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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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두 달에 한 번씩 연금을 받아 살아가는 할머니 하쓰에, 변변한 일은 하지 않은 채 좀도둑질로 살아가는 아버지 오사무,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손님이 남긴 물건을 몰래 슬쩍하는 어머니 노부요, ‘없소에서 유리 밖 남자들에게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일로 돈을 버는 이모(?) 아키,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아버지와 좀도둑질로 시간을 보내는 아들 쇼타.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혈연이 아닌 선택으로 가족이 된 사이였다.

     어느 날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온 몸에 상처를 지니고 있는 다섯 살짜리 소녀 유리를 만난다. 하룻밤만 맡아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곧 그녀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 묘한 가족들큰 돈을 벌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드러내 놓고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붓는 것도 아니지만, 과묵한 가운데서도 가족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진짜 기족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이물(異物)로 인해 만들어진 분위기는, 그 이물로 초래된 위기로 인해 깨지기 마련. 언제까지나 계속 행복할 것처럼 보였던 가족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데서 도전을 맞닥뜨리게 된다.

 

  

2. 감상평 。。。。。。。

     혈연이 아닌 선택으로 만들어진 가족의 모습은 이제 그리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사실 하나의 가족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혈연관계가 없는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시작하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구성원은 오직 혈연으로만 확장되는 것인 양,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처럼 여기곤 한다. 그놈의 피의 동질성이라는 건 고작 몇 대만 내려가도 완전히 희석되어 버리고 마는데도.(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는 25%의 혈연적 연관성이 있을 뿐이고, 증손자는 12.5%로 낮아진다. 그러니까 피의 9/10는 다른 이의 유전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같음보다 다름이 훨씬 더 크지 않나?)

     예전보다 줄긴 했지만 여전히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엄청난 돈을 들여 아이를 낳으려고 하고,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대리모, 나아가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 관계를 맺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러는 사이에 또 한 편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버려지고 있고. 이 무슨 멍청한 짓일까.

     작품 속 유리의 친부모는 자신들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딸을 학대한다. 그러나 유리의 새 가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를 배려한다. 특히 유리와 비슷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갖고 있던 노부요는 유리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자신의 상처 또한 치유 받게 된다. 유리에겐 어느 쪽이 정말 가족처럼 느껴질까? 가족은 핏줄이 아니라 유대감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가족에 대한 초중반의 묘사는 섬세하고 그림을 보고 있는 것처럼 구체적이다. 역시 영화감독이 쓴 소설이기에 글로 그림을 만들어 내는 데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다만 작품 후반에 등장하는 경찰들에 대한 묘사는 꽤나 빈약하다. 뭔가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하는 행동의 원인이 있을 듯한데, 이에 대한 설명은 몇 줄 정도로 설명될 뿐이다.(필력이 좀 딸렸던 걸까) , 그 즈음 가족들의 말과 행동의 본의가 적절히, 그리고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부분도 살짝 아쉬운 점.

     딱 일본 영화의 느낌이 물씬 든다. 이야기 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 웬지... 그게 기대했던 것처럼 예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이 들어 주저도 된다. 가족에 관한 여러 질문을 던지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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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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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고등학교에서 만난 나(손아람)전능하신’(그의 탁월한 학업성취도와 지적능력으로 이런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혁근은 우연한 기회로 힙합 그룹을 결성하기로 했고, 오디션 자리에서 만난 하윤까지 더해지면서 마침내 팀이 결성된다. 아직은 이름도 없는 팀이었지만 마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흥 디제이(우지)의 크루가 되어 클럽 데뷔에 성공했고, 그 시절 제법 알려진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과 교류도 쌓게 된다.

 

     ​형편없는 시설에서도 악착같이 버티며 음악을 계속 해 나가던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음악성을 알릴 수 있는 공연에 올라 성공을 거두고,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라는 이름까지 얻게 된다. 이윽고 음반사와 계약까지 하며 이제 성공의 날만 기다리는가 싶었지만... 세상은 이 어린 청년들의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2. 감상평 。。。。。。。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자전적 소설이다. 제목과 이 설명만을 가지고도 책의 결말부의 중요한 사건을 어느 정도 추론이 가능한데, 우선 내가 아무리 대중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더라도(PD 정도까지는 들어봤다) 이들이 음반사와 계약을 했음에도, 그 시절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라는 팀명은 전혀 들어볼 수 없었음을 생각해 볼 때, 그 계약의 결과가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것이 충분히 짐작된다.(자세한 내용은 책으로)

 

     ​당연히 책을 읽어 가면서 주인공 일행의 성공을 응원하게 되었기에, 이런 슬픈 예감은 영 찝찝하다. 물론 주인공들이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다는 후기의 내용이 어느 정도 안심을 주긴 하지만, 젊은이들의 야심찬 도전을 양분삼아 자기 배를 불리는 이 사회의 기성세대에 대한 묘사 때문에(그리고 그게 리얼해 보임을 넘어 실제로 일어났던,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언젠가 모두가 영양실조로 쓰러질 것 같다는 불안감도 든다.

 

     ​책 말미에, 이 책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또 책 속 주요 장소가 실제로는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부분이 붙어 있다. 책 속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우지와는 실제로 제법 가까운 사이였고, 일행이 방송국과 음반사에서 겪었던 일은 실제로 경험한 일이라는 것 등등. 실존인물이 아니었다는 몇몇 캐릭터에는 아쉬움이 솟아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본문보다 이 짧은 후기에서 더 많은 감정적 요동이 일어났던 것 같다.

 

 

     ​지금은 서울의 모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친구 하나가, 학창 시절 힙합을 아주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힙합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굳이 감추기 보다는 온 몸으로 드러냈던 녀석이 언젠가 힙합은 단순히 딴따라가 아니라 시적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얼마 전 봤던 영화 변산의 주인공도 힙합을 하던 캐릭터였는데, 영화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그의 가사를 보면서 정말로 시 같다는 느낌을 물씬 받기도 했었고.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이 장르가 가진 독특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책과 함께 끼워져 있는 CD에는 실제 음원까지 들어 있어,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실제 인물과 사건, 그리고 가공의 성격과 배경을 더해 하나의 소설을 엮어가는 방식을 보면서 흥미로움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구나 싶은 느낌? 팩션이나 팬픽 같은 장르 아닌 장르가 있긴 했지만,(후자는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전자는 대개 지나치게 거창해 실제감이 잘 들지 않는 내용이 많았다) 이 작품만큼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영 관심이 없었던 분야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분 전환을 위한 독서로는 나쁘지 않았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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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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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잠에서 깨어난 유진은 집 안에서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작중 정확한 병명은 소개되지 않지만 (후반으로 가면 어느 정도 진단 비슷한 내용이 나오기는 한다) 발작성 증상(‘개병이라고 부르는)을 안고 있는 유진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몸에도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상황에서, 유진은 바로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간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파악해 보기로 결심한다.(일단 자신이 너무 의심을 받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조금씩 지난 기억을 되살려 보기 시작한 유진. 환상과 회상을 복잡하게 오고 가면서 유진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유진의 어머니는 누가 살해한 것인지, 그리고 유진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조금은 이상한 반응들은 무엇 때문인지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몇 년 전 읽었던, 그리고 또 영화관에서 봤던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이 쓴 또 다른 작품. 이번 작품에서도 가상의 도시가 나오고, 일반인들과는 다른 지독한 악인이 등장하고, 사람이 죽는다. 전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짙은 게 비슷한 점이다. 흥미는 생기지만, 작품 속 그런 인물은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심지어 글이나 영상으로도.. 가만, 이렇게 되면....?;;;)

     캐릭터가 매우 강렬하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 구축에는 역시 작가의 묘사력이 큰 공헌을 했고. 다만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한정적이고, 등장하는 인물도 적으며, 소설 자체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과하게 디테일하다는 느낌도 살짝 든다. 물론 그게 이 작품의 분위기라면 분위기지만.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주인공의 해석이며 하는 것들이 (심증은 가지만) 끝까지 쉬이 판단이 되지 않았던 건 분명 장점이었을 게다.

     결론부에 이르러서도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얼마 전 봤던 영화 목격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역으로 등장했던 김상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런 놈들은 이유가 없어요. 그냥 살인을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냥 이유는 모르겠다는 건데, 실제로 그런 일들이 적지 않게 있긴 하지만, 잘 짜인 작품의 결말이 그런 식으로 끝나버린다면 좀 아쉬운 것도 사실.

     확실히 작가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계속 반복해서 읽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분위기가 비슷해도 새로운 정보를 얻는 책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애초에 소설은 그런 걸 위해 읽는 건 아니니까.

     개인적으론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다시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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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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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20세기 초 일본을 배경으로, 한 시골 마을의 영어 선생의 집에 사는 이름 없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 집 주인과 그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관찰하는 이야기.

     고양이가 살고 있는 집 주인 구샤미는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일하는 꽁생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제법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하지만, 정작 아는 것도 없고 부인에게나 큰 소리 칠 줄 아는 인물.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며 그의 집을 찾아오는 메이테이는 미학자를 자처하지만, 입만 열면 허풍을 떠는 캐릭터다. 이야기 내내 그가 하는 말은 그렇구나하고 들으면 안 되는 요주의 인물이지만, 또 자신은 세상을 꽤나 달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외에도 이들보다 약간 연배가 어린 간게쓰는 마을의 부잣집 딸과 혼담이 오고가는 것을 적당히 즐기면서, 그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박사학위를 위해 쓸모 없어 보이는 주제의 연구를 계속한다.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을 관찰하던 고양이는 시종일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비웃으면서, 그들 속 허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고양이의 시점은 인간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의도된 무지로 인한 개그코드도 이 책을 읽는 한 가지 맛.

 

  

2. 감상평 。。。。。。。

     얼마 전까지 일본의 지폐 도안에도 들어갔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사실은 명성이고 뭐고 고양이가 책 전면에 등장하기에 손에 들었다. 동물을 화자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설정은 흥미를 돋았고, 본문의 첫 번째 페이지를 열 때까지도 이 책이 고양이 이야기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체 분량으로 볼 때 1:9 정도로 고양이가 관찰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많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장광설을 쏟아낸다. 소세키가 이 소설을 썼던 100년 전에는 이런 식의 글쓰기가 일반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즈음의 글 중에는 이런 구성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일단 말이 길면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이고, 그걸 방지하려면 그 긴 대사 속 들을 만한내용이 좀 있어야 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허위의식이 가득한 인물들인지라 그 헛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캐릭터에 대한 냉소적인 감정이 먼저 올라오니...

     ​처음부터 당대의 사회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기에, 책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 시대 역사적 배경을(그것도 100년 전의 것을!) 아주 잘 알거나 각주를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한다. (조금은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명작은 시간을 넘어서는 통찰을 담고 있는 법. 땅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보며 공기도 잘라 팔려고 하느냐는 일침을 하거나,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유행을 이상하게 여기는 고양이의 모습은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겠는가.

 

 

      결말이 좀 충격적이다. 전개상의 평범함, 혹은 익숙함을 완전히 깨버리는 마무리다. 이야기가 이렇게도 마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 물론 책의 세 번째 자서에서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했지만, 막상 보니 꽤나 당황스럽다. 그리고 그 전개에 듬뿍 담겨 있는 작가의 허무주의도...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자서의 한 문장이 책 전체에 걸쳐 가장 인상적이다. “이 책은 취향도 없고 구조도 없고 시작과 끝이 어설프기만 한 해삼 같은 문장이라는 것. 해삼 같은 문장이라니, 어쩜 이런 표현을 생각해 냈던 건지.

 

     고양이는 그렇게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좀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고고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 아니면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가끔은 고양이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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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라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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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캅카스 산맥 인근 체첸에서 벌어지던 제정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큰 명성을 날리던 아바르족 지휘관 하지 무라트가 전격적으로 러시아에 귀순하기로 결정한다. 한 때 아바르족을 다스리기도 했던 그는, 샤밀이라는 이름의 새 지도자의 눈 밖에 나서 견딜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거물급 적장이 귀순해 왔는데도, 이를 맞는 러시아군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채, 황제(차르)를 정점으로 한 관료제 특유의 복지부동적 자세로 시간만 끌게 된다. 샤밀에게 가족이 사로잡혀 있는 하지 무라트로서는 그렇게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아쉽기 그지없었고, 결국 결단을 내리고 만다.

 

 

2. 감상평 。。。。。。。

     작품 전체적으로 야성이 살아있는 주인공 하지 무라트를 비롯한 측근들과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한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러시아 군 간부들 사이의 대조가 눈에 띤다. 말년의 톨스토이의 행적을 생각해 보면 이런 배치야 매우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계급적이고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에 대한 극한 불신이랄까.

     인위적인 것에 대한 비판과 야생의 것에 대한 찬미야 일찍부터 예술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으니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물론 모두가 아는 것을 얼마만큼 생동감 있게 표현해 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작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예술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덕분에 이야기는 흡입력이 상당하다.

     작품 속에 갈등의 배경이 되는 좀 더 깊은 역사적 내용은 별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대신 작가는 인물의 성격 묘사에 좀 더 힘을 기울이는데, 일단 전쟁이 한 번 벌어지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져버리고, 특히나 종교나 역사문제가 개입되어버리면 더더욱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으니, 노년의 톨스토이로서는 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것 따위는 아예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다만 하지 무라트에 대한 감정은 사람마다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굴러들어 온 호박을 제대로 사용할 방법을 몰라 썩혀 버리게 만든 러시아의 무능한 황제와 군대도 한심하지만, 무라트 역시 제대로 된 전략적 판단이 아쉽지 않았나. 뭐 시대적 환경의 변화도 한 몫 하겠지만, 어찌되었든,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전설적인 명성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랄까.

     구성적인 면에서도, 초반 하지 무라트의 귀순협상 부분을 보면서 이제 엄청난 일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예상과는 다른 마무리에 살짝 놀라기도 했다. 뭔가 아쉽기도 하면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반전 같기도 하고..

     ​뭔가 교훈보다는 느껴야 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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