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

제 방에 있는 허브 이름입니다.

언제부턴가 제방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좀처럼 자리를 비워주지 않고 있는 녀석이죠.. ^^;;
 

 

이 녀석이 처음 제 방에 들어온 것이... 
 
언제더라... 한 1년 가까이 되는것 같군요.

어느날 어머니가 갑자기 사 오신 화분 하나.

이제부터 제 방에 두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이 녀석은 제 방에 입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겨우 제 손바닥 보다도 작은 화분에 몸을 싣고서,

정말 오래 버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다시 쳐다보게 됩니다.

 


로즈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말에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그거 빨리 죽지 않느냐고.. 자기집에 있던 것은 금방 죽더라고..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저희 집에 있는 녀석은 아직까지 살아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시련(?)도 있었죠..

제 성격 탓이 아닌가 한데........

별로 관리를 못했거든요.

모... 자기가 방 한 쪽에 얌전히 앉아있겠다면야..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말 그대로 그냥 놔두었죠..

 


그러던 어느날..

학교를 다녀와서 우연히 창가를 보니까,

그새 녀석이 풀이 죽어있지 뭡니까.

그 작은 화분에 손바닥 길이만한 허브 세 포기가 있었는데,

한 포기가 말라버렸더라구요..

 

갑자기 안쓰러운 느낌이 들어서

서둘러 물을 주고, 물뿌리개로 잎을 적셔 주었죠.

그렇게 하고 햇볓에 놔두니

다음날엔 나머지들은 다시 생생하게 기운을 차리더라구요.

안타깝게도 처음 녀석은 그냥 죽어버렸죠.. ㅜㅜ

 


그렇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된 허브 화분.

요즘은 그래도 화분 겉흙이 마르지 않게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구여.. ^^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손바닥 길이를 훨씬 더 넘어서게 자라버렸습니다.

생각 외로 너무 크게 자라서,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입니다. ^^;;

 

 
모.. 차로 끓어 먹으라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좋다는 사람도 있고..

얼마전에 본 텔레비젼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로즈마리를 잘라서 고기 요리에 사용하더군요.. ^^
 

 

저두 연구 끝에 얼마 전에 살짝 잎 몇 개를 잘라서 씹어봤습니다.

우선 로즈마리 자체가 향이 엄청 진하거든요..

요즘은 커피들을 다들 자주 마셔서리,

어지간히 진하지 않은 향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로즈마리는 그걸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을만한 강한 향을 가지고 있죠.

그냥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손에 향이 남아있을 정도니..
 

 

그래서 첨엔 잔뜩 기대하고 씹었습니다.

이걸 입에 넣고 씹으면, 입안 가득히 그 향이 넘칠라나..

근데... 그냥 풀 맛이더군요.. ㅡㅡ;;

향은.... 거의 안 납니다. (켁..)
 



그렇게 키워온 로즈마리..

이젠 화분이 작은지 좀 우울해 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도 빠뜨리지 않고 주고, 햇볕도 좋은데...

자꾸 풀이 죽어 있는 것이..

흙 속에 양분이 다 된건지..

아님 작은 화분에서 살 수 없을만큼 커진건지..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중입니다.

 


어쩌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빨리 이렇게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영영 기억에서 지워져버릴 것 같아서,

이렇게 급히 글을 쓰고있죠.. ^^

뭔가를 잃어버린다는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슬픈일이니까요..
 

 

로즈마리를 볼 때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작은 화분 하나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금방 병이 들어버리고 만다는 것.

그리고 그 병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은

관심을 가져주는 일부터 시작이라는 것.



 

사람에게도 역시 적용되는 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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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7-11-1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전에 허브 레몬밤을 키운 적이 있는데, 첨에 잘 자라다가 분갈이를 안해주어서 그런지 나중에 말라버렸어요.ㅠ_ㅠ 그 뒤로 식물을 함부로 키우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정말 그게 중요하겠죠.

노란가방 2007-11-12 07:1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도시에 살면서 식물이라는 생명을 키운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로즈마리란 녀석도 원래는 그냥 마당에 심어 놓으면 잡초처럼 잘 자라는 녀석인데 좁은 화분에 가둬두려니 답답해 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거겠죠?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가 많이 오던 날.

과외를 끝내고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생과자를 만들어 파시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연휴라 집에 계실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과자 한 봉지를 사려고 차로 갔죠..
 

 

한 번, 전에도 그 할아버지에게서 생과자를 산 적이 있는데,

너무 멋진 할아버지시더라구요. ^^

과자 맛이야.. 생과자라면 어디나 다 비슷비슷 하겠죠.

(땅콩이 더 들어가고 좀 덜 들어가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하지만 할아버지에게서는 왠지 여유가 느껴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또 '여유'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습니까.. ^^

 

 

아버지의 '여유'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주시는 '돈봉투'인 것 같습니다.

2000원 짜리 생과자 한 봉지를 사면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돈봉투 하나를 넣어주시거든요. ㅋㅋ

 

 
행에서 한번에 지폐를 많이 인출하면 주는 봉투 있지 않습니까?

그 두툼한 돈 봉투를 봉지에 같이 담아 주시는거죠.

K모 은행의 이름이 찍힌 돈봉투.

짐작하셨을지 모르겠지만, 물론 그 안에는 돈이 아닌 생과자가 들어있습니다.

 

 

들다가 깨졌거나 보관하다가 한쪽이 부서진 것들..

하지만 완전한 것들도 제법 들어있더군요.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완전한 것들 사이에 슬쩍 몇 개 넣었을 수도 있을텐데,

할아버지는 굳이 일부러 그런 것들을 골라내고,

골라낸 것들을 따로 담아서 사람들한테 덤으로 주시는 것이죠.

중요한건, 봉투가 제법 두툼하답니다.. ^^;;



 

진 할아버지 아닌가요?

당장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가지려고만하는 요즘 사람들..

필요한 것만 가지고, 나머지는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면

세상이 좀 더 멋지게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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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너려던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방금 바뀌어서,

제법 기다려야 했죠..



그런데, 저 쪽 횡단보도에

개(중간 크기 이상이었으니, 강아지는 아닌듯 싶습니다 ㅡㅡ;)두 마리가 건너려고 하는게 보이더라구요.

그 길은 신호가 아직 안바뀌어서

자동차들이 계속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말이죠.



왕복 6차선 도로라 제법 폭이 넓었고,

개 두 마리는 차가 다니지 않는 3차선은 쉽게 건넜지만,

나머지 차가 달리는 3차선은 쉽게 건너지 못했습니다.



하얀색 개, 노란색 개.

둘이 사이좋게 붙어서 가더라구요.

애인, 아니 애견(愛犬)사이(?)인가.. ㅡㅡㆀ



아무튼, 두 마리 개가 차에 치일것만 같았습니다.

다행히 자동차들이 미리 경적을 울려서

두 마리 개들은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고,

사고는 나지 않았습니다.



'횡단보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바닥에 흰 색으로 그려진 선 몇 개가 전부고,

그 외 다른 차로와 차이는 전혀 없는, 그냥 땅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곳을 아스팔트로 덮고, 선을 그리고, 신호등을 세우고 하더니,

그 곳은 신호가 없이는 쉽게 건너지 못할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곳에 도로를 만들고, 횡단보도를 그리고, 신호등을 세우고 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생명들의 의견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겠죠.

인간 위주로 규칙을 정해놓고, 그냥 밀고 나가버린겁니다.



어쩌면, 저도

혼자서 멋대로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놓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 맞춰주기를 강요하며 사는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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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심술이라는 초능력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말하는데,

염력, 텔레파시 등과 함께 초능력의 주요 범주 안에 들어가는 능력이다.

여기서 초능력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좋을까?

만약 그런 능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에게서 보여지는 다툼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혹은 모르고)

무심코 내뱉은 말 때문에 일어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의 의사에 대한 오해도 없어질 것이므로,

이 역시 인간들의 다툼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됨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족속들이 워낙 나쁜 생각을 많이 하니까..

그런 생각들을 다 알고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터..





혹자는 이런 능력이 보통 사람에게 불가능 한 일이니

굳이 이런식으로 사고력의 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능력과 같은 비정상적인 능력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관찰력과, 충분한 추리력을 바탕으로 한 능력이다.

상대방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올바로 추측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할 수있지 않은가?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기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하느냐, 무의식적으로 하느냐 혹은, 드러내는 정도의 강약의 차이만 있을 뿐,

대개의 경우 자신을 나타내려는 여러가지 동작, 모습을 겉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바로 이 점에 집중한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자~ 그럼 내 글을 여기까지 진지하게 읽고 있는 당신을 위해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침을 알려주겠다. 기억해 두시라.. ^^;;


일단 상대방의 목소리 톤으로 그 사람의 심리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밝고 대체로 높은 톤의 목소리는 그 사람의 심리상태가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의미하고,

무겁고 낮은 톤의 목소리는 그 반대라는 것 쯤은 다들 알 것이다.

특히 아주 낮은 목소리로 톤의 변화가 없이 말하고 있을 때는 좀 위험한데,

이는 대개의 경우 큰 분노나 슬픔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두 번째는 말할 때의 그 사람의 행동, 동작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무릎이나 다리를 떠는 동작은 긴장을 풀기 위한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이 지금 뭔가가 마음에 걸리거나 초초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자주 치는 사람은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이다.

입술을 빠는 스타일은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심리가 드러나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는 뭔가 숨기고 있다는 뜻이다.

미간을 찌뿌리는 행동은, 상대방에게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밖에도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주요 코드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가는 곳에 눈을 두게 되어 있다.





세 번째는, 대화시가 아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관찰하기이다.

이것은 그 사람의 성격 유형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며,

그렇게 알게된 성격은, 그 사람의 여러 행동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 사람이 어떤 형식의 시계를 차고 있느냐에서부터,

지하철을 탈 때 표를 어떻게 지니고 있는가, 즐겨입는 옷차림은 어떤 스타일인가 등등,

대단히 여러가지 요소가 고려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면, 로마 문자가 쓰여진 시계, 화려한 장식이 달린 시계, 특이한 디자인의 시계, 숫자가 없는 시계 등은 각기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

로마 문자는, 대체적으로 성실하고, 꼼꼼하며, 화려한 장식은 폼잡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특이한 디자인의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경향이 보일 수 있으며,

숫자가 없는 스타일은 대개 형식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이 방식에서 주의할 점은, 어느 한 가지로 그 사람의 성격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패하기 가장 좋은 경우는, 그 사람의 부모님이 사다주신 시계를 차고 있을 때다. ㅡㅡ;;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의 세가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각각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네 번째 요소가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감(感)이다.

혹자는 '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고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감은, 단순한 '찍기'가 아니라 좀 더 고도의 추리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감'은 다른 말로 '느낌'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상대가 겉으로 보여주는 모든 징후들을 종합해 내리는 최종적인 판단이다.

상대가 말할 때 쓰는 어휘, 눈빛, 시선, 자세, 말의 빠르기, 말의 고저, 주기적으로 하는 행동,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 대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등등

좀 더 많은 것을 고려하면 고려할수록, '감'의 정확도는 향상된다.





이런 것들은 단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로 채팅을 할 때도 그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어휘, 반응의 속도(타자수를 고려해서)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여기 제시된 한 두가지 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감을 키워주는데 좋은 것들로는, 많은 양의 독서를 들 수 있다.

특히 인간 대중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 좋다.

여러 소설류도 괜찮고, 뉴스나 신문(이것들은 지난 번 글에서 말했듯이 왜곡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잡지 등도 유용하다.

특히 그 자체가 인간 대중을 다루고 있는 역사 서적은 대단히 유용하다.





독서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다른 사람의 겉으로 나타나는 징후들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 만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의점.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는 내가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상대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망원경으로 산을 관찰하듯, 상대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정말로 망원경으로 관찰하라는 말은 아니다. 시도하지 말자.)

돋보기로는 산을 볼 수 없다.

그것은 작은 부분을 너무 크게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일정거리 이상으로 가까이 갈 경우,

위의 여러 방법들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치밀한 관찰력과 주의력은 상대방의 의미없는 행동을 확대 해석해, 지나치게 큰 결과를 도출해 낼 위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여기에 있다.





객관성을 잃은 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려 한다면,

읽히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그 사람의 생각이 될 뿐이다.

때문에 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 채,

편견(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없이 상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읽을 수 없는 것이냐고?

걱정하지 마시라..

정말 가까워진다면, 굳이 읽으려고 하지 않아도 서로 느낄수 있지 않을까?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둘은 한 몸을 이룰'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남녀사이 뿐만 아니라, 진정한 친구, 선후배,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도 이런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생각, 느낌까지도 내게 전달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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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관한 세 번째 관찰은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익숙해짐이나 애착 못지 않게, 사람들의 사고를 강하게 지배하는 것이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두려움을 갖게된다.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 아기는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그 안에는 어떤 위험요소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양수라는 따뜻한 물에 잠겨 있으면서,

어떤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배고픔을 느끼면 탯줄을 통해서 어머니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으면 되고,

피곤하면 그냥 그대로 자버리면 되는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아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즐겁게 놀기도(?)한다고 한다. ㅡㅡ;

뭐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곳이다.




더구나 자궁 안은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로 맞춰져있다.

난방, 냉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태아가 잠겨있는 양수는, 웬만한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 곳에는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혼란함도, 소음도, 매연도 없다.

태아에게 있어서 그 곳은 낙원인 것이다.

에덴동산이 그 곳과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닐까?





하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태아는 영원히 그 곳에서 살 수는 없다.

10개월의 기간이 지나면, 태아는 그 낙원에서 혼란한 세상으로 밀려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마 태아도 직감적으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한없이 편안하기만 했던 그 곳이,

이제는 자기의 자라버린 몸을 겨우 담고 있는 크기로 줄어든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낙원에서 세상으로 나와야 할 때,

아기는 엄청난 두려움에 접하게 된다.





아기가 처음 보고 느끼는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에야 거의 대부분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출산을 하니,
(난 집에서 태어났다는... ㅡㅡㆀ)

대부분의 아기들은 병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대한 첫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한 번 아기의 입장이 되어보자.




'한 두달 전부터 내가 있는 곳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전에는 참 편했는데 말이다.

이제 여기 말고 좀 더 편한 곳으로 나가고 싶다.

지난 열 달간 계속 나랑 얘기하던 누군가한테 말해야겠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난 말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좋은 수가 생겼다.

바디 랭귀지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내가 답답하다는 것을 몸으로 알려주자.




아.. 뭔가 감이 온다.

헛.. 갑자기 내가 있는 곳이 더 답답해져온다.

이대로 있다가는 깔려 죽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아, 저기 통로가 있는것 같다.

좀 작아보이긴 하지만, 지금 난 살기 위한 투쟁을 하는 것이다.

저 밖에 뭐가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일단 도전해보자.





드디어!! 내 머리가 빠져 나왔다.

아.. 근데 여긴 너무 이상하다.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 저기 많은 존재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고,(아직 난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가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내 섬세한 피부도 갑작스런 자극에 놀라는 것 같다.

다시 들어가야겠다.

여기는 내가 살 곳이 못되는거 같아.

조금 불편하긴 해도 전에 그 곳이 더 나아.

헛.. 근데 들어갈 수 없다.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칠 수록 자꾸자꾸 빠져나오기만 한다.





아.. 결국 완전히 빠져나오고 말았다.

이런 괴물들이 사는 곳에 나 혼자 떨어져 나오게 된 것이다.

아얏! 누가 날 때렸다.

슬프다. 이제 이렇게 난 맞아 죽는 것인가...'





약간의 과장과 상상이 들어갔지만,

태아는 분명 이 과정에서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인간은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변화라는 것은 양면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에게 그것은 안정된 현재의 위치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권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한심한 작태를 연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단 권력자들 뿐만 아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갖게 만드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돈이나 물건 등 여러가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비이성적인 행위까지 서슴지 않도록 만든다.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의처증이나 의붓증이 이런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미래에 어떤 것이 있을지 알 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두려움도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까이에서 찾아보자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자그만치 12년 동안의 공교육을 받은 결과를 측정하는 단 한 번의 시험.

물론 많은 준비를 해왔겠지만,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법.

안심하고 시험에 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같은 맥락에서 취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성취하고 싶은 목적을 이룰지 못할까봐 갖는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의 눈을 좀 더 크게 떠 보자.

이 모든 두려움보다 더 큰 두려움은 없을까?

급격한 변화로 인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

이런 두려움들이 점점 확장되어서 가장 극치에 이를 때가 언제일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죽음보다 더 극적이고 큰 변화가 있을까.

인간이 상실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

인간이 예상할 수 없는 가장 큰 상태는?

죽음 이후의 상태일 것이다.






뭐.. 너무 작위적이지 않느냐고 반문을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죽음은 너무나고 급작스럽고 큰 변화이며,

인간이 잃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잃는 것이고,

죽음 이후의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믿기로는 단 하나의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이 비록 급작스러운 변화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보다 앞서서 그 변화를 경험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리라고 약속하시는 분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해 생명이라는 큰 자산을 잃어버리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그 분이 그들에게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비록 그리스도인들도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위에서 말한 그 분이 그들에게, 그들이 죽은 다음 있을 곳은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이보다 더 크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자, 그러면 이제 시선을 다시 우리에게로 돌려보자.

우리는 이미 가장 큰 두려움을 극복한 상태이다.

조금 전 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에 관한 것이었는가?

그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크게 느껴지는가?

그런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이미 우리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을 극복한 상태인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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