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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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턴은 새로운 사료를 발굴함으로써 구체제의 농민들의 삶을 재현시켰던 것이 아니라,

「신데렐라」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사람들이 흔히 보아왔지만 지나쳤던

농민들의 이야기에 역사적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복원시켰다.


 감상평 。。。。。。。 

 

     제목인 ‘고양이 대학살’은 언뜻 무슨 추리소설 이름 같지만, 내용을 보면 제법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어떤 식으로 실제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책은 프랑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를 위해 일반적인 책처럼 정치사, 경제사 위주의 서술이 아닌, 동화, 이야기, 소설 형식의 기록, 주문서, 경찰의 보고서와 같이 색다른 소재를 토대로 역사를 서술해 나가고 있다.

     1장에서는 잘 알고 있는 ‘빨간모자 소녀 이야기’(책의 내용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원형에는 빨간모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우화’,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당대의 사회현실을 반영하는가를 살피고 있다. 이를 테면, 아이를 버리거나, 소원이 언제나 ‘먹을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 백성들의 궁핍한 상황을 끌어내고, 길을 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위험들은 당시 경찰력의 부재를 나타낸다는 식이다. 옛날 얘기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사기’, ‘속임수’는 큰 자에 대해 작은 자를 대항시킴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당시 사람들의 희망, 소망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이야기가 ‘농민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말해주었으며, 이야기는 세상에 대처하는 전략을 제공해주었다’(85:10-11)고 말한다.

     2장의 고양이 학살 사건은, 당시 사람들에게 고양이가 어떤 식으로 비춰졌는지를 살피면서, 이 사건이 의미하는바(부르주아에 대한 반감)를 짚어내고 있으며, 몽펠리에라는 한 도시에서의 행진의 기록에서, 도시 내의 질서(‘성직자 - 귀족 - 평민’이라는 전통적인 질서가 아니라, ‘법복귀족(관직) - 부르주아 - 구식 장인’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표현하는 무명의 저자의 의도를 읽어낸다. 저자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한 경찰의 조서 식으로 꾸민 문서에서 당시의 문필가들을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역사가들의 주류가 해석하는 방법처럼, 위에서 아래로 해석해나가는 대신, 아래서 위로 해석해 나간다. 물론 이런 방법이 가지는 문제점은, 그것이 자칫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초들의 기록은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을 요구하기 어렵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고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한계는 있는 법. 신중하게 자료를 살피고 정리한다면, 오류에 빠질 위험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신선한 내용이었다.(출판년도는 1980년대.. ㅡㅡ;;)

     꽤나 전문적인 것도 있었고, 때문에 비전공자가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는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 책이었다. 내용의 전문도가 높아 가는데 반비례해서, 흥미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 뒷부분은 대충 넘겨 읽는데 그쳤지만, 서술 자체가 흥미롭기에 다시 한 번 손에 들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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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도서관의 역사 - 수메르에서 로마까지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1
라이오넬 카슨 지음, 김양진 외 옮김 / 르네상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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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중반에 로마 도서관 자료들은

그리스와 소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훨씬 더 탄탄해졌다.

전쟁은 약탈을 의미했고, 약탈이 늘어갈수록 도서관의 탄생도 가까워졌다.

약탈한 장서로 아이밀리우스는 기록상 로마 최초의 도서관을 지었다.

 

 

 감상평 。。。。。。。

 

     도서관의 역사. 전형적인 미시사를 다룬 책들만이 취할 수 있는 이름이다. 내용은 지나치게 평이했다. 말 그대로 제목에 충실하게, 고대 인류가 남겨놓은 도서관의 역사를 차분하게 훑어 나가는 것으로 책이 시작하고 마무리가 되고 있다. 아주 평이한 구성이다.

     이 책에서만 특별하게 느낄 수 있었던 흥미로운 점은, 고대 거의 최도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도서관은 오늘날과 같은 종이 책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이 아니라, 여러 장의 점토판을 모아 놓은 도서관이었다. 어떤 식으로 ‘책들’이 만들어졌는지, 또 그 것들을 보존하는 방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도서관에도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책에 신의 저주를 새겨놓았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또, 도서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대 도서관이, 사실상 연구가 거의 불가능한 부분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은 점토판 보다 발전된 형태의 파피루스 종이를 사용했기 때문에, 다 불타거나 훼손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책의 편집이 좌우 여백이 좀 넓게 되어있어서, 전체적인 글씨의 양이 적었고(책의 두께만 두껍게 만드는 편집방식이다), 문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쓰여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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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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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에 걸친 이 강의에서는

한국의 선거에 대해 일반인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결코 상식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는 한국 사회를 바꿔놓는 데

대단히 역동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1. 요약 。。。。。。。           

 

     대한민국 건국 직후부터 지난 2007년 대선까지, 이 땅에서 실시되었던 여러 선거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놓은 책이다. 이 땅에 선거라는 것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기부터(1강),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선거를 왜곡시켰던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선거들(2, 3강), 그리고 유신체제의 시퍼런 서슬 아래서 권력자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표현했던 선거들과(4강) 소위 민주화를 이룬 후에 실시되었던 선거들(5강)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있었던 선거들을 소개하면서 한국 근대사를 ‘선거적 관점’으로 바라본 흥미로운 책이다.


 

 

2. 감상평 。。。。。。。 

 

     이 책은 처음부터 책을 만들기 위한 원고로 쓰인 것이 아니라 강의를 녹취해 책으로 엮었기에 좀 정리된 맛은 덜하지만 대신 생동감이 있었다. 책을 쓸 요량이라면 이것저것을 찾아보느라 내용이 길어지고 문장이 딱딱해지는 느낌을 주기 쉽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강의라면 제한된 시간 내에 꼭 중요한 내용만을 전달하기 위해 자잘한 것들은 생략해버린다. 당연히 진행에도 탄력이 붙고, 읽는 과정도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힌다.(물론 내용의 깊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제한되겠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니까)

 

     정치에 대한 불신이 결코 적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적당히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정치행위의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선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선거가 가진 놀라운 힘과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좀 더 선거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선거의 정신에, 선거의 절차에, 선거의 결론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좋은 선거’는 누가 그냥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의 투쟁의 결과로 얻게 된 소중한 보석과도 같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 보석을 엉뚱한 데 이용하려는 시도들을 우리는 단호히 경계해야 한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정보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선거가 생각했던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권력자들에 의해 선거가 불법적 권력연장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런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놀라운 선택으로 권력자들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선거는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중요한 기점마다 선거가 놓여 있었다. 비록 최근의 선거가 정의나 도덕, 인간의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가치들이 완전히 무시된 채 물질주의에 치우친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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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 미국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치 있는 가정들 라면 교양 1
김준형 지음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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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승리한 가장 큰 이유는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1. 줄거리 。。。。。。。

 

     책의 서두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나가던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내기를 했던 해와 바람. 결국 해가 이겼다는 결론은 다 알고 있지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강제보다는 부드러움이 이기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그 게임의 규칙을 해가 정했기 때문이라고. 만약 나그네의 옷을 입히기 내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해가 이겼겠느냐고.

 

     저자가 미국을 보는 시각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전 세계의 ‘절대 선’으로, 세계의 경찰국가(사실은 패권국가)로 자처하고 있는 미국이 정말로 그러하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저자는 미국 역사의 주요 순간들 - 건국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1장), 냉전 체제의 지속(2장), 9․11테러(3장) -에서 미국이 결정한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리고 그 선택들의 기초에는 사실상 자국의 이익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4장에서는 이러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한 조명을 하는데, 저자는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초기의 불안정한 상황을 지나오는 데 있어서 미국의 막대한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끼친 잘못들을 ‘일곱 가지 배신’이라는 항목으로 묶어놓았다. 그러면서 달라진 안보환경에 맞춰 기존의 미국중심의 한미관계에 대한 적절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2. 감상평 。。。。。。。

 

     역사를 뒤집어 상상해 보는 일은 대개 재미있다. 많은 경우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는 내용들은 동시에 ‘강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관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생각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두뇌는 꽤나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기 마련. 더구나 그 ‘역사적 사실’이 현재와 연관이 되는 일이라면, 이 작업은 단지 ‘흥미꺼리’의 수준을 넘어 ‘행동을 촉구’하는 데까지 이르니 이 또한 재미있다.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어이없게도 스스로가 가장 강하게 믿고 있는) 고정관념 중 하나인 ‘미국은 선하다’, 혹은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다’라는 고정관념을 이 책은 비판한다. 역사상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을 뿐이며, 사실상 기존의 이미지와는 반대의 여러 행동들 - 무력을 동원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세상을 재단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꽤나 불편한 진실을 저자는 나름 맛깔나게 풀어나가고 있는데,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툭하면 내뱉는 ‘감정적 반미(反美)’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들과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꽤나 ‘논리적 반미’이다.

     다만 이 ‘논리’는 사건에 대한 해석이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결론까지 완전히 논리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예컨대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의 고립주의는 훗날 힘을 키워 패권국가가 되려는 미국의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이라는 논조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고립주의와 패권국가로의 발돋움 사이에는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백 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일인데, 미국이 정말로 그런 긴 안목과 정책적 일관성을 지닌 나라일까.

 

     저자의 말처럼 미국은 다른 여러 나라와 같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은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미국의 이익’이라는 말도 ‘모든 미국인들의 이익’이라는 말과는 또 다르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최소한 ‘균형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균형 잡힌 시각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처리되는 일은 당연히 균형 잡히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눈에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서는 아무리 똑바로 걸어가려고 하더라도 삐뚤게 갈 수밖에 없으니까. 극좌나 극우가 위험한 것은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만이 전부인 양 주장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당하지 않은 폭력까지도 동원하기 때문이다.

     비단 미국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진로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면 좀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할텐데...

 

     외적인 측면에서 책의 시리즈 제목이 ‘라면 교양’인데, 이 책도 그런 기획의도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각 장을 시작하는 부분마다, 알려진 것과는 반대의 가정을 한 가상 역사로 흥미를 돋운다. 하지만 그 가상역사 부분이 그다지 본문의 진행과 밀접한 연관이 없는 내용이라는 점은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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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코뮌 고려대학교 교양총서 4
가쓰라 아키오 지음, 정명희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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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여러분.

여러분에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사람은,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이 뽑고, 여러분과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어려움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줄거리 。。。。。。。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들에 의한 정부 구성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파리 코뮌’에 관한 학술적 서술이다.

 

     나폴레옹 3세의 황제 취임은 프랑스에게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 주는 것만 같았다. 공화정을 폐지하고 강력한 황제 주도의 각종 개혁들은 급속한 발전의 이유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황제 한 사람에게 집중된 정치체제에서, 황제의 판단력 저하는 치명적이었다. 잇따른 외교적 실패들은 프랑스 내에 경제적 위기를 불러왔고, 한창 뜨고 있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은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갔다.

     결국 포로가 되어 권좌에서 밀려난 나폴레옹 3세를 대신해 프랑스를 대표하게 된 것은 ‘국방정부’. 하지만 전세는 이미 기울었고, 국방정부의 요인들은 이름과는 반대로 항복을 할 궁리만을 하고 있었다. 절대항전을 주장하는 민중들과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을 때, 수도 파리에서는 마침내 무력을 동원한 혁명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정부의 구성과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수도 파리를 빼앗긴 국방정부파와 왕정복고를 노리던 왕당파들, 그리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던 부유층들은 당연히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터. 전열을 가다듬은 국방정부측은 어제까지의 적이었던 프로이센과의 협상을 통해 포로가 되었던 정규군들을 반환받고 일거에 파리를 포위한다.

 

2. 감상평 。。。。。。。

 

     말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권력은 소위 ‘지도층’들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복잡한 행정과 법률을 다루는 데는 ‘전문가들’의 능력이 필요한데, 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그런 것을 감당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부족하니까.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가보다는 작은 공동체가 적절하다. 이를테면 ‘도시’ 같은.

     파리 코뮌의 한계도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파리라는 한 개의 도시 안에서 그들은 실제로 노동자들에 의한 정부를 구성했다. 하지만 그들이 세운 정부는 파리라는 한 도시의 정부인지, 프랑스라는 국가의 정부인지 그들 스스로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이는 코뮌 성립 이후 여러 급박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도시들의 연합체 정도를 생각했던 듯하지만, 현실적으로 프로이센은 물론 인근의 강력한 국가들의 압박을 그런 연합체로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정치라는 체제의 한계는 아니었을까.

 

     파리 코뮌을 보며 새삼 감탄하게 되는 부분은 그들이 코뮌을 성립시키는 데 있어서 철저히 민주적 절차를 고수하려 했다는 점이다.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물론 우파 쪽도 마찬가지이지만)이 단숨에 정권을 장악해 자신들의 사상을 통한 정부를 구성하려고 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 역사적 사실 아닌가. 우파는 좌파를 빨갱이라고 잡아 북이고, 좌파는 우파를 수구꼴통이라고 비난하며 잡아 죽이는 행태는 근대 이래로 계속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하지만 파리 코뮌 안에서는 전적으로 모든 것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국방정부 측의 실책으로 정권을 잡은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제한된 시간 동안만 행사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다음 정부를 구성했다. 당연히 코뮌 세력을 견제하는 왕당파나 부르주아를 대표하는 의원들도 선출되었고, 두 세력은 저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가운데 심각한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과연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프랑스다운 모습인건가.

 

     코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앞두고 사회주의 측에서 했던 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시민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활하고 여러분과 같은 고생을 하는 사람이라고. 우리에게는 이러한 정치인들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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