레딘, 그리고 살라딘까지... 인재가 줄어드는 세력과 반대로 인재가 분출되는 세력이 대결을 하면 그 결과는 뻔 한 것이었다. 무능한 뤼지냥은 남은 병력을 소진시키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고, 그대로 예루살렘은 살라딘에 의해 정복되고 만다.


하지만 살라딘은 단지 군사적 재능만 있는 장수가 아니었다. 이슬람 세력에게도 성지였던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그는 십자군 국가들 사이를 갈라놓는 사전작업을 잊지 않는다. 에데사 백국은 진작 장기와 그의 아들 누레딘이 나타면서 사라져버렸고, 북쪽에서 오는 적을 가장 먼저 맞게 된 안티오키아 공국은 급격히 소극적으로 변해버린다. 네 개의 십자군 국가들이 긴밀하게 연계하면서 적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핵심이었던 공동방어전선이 깨져버린 것이다.




온통 이슬람 세력에 둘러싸인 기독교 국가라는 십자군 국가들의 처지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 때 정치적 기술이란 주변의 강국들에게 무조건 아부하고 아양을 떠는 식이 아니라,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이슬람 세력들과도 협력을 하면서 동시에 위협이 되는 적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을 전제로 한다. 결국 안보는 남의 손으로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역사의 교훈이니까.


자연히 우리의 상황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과 정교한 외교관계를 맺어야 하는 처지에서, 이 즈음 우리는 현명한 사고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최근 물씬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점점 인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 시절 영웅들을 소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갈수록 젊은이들이 현실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될 것 같지도 않는 상황에서, 미래가 썩 밝을 것 같지도 않다는 게 문제.


십자군 국가는 그렇게 무너졌고, 이후 여러 차례 새로운 십자군이 결성되었지만 한 번도 성지를 탈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진 국력은 그만큼 회복시키기 힘든 법이다. 결국 무너지기 전에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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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막이 오른다
김주연 지음 / 파롤앤(PAROLE&)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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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도대체 왜 푸틴이 이 지역을 러시아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느냐는 부분이다.


그저 푸틴의 망상이나 탐욕이라고 설명하는 건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기에 모자라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지 군사적/정치적 요충지를 차지하려는 생각을 넘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역사도 있었다. 슬라브족의 역사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슬라브족의 역사와 분화 과정, 나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간략하게 스케치하고 있다(아주 학술적인 역사적 기술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특별히 자신의 주력 관심사인 공연, 음악, 문학 같은 예술 분야에 관한 설명을 덧붙여 독특한 분위기의 책을 만들었다.



슬라브족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포함하는 동슬라브족,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를 포함하는 서슬라브족, 그리고 발칸반도 북부의 구 유고연방에 속했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와 슬로베니아, 불가리아 등의 뿌리인 남슬라브족이 그것. 동슬라브와 서슬라브족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그래서 폴란드가 최근 우리나라 무기를 잔뜩 사서 무장하는 중이다), 남슬라브족 국가들과는 루마니아와 헝가리, 오스트리아로 떨어져 있다.


단순히 ‘슬라브족’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워낙 오랜 시간 흩어져 살아오면서 주변 민족과 교류를 해왔기에, 오늘날 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하얀 피부에 금발을 가진 전형적인 슬라브족의 외형도 있는가 하면, 검은 머리에 좀 더 짙은 피부색을 가진 슬라브족도 있다. 특히 오스만제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던 남슬라브족에서 이런 외형적 변화가 컸다.


단지 외형적인 변화만이 아니다. 동슬라브족의 경우 정교회가 우세지만, 서슬라브족은 가톨릭이, 남슬라브족에서는 이 두 종파에 앞서 말한 오스만제국 지배기 들어온 이슬람교 신자들도 많이 살고 있다. 종교가 다르면 문화도 달라지고, 사는 방식에도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인근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결국 그저 이웃일 뿐이고, 함께 살아가는 동료였다.



슬라브족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건 기쁨과 영광의 순간 보다는 고통과 슬픔의 시간들이었다. 비단 최근의 러시아의 침략 전쟁만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역사가 있었고, 폴란드는 동서의 강국의 침략을 받아 영토의 상당 부분 잃기도 했었고, 과거 소련시절 공산당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코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기도 했다. 또, 남슬라브족의 영역은 유고 전쟁으로 엄청난 사람들의 죽음과 인종청소가 일어난 땅이었으니까.


물론 그 땅에 언제나 슬픔만 있었던 건 아니다. 체코의 프라하는 예술의 도시로 유명하고,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라는 도시는 실험적인 연극으로 유명한 연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던가.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과거 소련의 유산들로 칙칙하고, 황폐한 느낌이다.



저자가 직접 도시들과 거리를 다니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담았기에 생동감이 있다. 또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그리 익숙지 않은 지역들에 관한 이야기라 좀 더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사를 소개하면서 예술이라는 코드를 함께 넣은 것도 좋은 기획이었던 듯하고. 한 번쯤 기억해 둘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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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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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 이 책 전집(3권)이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올라왔을 때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주제도 워낙 관심이 갔고, 저자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확실히 글재주가 있는 시오노 나나미였으니까.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었고, 한참 만에 꺼내 읽기 시작하다 과연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십자군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다. 거의 200년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사건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그 중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 1095년 시작된 첫 번째 십자군이다. 당시 유럽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사이의 대립이 꽤나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으로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을 꿇었던(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것이 바로 몇 년 전이었고, 이에 원한을 품고 있던 황제는 곧 자신을 무릎 꿇린 교황을 몰아내버렸다.


같은 시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이 일종의 상수였다. 아라비아 반도의 한쪽 구석에서 시작된 이슬람 세력은 곧 아라비아 반도 전체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전역, 그리고 이 시기에는 북아프리카 전체와 유럽의 일부(이베리아 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한 상황이었다.


십자군은 이 두 가지 상황을 한 번에 타개해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레고리우스 8세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던 우르바누스 2세는 이슬람 세력에 의한 예루살렘의 성묘교회 파괴와 순례자들에 대한 공격을 명목으로 ‘성지회복’을 위한 십자군을 주창한다. 그리고 여기에 유럽의 여러 귀족들이 참여하면서, 교황의 권위는 전 유럽에 떨쳐지게 된다.


1차 십자군은 사실상 성지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유일한 십자군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프랑스나 잉글랜드의 왕이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같은 군주들이 직접 나서는 대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지역의 영주들이 주축이 되어 자칫 오합지졸이 될 뻔했던 구성이었지만, 노르만족 출신의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와 그 조카인 탄그레디, 또 독일 지역의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와 그 동생 보두앵 등 전술과 전략에 뛰어난 지휘관들과 오히려 사분오열 된 이슬람 세력의 상황으로 지중해 동부 연안을 점령하고 일종의 기독교 연방 국가들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전체 3권 중 첫 번째 책인 이번 권의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였다.





뭐 이 정도의 간략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조그만 뒤지면 누구나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역시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라면 디테일한 사건의 전개 과정 묘사, 그리고 이 과정이 흡입력 있게 재구성되어 있다는 장점 아니겠는가. 기록으로만은 쉽게 파악하기 힘든,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그들이 내린 결정에 어떤 사고과정이 있었을지 하는 부분들은 인상적이다.


물론 “로마인 이야기” 때부터 은근 자주 보였던 군국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다운 제국주의적 관점이 여기에서도 틈틈이 보이긴 한다. 예컨대 ‘지즈야’라는 비무슬림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을 내면서 살아야 했던 이슬람 세계 속 기독교인들의 처지를 나름 나쁘지 않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묘사하는 부분(30)은, 과거 일제의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도 조금 피해를 입긴 했으나 나름 살 만했다는 어느 무지한 이들의 망언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 대체로 힘의 원리를 신봉하고 있고, 정복자, 특히나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는 정복자들에게 우호적인 서술을 한다거나,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은근한 폄하도 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없는 걸로 생각하고 무시해버리는 케케묵은 계몽주의 시대 똑똑이들의 관점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1차 십자군의 과정에 관해서 이보다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은 애증의 감정으로 계속 보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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