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무선)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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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게 아마 대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지금과 표지도 달랐었다(지금이 훨씬 세련되게 변했다). 유진 피터슨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그냥 다윗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구나 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아직 내 리뷰생활이 시작되기도 전이어서(아마 대학 2학년쯤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내 감상이 정확히 어땠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그 중에는 당연히 유진 피터슨의 책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보다 그가 얼마나 탁월한 이야기꾼인지도 알게 되었다. 아는 게 많아지면, 보이는 것도 많아지는 법, 오랜만에 다시 손에 든 이 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깊은 통찰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었다.




저자는 다윗의 인생에서 열아홉 개의 주요 장면들을 뽑아내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다(총 20개 장이지만, 첫 장은 일종의 서론 격이다). 우리가 잘 아는 골리앗과의 대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의 우정, 나발과 아비가일 사건, 시글락 공동체와 블레셋에서의 삶, 마침내 왕이 되었지만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과 죽음까지, 다윗이라는 인물의 삶 전체를 차근차근 재구성한다.


이 이야기의 기본은 성경에 나오는 기사들이지만, 그 행간에는 상상력이 들어갈 수많은 틈이 있다. 저자는 매우 능숙하게 이 빈자리를 멋진 이야기들로 채워 넣는다. 마치 책 초반에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해 주셨다는 다윗 이야기처럼 말이다. 물론 이 상상력은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럼직한, 그러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다.


또, 저자는 시인이었던 다윗의 삶에 걸맞게, 여러 편의 시편을 뽑아 다윗의 인생의 한 장면과 연결시킨다. 물론 이건 아주 새로운 시도는 아니고, 기독교(와 유대교)의 오랜 전통 위에 서 있는 시도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건 ‘일상’이다. 책 초반 저자의 흥미로운 발견이 소개된다. 바로 다윗 이야기에는 단 한 번의 기적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기적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기적이란 소위 초자연적인 어떤 사건 같은 걸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렇다. 다윗은 직접 천사를 만난 적도, 강물을 멈추게 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의 삶은 철저하게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향해 있었다. 이 말은 그가 살면서 한 번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거나 도덕군자처럼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는 여러 번 죄를 저지르기도 했고, 청동기 말 살았을 다른 위대한 군장들처럼 오늘날 기준과는 좀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하나님을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건 오늘 우리의 삶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리 또한 매순간 수많은 사건과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는 다양한 일들 속에서 살아간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예배에 겨우 참여하는 것으로 가느다란 생명줄을 연장하곤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만나는 사람이 대개 같은 교인인 목사들만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있는 이례적 존재들이다). 일부러 생각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이원론적 삶의 패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모범이다. 그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 속 하나님이 아니라, 현실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능력이 바로 이런 능력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능력은 강의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다. 유진 피터슨이 성경을 이야기로 풀어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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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0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학 때부터 읽어 천 권이요? 노랑가방님 책 많이 읽으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읽어도 아직 천 권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데요?
이책 저도 읽었나 읽다 말았나 했던 거 같은데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잘 지내시죠?^^

노란가방 2024-03-06 15:12   좋아요 2 | URL
그 때부터 쓴 리뷰를 세어 보니까 1000권은 넘더라고요 ㅎ
뭐 대단까지 할 일은 아닙니다..(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런)
네, 한 번 쭉 읽어보실 만한 책이네요.
 
포르노그래피로부터의 자유 - 남자의 뇌, 중독에서 거룩으로 회로를 바꾸다
윌리엄 M. 스트러더스 지음, 황혜숙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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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이 언제 내 책장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어디선가 이 책이 놓여있는 걸 보고 내용을 간단히 훑어보다가 한 권 중고로 구입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번의 이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끈질기게 담겨 있다가, 마침내 안 읽은 책 털기를 하던 차에 손에 들렸다! 조금 읽다 보니 왜 오래 전 이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금세 떠올랐다.


저자는 미국 휘튼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다. 행동신경과학, 중독 문제,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니 단순히 인문학적 접근만이 아니라 뇌과학이나 신경과 호르몬 같은 다양한 이과적 접근에도 익숙한 것 같다(책에도 그런 내용이 잔뜩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다. 때문에 책에는 다양한 내용의 기독교적 접근 또한 포함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포르노그래피라는 주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뇌의 가소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 우리의 육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자극에 반응하는 뇌의 작동 매커니즘에는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들이 작동하는데, 포르노그래피에 의존하는 남성의 경우(이 책은 주로 남성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된다) 그것이 분비시키는 내인성 아편 물질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이는 약물로 인한 중독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온다.(개인적으로는 이 내용이 담겨 있는 4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약물 중독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일단 그것이 주는 강력한 쾌락에 중독이 되어버리면, 점차 같은 수준의 쾌락에 이르는 역치가 높아지고, 점점 더 많은 약물을 사용하게 된다. 저자는 포르노그래피 중독에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보는 것’이 무슨 큰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포르노그래피에 중독이 되어버린 사람은 상대를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면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물론 가소성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건, 이게 어렵긴 하지만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물론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신경화학적 흐름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이를 위해 현재의 문제가 되는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바꿔나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




책은 이런 내용 뿐 아니라,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1~2장), 그것이 일으키는 문제들(3장)도 담겨 있고, 2부에서는 남성성이라는 주제에 대한 조금은 다른 논의들도 진행된다. 마지막 장인 8장에서는 포르노그래피 중독으로부터 탈출하는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한다. 이 부분은 인지행동치료와도 관련되어 보이면서, 동시에 기독교 신앙적인 조언과도 결합되어 있다.


애초에 오늘날 사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별것 아닌 것 정도로 여기고 넘어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 기독교는 조금은 특별한 공헌을(특히 거룩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새 성교육이라는 게 고작 어떻게 “안전하게”(이 말이 ‘임신의 위험을 피하면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게 한심할 따름이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상황에서, 기독교의 조언은 아예 차원이 다른 무엇을 보여준다. 물론 애초에 보지 못하는 사람은 뭐라고 설명해도 못 알아듣겠지만.


전반적으로 꽤 유용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다만 벌써 나온 지 10년이 넘은 책인지라, 현 시점에서는 이미 절판되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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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인역 입문 - 칠십인역의 정의, 역사적 배경, 기원, 번역 과정, 가치, 권위
그레고리 R. 래니어.윌리엄 A. 로스 지음, 이민희 옮김 / 북오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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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며, 제목이며 깔끔하다.(다만 앞뒤로 내지 한 장씩은 넣어주지 그러셨어요)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약자로 LXX라고 표기하는 칠십인역에 관해 들어봤을 것이다. BC 2~3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 중 한 명이 이집트에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초청으로 온 72명의 유대 장로들이 72일 만에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해 완성했다는 전설과 함께 전해져 온 고대 그리스어 구약 번역본이 바로 칠십인역이다.


이 책은 이 칠십인역에 대한 좀 더 학술적인 연구를 다룬다. 칠십인역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1부와 그것이 갖는 중요성을 설명하는 2부로 나누어져 있고, 다시 1부는 번역의 역사와 그 작업의 특징들을, 2부는 칠십인역을 통해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갖는 권위에 관한 문제를 간략히 다룬다. 전반적으로 이 책에 관한 학문적 개요를 잘 정리해 놓았다.





간만에 사본학에 대한 다양한 지적 도전을 맛보게 하는 책이었다. 사실 사본학이란 뭔가 만져질 듯하면서도, 가까이 가면 잘 보이지 않는 무지개 같은 느낌을 주는 분야다. 물론 대부분의 인문학 작업들이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이 분야는 수많은 가정들과 추측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가 구약이라고 알고 있는 책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본들만 남아있을 뿐인데, 그 중에서도 약자로 MT라고 하는 “맛소라 사본”이 가장 중요한 버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본은 특정한 가문에 의해 보존되어 정리된 구약 사본인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 AD 9세기 경 편집된 판본이다.


그런데 칠십인역은 맛소라 사본보다 천 년은 더 이전에 번역된 버전이다. 어쩌면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은 마소라 사본의 필사자들이 보지 못했던, 보다 고대의 사본들을 보고 작업을 진행했을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칠십인역은 구약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라는 지적은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인용한 구약이 상당부분 바로 이 칠십인역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당연히 신약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 고대 그리스어 구약번역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칠십인역의 원래 사본이 한 권의 책으로 깔끔하게 장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히브리어 사본에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듯, 이 그리스어 번역본 역시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사본학에서 엄밀한 정확성을 추구하기가 불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중에서 어떤 버전을 ‘칠십인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저자들 역시 이 명칭을 좀 더 폭 넓게 사용하려 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 칠십인역에 얼마만큼의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에 관해 논의하는 부분이다. 저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크게 규범적 권위, 파생적 권위, 해석적 권위로 구분한 뒤, 칠십인역을 구약에 대한 규범적 권위의 위치까지 올려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정경적인 위치로까지 둘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본문이고, 번역은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KJV만이 영감된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화 있을 진저 ㅋ). 물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칠십인역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히브리어 사본보다 훨씬 이전에 나온 결과물이기에, 히브리어 사본의 좀 더 온전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대신 저자들은 이 칠십인역에 파생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졌고, 신약에 인용된 칠십인역의 많은 구절들은 그 자체가 칠십인역의 영감을 증명하지는 않으나, 거기에 담긴 내용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칠십인역은 해석적 권위도 갖는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상당한 도움을 준다.


전반적으로 이 주제에 대한 간략한 해설과 방향을 잘 잡아주는 책이다. 물론 내용이 상당히 전문적이긴 하지만,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기도 하고,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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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인간의 탄생, 성숙, 노화
김영웅 지음 / 선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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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이라는 주제를 동시에 다루는 일은 일단 흥미를 자극한다. 흔히 이 두 영역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식의 편견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과학의 주요 공헌자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라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좋은 기독교인이면서 마찬가지로 훌륭한 과학자가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장 폴킹혼이나 알리스터 맥그래스 같이 신앙과 과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고 있는 저자들이 쓴 책들은 우리에게 지적인 만족을 준다. 다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물들은 없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 사실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은 모두 자연과학 학위와 함께 신학 학위도 보유하고 있어서 이런 종류의 글을 쓰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굳이 자신의 학위에 신학 학위를 추가하고자 하는 사람도, 그럴 만한 동기도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뭐 일단 신학이라는 학위가 교회 밖에선 별다른 가치가 없는 나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을 때 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저자가 쓴 과학과 신학의 통섭적 관점을 담은 책인가 싶어서다. 하지만 기대가 살짝 컸던 걸까? 이 책은 생물학, 정확히는 인간 발생과 성장, 노화를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신학이 아닌) 신앙적 통찰을 담은 내용이었다.




물론 신학과 신앙 사이에는 우월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두 영역은 각각 집중하고 있는 게 약간 다르다. 대체적으로 신앙 쪽이 좀 더 직관적이고 단순하며, 일상에 좀 더 밀착해 있는 느낌이다(물론 신학도 이런 요소들을 갖춰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흔히 교회 안에서 어른들을 통해 듣는 신앙의 지혜나 간증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여기에 속한다.


신앙적 교훈을 더한 이 책 역시 조금은 직관적이며 일상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생물학적 설명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정도에 약간의 교양 수준의 과학을 덧붙인 정도이고, 각 사안에 관련된 저자의 신앙적 깨달음, 혹은 교훈이 덧붙여진 형태다. 애초에 책의 예상 독자를 좀 더 대중적으로 넓게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덕분에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다만 어느 정도 이런 종류의 책들을 좀 읽어본 독자들에게라면 살짝 아쉬운 면도 분명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단순하기만 한 건 아니다. 분명 관련 분야 전문가로서 저자의 지식과 정리 능력이 잘 드러나고 있고, 저자가 보여주는 신앙적 통찰과 교훈도 충분히 교회 안에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손길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모든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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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의 이콘 신학
레오니드 우스펜스키 지음, 박노양 옮김 / 정교회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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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성화상”이라고 불리는 이콘은 오늘날에는 가톨릭교회나 정교회의 예배와 신앙생활에 중요하게 남아있다. 대신 내가 속해 있는 개신교회 전통에서는 이 부분이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잘 알지 못하면 다양한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지라, 이렇게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영영 알아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일부러 손에 들어 본 책이다.


성화를 직접 그리기도 하고 연구하는 저자가 쓴 책인데다가, 우리나라 정교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기도 하니 그 내용은 어느 정도 정교회의 공식입장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책은 이콘에 관한 비판적 검토나 설명보다는, 정교회가 갖고 있는 이콘 신학의 내용을 설명하고 옹호하는 데 좀 더 집중한다.(책 앞에 실려 있는 추천사에는 정교회 한국대교구장의 내용에 대한 보증까지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콘이라는 것이 정교회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정교회에서 이콘이란 “전체로서의 정통 신앙 그 자체의 표현”(10)이다. 그렇다면 이콘에 대한 공격, 혹은 부정은 정교회 신학과 신앙에 대한 부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건 좀 과장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이콘에 대한 강한 애착은 8세기 경 동로마제국에서 있었던 강한 反(반)이콘주의자들의 핍박과 파괴로 인한 큰 피해의 기억에 기초하는 것 같다. 소위 성상파괴운동은 단순한 성상에 대한 공격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으로도 이어졌던 것이다. 역사의 예를 보면 이런 종류의 핍박은 그 핍박을 받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정교회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콘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인간의 형상을 띄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 구약의 형상 금지 규정을 가지고 이콘을 공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형상을 통해 신앙적 유익을 얻을 수 있다(54). 이게 그 중심 논리다.


이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정교회는 이콘에 대한 공격을 성육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반대자들은 “하나님의 인간적 형상을 거부함으로써,… 물질 일반의 성화를 거부”(200)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 과연 이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걸까? 다른 식으로 생각할 여지는 없을까?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진술에 대한 동의와, 그러니까 교회가 다양한 그림이나 조각으로 성자와 그 주변 인물들,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만들고 공경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 필연적인 논리적 연결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또, 이콘을 만들고 사용하지 않으면 물질의 성화라는 교리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공격 역시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 사이에 논리적 연결의 긴밀성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나는 저 진공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이 반드시 내가 청소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닐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이콘에 관한 정교회 신자들의 애착과 사랑을 비웃을 필요는 없다. 더더욱 그들의 이콘을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개인적으로는 책 속에도 소개되는 프랑크푸르트 공의회의 견해와 비슷하다. 이콘의 사용은 허용하지만, 그것에 전례적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 예술과 역사적 기록으로 이콘을 보는 것이다(196).


물론 우리가 일상의 다양한 공간과 사물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이콘을 통해서, 특히 그것이 제작되는 과정에 반영된 다양한 신학적 장치들을 알고 바라봄으로써 특별한 유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건 이콘의 신성함이나, 그 사물이 갖는 특별함 때문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의 힘이 아닐까.


이콘을 하나의 도구로서 이용해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는다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종종 정교회의 주장에는 여기에 그보다 더 큰 무슨 힘이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느낌이다. 물론 이게 그저 느낌일 뿐이라면, 지나친 논쟁보다는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과의 우호적인 교제가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이다.


책에 많은 수의 컬러 도판이 실려 있어서 중간중간 보는 맛을 더해준다. 재미있는 건 그 중 “서미경 다띠안나”라는 이름의 한국인 화가의 작품이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림 속에 한글도 적혀 있다. 다만 이 도판들이 본문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제시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 살짝 아쉽다. 물론 이 책 자체가 그림의 설명이 아니라 이콘에 관한 “신학”을 소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니 문제는 아니다.


이콘에 관한 정교회 신자들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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