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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래 성품 중, '익숙해짐'에 반대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애착'일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끈질긴 사랑'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단어는

앞서 말했던 '익숙해지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익숙해짐'이 대상을 오래 접하면서 나타나는

무관심, 무배려 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애착'은, 대상과 오래 함께하면서 생겨나는

그 대상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애착이 가는 대상이 있다.

그것이 돈 일수도 있고, 사람 일수도 있다.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에 애착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돌맹이에 애착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길 가다가 우연히 주운 작은 조약돌 하나라도,

그것을 오래도록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보면

버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주머니 속에 있는 조약돌을 오랫동안 만지작거리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그래서 그 돌맹이를 차마 버릴수 없어 늘상 들고 다니고,

만약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대부분 세탁하려다 그것을 발견한 어머니의 손에서 사라진다),

한동안 아주 허전함을 느낀다.


 


물론, 이 정도로 예민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빗방울 하나하나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봤냐고

친구한테 물어봤다가,

무안만 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애착이란 것은 정도와 대상의 종류에만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이 가지는 성질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에 가장 많은 애착을 보일까?

내 방 창가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쉬엄쉬엄 쓰고 있는 글이라

특별히 설문조사 같은 것을 해 본바는 아니지만,

그동안 읽어왔던 수많은

역사서적들(역사 만큼 이 물음에 도움이 되는 자료가 있을까?)과,

소설들,

신문(이 매체를 다룰때는, 그것이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과장, 왜곡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TV(이것은 소설과 더불어 여러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게 해 주는 주요한 도구이다),

그리고 내가 만나본 여러 사람들을 종합해 볼 때,

그것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애착만큼 강한 것이 또 있을까?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

가족에 대한 애착,

친구에 대한 애착,

심지어 인류에 대한 애착까지..

'사람에 대한 애착'이라는 표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범주의 것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이 가지는 애착이

'인류전체에 대한 애착'으로 발전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대부분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는 매우 근접한 범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닥쳐올 문제들의 경과추이를 지켜보면서

일희일비 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나의 문제가 잘 풀리면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다가도,

이내 다음의 문제에 직면하고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또, 가족에 대한 애착도 매우 강하다.

자신의 배우자, 자녀, 부모에 대한 애착은,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생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공통적인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대개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위의 순서로 그 중점이 변한다. 

 

 

즉,

나이가 어릴때는 배우자, 혹은 이성상대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가,

어느정도 나이를 먹으면 결혼을 하고,

그 다음에는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

그보다 후에,

즉 나이가 많이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실때 쯤이 되어서야,

부모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 

 

 

 

어린 나이에 가지게 되는 이성에 대한 애착.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첫사랑에 대한 기억.

대부분 이것은 어린 나이에 남게된다.

'첫사랑의 열병'이라고 하던가?

어린나이에 가지게 되는 이성에 대한 애착은

'열병'이란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성질의 것이다.

가슴이 두근두근뛰고,

기분이 한 없이 좋아졌다가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
(마치 열이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상당수도 이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알고 있는 결론일수도 있지만, 

이성에 대한 애착은 영원하지 못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애착이라고 하더라도,

막상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어지게 되면 차차 잊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망각'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때문에 그러한데,

(망각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이 망각이라는 기능 때문에 이 종류의 애착은 영원할 수 없다.

첫사랑의 추억은 영원하다고?

그것은 추억으로써 남는 것이지,

막상 오랜 시간이 지난다음에 만나게 되면

처음과 같은 종류의 애착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자녀에 대한 애착이 한국인들에게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수십, 수백만원짜리 유치원에 보내고,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과외를 시킨다.

부모들의 자식의 장래직업 1순위는 판사 혹은 의사이고,

많은 경우 자식의 결혼상대까지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지를 먼저 보게된다.




하지만, 자식은 자식일 뿐.

자식의 삶까지 내가 살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인생이 있을 것.. 

 

 



부모에 대한 애착은 가장 늦게,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부모가 늙고 약해지는 모습을 볼 때서야,

인간들은 부모에 대한 애착의 강도를 높여간다.

그렇게 늘 한 박자씩 늦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있어서 부모란 존재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데 한정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줄 것이 적어지면, 관심 또한 적어진다.

 




왜 좀 더 일찍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의 표현을 하지 못하는가?

왜 언제나 부모는 불평과 투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 부모에 대한 애착까지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착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죽고 시간이 오래 지나게 되면,

결국 또 망각이라는 커튼으로 살짝 가리워지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결론은 간단하다.

인간이 가진 애착이란 어느것도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거나 약화되기 마련이고,

결정적으로 죽음은 이런 종류의 애착을 사라지게 만든다.

죽고 난 뒤에까지 애착이 지속되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이런 종류의 애착 자체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

이런 종류의 애착을 가지면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단 한가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애착이 존재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애착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죽음조차 이를 없애지 못한다.

오히려 죽고 난 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애착이 극대화된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위에서 말한, 인간이 가지는 모든 애착 역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애착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하고, 완전한 것.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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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주 접하는 대상에 대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익숙해짐.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인간도 예외는 없다.

아니, 인간 뿐 아니라, 동물, 식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먹이를 줄 때마다 종 소리를 들었던 개가,

나중에는 종 소리만으로도 침을 흘리게 되었다는 실험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또, 분재를 아는가?

어린 나무를 두꺼운 철사로 감아서, 이리저리 휘어지게 만든채로 자라게 하면,

나중에 그 철사를 풀어도 여전히 그 기괴한 모습으로 자라는 것이다.



이 모든 종류의 생명체에게서 나타나는 '익숙해짐'이란 것이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는 여러모로 유익한 점이 많다.

불필요한 시간적, 물질적, 정신적 낭비를 줄여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도 언제까지나 처음 하는 것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그런 일이라면 적성에 안 맞는 것이니 포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운동 선수가 아무리 노력해도 경기장과 친해질 수 없다면, 어디 운동선수인가?



반대로 이 '익숙해짐'이 부정적으로 나타날때가 있다.

그 익숙해진 대상에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이 부정적인 발현은 다른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내 관찰에 의하면 오직 인간에게서만 나타난다.



인간은 '익숙해짐의 정도'가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이다.

다른 사람과는 잘 다투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형제 자매, 부모님과는 더 잘 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익숙해진 대상이기 때문이다.



익숙해진 대상에 대해서는, 처음보다 더 적은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상대의 작은 감정변화에도 신경을 쓰지만,

관계가 지속되면, 지속될 수록 관심도는 낮아진다.

그와 반비례해서 이기적인 경향은 증가한다.



상대가 오로지 나에게만 맞춰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상대의 작은 변화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상대가 내 작은 변화에 신경을 써주기만을 바란다.

모든 다툼은 내가 상대방을 좀 더 배려하지 못한데서 생기는 법.

인간은 이 사실을 실제로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때문에 익숙해지면 익숙해 질수록, 다툼은 더 자주 발생한다.



어떤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일정 부분의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것을 전혀 양보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떤 관계라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가진지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관계를 맺는 양 주체는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양보하고 희생한다는 결론이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자신을 위해 희생과 양보를 한 대상에게,

익숙해질수록 더 잘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조금 더 많은 것을 주려고 하고,

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신경을 써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인간이라는 배은망덕한 족속들은,

그들의 첫 조상이 하나님을 배신한 이래로,

아직도 그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하나님은 아무리 익숙해져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시는 분이니 말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만약 인간이 익숙해진다는 것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그 대신 익숙해질수록 조금 더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을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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