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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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잠에서 깨어난 유진은 집 안에서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작중 정확한 병명은 소개되지 않지만 (후반으로 가면 어느 정도 진단 비슷한 내용이 나오기는 한다) 발작성 증상(‘개병이라고 부르는)을 안고 있는 유진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몸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상황에서, 유진은 바로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간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파악해 보기로 결심한다.(일단 자신이 너무 의심을 받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조금씩 지난 기억을 되살려 보기 시작한 유진. 환상과 회상을 복잡하게 오고 가면서 유진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유진의 어머니는 누가 살해한 것인지, 그리고 유진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조금은 이상한 반응들은 무엇 때문인지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몇 년 전 읽었던, 그리고 또 영화관에서 봤던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이 쓴 또 다른 작품. 이번 작품에서도 가상의 도시가 나오고, 일반인들과는 다른 지독한 악인이 등장하고, 사람이 죽는다. 전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짙은 게 비슷한 점이다. 흥미는 생기지만, 작품 속 그런 인물은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심지어 글이나 영상으로도.. 가만, 이렇게 되면....?;;;)

     캐릭터가 매우 강렬하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 구축에는 역시 작가의 묘사력이 큰 공헌을 했고. 다만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한정적이고, 등장하는 인물도 적으며, 소설 자체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과하게 디테일하다는 느낌도 살짝 든다. 물론 그게 이 작품의 분위기라면 분위기지만.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주인공의 해석이며 하는 것들이 (심증은 가지만) 끝까지 쉬이 판단이 되지 않았던 건 분명 장점이었을 게다.

     결론부에 이르러서도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얼마 전 봤던 영화 목격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역으로 등장했던 김상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런 놈들은 이유가 없어요. 그냥 살인을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냥 이유는 모르겠다는 건데, 실제로 그런 일들이 적지 않게 있긴 하지만, 잘 짜인 작품의 결말이 그런 식으로 끝나버린다면 좀 아쉬운 것도 사실.

     확실히 작가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계속 반복해서 읽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분위기가 비슷해도 새로운 정보를 얻는 책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애초에 소설은 그런 걸 위해 읽는 건 아니니까.

     개인적으론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다시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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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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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20세기 초 일본을 배경으로, 한 시골 마을의 영어 선생의 집에 사는 이름 없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 집 주인과 그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관찰하는 이야기.

     고양이가 살고 있는 집 주인 구샤미는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일하는 꽁생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제법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지만, 정작 아는 것도 없고 부인에게나 큰 소리 칠 줄 아는 인물.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며 그의 집을 찾아오는 메이테이는 미학자를 자처하지만, 입만 열면 허풍을 떠는 캐릭터다. 이야기 내내 그가 하는 말은 그렇구나하고 들으면 안 되는 요주의 인물이지만, 또 자신은 세상을 꽤나 달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외에도 이들보다 약간 연배가 어린 간게쓰는 마을의 부잣집 딸과 혼담이 오고가는 것을 적당히 즐기면서, 그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박사학위를 위해 쓸모 없어 보이는 주제의 연구를 계속한다.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을 관찰하던 고양이는 시종일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비웃으면서, 그들 속 허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고양이의 시점은 인간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의도된 무지로 인한 개그코드도 이 책을 읽는 한 가지 맛.

 

  

2. 감상평 。。。。。。。

     얼마 전까지 일본의 지폐 도안에도 들어갔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사실은 명성이고 뭐고 고양이가 책 전면에 등장하기에 손에 들었다. 동물을 화자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설정은 흥미를 돋았고, 본문의 첫 번째 페이지를 열 때까지도 이 책이 고양이 이야기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체 분량으로 볼 때 1:9 정도로 고양이가 관찰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많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장광설을 쏟아낸다. 소세키가 이 소설을 썼던 100년 전에는 이런 식의 글쓰기가 일반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즈음의 글 중에는 이런 구성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일단 말이 길면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이고, 그걸 방지하려면 그 긴 대사 속 들을 만한내용이 좀 있어야 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허위의식이 가득한 인물들인지라 그 헛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캐릭터에 대한 냉소적인 감정이 먼저 올라오니...

     ​처음부터 당대의 사회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기에, 책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시대 역사적 배경을(그것도 100년 전의 것을!) 아주 잘 알거나 각주를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한다. (조금은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명작은 시간을 넘어서는 통찰을 담고 있는 법. 땅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보며 공기도 잘라 팔려고 하느냐는 일침을 하거나,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유행을 이상하게 여기는 고양이의 모습은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겠는가.

 

 

      결말이 좀 충격적이다. 전개상의 평범함, 혹은 익숙함을 완전히 깨버리는 마무리다. 이야기가 이렇게도 마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물론 책의 세 번째 자서에서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했지만, 막상 보니 꽤나 당황스럽다. 그리고 그 전개에 듬뿍 담겨 있는 작가의 허무주의도...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자서의 한 문장이 책 전체에 걸쳐 가장 인상적이다. “이 책은 취향도 없고 구조도 없고 시작과 끝이 어설프기만 한 해삼 같은 문장이라는 것. 해삼 같은 문장이라니, 어쩜 이런 표현을 생각해 냈던 건지.

 

     고양이는 그렇게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좀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고고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 아니면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가끔은 고양이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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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라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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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캅카스 산맥 인근 체첸에서 벌어지던 제정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큰 명성을 날리던 아바르족 지휘관 하지 무라트가 전격적으로 러시아에 귀순하기로 결정한다. 한 때 아바르족을 다스리기도 했던 그는, 샤밀이라는 이름의 새 지도자의 눈 밖에 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거물급 적장이 귀순해 왔는데도, 이를 맞는 러시아군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채, 황제(차르)를 정점으로 한 관료제 특유의 복지부동적 자세로 시간만 끌게 된다. 샤밀에게 가족이 사로잡혀 있는 하지 무라트로서는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아쉽기 그지없었고, 결국 결단을 내리고 만다.

 

 

2. 감상평 。。。。。。。

     작품 전체적으로 야성이 살아있는 주인공 하지 무라트를 비롯한 측근들과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한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러시아 군 간부들 사이의 대조가 눈에 띤다. 말년의 톨스토이의 행적을 생각해 보면 이런 배치야 매우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계급적이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에 대한 극한 불신이랄까.

     인위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야생의 것에 대한 찬미야 일찍부터 예술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으니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물론 모두가 아는 것을 얼마만큼 생동감 있게 표현해 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작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예술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덕분에 이야기는 흡입력이 상당하다.

     작품 속에 갈등의 배경이 되는 좀 더 깊은 역사적 내용은 별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대신 작가는 인물의 성격 묘사에 좀 더 힘을 기울이는데, 일단 전쟁이 한 번 벌어지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져버리고, 특히나 종교나 역사문제가 개입되어버리면 더더욱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으니, 노년의 톨스토이로서는 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것 따위는 아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다만 하지 무라트에 대한 감정은 사람마다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굴러들어 온 호박을 제대로 사용할 방법을 몰라 썩혀 버리게 만든 러시아의 무능한 황제와 군대도 한심하지만, 무라트 역시 제대로 된 전략적 판단이 아쉽지 않았나. 뭐 시대적 환경의 변화도 한 몫 하겠지만, 어찌되었든,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전설적인 명성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랄까.

     구성적인 면에서도, 초반 하지 무라트의 귀순협상 부분을 보면서 이제 엄청난 일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예상과는 다른 마무리에 살짝 놀라기도 했다. 뭔가 아쉽기도 하면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반전 같기도 하고..

     ​뭔가 교훈보다는 느껴야 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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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랭킷 캣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김미림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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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고양이를 빌려주는 상점이 있다. 일정한 돈을 내면 23일간 고양이를 빌릴 수 있다. 누가 이런 가게를 이용할까 싶지만, 다양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가게를 방문하고, 고양이를 빌린다. 아이가 없는 40대 부부, 회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독신녀, 왕따 사건의 가해자가 된 소년,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아끼던 고양이와 닮은 고양이를 찾는 가족들, 애완동물이 금지된 집에서 고양이가 키우고 싶었던 젊은 커플, 이혼하고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선 어린 남매가 그들.

     고양이 한 마리가 그들의 삶 가운데 들어왔을 뿐이지만, 녀석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일으키는 파장은 적지 않았다. 물론 고양이들은 훈련받은 대로 얌전히 앉아서 야옹 야옹 댈 뿐이었지만. (예외적으로, 한 이야기에서는 고양이의 생각이 지문으로 등장한다.)

 

2. 감상평 。。。。。。。

     시게마쓰 기요시 특유의 섬세한 감정묘사와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전 작품들에서 봐왔던 딱 그 느낌 그대로.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 독립된 이야기인지라 따로따로 읽기에도 좋다.

     이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감정묘사다. 평범해 보이는 사물과 사건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파장을 굉장히 능숙하게 표현해 낸다. 그것도 쓸 데 없이 긴 지문이나 거추장스러운 수식구들을 뺀 담백한 문장으로. 이 작품에 소개되는 일곱 개의 이야기 중에, 내가 직접 경험했거나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경우는 딱 한 개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작중 등장인물의 감정에 동조하거나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 버린 것. (번역가의 공도 적지 않을 듯)

     소설을 어느 정도 읽다보면 자연히 작가의 관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람은 인간에 거리를 둔 채 관찰하려고 하는구나, 아니면 매우 비관적으로 보는구나 하는 생각들. 시게마쓰 기요시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따뜻함이다. 갈등상황에서도 그는 어떤 인물을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하는 법이 없다.(우리가 일상에서뉴스 말고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이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때로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들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에라도 이 작가는 어떤 정서적인 이유같은 것을 제시한다.

     이왕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이런 사람과 하고 싶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건,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일종의 유사 대화 같은 것이라고 할 때, 이런 작가의 작품은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주변에 추천해 줄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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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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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극작가 가스파르. 그래도 그가 쓴 작품이 어지간히 인기가 있어 뭐 하나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매년 겨울 한 달씩 파리에 머물며 집필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번 방문도 그런 연례적 방문이었다. 한편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매들린은 전직 강력계 형사로, 지금은 현업에서 물러난 후 휴가를 즐기러 파리에 왔다. 이번 방문에서 그녀는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갖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인터넷 예약프로그램의 문제로 같은 시간, 같은 아파트를 예약하게 되었다는 것. 얼마 동안의 신경전이 끝나자 비로소 그들이 대여한 아파트가 숀 로렌츠라는 이름의 한 예술가의 집이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숀 로렌츠는, 거리의 그라피티 화가에서 주류 미술계의 천재 화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비극적인 가정사와 이와 관련된 미스터리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두 사람은 숀이 생전에 남긴 정보와 단서들을 따라가며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나선다.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콤비가 티격태격하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

 

2. 감상평 。。。。。。。

     기욤 뮈소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본다. 당연히 사전에 작가의 필체라든지, 이야기 전개 방식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채, 표지만 보고 선택한 책. 하지만 직접 읽어본 적은 없어도 이름은 제법 여러 번 들어봤던 작가였다. 어느 정도 이름값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갖고 있었다.

     이야기는 세밀한 묘사로 시작된다. 각각 가스파르와 매들린의 입장에서 본 파리의 인상은 묘하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의 성격을 반영하듯 다른 느낌을 주는데, 같은 대상을 다르게 묘사하는 능력은 작가의 재능을 보여준다. 훌륭한 이야기 솜씨 덕분에 처음부터 이야기에 쉽게 빠져 들어갈 수 있었고, 제법 두툼한 책이었지만 기대감을 갖고 끝까지 읽어나갔다.

 

     ​초반 캐릭터 구축에 힘을 쓴 저자는,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숀 로렌츠가 겪은 비극적 사건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숀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면서 제기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식으로 작품의 성격이 전환된다. 일종의 추리소설 느낌도 나는데, 아쉬운 건 추적의 한 축인 가스파르가 비전문가이다 보니 그가 제시한 추리도의 얼개가 썩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여기에 작중에서 그의 직업이 극작가로 나오지만, 이런 부분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살짝 아쉽고.(반면 매들린의 전직은 사건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작품 중반 사건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숀 로렌츠가 오랜 공백 기간 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이 사건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해결되고, 그 그림들이 이후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약간 좌충우돌하는 상황인데, 용케 많은 가능성들 가운데서도 진실을 찾아 가는 것이 대단하다 싶은 정도.

     역자는 후기에서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사랑이 두드러진다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까지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이야 절박했겠다 싶은 면이 있지만, 사실 이야기 자체는 가스파르와 매들린 두 사람의 묘한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가고 있으니까. 마치 엑스파일시리즈의 멀더와 스컬리처럼 두 사람이 어떻게든 엮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살짝 들 정도였고.

 

 

     깊은 감동이나 여운까지는 아니었지만, 시간 날 때 읽을 꺼리로는 충분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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