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밤
한느 오스타빅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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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노르웨이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북유럽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시골의 전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두껍게 내린 눈과 저녁이 되면 거리와 상점에 불이 꺼지고 주택 창을 통해 드문드문 빛이 비치는 곳, 주택가와 좀 떨어진 시내에도 별다른 놀이꺼리가 없어서 순회하는 놀이시설이 유일한 즐길 꺼리인 곳. 특별한 장() 구분 없이 단숨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확실히 그림을 그려낼 줄 아는 표현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비베케와 그의 아들 욘. 아홉 살 생일을 하루 앞둔 욘은 엄마가 자신을 위해 멋진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엄마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만, 비베케는 그런 욘에게 진지하게 관심을 쏟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관해 생각하느라 바쁘다. 식사를 마친 후 욘은 이웃집으로 복권을 판매하기 위해 나가고, 비베케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위해 나서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침 도서관 휴관일에 걸린 것을 알게 된 비베케는 이동 놀이시설에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의 환상적인 관계를 떠올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웃집에 갔던 욘은 한 노인에게 모두 복권을 팔고는 스케이트를 타고 있던 소녀들을 만나 그 집에까지 놀러가고. 같은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각각 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작가는 따로 장을 구분하지 않고, 겨우 문단만 바꿔가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묘사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글을 이어간다. 때문에 집중해 읽고 있으면서도 깜빡 하면 이게 비베케의 생각인지 욘의 이야기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런 방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따로 설명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뭔가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가 아닌가 싶다. 영상으로 표현하면 그냥 장면의 전환이 두 공간을 오고가는 식이겠지만, 글로 보면 마치 두 사람이 정신을 공유하는 느낌이랄까.

 

 

     주인공 비베케의 책에 대한 사랑이 인상적이다. 문이 닫힌 도서관 앞에서 가져온 책을 반납기에 떨어뜨려 넣는 장면에서 작가는 이런 문장을 덧붙인다.

 

책을 바닥에 쌓아 두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오는 일과 같았다.”

 

      정말 멋진 문장 아닌가. 조금 앞에 마을의 작은 도서관을 묘사하는 문장도 예쁘다.

 

이 도서관은 화분에 심긴 예쁜 식물들이 있고 벽에 멋진 포스터도 많이 붙어 있어 일단 오면 정말 기분 좋은 장소였다.”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느낄만한 포인트를 이렇게 잘 짚어 내다니... 이 부분은 비베케가 갖고 있는 소녀 같은 감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가 도서관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기분이 좋아질까. 이제 아홉 살이 되는 아들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비베케는 낭만적인 만남을 꿈꾼다. 그녀의 이전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런 비베케를 아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듯하다. 순수함은 때로 엄청난 부담감, 혹은 책임감을 느끼게 만드니까. 책을 읽는 속도를 가지고 상대를 알 수 있다고 여기는 여자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이 날 밤 선뜻 처음 보는 남자를 따라 그의 트레일러에 머물고 드라이브를 하고 바에 가는 모습도 그런 순진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만 독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좀처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게 함정. 하물며 집에는(사실 집 밖이지만) 어린 아들만 혼자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순진한 대담함은 유전이었던 건지, 욘 또한 처음 만난 사람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다닌다. 처음의 복권을 사 준 노인도, 소녀들의 집도, 그리고 처음 만난 여자의 차도. 그런데 우리나라 같으면 단숨에 유괴 같은 전개가 나올 것은 분위기에서도 이야기는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북유럽 시골 마을의 안전함인가..)

 

 

     ​단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인지라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빠르고 긴박감 넘치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하다. 이야기의 결말도 아 이렇게 끝나버리나싶은 면이 있으니까.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보면 문학성은 이런 애매함 가운데서 나오나 싶기도 하지만, 뭐 그건 잘 아는 분들의 기준이고.

     노르웨이의 시골마을처럼, 모든 것이 느리고 조용히 지나간다. 그 느린 속도에 함께 올라탄다면 괜찮은 두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그가 책을 읽을 때 안경을 쓸 것이라 생각했다. 금속 테로 된 둥근 안경. 한편으로는 그가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인지 천천히 읽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그 사람의 생활 리듬과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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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정문정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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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 들어가면 재미있는 통계 그래프가 있다. 연령별, 성별로 나누어 구매자를 표시하는 건데, 이 책의 경우 여성과 남성 사이에 극단적인 차이가 보인다. 20~40대 여성이 구매자의 대부분(74%).

 

 

     또 한 가지 포인트는 평점인데, 7.2점이면 나름 괜찮은 축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또 별 1개짜리도 적지 않다(17.8%). 이 부분은 성별 표시가 되어 있지 않긴 하지만 아마도 남성들의 평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반되는 평가의 원인은 아마도 작가가 여성, 그것도 좀 세 보이는 여성(혹은 페미니스트?)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리뷰라든지 100자평을 보면 줄줄이 1점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 대략 짐작이 가니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약간 씁쓸하다. 물론 책의 내용이 제목만큼의 명쾌함을 주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1점을 받을 만한(내 기준에 1점이란 전혀 읽을 만한 필요가 없는 책을 말한다) 건 아니니까. 사회적 약자로, 혹은 을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나쁘지 않고, 충분히 공감이 가는 문구도 보인다.

      물론 특정한 사안에 대한 관점이 살짝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이건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책 자체에 특별히 공격적이라거나 극단적인 관점이 내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사는 원래 멘토가 아니며, 수많은 고민을 하는 인간 중 한 명 일 뿐이니, 그의 자존심을 자극하지 말고 감정을 가라앉힌 후 소통을 시도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기억이 난다.

      이런 식의 평점테러는 정상적인 독자들의 책 선택을 방해하는 행위다.(당연히 과장된 찬사 일색의 평가들과 별 5개 남발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지만..) 책에 대한 평가가 주관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건 받아들여야겠지만, 소위 집단지성을 좀 발휘해보자고! 집단 난장판 말고.

 

      책 자체가 깊이가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제목에서 언급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으로 소개되는 내용이 썩 충분치 않다. 대체로 무시하거나 잘 돌려서 반박해보라는 건데, 그게 통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사실 문제도 되지 않았을 내용이 아닐까. 대개는 그런 식의 소극적인 저항도 할 수 없으니 문제. 하지만 어떤 100자평에 실려 있는 말처럼 비록 우리가 작가의 말처럼 당당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더라도, 누군가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응원의 마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다.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자신을 잘 살피며 소중히 여기라는 조언은 누가 하더라도 기억해 둘 만하다. 관계에 관한 고민은 어느 한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개인적으론 책 한 권 읽고 기억해 둘만한 문장 몇 개 정도를 건져냈다면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게다가 책 자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금세 읽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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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우 2021-09-1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소한 거짓 근거로 선동은 하면 안되죠ㅎㅎ 소수자의 폭력은 정당화된답니까?

노란가방 2021-09-10 17:35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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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서울과 맞닿아 있는 가상의 도시 화양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다. 눈이 빨갛게 된 후 며칠 만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고, 마침내 도시 전체가 봉쇄되기에 이른다.

     유기동물을 돌보며 홀로 조용히 살아가던 재형과 그에 관한 반쪽짜리 기사로 재형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윤주, 소방대원인 기준과 간호사 수진, 사이코패스 동해 등의 인물들이 고립된 도시 안에서 겪는 극도의 혼란상을 그린 소설.

 

  

2. 감상평 。。。。。。。

     책장을 한참 정신없이 넘기다가 (1/4?) 문득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도 의심스럽지만, 오래 전 읽어봐야 할 책 목록에 넣어두었던 제목만 보였고, 정말 작가의 이름은 생각조차 못했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이었다. 책 초반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호감이 가지 않는 주요 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책 전체에 깔려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실은 이 작가의 책을 앞서 두 권 읽었었다(7년의 밤, 종의 기원). 긴박감이 묻어있는 문장 덕에 금세 읽히긴 했지만(이건 작가로서 좋은 자질이다), 워낙에 독한 이야기들이었기에 읽고 난 후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읽은 두 작품의 주인공이 공통적으로 사이코패스이자 피해망상에 빠져 주변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인간들이었으니까.

 

      “종의 기원보다 앞서 나왔던 이 작품도 다른 두 이야기의 인물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동해라는 인물은 “7년의 밤영제종의 기원유진과 비슷한 뇌구조를 가지고 있어 초반 어그로를 강하게 끌고 있다면, ‘재형이라는 인물은 현수’(7년의 밤)처럼 답답하고 좀처럼 실수를 고치지 못해 이야기를 엉클어뜨린다.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장에 무슨 끈적끈적한 게 묻어있는 듯한 찝찝함이 오래 간다.

 

      앞서 읽었던 두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의미. 이해하기 어려운 잔혹 복수극이나 피해망상에 빠져 광란의 살육을 벌이던 이야기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인간애와 용서, 인간과 동물의 교감, 생태주의, 사회비판의식 같은 것들이 보인다.(그리고 어쩌면 레드콤플렉스에 관한 내용도)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이건 뭘 말하려는 걸까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다만 그걸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악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마찬가지...

 

      작가는 악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는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자연히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이런 종류의 강렬한 악을 전면에 배치하면 확실히 눈길을 끌기는 한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단지 묘사가 뛰어나거나 흡입력이 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그런 식이라면 아침 막장드라마가 늘 작품상을 받아야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 단지 눈길을 끌게 만드는 것 이상이 아니라면 오히려 감점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무리 소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떠받드는 시대라지만, 똥을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걸 보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한 기자(윤주)의 반쯤은 공명심에 취한 특종욕심에 기초해서 낸, 하지만 팩트체크는 제대로 되지 않은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덕분에 기사의 고발 대상이었던 재형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데 실패하고 말았고, 그가 돌보던 유기동물들은 학살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사이코패스인 동해의 음모가 깔려 있었다는 건데, 선의(나름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윤주의 나머지 절반의 마음)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

 

      그렇게 초반부터 비호감이었던 윤주는 얼마 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어쩔 줄 모른 채 분명한 목적 없이 그저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한다. 한편 자기만의 생각에 갇힌 재형은 행동해야 할 때 주저하고, 멈춰야 할 때 뛰어들기를 반복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후회만 반복하는 발전 없는 캐릭터인지라 주인공임에도 그닥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 사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우왕좌왕하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단순히 반쪽 사실을 담은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인가 싶을 때, 갑자기 등장한 빨간 눈의 전염병은 이야기의 성격을 급격히 바꾸는 동시에 판을 엄청 키운다. 이야기를 읽으며 이 빨간 눈이 뭘 말하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80년 광주가 떠올랐다. 소설 속 가상의 도시는 화양시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불볕이라는 뜻이다. 광주의 빛고을과도 묘하게 매칭되는 데다가, 화양시에 고립되어 군대에 의해 진압되는 시민들의 이미지는 광주에서 일었던 그 일과 묘하게 닮아 있다. 결정적으로 아직도 그들을 빨갱이라고 몰고 가는 이들도 있고.

 

 

     소설은 심각한 재난상황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극도로 무질서해지고 난폭해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상에 기초해 내용을 전개한다. 일단 언론에서 대체로 그런 식으로 그려지고 있으니 일반인으로서는 그런 선입관을 갖게 되겠지만, 레베카 솔닛이 쓴 이 폐허를 응시하라같은 책들을 보면, 많은 재난의 현장에서 오히려 시민들은 자발적인 질서를 수립해 혼란을 막아내곤 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사실적인 묘사처럼 보이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딱 픽션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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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2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에는 전개와 서사 구조가 마음에
들었었는데,

왠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금 작위적인 결말도 아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란가방 2019-04-23 14:07   좋아요 0 | URL
장황한 악의 이야기에서 뭘 말하려는 걸까 혼란스러웠어요.
 
그 개가 전하고 싶던 말 -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20가지 반려견 이야기
미우라 겐타 지음, 전경아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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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다양한 이유와 사연으로 반려견과 함께 하게 된 스무 명의 사람들이 남긴, 반려견이 좋은 점에 관한 짧은 에세이 모음집. 중간중간 저자가 관련된 주제들을 짧게 녹여낸, ‘반려견을 통해 보는 인생의 교훈같은 읽을꺼리가 삽입되어 있다.

 

 

2. 감상평 。。。。。。。

     우리 집에서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전혀 없다. 아주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 두 마리를 사다가 다락방에서 사육(?)을 시도했다가 일주일 만에 죽어서 크게 울었던 일이 가장 비슷한 기억이다. 때문에 동물을 곁에 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경험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왜인지 그 이후로도 동물을 보면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학에 다닐 때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도 물고기들이 들어 있는 커다란 어항 앞에 한참씩 서서 지켜보곤 했고, 요새는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이 있다.

 

      사람이 동물을 곁에 두고 키울 때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굳이 길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심리적, 물리적 효과는 다른 것을 통해서도 대개 충족될 수 있으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나와는 다른,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인 생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생명이 주는 비의도적 행동에서 경험되는 경이로움...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쓴 사람들이 경험한 것도 바로 그런 모습일 것이다. 각각의 글들이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은 전혀 아니지만(오히려 초등생이 쓴 것 같은 감상문처럼 보이는 것도 많지만), 글로 표현되어 있는 것 이상의 마음이 전해진다. 꼭 개가 아니라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공감되는 면이 많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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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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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도킨스와 함께 대표적인 반()신론자인 저자는 만년에 식도암에 걸려 투생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그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후 다양한 항암치료를 하면 점점 쇠약해지는 과정을 에세이로 적어내려 간 것을 모아 엮였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과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짜증과 체념(그 중 일부는 인간배아복제 연구를 제한함으로써 이를 막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을 향한다.), 쇠약해져 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 등이 주를 이룬다. 이 부분은 딱히 특별할 것도, 좀 더 감동적일 것도 없는 부분.

 

     ​하지만 원제(Mortality)와는 상관없는 지금과 같은 제목을 출판사 편집부에서 붙였다면 뭔가 다른 이야기도 있을 터. 역시나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신에 대한 자신의 관점은 변함이 없음을 강변하면서 기도의 무용성을 중심으로 신 존재에 대한 (그리고 그걸 믿는 이들에 대한) 조롱(혹은 비난) 등을 이어나간다.

 

 

2. 감상평 。。。。。。。

 

     ​, 우선 작가가 무신론자이던 아니건 간에 상관없이,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해선 비웃거나 조롱할 이유가 없다. 책에 소개된 어떤 사람들처럼, 그의 암이 그가 생전에 행했던 불신앙적인 언명에 대한 신의 저주라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 책에 대한 감상 역시 그 개인에 대한 공격보다는 책에 언급된 문장들에 관한 것으로 국한하려 한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 대한 리뷰에서 길게 썼듯이, 일단 작가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논리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기초해 종교(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간다. 완고한 유물론자들 특유의 이 입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론이 존재하므로, 굳이 또 언급하지는 않겠다.

     물론 기독교의 어떤 행위들에 관한 설명은(예컨대 책에도 제법 길게 언급되는 기도같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그 중에는 작가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도 포함된다) 빈정거릴 것까지야 있을까(어쩌면 자신은 이걸 유머라고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뭐 자기 책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식이라면, 뭐 그러시던지.(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더 이상의 평가는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다)

 

     ​사실 죽음에 관한 무신론자, 혹은 유물론자의 범상치 않은 통찰 같은 걸 살짝 기대하기도 했지만, 책 전반에 걸쳐서 일관된 냉소적 태도를 꾹 참고 책장을 넘기면 짜증이 등장하는 식이라 뒤로 갈수록 집중도가 떨어진다. 논쟁적 여지가 있는 요소조차도(인간배아를 이용한 의료적 처치 같은) 그의 치료를 방해하는 것으로 상정되면 사는 것도 부끄러워 하라고 일갈하는 식이니까(59).

 

 

      ​하지만 작가의 주된 논지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인에게도(이 책의 종교는 보통은 기독교를 가리킨다)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기독교는 단순히 감정이나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히친스는 바로 이 부분을 가지고 그의 공격을 계속해 나가고 있고, 기독교인들이 대답해야 하는 지점도 그 자리여야 한다.

 

     ​종교는 개인적인 확신이나 마음의 평안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사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런 비판들에 단순히 귀만 막지 말고, (물론 상대는 대화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더라도) 충분히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짧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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