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중독일까? - 청소년 중독, 제대로 알고 해결하기
김상철 외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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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청소년 중독에 관한 책이다. 저자들은 도박, 에너지 음료, 게임, 흡연, 자위, 망상, 스마트폰, , 자해, 종교(이단, 사이비) 등을 중독의 대상으로 꼽으면서, 어떻게 청소년들이 중독에 이르게 되는지를 통계와 실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저자들은 중독을 단순한 이상행동으로 취급하지 않고,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에너지 음료 중독(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같은 경우, 서열화 된 대학과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새롭게 생겨난 중독이고, 상대를 누르고 올라서라고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게임에 대한 중독을 보다 손쉽게 만드는 한 가지 원인이다. 물론 중독을 온전히 사회 구조적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한 편으로 이를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할 일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불법 스포츠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의 비율이 40% 이상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올해 초 휴대폰을 새로 개통한 후, 번호를 사용하던 이전 사용자의 명의로 매일 열 개가 넘는 도박사이트 홍보성 문자가 1년 째 날아오고 있다. 아무리 스팸 처리를 하고 번호를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끊임없이 보내오는 걸 보고 있으면, 청소년들이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쯤 눌러보고 싶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책은 각각의 중독들이 왜 위험한지, 특히 청소년 시기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설명을 더한다. 불법 스포츠 도박(현행법상 미성년자는 스포츠복권도 살 수 없다)에 빠져 건강과 대인관계에 손상을 입고, 도박자금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 도둑질 같은 또 다른 범죄에 빠져들어 간다거나, 고카페인 음료에 중독되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부작용들을 설명하는 식.

 

     하지만 이런 주제라면 역시 어떻게 그런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필수적이다. 저자들은 각각의 중독 증상별로 필요한 조치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고, 또 기독교적 배경에서 나온 책인 만큼, 그리스도를 의지하라든지 기도가 필요하다는 내용 등도 보인다.

 

 

     청소년 중독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뭐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방식으로의 중독은 성인들에게도 큰 위협이 되는 일인지라, 청소년들은 얼마나 취약할지... 가정과 학교, 혹은 교회 등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겠다.

 

     얇은 책이긴 하지만 충분히 위기의식을 전달하고, 해결책의 첫 걸음을 제안하는 데 필요한 내용들을 두루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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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1-27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청소년 중독이래야 게임,술,담배,혹은 심하면 신나같은 물질 정도만 생각했는데 청소년들이 중독되는 것이 무척 많아져서 깜놀했습니다.

노란가방 2019-11-27 21:13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 말이에요.
특히 스포츠 도박에 빠진 수치가 높아서 깜짝 놀랐어요.
 
초기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9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외 지음, 전경미 외 옮김 / KIATS(키아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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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라고 할까. 책을 읽기 전 기대와 읽은 후의 소감 사이에 접점이 거의 없었다. 제목에 담겨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책인 줄 알았지만, 책 전체에 걸쳐서 설명은 전혀 없고, 네 편의 고대 기독교 관련문서가 번역되어 실려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을 잘 엮어서 초기 기독교 여성 지도자에 관한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고스란히 읽는 사람의 몫.

 

그런데 책에 실린 이야기가 정말 초기 기독교 여성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분명치 않아 보인다. 첫 번째 글의 주인공인 테클라나 두 번째의 페르페투아, 펠리시타스 등은 훌륭한 여성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것 같지만, 그들이 교회의 지도적인 사역을 했다는 내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카파도키아 신학자 3인방 중 하나인 닛사의 그레고리의 누나이기도 했다는 마크리나는 수도원에서 지도적 위치에 서 있었던 것 같지만, 마지막 이야기인 마리아 복음서에는 온갖 모호한 뉘앙스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실제로 그러했는가 하는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중에서도 마지막 책인 마리아 복음서는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영지주의적 성격이 강한 유사 기독교 문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이야기들 속 기적 이야기들도 어디까지 실제 일어났던 일일지 확실치는 않다.

 

 

책은 잘 해야 초기 기독교회 공동체, 혹은 그 근처에 있었던 공동체들 가운데 특정한 여성에 대한 존중과 칭송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할 정도를 한다. 물론 여기에 실린 글들의 전문을 살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구성 면에서 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문득 굳이 왜 이 책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교회 안에도 성큼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에 편승한 건 아니었기를 싶기도. 뭐 원문 번역 및 제공이 목적이었다면 오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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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모금 생명의 떡
로날드 사이더 지음, 이영길 옮김 / IVP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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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수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는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인물이다. 이미 1세기에도 교회 안의 빈부격차가 문제를 일으켰고, (정확히 말하면 교회가 빈부격차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니라, 빈부의 차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야고보서의 저자가 보기에 그건 믿음의 본질을 해롭게 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라’, ‘행함이 없으면 (그의 믿음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와 같은 단호한 어조는 이 편지의 특징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변화가 분명 일어났지만, 한 때 소위 보수적인 교회들에서는 사람을 먹이는 일보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이건 엄청난 착각이었고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조점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서 좀 경직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이루어낸 엄청난 영혼구원의 숫자를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시려는 그분의 계획을 제대로 수행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교회는 성장했으나,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오늘날에는 상당부분 달라졌다. 이제는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교회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회보장정책의 사각지대를 상당부분 보완하고 있는 것은 다양한 종교단체들인데, 그 중 기독교회의 비율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로잔 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자리에서 복음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애초부터 영혼 구원과 사람을 먹이는 일은 서로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은 그런 총체적인 복음 사역이 어떻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놓은 책이다. 인종차별의 중심지에서 흑인들을 교육하고 훈련해 뿌리 깊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고, 인도의 빈민가에서 소규모의 신용대출을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주고, 범죄의 진원으로 여겨지는 도심(미국의 경우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대개 교외 지역에 집을 마련한다)으로 이주해 지역을 변화시킨다. 이 모든 것들이 교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에는 깊은 철학적, 신학적 고려가 듬뿍 담겨 있다. ‘음란행위와 이혼에 대한 정죄만큼이나 예수님은 부자들을 경고하는 일에 힘을 쓰셨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빠른 회심 권유 대신, 그들을 애써 도운 뒤 해 주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에는 묵직한 경험의 지혜가 담겨 있다. 교회(내부)를 향해서만 말하고 있으면서 메시지가 잘 전달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은 머리를 쾅 때리는 듯했다.

 

   아쉬운 건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점과 이 책에 담겨 있는 사례들이 벌써 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라는 점.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에 새롭게 축적된 이야기들을 담아 증보판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행함은 힘이 있다. 세상은 교회가 하는 이야기보다 교회가 하고 있는 일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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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진화, 지적 설계 쉽게 이해하기
기예르모 곤잘레스.제이 W. 리처즈 지음, 김희범.이승엽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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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C 계통 특유의 질질 끄는 방식으로 책은 시작한다. 그냥 건너뛰기 쉬운 추천사가 둘이나 붙어있고, 저자 서문은 이해가 가나 굳이 두 명의 역자(이 짧은 책에 두 명의 번역자가 붙을 필요는 있었을까?)가 쓴 서문은 왜 굳이 책 앞에 붙여두는 건지. 마치 수많은 축사들이 덕지덕지 붙은 재미없는 공식행사 식순을 보는 듯한데, 책마다 이런 방식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출판사(사장)의 고집인건지.

 

 

     저자는 창조론에 소위 젊은 지구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진화는 하나의 신념이며 증거를 해석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며, 유신진화론은 논리적 한계를 지닌다. 바면 지적 설계는 현재 존재하는 증거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이론이라는 것.

 

     지적 설계이론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현재까지 생명체가 다른 종으로 진화한 예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강력한 논증이 있다. 미시건주립대학교의 한 연구팀이 무려 5만 세대가 넘는 박테이라의 생장을 관찰했음에도, 본래의 본체에 아무 것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 사람들은 DNA에 새겨진 정보의 자연발생적 유래를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체 가운데 나타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도 중요한 논증이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꽤나 강한 논리적 추론이다.

 

자연 선택은 현재 주어진 기능 중에서만 작동하고 선택한다. 자연 선택은 현재 필요하지 않지만 수백만 년 후에 사용될 것을 예상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모아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 선택은 미래에 필요한 기능을 계획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적 원인은 가능하다.

      자연주의자들이 거의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는 논리가 오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인데, 예컨대 생명체의 과 같은 정교한 기관은 거기에 필요한 요소들이 동시에 기능하지 않으면 각각의 부분은 딱히 쓸모가 없다. 하지만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이 단번에 튀어나왔다고 보는 사람은 자연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없을 것이다. ‘자연’(종종 자연주의자들은 이게 정말로 뭔가 사고하고 이끌어가는, 살아있는 것인 양 취급한다)이 그런 수십 만 년(혹은 수백 만 년)의 비효율을 허용할까.

 

 

     워낙에 짧고 간단한 책이긴 하지만, 책을 보면서 문득 지적설계이론이 꼭 창조론과만 연계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창조에 대한 설계가 있는 상태에서 진화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지적설계이론도 자연상태에서 무작위적인 방식으로 진화에 이르는 확률이 낮음을 주장할 뿐이니까, 설계가 존재하고 그 설계대로 진행되도록 촉진하는 존재가 있다면 방식은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성경 속 정보와 조금 더 확실해 보이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제한적인 과학이라는 도구(이쪽은 현재 작동하는 방식이 과거 그 어느 때라도 동일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과거를 추정한다)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건 지적 차원에서의 겸손과 대화를 위한 의지와 인내심일 거고. 이런 문제는 단지 누가 더 크게 목소리를 내느냐에 달린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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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은 이야기다
마이클 고힌 &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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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가 지나면서 지식도 발전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위 고전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식의 축적은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 베드로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어쩌면 요한보다 조금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지자들이 보았던 것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필요했듯이.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고전들이 있다. 가장 유명하게는 창조, 타락, 구속이 있고, 그리스도인의 비전이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같은 책들도 필독서들이다. 쉐퍼 계열과 카이퍼 계열의 책들도 여럿 나와 있고, 이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레슬리 뉴비긴의 책들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책들보다 후에 나왔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들은 충실히 앞선 연구들을 익혔고, 그 위에 자신들만의 통찰을 쌓았다. 물론 후에 나온 책이라고 해서 늘 앞선 연구들보다 나은 건 아니지만(대개 충분한 연구 없이 서둘러 자신의 입장을 내놓는 경우다), 이 책의 저자들은 탄탄한 길을 밟아가고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이야기. 저자들은 기독교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성경 속 창조, 타락, 구속과 회복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어서 서구문명을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해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다른 책들에서도 충분히 다뤄졌던 부분이고, 몇 권의 책들을 통해서 접했던 내용들이다.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기독교 세계관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까지도 적절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자칫 주지주의에 빠질 수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내용이다. 저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계한다. 우리는 스스로 그 나라를 이 땅에 세울 수 없다.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세상 모든 부분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열광주의적 태도에 제동을 거는, 중요한 포인트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어느 지점에 서 있어야 하는지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는 면도 인상적이다. 책은 특히 모더니즘의 연원과 그 파급력에 대해 잘 분석해 주고 있고, 어떤 면을 경계하고 극복해야하는지를 친절하게 풀어준다. 포스트모더니즘 부분도 마찬가지.

 

 

     한 권의 책으로 세계관을 설명하면서 이 정도의 수준을 담아낸다면 바랄 나위가 없다. 기독교 세계관 개론서로는 추천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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