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38
진주.진경 글.그림 / 고래뱃속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니가 글을 쓰고, 동생이 그림을 그려서 만든 그림책이다. 큼지막한 판형에, 재미있으면서도 잘 구성된 그림이 가득 채워져 있고, 페이지마다 한 줄 정도의 짧은 글이 덧붙여 있다. 글씨를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과도 함께 볼 수 있을 만한 책.


물론 그렇다고 어린 아이들이나 볼만한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어른들이 볼 가치가 없는 책은 어린 아이에게도 별 가치가 없는 책이니까. 사실 제목부터가 중의적으로 붙어있는, 단지 어린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책 제목이 ‘우리 집’이다. 그리고 내용은 1차적으로 보면 다양한 동물들이 인간처럼, 자신의 집에서 편안히 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린들의 키에 맞춰 아주 높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나, 하얀 헤어밴드를 두르고 러닝머신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치타처럼, 재미있는 그림들이다.


그런데 제목을 정확히 보면 ‘우리’와 ‘집’ 사이에 쉼표가 하나 찍혀있다. ‘우리, 집’.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집’을 수식하는 게 아니라 집과는 구분되는 또 하나의 공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동물들이 사는 ‘우리’ 말이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그림이 좀 다르게 보인다. 도시 한 가운데 담장을 둘러싸고 여러 채의 집들이 배치되어 있는 마을 공간. 그건 어쩌면 동물 우리들이 한데 모여 있는, 동물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동물들은 그 안에서 편안하게 생활을 하고 있을까.


책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안 그래도 큰 판형인데,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그 두 배의 사이즈를 책날개처럼 접어서 양쪽으로 활짝 펴면 거대한 화폭이 나타난다. 맨 첫 장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구도의, 하지만 훨씬 더 넓은 (도시가 아니라) 평원을 배경으로 거대한 호수가 중앙에 앉혀있다. 동물들에게는 울타리 속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집이 아니라 이런 자연이 진짜 ‘우리 집’이라는 걸 말하려고 했던 걸까.



그림 한 컷 한 컷에 꽤 신경을 썼구나 싶다. 큰 그림에도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고, 특히 동물들이 집에 있는 장면들에서는 은근 개그 욕심도 있었던지 재미있는 배경들이 많이 보인다.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천천히 읽어나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상냥한 사신
기노 도리코 지음, 박대희 옮김 / 경당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의 상냥한 사신’이라니. 사신(死神)이란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다준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저승사자 비슷한 존재다. 그런데 여기에 ‘상냥한’, 그것도 ‘나의’라는 개인적인 수식어까지 붙는 건 아무래도 어색해 보이니까.


‘죽고 싶다’,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더라도, 그런 생각쯤 한 번 해보는 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매일의 삶은 너무나 무겁고, 때로 살아가는 일 자체가 마치 격렬한 전투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렇게 이제 삶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인물이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려냐?



책의 첫 장을 열면 하얀색의 왼쪽 페이지와 검은 색의 맞은편 페이지가 강렬하게 대비된다. 이런 구성은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면서, 하얀 왼쪽에는 주인공 캐릭터가, 검은 오른쪽에는 해골 모양의 사신이 활동하는 무대로 설정된다. 주인공은 오른쪽 페이지로 계속 넘어가고 싶어하지만, 그 사이의 ‘막’은 오직 검은 쪽에서면 열어줄 수 있는 상황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어가기 위해, 주인공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여기에 더 이상 머물 필요가 없는지를 강변하지만, 그의 사랑스러운 사신은 그런 주인공이 넘어오는 걸 막기 위해 애를 쓴다.(정말 사신 맞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사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는 주인공의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해주고, 그가 쏟아내는 넋두리에 공감도 해 준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괴로워하며, 함께 춤을 춘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 존재가 정말로 사신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신과 자신은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결국 사신은 주인공이 가진 죽음에로의 욕구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방법은 설득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내가 너와 늘 함께 있다’는. 맨 앞장에서 무거운 갑옷을 입고 삶이라는 싸움을 간신히 견뎌낸 뒤 집으로 들어왔던 주인공은, 그렇게 사신의 공감을 받으며 잠에 빠져든다.



글보다 그림이 차지하는 영역이 훨씬 많은, 그림책이다. 이야기의 성격을 보면 동화책 같기도 하고. 단순한 흑백의 선으로 이런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확실히 예술적 감각인 것 같다. 무엇보다 책의 구성도 신선하고, 메시지도 여운이 깊게 남는다.


오늘도 삶이라는 힘겨운 전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누운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2-04-05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끌리는데요?! 인상적이예요.

노란가방 2022-04-05 22:38   좋아요 1 | URL
인상적인 책이었어요.^^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창비시선 464
정다연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에 신청도서가 들어왔다는 연락받고 간 긴에 빌려온 시집이다빨간색 해가 뜬 빨간색 하늘과 그 아래 수평선과 함께 펼쳐진 파란 바다그리고 삼각돛을 가진 작은 배가 있는 표지가 강렬하다삼각돛에 기대어 해를 바라보고 있는 건 고양이인가.


사실 이 시집을 고른 이유는 표지보다는 제목 때문이었다.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뭔가 용기격려를 줄 것 같은그런 내용이 실려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2015년 등단했다는 시인에 대해서 아는 건 전혀 없었는데그게 실책이었다.


 

시인의 시집은 산문시다내적외적 운율 같은 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어떤 시들은 그냥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책 말미에 붙어 있는 해설을 보면 뭔가 대단한 이론이 내재되어 있는 복잡한 시인 것처럼 설명되어 있는데애초에 내가 선택한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불안하고위태롭고쓸쓸하다시는 끝없이 혼잣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물론 시라는 게 대개 시인의 독백인 경우가 많지만그 읊조림 속에서도 대상과의 소통이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이 시집 속 시들에선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위협적인 세상에서 상처받고위축되고외로운 모습들만 보인다시집의 제목에 들어 있는 서로나 기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조금은 날카롭게 보이는 시선들 가운데서 보이는 쓸쓸함과 고립감의 정서가 그래도 좀 와 닿는다몇몇 적어 놓은 시구들은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하지만 전반적으로 나 같은 덜 문학적인 초심자에게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시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민하다 가을하다
최상규.최종현.최훈 지음 / 나다운나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쓴 에세이집이다사실 이 부분만 해도 흥미가 생긴다아버지랑 같이 책은커녕 제대로 대화나 하는 아들이 몇이나 될까사실 여러 편의 짧은 에세이가 모아져 있는 책 속에서어떤 부분이 아버지가 쓴 것이고 어떤 부분은 아들이 쓴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다물론 일부 글에서는 내용으로 봐서 짐작할 수는 있지만어쩌면 두 사람의 고민이 함께 섞여서 아버지 쪽이 정리를 한 것일 수도 있고어찌 되었든 그 시도가 좋아 보인다.

 


여러 편의 글이지만그래도 크게 보면 어떤 주제가 보인다바로 고민이다살면서 이런 저런 고민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작은 고민들은 시간이 지나면 굳이 일부러 풀지 않아도 알아서 풀리기도 하지만어떤 고민들은 우리의 삶을 뒤흔들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고민을 풀어나가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사회로 나온 것 가기도 하다성인이 되기 전에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이전 세대와 달리오늘날에는 그저 학교와 학원을 오고다면서 온실 속 꽃들처럼 보호만 받으며 자라온 느낌이다온실 문이 열리고 찬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금세 시들어버리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문제를 조금 떨어져서 보면서 객관적인 시야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지나치게 문제만 생각하기 보다는 생각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게 필요하다나아가 자존감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고굉장히 중요한 조언들인데이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건그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사이가 화목했기 때문이구나 싶다몇몇 글에 언급되는 아버지의 아버지는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아흔 살이 넘으신 어르신인데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그걸 오남매가 역할을 나눠서 정말로 추진했다는 일화인데참 멋있다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배운다.


잔잔하게 읽어 볼만한 책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두 가지 사회적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다하나는 어린 여성들에 대한 강간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드라마 소년심판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걸 인상 깊게 봤던지라소설의 첫 장을 열자마자 빨려 들어가듯 마지막 장까지 넘겼다.(이번에도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느라 다음날 종일 피곤했다)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오겠다는 딸이 실종되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충격을 받은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은밀하게 정보를 보내오는 인물(이 인물의 정체와 관련해서 마지막에 반전이 펼쳐진다!), 소년범에 대한 터무니없이 낮은 형량을 인정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복수우연히 만난 아버지를 돕는 인물사건을 쫓는 경찰 등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된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반복해서 묻는 질문은 정의정의란 법률로 정해지는 것인가아니면 법률이 정의를 반영해야 하는 것일까당연히 후자다정의라는 건 법률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것이었다어떤 법률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정의다법률은 정의에 입각하게 제정되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어떤 법은 정의라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감각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대표적인 것이 소설 속에 나오는 소년범에 관한 처벌을 규정한 법이다수많은 십대 소녀들을 강간하고 그걸 영상으로 촬영해 지속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잔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있다그런데 그 범죄자의 나이가 어리니까 형량을 한없이 줄여서 금세 풀어주는 것이 지금의 소년법이다이것은 정의로운가?


법은(법을 집행하는 경찰은또한 범죄자들이 딸의 죽음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려는 아버지를 막아선다이것은 또 옳은 일일까책의 말미에 저자는 한 경찰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경찰이란 뭘까?” 히사쓰카가 입을 열었다. “정의의 편인가아니지법을 어긴 인간을 잡을 뿐이야경찰은 시민을 지키는 게 아니야경찰이 지키려는 것은 법률이지법률이 다치지 않도록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지그렇다면 그 법률은 절대적으로 옳은가절대 옳다면 왜 그리 자주 개정하지법률은 완벽하지 않아그 완벽하지도 않은 법률을 지키기 위해서 경찰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까인간의 마음을 짓밟아도 되나?”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교화라는 이름으로 프레임을 바꾸고 있다마치 그것이 문명국의 기본덕목이자인권을 보장하는 최선의 조치라는 식의 주장이 별다른 의심 없이 세뇌되는 듯하다.


그러나 인권이란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데서 시작된다도덕이나 윤리와 관련해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그건 아마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우리는 동물에게 윤리를 요구하지 않는다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하지만 인간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다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비인간적 대우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범죄자들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제대로 지우지 않으면서다시 말하면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대우하면서그것이 인권을 위한 조치인 양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이 작업은 대다수의 시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소수의 학자들교수들에 의해 정설로 강요되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문제고.


 

복수라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그리고 그게 자신이나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겪은 부당한 일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고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런 복수를 응원하게 되는데그게 우리 안에 있는 기본적인 윤리적 감정을 만족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범죄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책 속의 비판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말이다법이 그런 식으로 불균형하게 존재한다면 그로 인한 불안정은 점점 심해질 것이고마침내는 법 자체가 흔들릴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처벌에 관해서는 피해자가 당한 고통 만큼이라는 기본적인 원리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법이 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물론 여기에도 여러 난점이 존재할 테지만최소한 처벌의 목적에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즉 응보의 개념을 완전히 지워 버려고인간을 마치 로봇처럼 실험설계자들이 마음대로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은 버려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