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로마 - 로마의 50개 도로로 읽는 3천 년 로마 이야기
빌레메인 판 데이크 지음, 별보배 옮김 / 마인드큐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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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역사나 서양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도시가 몇 군데 있다. 그리고 로마는 그 도시의 목록 중에 빠질 수 없는 곳임에 분명하다.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쌓인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자산들은 물론, 사실상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던 중세에도 여전한 문화적(그리고 종교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니까. 하나의 도시가 이렇게 오랫동안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면 어느 쪽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 도착점은 로마 어딘가가 될 수밖에...

     이 책은 그런 로마의 역사 중 몇 개의 장면들을 골라, 그와 관련된 건축물들과 엮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책 제목의 비아(via)’는 라틴어로 이라는 의미이기에 비아 로마로마의 길(혹은 가도)’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처음에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 유명한 로마 가도돌을 따라가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이 경우 서술의 배경은 로마를 넘어 고대 제국의 곳곳을 향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런 내용은 아니고 로마에 있는 여러 길들(여기엔 가도 같은 큰 길들만이 아니라 샛길들도 포함된다)과 광장들을 재료 삼아 풀어내는 이야기다.(개인적으로는 로마 가도들을 따라가며 고대의 문화와 역사를 훑어가는 식의 책이 나온다면 무조건 살 것 같다.)

     책은 실제로 로마의 거리를 걷는다면 어떤 것들을 알고 보면 좋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책 뒷부분에는 로마여행 때 선택할 수 있는 도보 여행 코스가 몇 개 실려 있기도 하다. 우선 그 압도적인 역사의 무게감에 눌려 있는 상태라면, 길을 걷는 동안 이런 설명들 몇 개를 곁들이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 듯.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로마의 역사는 길다. 교대와 중세를 넘어, 근대 이후로도 주요한 사건들이 그곳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니까.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모두 다 담으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때문에 각 사건에 관한 설명이 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여기에 단편적인 에피소드 중심으로 내용이 진행되다보니 애초에 큰 맥락을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해하는 데 제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뭔가를 제대로알고 싶은 사람이 늘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 처음부터, 기초부터 시작하려고 하니..)

     아마도 저자는 대체적으로 연대기 순서를 따라 각 꼭지들을 배치하면서 이런 부분을 조금 보완하려고 애쓴 듯하다. 뭐 대중 교양서적으로는 이 정도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으니까. 로마 역사를 좀 더 공부하고 본다면 더 좋을 것 같은 책. 로마 여행 계획이 있다면 미리 보고 가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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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부름 -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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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최근 다양성을 중시하고, 문화적 상대성을 강조하는 진영에서 십자군은 그리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다. 강력한 힘으로 양민을 학살한 비난받을 만한 사건 정도로 치부하는 식. 하지만 당시 이슬람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다고는 하나(시아파인 파티마 왕조와 수니파인 아바스 왕조. 그리고 아바스 왕조의 약화를 틈타 서아시아에 진출한 투르크족), 그들은 결코 약자가 아니었고 서양이 동원한 힘이라는 것도 그리 엄청난 물량도 아니었다. 그건 치고받는 일이 일상적이었던 중세에, 늘 어딘가에서 일어났던 전쟁이었다.

 

     그런데 (1) 십자군에 관한 또 한 가지 오해가 있다. 이 전쟁이 전적으로 교황인 우르바누스 2세의 선동과 신앙심과 영웅심이 섞인 복잡한 기사들이 벌인 모험적 사건이었다고만 보는 시선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사실 이 복잡한 사건을 배후에서 발생시킨 인물은 당시 동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알렉시오스였다고 말한다.

 

     쿠데타로 제위에 오른 알렉시오스는 투르크족 지도자들과의 협상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의 제국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동맹을 맺었던 투르크족 지도자가 사망하면서 이 지역이 혼란스러워졌고, 제국은 급격히 위축된다. 이 때 서방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교황 우르바누스와 접촉하는데, 이건 상당히 전략적인 판단이었다. 당시 서방에는 우르바누스 외에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지지를 받는 대립교황이 있어 일종의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르바누스는 십자군을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고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나선다.

 

     그렇게 모인 서방의 군대가 투르크족 지배 하에 있는 소아시아로 넘어가는 과정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출신과 배경이 서로 다른 무력집단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질서정연하게 나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게다가 이들을 위한 보급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해 결국 성공(소아시아의 탈환)시킨 것은 알렉시오스의 치밀함 때문이었다는 게 이 책의 주요 주장이다.

 

  

2. 감상평 。。。。。。。

     역사를 연구하면서 숨겨졌던 인물과 사건들을 발견해 내는 일은 가장 흥미로운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마치 고고학에서 새롭게 발견된 유물을 근거로 이제까지의 역사기록을 수정하도록 만드는 일처럼, 역사서에 실린 행간을 읽어내며 실제 있었던 일을 발견해냄으로써, 기존의 해석과 설명을 바꿔버리는 일은 꽤나 통쾌한 일일 것이다.

 

     이 책은 알렉시오스의 발견이라고 부를 만 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기존에도 알렉시오스는 망해가는 동로마제국의 수명을 늘려놓은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그가 1차 십자군을 기획하고, 조율하며, 나아가 일종의 조종까지 (제한적으로나마) 해 낸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위에도 설명했지만, 그렇게 많은, 제각각의 무장세력들이 행로 주변에 큰 해를 주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해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어지간한 후방지원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 그리고 서방세력에게 1차 십자군의 가장 큰 성과는 예루살렘 정복이었을지 모르나, 여튼 이 전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건 소아시아를 다시 손에 넣은 동로마제국의 알렉시오스였다.

 

     하지만 당대는 물론 후대의 십자군에 관한 기록에서 알렉시오스는 비겁하고 음흉한 인물로 그려지곤 했다. 이는 실제 전투에 나선 서방의 군사지도자들과 후방에서 전체 판도를 살펴야 하는 알렉시오스 사이의 입장차에서 기인한 것이었는데, 동방에 관한 경쟁의식이 있었던 서방인들은 그 기록을 그대로 믿고 기정사실화해버렸던 것. 물론 이런 반대 기록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행간을 살피는 것 이외에 저자는 알렉시오스의 딸이 쓴 알렉시오스라는 작품을 제시한다.(이 책을 번역한 인물이 저자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100%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고 (저자는 아버지를 위한 윤색이 첨가되었다고 평가한다) 비판적인 수용을 통해 개연성 있는 역사를 재구성 해낸다.

 

     1차 십자군에 관한 상당히 자세한 설명과 치우치지 않은 평가를 담고 있는 좋은 책이다. 관련된 시대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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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3-2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십자군 전쟁이 예수님이 태어난 성지를 탈환하겠다는 순수한 신앙심의 발로인 1차 참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당시 중세유럽의 경제적문제(인구증가,가난등)을 해결하기 위한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당시 비잔티제국이 어려웠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참전을 유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네요.

노란가방 2019-03-26 11:44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1차 십자군에 집중하고 있구요,
일반적으로 조연 정도로만 묘사되는 동로마제국이 사실은 치밀한 주도자였다는 걸 보여주는 데 집필 목적이 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나머지 십자군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또 있었겠죠. ^^
그 쪽에 관해 괜찮은 책들도 좀 나왔으면 하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자크 보세 지음, 기욤 드 로비에 사진, 이섬민 옮김 / 다빈치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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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 제목을 잘 봐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장서량이 많거나 이용자의 편의를 극대화 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보기에 좋은 도서관. 실제로 책에 소개되고 있는 도서관들은 멀리는 중세까지, 가까이는 근대의 귀족이나 왕족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수많은 작품들로 장식되어 그 자체가 예술 작품처럼 보인다.

 

      대부분 유럽에 있는 도서관이고, 미국에 소재한 건물도 세 개 소개된다. 전문 작가가 찍은 컬러 도판이 잔뜩 실려 있어서 그림책 같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 책은 각각의 도서관에 관한 간략한 역사와 주요 공간들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흔히 도서관 하면 공공 도서관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초의 도서관들은 일반 대중이 아닌 엘리트들을 위한 것이었다. 사실 대중들은 글을 읽을 수조차 없었으니까.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이란 필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그 값도 대단히 비쌌다. 당연히 도서관은 고귀한 사람들의 지적 만족(종종 허영심)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초기의 몇몇 주요 도서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적이었다.(물론 여기에도 도서관 소유자의 허영이 살짝 들어가기도) 책은 책장에 꽂혀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람에게 읽힐 때에야 그 가치를 발휘하는 거니까.

     직접 가볼 수 없는 수많은 장서관들을 구경하고 나온 기분. 저런 아름다운 곳에서 날마다 책만 보며 산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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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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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총 3부작 중 마지막 책이다. 1부가 그리스의 형성기를 다루고, 2부가 아테네,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전성기와 그 둘의 충돌로 초래된 쇠퇴기를 다룬다면, 이번 3부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쇠락한 도시국가들을 대체하며 그리스 세계의 맹주로 부상한 마케도니아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마케도니아의 체질개선을 시작한 왕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3)이 그 주인공인데, 역시 분량으로 따지면 알렉산드로스 쪽이 월등히 많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의 결전과 인도 북서부까지 진출했던 그의 정복기, 그리고 그가 남기려고 했던 동서양의 융합 같은 사상이 중심이 된다.

 

 

2. 감상평 。。。。。。。

     사실 필리포스나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내용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싼 돈을 주고(이 책값은 무려 23,000원이다) 책을 사 보게 되는 이유는, 우선은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값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특유의 제국주의에 대한 보수적인 관점이 종종 드러나고(굳이 고대의 제국과 근대의 제국주의는 성격상 다르다고 어필하면서), 특히 종교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양한 자료들을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로 엮어내는 능력만큼은 수준급이니까.

     사람들의 행동을 단순히 서술하는 것을 넘어, 왜 그런 행동이나 선택을 했는지 합리적으로 추측해 가는 서술을 보는 맛이 있다. 이를테면,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아테네가 과두정으로 넘어간 것은 스파르타의 강요 때문이라기보다는 아테네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민주정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관찰 같은 건 흥미롭지 않은가.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번 책에서는 번역의 문제였는지, 원래 본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오타로 보이는 본문이 자주 보인다. 스파르타의 반노예 계급을 헤일로타이가 아니라 헬롯이라는 영어식으로 표기하는 건 페리오이코이나 대부분의 용어와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쓰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일관성 없는 번역이라 계속 눈에 걸린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편에 서서 싸웠던 그리스 용병대장인 멤논의 부하들을 포로로 잡은 후 멤논의 군대에 들어오라고 했다’(273)는 표현은 명백한 오기다.(멤논의 군대가 아니라 자신의 군대겠지) 알렉산드로스가 ‘315,000명과 함께 아시아로 들어왔다는 문장(278) 역시 35천 명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이고.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가 달아나지 않고 전사했다면 마케도니아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서 명예롭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366)이라는 설명은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이건 번역 오류인지 원저자의 오기인지 모르겠다) 알렉산드로스가 화려한 복장을 입었다는 비난을 변호하는 문맥에서 전쟁터라면 군장도 여러 장식이 달린 호화로운 것을 걸쳤다’(379)는 문장은 의미상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전쟁터라면 입지 않았을이라고 써야 하지 않았을까.

     사실 한길사에서 냈던 로마인 이야기 때에는 이 정도까지 번역이나 교정에 오류는 없었는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살림출판사라면 제법 알차고 좋은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인데 말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여정을 이해하는 데는 이 책 한 권이면 정리 끝. 이렇게 그리스의 전성기는 지나버렸다. 로마인 이야기에 비하면 훨씬 적은 분량이지만, 사실 로마가 여느 국가들보다 좀 오래 갔던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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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 -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그리스인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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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페르시아의 위협을 물리치고 에게 해를 장악하게 된 아테네는 인근의 폴리스들과 함께 일종의 방위동맹(델로스 동맹)을 맺었고, 이는 곧 경제동맹을 넘어 운명공동체로 발전한다. 한편 자국 고립주의를 천명했던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약진에 위협을 느끼며 펠로폰네소스 반도 인근의 폴리스들과 나름의 군사동맹(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는다.

     페리클레스가 지배하던 시기 아테네는 최전성기를 달리지만 결국 스파르타와의 대결을 마주하게 된다(펠로폰네소스 전쟁). 전쟁 중 페리클레스가 사망하고, 아테네는 갑작스럽게 인재난을 겪기 시작한다. 소위 중우정치(이 책에선 우중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가 시작된 것. 분명한 비전도, 확고한 의지도 없이, 그저 누군가를 비난하고 끌어내릴 줄만 알았던 데마고그들만 날뛰던 아테네는 결국 자멸하고, 스파르타가 새로운 맹주고 발돋움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으니...

 

  

2. 감상평 。。。。。。。

 

    아테네의 황금기는 예상보다 짧았다. 한 나라의 역사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면 더더욱 그랬다. 마치 제대로 차비를 하고 오랫동안 산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다가, 갑자기 미끄러져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솔론부터 시작해 여러 지도자들이 나타나 완성해 나간 아테네의 민주정체는 꽤나 복잡하다. 그냥 혈통이나 실력으로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얻어서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는 나라에 비하면, 시민들의 뜻을 모아 지도자를 추대하는 체제는 확실히 힘이 더 든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소위 아테네 제국시기가 도래했던 것도 이 제도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 단서가 붙는데, 그 제도가 잘 작동할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민주정체라는 제도를 최고의 수준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페리클레스가 사라진 아테네는, 너무나 어이 없이 무너지고 만다. 마치 운전면허도 없는 고딩이 운전하는 고급 차량처럼, 그건 이제 위험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법과 제도는 바뀌지 않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바뀌자 번영에서 쇠락으로 돌아서는 일도 한 순간이었다. 결국 지도자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한가의 문제.(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게 이것이었을 지도)

 

     물론 이 부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삶으로 경험해 알고 있으리라. 사기꾼과 무능력자가 통치권을 갖는 동안 나라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또 데마고그들처럼 그저 남을 물어뜯기 바쁜 무능한 정치인들이 얼마나 국민들의 삶을 피곤하게 만드는지. (물론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그 꼴을 다 겪고도 사리분별을 못하고도 있지만)

     사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시절부터 대중들의 정치참여를 썩 탐탁지 않게 봤던 인물이라, 민주정의 아테네를 다루면서도 이야기는 대개 영웅적인 리더들에 집중된다. 책의 띠지에 붙어 있는 포퓰리즘이 아테네를 붕괴시켰다는 문구는 출판사에서 만들어 낸 걸지도 모르지만, 대중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잘 보여주긴 한다.

     민주정체를 선택한 이상, 무능한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게 놔둔 것 또한 핑계 댈 수 없는 시민들의 책임이다. 민주정은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잘 굴러가는 무한동력장치가 아니라 세심한 관리와 운영이 필요한 정교한 장치와 비슷한 듯하다. 민주주의는 그만큼 운영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체계이고, 그것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공동체가 길러내야 한다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고대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처럼 거대한 규모를 가진 국가 단위에서는 더더욱 한두 사람의 힘으로 운영될 수 없으니까. 그런 차원에서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당장 앞만 보고 달려가는 황소처럼 우려스럽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우리 자신일지도...

 

많은 이념과 개념을 창조한 그리스인이지만 ‘평화’라는 이념만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리스인에게 전쟁이 없는 상태는 잠깐 동안의 휴전을 의미했다. - P36

스스로 위험 부담을 떠안지 않는 존재(에포로스)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스파르타만의 이 제도는 조금씩 결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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