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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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갑작스러운 이민족의 침입으로 잇따라 군인 출신의 황제들이 나타나 상황을 수습하기 바빴던 3세기가 지나고, 로마는 제국 전체의 상황을 돌아보고 새로운 정책을 세울 줄 아는 두 명의 황제를 맞이하게 된다. 제국을 네 명의 황제가 나누어 방위한다는 전략을 세웠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이를 다시 하나로 통합해 전제군주국가로 전환시켰던 콘스탄티누스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시민들의 지지나 동의가 없이 오로지 권력을 가진 황제 자신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이미 로마의 성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2. 감상평 。。。。。。。                    

 

     로마라는 나라는 참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기원전 8세기 중반에 건국되었다고 알려진 이 나라가 4세기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족히 1,200년 째 나라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야 고려와 조선만 해도 각각 오백 여년은 되고, 신라는 천 년 가까이 나라를 유지했으니 어떤 나라가 몇 백 년을 지속했다고 하더라도 딱히 놀라지 않겠지만, 사실 세계사를 봐도 이런 경우는 매우 독특한 사례다.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한결같은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간 것도 실로 놀라운 발전이었고, 다시 제정으로 변했고, 후에는 절대군주국가로 생명을 이어나간다. 다행이 이러한 변화는 각 시대마다 로마가 처한 현실에 가장 잘 반응할 수 있는 흐름을 탄 것이었고, 덕분에 로마가 망하지 않고 이어져나갈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의 군데군데 등장하는 것처럼 콘스탄티누스에 의한(사실 이미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면서 로마는 강력한 군주를 원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제군주국가로서의 전환을 딱히 퇴보니, ‘이렇게까지 해서’(355)라니 하며 안타까워하거나 평가절하 할 이유는 없다. 로마가 언제 일관된 정체를 가지고 있었던가? 그런 식으로라면 시오노 나나미가 그렇게도 찬양해 마지않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야말로 공화정에서 한 사람에게 권력이 독점된 체제로의 변화를 시작한 인물이 아닌가.

 

     물론 이 시기 과거 로마를 강하게 만들었던 여러 미덕들이 점차 줄어가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건 로마라는 국가가 쇠락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했기 때문도 아니고, 콘스탄티노플로 사실상의 수도를 옮겼기 때문도 아니다. 전제군주국가로의 전환도 따지고 보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황제를 암살해버린 로마인들 자신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들이 고대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람들이나 되는 양 안타까운 척을 하는 학자나 저술가들을 보면 그 순진함에 어이가 없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3장에서 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사실상 장려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을 시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시민들과 원로원의 지지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기존의 원수정을 전제군주정으로 바꾸기 위해 신이 수여한 왕권이라는 개념이 필요했고, 이는 기존의 로마의 다신교 신관으로는 불가능했기에 새로이 기독교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는데, 사실 로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력주의(이 단어가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로 나아가서 원로원과 시민들의 지지란 사실 명목상에 불과한 것이 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절대군주가 된 것처럼 행동했던 황제들은 이미 앞에도 있지 않았던가. 더구나 왕권신수설이라는 천년 후의 개념은 천년 뒤에나 나오게 된 것이다. 중세가 되기 이전엔 교회가 황제에게 관을 씌워준 적도 없었고, 저자에 따르면 여전히 소수파에 불과한 기독교가 어떻게 제국의 황제의 위치를 공고히 해줄 수 있었겠는가.

 

     저자는 자신이 비종교적 관점(354)으로 꽤나 중립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도’라는 일종의 다신교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이어서인지 일신교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신교를 서술할 때면 꼭 한 번쯤 비꼬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14권부터는 본격적으로 로마가 멸망한 원흉으로 기독교를 지목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니 말이다. 역시 인간은 자신이 자라온 공기가 아닌 다른 공기를 들이마시면 불편함을 느끼게 되나보다.

 

 

     확실히 뒤로 가면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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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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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역사 시리즈도 벌써 열 두 번째 책을 맞았다. 로마 건국 초부터 시작되었던 이야기도, 벌써 로마가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는 시기까지 와 버렸다. 열 두 권이라는 적지 않은 책을 통해, 로마라는 한 공동체가 태어나서부터, 성장하고, 성공하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에게 크게 고마워해야 할 부분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면 자연히 그 원인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도 이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로마인의 비로마화라는 부분이다. 그 대표적인 표지가 공공의식의 약화. 기병 위주의 야만족의 침입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창설된 기병단은 로마군의 기본구조를 바꾸어놓았고, 문관과 무관의 분리정책은 균형 잡힌 인재양성을 방해하고 말았다.(사실 이 시기 제국을 구할 인재라고 할 만한 인물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지만)

 

     공공의식의 약화라는 주제가 나와서 말인데, 어떻게든 로마를 변호하고 싶었던 저자는 이 시기 기독교에 대한 박해마저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기독교도들이 병역도 공직도 나서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공동체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제국 공동체에 저해요소가 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병역이야 마리우스의 개혁 이래로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뀐 지 오래고, 공직 역시 강제로 나가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 시기 로마인 전체의 공공의식의 약화는 두드러진 것이었다. 굳이 기독교도들만의 특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적 위기를 맞이한 로마의 지배층이 결국 희생양을 찾아낸 것이 기독교도였다고 보는 게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시오노 나나미 역시 그저 심통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초기 기독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저자의 무지함은 놀라울 정도다. 기독교도들이 처음부터 로마가 망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니다. 순서상으로 보면 제국이 기독교도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 방어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뿐이다. 저자는 다신교를 대단히 포용적인 사고처럼 묘사하지만, 결국 자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존재는 괴롭혀도 된다는 식의 사고는 대단히 폭압적인 것이 아닐까.(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훗날 교회가 주류가 되었을 때도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멸망이 가까운 이 시기는 실로 혼란의 시기였다. 수많은 황제들이 세워지고, 죽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저자는 로마가 서서히 어떤 질병에 걸렸고, 어떻게 서서히 죽음에의 길로 나아갔는지를 약간은 씁쓸한 문제로 서술하고 있다. 로마에 푹 빠져버린 저자로서는, 로마가 멸망해 가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저자의 이 시대의 인물에 대한 애착은 이전에 비해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저자가 영웅시 하는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인물에 대해 서술할 때 보여주었던 생생함이, 이 시기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이 많이 평면화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 한 권에 십 수 명의 인물을 담으려다보면 개개인에 대해 애정을 갖고 서술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렇게 제국이 몰락을 향해 치닫고 있다. 성자필쇠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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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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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로마인 이야기 열한 번째 책의 부제는 ‘종말의 시작’이다. 족히 백년이 넘게 지중해 전역을 지배해왔던 로마 제국에도 드디어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균열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그동안은 꾸준히 잘 치료할 수 있었다면, 이제부터 발생하는 균열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고, 불행히도 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들이 나타나지 못했다.

 

     이번 책의 주요인물은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이자 철인(哲人)황제라고도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아우렐리우스의 무능한 아들인 콤모두스가 살해된 뒤 3년간의 내전을 끝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시오노 나나미는 그를 ‘군인황제’라고 부른다)다. 언뜻 성격이 전혀 달라 보이는 이 두 명의 황제(한 명은 철학자, 또 한 명은 군인)는 이 시기 로마에 영향을 주고 있던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한 가지는 이민족들의 발흥이었고, 다른 하나는 로마 사람들의 공공의식의 약화라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의 강화였다. 첫 번째 문제는 제국의 방위선의 균열을 초래해 군사적 문제를 일으켰고, 두 번째 문제는 너도나도 황제를 자칭해 국가적 자원(인적, 물적)을 소진시키는 내전을 발생시켰다. 여기에 두 황제 모두 자질이 부족한 아들에게 제위를 넘겨주면서 문제를 조기에 수습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시간을 낭비시키고 말았다. 바야흐로 제국 몰락의 전조가 시작된 것이다.

 

 

2. 감상평 。。。。。。。                  

 

     ‘종말의 시작’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부제를 달긴 했지만, 사실 딱히 이번 책은 그다지 큰 임팩트를 주는 내용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로마 제국의 몰락이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콤모두스의 막장 행보 때문이라면 그에 대한 비난을 실컷 퍼붓는 것으로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고작 십 수 년을 황제 자리에 있었던 한 사람 때문에 수백 년을 버텨온, 그것도 유럽 전역을 통치할 정도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던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제국 몰락의 원인은 한두 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었고, 게다가 ‘종말의 시작’인 이 시점에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책에 힘이 빠질 수밖에.

 

 

    이 시기 로마는 이전과는 다른 적을 상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다. 로마가 과거 도시국가 시절에도 그랬듯이, 그들이 마주 싸운 적은 늘 달랐다. 이탈리아 반도 북부의 에트루리아인, 중부의 삼니움족, 남부의 그리스계 사람들은 모두 달랐고, 카르타고와 한니발을 상대할 때가 또 달랐다. 수도 로마를 중심으로 한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에 이어서 갈리아 지방이 주 전장이 되었고, 다시 제국의 정체(政體)를 두고 싸움이 벌어졌었다. 대충만 훑어봐도 이 정도다. 문제는 이 시기를 통치했던 황제들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고, 따라서 적절히 대응하지도 못했다는 데 있다. 사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폐렴도 시작은 감기증상인 경우가 다반사다. 아우렐리우스는 치세의 대부분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문제를 수습하는 데 급급했고, 세베루스 역시 눈앞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진 못했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웅이나 초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 아니다. 적어도 수백 년 동안 유럽 전역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한두 명의 영웅들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중요한 일들을 창안하고 결정했던 인물들의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로마의 전성기에는 그런 인재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면 이 시기에는 그런 인물들이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재는 인재를 길러낼 만한 환경이 갖춰졌을 때 더 많이 배출되기 마련인데, 이 시기 로마는 과거 같은 확장주의적 정책을 펼 수 없었기에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이었다. 이래서는 똑같이 일을 해도 방대한 이상보다는 개인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출세의 방편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끊임없는 팽창주의를 펴야 할 텐데, 그건 애초부터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이유 등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현상유지는 수동적이며 보수적인 자세와 태도를 낳고, 이런 태도는 강력한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저항을 하다가 몰락하고 만다. 결국 한 개인처럼 국가 역시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는 법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야기를 이렇게 맺으면, 그래서 범인은 누구도 아니었다는 식의 허무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기록된 것만 해도 족히 5천 년은 되어가는 인류 역사에서 어떤 강한 나라도 몇 천 년, 아니 몇 백 년을 지속한 예도 드문 것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말이 종종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고작해서 수십 년을 살기에도 급급한 인간이니 너무 멀리까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안에서 만족하며 사는 것이 속은 편할지도 모르지만.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 낸 가장 크고 웅대한 조직인 국가도 이럴진대, 그보다 훨씬 작고 덜 조직적인 여러 공동체들과 인간 개인은 어떠하겠는가. 그런데도 자신이 속한 당파가 영원히 갈 것처럼 제멋대로 지껄이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자칭 ‘지도자들’을 보면 한숨부터 절로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로마 제국은 이렇게 서서히 물에 녹는 각설탕처럼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후의 내용들도 이 책처럼 흥미진진하기보다는 의무감에 써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재미가 없다. 저자가 사랑하는 로마인들의 몰락을 그리는 것이 유쾌할 리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렇게 재미가 없으니 유익을 얻기에도 쉽지 않다. 역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종종 튀어나오는 저자의 통찰력도 없고, 대개 앞에서 나온 내용들의 반복일 뿐이다. 뭐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읽었다면 끝까지 읽으려고 하겠지만, 암튼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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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0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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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로마인 이야기의 열 번째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도로와 다리, 의료와 교육 시스템이다. 이전의 책이 초기 로마부터 제정시대까지의 로마사를 비교적 시간의 순서에 맞추어 서술하고 있는 데 반면, 이번 책은 그런 통사는 잠시 접어두고, 로마의 인프라를 설명하는데 주력한다. 책은 크게 하드웨어적인 인프라와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전자는 가도와 수로를 중심으로(가도의 연장으로서의 다리도 포함) 설명하고 있고, 후자는 교육, 의료를 집어준다.


 

2. 감상평 。。。。。。。

 

     로마식 가도는 그 구조와 설계 자체도 대단하지만, 엄청난 연장거리와 그물처럼 뻗어있는 도로망의 구성 자체도 놀랍기 그지없다. 최초의 로마식 가도와 수로를 착안한 아피우스라는 사람의 선견지명도 대단하지만, 그 유효성을 깨닫고 이후에도 오랫동안 가도와 수로를 철저하게 유지, 보수한 로마인들의 자세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

     소프트 인프라 쪽도 마찬가지다. 교육과 의료는 모두 카이사르의 정책에 따라, 사적인 영역으로 분류되어, 일정의 혜택을 주는 대신 적절한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로마인들의 생각이었다. 이득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모여들 수밖에 없으니 자연히 수준도 발전할 것이고, 경쟁이 일면서 어느 정도 적절한 선에서 그 비용도 정해질 것이란 생각. 통제보다는 풀어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 덤으로 국가재정도 절약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생각. 물론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담합과 같은 부작용이 없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교육과 의료에 종사하는 고대인들은 그런 비겁한 행동까지는 나아가지 않을 정도로 지각이 있었다.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사회가 발전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로마 가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로마는 가도를 건설함으로써,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인 엄청난 유익을 거둘 수 있었고, 아마도 수백 년이라는 이례적인 발전의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선견지명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건설을 계획하기 이전에 치밀하면서도 현명한 예측과 정밀한 계산이 필요한 법이다. 다짜고짜 삽질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수요가 창출되고 국가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한 번 잘못 계획되고 시작된 대규모 공사는 국가에 치명적인 타격마저 줄 수 있다. 솔로몬의 20년에 걸친 건축 사업은 결국 국가의 분열을 가져왔고, 조선 말 대원군이 주도했던 경복궁 중건은 경제를 파탄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적재적소에 유용한 사업을 시작하고, 이어갔던 로마인들은 천운을 타고났다고 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보다는 도로와 수로 같은 기본에 충실한 로마인들이었기에 수많은 민족들까지 아우르는 탄탄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족. 이후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되면서 교육과 의료는 공영 서비스의 영역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도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다. 교육과 의료의 질적 저하가 로마의 기독교화 때문인 것처럼 비꼬기 시작하지만(그리고 앞으로 이런 식의 내용은 점점 자주 등장한다), 그러면 그렇게 우수한 로마인들의 천재성은 (저자에 따르면) 훨씬 뒤떨어지고, 배타적이고, 고립적이며,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는 기독교를 왜 이기지 못했을까. 절정기를 지나 쇠락의 길을 걷는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공공심의 약화와 정치, 경제, 문화적 퇴보에는 눈을 감고 모든 걸 기독교의 탓으로 돌리려는 저자의 심보가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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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9 - 현제賢帝의 세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9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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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네르바 황제가 지명한 다음 황제는 본국 이탈리아 출신이 아니라 속주인 히스파니아(스페인) 출신의 트라야누스였다. 그는 제국의 방위선을 든든히 하기 위해 공세적 전략을 펴고, 두 차례에 걸쳐 도나우 강 북쪽의 다키아 왕국과의 전쟁을 통해 그 영토를 속주로 편입시키고,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파르티아와 전면전을 벌이기도 한다.

     트라야누스의 적극 전법으로, 뒤를 이은 하드리아누스는 더 이상 공세적 전략을 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공격을 대외정책으로 채택하지만 않았을 뿐, 또 다른 의미로서의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었던 하드리아누스는 대신 그는 치세의 대부분을 유럽과 아시아를 순행하며 제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는 데 보낸다. 여기에 엄청난 수와 규모의 공공건축물들까지 건축하는 그는 진정한 정력가였다.

     선대의 두 명의 정력적인 황제의 뒤를 이은 안토니누스는 그야말로 내치에 전념할 수 있었다. ‘피우스(자비로운 사람)’이라고 불렸던 그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으나, 대신 앞서의 황제들이 해 놓은 일들을 확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2. 감상평 。。。。。。。

 

     본격적으로 오현제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의 황제들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현제(賢帝)’라는 이름이 붙을 것 같으면, 적어도 사람들이 이 시기의 황제들이 ‘선정(善政)’을 폈다고 생각했다는 건데, 책 속에도 등장하듯이 선정이란 무슨 화려한 정책들을 잇달아 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오나 나나미는 ‘정직한 사람이 무참한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데(177),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사회의 각 기능과 그 구성원들이 딱히 크게 동요할 만한 일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잘 움직일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해주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게 하면 되는 것.

     당연히 이럴 경우, 그런 시대에서 사는 사람은 좋겠지만, 후대에 이를 연구하고 서술하려는 사람에게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트라야누스야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쓸 거리를 남겼다지만, 하드리아누스나 안토니누스 같은 경우는 그저 유지, 보수, 관리를 금과옥조로 여겼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시기를 빼놓고 대충 넘어갈 수도 없으니 저자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덕분에 이번 책은 가장 평온한, 그래서 오히려 흥밋거리가 적은 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로마인 자체에 대해 쓸 거리가 줄어드니, 자연히 저자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늘 한결같았던 로마 제국에 대한 찬양과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한 비난이 그 타깃이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에 대한 숭배야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제는 로마 제국을 전적으로 찬탄해 마지않는 충실한 신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마야 말로 유토피아라는 식의 서술을 읽고 있다 보면, 은근히 제국주의자(여기선 좀 더 근대적 의미로서의 제국주의를 말한다)로서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안전하고, 잘 먹고 살게 되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결론은 일제의 만행을 정당화하려고 애를 쓰는 극우파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여기에 저자가 로마 멸망의 원흉으로 생각하고 있는 기독교인에 대한 비난이 본격적으로 발동이 걸리고 있으니(4세기 로마에 벽돌이 많이 생산되지 않았다는 언급을 하며 교묘하게 기독교의 대두가 경제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빈정대는 식이다, 136-137) 이건 뭐..

     이후에도 이런 경향이 점점 강해진다는 점이 좀 아쉽다. 새로운 교훈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반복의 반복, 그리고 점차 떨어지는 몰입도. 로마의 멸망까지 쓰겠다는 결심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시오노 나나미는 여기까지 쓰고 그만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어지는 10권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이야기가 아니고 로마의 가도와 사회간접자본에 관한 특별편. 로마인 이야기에서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딱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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