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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숭배
피터 브라운 지음, 정기문 옮김 / 새물결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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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후반의 그리스도교도들은

동료 인간으로서 동일시할 수 있는 보호자와 친교하기를 원했고,

이미 그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는 인간 관계였던

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 보호자와 관계를 맺고자 했다.

 

     성인숭배. 제목만 보고서 선택했던 책이다. 고대, 중세인들의 흥미로운 성인숭배 관습들을 수집해 놓은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은 ‘성인숭배’라는 주제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성인숭배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다지 깊게 가지고 있지 못했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었다.

     저자는 성인숭배의 관습을 단순히 미신적인 것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기존의 통설을 반박한다. 집단적인 개종으로 다신교를 숭배하던 대중들이 대거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결과 기독교 교리의 변형이 일어났다는 것이 기존의 관념이었다면, 저자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긴장’(p. 97)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거나, 신흥 엘리트의 부유한 속인들과 주교들 사이의 긴장(p. 98)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기대해온 바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종교가 점점 더 “대중적”으로 되어가는 형식을 띠어가는 것을 마지못해 혹은 정치적으로 수용했던 사실도 없고, “미신”이라는 동종 요법을 동원해 지도자가 없는 다신교 “대중”을 흡수하려고 했던 일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지도력의 질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성인 숭배 내부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105 : 1 - 8)


 

     그 밖에도 성인숭배의 의식을 통해 여자들이 공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성인과의 관계를 로마의 전통적인 관계인 파트리엔트와 클리엔테스 사이의 관계에 대응시켜서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성인숭배의 관습을, 그것이 널리 퍼져있던 시기의 여러 정황과 밀접한 관계아래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좋은 책이다. 성인숭배에 관한 좋은 밑그림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성인숭배에 관한 여러 관점들이 당분간은 쉽게 수정되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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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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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기서 생겨나는 물음.

체 게바라에게 열광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중남미 친미독재정권의 군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혁명가 게바라가 아닌,

시가를 입에 문 또 다른 할리우드 꽃미남을 따르는 것은 아닐까.

혁명은 탈색되고 그저 반항적이고 성적인 이미지로서의 게바라만 남은 것은 아닐까.

 

 

1. 줄거리 。。。。。。。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최일선에서 막아내고, 나아가 쿠바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들의 투쟁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볼리비아에서 암살을 당한 혁명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반제국주의에 관한한 20세기 최고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의 두 번째 부인으로, 본격적인 쿠바민중혁명의 기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일레이다 마치가 쓴 회고록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체 게바라를 만나고, 그와 함께 활동했던 시기들,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고 혼자 쿠바에 남아 지내야 했던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 놓는다.

 

 

2. 감상평 。。。。。。。

 

     책의 전면과 후면은 체 게바라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이 책은 그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그의 아내인 일레이다 마치에 관한 내용들이다. 자신의 회고록을 쓰면서도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운명을 일레이다 마치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위대한 혁명가와 관련이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충분했을까. 어떤 사람이 ‘그 사람 자신’으로 불리기보다는 ‘누구와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불린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이런 편집방식과 홍보방식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중의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집중을 하기 위해 손에 든 사람은, 체 자신 보다는 그의 아내인 일레이다에 관한 내용이 더 많다는 데서 중간에 포기를 할 가능성이 높고,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관념적(때때로 그저 교육된 사상을 되풀이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인데다가 썩 엄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데서 책 자체에 대한 불만족스러움도 더해질 테니 말이다.

     내 생각엔 이 책을 손에 드는 사람은 체 게바라와 매우 가까우면서도 친밀한 위치에 있었던 저자의 기록을 통해 체의 모습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쉽게도 책은 상황마다 체에 대해 그저 반복적인 동경을 하는 한 여인의 글에 가깝다. 더구나 글솜씨에 있어서도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예를 들면 ‘우리(체와 일레이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감정을 표현할 때까지는 끔찍한 사건과 오해를 겪어야 했다’(p. 23)는 문장은 자연히 이후 어딘가에 그 ‘끔찍한 사건과 오해’에 대한 흥미진진한 서술이 따라올 것 같은 기대를 품게 만들지만, 책을 너무 대충 읽었기 때문인지 나는 아직 그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책의 거의 유일해 보이는 장점을 꼽자면 체의 개인적인 편지와 대화들이 실려 있다는 부분인데, 그것들도 체에게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는 것 정도밖에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들이니까.

     어떤 사람을 기념하고, 그의 업적과 삶을 재조명해보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체를 잘 그려내고 있는 것도, 그렇다고 일레이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을 받게 만드니... 물론 체와 가까운 사람이 그와 관련된 내용을 남겼다는 것은 이쪽을 전공하는 학자들이나 관심 있는 개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긴 하겠지만, 나처럼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냥 그렇다는 느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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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 2008-09-29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책 제목이 잘못된 것 같네요.

오랫동안 RSS로 받아보기만 하다가 첨으로 글을 남깁니다.
실은 제가 로긴을 할 수 있는지 이제서야 알았네요.
반갑습니다. ^^

노란가방 2008-09-29 08:0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볼 건 별로 없지만 종종 들려 주세요- ㅎㅎ
 
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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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개선하려고 할 때 저 같은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한 일은

나중에 진정한 힘을 지니고 나타날 하층민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 놓는 것밖에 없을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숙명일지도 모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꾸로 보기’의 역사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역사서술의 주체였던 남성적, 권력자적인 입장이 아닌, 상대적 약자인 여성적, 비 권력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시각으로, 그가 얼마나 방탕하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를 비꼬고, 시성이라고 불리는 단테가 얼마나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관심한 채, 오로지 자신의 이상만을 쫓다가 죽었는지를 꼬집는다. 칼리쿨라의 말(馬)의 시각으로 로마의 황제를 그리는 부분은 재미있는 시도였다.

     심기를 껄끄럽게 한 부분은, 여전히 이번에도 드러나는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이다. 이 책에서는 성경, 특히 복음서와 관련해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하나같이 자기 멋대로의 해석이다. 대부분 자유주의적인 성경해석이며, 굳이 자신의 전공분야도 아닌 것을 쓰려는 이유가 미심쩍은 부분이다.

     이번에도 저자의 영웅숭배는 여전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에서 이것은 특히 더 잘 나타나는데, 저자의 눈에 든 인물은 모든 행동이 극도로 치켜세워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없이 깎아내려지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글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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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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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비범한 분쟁은

때로 일상의 물결 속에 감추어져 있는 동기와 가치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 -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그런 얘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인 마르탱 게르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저자의 설명을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마르탱 게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 어느 마을에 마르탱 게르라는 부농이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먼 곳으로 떠나 사라져버리고 남은 아내만 혼자서 집을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마르탱 게르가 돌아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용모와 성격은 약간 달라진 것 같았지만, 그의 아내도 그를 마르탱이라고 확실하게 주장하는 마당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는데, 돌아온 마르탱이 그가 없는 사이 재산을 관리하던 작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재산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대신 땅을 팔고 보다 상업적인 방법의 재산 운용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의심을 품은 작은 아버지는 그가 진짜 마르탱 게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대도시에서 열렸던 재판은 돌아온 마르탱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진짜 마르탱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가짜 마르탱, 곧 뒤 틸의 계략은 들통 나고 만다.

     저자는 이 과정을 기록하면서,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표면적인 내용 이외의, 당시 프랑스 일반인들의 관습, 사고방식, 문화 등을 묘사하고 있다. 통상적인 역사서 중심의 역사 이해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책이어서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마르탱 게르의 부인이 뒤 틸이 마르탱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나, 그 둘이 프로테스탄티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그들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가톨릭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 - 이혼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 -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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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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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이 비싸고 수가 적은 필사본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성직자가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판단을 내릴 때 필요한 지식이 교회나 수도원의 울타리를 넘어

시중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출판업을 언급하지 않고는 인간의 재발견이기도 한 르네상스를 말 할 수 없습니다.

 

1. 요약 。。。。。。。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다. 저자의 이름과 책 제목만 내놓더라도, 어느 정도 그 내용이 짐작되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제목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에서 이 책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르네상스라는 시기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시오노 나나미가 썼다는데서 책의 내용이 딱딱하지만은 않게, 그러면서도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른 면모를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데, 실제로 그러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르네상스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각 시기별 중심지 -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를 돌아가면서 각 시기의 주요 인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르네상스란 ‘만족할 줄 모르는 호기심’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왜’라고 묻는 태도, 그것이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르네상스는 호기심이 폭발했던 시대인 듯하다. 여기서 호기심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미지의 것,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왕성한 탐구욕, 그리고 그것을 글이나 그림, 조각, 건축 등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열정을 모두 포함한다. 저자는 ‘르네상스의 인물’을 다루면서, 단지 예술가들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 안에는 교황, 메디치 가문과 같이, 르네상스라는 문화의 꽃이 피어날 수 있도록 토양을 제공해준 인물들도 포함된다. 또 성 프란체스코와 같은 종교인들도 들어가고, 저자가 좋아하는 마키아벨리 같은 인물도 역시 꼽고 있다.

  

2. 감상평 。。。。。。。 

 

     

     , 시오노 나나미의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기독교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이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 물론 어느 정도 이 지적은 받아들일만한 면도 있다. 하지만 뿌리 없는 줄기는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르네상스란 중세의 오랜 기간동안 천천히 고양되어져 온 인간의 역량이 마침내 때가 되어서 표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다. 중세는 종교 예술의 황금기였으며, 르네상스가 시작될 무렵 교회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라는 점이 이를 지지해 준다. 즉, 중세의 야만적인 유럽인들의 심성을 교회 안에서 교화 시키고,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정치, 예술과 같은 분야들이 차차 발전되어서,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해 내지 못하게 되자 그 보호를 벗어버리고 밖으로 나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중세의 유럽인들이 모두 진정한 의미의 신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그들의 삶의 기본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았으며, 그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은 모두 기독교에 대해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에라스무스와 같은 사람들은 목회적 관점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나갔다는 견해도 존대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다. 그의 글 솜씨는 인정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언제나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루빨리 이에 필적, 아니 능가하는 건전한 기독교적 관점을 지닌 인물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의 내용도 대화형식으로 쓰여 있어서, 마치 직접 앞에서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인물 중심으로 쓰여 있기에, 르네상스 당시의 전체적인 그림은 쉽게 와 닿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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