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바꿀 14가지 거짓과 진실 - KBS '역사추적' 팀이 밝히는 비밀! 두 개의 한국사!
KBS 역사추적 팀.윤영수 지음 / 지식파수꾼(경향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몇 년 전 KBS1에서 방송되던 역사추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반도의 역사에 관한 여러 주제들을 고증하면서 가끔은 색다른 주장을 하기도 하는, KBS 역사 교양물의 계보를 잇는(지금은 역사저널 그 날로 이어지고 있다) 프로그램 중 하나. 이 책은 그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몇 편의 내용을 다시 책으로 엮은 것이다.

 

     ​크게 3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몰랐던 비밀, 오해한 진실, 잊었던 사람이라는 주제에 따라 배열되었으나, 주제들이 정확히 제목에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예컨대 오해한 진실시리즈에 속해 있는 신라 해적이나 동래성 해자에서 발견된 인골등은 처음부터 오해할 꺼리 자체가 없지 않았던가.

 

     ​그래도 흉노족 김일제가 신라 왕손과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이나(이 주장의 신빙성에 관해서는...), 의자왕은 항복한 것이 아니라 배신을 당했다는 것, 일제강점기 65세의 나이로 조선총독에게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보여주었던 강우규 의사의 이야기 등은 흥미롭다.

 

 

2. 감상평 。。。。。。。

 

     ​일부 내용은 이미 인터넷 기사나 다른 책, 또는 본방송으로 본 기억에 있는 것들이라 책 전체가 새로운 건 아니었다. 그리고 방송으로 내보내기 위해 준비된 내용을 책으로 옮기면서, 달라진 매체에 맞는 표현방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듯, 문장에서 방송 내레이션의 느낌이 물씬 난다. 책은 책만은 방식이 있는 건데 말이다.

 

     ​그래도 역사에는 소재 자체로 흥미를 던져주는 내용들이 많다. 이 책에 실린 일부 이야기들은 그렇게 서술 자체의 빈약함을 넘어서서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의 정적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정치를 하려 했던 정조대왕의 이야기(6)는 오늘날 정치가 뭔지도 모른 채 바퀴벌레 떼들처럼 모여 다니며 힘자랑만 하는 이 나라의 한심한 정당인(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게 아깝다)들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65세의 나이에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기 한 목숨 바쳐 의거를 행하고 일본인들 앞에서 당당히 소신을 밝혔던 강우규 의사의 일화는, 오직 돈푼 좀 얻겠다고 권력에 빌붙어서 온갖 관제데모나 해대고 다니는 오늘날의 어떤 "어버이"들과는 또 얼마나 다른가.

 

 

      강우규 의사가 아들에게 남긴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내가 돌아다니면서 가르치는 것보다 나 죽는 것이 조선 청년의 가슴에 적게나마 무슨 이상한 느낌을 줄 것 같으면 그 느낌이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조선 청년의 가슴에 인상만 박힌다면 그만이다.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고 하는 조선 청년들이 보고 싶다.”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고 하는 조선 청년들. 적어도 한 세대가 역사 속으로 퇴장할 즈음에는 이 정도의 아름다운 뜻은 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든 후세대의 것을 빼앗아 자기만 누리려고 하는 탐욕스러운 구세대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현실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이다.

 

 

     ​각 장이 짧게 편집되어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한 챕터씩 가볍게 읽기에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30년 학력 붕괴 시대의 내 아이가 살아갈 힘 - 인생을 개척하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한 인간주의 교육의 제시
텐게시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1. 요약 。。。。。。。

 

    “착한 아이는 매우 위험하다는 문구를 책 뒷표지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책. 착한 아이가 위험할까? 현대 사회에서 착한 아이란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아이보다는 가르치는 내용을 잘 암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시키는 일을 충실하게 따르는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착한 아이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인 현대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보는 좋은 교육은 무엇인가를 주는것보다 끌어내는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고. 학생들에게 자율이 최대한으로 보장될 때, 비로소 아이들은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몰입상태에 이를 때 학습효과는 최대한으로 올라간다는 것.

 

     책의 후반은 아이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주인데, 핵심은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일부러 가르치려는(훈육) 시도를 하지 말라는 것. 그럴 때, 아이들의 무의식적 욕구를 왜곡시킬 때 나타나는 다양한 부작용들(이 책에서는 몬스터라고 표현한다)이 해소되면서 비로소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2. 감상평 。。。。。。。

 

     책의 전반과 후반에 대한 평가가 좀 크게 달라지는 책이다. 현시대의 교육체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초반부는 제법 날카롭다. 일본의 유토리 교육이 실패한 것은 교육철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종합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를 충분히 양성해 놓지 않은 채로 성급하게 전국단위로 실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름 일리가 있다.

 

     교육의 본질을 무엇인가를 학생들에게 집어넣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설명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은행적금식 교육에 대한 비판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아이가 몰입하는 상황에 이를 때, 교육효과가 높아진다는 부분까지도 크게 이의 없이 책장을 넘겼다.

 

 

     저자와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은, “어떻게 아이를 몰입하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을까였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라는 것. 그러면 아이들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이끌어 내는 시점이 오게 된다는 매우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가만히 생각해도 상당히 여러 가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일단 실현가능성의 차원에서, 이런 식의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과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교사들이 매우 많이 필요할 텐데 과연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각 가정에서 부모들이 이런 식의 교육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이 되어 있는 한가? 그렇다면 이런 교육은 결국 여유가 있는 집안 아이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런 교육 방식의 유효성을 얼마만큼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가 언급하는 교육학자들의 임상경험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난 학생들과 현시대의 학생들이 상황과 성향은 많이 다르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의 마음속에 이 존재하고, 그것을 이끌어주기만 하면 그 모두가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검증되지 않은 견해이다.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보는 그 수많은 악한들이 다 잘못된 교육방식 때문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

 

     책 후반의 오래된 뇌하는 장면에 이르면, 약간 황당하기까지 하다. 물론 뇌의 활성화에 육체적 단련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까지는 그럼직하다. 하지만 오래된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양서류처럼 기는 연습을 하라는 데에 이르면, 이걸 우스갯소리로 봐야 하는 건지..(물론 기본적인 영역이 완성되기 전에 성급하게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양서류 기기)​

 

 

     책 전체의 내용이 긴밀하게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 각각의 챕터들은 충분히 논증되지도 않고, 그저 일반적인 개념들을 끌어다가 이리저리 꿰어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현대의 은행저금식 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끄집어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상황을 적발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말하는 해결책이 정답인 것은 아닌 거니까.

 

     다만 몰입이라는 개념, 그리고 잘못된 훈육이 갖는 위험성, 어른 중심의 교육에서 실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시선을 회복하려는 노력 등은 기억해 둘만한 부분. 전체의 짜임새를 다시 점검하고, 좀 더 제대로 된 논증과 입증된 사실들을 사용했다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 또 다른 교육 더 나은 세상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번역 총서 2
마이클 애플 지음, 강희룡 외 옮김 / 살림터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책은 교육의 성격을 묻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교육이란 단지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반복, 확산, 공고화 하는 도구로서 기능만 하는가, 아니면 실제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 물론 이 책의 대답은 후자 쪽이다.

     저자는 세 개의 장(2~4)에 걸쳐서 앞선 시대(이지만 일부는 저자와 동시대 인물이다. 지금 기준으로 앞선 시대라는 것)의 교육이론가들의 사상을 돌이켜 보며, 교육이 가지는 사회 변혁적 기능의 가능성과 그 실재를 살핀다. 5장에서는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라는 도시에서 실제로 추진되었던 시민 참여적 교육행정이 어떻게 그 도시의 문화를 바꾸었는지에 관한 사례 연구가 실려 있다.

     6장에서 저자는 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이 반드시 진보적 진영에서만 연구, 실천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여기에 실려 있는 것은 월마트를 중심으로 한 보수 우파의 교육적 시도인데, 이 책의 내용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

     7장에서 저자는 한국을 방문했던 자신의 경험(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했던 사건 얼마 후였다)을 통해, 이 책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의 실제 적용에 관해 잠시 언급한다. 마지막 장은 이제까지 다루었던 내용의 총 정리 쯤.



2. 감상평 。。。。。。。

     역자 해제를 보면, 이 책은 저자인 마이클 애플이 자신의 학문적/활동가적 여정을 결산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활발하게 활동했던 학자의 여정을 정리하는 것이 어디 간단한 일이겠는가. 덕분에 이 책에는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학문적 연구와 경험과 사례에 대한 연구가 복잡하게 실려 있고, 이런 점은 나 같은 문외한들이 책을 읽는데 꽤나 애를 먹게 만드는 부분이다.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 정도로 생각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

     여기에 책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한 가지의 장애물은 번역이다. 총 네 명이 나눠서 한 번역인데, 번역자들 사이의 수준차가 심하다. 이건 도무지 알아먹기 힘들 정도로 긴 복문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 챕터가 있는가 하면, 단문 위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들도 있다. 예를 들어 37페이지에 나온 다음 문장을 보자.


     “이 논점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서로 지지하기 위해 다양한 진보적인 집단들의 변혁적인 목적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더 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인가로 표현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쯤 되면 내용의 문제 이전에 번역의 문제가 심각하다. 전형적인 번역투의 문장이라, 분명 한글문장을 읽고 있는데 영어 단어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초벌 번역이라면 모를까, 이쯤 되면 좀 너무하지 않나?

     또 여정의 정리라는 이 책의 콘셉트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 같은 다양한 내용들을 다 함께 담으려는 시도로 나타나는데, (전부가 그런 것은 아지만) 가끔은 그저 책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만 하는 효과를 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저자가 프레이리를 직접 만나 대화했던 부분을 소개하는 2장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


     사실 교육이 가지고 있는 사회 변혁적 기능에 관한 강조는 이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지당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책 속에도 실려 있듯, 전두환의 반란정부가 대학생들을 탄압했던 역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권력기관들을 동원해 전교조를 불법화하고 막으려고 하는 이유도, 소위 좌편향 교육운운하며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고, 특정한 경제 사조를 절대적인 교리로 가르치려고 하는 이유도 다 같은 데 있다.

     저자의 주장을 교육의 정치화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본 것처럼 교육은 더 이상 안전한 영역도 아니고, 무엇보다 가치중립적인 성소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세력의 가치를 체계화해 가르치는 영역이고, 그렇다면 이왕이면 좋은 가치를 가르치는 영역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것을 성공이라고 가르치는 세력, 탐욕에 근거해 돌아가는 경제를 우수한 것으로 떠받드는 세력, 강자의 이익을 위한 사회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세력 대신,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함께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가치를 중시하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교육이라면 우리에게 분명 더 유익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시도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진보적 교육 운동에 무비판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의 한국 교육상황은 암담하다. 전두환 정권 당시 한국을 방문한 저자가 했던 다음의 연설이, 지난주에 했던 것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니까.


     “이 정부는 또한 한국 교육 시스템이 모든 수준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견고하게 통제되어서 여러분의 아이들이 지배자들이 원하는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 하지만 나처럼 교양수준의 지식을 위해서라면 다른 좀 더 분명한 내용의 책이 더 좋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해고 - 잊혀진 제국 발해를 찾아서, 오래된 책방 11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1
유득공 지음, 정진헌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득공이 그 때까지 남아 있단 발해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얇은 책으로, 발해의 역대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부분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어서 다양한 기록에 소개되고 있는(주로 중국과 일본측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발해출신 관리들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이 이어진다. , 발해의 지리와 관직, 의복, 특산물, 언어 등이 간략하게 실려 있다.

 

 

2. 감상평 。。。。。。。

 

     한 나라의 역사에 관한 논픽션 저술이지만 사()가 아니라 고()라는 글자를 붙인 이유는, 저자의 판단으로 이 책이 일반적인 사서라고 불리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요인은 역시 발해에 관한 기록 자체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 발해 후 그 지역을 이어받은 거란에서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발해 유민들을 대거 받아들였던 고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고작해야 수십 년, 혹은 백년에서 이백년 안팎을 존재하다 사라졌던 중국의 왕조들과는 달리 고려는 오백 년 가까이 유지되었으니 그 다음 왕조에서 그 오래전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건 사실상 무리였다.

 

     때문에 유득공은 부득이하게 다른 나라의 역사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발해에 관한 기록들을 그러모아 엮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참고한 문헌은 상당히 여러 권이었지만, 후기의 여러 왕들은 시호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그들의 행적 또한 빈약하기 그지없다. 유득공이 서문에 밝힌 것처럼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나마 발해에 관한 기록들을 정리해서 우리 것으로 갖고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126) KBS의 역사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발해를 다뤘다.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마지막 부분에 한 패널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요지는 남북국 시대 신라는 발해와의 관계보다는 왜나 당과의 관계에 더욱 열을 올렸고, 그 결과 발해의 역사를 제대로 남기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역사공백이 발생해버렸고, 그 결과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발해와 그 강역에 대한 역사와 소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제대로 말조차 붙이기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그 패널은 오늘날 우리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상기시킨다. 역대 대부분의 정권들이 북한을 무시하기 바빴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고, 이는 훗날 그 지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상당히 불안정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탁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두고 보여주는 이 한심한 정부(와 그 지지 세력인 소위 보수진영)의 안쓰러운 역사인식을 직접 접하고 나니 이 패널의 우려가 기우로 끝날 것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까지 든다. 교과서에 김일성 사진은 세 번 나오고 박정희 사진은 한 번 나오니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에 과연 무슨 제대로 된 역사가 쓰일 수 있고, 무슨 미래가 있을까.

 

     답은 유득공에게 있는 것 같다. 사실 발해고 역시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正史), 즉 국정교과서는 아니었다. 정사에서 삭제되고 축소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다시 살려 내 조금 더 진실하고 바른 역사책을 쓰면 될 일이다. 비록 발해사는 이렇게 사라져버렸지만, 오늘 우리의 역사마저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비록 자랑할 것이 많지 않더라도, 적어도 후대가 반면교사로는 삼을 수 있도록 말이다.

 

 

     원 저자인 유득공 못지않게, 유득공 연구자로서의 역자의 노력 또한 기억해야 할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 - 부지런함이 숨긴 게으름의 역사
이옥순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요약 。。。。。。。

 

     저자는 우리 사회의 게으름에 대한 시선이 다분히 문화적으로 조장된(혹은 조직된) 것이라고 말한다.(1) 2장과 3장에서는 게으름에 대한 서양의 관점(비난)과 동양의 관점(용인적 수용)은 의도적으로 대조시키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근면을 강조하던 서양이 여유를 중시하던 동양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게으름에 대한 비난이 강력해졌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4)

 

     사실 책은 여기서 내용상 완결되어야 했는데, 저자는 굳이 5장을 덧붙인다. 뭐 넓게 보면 게으름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니까. 이 장의 주제는 현대인들의 소비주의가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쉼 없는 노동을 유발시킨다는 것. 결과적으로 게으름을 비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또 하나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2. 감상평 。。。。。。。

 

     내가 매기는 평점은 10점 만점에 6점에서 시작한다. 원래는 5점 부터여야 하지만 작가나 저자, 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의 노력을 감안해 1점을 더 주고 본다. 그러니까 일단 6점이라면 딱 기본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중반을 넘길 때부터 2점이나 떨어졌다.(4) 이 정도면 문제의식이 생기는 경우다. (사실 1점을 더 깎을까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결론에 담긴 통찰에 나름 일리가 있기에 참았다.)

 

     책의 문제는 결론이 아니다. 사실 결론부만 가지고 본다면 나름 괜찮은 책이다. 게으름을 바라보는 시선에 일종에 이데올로기적 관점이 개입되어 있음을 밝히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흥미로운 결론을 내 놓고 앞부분을 덧댄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애써서 모은 여러 정보의 조각들이 충분히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설명했듯, 이 책의 중심축은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서양과 이에 대해 관대한 입장에 서 있는 동양 사이의 갈등이고, 이 차이를 힘의 우위로 눌러버린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게으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문제는 저자가 열심히 모아 놓은 동서양의 문헌들이 서로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 서양의 문헌에도 게으름, 혹은 쉼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꽤나 자주 보이고, 반대로 동양에서도 근면과 부지런함에 대한 찬양이 비교적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저자의 핵심 주장의 근거가 흔들린다. 이를 빠져나가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동양 사람들이 어느새 서양의 관점에 종속되어버렸다는 식이다. 예컨대 조선 말 밤마다 잔치를 벌이느라 하루일과를 오후부터 시작하던 고종과 대신들에 대한 한 유학자의 비판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근대 서구의 시간개념을 내면화한 일본의 영향이 이미 조선 사회에 퍼졌다는 것도 알 수 있(135)고 결론을 짓는다. 그리고 이젠 부지런 하라는 권면마다 일제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186, 191) 이쯤 되면 좀 무리다.

 

     게다가 저자는 첫 번째 문제는 아예 제대로 다루지도 않는다. 저자 자신도 언급하고 있듯이 서양 사상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라는 날을 따로 정해둘 중도로 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42). 물론 성경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금언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과도한 탐욕으로 인해 인간생활의 터전이 망가지고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다양한 교훈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이런 점들을 앞에 써두었으면서 동양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그러나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지나친 게으름과 심한 노동을 함께 비난합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버린다(106).

 

 

     여기에 인도 현지에서 인도사를 전공했던 저자 자신의 이력 때문인지, 인도에 대한 서양의 비난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면서, 서양에 철학과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오류도 제법 보인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부채를 면제해주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날이 아니었고(아마도 50년 마다 돌아오는 희년과 혼동한 듯. 42), 성경에 나태하거나 게으른 사람을 염소에 비유하는 장면이 아예 없다(굳이 비슷한 부분은 마태복음 25장의 비유인데, 여기서 양과 염소의 나누는 기준은 게으름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다. 50).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강하지 않던 독일이라는 표현(55)도 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독일이야말로 종교개혁의 발상지이자, 종교전쟁의 핵심지역이었고, 그 결과로 가장 일찍 개신교(루터파 교회)가 공인되었던 곳이니까.

 

 

     큰 맥락은 새겨들을만한 책이지만, 세부사항들을 기억해뒀다가 다른 데서 써먹으려고 했다가는,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을 법하다. 일에 대한 과도한 몰입이 가져오는 폐해들을 한 번쯤 조금 떨어져 관찰하게 만드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긴 하다. 다만 지나친 옥시덴탈리즘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