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들리는 철제(鐵題)의 마찰음.

그것과 동시에 들려오는 인공색(人工色)이 진한 경적음.

웅성이는 소리.

플라스틱과 석재가 맞부딛히며 발생시키는 소리...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어선지,

아니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런 방식으로 알리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인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만의 소리를 내는 곳이 있다.


 

매일 아침 타는 지하철이 바로 그 곳이다.
 

 


혹시나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아니면 급작스럽게 여유를 가져야만 할 때(?)가 생긴다면,

지하철 승강장에 설치된 의자에 잠시 앉아

내가 아침 저녁으로 이용하는 지하철이란 곳에서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소음이 들리는지 들어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듯 싶다.

 


지하철과 "관계된(매일, 일정 시간에, 일정장소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장소와 뭔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군상들이 발생시키는 소음을 듣고 있자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 시끄러운 소리들로 가득차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의식을 하던, 그렇지 않던

우리들은 하루종일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그리고 다채로운 소음을 발생시킨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각종 소음을 발생시키는 것 같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러한 소음들은 동료 인간들에게 불쾌함으로 다가온다.

 

 

 

한 번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약 이 지구상에서 모든 인간들이 사라지고,

그들이 만들어 낸 소음을 발생시키는 수많은 인공구조물들까지 없어진다면,

그래도 이 세상은 이렇게 시끄러울까 하는..

 


물론 인간 이외의 것들도 소리를 발생시킨다.

우리 인간들의 청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자연이 쉴새없이 쏟아내는 그 수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매우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쉴 새 없이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들의 발자국 소리,

여름이면 연못을 점령해버리는 소금쟁이, 물방개들이

헤엄치는 소리들로 금새 귀가 가득차게 될테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들의 날개짓 소리가

100배는 더 크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ㅡㅡ;

 


그런 소리들과 인간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 모든 소리들은 적어도 자신의 동료들에게 불쾌감과 고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다는 점이다.

새 소리가 동료 새에게 불쾌감을 유발시킬까?

매미 소리가 다른 매미에게 고통으로 느껴질까?

(오히려 반대다. 매미들은 동료가 우는 소리에 용기를 얻는다.)

 


똑같이 지하로 다니더라도

지하철이 내는 소음과 두더지가 내는 소리는 천지차이다.

두더지의 그것을 지하철의 그 찢어지는 소음에 비교할 수나 있을까.

(옆에서 쉬고 있는 개미에게는 크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ㅡㅡ)

 


문제는 조화를 이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유달리 조화에 익숙치 않은 것 같다.

조화를 이루려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외부의 사물을 변용시키고, 부수고, 깍아내고, 찢어놓는다.

 


물리적인 사물 뿐만 아니라, 소리의 영역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것이 우리가 말하는 "소음"인 것이다.

주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소리. 

그 것이 바로 소음이다.

 


이렇게 세상이 시끄러운 걸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어지간히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인가 보다.

 

 

 

한 번쯤은 시끄러운 소리 내기를 그치고,

다른 사물들과 조화를 이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다.

 


조금만 천천히 걷고,

조금만 말 소리를 낮추고,

조금만 주위에 귀를 기울여보면 된다.

조금만 주위를 더 느껴보면 된다.

 


단지 그것으로 족한데 말이다.

 

 

 

들으려고 하는 사람보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
 
귀는 두 개고, 입은 하나인데..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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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일 년에 한 두 번 쯤은 책장정리를 하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부지런한 사람은 수시로 할 지도 모르겠지만,

제 경우엔 뭔가 분위기를 바꾸거나 할 때 주로 하죠.

 

 

 


엔, 정말 일 년에 한 두 번은

제 방에 있는 몇 안되는 가구 위치도 옮겨보고 그랬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선지 그나마도 귀찮아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ㅡㅡ;;

오늘은 그냥 두 책장에, 그리고 책상과 방 여기저기에 널부러져있던 책들을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장정리를 해 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우선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꽂히지 않은 책들을 다 뽑아내야 합니다.

생활하다보면 책장에 책 이외의 것들도 꽂혀지기 마련이죠.

제 경우엔 이것저것 메모를 해 놓은 쪽지라던가,

나중에 쓰려고 한 두장씩 모으기 시작한 이면지 뭉치 같은 것들이

책꽂이에 꽂혀있더군요.

그 외에도 세로로 제대로 꽂히지 않고 그 위에 가로로 눕혀져있는 책들..

 

 

 

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런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하나 둘씩 빼 놓고 나면,

방은 아주 엉망으로 어지러지게 됩니다.

책장 정리에 책상 정리, 바닥까지도 어느정도 정리를 하려고 했던 제 경우는,

어지간한 전쟁영화를 찍어도 될만큼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죠.

그걸 보시던 어머니는 몇 번씩 빨리 방 치우라고 말씀하시고,

전 치우는 중이라고 대답하고....

다들 익숙한 풍경이리라 생각됩니다만. ㅡㅡ;

 

 

 

정리를 할 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은,

어떤 식으로 분류를 하고 정리하느냐 하는 기준의 문제입니다.

책이란 것은

"책장에 잘 꽂아놓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을

자랑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의 주제와 용도에 맞게 모아서 꽂아놓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다음번에 금방 찾을 수 있으니까요.
 

 

 

론, 제 방에 있는 책이 너무 많아서

하나씩 둘러봐서는 찾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죠.

대충 세어봐도 200 여 권도 안되는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제 경우에는, 성격 탓이 더 강한 요인인것 같습니다.

뭔가 주제에 맞게 정리를 해 놓지 않으면 못 배기는... ^^;

 

 

 

격 탓이든, 책을 쉽게 찾기 위해서든,

전 책들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전공에 관련된 책들,

다른 하나는 역사와 관련된 책,

나머지 하나는 그 외의 다양한 책들.

 

 

렇게 기준을 나눠놓고 정리를 하면 쉬울 것 같았는데,

다시 얼마 못 가 어려움에 빠져버렸습니다.

같은 전공책이라도 세부적인 관련성에 따라 따로 정리해야 하니까요.

그럼 그렇게 정리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질문을 하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문제는 계속 이어집니다.

어떤 책의 경우는 분류가 불명확하거든요.

『신학과 철학』이라는 책은 신학 가깝게 꽂아야 하는지,

철학 쪽에 가깝게 꽂아야 하는지...

 

 

 


런 문제들을 하나씩 생각하면서 책을 정리하려면,

몇 권 안 되는 책이지만 족히 몇 시간은 걸리게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대개 결론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죠.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신학과 철학』이 신학인지 철학인지

명쾌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거든요. 후훗.

 

 

 

활을 하다보면, 이것저것 정리를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갑자기 많이 일어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너무 많은 관계들 사이에서 나 자신을 찾기가 어려울 때,

때론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는 문제 앞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죠.

 

 

 

럴 땐 말입니다.

너무 오래 생각하고, 너무 깊이 생각하는게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여기에 꽂을까, 저기에 꽂을까 고민만 하다간,

결국 하루가 다 지나도록 방이 엉망으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잘 곳도 없이 그렇게 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게, 넓게 생각하세요.

일단은 큰 기준으로 빨리 나누는게 중요합니다.

정리할 부분은 빨리 정리를 하고,

선택한 부분만을 가지고 보다 세밀하게 나누는거죠.

너무 오래 고민하는건 오히려 건전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오래 잡고 있다고해서 꼭 좋은 판단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요.

 

 




을 정리하면서, 머릿속도 조금씩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지난 몇 년 동안 공부했던 일들도 떠오르고..

방학 동안에 책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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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스러움... 이라고 말하면 좀 부정적인 어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부정적 어감은 떠올리지 말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사실.. 마땅히 대신 사용할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ㅡㅡ;)






인간은 수다스럽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관찰한 인간들은 대부분 수다스러운것 같았다.

여기서 '수다스럽다'는 것은 '잠시도 쉬지않고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일반적인 의미는 아니다.

뭐라고 할까...

'자신의 생각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태도' 쯤으로 정의를 내리면 될까?





다시 말하면, 인간들은

자신이 아는 어떤 특별한 종류의 지식, 정보,

혹은 자신이 느끼는 특정한 감정의 기복, 이미지 등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에 약간 읽었던

『소문의 역사』라는 책에서도 그런 점들을 말하고 있다.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이 아는 정보,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곧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수다스러움'은 인간 본래의 속성중 하나인 듯 하다.






아무리 두겹, 세겹의 안전장치를 해 놓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 비밀은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그것은 대개 하드웨어적인 문제, 즉 기계적인 문제가 아니다.

소프트웨어의 문제, 즉 인간이 문제인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지식을 말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그 때문에 우리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진실에 상당히 근접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지난번에 써 놓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이라는 글을 참고하시라.. ^^)






근래에 들어서 뜨고 있는 블로그도 이런 인간의 본성을 터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블로그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블로그가 무엇인가?

개인홈페이지, 곧 어떤 한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페이지이다.

다시 말하면 블로그야말로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딱 맞아떨어지는 최첨단의 도구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다스러움은 대부분의 인간이 가지는 본성이다. 그래서 어쩔 것이냐?'





나는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왜 그럴까?

왜 인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할까?

왜 인간들은 나와는 어떤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까?

왜 블로그라는 매체가 그토록 뜨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다.






어떤 정보, 지식, 감정을 혼자만 알고 있는다는 것은 매우 고독하고 외로운 일인 법이다.

아무도 내 생각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온갖 오해와 억측이 난무한다.

그럼에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 어떤 특정한 감정의 격정을 겪었을 때,

인간은 그 스스로 그 감정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감정이란 것이 인간의 통제 밖을 벗어나기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평정심을 유지하려고해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나이와 경험의 유무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한다.)




결국 끝까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 자신은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면 자신 혼자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에게라도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면 한결 나아질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여기서 잠깐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을 가져다 써 본다.

"사람들이 수다스러운 이유는 대화를 통해 서로 위로를 얻고자 하고, 온갖 생각으로 지칠대로 지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자 함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글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수준있는 고찰이라고 부를만 하다.




그렇다. 인간은 위로를 얻기 위해, 편안함을 얻기 위해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수다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혼자라는 두려움으로부터의 위로를 얻기 위해 수다스러워진다.

물론 그 외의 여러 종류의 두려움으로부터 편안함을 얻기 위해 수다스러워지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기에, 그런 경험이 있다.

어쩌면 이렇게 계속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어떤 위로, 편안함을 얻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은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주요한 매체 중의 하나이니까..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렇게 우리 인간이 수다스러워짐으로써 과연 진정한 위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의지한다는 건,

그 누군가가 우리의 짐을 함께 나눠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그 사람이 나의 고민을 덜어주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그건 내가 원하고 원하지 않고를 떠나서의 일이다.

이미 내가 누군가에게, 아니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어떠한 반응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들은 사람에게 어떤 짐으로 다가 갈지도 모른다.

위로와 편안함을 얻기 위한 수다스러움은,

또 다른 사람을 어려운 곳으로 이끄는 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수다스럽게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이 우리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람에게서 위로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반드시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은 우리의 이야기의 일부만을 이해할 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우리의 이야기의 일부만을 고민해줄 뿐, 모든 부분을 대신 고민해 줄 수 없다.

그 사람은 우리의 이야기의 일부만을 위로해 줄 뿐, 우리를 완전히 위로해 줄 수 없다.






내가 겪은 억울함, 슬픔, 어려움이 있는가?

사람에게 그것을 말하는 건 약간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 이야기를 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스로 일종의 '시원함'을 얻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궁극적인, 그리고 최종적인 해결책은 좀 다른 관계를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의 뜻을 그 분의 뜻에 맞추는 작업이 바로 여기에서 필요하다.

그분의 뜻을 따라가기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없는 불만, 슬픔, 분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냥 이야기를 해대는 것만으로는

괜히 딱지가 앉아서 나을수도 있는 상처를 긁어서 다시 상처를 내기 일쑤이다.

우리가 그 이야기 자체에 집중을 하면 할 수록,

그 이야기가 우리를 붙잡고 오랫동안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해결사에게 맡기자.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어쩌면 우리가 도무지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의 해결자를 찾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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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좋아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지 않을까 합니다.

 
  


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안 마시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못마시는 음료가 되어버린 것 같네요.

 

 

 

젠가 돈을 내고(그냥 주는 커피가 아니라, 3000원 가까이 되는 거금을 주고)

커피를 주문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홍차나 핫초코 같은 걸 시켰을텐데,

그날은 왠지 커피라는 걸 한 번 시켜보고 싶더군요.. ^^

 


음 시도하는 커피였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골랐습니다.

그렇게 고른 것이 캬라멜 어쩌구(커피에 별로 조예가 없는지라.. 이름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 하는 커피였습니다.

 

 

이블에 앉아서 커피가 담겨 있는 컵을 보니,

위에 거품도 있고,

향도 달작지근 한 것이 제법 먹음직스럽게 보였죠. 후훗.

  

 

푼으로 거품을 걷어서 입에 넣어봤습니다. 

맛있더군요.. ㅋ

그리고 드디어, 갈색의 액체를 입으로 넣었는데...

ㅡㅡ;;

람들이 왜 이런걸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만, 들어간 돈도 있고 해서..

조금씩 홀짝홀짝 삼켜보긴 했죠.

결국... 채 반도 마시지 못하고 그대로 버렸습니다. ㅡㅡ

그렇게 커피 첫 경험이 끝나고,

커피를 제 앞에서 치웠는데도 한참 동안 커피향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실, 커피는 방향제로도 쓰이죠.

주위의 잡냄새를 제거해주는 기능이 있거든요.

냉장고 같은데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면,

원두커피 몇 알을 망에 싸서 넣어두면 악취가 제거된다고도 하더군요..(들은 얘깁니다.)

만큼 커피향이 진하다는 말도 되겠죠.

다른 모든 냄새를 덮어버릴만큼.

 

 


른 말로 하면, "이기적인" 향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것 이외의 다른 향들은 없애버리고,

오직 자신의 냄새만 남기고자 하는.

 

 


렇게 강한 자극에 익숙해져버린 존재는,

더이상 약한 자극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기 마련입니다.

커피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어지간히 향이 강한 꽃이 아니면,

(요즘 인공적으로 향을 진하게 품종 개량 - 자연적인 것을 없애고 특정 성질만을 기형적으로 성장시킨 것을 개량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을 해서 파는 꽃들 처럼 말이죠.) 

이를테면 들꽃과 같이 약한 향을 가진 꽃들의 냄새는 맡을 수가 없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히 향을 가지고 있는 꽃들인데도 말이죠.

 

 

쩌면 우리도 너무 큰 행복, 큰 즐거움, 큰 기쁨만 바라보다가,

결국 작은 행복, 작은 즐거움, 작은 기쁨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손에 커피를 들고서, 자스민 차의 은은한 향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요.

 
 

 

것들을 향한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작은 것의 소중함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지만 말입니다...

그런 작은 행복들이 모여서 큰 행복을 이루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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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잊어버림.




학창시절 누구나 난 왜 이렇게 잘 까먹는걸까 하는 생각을 한 번 쯤 해 보았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그런 고민을 꽤 했었다.

특히 영어 단어들...

난 외국어만 보면 왠지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체질인 것만 같았다.

외워도 외워도 잘 안되는 영어단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어단어 수첩을 하나 만들었더랬다.

폭은 손바닥 가로정도 만하고, 길이는 손바닥보다 약간 더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첩의 앞뒤는 좀 두꺼운 종이가 대어져 있었고,

까만색 바탕에,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구피가 그려져 있었다.

스프링으로 묶어놓는 수첩이었는데..

자주 들도 다녔더니 정이 들어서 나중에는 물고기모양의 열쇠고리까지 달아서 다니기도 했었다.
(이와 연관되어서 내가 쓴 인간성에 관한 첫번째 글을 참고하면 좋을듯.. ^^;;)





아무튼, 그렇게 정성들여서 만들지....는 않았고, 암튼 준비해서 가지고 다녔던 영어단어장.

대학교 들어와서 헬라어, 히브리어 단어를 외울때도 사용했던 방법이지만,

내가 단어를 외우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적당한 종이를 준비해서 적절하게 칸을 배분한다.

고등학교때의 단어장의 경우 가로가 짧은 직사각형의 수첩이었기에

그냥 그대로 배분하지 않고 사용해도 무방했지만,

A4용지 같은 경우에는 경험상, 가로를 3등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다음에 할 것은, 다시 그 칸을 반으로 접는 것이다.

그리고 왼쪽에는 외우고자 하는 단어를, 오른쪽에는 그 단어의 뜻을 적는다.

그 다음에는 오른쪽에 적혀있는 뜻을 뒤로 접어 넘기면 끝.

이제부터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외국어.

처음에야 계속 펴보면서 그 뜻을 찾기 마련이지만,

서너번 하다보면 펼치는 빈도가 많이 낮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사용했던 영어 단어장.

하지만, 이넘의 머리는 어떻게 된 것인지 단어는 쉽게 외워지지 않았다.

단어장 10장까지는 겨우겨우 넘어갔는데, 그 다음부터는 영 안됐다. ㅡㅡ;;;

성격상 그냥 넘어가기는 싫고.. 별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봐야했는데..

그 결과 단어장의 채 절반도 쓰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난 고등학교를 지하철로 다녔었는데,

3년간 딱 두 번 내려야할 역을 놓친 적이 있었다.

바로 그렇게 단어를 외우다가 깜빡한 것이었다.

아.... 맨날 영어 단어는 잊어버리고,

영어 단어를 안잊어 버렸다 싶으면 내려야할 역을 깜빡하고.. ㅡㅡㆀ





그 밖에도 시험때면 언제나처럼 조금 전에 봤던 건데,

아... 이거 책 어느 부분에 쓰여있는 것까지도 기억이 나는데 등등..

자신의 기억의 짧은 유효기간을 원망했던 경험들이 허다하다.. ㅡㅡ;;






이렇게 잊어버린다는 것은 우리 생활을 여러가지로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사람들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다.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있어야 하는 법.

그것은 과거의 어떠한 사건이나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즉, 내가 좋아하는 역사야말로 '인간의 망각에 대한 투쟁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흠흠.. 잠시 역사로 빠져서 흥분을 했나.. ㅡㅡ;

다시 돌아와서...






그럼 망각이라는 것이 과연 인간을 불편하게만 하는가?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인간이 하루에 각종 입력기관 - 눈, 코, 혀, 귀, 피부 -을 통해

두뇌에 저장하는 정보의 양은 실로 막대하다.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 놓고는(요즘엔 좀 적게 자기도 하지만서두..)

나머지 시간 내내 눈을 뜨고 있다.

안구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의 눈꺼풀이 안구에 수분을 공급해주는

잠시의 시간을 빼고는 말이다.

그렇다면 눈을 통해 우리의 두뇌로 전송되는 정보의 양은 하루에 16시간에 해당한다.

CD롬 한 장에 80분에서 90분 정도의 영상이 저장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무려 11장에 해당하는 정보이다.

우리가 매일 CD를 11장씩 방안에 쌓아놓는다고 생각을 해보라.

좁은 방 안이 금방 CD로만 가득차고 말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두뇌는 고맙게도 눈이 떠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



그 뿐인가.

우리의 코, 혀, 귀, 피부를 통해 입력되는 정보의 양도 적지 않다.

사실 현재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시각정보와 함께,

청각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간단한 일이다.

라디오가 가장 먼저 발명이 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 뒤 시각정보를 전달하는 텔레비전이 발명되었고,

일부 촉각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이 연구중이다.

아직 후각정보나 미각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은

직접 냄새를 피우거나 맛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은 어려운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것들을 데이터화 시키는 기술도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두뇌는 그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저장하고 있다.

그것도 하루에 16시간이라는 중노동을 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살아온 날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면....

그 데이터의 양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 방대한 정보를 모두 어디에 저장하는가?

현대의 발전한 생물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뇌,

그 중에서도 대뇌의 일부분에 저장된다고 한다.

실로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그 많은 정보가 우리의 작은 뇌 안에 다 저장될까.

'전문가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중요도, 자주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그 정보들을 적절하게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예를들면 자주 사용되는 것들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곳에,

잘 사용되지 않는 정보들은 저 밑바닥 어느 곳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마치 서랍을 정리하는 것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중 일부분은 저 멀리, 너무나 깊은 곳에

도무지 꺼낼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망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보다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는 정보를 쉽게 꺼넬 수 있는 위치에 저장하기 위한)라는 것이 통설이다.





다시 말하면 망각이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억들이 저 깊숙한 곳에 숨어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기억의 파편들은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말한 것 처럼 망각은

우리의 뇌가 가진 기억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만약 망각이 없다면,

우리의 두뇌는 얼마가지 못해서 쏟아져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들을 저장하느라

다른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눈을 감고 당신이 앉아 있는 뒷 편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라.

하나도 남김없이 기억이 나는가?

대개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런 정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는 보다 중요한 정보,

이를 테면 오늘 점심에 어떤 메뉴를 먹었느냐(?)를 기억하는 대신,

내가 늘상 드나드는 방의 한 쪽 벽에 어떤 것들이 배치되어있는지와 같은

가벼운 정보(뒤를 돌아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는 잊어버린다.






그렇다면 망각이라는 도구는 이렇게 실용적인 목적만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인간이 무슨 컴퓨터도 아니구..





어쩌면, 망각이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추억이란 대개 아름다운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첫사랑에 대한 추억.

비록 그 첫사랑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몇 년이 지나고... 10년이 넘어버린다면 그저 아름다운, 예쁜 추억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냥 떠올리고 있으면 빙긋이 웃음이 머금어지는 그런 추억 말이다.




왜 그럴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망각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두뇌가 망각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삐져나오고, 모난 부분은 과감히 깎아내고 없애버려서

남은 기억 중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남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좀 더 나아가자면,

과거의 슬픔이나 아픔, 원한 같은 것들은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을 추억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원한을 잊지 않고 대물림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은혜나 호의를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그 보답을 하기 위해 살아갔던 사람은

 

매우 적은 수에 불과했다.

매스컴에서 선행을 한 사람을 기사꺼리화 해서 보도하는 것도,

그것이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 아닌가.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이란....




그리 길지 않은 삶..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더 많이 기억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예쁘고, 아름다운 일들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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