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어떤 빌딩 관리사무소에서 붙여놓았다는 알림문.
이게 사람이 하는 말이냐, 개가 짖는 소리냐..

최근 서울 강서구에서 장애인 특수학교 짓는 걸 반대하는 주민들 때문에 물의가 일어났다는 뉴스도 있었다.
(결국 집값 떨어진다는 천박한 이유다.
이 나라는 뭘 해도 결국엔 부동산 문제로 회귀하는 불치병에 걸려있다.
부동산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들이 많으니,
아무리 밥을 먹고 에너지를 보충해도 다 엉뚱한 데로 빠져나간다.
뭐 다 같이 망해 죽으면 끝나려나?)

장애인을 위한 배려를 '특혜'로 보고,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혐오시설'로 보는 사회는
문명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회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의 편의만을 봐주며 살겠다면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은 어디에 기대고 몸을 누이란 말인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보면,
문명인과 야만족을 구분하는 가장 큰 지점이 여기다.
야만족들은 당장 싸움에 도움이 안 되는 노약자들은
얼마가 되든 낙오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그저 앞으로만 달리는 이들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논리를 정당화하며
철저하게 강자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다윈적 세계관의 결과는
진보나 진화가 아니라
야만으로의 회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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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말인지, 막걸린지... 뭐 이뿐이겠습니까? 탈북자 자녀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하면 안 된다고 난리치는 학부형도 있다더군요. 이래서 통일 되겠나 싶더군요.ㅠ

노란가방 2017-09-12 15:19   좋아요 0 | URL
뭐 거창한 걸 바라는 건 아닌데...
그냥 상식적인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입니다. ㅠㅠ
 

 

사진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독재자' 중

 

 

, 당신이 지금 북한,

그러니까 공식명칭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통수권자라고 생각해보자.

그럼 지금 당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일까?

 

1.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화 시키는 것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선의나 호의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기반을 흔들 수 있는 문제가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종류의 민란이나 혁명은

절대다수인 피지배층의 생활수준이 임계점 이하인 상태로

장시간 유지되었을 때 발생해 왔으니까.

 

2. 숭고한 사회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

알다시피 북한은 사회주의 낙원이 아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건 북한 주민과 통치계층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북한의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는 진작 실패했고,

정치적 차원에서도 그들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된 적도 없다.

 

3. 통치자의 안위와 부귀

아마도 이것이 북한 통치자의 당면과제이자

가장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들이 아주 없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김정은이 어떤 숭고한 대의를 위해

통치하고 있다고 볼만한 지표나 증거는 없다.

(물론 이건 우리라고 해서 딱히 다른 것 같지도..;;)

 

 

 

남한의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북한 리스크다.

그런데 이건 북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한 리스크를 어떤 식으로 다루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여기에서 질문.

북한 통치자라면 노무현이 좋을까, 이명박, 박근혜가 좋을까?

흔히 생각하기로는 당연히 노무현쪽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북한 통치자로서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부가 남한에 들어서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선거 국면에서 북한 쪽이 선택하고 있는 건

오히려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소위 보수정당에 유리한 행동들이었다.

물론 보수정권과 손잡고 잘 해보자는 식은 아니다.

괜한 군사적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도발들을 저지르는 식이다.

그러나 그렇게 도발을 하면 할 수록

표심은 보수정당 쪽에 유리하게 된다는 걸 그들이 모를까?​

 

지난 1997년 이른바 총풍사건이라고 불리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여당 대선후보인 이회창씨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행정관이 북한 쪽에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들켜버렸다.

선거를 앞두고 북한발 위기가 고조되면

국민들의 표가 보수색을 띤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판단 한 것.

김영상 정권의 행정관 3인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다.

뭐 지금도 계속해서 그런 공작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런 공작 없이도

북한은 계속해서 비슷한 개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북한 정권, 통치자들의 제일목표는

자기안위의 보장, 그리고 손에 쥔 부귀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물론 통치자가 잘 먹고 잘 살려면 경제가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꼭 경제가 발전하지 않아도,

통치자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아프리카 독재자들은 나라가 발전해서 잘 먹고 잘 살던가)

이점에서 북한의 정권 엘리트들의 생각은

우리의 비슷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과 아주 비슷해진다.

 

오히려 빠른 경제발전에는 위험도 따른다.

경제발전에는 자유로운 재화의 교환이 거의 필수적인 요소인데,

이 때 단지 돈과 상품들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말과 생각, 사상의 교류도 일어난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위대한 수령이 그다지 위대하지 않다는 것도,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그닥 경애할 만한 면모가 없다는 것도

여기저기 전해지기 시작한다.

더구나 발전된 외국, 특히 가까운 남한의 모습이 알려지게 되면

자신들의 실상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보의 통제와 검열, 조작으로 유지되는 정권으로서는

굉장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바로 이점을

북한의 엘리트 계층이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남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북한 통치계층이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의 적극적인 교류는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통치계층은 인민들이 좀 굶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지나친 기근만 아니라면 오히려 이쪽이 통제하기에는 좋다.

마치 이쪽에서 끊임없는 취업불안, 고용불안을 미끼로

젊은이들과 노동자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북한 지배층이 선택할 대상은 분명하다.

정권의 안정적 유지만을 제일 목표로 두고 보면

노무현보다 박근혜를 상대하는 게 더 안정적이다.

서로 웃으며 일을 해 나가는 게 가장 좋지만,

이익만 확실하다면

인상 쓰면서도 함께 일은 해 나갈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직접적인 대북지원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국내총생산은 25조원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했던 지난 2007년에도

무상지원은 2천억이 채 되지 않고,

식량차관까지 합쳐도 3,500억 원을 넘지 않는다.

(민간차원의 지원은 7백억에서 9백억 사이다)

결코 적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총생산의 1.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돈을 얻자고 정권의 위기를 감수할 정도로

북한 권력자가 바보는 아니다.

더구나 최근 몇 해 동안 북한의 경제는

아주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모두 통일부 홈페이지의 자료를 참고로 계산했다)

 

물론 북한에서 이렇게 판단하더라도

우리 쪽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컨대 긴장관계가 전면적인 무력충돌로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전쟁을 먼저 일으킬 생각은 없다.

남북한 모두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잃어버릴 것이 더 많다.

특히 양쪽의 기득권층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 쪽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안보를 팔아서 기득권을 영원히 유지하려는 이들이

자칭 보수라는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박혀 있다.

이 두 세력이 마주하고 있으면

직접 눈짓을 주거나 허벅지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짜고 치는 고스톱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양쪽에 썸씽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구도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적당히 긴장관계를 유지해서 내부단속을 하고

협상을 통해 그때그때 유리한 대가를 얻어내는 게

가장 현실적이면서 적절한 방식이다.

북한이 지금 하고 있는 게 정확히 이것.

 

 

 

노무현은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랐고,

이명박, 박근혜는 현상 유지를 원했다.

그리고 북한의 절대권력자는 통일이 되어봐야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당연히 보수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현상유지를 바라는 양쪽의 이해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결국 김정은의 친구는 노무현이나 그 후계자들이 아니라

이병박, 박근혜 같은 쪽이다.

이쪽이 변수가 적고, 상황을 통제하기도 편하다.

당장 미사일 몇 개 쏘기만 해도

우리 쪽에서는 포대 하나에 2조원씩이나 되는

비싼 무기를 들여와야 한다고 호들갑이 아닌가.

모형비행기 하나만 띄워도

수십억 원짜리 외국제 무기 사달라고 하는 판이니..

이보다 데리고 놀기 편한 상대가 어디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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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정당에 대한 호불호를 잠시 접어두고 보자면,
현재의 새누리당은 정말 탁월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두 차례에 연속으로 대선에서 승리를 한 것은 확실한 증거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들이 취하고 있는 정략은 새로운 게 아니라
이웃나라인 일본의 자민당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를 거의 빼다 박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정당인 자민당은
1955년 이후 현재까지 약 4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여당의 자리를 놓지 않은
사실상의 반영구집권 중인 독특한 정당이다.
물론 의원내각제 형태의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어느 정도 타협을 통해 연립여당을 구성한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물론 이 때도 총리의 경우는 다수당인 자민당에서 맡곤 했다.

 

이 엄청난 장기집권은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우리나라 보수정치인들에게도 매우 인상적이었던지,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의 보수정당은 그들의 행태를 충실하게 벤치마킹하기에 이른다.
그럼 어떻게 그들은 영구집권을 하게 되었을까.

 

 

 


먼저, 적과 아군을 확실히 나누고 적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야 한다.
여기에는 진실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상대편이 위험하다는 편견을 심어주면 된다.
물론 이 때 표현의 자유 같은 것들은

(그게 헌법에 보장되어 있든 말든)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한 번 덧칠된 빨간색은 그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 되고,
이후 두고두고 쓸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된다.

 

이 연장선상에서 자신들만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 헌신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도 있다.
이건 자민당만이 아니라 세계의 보수정당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인데,
미국 공화당 출신의 아들 부시 대통령의 경우 '악의 축'을 운운하며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도 재선까지 이뤄냈다.
자민당 역시 마찬가지의 전술을 사용해 안보라는 의제를 독점하려고 한다.
물론 여기엔 적군파 등의 극좌폭력집단의 뻘짓도 한 몫을 했지만..

 

보수정당들은 대개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자유주의를 택한다.
그리고 이 경우 상대적으로 재벌들의 지지를 받기 쉽다.
시장경제는 규제가 적을 수록 마치 도박판에서처럼
밑천을 많이 가지고 있는 쪽이 이기기 쉬운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은 풍부한 정치자금을 확보하기가 쉬워지고,
사실상 돈으로 치르는 선거에서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벌놀이다.
일본 정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대놓고 파벌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런데 자민당의 경우 이를 거의 예술적인 경지에 올려 놓는다.

 

쉽게 말해 이런 식이다.
일단 어떤 정파가 당내 힘을 얻어 총리직을 차지하면
그에 반대, 혹은 견제하는 정파 역시 함께 두드러진다.
양측은 틈이 날 때마다 서로 티격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상 한패이다.
이 경우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파가 실각을 하게 되더라도
곧이어 치러질 선거에서 같은 정당의 다른 정파가 나서면서
자신들은 이전의 실패와 상관이 없기에,
자신들을 뽑는 것이 사실상 정권을 교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으로
유권자들의 착각을 유발시킨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전략들까지 더해지면 이는 꽤 설득력있게 들린다.

 

15대에 이어 16대 대통령 선거까지 연이어 패배하면서
당시 한나라당은 이런 자민당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이른바 친이, 친박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특정한 계파 수장을 따르는 다양한 정파들이 있긴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까지는 대통령이 곧 당수이면서 공천권까지 행사했기에
여당 내에서 함부로 대통령에게 반항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친이와 친박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였다.
그들은 17대 대선을 준비하면서 서로 대거리를 시작하더니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남아서 티격대기를 계속했다.
친이 쪽의 공천 학살 시도가 결국 실패하고 돌아온 친박세력은
이후 여당 내 야당이라는 가면을 쓰고 국민들을 기만하기 시작한다.
18대 대선에선 마침내 박근혜를 찍으면 사실상 정권교체나 마찬가지라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결과 어지간히 인기 없는 전임 대통령에 이어
같은 당에서 또 다른 대통령이 선출되는 결과를 이뤄낸다.

 

이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새누리당은
박근혜 정부 아래서도 계속 비슷한 전략을 펴고 있다.
끝난 줄 알았던 친이, 혹은 비박 세력을 다시 부상시켜서
갈수록 밑천이 드러나고 있는 이 정권 이후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가장된 파벌놀이는 일견 무질서해보이지만,
사실 명확한 목적을 향해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무성이 당대표가 됐다고 새누리에 새바람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

어차피 다 그 나물에 그 밥.(심지어 사람이라도 바뀐다면 말도 안 하겠다)

 

 

 

하지만 그에 반해 야당 쪽의 파벌은
놀이가 아니라 진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통해 좀 더 언급할 생각이다)
후자 쪽이 좀 더 솔직하다고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어차피 정당의 기본적인 목표가 정권 획득에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여당 쪽도 자신의 목표에 충실하고 있으니 비난할 꺼리가 될 수는 없는 걸까.

 

여기서 다시 한 번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나는 거짓말 이면을 볼 수 있는 유권자들의 현명한 정치의식인데,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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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전 오랫동안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시달리던

이 땅의 조선 사람들은 드디어 고대하던 독립을 얻어냈습니다.

비록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우리 민족 스스로 독립을 쟁취해내지는 못했지만,

그 날을 위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여러 애국지사들,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우며 소중한 생명을 잃으셨던 독립군들,

비록 실행되지는 못했으나 서울진공작전의 최종단계까지 준비하셨던 광복군​들까지..

수많은 분들의 ​피와 땀이 큰 힘을 더했던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에 의한 이런 독립에의 의지와 노력들이 인정되지 않았다면

종전 이후 연합군​의 전후처리에서 우리의 독립이 쉽게 인정받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 날의 독립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을 게 분명합니다.

물론 일제에 협력하며 호의호식​하던 친일, 부일배들의 마음은 불편했겠지만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재산의 많고 적음과도 관계없이,

남녀노소, 지역을 가리지 않고 그 날 나와서 기뻐했을 겁니다.

 

 

 

최초의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1945. 8)

 

 

하지만 아쉽게도 이후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초대 정부 주요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독립운동가들의 얼굴도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군은 광복군과 독립군의 전통과 조직을 이어받기 보다는

일본제국군에서 복무하던 이들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찰 역시 일제 아래서 순사로 일하던 이들과 조직이,

심지어 독립군들을 잡아 고문하던 양아치들이 그대로 넘어왔습니다.​

정부 조직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던 행정관료들이 장악합니다.

해방 직후 남한 지역을 통치하던 미군정 당국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은 한 번도 친일파들을 제대로 정리한 적이 없습니다.

이승만 정부 당시​ 일시적으로 활동했던 반민특위는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이 대통령의 묵인 아래 이뤄진 백색테러에 의해 해산되고 말았고,

결국은 일본 왕에게 충성맹세까지 하며 출세하고자 했던

한 한국 장교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대통령에 오르면서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결정적인 면죄부가 발부된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죠.

심지어 오랜 군사정부가 끝나고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일마저 자칭 보수우익세력에 의해

번번이 방해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실제 기록으로 남은 친일행위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과오가 있기는 했어도​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야 하며,

또 다른 측면에 공로도 있으니 친일인사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어이없는 논리를 펼칩니다.

뭐 수 천 명의 시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내란 수괴로 법적 처벌까지 받은​ 전직대통령을

자랑스런 동문, 선배라고 소개하는 정신나간 이들도 존재하는 나라니

이 정도는 애교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문제는 단지 친일파 정리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부침이 좀 있었을지 모르나

분명히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여전히 우리는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이​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되었을까요?

단지 우리와는 다른 민족이 최고통치자가 되었다는 점이 문제입니까?

​물론 이 부분은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문제지만,

통치자의 국적이 바뀌었다고 해도 사람들의 삶이 실제로 변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진정한 독립을 얻었다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들이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정치적인 권한을 거의 행사할 수 없었으며

경제적으로도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착취당했습니다.

문제는 광복 69주년이라는 오늘까지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정치적 의사를 표시할 권한이 상당하게 제한되고 있습니다.

시민의 정치행위는 단지 선거일에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교육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그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지만,

권력자들은 온갖 법률과 자의적인 잣대, 그리고 편법을 동원해

이런 헌법적 권리를 언제라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각종 지방자치단체장, 의원들은 선거로 뽑히지만,

이 과정에서 심각한 언론통제, 여론왜곡과 조작, 그리고 선동이 넘쳐나기에

시민들은 제대로 된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더욱 참혹합니다.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라는 제도는 시민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는 주요 도구입니다.​

그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 노동자들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빈부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고,

소수의 재벌들은 대한민국 부의 대부분을 손에 넣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이 먹고 남은 것들을 서로 쪼개 써야 하는 처지입니다.

 

 

 

 

파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4인 가구의 가장이 일을 하던 중 상해를 입어도

치료 과정에 아무런 보상이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두어 달의 치료 기간 동안 당장 가정의 생계가 막막해 지는 게

2014년의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이들을 지원하고, 재기할 수 있는 데 사용해야 할 국가예산은

대통령 개인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삽질에 낭비되고 있고,

지역 국회의원들의 재선을 위한 사업에 퍼부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는 좀처럼 허가받지 못하고,

대통령을 풍자하는 미술작품조차 전시하려면 눈치를 봐야하고,

​인터넷에 정책과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 처벌받는 게

2014년의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독립을 한 걸까요.

​통치자의 국적 말고도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광복절은 단지 어제의 일을 기억하기 위한 날만이 아니라

그 정신을 끊임 없이 구현해 내기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독립을 위해 피땀을 흘리신 조상들의 후손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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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과 ‘블루 드레스’ - 사면, 역사 바로 세우기와 국민 통합

 

 

영화 ‘26년’이 한동안 흥행을 일으켰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의 아이들이,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강풀이라는, 노력하는 웹툰 작가의 탄탄한 원작과 캐릭터 위에

두 주연 배우인 진구와 한혜진의 연기력이 적절하게 녹아들면서

꽤나 괜찮은 작품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좀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시나 실제 인물과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민간인을 학살하고,

수 천 억의 비자금을 챙기고도 자신은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종종 적반하장식의 어이없는 발언을 쏟아내는 그 사람 말입니다.

일각에는 그 사람을 영웅시 하는 이들도 있지만,

뭐 이 글은 정상인을 위한 거니까 특별히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사람’과 같은 뻔뻔한 사람들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역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법체계 탓이 큽니다.

당초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은

1997년 12월 22일 지역감정 해소 및 국민 대화합이라는 명분아래

전격적으로 사면됩니다.

군부독재 세력인 노태우와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추진해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던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마음이 빚을 그런 식으로 해소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칭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민주정권에서 수여된 이런 식의 사면은

당초의 명분은 전혀 달성하지 못한 채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것이 임무인 군대를

도리어 국민들을 죽이고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시킨

극악한 범죄자를 풀어주고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에 도움이 되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고,

결과는 오늘날 보는 바와 같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잘못 쓰였고,

범죄자들 뻣뻣하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니며,

재임 시 빼돌린 돈으로 사치스럽게 사는 꼴을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런 인물을 추종하는

비정상적인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구요.

 

사면은 근본적으로 삼권 분립을 규정한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초헌법적 개념입니다.

사법부의 결정을 무효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대략적인 관례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이건희 단독 특사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든지 무시되기도 합니다.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반대와 비난은 잠시 귀를 막으면 되고,

잠시 얼굴에 철판만 깔면 비리로 구속 중인 측근들을

빼내오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물론 사면을 통해서 행정적이고 사법적으로 엉킨 문제들을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없진 않지만,

지금처럼 어떤 원칙도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이와 관련해 알비 삭스의 ‘블루 드레스’라는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대 헌법 재판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악명높은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변호사로서 싸워왔습니다.

그 와중에 정부에서 보낸 공작원들이 설치한 폭탄으로

한쪽 팔과 눈을 잃어버리는 사건까지 겪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고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났을 때,

그는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됩니다.

 

헌재 재판관으로써 그는 차별정책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된 국민들의 마음을 통합시키는 큰 책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당면한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전 정부가 저지른 각종 불법적인 사건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전 국가적으로 자행되었던 범죄와 공작들을

모두 밝혀내 처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우선 관련자들이 너무나 많았고, 증거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알비 삭스를 비롯한 재판관들과 정치인들은

과감히 ‘사면’이라는 카드를 꺼내듭니다.

국민통합과 미래지향적 가치의 정립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경우와는 좀 다른 과정이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공적으로 시인하고,

자발적으로 그 불법적 사건들을 입증하는 이들에게만

사면이라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국민통합이었습니다.

이전에 과오를 저질렀던 사람들도 사면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제도는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그 전모를 밝히기 어려웠던 과거의 어두운 사건들을

역사의 빛 아래 밝히 드러내는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과거사를 바르게 세우게 된 것이죠.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사면들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빚을 청산하기 위한 도구나

과거를 덮어버리고 털어내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았습니까?

역사가 바로 서지 못하니

과거 총과 폭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던 독재자와

그에 빌붙어 살던 것을 충성으로 포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전성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의 모든 통치 행위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한다면 말입니다.

사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그저 대통령 개인의 기분에 좌우돼서는 안 됩니다.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와 규정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국가반역죄를 저지르고 수감된 폭력배나

엄청난 금액의 경제범죄를 저지른 마피아 두목 같은 이들을

국민 중 하나인 대통령이 제멋대로 풀어주는 일은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면이 이루어질 때마다

통치자들은 국민통합과 같은 좋은 가치들로 이를 포장합니다.

실제로 발표되기 전까지 꽁꽁 숨겨두다가

어떤 공론이나 여론을 모으는 작업도 없이

당일이 되어서야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숨어버리는 건

마치 무엇이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는지,

무엇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일 뿐입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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