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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읽은 때 : 20171009 ~ 20171011 (3일)
이 책의 중반부를 넘어섰을 때조차 '내가 읽고 있는 책 이름이 뭐더라..?' 생각하며 제목을 몇 번 확인해야만 했다. 그만큼 왜 이 책의 제목이 '설득'인지가 잘 와 닿지 않았다.
저녁에 샤워 후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흔들어 말리며 책을 읽느라 책에 집중하지 못 했나..? 아니면 책을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빨리 읽어내렸던 여러장 안에 내가 놓친 중요한 부분이 있었나..? 왜 제목이 '설득'이지?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어 가다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아버지인 월터 엘리엇(용모와 지위에 대한 허영심이 있음)에게 세 명의 딸이 있는데 그중 둘째 딸인 앤(아버지와 언니에게 하찮은 존재, 기품 있고 온화한 성격)과 그녀가 사랑했던 웬트워스 대령이 헤어진 지 8년 만에 다시 우연히 만나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 둘이 헤어지게 된 데에는 레이디 러셀의 영향이 컸다.
레이디 러셀은 레이디 엘리엇(돌아가신 앤의 어머니)의 절친으로 그녀가 사망할 때 자기의 자녀들을 레이디 러셀에게 잘 돌봐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연륜이 있고 차분한 성품의 그녀는 앤과 웬트워스 대령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그가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걱정만 앞세우는 건 인간의 노력에 대한 모독이며 신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 아닌가. (p42)
그러나 사람이란 타인과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달래줄 나름의 우월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p57)
순종적인 정신의 소유자는 참을성이 많고, 강한 이성을 가진 자는 의지가 확고한 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유연한 마음, 위안을 구하는 성향, 흔쾌히 악에서 선으로 돌아서서 자신을 잊게 해줄 일거리를 찾는 힘은 오로지 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p205)
"루크 간호사는 언제 얘기를 꺼내야 할지 잘 알고 있어요. 영리하고 똑똑하고 분별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의 본성을 알아보는 눈이 있지요. 사리분별과 관찰력을 밑천으로 가진 사람이라 좋은 말동무가 되어준답니다." (p206)
"고난의 시기에 인간 본성의 위대함을 보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요. 하지만 대체로 병실에선 장점보다는 약점이 드러나고, 관대함과 용기보다는 이기심과 성급함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니까요. 세상에는 진정한 우정이 참 드물지요! 그리고 불행히도," 그녀는 나직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 잊고 살다가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니까요." (p207)
앤은 그와 결혼하도록 설득당할 수도 있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랬더라면 틀림없이 불행이 뒤따랐을 거라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어쩌면 레이디 러셀에게 설득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시간이 지나 뒤늦게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어느 쪽이 더 비참했을까?
- 참고로 여기서의 '그'는 엔트워스 대령이 아니다 - (p280)
엔트워스가 앤에게 쓴 편지 내용.
더는 침묵하며 들을 수가 없군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당신에게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당신의 말이 제 폐부를 찌릅니다. 고통스러운 한편 희망에 부풀기도 하는군요. 제가 너무 늦었다고, 그 소중한 감정이 영영 사라져버렸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에게 다시 제 마음을 드립니다. 팔 년 반 전 당신은 제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아니 전보다도 더 당신의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더 빨리 잊는다거나, 남자의 사랑이 더 빨리 식는다고 말하지 마세요. 제가 사랑한 여자는 당신뿐이었습니다. 제가 부당했는지도 모르지요. 나약하고 원망에 차 있었어요. 하지만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답니다. 제가 바스에 온 건 오직 당신 때문입니다.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며 계획을 세웁니다.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제 소망을 알아보지 못하신 건가요? 당신이 제 마음을 꿰뚫어 보았듯이 제가 당신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면, 이렇게 열흘씩이나 기다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글을 쓰기가 힘들군요. 순간순간 저를 감격케 하는 말이 들립니다.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하셔서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더라도, 저는 그 어조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너무도 선하고 너무나 뛰어난 사람! 당신은 정말 우리를 제대로 이해해주시는군요. 남자들에게도 진정한 애정과 절개가 있다는 걸 믿어주시니까요. (p314~315)
그녀의 장점에 대해 공정하지 못했던 것도 바로 그로인해 자신이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p320)
"당신은 차이점을 알아보셔야 했어요." 앤이 대답했다. "현재의 저를 의심하지 말아야 했어요. 사정이 달라졌고, 제 나이도 어리지 않은걸요. 설사 한때 남의 설득을 따랐던 것이 잘못이었다 해도 모험이 아니라 안전을 권하는 설득에 따랐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전 그분 뜻에 따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경우엔 그 어떤 의무감도 끼어들 여지가 없지요. 제게 애정이 없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고, 또 모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일 거예요."
"아마도 그렇게 생각해야 했겠지요."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성품에 대해 새롭게 얻은 깨달음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그건 지난 세월 내내 상처가 되었던 과거의 감정에 압도되고 파묻혀 사라졌지요. 당신을 다만 설득에 굴복했던 사람, 저를 포기했던 사람,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던 사람으로만 생각했으니까요. 그 참담했던 해에 당신에게 조언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분에게 그때만큼의 힘이 없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어요. 습관의 힘까지 더해졌을 테고요." (p324)
따라서 이제 레이디 러셀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생각과 희망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p331)
건강이 왠만큼 좋아지고 종종 찾아와줄 친구를 얻은 데다 이렇게 수입까지 늘었지만, 삶의 기쁨을 찾는 스미스 부인의 마음은 변질되지 않았다. 유쾌한 성품과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최상의 행복 공급원이 건재하는 한, 그보다 더한 세속적 성공이 찾아왔다 해도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라면, 절대적으로 부유하고 완벽하게 건강하면서도 여전히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미스 부인의 지극한 행복감이 활기찬 성격에서 비롯되었다면, 앤의 경우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앤의 성품은 온유함 그 자체였고 그러한 성품은 웬트워스 대령의 사랑 안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그의 직업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그토록 온유하고 섬세하지 않았으면 하고 친구들이 바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의 두려움만으로도 햇살 같은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져버릴 수 있었다. 앤은 선원의 아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국가적인 중요성보다 가정적인 미덕으로 더 돋보이기도 하는 직업에 속한 탓에, 그녀는 마치 세금을 지불하듯 만약의 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p334 ~ p335)
좋은 구절.. 나중에라도 다시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마음에 새겨 두고 싶은 문장들이 좀 꽤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시간을 단축하고자, 긴 글을 타이핑하는 수고를 덜고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길다!!라고 생각할까봐 (이 블로그는 나를 위한 공간이므로 애초에 이 생각은 불필요한 생각인게다.) 글을 줄이거나 통으로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지 않았다.
기록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니 책을 읽을때 무심히 흘려 넘겼던 각 인물들의 행동에 어떠한 이유가 있었는지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 좋다, 이 느낌.
아.. 세계문학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 나가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잠시 세계문학에서 한눈팔고 내일부터는 다른 책들 좀 읽어보려 한다.